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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겸허한 자에게 은혜가
    2002-08-13 14:41:37   read : 2847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2년 8월 4일

    구약의 말씀: 사무엘하서 12:1 ~ 9
    주께서 예언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셨다. 나단은 다윗을 찾아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어떤 성읍에 두 사람이 살았습니다. 한 사람은 부유하였고, 한 사람은 가난하였습니다. 그 부자에게는 양과 소가 아주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가난한 사람에게는, 사다가 키우는 어린 암양 한 마리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이 어린 양을 자기 집에서 길렀습니다. 그래서 그 어린 양은 그의 아이들과 함께 자라났습니다. 어린 양은 주인이 먹는 음식을 함께 먹고, 주인의 잔에 있는 것을 함께 마시고, 주인의 품에 안겨서 함께 잤습니다. 이렇게 그 양은 주인의 딸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에게 나그네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 부자는 자기를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는 데, 자기의 양 떼나 소 떼에서는 한 마리도 잡기가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가난한 사람의 어린 암양을 빼앗아다가, 자기를 찾아온 사람에게 대접하였습니다." 다윗은 그 부자가 못마땅하여, 몹시 분개하면서, 나단에게 말하였다. "주께서 확실히 살아 계심을 두고서 맹세하지만, 그런 일을 한 사람은 죽어야 마땅하다. 또 그가 그런 일을 하면서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전혀 없었으니, 그는 마땅히 그 어린 암양을 네 배로 갚아 주어야 한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내가 너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고, 또 내가 사울의 손에서 너를 구하여 주었다. 나는 네 상전의 왕궁을 너에게 넘겨 주고, 네 상전의 아내들도 네 품에 안겨 주었고, 이스라엘 사람들과 유다 나라도 너에게 맡겼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면, 내가 네게 무엇이든지 더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너는, 어찌하여 나 주의 말을 가볍게 여기고, 내가 악하게 여기는 일을 하였느냐? 너는 헷 사람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다. 너는 그를 암몬 사람의 칼에 맞아서 죽게 하였다.

    서신서의 말씀: 갈라디아서 2:16 ~ 21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는 것임을 알고,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는, 아무도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하여 주심을 구하다가, 우리가 죄인으로 드러난다면,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시는 분이라는 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내가 헐어 버린 것을 다시 세우면, 나는 나 스스로를 범법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나는 율법 앞에서는 이미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대신하여 자기 몸을 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습니다. 의롭게 하여 주심이 율법으로 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헛되이 죽으신 것이 됩니다.

    복음서의 말씀: 누가복음서 18:9 ~ 14
    스스로 의롭다고 확신하고 남을 멸시하는 몇몇 사람에게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하나는 바리새파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세리다. 바리새파 사람은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토색하는 자나 불의한 자나 간음하는 자같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으며, 또는, 이 세리와도 같지 않습니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내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그런데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우러러볼 엄두도 못내고, 가슴을 치며 '아,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의롭다는 인정을 받고서, 자기 집으로 내려간 사람은 저 바리새파 사람이 아니라, 이 세리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




    오늘 읽은 구약성서 본문을 다시 말씀드리면 이런 것입니다. 양과 소를 많이 가진 부자와, 오로지 양 한 마리밖에 없어서 그 양을 어린 딸처럼 기르던 가난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부잣집에 손님이 찾아와서 양을 잡아 대접하려고 하는데, 자기 것은 다 아까워서, 양을 어린 딸처럼 기르고 있는 가난한 사람의 양을 빼앗아서 손님을 접대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다윗 왕이, 그 이야기를 전해준 나단 선지자에게 하는 말이, 이건 말도 안 되므로 그 부자를 벌을 주어 죽이고, 가난한 자에게 입힌 손해를 네 배로 배상하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때 나단 선지자가 다윗 왕을 향해서 직격탄을 날립니다.
    "빼앗은 사람이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은 왕권도 가지고 있고, 후궁들도 있고, 사울 왕이 거느렸던 아내들도 물려받았는데, 뭐가 부족하길래, 부하 장수 우리야를 전장에 보내서 거기서 칼에 맞아 죽게 하고, 남몰래 밤중에 우리야의 아내를 취하였습니까? 야웨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너는 밤중에 몰래 이런 짓을 저질렀으나, 나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대낮에 네 자손 중에서 이런 엄청난 비극을 당하도록 만들겠다.' 왕이여 회개하시오."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 가운데 가장 훌륭했던 임금, 산지 사방에 흩어져 있던 이스라엘을 하나로 통합하고 통일시킨 왕입니다. 정치적으로 민족사적으로 추앙받는 왕이지만, 오늘 개인적으로는 엄청나게 큰 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통일시킨 왕으로는 복을 내려주겠으나 개인으로서 저지른 죄악에 대해서는 대낮에 많은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고스란히 보복을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잘못 때문에, 다윗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훌륭한 왕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나단 선지자한테 직격탄을 맞을 만큼 처참한 인간이 되고 맙니다.
    다윗 왕이 이스라엘을 통일하여 통일 이스라엘의 첫 임금이 되었고, 그 다음에 솔로몬이 다윗을 이어 문화를 크게 꽃피우고 이스라엘의 전성기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왕 다음에는 흔히 그렇듯이, 자식들이 잘못하여 다시 민족이 갈라집니다. 남왕국, 북왕국으로 갈라졌습니다. "갈라짐"이라는 말은 이스라엘에게는 재앙이었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이 먼저 망하고, 이어서 남쪽 유다도 망합니다.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감으로써 이스라엘은 완전히 끝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
    유대 땅이 완전히 멸망했다는 이야기는 성전도 피괴되었다는 말입니다. 성전이 없이는 유대민족은 존속할 수가 없습니다. 지성소가 파괴되었고 제사가 없어졌습니다. 할 수 없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빌론 땅에, 또는 유대 땅 곳곳에 임시로 예배할 곳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회당입니다. 그 회당에서는 제사는 드릴 수가 없습니다. 지성소가 없기 때문입니다. 회당에서는, 지금 우리와 똑같이 예배를 드렸는데, 말씀 중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설교하는 사람들의 직분이 생겨났습니다. 설교자들이 바로 랍비라고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당시 랍비 계층의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에 나오는 바리새파 사람들은 누구냐 하면, 이 랍비들의 후손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가르치는 사람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같은 종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이미 성전이 회복되어서 예배드리고 제사도 드렸는데, 제사 드리던 사람들 계층은 사두개파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둘 사이에는 분명한 신학적, 신앙적 차이가 있었습니다. 제사를 중심으로 삼은 사두개파 사람들은 성서 가운데서 모세5경, 그러니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이 다섯 책만 하나님의 말씀이고 정경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천사가 존재하는 것도 믿지 않았습니다. 내세가 있는 것도 믿지 않았습니다. 부활이 있는 것은 더군다나 믿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현실 위주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사두개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두개파보다 훨씬 큰 세력인 바리새파 사람들은 사두개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신앙과 신학적 지식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신구약 성서 전부가 다 하나님의 말씀이요 정경입니다. 악마가 있고 천사도 있다고 믿었습니다. 현세가 있듯이 내세도 반드시 있다고 믿었습니다. 죽음이 있듯이 죽음 이후에 부활도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신학적 지식과 경건이라는 점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났습니다.
    이 바리새파의 대표자가 예수님 당시에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를 합니다. 계명도 물론 다 지켰고, 의로운 일도 했고, 십일조도 꼬박꼬박 냈고, 그리고 남들이 안 하는 것도 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을 하는 것입니다. 금식은 일주일에 한 번이면 족하며, 두 번 하는 것은 특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월요일에 금식하고 목요일에 금식했습니다. 왜 월요일에 하느냐 하면, 유대교 전통에 따르면,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율법을 받아왔는데, 시내산에 올라간 날이 월요일입니다. 그리고 시내산에서 기도하고 율법을 받아 내려온 날이 목요일입니다. 그래서 올라간 날, 내려온 날, 월요일과 목요일 이틀 동안 금식을 하는 것은 경건의 극치에 속했습니다.
    이 바리새인은 그러고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자기가 다 지켰다고 보고드립니다. 전부 감사하는 보고를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이 바리새파 사람이 감사하는 보고만 드렸을 뿐, 뭘 요청하는 간구의 기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옆에 있던 세리라는 사람은 보고할 거리가 하나도 없습니다. 율법을 지키지도 못했습니다. 세상 사람들한테 따돌림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죄로 완전히 뒤범벅이 된 사람이었던 모양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서 기도할 때 보고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눈도 들 수가 없습니다. 세리의 심정은 "다만 주님이 오셔서 은혜를 주신다면 제가 살겠습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드릴 기도는 간구의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예수께서 왜 이렇게 훌륭한 바리새파 사람은 의롭다고 안 하시고, 세리를 의롭다고 하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불공평한 분인가요? 하나님은 공평하지 않으신 분인가요?
    저는 개인적으로 고백하는데, 우리가 살면서 바리새파 사람을 절반만큼만 닮을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는 것은 그만두고라도, 십계명을 지키는 것을 그만두고라도, 내가 얼마나 성실하게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보고드릴 것이 많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요한 목적은 사실 세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바리새파 사람을 들어서 질책하고 동시에 바리새파 사람한테 뭔가 신앙의 길을 가르쳐주려는 데에 있습니다. 이 바리새파 사람은 다윗의 혈통에 속하지만, 어쩌면 다윗보다 훨씬 더 유능한 사람입니다. 오늘 세리라는 사람은 보고할 거리도 없고 감사할 거리도 없어서, 하나님이 오셔서 죽이시든지 살려주시든지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니 얼굴도 못 듭니다. 그러나 내세울 것 하나 없어서 완전히 절망하는 사람, 주저앉은 사람, 그 사람이 와서 하늘에 대고 "저를 좀 살려주십시오" 하고 완전히 자기를 내놓을 때, 예수님 말씀은 "의롭다 함을 받았다"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시는 바리새파 사람의 잘못은 무엇입니까? 그 동안 엄청난 일을 해서 하나님께 보고한 것은 좋았습니다. 그러나 바리새파 사람의 기도는 이런 것입니다. "제 구원은 제가 시작해서 이만큼 이루었으니, 하나님께서는 저한테 조금만 보태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내가 이만큼 해놓았으니 하나님은 거기에다 조금만 보태주면 되겠다는 말입니다. 우리 신앙도, 우리가 알아서 노력하고 기도하고 업적을 쌓아놓고서, 하나님더러 조금만 보태어 달라고 하는 것 아닌지 모릅니다. 요즘 말로 "플러스 알파", 고거면 되겠다는 자세가 아닌지 모릅니다. 세리는 플러스 알파는커녕, "저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죽이든지 살리든지 알아서 하십시오." 했습니다. 절대의존입니다.
    인간의 구원이란 조금만 보태면 가능한 게 아닙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는 조금만 도와주면 여러 가지가 가능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아까 북한을 위한 기도도 했습니다만, 북쪽이 스스로 나서서 열심히 노력하면서 자립할 의지를 보인다면, 우리도 기꺼이 도울 수 있습니다. 조금만 도와주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협력의 구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협력은 구조가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바는 이렇습니다. "네가 너로부터 출발해서 쌓아 놓은 너의 업적은 네게 중요할 수 있겠지만, 거기다 내가 조금 더 보탠다고 해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구원은 나를 네 인생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다. 내가 천지를 창조하고 인간을 만든 창조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너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동시에 이 창조를 완성할 자도 나 야웨다. 그러므로 출발과 완성, 시작과 끝은 나의 것이다. 너는 그 틈새에다가, 출발과 완성 그 사이에다가 네 노력과 수고, 율법과 업적을, 은혜와 감사를, 네 모든 것을 쌓아라."
    요한계시록에 보면, "알파요 오메가"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동시에 그 창조한 천지만물을 완성하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시작이요 완성이며,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그 시작과 완성의 사이는 여러분이 노력하여 채워야 합니다. 그리고 부족하면 성령의 역사를 구하여야 합니다. 출발은 우리들에게 맡겨진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출발도, 생명의 완성도 우리에게 맡겨진 것이 아닙니다. 생성과 완성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그 생성과 완성의 그릇 안에 여러분들의 것을 채우십시오. 바리새파 사람들의 잘못된 점은 이것입니다. "주님, 내가 출발해서 구원에 이르렀으니 당신은 보태만 주십시오." 그런 하나님, 그런 구원은 성서에 없습니다. 차라리 아무것도 못하겠다며 하나님께 내놓으십시오.
    우리 모두는 바리새파 사람의 철저한 신앙생활, 결연한 윤리적 태도, 그리고 의롭게 살아가려는 자세를 본받아야 합니다. 단, 바리새파 사람들보다 좀더 나아지려고 한다면, 좀더 의롭게 살려고 한다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우리가 쌓은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한테서 왔고, 하나님을 통해서만 완성이 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분명히 하십시다. 그리고 나서 그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자유로, 하나님의 은총으로 맘껏 뛰놉시다. 하나님은 사사건건마다 간섭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출발과 완성만 분명히 하고서, 알파와 오메가만 분명히 하고서, 그 안에서 자유롭게 놀기를 원하십니다. 찬양도 하고 기도도 하고…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여러분의 인생, 직업, 역사의 출발을 만드시는 분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그것을 완성하시는 분도 하나님! 이 두 가지만 확인하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은혜롭게 뛰놀며 하나님과 함께 즐거이 지냅시다. 이것이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라는 계약의 뜻입니다. 이 인식 하나가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부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 얘기를 받아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미 율법으로 말하면 이미 예수의 십자가에서 그분과 함께 죽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내 안에 사는 것은 내가 아니고, 그리스도입니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 말은 이런 뜻입니다. "나의 새로운 출발은 그리스도가 만듭니다. 나는 나를 새로 출발시킨 그리스도와 손잡고 이 길을 갑니다. 완성의 그날까지 갑니다.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까지. 그래서 나는 내가 나를 사는 게 아니고, 그리스도가 나를 삽니다." 이렇게 출발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짐 하나씩을 등에 얹어 주십니다.
    어떤 분이 이렇게 시적인 고백을 했습니다.

    제 등에 진 이 짐이 없었더라면, 저는 사랑을 모르고 살 뻔했습니다.
    제 짐의 고통을 통하여, 짐 진 사람들의 수고를 알게 되었습니다.
    제 등에 짐이 없었더라면, 저는 성숙하게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게 고통스러운 짐은 제 삶의 질적인 무게가 되어 저를 성숙하게 했습니다.
    제 등에 짐이 없었더라면, 저는 교만과 오만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짐 때문에 저는 겸손과 소박함을 배웠습니다.
    제가 인생의 언덕을 올라갈 때, 제 짐의 무게가 없었더라면,
    미끄러운 길에 자동차처럼 헛바퀴 돌며, 인생의 언덕을 오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동차는, 겨울에 눈이 오고 얼음이 얼어서 노면이 미끄러울 때 동력이 전달되는 바퀴 쪽에 적당한 짐이 쌓여서 무게가 있어야 바퀴가 헛돌지 않습니다. 경험하셨죠?)
    이 짐이 제게 괴로움이었고 충격이었지만,
    그러나 그 짐이 제게 은혜가 되어,
    오늘을 성실하게, 내일은 보다 더 성실하게 살게 해 줍니다.
    이 짐을 인간 성숙의 짐으로 알고 감사를 드리렵니다.

    이 짐이 무엇입니까?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십자가라는 짐입니다. 십자가! 즐겁게 지면 그 십자가는 반드시 오메가라 이름하는 완성의 지점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가 실족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라는 짐을 주었습니다. 이 짐은 우리 서로 나누어 질 수 있는 짐입니다. 나눌 수 없는 짐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의 잘못은 짐이 없이 가볍게 인생을 살려고 하는 데 있습니다. 출발이 분명하고 도달할 곳이 분명하면, 알파와 오메가가 분명하면, 그 안에서 지는 십자가의 짐은 굉장히 가벼울 뿐만 아니라 보람이 있습니다. 출발과 끝을 명확히 하십시오. 그러면 세리에게 주었던 "의롭다 하심"의 복을 오늘 우리에게도 주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시작과 끝은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그 시작과 끝 사이에서 가볍고 보람있는 십자가의 짐을 지고 부활의 그날까지 함께 행진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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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용할 양식
    항존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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