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씨를 뿌리자 2002-08-13 14:00:06 read : 2154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시 126:1-6> <2002년 8월 11일>
□ 눈물로 씨를 뿌리자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
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
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
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리소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
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편 126:1-6>
오늘은 우리 나라가 해방된지 57년의 세월이 흘러가는 주간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과 같이 그 날은 우리 민족에게서는 꿈꾸는 것과도 같았던 그
런 날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
득하고 우리의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
를 위하여 대사(大事)를 행하셨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8.15의 해방은 하나님
우리 민족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이었고, 대사(大事)를 행하신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우리나
라 처럼 남쪽과 북쪽으로 나뉘어 두 체제로 통치를 해 오다가 북쪽은 주전 721
년경에 앗시리아에게 망했고, 남쪽은 587년경에 바벨론에게 망한 사실을 다 알
고 있습니다. 남쪽 유다 왕국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 왕은 잡혀가면서 두 눈을
뽑혔고, 그밖에 모든 장정들은 다 포로로 잡혀갔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불
버렸고, 성전의 기물들은 모두 바벨론으로 실려갔습니다. 얼마나 기가막힌 일이
었겠습니까?
마치 우리나라가 36년 동안 일본 제국주의 말 발굽에 밟혀 식민지 노예생활을
했던 것과 같이 이스라엘민족은 바벨론에게 식민지 생활을 70년 동안 했었습니
다.
우리 보다 거의 배나 오랜 세월동안 바벨론을 섬기며, 바벨론의 식민지 생활을
했어야 했습니다. 이 때 모습을 노래로 지은 것이 시편 137편입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에 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로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
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내용은 그렇게 포로생활을 하던 저들에게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해방을 받게 되어 그 기쁨을 노래한 시입니다.
잡혀갔던 이방 땅에서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이었겠습
니까!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 꾸
는 것 같았도다"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 우리의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참으로 실감이 나는 말입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이었겠습니까?
이 자리에 8.15를 직접 체험한 세대들은 그 날의 감격을 다 잊지 못할 것입니
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많은 감회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우리의 현
실을 보면서 또 한편 우리의 미래를 전망해 보았습니다.
지금 이 시편기자는 그 옛날을 기억하는 것 보아서 아마 바벨론 포로가 되어갈
때 10대의 소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7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머리는 백
발이 되어버렸고, 이마에는 주름살이 깊어진 80대 노인이 되어 돌아오게 되었으
니,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지난 포로기
간 동안 밤낮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던 그것을 기억하면서 여호와께서 우리의 눈
물의 기도를 들으셨다고 이 노인은 믿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그 큰 기쁨은 결코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눈물을 흘리
며 씨를 뿌린 결과이다" 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6절에 보면,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
아오리로다" 라고 단언적으로 확신에 찬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잘 되는 집의 가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못되는 가정을 보면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보면, 그 당사자들이야 별로인데, 어떻게 그런 축복을 받고 사
는가? 들여다보면 반드시 그런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누군가가 눈물로 씨를 뿌
린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는 이 진리를 깨달아 알기는 젊어서는 몰랐습니다.
도리어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을 힘 없는 사람들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힘이 없으니, 하나님이란 존재에 의뢰하면서 그에게 복을 달라고 그런다고 그렇
게 생각했었습니다. 한창 민감할 때 부모님의 신앙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공산주의가 이북에서 정부를 수립한 후 대대적으로 사상 검토가 있었습니다.
저는 학급에서 공부를 그래도 잘하는 층에 속하여 소년단이 조직될 때 금줄 두
줄 반이 되었습니다. 금줄 셋이 제일 높고 그 다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반줄로 떨어졌습니다. 알고 보니, 주일날 학교에 나오지 않고 교회에 갔
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주일을 범하면 우리 아버지는 저에게 매를 가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린시절에 아버지를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왜 해필 교회 일을 보면서 나를 이렇게 가난하게 키웠는가고 원망했습니
다.
그러나 이제 와서 보니,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의 은혜 아니 것이 없었습니다.
저는 솔직하게 오늘 제가 목사가 된 것은 우리 부모님들의 눈물의 기도의 씨를
뿌린 결과라고 봅니다.
"우리 니봉이(이봉이의 사투리) 큰 욕심 버리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인물이 되
게 하여 주옵소서..." 큰 욕심 버리게 해 달라고... 그래서 그런지 아마 내가
아버지 기도가 아니었으면 욕심이 대단하였을 것인데 그만 이렇게 목사가 되어
두 교회로 내 인생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생각해 봅니다.
내가 잘나서 오늘까지 이 자리를 지키었다고 그렇게 보지않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눈물로 씨를 뿌린 부모님의 기도의 덕분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아버님은 전통적인 유교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예수를 믿게 되
었습니다. 그래서 완고하신 할아버지로부터 예수 믿는다는 것 때문에 호적
에서 제적을 당했습니다. 내 아들 아니라고... 조상도 모르는 놈을 내 아들로
두지 않겠다고...
그래서 유산이란 한 푼도 없이 쫓겨나왔습니다. 그래서 안주노회 여전도회 연합
회가 파송한 개척 전도인으로 출발하여, 조사로, 장로로 세 곳에 교회를 세워오
는 동안 저를 낳았습니다. 저는 사무엘 처럼 우리 집이 교회이었고, 교회가 우
리 집이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귀들린 자들과 함께 먹고 자면서 매일 아침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부모님의 기도를 들으면서 성장하였습니다. 그리고 눈물
로 기도하면서 우리를 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회 생활에 별 어려움이 없이
오늘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확신합니다.
1. 하나님은 눈물로 기도하는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 눈에 눈물이 없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하나는 기도를 하면서도 하나님 보다 세상 적인 것들을 더 의지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 매달릴 만큼 급한 현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의지할 언덕이 있기 때문이란 말입니다.
사람은 급해야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죽을 병에 걸렸을 때, 벽을 향하여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기
도했더니, 하나님은 그의 눈물을 보시고 15년의 생명을 연장 시켜 주었습니다. 사람이 절박해지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직도 내 통장에 잔고가 남아 있는 한, 아직도 내 육체가 움직여지는 한, 우리
의 눈에는 눈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의 깊은 내면을 표현하는 길은 눈물입니다.
눈물의 기도는 그만큼 깊이가 있습니다.
눈물의 기도는 그만큼 간절성이 있습니다.
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아무런 영적 성장이 없습니까?
무엇인가 달라지는 것도 없고, 무엇인가 감격스러움도 없고, 교회 나와도 아무
런 기쁨도 없고, 내 마음의 시원함도 없고, 그 날이 그 날처럼 지내는 경우라
면 틀림 없이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말랐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오래 나왔는
데, 기도 문이 열리지 않아 종이에다 적어서 하는 경우라면 눈물이 그 눈에서
흘려진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라도 울면서 기도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경험이 생기면 달라질 것입니다.
2.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들은 기쁨으로 거두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로 잡혀가 바벨론에서 지내는 동안 저들은 절실하게 옛 시
절을 생각하며 눈물로 기도하였습니다. 자기들의 처절한 현실의 고통 중에서 철
저하게 회개하고 날마다 눈물로 기도하였습니다. 10대의 어린 나이로 잡혀간 저
들이 이제는 70-80대 노인들이 되어버렸는데, 이제 얼마를 더 살지 모르는 가운
데서 저들의 자녀들과 후대들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저들은 아마 살아서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리라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자기들의 자녀들을 위해 기도했을 것입니다.
눈물의 씨를 뿌렸더니 이제 그 씨의 열매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 감격이 오늘
의 본문의 내용입니다.
지난 세월에서 우리는 얼마나 눈물의 씨를 뿌렸습니까?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눈물의 씨를 뿌려야 기쁨의 단을 거두게 된다는 말씀의 진리를 바로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귀한 교훈입니다.
우리가 언제 통일의 날을 볼 수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눈물로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한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기도는 눈물로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입니
다.
얼마나 저들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였습니까?
3. 그런데 눈물로 씨를 뿌릴 때 유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릴 때,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흥망성쇠의 원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과 길을 따라 순종하면 승리하고 일어나지만, 하나님의 뜻
과 원하심에 반하면 그 길에는 실패와 패망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복 있는 자가 누구입니까?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오직 여호와
의 율법(말씀)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하였습니
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녀들로 키워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자녀들 되기 위하여 올바르게 키워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열심히 믿느라고 하면서도 자기식대로 믿고, 자기주장대
로 봉사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위한답시고 자신의 뜻을 고집하는 경
우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버려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버릴 때, 흘리는 눈물이 참 씨를 뿌리는 결
과입니다.
자기의 뜻을 접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함에서 흘린 눈물들은 반드시 기쁨으
로 그 단을 거두게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여러분! 자녀 교육을 위하여 얼마나 힘을 쓰십니까?
그러나, 그 자녀들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순종하면서 사는 자녀들이 되도록 눈
물을 흘리며 기도해야지, 그냥 부모들의 소원을 이루어지도록 기도한다면, 그렇
게 키운 아들딸로부터 얼마나 효도를 받을 수 있겠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친구 목사님께로부터 E-mail이 왔습니다.
아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들 둘, 딸 하나를 두었는데, 큰 아들은 어렸을 때 침대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뇌를 다쳐 지금 42살이
되는데도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 그 아들이 그래도 효도를 한다고....
둘째 아들은 머리가 똑똑하
여 유씨 버클리를 나와 박사가 되었으나, 제 갈길 가느라고 부모도 찾아보지 못
하고 있고, 딸이 그래도 부모를 모시고 있는데, 이 큰 아들이 그래도 큰 추럭
운전을 장거리 뛰어 돈을 벌어오는데, 그 놈이 그렇게 측은하게 보인다고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똑똑하게 키우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녀들로 키우렵니까?
어느 쪽입니까?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단을 거두어들이게 될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