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을 넘어 은혜의 신앙으로 2002-09-23 14:59:10 read : 1308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신앙생활의 감격은 어느덧 잃어버리고 정죄감과 수치감만 가득 안고 하루 하루 힘겨운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자신을 문득 발견하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그래. 이 십자가를 지고 가자." 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괴로운 듯 일에 매달리면서 자신이 신앙인의 정도를 걷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는 또한 얼마나 쉬운가.
지난 16일부터 17일까지 한국 NCD 자연적 교회성장 주최로 신길성결교회에서 열린 스티브 맥베이(Rev., Dr. Steve McVey) 목사 초청 '제2회 은혜의 영성 실천 컨펀런스' 는 이렇게 율법주의적 신앙에 물든 이들에게 '은혜의 영성' 이라는 새로운 탈출구를 안겨 주었다.
맥베이 목사는 현재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소재한 그레이스 워크 미니스트리(Grace Walk Ministries; http://www.gracewalk.org/)라는 세계적 선교 단체를 이끌며 미국, 유럽, 인도, 중국 등지에서 은혜 운동(Grace Movement)을 주도하고 있다. 율법이 아닌 은혜를 강조하는 그의 저서들은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일본어, 러시아어, 중국어, 그리고 한국어 등으로 간행되어 35만 부 이상 팔린 바 있다.
한국에서의 이번 세미나 기간 중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유혹을 이겨내어', '감옥으로부터 해방되다', '온전히 사랑하셨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기', '하나님의 마음 안에 있는 기쁨',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있게 쓰임받는 비결',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꿈' 등을 주제 삼아 중생에서부터 성화에 이르기까지의 그리스도인의 삶의 여정에 대해 강의했다.
맥베이 목사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여 드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 그분과의 사랑의 교제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에 나타난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이 중생했을 때 그리스도께서 그들 안에 사시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안에 사신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통해 자신의 일을 하시도록 허락하여 드리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고린도전서 6장 17절과 베드로후서 1장 4절을 볼 때, 그리스도인의 본성의 특성은 의로움 단 한 가지라고 볼 수 있다. 순간적으로 죄를 즐기는 마음이 있다고 해서 우리가 죄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며, 그리스도인은 본성적으로 죄를 미워한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죄에 대해 핑계를 대는 것도 분명 잘못이지만, 죄 때문에 자신을 자학하는 것도 옳지 않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7장 17절에서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라고 선언한 데서, 우리 자신이 아닌 우리의 육체 안에 죄를 행하게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떠나 독립적으로 행할 때, 즉 육적으로 행할 때 죄를 짓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 안에 안식하므로서 죄로부터 참 해방을 얻을 수 있다고 맥베이 목사는 힘주어 말했다.
맥베이 목사가 율법주의적인 신앙과 은혜의 신앙를 비교하여 설명한 부분도 청중들의 고개가 끄덕여지게 했다. 율법은 언제나 우리를 정죄하고 결코 만족을 모를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도록 돕지도 못한다고 한다. 율법적인 신앙이란 결국 죄에 대해 헛되게 싸우고 고생하는 것, 의로움을 얻기 위해 헛되게 싸우고 고생하는 것일 뿐이다.
반면, 맥베이 목사에 따르면, 은혜란 다른 그 무슨 이유 때문이 아니라 단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삶의 방법과 체계를 뜻한다.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은혜의 신앙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은혜는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며, 우리와 함께 기뻐하고, 의로움을 선물로 준다고 한다. 따라서 은혜를 통해 그리스도인은 마태복음 11장 28-29절에 나타난 것과 같은 안식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죄 짓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우리가 실수하자마자 무섭게 벌 주시는 분으로 하나님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맥베이 목사는, 하나님을 온유하고 행복하시며 우리를 기쁘게 받아주시는 아버지, 우리를 위로하시고 양육하시는 어머니, 우리와 서로 친밀하게 알고 아무 조건없이 우리를 용납하는 친구와 같은 분으로 설명했다.
또한 그는 하나님께서 만물의 창조자이시자 통치자, 우리 삶의 인도자이심을 굳게 믿고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교훈도 잊지 않았다.
맥베이 목사는 은혜를 누리는 삶에 대한 강의 외에 하나님으로부터 쓰임받는 비결,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발견하고 가꾸는 방법 등 신앙의 보다 실천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강의했다.
이번 컨퍼런스의 맥베이 목사 강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익히 아는 성경 구절들을 토대로 한 강의였음에도, 그리스도인들이 평소 눈이 어두워 미처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던 부분들을 짚어주며 참석자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 강의였다.
그가 말한 '은혜의 영성' 이란 우리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와 교제하며 그를 의지하고 사랑하는 삶을 영위하는 것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겠다.
사역에 치여 자칫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는 잃어버리고 공허감에 빠지기 쉬운 그리스도인들, 특히 목회자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부르신 목적이 일을 '시켜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들이 그리스도의 그늘 아래 쉬면서 하나님과 함께 사랑의 관계를 누리도록 하기 위한 것임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크리스천투데이 김영빈 기자 ybkim@ch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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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도행전을 쓸 자들은 누구인가
와그너 박사, 신사도의 특성 밝혀
▲21세기 교회 역사는 신사도가 이끌어갑니다. 와그너 박사 @ 크리스천 투데이 김영빈 기자
피터 와그너 박사는 21세기 신사도적 교회부흥 세미나에서 신사도적 교회에 대해 소개한 후, 이러한 신사도적 교회를 이끄는 핵심 지도자인 사도에 대해서 4일과 5일 양일에 걸쳐서 강의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라고 말하고 있는 에베소서 4장 1절은 예수님의 부활. 승천 후 기록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라는 은사 또한 통념과 다르게 과거 특정 기간 동안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타 은사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승천 사건 이후에도 주어진 은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와그너 박사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사도의 기준으로 여겨지는, '살아 생전의 예수를 만나고 그와 함께 하였으며 그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수 있는가(사도행전 1:21-22 참고)"에서 벗어나는 사도들이 성경 자체에도 여럿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 중 대표적인 이가 사도 바울인데 그는 생전의 예수를 만난 적은 없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영으로 예수님을 만났으며 예수님에 의해 친히 사도로 피택됐다.
또한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라고 기록된 고린도전서 12장 28절의 말씀은 교회의 기초에 있어서의 사도의 역할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만약 하나님이 교회의 첫째로 사도를 세우시고 그 자리를 공석으로 두신다고 하면, 이는 다소 이상하게 들린다. 비록 '사도' 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쓰지는 않았을 지라도 어느 시대에나 사도는 있어왔다. 마르틴 루터나 존 웨슬레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겠다.
위와 같은 근거들로 인해, 새로운 시대에 하나님이 교회 역사를 이끌어가시는 데 핵심적으로 사용하시는 일꾼인 사도에 대한 거부감을 버리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제 사도의 특성에 대해 알아보자.
우선 그들은 영적 권세를 가지고 있다. 피터 와그너 박사는 그의 책 에서 "나는 신사도적 개혁이 일으키는 급진적 변화 중 가장 급진적이라 생각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너무나 중요해서 다음과 같은 말로 주의깊게 표현하였다: 성령께서 각 개인에게 부여하신 영적 권위의 양" 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사도의 영적 귄세의 출처를 5가지 정도로 생각해 보자.
첫째는 사도들이 가진 영적인 은사이다. 빌 햄몬에 따르면, 이러한 귄위는 종교적 계급의 권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의해 부여된 영적 권위이다. '사도' 라는 직분도 은사에 속함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둘째, 그들은 사역의 위임, 또는 소명을 부여받았다. "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라는 고린도전서 (12장 4-6절) 말씀을 통해 볼 때 사도들이 각각 나름의 직임과 활동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사도들은 휼륭한 인격을 가지고 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야고보서 3:1)" 라고 한 사도 야고보의 말처럼 사도들은 먼저 심판을 받을 자들이기에 보통 사람들보다 더 휼륭한 인격을 소유함이 요청된다. 성숙, 근신, 건강한 가정생활, 검소, 책망할 것이 없음, 겸손 등을 이러한 인격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겠다(디모데전서 3:1-7, 고린도전서 4:4, 고린도전서 4:16, 마태복음 23:12 참고).
넷째, 사도들에게는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이 있다. 그들은 자발적이고 감사할 줄 아는 자들로서 그 사도를 자신의 인생과 사역에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사도들은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도울 수 있을까' 하는 동기로 자신의 추종자가 자신보다 더 뛰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고 그들을 위해 사역한다(요한3서 1:4 참고).
다섯째, 사도들은 비전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또는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이 주신 비전의 영역 안에서는 결정적인 권세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바울은 자신이 세운 교회에 대해, "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찌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 나의 사도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고린도전서 9장 1-2)" 라며 그들에 대한 자신의 권세를 표명하고 있다.
와그너 박사는 그의 세밀한 연구를 통해서 '일하는 방법' 에 따라 사도들을 크게 4가지로 분류했다. 성도들을 상대로 사역하는 수직적인 사도와, 예루살렘의 야고보 사도처럼 사도들 사이에서 사역하는 수평적인 사도, 설교자, 교사 반포자 등 여러 기능을 소화했던 바울 같은 다중적 사도, 그리고 교회밖 사역 현장에서 일하는 일터의 사도가 바로 그것이다.
선지자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가지고, 자신을 위한 중보자들을 두며, 추종자들 및 사도들 사이에서 대화의 창고를 열고, 자기가 지도하는 사도 및 자신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등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사도들의 책임으로 당부하며 와그너 박사는 강의를 끝맺었다.
김영빈 기자 ybkim@ch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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