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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 돌아가자
    2002-07-22 11:25:20   read : 3032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20714 호6:1-3
    호세아 선지자는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전 약 750년 전에
    북쪽 이스라엘 나라에서 태어나 활동한 선지자였습니다.
    당시 팔레스틴 지방은 북쪽은 이스라엘 나라로 남쪽은 유다 나라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남쪽이나 북쪽이나 도덕적으로 다 부패하여져서 퇴폐를 일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상거래는 점점 문란하여져만 갔는데....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있어서 심각하였던 것은
    그들의 생활이 타락하기 시작하여 하나님을 떠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물질적인 풍요에 현혹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교만해졌으며
    자기 편리주의에 맞춰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호세아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하여 경고의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치시고 찢으실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지 못하고 범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치셨다가도 싸매어 주시고 우리를 찢으셨다가도 도로 낫게 해주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징계하시면 죄를 뉘우치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멸망시키기 위한 심판이 아니라 사랑의 징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이스라엘을 기다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5장 15절에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서 저희가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기다리리라”
    그들이 고난으로 인해 죄를 깨닫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나와 무릎을 꿇을 때까지 그 기간이 얼마나 되건 기다리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실 때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신호이며 하나님께서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6장 1절-2절 말씀을 읽어보면
    하나님은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등지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두 번의 벌을 내리십니다
    첫번째는 우리의 마음을 찢으시는 징계입니다.
    두번째는 우리의 몸을 치시는 벌을 내리십니다.

    첫 번째, 하나님의 사랑은 찢으시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가족들이 마음을 갈기갈기 찢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랑하시는 자를 찢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찢으시는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믿었던 남편이 가슴을 찢고 소망을 두었던 자식마저 무모의 마음을 찢을 때가 있습니다.
    믿었던 친구가 배반하여 마음을 찢고 동업자가 배반하여 여러분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들의 마음을 찢으시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니고 자식이 아니고 친구가 아닙니다.

    어떤 때는 부모가 훈계라는 이름으로 자식의 마음을 찢습니다
    듣기 싫습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을 미워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작식이 잘못을 깨닫고 잘되라고 자식의 마음을 찢는 훈계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목사님이 말씀을 통하여 내 마음을 찢습니다.
    왜 목사님은 저런 말씀을 하실까?
    이해가 안됩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니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설교를 통하여 내 마음을 찢어야 자기의 죄를 깨닫고 새롭게 다짐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여러분의 마음을 찢으시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새 사람을 만들려고 찢습니다.

    살갗이 찢어지면 새 살이 돋아나듯 옛 사람이 찢어져야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찢어지는 아픔이 없이는 새사람으로 태어나는 기쁨도 맛볼 수 없습니다.
    옷감을 찢지 않고 새 옷을 만들 수 있습니까?
    흙덩이가 깨지고 부수어져야 그릇을 만들 수 있습니다.

    성도다운 성도가 되려면 수 없이 찢어져야 합니다.
    집사다운 집사가 되려면 가슴이 수 없이 찢어져야 합니다.
    큰 목사가 되려면 목사의 가슴도 수없이 찢어지는 아픔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첫 번째 경고의 말씀에도 돌아오지 않으면
    두 번째, 하나님의 사랑은 치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잘못된 길로 나아갈 때 그들을 바르게 깨우치시기 위해서 사랑의 매를 드십니다

    잠언에도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 13:24) 고 하셨습니다.

    매를 대는 것은 아무나 매를 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매를 대는 것입니다.
    마치 부모가 당신의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하는 것 같이 하나님도 당신의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 때문입니다.

    욥은 이유 없이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두 번의 기회를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욥도 처음 찢어지고 두 번째 치는 징계를 받을 때 까지는 깨닫지 못하다가 마지막 기회를 붙잡고 회개한 결과 그는 처음보다 배나 되는 큰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욥에게 주어진 첫 번째 기회는 그의 모든 자녀들을 한꺼번에 치는 사건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 기회는 욥을 쳐서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하신 징계를 통해서 주어졌습니다
    이처럼 두 번씩이나 징계를 통해서 기회를 주셨지만 욥은 교만하여 깨닫지 못하고 끝까지 한 마디의 회개나 뉘우침이 없었습니다.
    "나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욥의 완고한 태도는 아직까지도 교만으로 꽉 차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욥38:11) "네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교만한 물결이 여기 그칠지니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이 마지막 기회마저 붙잡지 못하면 욥에게는 죽음의 재앙밖에 남지 않게 되는데, 욥은 이 마지막 기회를 붙잡고 진심으로 회개했습니다.
    이에 욥은 (욥42:6)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라고 진심으로 회개했던 것입니다.
    진실된 회개를 보시고 하나님은 처음보다 배나 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애매한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슬픔을 참으면 하나님으 아름다운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벧전2:19)

    두 번째 우리는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오라' 이것이 함축된 사랑의 표현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떠났던 사람이 돌아오는 것을 회개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나고 거역하고 도전하는 행위를 죄라고 말합니다.
    우린 더 이상 하나님을 거역하는 삶에 종지부를 찍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는 분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의 진노하시는 매초리에 놀라고 이래서는 살길이 없다고 생각하시고 돌아서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녀를 때려놓고서 그 상처를 어루만지시면서 싸매어 주시고 치유하시고, 낫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자식들을 때리기도 하고 매를 듭니다.
    아이들을 키워보면 다같은 아이들이라도 어떤 아이는 때리려고 시늉만 해도 벌써 잘못했다고 하는데, 어떤 아이는 고집이 세 가지고 끝까지 잘못했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리다가 지친 부모가 이렇게 말합니다
    "제발 잘못했다고 말 한마디만 해라."
    얼마나 답답한 노릇입니까?
    아무리 때려도 돌아오지 않아요. 아무리 매를 맞고도 정신을 못 차려요.
    그래서 지금 때리시는 아버지께서 지치셨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찢고 치신 것은 우리의 불순종과 배반 때문에 진노하신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시 그 품에 안길 때 하나님은 싸매시고 낫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치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우리를 찢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싸매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도로 낫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 가족이 두손 붙잡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미국 중부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대단위 옥수수 농장을 경영하는 부부 가 어느 날 잠깐 집을 비운 사이 외아들「죤」군이 옥수수 밭으로 들어갔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죤의 나이 그 때 네 살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부부가 죤의 실종 사실을 알고 찾아 나섰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해가 저물고 농장엔 어둠이 깔렸습니다.
    당황한 부부는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경찰과 소방대원 그리고 자원봉사자들 30여명이 횃불을 켜든 채 밤을 새우며 찾았으나 죤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 경찰과 소방대원 지역주민 그리고 이웃도시에서 동원된 학생 300여명이 일렬로 서서 손을 잡고 옥수수 밭을 가로지르며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 오후 해질 무렵 싸늘하게 식은 죤의 시체를 옥수수밭 가운데서 발견했습니다.
    그 다음날 그 지방 조간신문에 이 이 사건을 머리기사로 다뤘습니다.
    그 머리기사 제목은 "너무 늦었다"였고 부제는 "우리가 조금더 일찍 손을 잡았더라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문제는 4천만 민족이 월드컵에 서로서로 손을 잡고 응원한 것처럼
    이 나라와 민족이 서로 서로 손을 잡아야 하는데
    흔히 자조적인 표현으로 이 민족이 냄비 근성이 있어서 벌써
    월드컵의 흥분이 식고 서로 싸우기를 밥먹듯이 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판을 쳐서는 안될 절벽에 우리는 서 있는 것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서로 손을 잡아야 합니다. 부부간에 가족 간에 이웃 간에 서로 손을 잡아 여호와게 돌아와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힘써 알아야 합니다.
    6장 3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신앙입니다.
    안다는 말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수박 겉핱기 식으로 알는 것이 아니라 직접 깨고 잘라서 체험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단순히 성경공부를 통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너무 커서 잠못이루며 눈물 짖는 고난속에 있을 지라도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 아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생일을 맞아 생일 잔치를 차려드리는 것도 주요하지만 부모님의 마음이 어떠한지 먼저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T.V 드라마에 어머님의 뜻을 모르는 딸에게 어머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 너도 앞으로 결혼해서 자식을 키워봐라, 내 마음을 알 것이다."
    정말이지 그 때가 될 때까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지금은 무엇을 아느니 모르느니 해보았자 다 피상적입니다.
    내가 부모 되어봐야 압니다.

    6장 6절에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세아 6:6)
    하나님께서 정말 원하시는 것은 제사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사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제사도 전혀 원하지 아니한다는 그러한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제물을 바치기 전에 먼저 너희들이 내 마음을 먼저 알아달라는 것입니다.

    4장 6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경지식을 얼마나 아는지 성경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말씀의 구체적 실천을 원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심은 하나님의 듯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실천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아는 첫 번째 방법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라들은 사랑이 식어지면 상대방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고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해야 알게되고 믿어지는 것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신학자에게 하루는 시각장애인이 찾아 와서
    '선생님, 저도 신앙생활을 위해서 하나님을 알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 신학자는 물어 보았습니다. 글자를 읽을 수 있습니까?
    '아직 읽을 줄 모릅니다.' 그러면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안마밖에 없습니다. 안마는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부터 안마를 해서 번 돈 중에 10분의 1을 떼서 당신 보다 더 불쌍한 사람에게 주십시오. 그렇게 한달 만 계속하면 반드시 하나님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에 시각 장애인은 얼굴을 찌푸리고 돌아갔습니다.
    신학자는 하나님을 알고자 찾아온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말하지 아니하고 너무나 평범한 말을 한 것입니다.
    처음 시각장애인은 시큰둥해서 그냥 며칠을 지내다가 그래도 유명한 신학자이니 그분 말씀대로 실천을 하였습니다.
    길거리 거지에게 동냥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찾아가서 쌀을 사주는 등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한달 후에 이 시각장애인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하나님이 분명히 살아 계심을 깨달았습니다. 나 같은 시각장애인도 선생님 말씀하신 대로 해보니 하나님이 어떻분인지 알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시각 장애인의 얼굴은 빛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본체는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을 실천할 때 하나님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을 아는 방법은 믿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중세의 유명한 신학자인 안셈은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믿는다. 믿음이 없이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어야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을 알아야 합니까?
    1절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러분, 하나님의 징계의 참뜻을 알아야 합니다.

    신학을 많이 공부했다고 하나님 잘 아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수십번 읽었다고 하나님 잘 아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삶속에서, 나의 작은 봉사 속에서, 나의 간절한 기도 속에서,
    내가 믿음으로 행하는 작은 일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길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난과 역경 속에서 하나님의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분을 진정으로 아는 길입니다.

    끝으로 우리가 돌아오면 하나님은 우리를 반드시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내가 한알의 썩는 밀알이 될 때에 진정으로 우리는 크리스천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혼신과 희생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가족과 내주변에 불신자들을 위해서 사용되어 질 때에 우리는 진정한 크리스천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2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하나님이 우리를 일으키시고 죽어가는 우리를 살리시는데 긴 시간이 필요치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가 그 분 앞에서 인정만 받으면
    하루나 이틀이면 일으키시고 적어도 사흘이면 우리를 다시 소생케 하실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도들의 기도를 외면하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부르짖음에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회복 사역은 길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의 손안에 붙잡히기만 하면 우리의 문제는 이틀만 기다리면 사흘만에 해결됩니다

    3절 말씀입니다.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늦은 비는 3,4월에 내리는 비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우리와 계절이 좀 다릅니다.
    이스라엘이 씨를 파종할 때는 11월입니다. 이때 오는 비를 이른 비라고 합니다.
    그리고 곡식이 영글 때 오는 비를 늦은 비라고 하는 데 3,4월에 내리는 비입니다.
    이때 내리는 비는 축복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돌아온 백성에게 필요하실 때 마다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 주셔서 풍요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우리들의 삶에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고 했습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놀라운 이적이 나타 낳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베드로와 요한처럼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이렇게 말하다가도 정작 나에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예수 그리스도의 경건과 능력이 없음을 깨닫는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회개가 따르지 않는 신앙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새벽빛같이 일정하게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힘써 알아야 하겠습니다.

    새벽이 되면 언제나 빛이 밝아오듯 우리의 어둠이 그치고 아픔이 사라지면 하나님의 은총의 빛이 비쳐오고, 메마른 대지를 촉촉이 적셔주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의 메마른 심령을 흡족케 해 주실 것입니다.

    어두움이 깊으면 새벽이 유난히 밝고 가뭄이 심하면 늦은 비의 흡족함이 더하듯
    하나님을 떠나 징계의 채찍으로 고난 당한 사람이 주의 품에 맛볼 수 있는 평안과 축복은 더욱 큰 것입니다

    맹인 윤인수 목사가 쓴 수기가 방송된 적이 있습니다.
    어린 소년 맹인 인수가 길거리에서 신문을 팔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구두 닦은 돈을 모아 돌아와서는 중병에 누워 있는 어머니에게 쥐어 줍니다.
    앞 못 보는 아들이 애써 모아 온 돈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수야 돈 열심히 벌었으니 하나님께 십일조 해야지”
    그때 어린 인수는 이렇게 어머니에게 쏘아 붙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준 것이 무엇이 있다고, 나는 맹인이 되게 하고, 어머니는 병들게 하고, 6.25의 피난민이 되게 하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 버렸는데 무엇을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냐”고 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인수야! 고향 잃어버린 것도 한스럽고, 집 잃어버린 것도, 건강 잃어버린 것도 서러운데, 하나님까지 잃어버리고, 믿음까지 잃어버리면 우리 가정에 무엇이 남겠느냐”

    오늘 예수 믿는 우리들의 가정마다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경제와 질병과 자녀와 사업의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멀리하고, 믿음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사랑까지도 잊어버리면
    우리가 믿을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오늘의 위기와 좌절 속에서 치유되는 길은 하나님 앞으로 진정으로 돌아가는 길밖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하나님께로 돌아갑시다. 하나님을 부릅시다. 하나님을 사랑합시다.
    그때 하나님은 떠오르는 햇빛처럼 정확하게 이른비 늦은 비의 축복을 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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