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과 생명 2002-09-24 11:00:29 read : 3082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2. 9.15 // 창세기 2:7, 요한복음 20:19-22
세계 최대 항공 회사인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의 담당의사 키데라 씨는 10년간 회사원들의 건강 상태를 조사했습니다. 그의 보고에 의하면 휴가 시즌에 휴가를 찾아 쉴 때 쉬고 놀 때 놀며 일한 사원들이 휴가 없이 일한 사원들보다 더 건강했습니다. 휴가 때도 쉬지 않고 보상을 받아가며 근무한 사원들은 소화 불량, 정신장애 등 여러 가지 질병이 많았다고 합니다.
또 세계적인 보험회사인 메트로폴리탄 보험회사의 직원들을 조사해 보아도 휴가를 잘 쓰는 직원들이 휴가도 없이 죽자고 일만 하는 직원들보다 훨씬 더 좋은 실적을 올렸다고 합니다.
쉴 때 쉬는 것이 얼마나 중한지 모릅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요일에 일하고 주일에 쉬는 것이 축복입니다.
주일에 뼈빠지게 일해도 죽습니다. 주일에 예배 드리고 푹 쉬어도 삽니다. 할렐루야!
주일날, 일에 유혹 받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일을 떠나, 세상을 떠나 하나님만 경배하고 푹 쉬는 하루하루가 될 때 여러분의 건강에도, 여러분의 사업에도 축복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10대 20대에는 생기 차게 살고 30대 40대에는 열심히 살다가 50대 60대가 되면 피곤의 그늘에서 살고 70대가 되면 인생이 끝났다 싶은 마음에 그저 죽음만을 생각하고 기다리며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청년을 부러워하고 아가씨를 부러워하는데, 그것은 잘못입니다.
꽃은 봄에만 피는 것이 아닙니다. 여름에는 나팔꽃이 피고 가을에는 국화꽃이 피고 겨울에도 에델바이스가 피고 동백꽃이 핍니다.
'산에는 꽃이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는 가을 봄 여름에 꽃이 핀다고 노래하지만 사실은 겨울에도 꽃이 핍니다.
사람도 인생의 봄에만, 젊을 때만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여름에도, 가을에도 꽃을 피우고 겨울에도 꽃을 피웁니다.
가을이 봄을 부러워할 필요 없습니다. 봄은 봄대로 좋고 가을은 가을대로 좋은 것입니다.
겨울이 여름을 부러워할 필요 없습니다. 여름은 더워서 좋고 겨울은 추워서 좋고 썰매를 탈 수 있어서 좋습니다.
나이 든 사람이 청년을 부러워할 것 아닙니다. 청년은 청년대로 살고 노인은 노인대로 살면 되는 것입니다. 못난 사람이 잘난 사람을 부러워할 것도 아니고 잘난 사람이 못난 사람을 멸시할 것도 아닙니다.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살면 되는 것입니다.
제 각기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살면 됩니다.
우리는 절대로 처지면 안 됩니다. 축 처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미국 우리 교회의 총동원 전도 주일날, 제 아내가 세실리아라는 자매를 인도했습니다. 나이가 40이 다 되어 가는데도 17세 소녀 같은 세실리아 자매가 자기 친구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친구가 서른 다섯 살이 넘었는데도 결혼을 못해서 축 처져 있었답니다. 예쁜 옷을 입어도 봐 줄 사람도 없고 사랑해 줄 사람도 없다며 축 처져서 되는 대로 살았답니다. 그런데 하루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라고 결심하고 피부 관리도 하고 운동도 하고 옷도 차려 입고 책도 읽고 열심히 일하며 살았답니다.
그러다 어느 날 하와이로 여행을 갔는데 여행 중에 유력한 회사의 기업가를 만났답니다. 아내가 없는 그 재벌이 세실리아 자매의 친구를 본 순간 눈에 불이 번쩍해서 두 사람이 결혼을 하게 되었답니다. 지금 그 친구는 세실리아가 쳐다보기도 어려운 상류 사회에서 잘 살고 있답니다.
처져 있으면 길이 없습니다. 분발하면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마키타라는 아가씨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릴 때 그의 아버지가 가출했습니다.
요즘에는 아버지들이 가출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어떤 목사님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예전에는 이사를 하게 되면 4, 50세가 넘은 남자들이 짐차에 올라가 있었는데, 요즘에는 그래도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가기 때문에 장롱 속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있어야 된답니다. 참 희한한 일입니다. 이 세상에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남자가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합니까?
어쨌든 마키타의 아버지가 가출해서 어머니가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며 가난하게 살았지만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꿈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마키타, 너는 대학에 가야 한다. 엄마가 지금부터 네 대학 등록금을 예금하고 있으니 열심히 공부해라. 그리고 돈을 벌어서 너랑 나랑 세계 일주를 하자."
그 때는 부자들도 세계 일주하기가 어려웠는데 어머니가 그렇게 꿈을 불어넣어 주니 마키타도 세계 일주하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벽에 "엄마와 나는 세계 일주를 한다."라는 글을 써 놓고 그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 장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미국의 아이들은 초콜릿 같은 과자를 파는 아르바이트를 많이 합니다. 그가 이모에게 말했습니다.
"이모, 걸스카웃 과자를 팔아서 돈을 모아 엄마랑 세계 일주를 할 거예요."
"그러면 가난한 동네에 가지 말고 부자 동네에 가서 팔아라. 그래야 많이 팔 수 있다."
그는 이모의 말대로 뉴욕에서 제일 부자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에 가서 오후 4시 30분부터 6시 30분까지 두 시간 동안 매일 걸스카웃 과자를 팔았습니다.
"아저씨, 아주머니. 저는 이 과자를 팔아서 번 돈으로 여행을 갈 거예요. 과자 한두 통만 팔아 주세요."
어린 소녀가 여행을 가기 위해 과자를 팔고 있으니 얼마나 귀엽습니까? 부자들이 과자를 많이 팔아 주어서 그는 5년 동안 4만 2천 통을 팔았습니다. 마침내 그는 어머니와 함께 세계 일주를 했습니다.
이것이 특집으로 방영되고 그는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IBM 회사에서 그 어린 소녀를 불러 특강을 하게 했습니다. 특강을 하고 난 그는 거기에서 또 과자를 팔았습니다. 뉴욕에 본사를 둔 보험회사에서도 영업 실적이 좋은 세일즈맨 오천 명을 모아놓고 그에게 특강을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도 특강 후 강의를 한 기념으로 과자 한 통씩을 팔아 달라고 했습니다. 굉장한 아이입니다.
또 그는 무엇이든 잘 파는 방법에 대해 책을 썼는데 그 책이 불티나게 팔려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그에 대한 이야기가 'The Cookie Kid'라는 제목으로 영화화 되었습니다.
가난한 식당 종업원의 딸이지만 꿈을 갖고 최선을 다하니 길이 열린 것입니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혹 어려움이 있어도 거기에서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빌려 준 돈을 받지 못하고 새로 맡은 일이 잘 안 되고 아내가 가출했어도, 그런 사람이 없겠지만, 거기에서도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좋은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서 깃발을 날리며 살아도, 아무리 잘 나가는 인생이라도 인생의 나래를 접을 때가 옵니다.
우리의 인생은 200년도 안 됩니다. 우리는 200년도 못 삽니다. 지금 아무리 성공의 가도를 달려도 끝까지 달리지 못합니다. 인생은 끝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 4H 클럽 회원이었습니다. 그때 저희 마을 사람들이 '4H 클럽'이라 하지 않고 '4H 구락부'라고 해서 저도 4H 구락부라 했더니, 아내가 "구락부가 뭐예요?"라고 해서 이제 클럽이라고 말합니다. 그때 제가 4H 클럽의 지휘자였습니다. 이래 뵈도 제가 5학년 때부터 지휘를 한 지휘 경력이 엄청난 사람입니다.
그때 저희 마을의 4H 클럽 청년들이 연극을 잘 해서 이 마을 저 마을로 불려 다녔는데, 연극을 공연할 때마다 인사말을 제가 했습니다.
두 편의 연극을 했는데, 한 편은 두 시간 정도의 긴 연극이고 한 편은 5분 정도의 짧은 연극이었습니다. 긴 연극은 어떤 내용이었는지 생각나지 않지만 짧은 연극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사는 주인공 청년이 무대에 서 있는데, 집배원이 와서 "편지요!"하며 편지를 던져 주고 갑니다. 얼마 전에 응시한 고등고시에 합격했다는 합격 통지서입니다.
"야!"하며 좋아하는데, 또 집배원이 와서 편지를 던져줍니다. 청년이 짝사랑하는, 꿈에도 그리던 아가씨의 편지입니다. 아가씨도 청년을 좋아하니 결혼을 하자는 것입니다.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또 집배원이 옵니다. 아들도 딸도 없는 큰 재벌인 삼촌이 모든 재산을 청년에게 준다는 편지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고등고시에 합격했지요, 꿈에도 그리던 아가씨가 결혼을 하자고 하지요, 재벌이 되었지요, 그래서 흥분해 있는데, 또 집배원이 편지를 가지고 옵니다. '이번에는 또 무언가?' 하는 기대를 갖고 편지를 뜯어봅니다.
며칠 전에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병원에서 그 결과를 보냈습니다. 무서운 병에 걸려서 5분 후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청년이 자기 머리를 뜯으며 "나는 망했다! 나는 망했다!"라고 합니다.
그때 연극이 막을 내립니다.
여러분, 지금 서로 대통령이 되려고 야단이지만 대통령이 되어도 인생의 나래를 접어야 됩니다. 인생의 나래는 누구나 다 접어야 합니다.
이것이 인생의 문제입니다. 결국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끝납니다.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부딪칩니다. 모두가 죽음의 벽에 쓰러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풀 과학자나 수학자가 없습니다. 죽음의 벽을 뛰쳐나가는, 생명을 계속 이어나가는, 생명의 문제를 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영원히 사시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사시는 아들 예수님을 보내 주시어 영원히 사는 길을 여러분과 제게 열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히 살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러면 영원히 살게 되는 구체적인 핵심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이 가르쳐 줍니다.
여러분과 저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십자가를 지신 것이 우리의 죄 때문인 것을,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천국을 준비하고 계신 것을, 그리고 우리를 데리러 오실 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희미하게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제자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적과 능력을 많이 행하시니, 떡 다섯 개로 5천 명 먹이시고 바다를 잔잔케 하시고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죽은 자를 일으키시니, 예수님의 인기가 절정에 달하고 이스라엘이 살 길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는 것이라는 여론이 팽배하니, 예수님의 제자들은 가만히 있어도 장관 자리 하나씩은 맡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는 한 나라의 왕이 아니십니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후보를 찾아가서 "당신이 훌륭하고 유력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서 우리가 당신을 우리 신촌동의 동장님으로 모시고자 합니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을 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나라의 왕이 아니라 세계 만 왕의 왕(the King of kings) 온 우주의 왕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한 나라의 왕이 아니라 이 세상 전체의 왕이십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왕으로만 남으시면 우리는 망합니다. 예수님께서 반드시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셔야 여러분과 제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 한 마디면 천사들이 와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을 다 쓸어버리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여러분과 저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무덤에 갇히시니 제자들이 모두 낙심하여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다 안식 후 첫날,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지 3일째 되는 날 저녁에 다시 모였지만 앞으로의 일이 두려워서 문을 닫아걸고 불안한 마음으로 초조해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들어오셨습니다.
문이 닫혀 있는데도 예수님께서 들어오신 것은 예수님의 몸이 보통 몸이 아닌 영광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몸은 살과 뼈가 있지만 영광의 몸이라 시공간을 초월하는 전파처럼 그렇게 다니십니다.
여러분과 저도 부활의 날에는 그렇게 변화됩니다.
지금 우리 몸, 육신의 몸으로는 바다 속 25미터, 30미터만 들어가도 눈알이 빠져나오고 창자가 터져 나옵니다. 너무 높이 올라가도 우리는 죽습니다. 너무 높이 올라가서 비행기 밖으로 나와도 우리는 죽습니다.
그러나 영광의 몸, 주님의 몸 같은 몸을 입으면 우주를 달려도, 바다 깊숙이 들어가도 괜찮습니다. 부활의 날에 우리는 그렇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변화되기 싫어도 주님께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두려워서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여러분, 마귀는 불안과 두려움을 줍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평안을, 평강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불안으로 떨던 제자들의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이 분이 정말 예수님이신가?' 하고 의심하는 제자들도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손의 못 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보여 주시면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Peace be with you!)"
그때 그들은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모릅니다.
지금의 상황은 조금 전의 상황, 예수님을 잡아 죽인 예루살렘 분위기 그대로입니다.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을 때는 불안과 초조 속에서 무서워하던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들어오시니 담대하게 되고 평안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환경이 문제 아닙니다. 예수님으로 충만한가 아닌가가 문제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으면 궁궐에서도 불안하지만 예수님께서 계시면 감옥에서도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참된 행복, 참된 기쁨은 예수님께서 계실 때 있습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
반딧불 초가집도 님과 함께면
나는 좋아 나는 좋아 님과 함께면
님과 함께 같이 산다면'
모 씨가 총각 때 부른 노래입니다. 결혼해서 이 노래를 불렀다면 거짓말로 불렀을 것입니다. 반딧불 초가집에서도 '나는 좋아 나는 좋아'하며 살아줄 여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반딧불 초가집에 데리고 가면 한 3일간은 살아줄지 모르지만 4일째가 되면 "잘 먹고 잘 살아라."하고 가버릴 것입니다.
이 세상에 참된 행복이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 해야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반딧불 초가집도 주님과 함께면 나는 좋아 나는 좋아 영원히 좋아'
정말입니다.
바울은 예수님과 함께 하니 감옥에서도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으면 궁궐에서도 가슴을 치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을 때는 공허하고 불안했는데 예수님께서 계시니 평안하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이 시간에 주님께서 여러분과 제게 기쁨과 평화가 넘치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캄캄한 방에 불을 켜면 밝은 빛이 비치는 순간 어두움이 도망가듯이, 우리 마음에 어둠과 근심의 구름이 있어도 예수님께서 평안을 주시면 어두움의 구름은 다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런 저런 걱정이 꽉 차 있어도 우리 주님께서 평안의 빛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정복하시어 걱정이 물러가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기쁨이 넘치는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As the Father has sent me, I am sending you)."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Receive the Holy Spirit)."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 합시다.
"성령을 받아라."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공적으로 처음 나타나신 자리에서 왜 숨을 내뿜으시며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성령이 아니고는 크리스천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파스칼이 말했습니다.
"혼자 결혼할 수 없고 두 사람이 결혼하는 것처럼 혼자서 크리스천이 될 수 없다."
반드시 성령(the Holy Spirit)과 함께 크리스천이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지으시지만 흙덩어리입니다. 마네킹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코에 생기(the breath of life, 생명의 기운, 영혼)를 불어넣으시니 그 사람이 일어납니다. 생령이 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그 흙덩어리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지 않으셨으면 그 흙덩어리는 아직도 에덴 동산에서 눈도 뜨지 못하고 누워 있는 것입니다. 생기가 들어가니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후' 하고 내뿜으신 것은 영혼이 아닙니다. 생기가 아닙니다. 제자들에게는 벌써 생기가, 영혼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후' 하고 부신 것은 성령입니다.
성령은 바람과 같습니다. 바람은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지만 바람이 불면 우리가 아는 것처럼 성령이 임하면 자기가 압니다.
영적으로 보면, 오늘날 세상의 모든 사람은 영혼은 있는데 성령은 없습니다. 성령이 없는 사람은 다 망할 사람입니다.
성령은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쑥 들어오면 그때부터 우리는 하늘나라의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핵심입니다.
따라 합시다.
"성령이 있으면 생명이 있고 성령이 없으면 멸망뿐이다."
사람은 결국 죽음의 벽에서 영원히 망하는데, 성령 받은 사람은 죽음의 벽이 영생으로 들어가는 현관에 불과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당대 최고 지성인이요 최고 권력자 중의 한 사람인 재벌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찾아와 묻습니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분이시지요?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이런 일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이런 일을 할 수 없잖아요. 하나님께로서 오신 분이 맞지요?"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니고데모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말한다. 사람이 두 번 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가지 못한다."
"아니 선생님, 말씀도 안 되는 말씀을 하시네요. 이렇게 장성한 제가 어떻게 다시 납니까? 다시 어머니 태에 들어가면 어머니도 죽고 저도 죽지요. 어떻게 두 번 납니까?"
"니고데모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말한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두 번(born again) 나지 않으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난 것은 육이요, 하나님의 성령으로(by the Holy Spirit)으로 난 것은 영이니 이것을 잊지 말아라."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서 아무리 아무리 유능하고 거룩하고 귀하고 선하게 사는 사람이라도 성령이 없으면 망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추하고 더럽게 산 사람이라도 오늘 성령을 받으면 영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오직 한 길입니다. 성신을 받으면 천국에 가고 성신을 받지 않으면 천국에 갈 길이 없습니다. 목사님이라도 성신이 없으면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제가 스위스에서 몇 주간 있을 때의 일입니다. 두 주 동안 함께 있었던 목사님 한 분은 제가 보기에도 답답했습니다. 목사의 분위기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제가 그 목사님께 실례의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실례합니다. 성신의 세례에 대해 아십니까?"
목사님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성신의 세례를 받았습니까?"
"나는 목사님께 물세례를 받았지, 성신의 세례는 받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직업으로 하는 것이지, 목사님이 아닙니다.
교회에 처음 나와도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의 사람이고 목사님의 아들이라도 성령을 받지 못하면 교인이 아닙니다.
2년 전의 일입니다. 1부 예배를 마치고 나가니 어떤 청년이 제 손을 잡고 엉엉 울면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 목사님(유명한 목사님입니다.)의 아들이에요. 그런데 교회 다니기 싫어서 교회를 떠났어요. 예수를 안 믿었어요. 그런데 오늘 저도 모르게 발길이 이 교회로 향해서 교회에 들어와 예배를 드렸어요. 이제 저도 예수님을 믿습니다. 이제는 교회를 떠나지 않겠어요."
청년이 그 날 성령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애리조나 주 피닉스의 한 남자가 감옥에서 이를 갈았습니다.
"나를 감옥에 넣은 경찰들을 다 죽여버릴 거야. 내게 좋지 않게 한 사람들은 다 죽여버릴 거야."
여러분, 원수를 만들지 마세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마세요. 그 사람의 손에 죽을 수 있습니다. 적을 만들지 마세요. 록펠러는 '그 어떤 경우에도 원수 맺지 말라.'는 어머니의 유언을 신앙 지침으로 삼았습니다.
형사들을 다 죽여버리겠다며 감옥에서 이를 갈던 그는 형을 마치고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권총부터 구입했습니다. 그들을 다 죽인 후 다시 감옥에 갈 각오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불쌍한 자기 아들만은 올곧게 기르고 싶어서 교회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래도 그는 똑똑한 사람입니다. 강도도 교회에 다녀야 사람다운 사람이 될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가 아들을 데리고 교회에 간 날 마침 C. S. 톰슨 목사님이 부흥회를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그는 말씀을 듣고 꼬꾸라졌습니다. 회개한 그는 권총을 버리고 자기가 죽일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새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 날 그가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성신을 받은 것입니다.
교회에 나온 첫날이라도 성신을 받으면 새 사람이 되고 새 피조물이 되고 천국의 사람이 되지만, 교회를 평생 다녀도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은 은혜의 맛도 모르고 교회의 신비도 모르고 늘 불평만 하는 부정적인 사람이 되고 교회의 암이 되는 것입니다.
총각과 처녀는 남녀의 신비를 모릅니다. 결혼의 신비를 알 수가 없습니다. 결혼해야 결혼의 신비를 아는 것처럼, 성령을 받아야 천국의 신비를 아는 것입니다.
성령 받지 못하면 천국의 신비를 모릅니다. 은혜의 맛을 모릅니다. 새벽기도의 맛도 모르고 그냥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으면 기도의 맛, 말씀의 맛, 은혜의 맛을 압니다.
여러분 모두 성령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이 간증을 해마다 아니 1년에 몇 번씩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의 빛을 보고 자기가 꼬꾸라져 새 사람이 된 것을 어디에서나 간증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세 번, 네 번, 다섯 번 간증한 것처럼 저도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해마다 새로 오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가 기숙사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입니다.
하루는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정말 사랑합니다. 제 아내는 제게 기쁨을 주다가도 저를 괴롭히기도 합니다. 제 흰머리 몇 개는 아마 아내 때문에 생겼을 것입니다. 제가 아내 때문에 얻는 즐거움과 희망이 참 많지만, 아내 때문에 마음 상한 일도 많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때문에 마음 상한 일은 없습니다. 어머니 때문에 머리가 센 적도 없습니다. 어머니께서 저를 괴롭히신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지금까지 저를 위해 사십니다.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 날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 고향에 갔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4km를 걸어가 예배를 드리고 와서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탁 소리가 나더니 한 스님이 들어와 염불을 외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스님, 우리는 시주를 못합니다."
"왜 못합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나도 예수를 10년이나 믿었수다. 10년간 교회에 다녔수다."하며 나갔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제가 달려나가 그분을 붙들고 물었습니다.
"스님, 정말 10년 동안 교회에 나갔습니까?"
"그럼요."
열심히 나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스님이 되셨습니까?"
"먹고살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얼굴을 보면 압니다. 모퉁이 땅을 샀는데 그것이 50배로 올라 하루아침에 100억 부자가 되어도 얼굴은 바꿀 수 없습니다. 옷은 바꾸고 자동차는 바꾸어도 얼굴은 바꾸지 못합니다. 얼굴이 그 사람의 이력서입니다. 고생하며 산 사람은 얼굴에서 고생이 뚝뚝 떨어집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얼굴에 지성미가 있습니다. 심술궂은 사람은 얼굴에 심술이 열 두 바가지나 보입니다.
그분의 얼굴을 보니 먹고사는 것을 걱정할 분이 아니었는데 그런 말을 해서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바른 말씀하세요. 성신이 있다는 말씀을 들어보셨습니까?"
"그럼요."
"성신을 받았습니까?"
그분의 얼굴이 발개지더니 말했습니다.
"성신을 받았으면 내가 이렇게 다니겠소?"
교회에 10년이나 다녀도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것을 체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교회에 10년이나 다녀도 교회가 다른 사회와 다른 것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교회에 10년이나 다녀도 성령의 세례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스님이 된 것입니다.
제가 바랑을 벗기면서 말했습니다.
"스님, 하나님은 살아 계세요. 성령님은 계세요. 지금도 기도하면 받아요. 여기에서 지금 기도하여 성령을 받읍시다. 우리 뜰에서 바랑 망태를 벗고 같이 기도합시다."
그분이 그것을 메고 도망을 갔습니다. 제가 "스님, 하나님은 살아 계세요. 성령님은 계세요. 돌아와서 구원받으세요."하고 소리쳤더니, "청년, 미안해요. 미안해요. 알았어요." 하고 달려가 버렸습니다.
그분이 교회로 다시 돌아왔는지, 아니면 그 길로 계속 가서 망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하나님 앞에서 하늘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1년, 2년도 아닌 10년간 교회에 다닌 사람이 왜 저렇게 스님이 되는 거예요? 앞으로 제가 목회할 교회에는 스님이 되는 사람이 없게 해 주세요."
그 기도 응답으로 우리 교회에는 스님이 된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교회에 10년을 다녀도 성령을 받지 않으면 스님 될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교회에 처음 왔어도 성령을 받으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예수님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성령은 구원받은 보증서입니다.
에베소서 1장 13절, 4장 30절, 고린도후서 1장 22절을 보면, 구원받은 표로 인친 보증이 성령입니다. 천국 백성이 된, 천국의 시민권이 된 보증서가 성령입니다.
'성령이 계시네'
자기에게 성령이 계심을 믿는 사람은 천국의 사람입니다. 오늘 죽어도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성령이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모르는 사람은 알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이 이해되시는 분은 성령의 사람입니다. 이미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이 이상한 말씀을 하네. 성령, 성신이 무슨 말이야?'하는 분은 딱한 분입니다. 그런 분에게 우리 주님께서 오늘 성령을 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녁에는 '성령을 받는 길'에 대해 말씀을 전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계속 성령에 대한 말씀을 증거하라는 마음을 주셔서 지금 하고 있는 강해 설교는 뒤로 미루고 오늘 밤과 삼일 밤에도 성령에 대한 말씀을 계속해서 전하려고 합니다.
아무쪼록 이번 기회에 모두 성령의 불을 받아서 우리 가운데 영적인 마네킹이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백화점의 마네킹을 보십시오. 그 크고 날씬한 몸매에 3000만 원짜리 밍크 코트를 걸치고 몇 백만 원짜리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아무리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아무리 멋있게 모션을 잡아도 마네킹은 불쌍합니다.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네킹에게 "마네킹, 네 소원이 무엇이니?"하고 물어보십시오.
"나에게 생명을 주시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오늘 이 세상에서 아무리 잘 나가도, 아무리 성공해도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은 마네킹입니다. 영적인 마네킹입니다. 멸망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으면 거지라도 나사로처럼 구원을 받습니다.
성령께서 여러분과 저를 다시 덮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대한민국과 지구촌을 덮어서 이 세계가 구원받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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