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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적 드릴 제사
    2002-08-13 17:07:29   read : 2161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로마서 12:1-2 // 2002. 7. 28.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로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어느 통계를 보니, 한국 기독교인들이 예배에 참여하는 비율에 대하여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매주일 예배에 꼭 참석하는 사람들은 교회 나가는 사람 가운데 약 65%이고, 그들 가운데 주일예배만 참석하는 사람은 78.9%, 수요밤예배까지 참석하는 사람은 24%, 금요기도회도 참석하는 사람은 14%, 새벽기도회까지 참석하는 사람은 13%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통계를 보면서 저는 우리 교회가 아직은 평균에 못미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져보았습니다. 사실 모든 예배에 모두 참여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참여하는 분들은 매우 귀한 분들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을 볼 때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예배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는 양적인 면에서 참여하는 것에 대하여 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배의 내용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를 전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러한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를 '그러므로'라는 단어 속에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미 앞에서 설명한 부분에서 하나님께 합당한 제사를 드릴 이유를 다 설명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로마서 9-11장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버리고 이방인들을 구원하게 된 하나님의 계획을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입니다.
    그 예배의 성격을 오늘 말씀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지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거룩하고, 살아있는 예배를 드려라. 여기에 형용사가 세 개씩이나 붙어있습니다. 형용사는 단순한 사실보다는 그 내용을 더 잘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과 먹어라' 하는 말보다는 '얘야, 맛있게 보이고 색깔이 좋은 이 사과를 먹을래?' 라고 말한다면, 먹기 전부터 입안에 침이 돌게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세 개의 형용사는 참으로 드려야 할 예배의 성격을 설명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아, 예배는 그렇게 드려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우리의 몸을 드려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거룩하고 산 제사를 드리는 것은 주일에 한 시간 참여하는 예배 의식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는 우리의 삶 전체를 통해 드리는 예배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로마서에 대하여 유명한 주석을 썼던 Karl Barth도 여기에는 그리스도인들의 전인격적인 윤리가 담겨진 삶을 내포한다고 지적한 적도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몸을 드리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는 과연 어떤 것일까요? 여기서 우리가 '제사'라는 단어를 사용하니 좀 부정적으로 생각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예배'라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여기서 기뻐한다라는 말은 만족해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만족해하시는 예배는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드리는 예배이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기쁘게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온전한 기쁨의 대상이 된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언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이는 그가 세례를 받으실 때의 일입니다. 예수님이 물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내리며 하늘음성이 들리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 이는 진정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생애 가운데서도 하나님으로부터 기뻐하심을 받는 분이라 소개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2:18-21을 보면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라.

    예수님이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자가 된 것은 자기의 기쁨을 취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는 상한 갈대와도 같이 몸의 병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자를 꺽지 아니하고 오히려 세워주며, 꺼져 가는 심지와도 같이 죽어가는 자들의 슬픔을 아시고 그 생명을 살려주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삶을 예수님은 세례를 받을 때부터 각오를 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고통을 당하는 자들의 고통을 다 감당한다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일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일을 죄인들에게 용서를 선언함으로 감당하신 분이었습니다. 이러한 고통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몸으로 드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예배의 자세입니다.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살 때 우리도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로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믿음의 많은 선배들이 감당해 왔습니다. 파스칼은 18세부터 죽을 때까지 고통 가운데 지냈습니다만, 그는 그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에 대한 사상적 고백서 '팡세'를 썼습니다. 헬렌 켈러는 아기 때부터 눈멀고 귀먹고 말을 못하는 삼중의 고난을 겪었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까? 20세기의 성녀 테레사 수녀도 고열과 마비증세를 동반하는 만성두통으로 인해 고생하였습니다만, 그녀는 자기보다 더 고통을 당하는 인도의 여자들을 위해 희생하는 가운데 그녀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 교회에서 하여야 할 일도 바로 예수님을 닮아 사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기 위하여 이 단에서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을 선언하고 단 아래에서는 그 고통을 함께 나누기 위하여 섬기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 성도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지 않는다고 한다면 저 역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들 역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는 많은 경우 나 자신의 영적인 평화와 마음의 평안을 찾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아오곤 합니다. 물론 이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평안과 은혜를 얻지 못한다면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할 이유를 별로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수월한 단계의 신앙적 자세라 할 것입니다. 진정한 예배는 그 이상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교회학교 교사들이 많은 수고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겠습니까? 어느 분은 정말 직장에서 일년에 쓸 수 있는 휴가기간을 교회학교 여름성경학교나 여름수련회를 위하여 쓰십니다. 그분이라고 가족끼리 산으로 가고 바다로 가서 즐기고 싶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자기의 것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받은 것이 너무 감사하여 어린 아이들이 영적으로 하나님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게 하기 위하여 자기의 귀한 시간을 드리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여기에 고통이 따릅니다. 하지만 즐겁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봉사라고 생각하고 믿을 때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좀더 중요한 직분을 받는다는 것은 그 직분 자체로 인해 즐거워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항존직의 직분을 받는다는 것은 바로 신앙이 약한 교우들과 함께 더욱 더 고통을 함께 나누기로 작정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임과 별로 구별되지 않는 교회의 특징은 교회에서 중요한 직분을 위해 열심히 투쟁하다시피 봉사하다가 막상 항존직분자가 되면 뒷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교회입니다. 하지만 진정 하나님을 기뻐하게 하는 교회는 직책에 맞게 더욱 봉사하고 헌신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교회입니다.
    사실 항존직에 계시되 특히 나이 많으신 분들은 그동안 많은 봉사와 수고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제 더 이상 할 힘도 없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일반 성도들은 연륜이 많은 항존직분자에게 더 많은 기대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웬만한 노력을 하지 않고는 힘든 것입니다. 비록 몸이 연약하여 져서 젊을 때 혹은 한창 왕성할 때만큼은 할 수 없을찌라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봉사와 수고와 희생은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겸손하게 봉사하고 열심히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그 교회는 살아나는 교회가 됩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거룩한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마치 구약시대에는 동물을 제물로 드림에 있어 거룩한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중요했던 것과 같이 이제는 우리의 몸을 가장 흠이 없고 가장 깨끗하고 정결한 제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신에게 최대한의 경외심을 표현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오래 전부터 이어져 내려왔었습니다. 구약시대의 사무엘 선지자도 사울에게 이렇게 말한 바가 있습니다. 사무엘상 15:22에서 "여호와께서 번제와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라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거룩한 제물을 드린다는 것은 보이는 물질적인 것으로 드리는 것만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진정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을 담아 드리는 것이
    우리 주님 예수님도 그의 몸을 거룩한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가르침을 통해 항상 하나님을 거룩하게 여기려 노력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는 진정 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거룩하게 하는 자가 되었으면, 자신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거룩한 제물로 십자가에 던지셨고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9:14을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 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너의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겠느냐?"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의 피로 말미암아 깨끗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과도 같이 우리도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거룩하고 흠이 없는 제물로 드릴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흠없는 거룩한 예물이 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우선 세상 사람들은 보이는 것을 향하여 달려들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흠없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우리 나라에도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겠습니다만, 일본에‘사토 요베’라는 유명한 식당이 있습니다. 그 식당의 주인인 사토 요베 씨는 일본에서는 보기 드문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그는 성경 말씀을 연구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음식점 앞에다 '주일은 휴업합니다. 우리 집에서는 절대로 술을 팔지 않습니다.’라고 써서 붙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손님이 다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손님들한테 미움받으면 어떻게 하나?’하고 겁이 덜컥 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정직하게, 양심을 가지고 친절하게 손님들을 대하고, 음식의 맛에 식당의 운명을 걸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이 집에 와서 음식을 한번 먹어 본 사람은, 음식이 아주 맛있고 좋아서 다른 곳에 가서는 먹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소문이 나고, 소문이 나서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도시마다 전부 지점이 생겼습니다. 한 개의 식당으로 시작했는데, 12개의 지점으로 늘어났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께 산 제사를 드리려는 분들에게는 하나님이 몇 갑절의 아니 열두 배의 축복을 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의 몸을 살아있는 제사로 드린다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항상 희생을 당하는 자세로 살아가라는 의미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삶의 매 순간이 순교하는 자세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항상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는 자세로 살아갈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믿음의 전승은 오래 전 구약성경에서부터 발견됩니다. 아브라함이 자기의 아들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려 했던 사건을 기억합니다. 자기의 귀한 아들이었습니다. 그것도 거의 백살이 되어서 어렵게 얻은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아들을 산 제물로 받치라 할 때 그는 괴로웠으나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우선시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고 그를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가서 묶고 칼을 꺼내 죽이려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때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인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사람의 정을 접어두는 그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순종하는 마음을 알시고 그의 아들 이삭의 생명을 취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수풀에 걸려있는 숫양으로 그 제물을 하도록 마련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에 대하여 하나님은 그냥 죽음으로 끝낸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부활이라는 해법으로 그 죽음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다시 죽지 아니하고 하늘에 올라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전혀 없던 새로운 방법으로 응답하신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살아있는 제물이 되라고 사도 바울은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께 거룩하며, 하나님을 위해 살아있는 제물이 되는 것은 우리의 드릴 영적 예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영적'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logik 로서 spiritual이라는 단어가 아닙니다. 이는 오히려 '합당한' 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당연히 드려야 할 자세의 예배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에 대해 칼 바르트는 그의 주석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근원을 이루고 있는 바로 그 이론이 실천의 이론이라고 하는 것이 여기서 고수되어야 한다." 바로 우리는 살아있는 제물로 우리를 바쳐야 함을 알고 있는 것으로만 기뻐할 것이 아니라 바로 이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배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거룩과 생명으로 보답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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