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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령이 가난한 자
    2002-09-16 14:59:51   read : 2757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2.08.25 // 마태복음 5:1-12

    I. 팔복 - 복음서의 열쇠

    성경 66권 어느 말씀이 귀하지 아니하겠습니까만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이 기록된 복음서는 설교가들의 중심이 되어 마땅합니다. 복음서의 많은 교훈 가운데서도 마태복음 5장 6장 7장은 가장 귀한 교훈이라 하여 산상보훈 혹은 산상수훈이라 일컫습니다.

    일찍이 로빈슨은 산상보훈을 일컬어 “인간 윤리의 최고봉”이라 했고, 올스 하우젠은 “예수 그리스도의 전생애를 통한 교훈은 산상보훈의 주해였다”고 말했습니다. 일본의 흑기는 말하기를 “수백의 보석으로 꾸며진 왕관”이라 했고, 하천풍언은 “모든 종교의 서곡”이라고 극찬했습니다.

    「한소망가족들의 행복한 기도잔치」 내일새벽부터 3주간 동안 계속되는 이번 특별새벽기도회 기간동안 우리가족들에게 아주 특별한 말씀 식탁을 준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산상보훈의 말씀, 그 가운데서도 「복 있으라 !」라는 주제 아래 팔복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산상보훈의 시작 마태복음 5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좇아오는 수많은 무리를 보시고 갑자기 산으로 올라가십니다. 그랬더니 이번엔 무리들이 다 따라 올라온 것이 아니고 제자들이 따라 올라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나아온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이 소중한 산상보훈의 메시지는 예수의 소문이나 듣고 호기심에 의해 몰려온 무리들이 들을 수 있는 말씀도 듣고 이해 할 수 있는 말씀도, 또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말씀도 아니었습니다.

    산까지 따라 올라 오는 수고를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제자들, 하나님나라 가치를 자신의 가치로 받아들인 천국백성이나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때문에 이른 새벽 산에 오를 수 있는 수고를 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특별한 은혜를 더하여 주십니다.

    산상보훈가운데서도 그 핵심은 바로 팔복의 말씀입니다.

    주경가들은 팔복의 말씀을 산상보훈의 열쇠라고 부릅니다. 그 가운데 오늘 본문 5장 3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말씀은 또한 8복을 여는 열쇠가 됩니다. 팔복을 천국 가는 사닥다리라고 한다면 이 사닥다리는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심령이 가난해야 자신의 죄를 인해 애통하게 됩니다.
    심령이 가난해야 그 성품이 온유하게 됩니다.
    심령이 가난해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됩니다.
    심령이 가난해야 남을 긍휼히 여길 수가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해야 마음이 청결해 집니다.
    심령이 가난해야 화평케 됩니다.
    심령이 가난해야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해야 고난 가운데서도 행복의 뜻을 깨달아 가게 됩니다.



    II. 복이란?

    이들의 성품 뒤에는 반드시 복이 따르는데 그러면 “마카리오스”라고 기록된 이 복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복된 하나님” “하나님은 복이시다”라고 말씀하심으로 복은 하나님의 성품임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 누가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지요. 돈을 가진 사람들,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들, 높은 권좌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나눠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령한 복이요 영적인 복이요 인격적인 복입니다. 때문에 거듭난 그리스도인들 만이 가질 수 있는 차원 높은 성품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적인 복을 기대하는 것은 잘못이란 말인가? 지금보다 조금 더 잘 살고 더 좋은 직장과 환경을 원하는 인간의 소박한 꿈은 모두 버려야 한단 말인가?

    그렇지도 않습니다. 문제는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가? 아니면 먼저 세상적인 것들을 구하는가의 문제입니다. 먼저 구할 것을 먼저 구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선되는 것을 알아야 한단 말이지요. 존재의 문제입니다. 가치관의 문제입니다. 인생관의 문제입니다.

    부를 얻기 위한 방편으로 하나님을 설득하는 어린아이의 가치로 기도하고 매달리기를 십수년동안 해 오는 사람, 아직도 예수님의 깊이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인생의 실패 때문에 하나님 앞에 찾아오시는 것 참 잘한 일입니다. 상처낸 영혼을 안고 울며 달려나오신 것 참으로 잘한 일입니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인생에 얻은 커다란 문제를 끌어안고 주님 앞에 찾아오시는 것 하나님은 너무나 기뻐 여러분을 반겨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10년 20년 예수님을 믿으며 언제나 그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말이지요.

    먼저 무엇을 입을까? 어떤 집에서 살까? 자동차는, 직업은, 병 고치고, 문제 해결하고, 이런 일들에 매달리고 남은 시간 할 일 없이 편안할 때 하나님 나라를 조금 구하고, 쓰고 남은 돈 얼마 드리고 봉사도 내 시간 짜투리 짤라하고. 이런 사람이 알 수 있는 복이 아닙니다.

    썩어 없어질 세상일에만 집착되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몫도, 하나님의 뜻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얻을 수 있는 복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성적순이 아니듯이 행복은 환경순이 아닙니다.

    로버트 우스트 교수는 전세계 54개국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행복지수를 조사해 본 적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가운데 미국은 54개국 가운데 46위, 우리나라는 23위, 1위는 가장 가난한 나라로 알고 있는 뱅글라데시 사람들이었습니다.

    선진국쯤 되면 소득 상승이 행복지수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 가치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환경 여하에 따라서 행복지수를 빼앗기지 않더라는 것이지요. 팔복은 영적인 복입니다. 고상한 복입니다.

    복을 영어로 Blessing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는 말에서 유래되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할 때 내 시간을 내어놓을 수 있을 만큼, 내 은사를 내어놓을 수 있는 것 만큼, 내 환경과 물질을 주님 앞에 내어 놓을 수 있을 만큼 그것이 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라틴어로는 Benedicere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누구와 좋은 말을 나눈다”는 뜻입니다. 이웃과 나눌 수 있는 그 만큼이 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요? 인생의 종착점에 서서 보면, 인생을 마치고 하나님나라의 심판대에 서서 보면, 그것들만 남아있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즉, 복은 우리가 무엇을 소유함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바칠 수 있고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많이 가져도 하나님의 요구 앞에 내어놓을 수 없다면, 이웃들의 아픔을 어루만질 수 없다면, 이웃들의 필요를 채울 수 없다면, 그것은 복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기심이요 욕심이요 청지기적의 심판입니다.

    아무리 가진 것이 없어도 감사함으로 드릴 수 있고 기쁨으로 나눌 수 없다면 성경은 그를 두고 복이라고 일컫습니다.

    여러분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혹시 나는 자신에게는 물질을 쓰고, 시간을 쓰고, 생각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무한히 후하나 하나님의 뜻에는 인색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아직까지 복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자신에게는 인색하나 하나님을 위해서는 후하다면 그는 분명 복의 의미를 알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성품을 지닌 천국의 백성입니다.

    가끔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들, 우리주변의 사람들을 살펴보면, 학원이나 자선단체나 종교단체나 교회 등에 깜짝 놀랄만한 기부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삶의 자세히 면면 살펴보면 자신을 위해서는 청빈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웃들의 필요를 위하여, 역사의 필요를 위하여, 역사의 아픔을 만지고 치유하기 위해서는 후하게 자기를 내어놓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를 두고 성경은 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가치나 행복은 소유의 문제가 아니고 존재의 문제입니다.



    III. 심령의 부자

    이를 위한 첫 번째 성품은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심령의 가난을 알기 위해 우선, 심령의 가난이 아닌 것들을 알아보십시다.

    누가복음 18장에 두 사람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갑니다. 그 첫 번째 사람이 바리새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을 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보라는 듯 기도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부요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자신과 자만과 독선으로 가득 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바리새인을 영적 부자를 거부하시고 그들의 기도를 외면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다고 심령의 가난은 곧 물질의 가난이나 지식의 가난 등 세상적 가난을 뜻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은 물질의 가난을 예찬하지 않습니다. 물질이 가난하면서도 심령이 가난하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반대로 물질의 부를 누리고 살아가면서도 겸손하여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별로 배우지 못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눌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없는 교만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남 못지 않게 배웠고 아는게 많고 또한 넉넉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겸손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언제나 이웃들이 따르고 싶은 삶의 본이 되는 향기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심지가 약한 사람, 용기가 없고 비굴한 사람, 매사에 내성적이고 부정적인 사람, 외식하고 겸손을 가장하는 사람,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사양만 하고 도피하는 사람 등등을 심령의 가난이라고 착각해서도 안됩니다.

    어거스틴은 오히려 교만을 정의하여 말하기를 “나는 지극히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곧 교만이라고 말했습니다.
    주경가 머레이는 “자신이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그 사람은 이미 겸손을 잃어버린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IV. 심령이 가난한 자

    그렇다면 도대체 심령이 가난한 자란 어떤 사람을 말합니까?

    첫째, 가난한 마음이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발견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어느날 성령의 도움으로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보게 됩니다. 그 순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무능력을 발견하게 됩니다. 누구에게 무엇인가를 줄 것도 없고, 가르칠 것도 없고, 주장할 것도 충고할 것도 없는 가난한 자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토록 간절했던 기도도, 하노라고 했던 전도도, 봉사도, 헌금도, 내 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은 죽음과 진노와 심판 앞에서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 자비와 은혜를 구할 수밖에 없는 알몸의 자기 자신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상태입니다.

    마태는 가난이란 단어를 헬라어로 “프토코스”란 말을 사용했습니다. 이 말은 너무나도 가난하여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생존조차 불가능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이 부요하여 자기 철학과 주장과 선입견이 강한 사람, 자기 의로 가득찬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 조차도 거부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구원하실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심령의 가난을 설명하는 가운데 이렇게 요약을 했습니다.

    「치료를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자기 상태는 발견하였지만 남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도 교만한 사람이다. 자존심이 강할수록 남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이것도 죄다. 자신이 연약하고 병든 것을 알며 또 죄인인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거절하는 것은 가장 무서운 오만이다. 가난한 마음이란 밖으로부터 오는 도움을 겸손히 받아드릴 줄 아는 마음이다. 하나님의 치료를 수용할 줄 아는 마음이다.」

    묻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이십니까?

    영국이 낳은 선교의 아버지 윌리암케리는 한 인도의 지식층이 그를 비난했습니다. “선생은 구두 짓는 직공이었다면서요?” “아닙니다. 저는 헌 구두를 수선하는 수선공이었습니다.”

    일본의 한 외상은 애꾸눈이었습니다. 국회의원들 앞에서 정사에 관하여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반대당에 있는 국회의원이 조롱하기를 “당신은 애꾸눈이 아니오. 그 눈 가지고 어떻게 세상을 본 단 말이오. 그러니까 시각이 삐뚤어진 것 아니오.” 이때 외상은 대답했습니다. “의원님 일목요연이란 말도 있습니다.”

    또한 당신의 이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십니까? 여러분이 처해 있는 환경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수용하십니까? 때로 이 시간에 여러분들 고난 가운데, 여러분이 용납이 안되고 이해가 안되고 납득이 안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인생의 커다란 아픔 가운데 찾아오신 분 계십니까? 그 모습 그대로 여러분 앞에 자신을 수용할 수 있고 환경을 인정할 수 있을는지요? 성경은 이를 두고 가난한 마음이라 일컫습니다.

    둘째로, 가난한 마음이란 시간도 물질도 인생도 의도 더 이상 내가 주인이 아님을 아는 마음입니다. 내 것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직 심령이 부자인 사람입니다.

    어느날 어느 히브리 구두쇠가 억만 재산을 모아 놓고 나름대로 행복한 미래를 설계하고 있었습니다. 설계가 끝나갈 무렵 목덜미의 싸늘한 손길을 느껴 뒤를 돌아다 보니 죽음의 천사였습니다. 구두쇠는 천사의 허리띠를 붙잡고 단 몇 년만 시간을 연장해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3년만 주십시오. 아니 석달만 주신다고 하면 내 재산의 절반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싸늘하게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세 시간만? 한 시간만? 마지막 1분을 문고리 잡고 바둥바둥 부둥켜 떨면서 한 마디를 남기고 어디론가 끌려갑니다. “돈도 시간도 내 것이 아닌 것을!”

    안토니 드 멜로의 수필집 입 큰 개구리의 하품중에서 나오는 내용입니다.

    묻습니다. 당신 것이라고 착각하는 무엇이 남아있습니까?
    당신은 아직도 심령의 부자입니다. 천국을 소유하지 못한 것입니다.

    셋째, 가난한 마음은 하나님만 의존하고 그의 도움을 갈망하는 마음입니다.

    장신대 신약학 교수는 이 부분을 가르칠 때마다 “심령이 가난한 것이란 하나님 앞에서 헐떡 거리는 마음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한 순간도 숨쉬고 살 수 없는 절박한 심령을 말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부족을 알았으면 겸손이라도 해야하지 않습니까? 실력도 인격도 신앙도 가진 것도 없으면서 교만까지 하다면 누가 그를 환영하겠습니까? 하나님이 그를 받아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에게 복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저는 조금 늦게 군대에 갔습니다. 훈련을 마치고 점호를 마치고 나면 대전시내 한 제과점에서 따끈 따끈한 도낫츠 2개, 점호빵이라는 것이 배달되어집니다. 그 점호빵을 먹고 나면 그게 얼마나 더 먹고 싶은지 얼른 먹고 물 마시고 옆 사람을 구경합니다. 두리번 두리번 혹시 배 아파서 못 먹는 사람이 없는가? 그런데 배 아파서 못 먹는 사람도 없습니다. 하도 하도 먹고 싶어서 꾀를 냈습니다. “얘들아 이리 오너라. 너희들 빵 더 먹고 싶지?” 한결같이 더 먹고 싶다고 그럽니다. 점호빵을 더 먹을 수 있는 비결이 있다고 한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얘들아, 한 개 먹으나 두 개 먹으나 감질나기는 마찬가지 아니겠냐? 그러니 한 개만 먹고 한 개는 빵 계를 들자.” 그래서 계 타는 날은 빵 9개를 먹습니다. 배가 고프고 나니 빵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심령이 가난해야 은혜의 맛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목말라 사모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갈급히 찾는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복을 찾아 헐떡거리는 마음이 가난한 마음입니다.



    V.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어떤 복을 주십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천국이 무엇입니까? 대한민국은 우리나라 지도자의 통치권이 미칠 수 있는 영역입니다. 마찬가지로 천국은 하나님의 통치권이 미치는 곳을 말합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상관할 것이 없고 하늘 땅 시공을 막론하고 하나님의 주권이 인정되는 그곳이 천국입니다.

    내 마음에 하나님의 주권이 이루어지면 그곳이 천국이고, 내 가정 내 교회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면 그곳이 천국입니다. 내 시간에 우선순위가 온전히 하나님나라 가치로 살아가면 내 삶이 천국의 삶이 되는 것이고, 내가 쓰는 물질에 우선순위가 하나님나라 가치로 쓰여지는 나는 천국의 양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가치관에 성품에 하나님의 지배가 분명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나라 백성의 삶입니다.

    그러면 심령이 가난하지 못한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확실히 그렇습니다. 심령이 가난해야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받아드리게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그를 다스릴 수 있고 그를 거듭나게 할 수 있습니다.

    교회 다닌다는 것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직분 받았다고 구원받는 것 아닙니다. 봉사했다고 구원 받는 것 아닙니다. 심령이 가난해야 천국을 복으로 받습니다.

    묻습니다. 이 시간 당신의 심령은 참으로 가난합니까? 당신의 심령을 쪼개 보여주십시오. 예수님께서 당신의 삶에 왕이십니까? 하나님이 당신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을 만큼 가난하십니까?



    VI. 결론 - 모델 :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은 하나님이셨으나 자기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인간으로 낮아지시되 왕가의 아들로 오시지 않고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오셨습니다. 궁궐 요람에 오시지 아니하시고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낮은 대로 낮은 대로 찾아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하기를 원하십니까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을 마음에 모시십시오.

    덴마크 코펜하겐에 유명한 예수님의 초상이 하나 서 있다고 합니다. 어느 예술가가 이 예수의 초상을 살 때 보았으나 별로 신통치가 않았는지 별 것 아니라고 불평을 했습니다. 이때 안내원이 말했습니다. “그 분 앞에 무릎을 꿇고 겸손히 바라보십시오.” 안내원의 말대로 그 예수님의 상 앞에 무릎을 꿇고 조용히 그분을 들여다 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를 들여다 볼 겨를이 없이, 자기를 돌볼 겨를이 없이 언제나 이웃을 향하여 두리번 거렸던 그의 눈, 그의 머리는 갈대처럼 솟구쳐 있었습니다. 넘어진 영혼 어루만지고 상처난 영혼 쓰다듬다가 거칠어진 손마디, 잃은 양 찾아 이 골짝 저 골짝 헤매다가 피투성이 된 발, 깡마른 그의 얼굴, 예술가는 눈을 흘리며 예수님의 상 앞에 고개를 떨구고 말았습니다. 그 앞에 도무지 교만할 수가 없었습니다.

    십자가 밑에 자신을 낮추십시오. 왜 어느날 내가 교만해 지게 되든가요. 내 눈 앞에 예수님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조금만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면 모든 것이 내가 잘나서 된 것인 양 교만해지는가? 하나님의 주권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온 우주에 주인되시고 내 삶에 주인되시고 역사에 주인되시는 예수님이 내 눈 앞에 사라지는 그 순간 나는 문득 교만해져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앞에 나타나면 하나님이 언제나 내 앞에 서 계시면 나는 교만할 겨를이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심령이 가난하여 헐떡거리는 마음으로 내일 새벽부터 일어나는 것입니다. 산에 오르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분 한분을 반드시 만나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매달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의 문을 열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내 것이라 고집하는 모든 것 하나님이 한번만 불어 버리면 모든 것이 날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게 맡기고 살아가면 평안합니다. 하나님의 부요가 나의 부요가 될 것입니다.

    해마다 8월 말이 되면 저희교회에서는 특별새벽기도회를 가지게 됩니다. 여름날 동안 자칫 나태했던 신앙생활, 닫혀졌던 기도생활의 문을 열고 한 해의 가들을 맞이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노라”

    (요3서:1-2)

    올 여름에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혼이 잘되어야 하겠기에, 하나님과 나 사이에 관계가 정확히 제 위치를 잡아야 하겠기에, 내 인생에 멋진 연주를 해 내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의 조율이 제대로 되어 있어야 하겠기에 이런 멋진 교회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기도의 승리는 올 가을 여러분들에게 풍성한 열매를 약속해 줄 것이며, 이 한 해의 마침을 멋지게 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부자되어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을 것인양 교만하지 말고 하나님이 형통케 하실 때에 또 아픔이 있다고 절망하지 말고 주님 앞에 달려나와 심령 가난함으로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복된 기회를 함께 갖기를 원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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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겨놓고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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