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사직서를 제출하고 나서 2002-08-30 18:19:10 read : 3441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릭 워렌
언젠가 「사이컬러지투데이」(Psychology Today)지에서 5만 2천 명의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었다.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그들의 대답은 다양했지만, 한 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적인 요인보다는 외적인 조건들을 언급했다는 사실이다. 행복에 대한 대중적인 생각은 좋은 환경들을 갖는 것이다. 이것을 나는 ‘…라면(when and then) 사고’라고 부른다.
“내가 대학을 들어가기만 한다면, 나는 행복할 것이다.” “내가 학교를 졸업한다면, 나는 행복할 것이다.” “내가 직장을 갖는다면, 나는 행복할 것이다.” “내가 직장에서 승진하기만 한다면 나는 행복할 것이다.” “내가 결혼을 한다면, 나는 행복할 것이다.” “내가 자녀들을 갖게 된다면, 나는 행복할 것이다.” “자녀들이 집을 떠나고 남편과 단 둘이 산다면, 나는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행복은 환경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행복은 선택이다. 당신은 행복하기로 선택한다. 때때로 당신의 환경에 거슬러서 말이다. 바로 지금, 당신이 사역에서 무슨 일을 맞닥뜨리고 있는지 하는 것과는 관계 없이, 당신이 선택한 그 수준만큼 당신은 행복한 것이다.
삶, 그것은 결코 쉬운 것만은 아니다
부모 역할은 어렵다! 목회 사역도 어렵다! 삶이 결코 쉬운것이 아니다! 제대로 되지 않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삶 속엔 너무 많이 존재한다. 만일 사역을 할 때 당신의 뜻대로 진행되는 일들만이 당신의 행복을 보장해준다면, 사역의 많은 부분에 있어서 당신은 비참하게 될 것이다.
물론,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가에 대한 가장 위대한 가르침은 산상설교의 처음 열두 절의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가장 유명한 설교를 “행복해지기 위한 8가지 방법”으로 시작하신다. 그분은 당신의 거룩함뿐 아니라 당신의 행복에도 관심을 갖고 계신다.
행복에 이르는 예수님의 8단계 중에, 내가 믿기로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 단계이다. 마태복음 5장 3절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말씀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심령이 가난한 자”는 어떤 의미일까?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은 낮은 자존감도 아니고, 항상 자신을 비굴하게 낮추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시시한 것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었다.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께 대한 당신의 가치를 보여 준다. 예수님께서는 겸손에 대해 말씀하셨던 것이다.
참된 겸손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단순하게 하나님께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참된 겸손이다. 자신이 그 모든 것을 갖고 있지 못함을 인정하고, 자신이 아직 다 이루지 못했다는 것, 다 배우지 못했다는 것, 완전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결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리빙 바이블」(Living Bible)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겸손한 자는 행복하다”(Happy are the humble). 행복과 겸손은 함께 움직인다! 이 둘은 쌍둥이이고 서로 깊이 사랑하는 연인이다. 만일 삶과 사역에서 영원한 행복을 소유하길 원한다면, 당신은 참된 겸손을 배워야 한다. 겸손이 정말 어떻게 우리의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을까?
겸손은 우선 스트레스를
감소시킨다
내가 겸손하다면 난 모든 답을 알고 있어야 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 세상이, 혹은 내가 목회하는 교회조차도, 그 전 존재를 내게 의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겸손은 나로 온 세계의 지배인의 자리를 하나님께 내어드리도록 해준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겸손해지기로 선택할 때, 나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긴장과 함께 비로소 살아갈 수 있다. 결혼, 자녀, 사역을 향한 나의 이상은 지금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당신은 이 긴장을 항상 갖고 살 것이다. 겸손은 모든 일들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감사의 마음으로 삶을 용납하는 것이다.
인간(human), 인간성(humani ty), 유머(humor), 겸손(humility) 등이 모두 한 근원에서 나온 단어임을 알고 있는가? 겸손은 그 본질에 있어서 인간성과 닿아 있다. 겸손은 당신의 강점들과 약점들을 동시에 볼 수 있는 현실적인 관점을 갖게 한다. 성경은 이를 “지혜롭게 생각하라”(having a sober judgment of yourself, 롬 12:3. 스스로 분수에 맞게 생각하라는 의미 - 역자 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겸손은 당신이 너무 심각해지지 않도록 한다. 겸손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에 대해서도 잘 웃을 수 있다. 하지만 교만한 사람들은 종종 유머 없는 사람들이 되곤 한다. 그들은 자신들 스스로에게 너무나 감명을 받았든지, 혹은 위신이 떨어져 비웃음을 사게 될까 불안해 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목회자들이 자신의 중요성을 과도하게 부풀려서 생각하기 쉽다는 사실을 나는 주목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매우 심각하고 진지하게 여긴다. 하나님은 충분히 진지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사역에서 받게 되는 그 많은 스트레스들의 원인이다. 당신은 사람들에게 당신의 중요성과 당신의 영성과 당신의 지식으로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 너무 많은 정서적 에너지를 쏟은 나머지 항상 고갈된 상태이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치겠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겸손히 의존하여 일을 할 때에는 스트레스는 감소되면서 행복은 높아진다.
겸손은 또한 관계를 증진시킨다
교만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기를 즐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기적이고, 자기 이익에만 골똘한 사람들은 사람들을 짜증나게 만든다. 그들은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고 모임을 파괴한다.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은 자신들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 역시 행복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반면, 우리 모두는 진정 겸손한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기를 좋아한다. 당신이 겸손할 때,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 더욱 잘 어울리게 된다. 겸손은 자기 자신을 단순히 낮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더욱 높게 평가하는 것이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될 때,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게 된다!
당신이 심령이 가난할 때, 당신의 스트레스는 감소하고 당신의 관계성은 증진된다. 당신이 잘못했을 때 더 쉽게 용서를 구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항상 옳지 않아도 된다. 당신은 쉽게 다음의 말들을 할 수 있게 된다. 두 단어로 된 가장 어려운 말, “나를 용서해 주세요”(Forgive me). 세 단어로 된 가장 어려운 말, “내가 틀렸습니다”(I was wrong). 네 단어로 된 가장 어려운 말, “저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I need your help).
성 프랜시스는 겸손을 유지하는 독특한 방법을 갖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말하기를, 누군가가 자신을 칭찬할 때마다, 겸손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동료 수도사 한 명을 앉혀놓고는 그에게 자신의 모든 잘못들을 말했다고 한다. 물론 그가 동료 수도사의 도움을 청했던 이유는 그가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실제로, 결혼을 한 당신을 겸손하게 유지시켜 주는 것이 당신의 아내의 일은 아니다. 그것은 당신의 일이다! 겸손은 선택이다. 루스 그레이엄은 빌리 그레이엄에 대해 “내가 할 일은 빌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그를 겸손하게 유지하는 것이지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겸손케 하기에 실패했을 때에만 우리를 겸손케 하시기 위해 간섭하신다. 성경에서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겸손하라”는 말씀을 듣는다. 다시 말하지만 겸손은 선택이다. 당신 자신 대신에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선택 말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 겸손히 행할 때,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신 그 모습 그대로 있을 때, 그리고 하나님께 의지할 때, 나는 나를 향한 다른 사람들의 모욕들에 대해 거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 나의 초점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 있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얻는 데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모욕들이 그저 내 귓가를 스쳐 지나갈 뿐 나를 괴롭히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비판에 지나치게 민감해지는 것은 내가 겸손 가운데서 행하기를 멈추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이다.
겸손은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는 길
겸손은 당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준다. 야고보서 4장 6절은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라고 말씀한다. 당신의 삶과 사역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도록 부어지길 바라는가? 영적 능력의 비밀은, 다른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행하는 것이다.
지난 나의 생일에, 내 딸 케이가 아침상을 차려주었다. 내 아이들은 카드와 선물들을 내게 주었다. 내가 그 카드들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내 두 눈은 눈물로 가득 찼고 난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나의 아이들은 그들의 아버지께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궁금해할 뿐이었다.
그날 아침 식탁에서, 두 가지 생각이 나의 머리를 스쳐갔다. 첫째, 난 내 삶이 하나님의 은혜에 압도되어 있음을 느꼈다. 그 모든 좋은 것들을 갖기에 나는 자격이 없었다. 난 정말 자격이 없는 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내가 미국 땅에 태어나도록 하셨고, 그리스도인 가정을 갖게 하셨으며, 지역 교회의 목회자로 그분을 섬기는 특권을 갖도록 해주셨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나의 삶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느꼈던 또 다른 감정은 내가 목회자로서 느끼는 깊은 책임감이었다. 사람들은 지혜로운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는 것과 내게서 매 주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을 듣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내 자신이 부적당하다는 느낌과 두려운 마음에 깊이 사로잡혀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사역을 대하는 좋지 않은 태도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능력의 열쇠라고 느낀다. 내가 나의 부적당하고 자격없음을 인정할 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대신 맡아 주신다. 이것이 바로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의 의미이다.
그 아침 식탁에 앉아서, 나는 이제껏 정말 수천 번도 더 드렸던 짧은 기도를 시작했다. “아버지, 제가 단지 당신의 종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해 봅니다. 새들백교회는 당신의 교회입니다. 당신께 속한 것입니다. 비록 이 교회가 생겨나도록 당신께서 저를 사용하셨더라 할지라도, 어느 때이든지 이 모든 그림 밖으로 저를 옮겨버리실 권리가 당신께 있음을 다시 확인합니다. 우리의 성장의 다음 국면을 잘 이끌 저보다 나은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시면, 저는 기꺼이 뒤로 물러서겠습니다. 저는 당신께 속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교회로 차를 몰고 갈 때마다 이 기도의 확장된 버전(version)의 기도를 드린다. 이것은 내게 의미 있는 의식이다. 나는 하나님께 나의 사직서를 제출한다.
“하나님, 당신께서 지난 과거에 저를 사용해 오셨지만, 저는 당신의 은혜를 결코 이용한 적이 없습니다. 당신께 최고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그 모든 것이 당신께 영광이 돌려지는 것이, 바로 제가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나는 내 삶을 하나님께 다시금 헌신하여 드리고, 내게 능력을 더하시길 기도한다. 나는 내가 기도하는 확언과 고백들의 목록을 암기하고 있는데, 그 마지막 줄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홀로 내 자신을 겸손케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께 사직서를 제출하고 나서
만일 당신이 정기적으로 새로운 메시지를 설교하고 준비해야 한다면 당신은 이미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전형적인 회중들의 각각의 필요들을 모두 충족시켜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다만 하나님께서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 하는 사실 때문에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의 삶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능력의 비밀은 우리의 약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권능의 비밀은 무력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행복의 비밀은 겸손함이다. 그리고 승리의 비밀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항복하는 것이다.
지금 즉시 하나님과 단둘이 있기를 강권하고 싶다. 스스로 겸손하기로 작정하시고 기도해 보라. “하나님, 당신의 겸손한 종으로서 저는 저의 의지를 당신께 완전히 복종시킵니다. 제발 저를 도우소서!” 이런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서 행하시지 않을 일은 없다! 천국은 당신의 것이 될 것이다.
릭 워렌(Rick Warren)
캘리포니아 주 산호세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 침례교대학교(B.A.)와 사우스웨스턴신학교(M. Div.)와 풀러신학교(D. Min)에서 공부했다. 현재 1995년 미국 남침례교단에서 ‘주목받는 교회’로 지명된 캘리포니아 주의 새들백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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