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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겨놓고 싸운다
    2002-08-13 16:43:07   read : 2657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2. 8. 4. // 로마서 6:1-11

    며칠전 참 더웠던 날이었습니다. 일간신문 만화에 이런 내용이 실렸습니다. 공동묘지에 있는 한 무덤에 누워있던 주검이 “아이, 더워 죽겠네.” 그러자 옆에 있는 무덤에서 대답하길 “야 임마, 너 벌써 죽었어.” 그러더랍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죄에 대하여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은혜의 영성 다섯 번째, 지난 시간에는 - 율법으로 부터의 죽음,

    오늘 은혜의 영성 여섯 번째 - 죄로부터의 죽음이라는 주제로 은혜로 나누고자 합니다.

    율법으로 죽었다. 죄로부터 죽었다는 뜻이 무슨 뜻일까요?

    ① 율법은 죽지 않습니다. 일점 일획도 상처를 입지 않습니다. 죄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죽지 않습니다. 죄는 엄청난 권세로 우리를 쓰러뜨리고 있습니다.

    ② 우리가 죄에 대해 죽어보려고 애를 써 보지만 잘 죽지 않습니다. 결심해도 소용없습니다. 금욕주의적인 몸부림도 소용없습니다.

    루터는 죄로부터 이겨보려고 무릎으로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서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죄를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 죄에 대해 죽으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율법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이미 죄에 대해 죽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이미 죽은 존재들이라고 본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장부터 5장까지는 구원의 본질을 꾸준히 가르쳐왔습니다. 구원은 우리들의 선행이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얻어지는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여기는 예외가 없습니다. 잘난 사람도 똑똑한 사람도 부자도 높은 사람도 오직 믿음으로만, 은혜로만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지만 능력이 없는 것은 이 신비한 구원의 진리를 오해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믿음으로 얻는다 하는데 까지는 이해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들이 하루 이틀 십년 이십년 예수를 믿어가다 보면 성화는, 우리 자신이 거룩하게 되어지는 것은 - 우리가 노력해야, 우리가 공로를 쌓아가야, 우리가 선행을 쌓아가야 되는 것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개념이 우리 인간들 안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경험은 진화론적입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 - 이 신비를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6장부터 8장까지는 구원얻은 성도들의 축복이 무엇인가? 특권은 무엇이며 승리는 무엇인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로마서는 우리에게 2가지를 깊이 있게 묵상하도록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습니다.

    ① 내가 예수를 믿었다는 것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신분인가?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굉장한 것인가? 내가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신분을 묵상하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② 나아가서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 죄로부터의 자유를 깊이 있게 묵상하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놓치게 되면 예수를 믿고서도 바리새인이 되어버립니다. 종교인으로 전락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인본주의 신앙인으로 타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새로운 신분, 영광스러운 어마어마한 그 신분을 놓쳐버리면 방종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율법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종교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내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얼마나 어마 어마한 신분인지를 우리가 잊어버리면 행복이 깨져버리고 맙니다. 구원얻은 나 마저도 율법의 시각으로 나를 보면 비참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떤 때는 거룩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추한 모습을 드러내게 되지요. 어떤 때는 영광스런 승리를 쟁취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금방 절망과 좌절의 나락으로 빠져들곤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볼 때도 그렇습니다. 내가 내 자식을 보고, 내 부모를 보고, 내 배우자를 볼 때에도 율법의 눈으로 보면 단점만 보입니다. 그래서 함부로 비난합니다. 비판합니다. 관계가 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의 눈으로, 복음의 눈으로, 예수님의 시각으로, 하나님의 관점으로 나를 보고 너를 보면 너도 나도 소중한 존재임을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의 영성 여섯 번째 주제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승리는 선물입니다. 승리는 은혜입니다. 구원얻은 크리스챤의 승리는 싸워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누리는 것입니다. 성도의 싸움은 싸워서 이기는 싸움이 아닙니다. 이미 승리가 확정된 싸움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의 제목이 「이겨 놓고 싸운다」입니다.

    여러분 이런 싸움 한번 해볼만 하지 않습니까?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1서 5장 4절 말씀입니다.

    1998년 독일의 한 천주교 신자가 고해성사를 했습니다. “신부님 세계대전 때에 돈 많은 유대인 한 명을 숨겨주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잘 한 일 같은데요. 죄라고 할 수 없는데요.” “그를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었습니다.”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오히려 선행입니다.” “제가 하숙비를 비싸게 받았거든요.” “그렇게 잘 한 일은 아니지만 고해성사를 할 만큼 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부님 그러면 이제 전쟁이 끝났다고 말해줘야 하나요?”

    실제로 요꼬이라는 일본 병사는 2차대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수십년동안 하와이 동굴속에서 숨어살았습니다.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비행기가 뜨고 내리니까 밤에는 나와서 음식을 구해서 들어가고 낮에는 동굴 깊은 곳에 숨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미 싸움은 끝이 났습니다. 이 시간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① 육신 안에 있는 죄의 세력이 얼마나 끈질긴 것인가? 그 정체를 노출시켜 보고자 합니다. ② 죄를 이기는 능력이 우리 안에 있음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분명 성자입니다. 거룩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의인입니다. 그러나 왜 아직도 죄를 짓고 있는 것일까요?

    죄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여전히 지긋지긋한 존재입니다.

    롬 7:17절 이하에 보면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리스도인들도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고 나면 죄에 대해 강한 반응을 보입니다. 이전에 죄를 먹고 마셨습니다. 반응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랑했습니다. 처세술로 치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죄를 짓고 나면 죄를 아주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요? 내 속사람, 진정한 내가 아파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내 속에 계신 성령님이 슬퍼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죄는 때로 즐거움을 주기도 합니다. 돈을 가져다 줍니다. 쾌락이 있습니다. 스릴이 있습니다. 삶의 안정을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무슨 뜻입니까? 죄를 지어놓고, 내 책임 아니다. 책임회피 한다는 뜻입니까? 무서운 죄를 범해놓고 내가 한 것 아니다. 사단의 유혹에 빠져서 그런 것이다. 우리가 사단에게로 책임을 전가해야 된다는 얘기입니까?

    사도 바울의 얘기는, 로마서의 교훈은 내 본성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질은 여전히 거룩한 존재요 성자요 의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를 읽어내려 가다 보면, 사도 바울은 죄에 대해서 깊이 고민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악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악이 내 안에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악이 나 자신은 아닙니다. 구원 얻은 내 본질, 내 신분, 본성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죄를 지어놓고 구원문제를 의심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이런 걸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부주의해서 아파트 문단속을 잘못했습니다. 도둑이 떼거지로 들어왔습니다. 집안에 있는 모든 물건을 다 약탈해 갔습니다. 통장과 도장을 가지고 가서 돈을 다 찾아갔습니다. 뿐만 아니고 땅 문서, 집 문서까지 가지고 가서 우리 땅과 우리 집을 모두 처치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가진 것이 없습니다. 도둑을 붙들고 가장이 얘기합니다. “우리 집에 아이들 당신이 다 책임지시오.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시오. 이제 나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내 아내를 당신에게 양도할테니 당신의 아내로 삼아주시오.” 이런 멍청한 가장이 어디 있겠습니까?

    재물을 약탈당했지만 아버지로서의 신분, 남편으로서의 신분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그런 얘기입니다. 내가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구원얻은 영광스러움을 잃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특권을 놓칠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 신분,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새로운 영광스러운 이 신분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구원얻은 이 본질을 포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예수와 함께 다시 산 새 생명들입니다. 우리는 예수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설령 어떤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내 속에 거하지 않습니다. 죄를 범해도 영원히 우리는 죄 속에 빠져서 살수가 없습니다. 회개하고 주님 앞에 돌아오게 되는 것이지요. 구원 얻은 확신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성도들, 하나님의 자녀들 - 분명히 죄를 선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으려고 안달하지는 않습니다. 죄를 지으려는 소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죄를 짓고 싶은 열망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우리의 열망은 선을 행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가끔 죄를 선택합니다. 그 선택은 그 죄는 내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죄를 지어놓고, 그러면 그것을 당연히 생각해도 좋다는 얘기일까요? 죄를 물 먹듯이 마시고도 이제는 내가 아니니까 나는 아무리 죄를 지어도 좋다는 얘기일까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들에겐 죄를 이기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죄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교훈입니다.

    로마서 6:1-11에 보면 “죄에 대해 죽었다”는 표현이 무려 10번씩이나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 완전히 죽었습니다. 죄와 연관성이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5-6)

    우리가 이제는 세례 받을 때에 죽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우리는 모두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어거스틴이 회심하고 나서 새로운 존재, 새로운 사람이 된 후에 거리에 나섰습니다. 그랬더니 함께 놀던 여인이 다시 유혹을 합니다. 어거스틴의 이름을 부르며 따라옵니다. 그때 어거스틴이 했던 유명한 말이 있지요. “너는 너로되 나는 내가 아니로다.” 너는 이전의 너나 지금의 너나 똑같은 너지만, 나는 지금의 네가 이전에 알던 그 어거스틴이 아니다.

    우리나라 초대교회에 훌륭한 목사님가운데 김익두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 분이 거듭났습니다.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한 일이 부고장을 보내는 일입니다. 그를 아는 모든 친구들과 친지들에게 김익두 사망! 이전에 깡패 두목이었던 김익두는 죽었습니다. 나는 새로 태어난 존재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더불어서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났습니다. 선포해 버리는 것입니다.

    워치만니 목사님이 예수를 믿고서도 여전히 자기속에 있는 죄 때문에 몹시도 괴로워했습니다. 그 죄를 이겨보려고 온갖 몸부림을 했습니다. 죄에 대해서 죽어보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내 눈을 열어 주십시오.” 그리고 로마서를 읽어 내려가다가 오늘 본문의 교훈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내가 죄에 대하여 죽으려고 몸부림을 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고 나는 이미 율법에 대하여 죽은 존재이구나. 나는 이미 죄에 대하여 죽은 존재이구나.’ 그러고 나니까 얼마나 자유가 오는지 몰랐습니다. 신비한 능력이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래층에 일하는 아주머니에게 찾아가서 “형제여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그대는 알고 있는가? 내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이미 죽었노라.”

    오늘 여러분의 본질을 죄에 대해서 이미 죽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더불어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 여러분의 실체를, 그 본성을 깨닫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함께 기뻐하는 그 축복과 영광과 그 은혜를 누릴 수 있는 복된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죽은 존재들입니다.

    이제 죄는 우리를 지배할 어떤 권세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내가 죄인이기에 죄를 짓는 것이라는 생각? 내 본성이 죄인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죄를 짓는다는 느낌, 그것은 사단의 속임수입니다. 한번 두 번 실수했다고 ‘내 본질이 죄인이야. 넌 이제 망하게 생겼어. 넌 하나님 사랑 받지 못 할거야. 너는 계속해서 죄를 지어야해.’ 라고 사단이 우리를 속이는 것입니다. 그 느낌, 감정, 그 생각 사단의 속임수에 굴복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났습니다. 죄에 대해 십자가에서 이미 죽었습니다. 죽은 내가 어떻게 꿈틀거릴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담대히 선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아닙니다. 나의 본질은 의인이다. 성자다. 거룩하다.」말씀합니다.

    이동원 목사님의 책에 보니까, 그분의 경험을 기록한 것을 읽어보았습니다.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추운 겨울날 전방에 배치를 받았습니다. 전방에 배치를 받고 내무반에서 잠을 자는데 내무반장이었던 김 하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한밤중에 “팬티바람으로 바깥에 집합!” 그러더니 줄빠따를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계급순으로 좍 엎드려 뻗쳐를 합니다. 그 중에 내무반장이 한 대씩 뻥뻥 치고 갑니다. 그 다음에 최 병장이 일어나서 한 대 맞았으니까 열불나지요 그래서 두 대씩 뻥뻥 치고 갑니다. 그 다음에 박 병장이 세 대를 맞았습니다. 뚜껑이 딱 열렸습니다. 그 다음에 네 대씩, 다섯 대씩 두둘겨 패고 가는 것입니다. 이 목사님은 제일 졸병이기 때문에 그냥 팬티가 살하고 엉겨붙을 만큼, 얼마나 맞았는지 거기 소총이 있었으면 난사를 하고 싶은 무서운 충동이 일어나더랍니다. 그것도 한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매일밤 빠따를 치는데 살길이 없더랍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 김 하사가 제대를 하게 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김 하사가 제대를 했습니다. 이제는 살았구나 싶었는데 사나흘 있으니까 김 하사가 완전복장을 하고 한밤중에 나타난 것입니다. 제대한 김 하사가 “팬티바람으로 바깥에 집합!” 그러더니 또 두들겨 패더랍니다. 또 맞았지요. 며칠 있더니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면서 “팬티바람으로 바깥에 집합!” 그랬더니 내무반 반장이었던 김 병장이 “김 하사 너는 끝났어. 이제 너는 내무반장이 아니야. 네 시대는 끝났다구. 까불지 말고 가! 한 대 터지기 전에. 얘들아, 편히 자라. 앞으로 너희들은 내 말만 들으면 된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김 하사 시대는 끝이 났습니다. 죄에 매여 살던 시대는 끝이 난 것입니다. 율법에 매여 살던 시대는 끝이 난 것입니다. 사단의 올무에 걸려들어서 지속적으로 괴로움을 당하던 그 시대는 끝이 난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 은혜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영광의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승리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 축복, 이 영광, 이 승리를 여러분의 것으로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6장 13절에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네 몸의 어떤 부분도 죄에게 넘겨 주지 마라. 나는 범죄할 눈이 없도다. 범죄할 입이 없도다. 범죄할 손이 없고 발이 없도다. 물질에 대하여 죽었다. 정욕에 대하여 죽었다. 명예에 대하여 죽었다. 죽음을 선포해 버리는 것입니다. 죽은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것입니까? 죽었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까? 구원 얻은 특권, 축복, 승리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일까요?

    죄에 집중하면 결코 승리를 얻을 수 없습니다. 하지 말아야지 결심한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 아닙니다. 율법에 집중하면 집중할 수록 더욱 더 율법은 나를 올가매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율법을 하나 만들어 볼까요?
    이 시간 절대로 신 것을 먹거나, 신 것을 상상하거나, 신 것을 상상함으로 말미암아 절대로 입에 침이 고이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절대로 레몬을 질근질근 씹는 그런 일을 상상해서는 안됩니다. 입에다 구연산을 넣고 식초를 한 수저 퍼 마시면서 입에 침이 고이는 그런 죄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빙글빙글 웃는 걸 보니까 침이 다 고인 모양입니다. 이게 죄라고 하는 것입니다.

    누가 내 가슴속에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원수를 용서해야지, 원수를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결심하면 결심할수록, 그 원수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가슴에 분노가 더 치밀어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가슴에 상처가 더 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용서해야지 결심하더라도 용서가 안되는 것입니다. 이게 죄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쉼을 누리면 승리는 저절로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나의 승리로 받아 누리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2장 14절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7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로마서 8장 37절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승리입니다. 축복입니다. 특권입니다.

    여러분 거지와 왕자 이야기를 아시지요. 밖에서 남루한 옷차림으로 다리 밑에서 매일 잠이나 자던 굶주림에 살던 거지를 왕궁으로 데리고 와 임금님께서 왕자를 삼았습니다. 푹신푹신한 침대에서 잠을 재웠더니 잠이 안옵니다. 밖으로 뛰어 나가려 합니다. 전한 어딜 가십니까? 나는 다리 난간 밑에 가서 돌베개를 하고 잠을 자야 편안하다구. 거지처럼 난간밑에 가서 잠을 자는 겁니다. 뜨끈뜨끈한 물에 목욕을 시켰더니 나는 체질에 안맞다구. 그러더니 냇가에 가서 얼음을 깨고 얼음덩이를 뒤집어 쓰고 세수를 합니다. 왕자의 옷을 입혔더니 거추장스럽게 생각합니다. 남루한 옷으로 냄새나는 옷으로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뛰어다닙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거지처럼 살아도 왕자는 왕자입니다. 거지의 옷을 입고 있어도 왕자는 왕자입니다. 거지의 밥을 먹어도 왕자는 왕자입니다. 다리 난간 밑에 돌베개를 하고 잠을 자도 왕자는 왕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영광스런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습니다. 성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우리속에는 왕자의 인격과 왕자의 행동과 품위 있음이 드러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꽃피지 못하고 열매맺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왕자는 왕자입니다. 의인은 의인입니다. 성자는 성자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부는 신부입니다. 곧 우리의 삶 속에서 그 영광스러움이 그 찬란함이 부요함이 그 넉넉함이 그 풍성함이 드러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이겨놓고 싸운다. 왕자는 왕자다!”

    말씀을 맺습니다.
    죄란 놈은 참으로 끈질긴 놈입니다. 중력의 법칙처럼 가만히만 있어도 나를 끌어당기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죄의 세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63빌딩 꼭대기에서 펄쩍 뛰어 내려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온몸이 박살이 날 것입니다. 왜요? 중력의 법칙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이 죄의 능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63빌딩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조금도 다치지 않고 사뿐히 내릴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행글라이더를 타고 내리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행글라이더 안에 있으면 내가 예수 안에 들어가 쉼을 누리면 예수 안에 들어가 안식을 누리게 되면 죄의 능력이 죄의 영향력이 내게 그 영향력을 미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6장 7장 반복적으로 고민하다가 마지막 8장에 가서 선포합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기었느니라!

    여러분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존재인지, 내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신분의 존재인지, 내가 구원 얻고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그 신분에 집중하십시오. 내 값어치가 얼마나 값비싼 존재인지 내 값어치에 집중하십시오.

    인도에 전해오는 얘기에 의하면, 한 사람이 현자에게 찾아가서 “사람의 값어치가 얼마나 됩니까?” 물었습니다. 보석 하나를 손에 들려주면서 과일가계를 찾아가고, 감자 가계를 찾아가고, 정육점을 찾아가고, 마지막에 보석가계를 찾아가서 들러서 오시오. 과일가계를 찾아갔습니다. 보석을 내밀었습니다. 귤 2개와 바꾸자고 얘기합니다. 감자가계에 갔습니다. 감자 3개와 바꾸자고 합니다. 정육점에서는 소고기 5근을 주겠다고 얘기했습니다. 마지막 보석상에 들렀더니 “이 보석은 세상에서 구할 수 없는 너무나 값비싼 보석이기 때문에 어떤 돈을 주더라도 바꾸지 마십시오. 온 천하 만큼이나 귀중한 보석입니다.” 라고 얘기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삶입니다. 구원 얻은 우리의 값어치입니다.

    귤 2개에 바꿔서 여러분의 인생을 팔아 치울 수도 있고, 소고기 5근에 팔아 치울 수도 있고, 온 천하 보다도 소중한 삶을 살아갈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영광스런 신분에 집중하십시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 소중한 성자입니다. 의인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된 것입니다. 그 멋진 승리에 집중하십시오. 이미 이겼습니다. 이겨놓고 싸우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에 집중하십시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나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었노라.

    우리의 싸움은 싸워서 이기는 싸움이 아닙니다. 이겨놓고 싸우는 싸움입니다. 승리는 확정되었습니다. 그 승리를 여러분의 것으로 받아 누리기만 하면 영광스런 신분으로, 영광스런 존재로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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