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자 가정의 아이들은 자원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교회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그럴지라도 그 아이들은 즐거움 가운데 자라갈 수 있다.
교회를 섬기는 것과 가정을 돌보는 것 이 둘은 흔히 상반되는 요구처럼 여겨진다. 가정과 교회 양쪽 모두에 헌신 해야 할 목사님들은 어느 한 쪽을 소홀히 해야만 하는가 최근 발간된 지도자 문고(Leadership Library) 의 한 책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고 있다.
계간 리더쉽(Leadership) 의 편집인 마샬 쉘리(Marshall Shelley)는 교회와 가정이라는 두 사역에 있어서 균형을 찾은 여러 분들의 지혜를 모아서 제공해주고 있다. 다음 발췌문은 그의 책 내용으로서 목회자들이 그 자녀들에게 긍정적인 교회 생활의 분위기를 베출어줄 것을 부탁하고 있다.
마샬 쉘리(Marshall Shelley)
로렌스 올리비에 경과 스토우 부인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사실이 두 사람은 사역자의자녀였다는 점 이외에는 공 통점이 별로 없다. 그 외에도 마틴 루터 킹 2세나 알버트 슈바이쪄 등도 목회자 가정에서 자랐었다.
아이들이 어떤 직업의 부모 밑에서 자란다고 할지라도-그 직업이 목회자든 교수든 막 노동자이든 심지어 왕가에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부모의 직업 때문에 그 자녀가 하나님께는 영광을 부모들에게는 기쁨을 드릴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것은 목회자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그 자녀들이 교회를 고통의 장소가 아니라 즐거운 장소라고 여기게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비록 어쩔 수 없는 부분들-비난이나 갈등-이 교회생활에 있을 수 있지만, 부모들은 그 자녀를 위해 교회생활을 준비하는 일이나 교회에서 있는 일을 설명해 주고 어린 자녀들이 보다 흥미롭게 느낄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줄 수 있다.
다음은 아이들이 교회 생활에서 건전한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몇가지 요소들이다.
교회의 불완전함을 일깨워줌
사역자의 가정에 있어서 그 자녀들이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소개가 필요하다. 그렇게 미리 준비가 되었을 때는 어려운 상황이나 사람들에 의해 쉽게 충격을 받지않을 것이다.
내가 살펴본 대부분의 사역자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사람이란 완전할 수가 없다는 점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고 한다.
저는 아이들에게 교회라고 아픈 부분이나 비난 또는 분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럴 때가 바로 성장하는 때이며 하나님이 큰 가르침을 주시는 때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라고 어느 목사님은 말씀하신다.
한 가족으로서 잘못된 것은 참아주고 좋은 점은 함께 기뻐하는 가운데 어느 경우에서나 자라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애들에게 감사하는 말에 인색하지 말 것과 사람들에게 짧은 감사와 격려의 편지를 쓸 것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가끔은 수세대에 걸친 하나님의 백성들의 충성스러웠던 점에 대해서도 얘기해주지요. 또 때로는 상처받은 교 회 식구를 위해 가족들이 함께 기도하기도 하지요. 이처럼 목회자들이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에 대한 얘기를 아이들과 나눔으로써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열려진 대화
자녀양육에 관한 책들은 한결같이 부모가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누가 감히 반박할 수 있으랴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함께 보낸다고 해서 부모들에게 흥미도 없는 그림 색칠하기나 오려붙이기 등을 함께 하라는 얘기는 아니라고 본다.
설교가의 아들인 스태포드(Tim Stafford)가 이런 면에서 좋은 추억을 갖고 있었다. 제가 느낀 바로는 아버지께서는 아이들을 아이들답게 대우해주시고 어른들이 간섭하지 않도록 해주셨습니다. 또한 우리가 흥미를 보이는 일이라 면 어른들의 세계에 끼어들도록 해 주셨습니다. 어느 일요일 밤에 저녁예배가 끝난 후 호텔 식당으로 아버지와 함께 가서 목사님들과 아버지의 옛 신학교 스승이신 릿취(Addison Leitch)교수님과 함께 얘기에 참석했던 것을 기억 합니다. 제가 어른들의 얘기를 이해할 순 없었지만 지금까지의 제 기억으로 어린 나이의 저를 어른들과 동일하게 한 사람으로 취급 해주셨던 것이 굉장히 유쾌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런 것을 시작할 수 있는 한가지 방법은 아이들을 개방적으로 키우는 일이다.
현재 대학생 선교회 (CCC)의 창립자이고 총재인 빌 브라잎(William Bright)씨는 그의 자녀들이 어렸을 때 항상 그들과 함께 지냈다고 말한다. 아무리 중요한 손님이 그의 사무실을 방문한다 해도 최소한 아이들이 짧막한 인삿말이 라도 나눌 수 있도록 해주었다. 브라잎씨는 다루어야 할 어떤 문제보다 더 자녀들의 관심사가 우선한다는 사실을 그의 자녀들이 알고 있기를 바랬다. 아버지와 만나려면 약속을 해야만 된다고 느끼게 되기를 원치 않았다.
이제 자녀들의 즐거운 교회 생활을 위해 몇가지 구체적인 전략을 살펴보자.
아이들이 어린 경우
학령전 아동들이나 저학년의 아동들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실천해 볼 수 있다.
1) 잠자리에서의 짧은 설명:간단하게 또한 상상력을 활용해서 설명할 수 있다면 학령전아동들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방법은 특히 딸아이들에게 효과가 있다. 한 교회지도자의 얘기를 들어보자.
토요일 밤(아니 어느날 밤이든 교회 행사가 있는 전날 밤) 딸아이를 꼭 안아주면서 다음날 있게 될 일에 대해 기대할 수 있도록 말해 줍니다. 그들이 만나게 될 친구들, 그들이 하게 될 활동 등에 대해, 또한 내가 주일학교 강의 내용을 알 경우에는 성경 이야기도 해주지요.
한번은 세살짜리 애의 반 선생님이 예수께서 눈먼 소경을 고치신 얘기를 들려주었는데 스태시(딸애 이름)는 친구 들 앞에서 소리쳤어요. 그 사람 이름은 바디매오예요 라고.
딸애는 잠자리에서 얘기 듣기를 좋아했는데 그것은 첫째로는 다음날 주일학교에서 얘기를 들을 때 좀더 친숙하게 느껴지고 또 다음으로는 내가 주일학교 반사보다 좀 더 자세하게 들려주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2) 교회를 제2의 가정으로 삼도록 도와줌:목회자의 자녀들은 교회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되므로 자연 교회를 제2 의 가정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많은 경우 목회자들은 이런 이점을 활용하고 있다.
아이들이 자라감에 따라 목사직에 따르는 특권을 보여주려고 애썼지요. 예를 들면 주일 이외의 날에는 아이들 이 교회를 운동장이나 놀이터로 삼도록 해주었지요. 라고 켄트목사(일리노이주 휘튼 대학교회의 담임목사)는 말한다.
현재 플로리다에서 목회하고 있는 버킹햄(Jamie Buckingham)목사는 그의 아이들이 어렸을 때 우린 아이들에게 교회를 집의 연장으로 느꼈으면 하고 바랬지요. 그래서 그들이 사무실로 오는 것을 환영해주었고 가끔은 아이들 하나
쯤은 예배 시간에 강단 위로 올라와 찬송부르는 동안 나와 함께 강단 위에 서있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교회란 자기들의 처소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분명히 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애 때문에 예배가 방해받 지는 않았습니다 라고 말한다.
3) 따스한 관계:많은 목회자들이 그 자녀들이 교회에 대해 긍정적인 느낌을 갖게 하고자 애쓴다. 그것은 친구관계 나 관심을 갖고 돌봐주는 선생(주일학교교사)이나 부모들의 긍정적인 생각을 통해 자연스레 심겨질 수 있다.
그러나 한 목사는 그 이상을 행하였음을 볼 수 있다.
나는 예배 시간이면 강단에 앉지 않고 가족과 함께 맨 앞줄에 앉지요. 라고 어느 목사는 토로한다. 불가피 하게 강대상으로 가야할 때만 그곳으로 가고, 그 외의 시간에는 내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목이나 어깨를 어루만져주며 늘 가족과 함께 앉아있었죠. 그 아이들은 한번도 몸을 움츠리거나 하지 않았어요. 우리 아이들 가운데 교회 내에서 문제를 일으킨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들이 다자란 지금 주일 예배를 빠지려 들지를 않아요. 그리고 그러한 성실함이 어느 정도는 교회생활에서 따스함과 친숙함을 느끼도록 해주려는 나의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4) 예배 후에 소외시키지 말 것:목사에게 예배 직후의 순간들은 사람들을 접촉하는데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 하지 만 양친 모두가 사람들에게 인사하는데 정신을 팔다가 보면 어린 자녀들에게는 그 혼잡한 예배당이 혼돈의 장소로 느껴질 수가 있다.
어느 목사님의 딸이 주일예배 후 휴게실에서 자기 아버지에게 말을 걸려고 했었다. 아빠 아빠 하고 불렀으나 그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그 딸이 목사님 하고 부르자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딸아이가 자기 아버지가 자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더 많다고 느낀 것은 당연하다.
아이들이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 어느 정도는 자기 아버지에 대한 인상이 투사된 것으로 압니다. 라고 굿맨 (David Goodman, 일리노이주 윈넷카 성서 교회)목사는 말한다.
대부분 어린아이들이 그렇지요. 내 아이들에게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에게만 관심이 있지 자기들에겐 그렇지 않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예배 직후의시간은 정말 중요한 사역의 시간입니다. 그리하여 그 는 묘안을 생각해냈다. 우리가 매우 바쁜 예배 직후 45분 동안 우리 아이들을 주일학교 교실에 데려다가 돌봐줄 사람-대개 독신 여성들 가운데-을 구했지요. 물론 그녀에게 급료를 지불합니다. 그녀는 아이들을 데리고 때론 길건 너 공원으로 가기도 하고 때로 날씨가 좋지 않을 땐 교회 안에 있는 어느 방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지요. 하지 만 우리집 10살 짜리 아이는 더 이상 돌볼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는 제 친구들을 만나거나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기 때문입니다(제 생각으로 교회를 자기 집처럼 느끼며 자라는 아이들의 큰 장점하나는 사회적응이 쉽다는 점이지요. 걔들은 어른들과 좀 더 많이 만나게 되니까요). 하지만 다른 두 어린것들을 위해선 돌봐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자칫하면 아이들이 불행하게 될 수가 있으니까요. 아이들은 2~3시간을 이미 교회에서 지냈는데 이 때 우리가 거칠
게 대하게 된다면 몹시 화가 날 것입니다. 이제까지의 모든 것을 분개스런 경험으로 기억하게 될 터인 데, 그렇게 되기를 결코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가 즐거이 교회에 다니는 것처럼 아이들도 교회 나가기를 즐거워하기 를 바랍니다.
아이들이 좀 더 나이가 든 경우
아이들이 국민학교 상급반이나 더 큰 경우엔 전략이 달라져야 한다. 여기에 10대 초반이나 청년기의 자녀를 두신 목회자들이 사용하는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1) 여러가지 교회 일에 참여시킴:이것은 가장 우선적이고 흔한 방법으로, 한 예로 그들에게 사무실의 업무를 시킨 후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버지니아주 북부의 한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예이츠(John Yates)목사는 아이들이 용돈 이 필요한 때면 교회로 데려오지요. 거기엔 늘 철해야 할 서류들이나 청소거리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 일을 시킨 후엔 내 주머니에서 용돈을 지불하는 겁니다. 라고 얘기해준다.
아이들이 사역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좋은 방법은 심방 때에 함께 데려가는 것이다. 미주리주 세인트 루이스 시 부근에 있는 한 루터란 교회의 사이먼(Hank Simon)목사는 10살된 딸아이를 켈러부인을 심방할 때마다 데리고 다녔다. 켈러부인은 오랜 교회 멤버였지만 요즈음은 두문불출하는 상태였다. 몇 년동안에 딸아이와 켈러부인은 매우 친하게 되었다. 켈러부인은 가끔 딸아이를 대접해 주었다(한 예로 부활절이면 쵸콜렛 씌운 땅콩을 주기도 했다).
크리스티(딸아이의 이름)는 남을 돌봐주는 것이 크리스챤 삶의 일부임을 배우고 있지요. 라고 그 엄마는 말한 다. 요즈음 크리스티에게는 염려가 하나 있는데 켈러부인에게 있는 늙은 고양이에 대한 것이예요. 얼마 전에 내 게 묻더군요. 그 고양이가 죽으면 켈러부인은 어떻게 하지 저는 그 말을 들으면서 10살짜리 아이가 노년의 친구를 그토록 염려해줄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았읍니다. 한번은 크리스티가 장님 아주머니 한분을 위해 휠체어의 발판에 올라서서 자기 얼굴을 만져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마침내 그 아주머니는 고마워 네 얼굴을 보게 되어참 기쁘구나 라고 하며 고마워했다.
한번은 요양원을 방문했을 때 101세되신 할머
니를 만나보러 간 적이 있고 또 한번은 어린 아이의 장례식에 참석한 적이 있지요. 이런 식으로 주님을 섬기는 사역에 동참케 함으로써 아이들은 인생의 여러 국면을 이해하게 되지요 라고 그 어머니는 말한다.
2) 아이들만을 위한 특별 대우:목회자의 자녀들 가운데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는 자기 부모님들이 그렇게 바쁜 사 역 중에서도 자기들을 위해 해주었던 일들이 소중히 남아있다. 이러한 기억들 즉 자기는 교회의 어떤 멤버보다는 더욱 소중하다는 생각은 종종 사역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 깊고도 오래남는 영향을 줄 것이다.
최상의 추억거리는 아이들을 하나씩 따로 불러 정기적으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다. 때로는 그렇게 하려면 대 단한 결심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목회자 가정에서 자라난어느 목사님이 한 중요했던 순간을 회고해 준다.
목회를 하시는 한편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나의 아버지는 오후 3시에서부터 밤 11시까지 주 5일간을 일하셨다. 하지만 적어도 두달에 한번 정도는 우리 어린 것들을 하나씩 데리고 함께 시간을 보내주셨다. 어느 토요일 아 침(그날은 내차례였다) 아빠와 나는 사냥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집 앞에서 차 한대가 멈추어섰다. 교회 장로 가운데 한분이신 엔버그(Wilbur Enburg)씨였다. 그는 목사이신 아빠를 데리러 온 것이었다. 죠와 로라가 마음 이 상해서는 교회를 떠나겠다고 해요. 내 생각에 목사님께서 가셔서 그 사람들을 만나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주에 죠와 로라를 만나봤어요.
좀 기다려 보아야 할 것 같군요. 하고 아버지가 대답하셨다. 엔버그씨는 마음이 언짢은 채로 계속 아버지를 졸랐다. 그 사람들을 오늘 중으로 만나보셔야 할 것 같아요 미안합니다. 전 오늘 사냥하러 가기로 했어요. 내가 조용히 지켜보는 가운데 아버지는 말을 끝맺었다. 엔버그 장로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사냥을 간다구요 그럼 돌아올 생각을 마시오 그리고는 자기 차로 향했다. 진담은 아니겠지요, 엔버그씨 내일 교회에서 봅시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숲으로 가면서 물어보았지요. 이러다가 아빠의 직업을 잃게되는 것은 아닐까요 아니, 그렇지 않을 거야. 설사 잃어버린대도 그런 자리는 구태여
지키려고 할 필요가 없어 실제로 죠와 로라의일은 그리 급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교회를 떠나가지 않았으며 아버지도 그곳에서 사역을 계속하셨다.
그리고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교훈을 깨달았다. 즉 아버지는 한 사람의 장로의 비위를 맞춰주려고 하기보다 자기 아들을 소중히 여긴다는 점이었다.
그러한 확신은 약 40년 가까이 내게 남아있다.
이러한 얘기는 또 한편으로 어느 교회에나 있기 마련인 문제의 사람들을 어떻게 다룰것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 한다.
교회 안의 비난과 경쟁에 대하여
교회생활에 어려운 일이 닥칠 때 부모들은 어린아이들에게 교회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망쳐버리지 않도록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설명해주어야 할 때가 있다.
목회자들 대부분은 교회생활에 있어서 비난이나 싸움따위를 애들에게(특히 아이들이 어릴 때는)보여주기보다는 숨기고자 한다.
우린 자녀들이 교회나 특정한 어느 누구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망쳐버리게 되길 바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식사할 때 누구의 험담도 하지 않고 그 대신 밝은 교회생활에 대한 얘기를 주로 하지요. 어느 사모님의 고백이다.
물론 대화 도중에 몇 마디 흘려듣는 수도 있고 또 집에 있을 때 비난 섞인 전화를 받게 될 때는 이 쪽에서 하는 말을 다 들을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불안스러워하고 애써 적절하게 말하고자 하는 부모들의 태도를 감지하고 서는 수화기를 내려놓은 후에 질문을 할 수도 있다. 그런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처음엔 너희들은 알바가 아니라고 얼버무릴 수가 있겠지만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때로는 저희들이 직접 전화를 받을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다. 사실 대화 가운데 긴장감이 있었을 때는 약간의 구체적인 설명을 해주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자녀들에게 사람들은 사물을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것은 나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을 비난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관점을 설명해주려고 애쓰는 것이다.
참 어려운 경우는 왜 어느 가족은 교회를 떠나는지에 대해 설명할 때일 것이다. 어느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을 들려준다.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들을 갖고서 자신들에게 적당하게 여겨지는 교회를 찾아나가는 것이란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문제의 심각성을 과장해서 말하지 말 것이란 점이
다. 만약 당신의 판단이 잘못되었을 경 우 그것이 당신에게는 단지 문제의 파악을 오해한 정도가 되지만 어린아이들에게는 그 정도가 아닌 것이다. 한 예로써 당신이 말하기를 우리 교회의 교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골칫거리야 라고 말한다고 치자. 아이들에게 그 상당수란 교인 전체로 여겨져버릴 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교인들이 우리를 못살게 굴었다는 지울 수 없는 나쁜 인상을 갖게 될 것이다.
어느 목사님은 교회문제를 잘못 다루었던 경험에 대해 얘기를 들려준다. 한번 어떤사람이 저를 괴롭힌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자는 것이었어요.
사실은 교회 제직회에서 그 문제를 상의했고 그 문제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렸지요. 그런데도 그 사람은 내가 제직회에서 무리를 해서라도 그가 원하는 식으로 결정을 바꾸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해댔어요. 심지어 새벽 4시에도 말이죠. 그 날 밤에는 11시경 전화를 했는데 11살된 내 딸이 전화를 받았지요. 나와 통화하고 싶어한다고 딸이 전해줬지만 아내가 가로막았습니다. 아빠는 그분과 지금 얘기할 수가 없다고 말해줘 곧이어 아내는 자신이라도 전화를 받을걸 하고 후회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내 딸이 상처를 받을 것이었기 때문이었지요. 딸은 상황을 몰랐습니다. 다만 아빠가 집에 있는데도 무엇때문에 아빠는 그분의 전화를 받을 수가 없었을까 하는 생각에 딸은 긴장을 느꼈고 두려움마저 생겼지요. 그래서 나는 딸애에게 그날 밤 상황을 설명해 주어야 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돕고자 애써 보았지만 듣지 않았다 는 것과 그는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고 있다고요. 딸애는 웬만큼 이해하고 수긍하였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긴장을 느낄 필요가 없었던 것이지요.
이러한 실수를 한 후 이제 그 부모들은 그러한 경우 자기들이 직접 문제를 다룰 것이라고 다짐했다.
또 다른 어느 목사님은 말씀하신다.
저희는 아이들 앞에서 남에 대해 부정적인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나 아내는 말하죠. 이번 주간은 참으로 힘들구나, 얘들아 아빠에겐 부담이 많은 한 주간이구나. 또는 아빠는 실망스런 일들이 있구나 할 뿐 남을 비방하는 말들은 하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 누가 전화질을 자주 하는 것을 아이들이 알 때가 있겠지요. 그때는 아이들에게 상황을 설명해주고 그들에게 한마디라도 기도를 해줄 것을 부탁하거나, 함께 그 문제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일이 잘 되어질 경우엔 함께 기뻐하게도 될 것이구요. 이에 대해 일리노이주 그레이스 루터란 교회 담임 목사인 루킹(F. Dean Lueking)씨는기본적인 원칙을 세워두고 있다.
내가 아이들과 함께 있을 경우 내 반대편 사람들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그 상대들이 그 얘기를 듣더라도 수긍이 될 만큼 저들의 입장을 정당하게 대변해 주려고 하지요. 그리고는 한마디 덧붙이곤 합니다. 왜 그가 그런식으로 느끼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가 있어 비록 내 기분은 언짢지만 말이야 이렇게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분쟁에 대해 건전한 견해를 갖도록 해주었다. 아이들은사람들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질 수도 있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존중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
두번째 원칙은 4분간의 법칙이다. 특히 식사시간에 교회문제에 대한 언급은 4분 이상 얘기를 못하도록 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대화는 쉽게 다른 주제-유년부, 휴가에 대한 계획, 독서내용등 무엇이든지-로 넘어가는 것입니 다. 목사들끼리라면 교회 문제에대해 계속해서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가족들의 대화나 생각이 이 문제로 가득차게 되길 원치 않았던 것이죠.
긍정적인 경험들을 쌓게 해줌
자녀들이 교회를 사랑하면서 자랄 수 있도록 하는 데는 나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편보다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편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샌디에고와 살렘에서 목회할 때 손님 접대를 가정의 미덕으로 삼던 뷰바너(Donald Bubana)목사는 자신의 얘기를 들려준다. 크리스마스 이브 때면 우린 혼자 사는 분들을 위해 예배를 일찍 드린 후에 부페식의 식사를 함께 하곤 했었지요. 그는 크리스마스 당일은 가족들과 함께 축하했지만 전날 밤은 늘 전도의 기회로 삼아 가장 어려운 사람 들을 초대하곤 했다. 그것은 가족 단위로 섬기는 사역이었다.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그들에게 초청대상에 대해 물을 수도 있었다. 올해는 누구를 초청하기 원하니 XX씨를 초대해요. 그들은 잘 모르고 지내고 있거든요. XX는 갈곳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때로는 초대의 대상이 꽤 복잡해지기도 하지만 여하튼 그것은 풍성한 사역의 시간이었다.
그러한 경험은 긍정적인 추억거리일 뿐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는 영향력도 미치는 것이다. 그들의 자녀들은 이미 결혼해서 분가하여 살고 있는데 뷰바너목사는 지난번 크리스마스 때의 얘기를 들려준다. 지난 크리스마스였지요.
내 딸에게 전화를 했더니 자기도 약 20명의 사람들을 크리스마스 이브의 부페에 초대해놓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 후 알라스카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를 했더니 자기도 한 무리의 사람들을 초대했다는 거예요. 늘 우리가 하던 것처럼 말이죠. 부모로써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최상의 상급인셈이죠. 아이들이 자의로 다른 사람들을 전도하기 위해 가정의 전통을 계속 세워나가는 것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목회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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