선한 싸움의 승리자 2002-07-22 15:37:24 read : 2394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2년 7월 21일 // 디모데후서 4장 6~8절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디모데후서 4장 6~8절)
<목회기도>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
좋은 날의 주인공 되게 하시고
기둥교회에서 예배드리게 하셨음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이 자리에 멀고 가까운 곳에서
출신과 성품이 다른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신앙의 정도도 다릅니다.
그러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며 찬양하며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려고 한 맘 되어 모였습니다.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계셔서 영육간에 치료받고
소망의 확신을 얻으며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상처와 아픔, 답답함과 눈물을 감추고 있는 이들
모두에게 은혜와 평강의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내일부터 어린이 여름성경학교를 시작합니다.
참석하는 어린이들, 교사들, 접대하는 여선교회 회원들,
운전하는 이들, 간식을 제공하며 여러 가지로 협조하는 이들에게
평안의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기둥 같은 인물을 길러내는 성경학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에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하고
군에 나가 있는 젊은이들, 객지에 있는 이들, 외국에 나가 사는 이들
병상의 환자들 모두에게 평안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시고
우리가 받는 은혜를 저들도 함께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귀한 시간 성령께서 함께 계실 줄로 믿사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오늘 아침에 E-mail을 확인해 보았더니
"인터넷으로 기둥교회 예배에 늘 참석하고 있습니다."
라는 내용의 글을 보내신 분이 있었습니다.
제가 확인한 바로는 미국, 캐나다, 호주, 일본, 독일, 뉴질랜드, 중국, 브라질, 이태리,
영국, 네덜란드, 필리핀, 스위스… 등에서 인터넷으로
우리 기둥교회 예배에 동참한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배의 자리에 가야 합니다. 예배의 자리에 와야 합니다."
여러분도 예배의 자리에 있지만 컴퓨터 앞에서
인터넷으로 기둥교회 예배에 동참하시는 분들은 잘 들으십시오.
"예배의 자리에 가야 합니다."
예배는 인격적으로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입니다.
기둥교회에서 인터넷으로 예배를 중계하는 이유는
주일에 교회 가지 말고 컴퓨터 앞에서 예배를 드리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따라서 하십시오. "범사에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제가 전화를 받았는데 "목사님, 수술을 받았는데 방구가 나오질 않습니다.
방구 나오게 기도해 주십시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살다가 '방구 나오게 해 달라'는 기도 요청은 처음 받았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방구를 안뀌는 분들은 없을 것입니다.
방구를 뀔 수 있는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1990년 4월 경에 제가 미국에 살면서 LA에서 San Francisco에 가던 중이었습니다.
갓 돌이 지난 둘째 아들 영민이가 울면서 얼굴색이 변하고 자지러지는 것이었습니다.
증세도 무엇인지도 알 수 없었고 해서 혹시 가시에 찔렸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
휴게실에서 아이의 옷을 벗겨 보았습니다.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저귀를 벗겨보니까 항문이 반쯤 열렸는데
거기에 염소똥 같이 변이 막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손가락으로 파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얼굴색도 달라지고 장난치고 노는 것이었습니다.
그다음 부터는 제가 학교에서 돌아온 후에
제 아내와 눈이 마주치면 묻는 말이 있었습니다. 무엇이겠습니까?…
화장실 잘 다니고 방구 잘 뀌는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 - 기둥
역사를 살펴보면 인류의 역사는 소수에 의해서 움직여 왔습니다.
때로는 지혜로운 사람, 때로는 힘있는 사람, 때로는 악한 사람… 등에 의해
역사가 달라졌습니다.
가인이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왔고,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루고
부족을 그리고 국가를 이루며 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선한 사람으로, 어떤 사람은 악한 사람으로 평가 받기도 합니다.
이처럼 '한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으로 한 사람, 한 생명을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우리 기둥교회도 한 사람으로 인해 시작되었고
31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성장하고 부흥하여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90% 헌신하는 백 사람보다
100% 헌신하는 '온전히 하나님께 맡겨진 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 100% 헌신하며 쓰임 받는 사람을,
기둥 같은 인물을 우리 기둥교회에서 길러내야 합니다.
<기둥>이 갖는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 성경적인 의미 ≪
[기둥]은 • 기념비(창28:18, 삼상7:12, 삼하18:8),
• 건축물의 기초(삿16:25, 26, 29),
• 언약의 증거(출24:4~8)로 사용되었습니다.
[기둥]은 • 여호와의 임재(출33:9~10),
• 족속들에 대한 여호와의 주권(사19:19),
• 중심 되는 인물(계3:12,렘1:18,갈2:9) 등으로 상징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때
-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백성들을 인도하시고(출13:21~22),
- 백성들을 방어하시고(출14:19, 24),
- 백성들의 여행을 규제하시고(민9:15~23),
- 하나님의 영광을 표현하셨으며(출24:16~18),
-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표현하셨고(출34:5~8),
- 백성들과의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삼으셨습니다(출33:9~10).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 두려움의 원인이 되기도 했고(출19:9~16),
- 오랫동안 기억되었으며(시편99:7),
-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제목으로 상기되기도 했습니다(느9:12,19).
※ 이상과 같은 성경적인 기둥의 의미를 정리해 보면 ;
[기둥]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며 [중심이 되는 인물]… 을 의미합니다.
≫ 일반적인 의미 ≪
강함, 든든함, 믿음직스러움, 중심이 됨...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 사전적인 의미 ≪ 물건을 받치거나 버티는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뜻을 지닌 '기둥'이란 이름을 가진
☞ 우리 "기둥교회"는
하나님 앞에서나, 한국 교회에서나, 온 세상에서
신앙적인 "기둥"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우리 "기둥교회"의 성도들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끄러움 없이 살아
"기둥"같은 존재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우리 "기둥교회"는
"기둥 같은 사람"(갈2:9)을 길러내는 교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범하게 사는 사람, '지난 주일에도 오늘 같이 예배 드렸는데,
작년에도 오늘처럼 예배 드렸는데'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크게 쓰임 받지 못합니다.
헬라(Greek) 語에는 "때(시간)을 나타내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크로노스(kronos)라는 시간입니다.
- 과거(past), 현재(present), 미래(future)가 있는 보통 시간을 말합니다.
- 아침, 점심, 저녁, 밤 24시간의 하루, 365일의 일년…의 흐름을 말합니다.
이 크로노스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같은 시간으로 오고, 같은 시간으로 갑니다.
또 하나는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입니다.
이 카이로스의 시간은 특별한 시간이고 하나님이 간섭하는 시간입니다.
의미있고, 감격과 슬픔이 있고 가능성이 담겨 있고,
긴장미가 있는 시간을 말합니다.
평범하게 지내는 시간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특별한 사건의 시간입니다.
- 출생한 시간, 세례 받은 시간, 은혜 받은 시간, 능력 받은 시간, 감격한 시간,
졸업, 결혼… 등 어떤 일을 완성하고 성취한 시간을 말합니다.
- 역사적으로는 성탄절, Luther 종교개혁일, Wesley회심일
이 카이로스의 시간은 하나님께서 역사에 관계하신 날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매일 매순간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날(kairos)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시간의 세계에서 태어나 시간 속에서 숨쉬고,
시간 안에서 날마다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짧은 세월의 70인생, 강건하면 80인 인생(시90:10)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생각해 보시며 사시는지요?
오늘, 어떤 날로 보내시렵니까?
평범하게 의미 없이 지내시렵니까?
바울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일평생을 살면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 평범하게 살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평생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냥 선한 싸움을 싸운 것도 아니고 "잘 싸웠다"고 고백했습니다.
인생은 사는 것 자체가 전쟁이며, 어느 때나 전쟁 없는 시대가 없습니다.
욥은 "세상에 있는 인생에게 전쟁이 있지 아니하냐
그날이 품군의 날과 같지 아니하냐"(욥7:1)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전쟁을 경험하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싸우며 사는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찬송가 543장 4절에 보면
"험하고 높은 이 길을 싸우며 나아갑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춘하추동(춘하추동) 계절에 따라 날씨와 싸웁니다.
농군은 농토에서 농작물과 싸우고
학생은 책과 씨름하며 싸우고
의사와 환자들은 병과 싸우고
군인은 적과 싸우고
정치인은 생각이 다른 경쟁 당의 경쟁자와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런 외적 조건의 싸움이 아니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워 그 싸움에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바울처럼 날마다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잘 싸워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기둥교회에서는 헤어질 때 "승리하세요"라고 인사합니다.
처음 하시는 분들은 어색해 하지만, "선한 싸움에서 이기세요."라는 뜻입니다.
● 우리는 주님 편에 서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웠는지" 살피며 살아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주님의 이름을 내걸고 싸우는 것 같지만
인간적인 힘으로 싸우다가 지쳐 버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범사에 예수님 편에 서서
"말에나 일에나 다"(골3:17) 예수님 이름으로 하다가
얼마 못 가서 예수님 이름은 잊어 버리고 자기욕심의 싸움만 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과 교회를 피하고, 선한 싸움에 눈을 감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막고 포기하기까지 합니다.
● 진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으로 믿음의 선한 싸움도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진 사람은 이긴 사람에게 반드시 어떤 보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기지 못하면 패합니다.
질병의 싸움에서 패하면 육이 죽고,
경제적인 싸움에서 패하면 가난이 옵니다.
영적 싸움에서 패하면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반드시 싸워 승리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믿음의 선한 싸움은 싸움 중 가장 긴 싸움입니다.
다른 싸움은 챔피언이 될 때까지, 챔피언의 자리를 지킬 동안만 싸우면 됩니다.
그러나 믿음의 선한 싸움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날까지,
더 쉽게 말해서 죽을 때까지 평생 싸워야 합니다.
여러분은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 했습니다.
'달려갈 길을 마쳤다' 함은 [그의 맡은 일을 다하였다]는 뜻입니다.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부름 받아 사도가 된 바울은
그의 달려갈 길을 다 달렸다고 하였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했고, 계속 기도하고, 찬양하고, 감사하며 전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았다는 뜻입니다.
● 바울은 방향있게 달려갔습니까?
- 고린도전서 9장 26~27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 빌립보서 3장 13~14절에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께서 주실 상을 보고 뛰었습니다.
여러분, 운동회 때 달리기하는 학생들이 왜 골인 지점을 향해 뛰겠습니까?
박수도 받겠지만, 등 수 안에 들면 상을 받습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평범하게 대충대충하는 사람보다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사는 사람들이
더 큰 상을 받을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생각해 보세요. 예수 믿는 사람이 다 똑같습니까?
성경에는 분명히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22:12)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목표를 향하여 잘 달려간 사도 바울이 받은 상과
겨우 십자가 우편에서 "오늘밤 당신이 가는 곳에서 나를 기억해 주시옵소서."라고
했던 강도와 어떻게 하늘 나라의 삶이 같겠습니까!
●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고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는 사람은 잊어 버리는 것이 있어야 됩니다.
버려야 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포기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으뜸이 되고 자랑할 만한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잊었습니다. 버렸습니다.
복음을 위하여서는 가는 곳마다 멸시천대를 받았고, 매도 수없이 맞았습니다.
그는 수많은 교회를 세우며 수많은 병자를 고친, 수많은 공적을 세우기도 했지만
멸시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잊어버렸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도 자기의 자랑거리나 공적들(수고하고 애쓴 시간들)을
잊지 않고는 달려갈 길을 다 달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도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고
고백하며 생명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데 사용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뒤에 있는 것을 잊어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저 높은 곳을 향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잊어버려야 하지만 잊기 어려운 것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 첫째는 과거에 지은 죄악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이제부터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겠습니다."라고 회개했다면 용서 받은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잊으시기 바랍니다.
다시는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 둘째는 과거의 공로라고 합니다.
"나 옛날에 대단했어. 나도 다 해봤어"라는 공적을 잊기 어렵다고 합니다.
- 셋째는 과거의 신분을 못 잊는다고 합니다.
"나 왕년에 이랬던 사람이야. 나 이런 사람이었어"라는 것을
잊기 어렵다고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젊었을 땐 교회학교 교사로, 찬양대원으로 봉사 많이 했어"라고
하시는 분들, 지금은 어떠십니까?
옛날에 선교회장 했던 분들은, 지금은 어떠십니까?
하나님은 과거에 우리가 한 선행도 귀하게 여기시지만
지금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에 더 관심이 많으십니다.
● 바울은 맡은 일을 다하는 달음질을 했습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다하는 삶이 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주부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자녀로서,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그 일을 감당하고 계십니가?
교회에서 맡은 바 사명에 얼마나 충성하십니까?
얼마나 달려갈 길을 잘 달렸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교사로서, 찬양대원으로서, 안내위원, 헌금위원으로서,
장로나 권사나 집사로서… 잘했다고 자부할 수 있으십니까?
혹시 도중에 중단하지는 않으셨습니까?
바울은 "믿음을 지켰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믿기 시작한 날부터 죽는 날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오늘날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 가운데
믿음을 가졌으나 그 믿음을 지키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일로 삐지고, 실족하여 다른 사람의 행동과 말에 상처 받아
믿음을 온전히 지켜가는 사람을 쉽게 찾기가 어렵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고백합니다.
"후욕을 당하면 축복하고, 핍박을 당하면 인내하고,
비방을 당하면 권면하면서" 믿음을 지켰습니다(고전4:12~13).
"후욕"(꾸짖을 후, 욕할 욕)이라는 말은
"거친 말투로 비난하거나 모욕을 주어 상처를 입히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향해서 비난하거나 모욕을 주고 상처를 입혀도
그 사람을 향해 축복했다는 것입니다.
● 우리는 소중한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보배는 얻기가 어렵고, 얻은 후에는 지키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베드로는 믿음이 금보다 더 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벧전1:6~7)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을 가졌다면 잘 간직하며 신앙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유혹해 와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 환난과 핍박과 궁핍이 와도 믿음을 지켰고,
- 성공과 실패와 훼방과 투옥이 와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 질병과 죽음 속에서도 그는 믿음을 지키면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잘 되면 믿음을 지키고, 안되면 믿음을 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잘 안되면 기도를 열심히 하다가 잘 되면 믿음을 버립니다.
그러나 바울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빌립보서 1장 20~21절에 보면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고 했습니다.
●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가정을 지켜야 합니다.
일터도 지켜야 합니다.
건강도 지켜야 하고
재산과 명예도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지키고 믿음을 지키지 못하면 헛된 지킴이 됩니다.
믿음을 지키면 다 지켜주심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127:1)
하나님이 지켜 주셔야지, 내가 지킨다고 됩니까.
여러분이 자물통을 여러 개 채워 놓아도
하나님이 지켜 주시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 우리가 믿음을 지키면 주님이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어떤 시련과 풍파가 닥쳐도 여러분의 믿음을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
내가 잘 지키려고 하면 하나님이 지켜 주십니다.
찬송가 43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1.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2. 어려워 낙심 될 때에 주 너를 지키리
위험한 일을 당할 때 주 너를 지키리
3. 너 쓸 것 미리 아시고 주 너를 지키리
구하는 것을 주시며 주 너를 지키리
4. 어려운 시험 당해도 주 너를 지키리
구주의 품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후렴)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너를). 아멘.
여러분은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께 범사를 맡기며 사시기 바랍니다.
저는 분명히 아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는 교육으로 다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육 한다고 사람이 100%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르칠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성경에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번 여름성경학교에서도 어린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것입니다.
기둥 같은 인물로 쓰임 받은 사람들에 대해 가르칠 것이며
그 아이들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려면 어떤 목표를 가져야 하는지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 지,
어떤 것을 버려야 하는 지…등에 대해 가르칠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저도 가르칠 것이며 선생님들도 가르칠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중에 어린이들이 믿음을 가지며, 천국의 소망을 갖고
사랑하며 살 만한 넉넉한 마음을 갖게 될 줄로 믿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살 수는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즐겁고 재밌게 사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 가지고 있는 습관을 우리들도 그대로 가지고는
저 높은 곳을 향해 갈 수 없습니다.
버리는 것이 있어야 살 수 있고
버리는 것이 있어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약 80여년 전에 터키에 유명한 '여시푸'라는 레슬링 선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레슬링을 잘해서 유럽 지역에서 그를 상대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몸무게가 350파운드(158kg)의 거대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158kg이 넘는 레슬링 선수에게 유럽에는 상대할 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 여시푸는 미국에 건너가서 미국에서 제일 잘하는 레슬링선수였던
루이스와 시합을 하면서 장난감 집어 던지듯 해치웠습니다.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된 그는 상금으로 많은 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상금을 가지고 가봐야 환전하는데도 복잡하니까
그 돈을 전부 금으로 달라고 한 후 허리에 둘둘 감은 큰 전대 속에 채워 넣고
다시 배를 타고 집으로 가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바다 한 가운데 왔을 때 그가 탄 배는 그만 가라앉기 시작하였습니다.
여시푸는 전대를 둘둘 감은 채로 배에서 뛰어 내렸습니다.
아무리 운동선수지만 몸에 감은 금의 무게 때문에 구명보트가 도착하기 전에
큰 대포가 가라앉듯이 곧장 대서양 밑창에 가라앉아서
지금까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 금만 포기했더라면, 그 금만 벗어놓고 뛰어내렸더라면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욕심 때문에 죽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 천국을 소망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려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포기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벗어던 질 것은 벗어 던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그의 달려갈 길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버릴 것을 버렸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오늘"을 그냥 지나가는 한 날(크로노스)로 보내시렵니까?
아니면 매일매일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날(카이로스)로
사도 바울처럼 "나는 평생 선한 싸움을 싸웠으며, 달려 갈 길을 다 갔고,
믿음을 끝까지 지켰노라"고 고백하며 살겠습니까?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피 흘리셨고, 누구든지 그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복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받은 복, 우리가 가진 믿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바울도 상 받는 것을 위하여 달려갔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그 믿음을 잘 지키다가 상 받는 자리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그 상받는 자리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사도 바울은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달려갈 길을 마쳤습니다.
믿음을 지켰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버릴 것은 버렸습니다.
말씀을 듣고 그치는 삶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깨닫고
선한 싸움을 위하여 새로운 결단을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일부터 어린이들에게 선한 싸움을 어떻게 싸워야 하는 지 가르치려 합니다.
은혜와 평강이 충만한 여름성경학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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