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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내 삶의 주인입니까?
    2002-08-13 15:25:04   read : 2892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눅 11장24-26) 2002.08.04.

    마음의 주인

    어떤 사람이 도끼를 잃어버리고는 이웃집 아들을 의심했습니다. 걸음걸이를 보아도 도끼를 훔친 것 같았고 안색을 보아도 도끼를 훔친 것 같았고 말투를 들어도 도끼를 훔친 것 같았습니다. 모든 동작과 태도가 도끼를 훔친 사람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골짜기를 지나다가 그는 잃었던 도끼를 찾았습니다. 다음날 다시 이웃집 아들을 보니 동작과 태도가 전혀 도끼를 훔친 사람 같지 않았다고 합니다. 때에 따라 동일한 대상이 다르게 보이는 것은 그때마다 내 마음의 주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마음의 주인은 정의와 진실에 가까운지 한 번 돌아봐야겠습니다.

    성경적 신앙은 철저한 결단과 철저한 헌신을 요구합니다. 그 때 신앙은 제값을 합니다. 결단 없는 신앙생활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헌신 없는 신앙생활은 진정한 만족을 누릴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 하는 데에는 타협적이거나 반신반의의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결단 없이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미지근한 교인은 세상 사람에게 유익을 줄 수도 없고 칭찬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전적 헌신만이 주님이 바라시는 신앙인의 수준입니다. 전적 헌신만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늘의 기쁨을 누리며 신앙 생활하는 길입니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는 흑인 지역 할렘가(Harlem)가 있습니다. 그 마을은 18C에 네덜란드 사람들이 일궜는데, 지하철 계획으로 땅값이 폭등했다가 폭락하게 되자, 흑인들이 싼 땅을 사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백인들이 흑인들을 피하여 떠나버려서 좋은 집들이 텅텅 비었습니다. 빈집은 그대로 있는 게 아니라 걸인들의 천국이 되었습니다. 건물마다 낙서와 쓰레기와 무질서로 가장 더러운 마을이 되었습니다. 집은 비워두면 더 더럽고 추하고 퇴락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한 뒤 계속적으로 양육되지 못할 때 파괴적인 결과가 따라올 것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쉴 곳을 찾아 거하기 위해서 계속 헤매다가 전에 살았던 사람에게 돌아와 보니 비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서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려다가 거하여, 그 사람의 형편이 더 심하게 되었습니다.

    이 비유의 요점은 귀신을 쫓아내심은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며, 또한 그 유익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예수님께 반응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할 때 그 사람의 형편이 전보다 더 악하게 될 것입니다. 이같이 말씀하실 때 한 여인이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감사의 반응으로 예수님을 낳고 키운 어머니가 복되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참된 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지키는 자에게 있으므로 그분 자신의 가르침에 바르게 반응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와의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관계를 맺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의 위험을 "빈집"의 비유를 통해 경고하십니다. 들어보십시오. 더러운 귀신이 한 사람에게서 나갔습니다. 그 귀신은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다가 얻지 못하고 다시 자기 집에 돌아와 보니 집이 깨끗하게 소제되고 수리되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친구들까지 집에 데려와서 거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와서 이 집을 점령하니 그 사람의 나중 상태가 처음 상태보다 훨씬 심각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영혼을 비워두지 말자

    "나는 아무 것도 안 믿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주 위험한 사람입니다. 실상은 그런 말은 진실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여러 가지 나쁜 신앙을 끌어들입니다. 악한 것에 지배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을 버린 사람은 그 대신 귀신같은 더러운 것이나 유치한 미신들을 섬깁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다음, 우상숭배는 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했습니다. 영적 동공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심령에는 더 악한 귀신들이 들어와서 살게 될 수도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들이 대단히 위험한 처지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심령은 비워둘 수가 없습니다. 악은 틈을 주지 않습니다. 본문에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다"는 것은 개인으로 말하면 회개한 상태를 말합니다. 옛날의 잘못된 것을 버렸다는 뜻입니다. 버릴 것을 버리고 마음을 청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 마음을 지배할 주인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만일에 새로운 바른 주인이 차지하고 있지 않으면 다른 더 악한 세력이 들어와서 점령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마음을 지배할 새로운 주인은 누구입니까? 어떤 주인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어야 할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한 우리의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생각을 비워두지 말자

    사람이 짐승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점입니다. 생각이 사람을 만듭니다. 즉 좋은 생각을 하면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됩니다. 나쁜 생각을 하면 나쁜 사람이 됩니다. (마15: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악한 생각과 살인, 음란, 도적질 등 나쁜 사람을 만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쁜 생각을 안 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쁜 생각을 안 하려고 결심하고 노력한다고 해서 안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내 생각을 선으로 채워야 합니다. 선한 일, 좋은 일을 계획하고 선한 일로 생각을 채우면 악한 생각이 자리를 잡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은 그리 중요하지 않고 행동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그른 판단입니다. 모든 행위는 생각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행위의 결과도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지만, 생각 자체도 귀하게 보십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책망하신 걸 보면 어떤 행동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생각 자체로 나무라십니다. (마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생활을 비워두지 말자

    사람들은 자신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기독교의 진리는 '하지 말라'의 진리라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진리는 '하라'의 진리입니다. 십계명을 보면 '하지 말라'가 여덟 가지이고 '하라'가 두 가지입니다. 4계명 안식일과 5계명 부모공경만이 '하라'는 명령입니다. 이것이 선입견이 되어서 기독교를 '하지 말라'의 종교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구약적 관점입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주신 계명은 아주 적극적입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위로는 마음과 몸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는 내 몸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외 모든 것은 이것에 귀결됩니다. '죄를 짓지 마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짓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것입니다. 악을 정복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멈추어 있는 것을 원하지 않고 주의 일을 하길 원하십니다. "나는 사회에서 악한 짓을 안 하니까..." 하면서 안일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안됩니다. 그러다 악한 유혹에 넘어가면 더욱 심하고 추악한 인물이 됩니다. 사회는 우릴 가만히 내버려두질 않습니다. 믿음은 적극적인 신앙생활과 직결됩니다. (약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주님의 일을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악의 미혹은 사라집니다.

    사람은 자기 마음 생긴 대로 생각한다

    사람은 자기 마음 생긴 대로 생각합니다. 자기 마음 생긴 대로 남을 보고, 자기 마음 생긴 대로 행동도 합니다. 마음에 없으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들리는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마음이 어디 있느냐에 따라서 들려지기도 하고 안 들려지기도 하고, 이렇게 듣기도 하고, 저렇게 듣기도 하고, 이렇게 깨닫기도 하고 정반대로 깨닫기도 합니다. 내 마음 생긴 대로 생각하는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내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 16장에 보면,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 보다 낫다' 고 했고, 자기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어느 용사보다 더 위대하다고 했는데, 사실은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다스리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됩니다. 이걸 인정하면서부터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 하나도 내 마음대로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부터 이제 바른 생활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윤리학에서는 생각과 마음이 함께 하지 않는 행위를 행위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건 몸만 움직인 거니까요. 그 마음이 문제입니다.

    건강을 잃어버리게 하거나 마음을 병들게 하는 것

    사람의 건강을 잃어버리게 하기도 하고 마음을 병들게 하는 것이 사회학적으로는 몇 가지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하나는 사회적으로 소외당할 때, 많은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고 많은 사람에게 내가 필요치 않다고 느낄 때, 고독을 느끼면서 뒤로 물러서며 그 마음이 병들게 됩니다. 사람에게 인정을 받지 못할 때입니다.

    그런가 하면 중요한 사건에 부딪힐 때입니다. 바로 배우자가 죽었다던가 자녀가 죽었다던가 엄청난 사건에 부딪힐 때, 그만 감당을 못합니다. 또한 자신감이 없고 자기 만족이 없을 때, 그리고 일에 대해서 불만할 때,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내가 왜 이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모릅니다. 생의 의미를 잊어버릴 때, 그만 점점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그리고 정신적인 건강이 허약해 질 때, 허약해지기 시작하면 가속화되면서 점점 무너져 내려갑니다. 그리고 비관주의가 그 사람의 마음을 자리잡게 되고 그러면 만사가 어둡고, 만사가 괴롭고, 만사가 짜증이 납니다. 도대체가 살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정신적으로 벌써 자살을 하게 됩니다. 정신적으로 이미 죽었기에 죽음을 위한 행동을 과감하게 거침없이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살고 싶지 않으니 남의 생명도 해하는 것입니다.

    이제 내 마음을 누가 다스릴 수 있습니까? 이 같이 기울어진 마음에서 누가 나를 구원할 것일까요? 예수님, 겟세마네 동산에서 깨어 기도해야 될 사람이 쓰러지고 또 쓰러질 때, 졸고 있을 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마음에는 원하면서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를 못하고 마음과 의지가 서로 분리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긍휼히 여기는 말씀입니다.

    이성과 마음은 별도라고 합니다. 지식과 감성이 다릅니다. 느끼는 것과 생각하는 것, 또 의지와 마음이 별도로 갑니다. 이 따로따로 노는 괴리를 인정하고 바로 터득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감성이라고 하는, 이 감정이라고 하는 것은 이성과 의지보다 더 원초적입니다. 내 마음 내 마음대로 못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별도입니다. 이 속 사람이라는 것은 모든 것보다 더 깊은 세계, 더 원초적인 그런 속성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길이란 오직 성령으로,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네 속 사람을 성령의 능력으로.' 이 말은 의지 이전의 말입니다. 내 생각이나 의지로 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주의 영이 내게 함께 해서 하나님의 영이 내 마음을 주장해서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먼저 깊은 곳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 상태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영혼은 어떤 자리에 있습니까? 내 안에 계신 주님께서 나의 주인 노릇을 하고 계십니까? 주님의 주권을 마음으로 인정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말씀이 나의 삶을 지배하도록 나를 맡기고 있습니까? 그 분의 거룩한 영으로 내 마음과 내 생각을 지배하도록 허용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나를 지배하시기에 감히 더러운 귀신이 넘볼 수 없는 영역이 되었습니까?

    그리스도인이면 당연히 성령께서 그 마음에 들어와 계시지만 누구나 다 자동적으로 성령의 능력을 소유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주님이 도전하셨습니다. 약속을 믿고 간구할 때에 주님께서는 성령을 부어 주시고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하시게 될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우리는 생기가 넘칩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우리의 마음에 평안이 찾아옵니다. 사람의 생각을 초월한 평강이 우리의 마음에 자리합니다. 성령이 충만할 때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체험합니다. 세상이 알 수 없는 기쁨,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을 누립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하게 나아가서 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먼저 성령을 구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을 구하라고 명합니다. 이 능력이 없이는 이 악한 세대를 승리할 수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거룩한 능력의 부으심이 없이 우리의 마음 상태는 유령 같은 빈 집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만약 성령께서 내 속에 충만하게 임재하시면 주님께서 원치 않는 것들을 하지 않게 됩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모든 것들이 내 속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아니 적극적으로 주님께 서원하시는 것들, 주님을 기쁘시게 할 것들을 내가 찾아서 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의 삶을 다스립니까?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십니까? 성령의 충만함이 여러분의 마음과 삶을 장악하게 하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의 마음은 더러운 귀신이 다시금 접수한 집처럼 더 심각한 자리로 전락할 것입니다.

    어느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 교인들의 95%의 상태를 한시간 동안 예배를 드리면서 의자의 앉은 자리를 따뜻하게 하고 돌아가는 정도의 사람에 불과하다라고 말하며 단 5%만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형편은 어떨까요?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심각한 영적 도전을 합니다. 하나님께 철저하게 돌아오지 않고서 약간의 변화에 만족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스러운 것인지를 보여 줍니다. 교회에 나옴으로 약간의 변화가 주어집니다. 주일에는 전에 없이 일찍 일어나서 머리도 빗고 깨끗한 옷을 갈아입고 일주일에 한번씩 교회에도 나오고 구역예배도 참석하고 변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 만족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할 수 있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으나 아직 성령께서 들어가서 다스리지 아니하는 마음 상태는 폭풍 전야 같습니다. 겉모습 가지고는 아무 것도 보장되지 않습니다.

    회개하고 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옛 삶을 청산하고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새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죄 짓기를 그치는데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주님과의 관계를 이제 맺었다는 것에 머물러 있지 말고 그 주님의 기대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주님을 이제 주님이라고 불렀으면 주님께서 우리의 주인 노릇을 하셔야 합니다.

    독일에 옛 성당에는 그런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너희는 나를 주여 주여 불렀지만 한번도 나를 주인 대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날 내가 너희를 도무지 모른다고 하리라' 주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은 이제 주님으로 섬기는 자리에 나아가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새 삶을 살 기 위해 우리는 성령의 부으심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통해서 우리는 더러운 귀신이 범접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새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소제되고 수리된 정도에 만족하지 마십시오. 새로운 주인을 모시고 철저하게 새 주인의 지배를 받을 때에 여러분이 변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새 삶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회개의 글을 소개합니다.

    회개

    "주님, 우리의 괴로운 호소를 들어주소서.

    자기 속에 갇혀 죄수가 되어 있는 흉한 꼴에서 건져주소서.

    자기 자신의 소리밖에 못 듣는 우리의 귀,

    자신의 모습밖에 보지 못하는 우리의 눈,

    자신의 아픔밖에 느끼지 못하는 우리의 무딘 감각을 세련되게 해주소서.

    주님, 우리를 이 욕심스러운 몸에서 해방시켜주소서.

    내 창자를 얼마나 채울 것인지, 나를 남에게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를

    온종일 연구하는 이 욕심스러운 몸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주소서.

    주님, 우리를 이기적인 마음에서 풀어놓아 주소서.

    내 마음은 내 생각, 내 아이디어, 내 의견으로 가득 차서

    주님의 생각과 주님의 의견은 들을 귀가 없으니 이러한 이기적인 마음에서 해방시켜주소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고백하는 인간, 고백하는 교회입니다. 고백하는 국민, 고백하는 사회입니다. 선악과에 대한 금계를 내릴 때 하나님은 "이 과일을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를 낙원에서 추방시키셨을 뿐 곧바로 죽음을 주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고백'은 용서를 낳습니다. 1천 가지의 선행을 쌓아도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기술과 재물로 바벨탑을 쌓아도 하늘에 도달하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잔잔케 하는 유일한 예물은 바로‘고백’입니다. 여러분은 진정 하늘 아버지의 품에 돌아와 있는 가요? 혹시 아직도 자기가 무엇인가를 해서 '내 보람은 내가 만들려는’소위 종교인이 아닌가요? 주님께서 나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단지 주님을 입술로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주님의 뜻을 순종하는 삶이라는 것을 알고 행하고 있습니까?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처럼 나는 예수님께서 지적하시는 죄에 대해 무관심하지는 않습니까?

    다음은 파스칼의 기도입니다.

    [오 주님이시여!]

    주님의 영광으로써 자신에 대한 애정으로 해서 비롯되는 고통에서 저를 건져 주시옵고, 이 세상에서는 다 이룰 수 없는 참된 소망으로 이끌어 주옵소서. 주님을 따르려고 애쓰는 고뇌가 내 속에서 이루어지게 하시옵소서. 이제부터는 당신과 함께 있으며 오직 주님 위해 일하는 것 이외에는 삶이나 건강에 열중하는 것을 그만두게 하옵소서.

    생사와 건강과 병고를 나 자신의 영원한 평안과 교회의 필요와 성자의 은총을 위하여 당신의 품격으로써 저를 주관하시오니 거기에 집착하여 간구치 아니하고 당신의 뜻대로만 되기를 간구하옵나이다.

    만유의 주님이시여 당신은 언제나 저에게 선한 것을 주실 것 을 아옵나이다. 그래서 항상 당신의 최선을 내게 베푸시옵고 이끌어 주시옵소서. 주님께 순종하겠나이다. 거룩하고 신실한 신뢰로써 겸허하고 온전한 순종을 허락하옵소서. 당신의 영원한 섭리의 조화를 받아 행하겠나이다. 구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손수 내게 임하시옵고 주께서 항상 하시는 뜻을 믿고 있나이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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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 잠재력
    자유하셨습니까?
    인간의 한계 앞에 선 하나님의 할 일
    새 포도주의 기쁨을 새 부대에
    누가 내 삶의 주인입니까?
    그리스도인의 삶과 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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