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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2002-09-04 16:24:22   read : 2040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2.5.26
    시편123:1-4
    인도의 ‘카라’라는 소녀가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선교사들이 어떻게 하든지 이 소녀를 구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에게는 노예로 팔려가게 되는 소녀를 구할만한 돈이 없었습니다. 한 선교사가 그녀에게“소녀야, 너도 기도하거라. 우리도 기도할테니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곳에서 살게 하실게다”라고 말했습니다.

    소녀가 돌아간 뒤 인도의 선교사업에 쓰라면서 뜻밖의 수표가 날아왔습니다. 다음날 아침 선교사는 이 기쁜 소식을 전해주려고‘카라’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카라’는 선교관을 향해 뛰어오는 것이였습니다. 선교사는 시치미를 떼고 어디 가느냐고 묻자 소녀는‘우리 둘 다 기도했으니 하나님께서 들어주셨으리라 생각했죠 그래서 이렇게 뛰어오는 거예요’라고 대답하더랍니다.

    어린 아이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고 자랍니다. 엄마의 얼굴에서 평안과 기쁨과 행복을 느낍니다. 어린 아이는 엄마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되면 금방 불안해 하고 두려워하여 울게 됩니다.

    때론 어린아이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엄마를 배우고 엄마를 닮아갑니다. 엄마의 얼굴에서 사랑을 느끼고 그 인격이 점점 성장해 갑니다.
    애정어린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며 자란 자녀는 장성해서 그 인격과 성격 생활에 모나지 않고 인생을 건강하게 살아가지만 엄마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자란 자녀는 그렇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이 아침 우리에게 은혜로 허락해주신 말씀은‘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제목이 붙어있는 본문입니다. 이 시는 120편에서부터 134편까지 모두15편이나 됩니다.

    본 시의 저작 배경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해석들이 있습니다. 우선‘칼빈’은 바벨론 포로 기간의 말엽에 팔레스틴으로의 회복을 소망하면서 탄식한 것이거나 포로귀한 직후 사마리아 지역을 통치하던‘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의해 유대인들의 신앙이 유린되고 심한 정치적 불안에 시달리던 때에 지어진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압제와 멸시 중에 고통하는 자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며 지은 시라고 전해집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소망으로만 살아온 자들임을 고백하고 지금의 역경의 상황 가운데서 멸시받는 그들이 하나님의 손만을 의지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의 본문이 언제, 어디서, 누가 쓴 것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희망의 찬송이 지어진 이래로,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애창되어 왔을 법 합니다.
    깊은 수심에 사로잡힌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 중에서도 이 시편을 묵상하며, 기도하며 새 힘을 얻었을 것이라고생각됩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부르면서 예루살렘에 이르는 길목을 가득 매웠고, 희망의 찬송을 듣는 이들의 눈시울을 뜨겝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이 시편은 지금도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성도들의 노래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하늘나라에 이르는 가파른 순례길을 걷는 성도들의 진한 간증이 되기에 합당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에 지금도 성전에 나와 의자를 부여잡고 간구하는 성도들에게 합당한 찬양입니다.

    “하늘에 게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종의 눈이 상전의 손을, 여종의 눈이 그 주모의 손을 바람같이 우리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우리 중에는 남달리 외롭고, 답답하고, 낙심되고, 불안하며, 방황하는 자기 있을 것입니다. 환난과 역경, 병마와 실패, 여러 가지 인생고에서 어찌할 바 알지 못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 시간 눈을 들어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는 이 시인의 기도는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해줍니다. 우리도 눈을 들어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보좌를 부여잡게 해줍니다. 우리로 하여금 풍랑 많은 세상에서 좌절하지 않고, 저 위에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굳게 서 있게 해 줍니다. 믿습니까?.

    눈을 들어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는 성도는
    풍랑 많은 세상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는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초연합니다. 그는 성난 파도를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세상 연락에 마음 빼앗기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오직 소망이 되시고 기쁨이 되시는 주님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하늘에 께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얼마나 간절한 눈초리입니까? 오늘 이 아침 옥포교회를 찾아 온 우리 모두는 이 시인의 간절한 기도를 배웠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러면 시인이 눈을 들어 바라보는 것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손입니다
    본문1-2절에‘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종의 눈이 그 상전의 손을, 여종의 눈이 그 주모의 손을 바람같이 우리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니이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십니다. 영광의 왕이신 우리 하나님은 그의 보좌를 하늘에 펴셨습니다. 그러기에 이 하늘의 자리는 영광의 자리이며 권능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이 권능의 자리에 좌정하셔서 최고의 통치자로서, 만왕의 왕으로서, 온 세상의 운명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주의 존폐와 인간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좌우됩니다. 그러기에 시인은 눈을 들어 그 하나님의 손을 바라 본 것입니다.

    시인이 바라본 하나님의 손은 어떤 손이였습니까?
    자기 백성을 인도하는 손입니다. 그 손끝에 갈 길이 있고, 그 손끝에 안전한 길이 있습니다.

    주님의 손길이 머무는 곳에, 주님이 가르키는 손끝에 푸른 초장과 잔잔한 시냇물이 있습니다. 그 손은 홍해에 길을 내신 손입니다. 그 손은 40년 광야에서 물을 내신 능력의 손입니다. 그 손은 양들을 인도하는 지팡이가 쥐어진 선한 목자의 손입니다. 그 손 그늘에 참 쉼이 있고 안식이 있습니다. 그 손은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알리는 손입니다.

    종은 주인의 손짓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가라하면 가야하고 오라 하면 와야 합니다. 종이 상전의 손을 바라 보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여종의 눈이 그 주모의 손을 주시해야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손은 곧 주인의 뜻을 알리는 신호의 손이기 때문입니다. 주인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종은 많이 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우 그 종들에게 필요한 것을 나누어 줍니다. 하나님의 손은 그 종들을 보호합니다. 하나님의 손은 매를 들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손은 상을 베풀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손은 인생길에 지켜 쓰러진 성도들을 붙잡아 일으키십니다. 오늘도 주님의 손길에 의하여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눈을 들어 바라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을 원하는 자의 소망입니다.
    2절에“우리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를 기다리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지금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고 있습니다“여호와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애절하게 하늘을 바라보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긍휼이란 가엾게 여겨달라는 말입니다. 불쌍하게 여겨달라는 말입니다. “긍휼”이란 본래는‘구부린다’는 뜻입니다. 윗 어른이 아렛 사람게게 호의를 베풀기 위하여 몸을 굽힌다는 의미입니다.

    시인은 그 하나님의 자비를 간청하고 있습니다.
    불쌍히 여겨 달라고 애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긍휼에 풍성하신 분이십니다(엡2:4).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신 분이십니다(애3:22).
    주님의 긍휼은 한없이 큽니다(삼하24:14. 시54:7).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은 애굽의 종된 이스라엘을 구속하셨습니다. 긍휼의 하나님은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도 버리지 않았습니다(느9:17). 하나님은 사로잡힌 이스라엘 백성도 긍휼이 여기셨습니다(호14:3).

    하나님은 환난 중에 주께 부르짖는 자를 외면치 않으시고 끝까지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주셨습니다. 목자없는 양처럼 유리하며 방황하는 무리를 긍휼이 여기셨습니다(막6:34).

    굶주린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셨고, 자식을 잃고 슬피우는 나인성 과부를 불쌍히 여기시사 위로하셨습니다.
    주님은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을 불쌍히 여기사 고쳐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은 그의 생애에 참으로 숱한 환난과 역경을 겪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인생이야말로 파란만장의 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승리의 생을 살았고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어 훌륭하게 나라를 다스리어 성군의 칭호를 받게 되었으니 그 비결이 어디에 있었겠습니까?
    그는 이새의 여덟 번째 막내 아들로 태어나, 그의 형들보다 결코 잘 생기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의 인생을 성공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 시대의 역사적 사명을 감당한 것은 항상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환난과 역경. 핍박과 죽음의 골짜기에서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시편을 보면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시25:1)라는 말로 시작하여. “내가 주를 바라오니 성실과 정직으로 나를 보호하소서”(25:21)“너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강하고 담대하여 여호와를 바랄지어다”(시27:14).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망서릴 필요가 없습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주님께로 가져가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지혜와 능력으로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히스기야 왕처럼, 자신의 문제를 주님의 전으로 가지고 와서 ‘자세하게 그 글을(사37:14-20)’“긍휼이 많으신 주님 앞에 펴 놓으십시요.

    역대하20:1-13의 여호사밧 왕처럼 오직 주만 바라 보십시요. 여호사밧은 당시 안팎으로 큰 위기를 당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를 치러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침략자 압몬과 모압과 세일산 거민들을 진멸하여 물리쳐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어떤 고난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무슨 말못할 사정이 있습니까?
    혹시 절망중에 빠져 성도는 없습니까?

    이 모든 문제를 가지고 혼자 해결해 보겠다고 미련떨지 말고 모든 문제를 가지고 긍휼의 주님을 찾아 가시기 바랍니다. 세상 바라보고 사람 의지하면 실망하게 됩니다.
    좌절하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며, 긍휼이 풍성하신 우리 주님은 문제 많은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곃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눈을 들어 주님의 보좌를 바라보기만 하면 그 풍성하신 자비와 긍휼로 우리를 가득채워 주실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희망이 넘칩니다. 참 소망이 생깁니다. '요셉 스웨인(Joseph Swain)이라고 하는 사람은 찬송가82장에서“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밥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쉰 마음뿐일쎄”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오직 주님을 바라볼 때에 기쁨과 소망이 넘칩니다. 그런 축복의 역사가 풍성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눈을 들어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그가 이렇게 눈을 들어 주를 바라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는 시편의 다른 곳에서 이런 말씀을 많은 접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1-2).

    “진실로 우리를 도우실 이는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시94:17). 방백들은 우리의 의지가 되지 못합니다. 인생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있습니다(시124:8). 주님 외에는 우리를 도와 줄 이가 없습니다(대항14:11). 돈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마음이 악해서도 아닙니다. 의리가 없기 때문만도 아닙니다.

    1) 인생에게는 남을 도울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146:3).
    2) 사람의 구원은 헛된 것이기 때문입니다(시60:11.10)
    3) 사람은 약속을 어기며. 믿을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하는데 과연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습니까? 있다면 그 방법이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시28:7).“여호와께서 저희를 도와 건지시되, 악인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연고로다”(시37:40)고 말씀하셨습니다.

    (2)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히4:16)
    (3)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라야 합니다(시33:20. 시43:5)
    (4) 주의 도우심을 간절히 기도로 부탁해야 합니다
    (시27:7-8)

    마태복음7장8절에서도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받지 못함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영국의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하나님께 몸바치기로 작정하고 중국의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가 중국에 와서 얼마 동안 열심히 일하는데 선교부 총무로부터 선교비 부족으로 소환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는 생각할 수록 안타까왔습니다. 선교하려 와서 선교하다가 선교비부족으로 그만두고 가야하다니 참으로 민망하기도 하고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나 선교비가 없으니 계속 선교활동도 할 수 없고 앞 길이 캄캄했습니다. 어찌보면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이고 잇다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로 하였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두 가지가 생각났습니다. 하나는“에벤에셀”이라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모리아산의 아브라함에게 들려 주었던“여호와 이레”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는 이 두가지의 말씀을 믿고, 계속 남아서 복음을 전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들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이 잤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크게 축복하여 주셔서 중국내지선교회까지 조직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시간 눈을 들어 주를 바라봅시다.
    “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자비로우신 주님의 그 손길을 바라봅시다. 그 크신 긍휼을 바라봅시다. 그 놀라우신 도움을 바라봅시다.

    인간에게는 절망이라는 말이 통할지 몰라도 하나님에게는 그런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절망이 없습니다. 망하는 것도 없습니다.
    안되는 것도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슬픔일지라도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이 될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새힘을 얻습니다.
    생활고에 찌들고, 각종 어려운 일 때문에 나개를 접어 두었던 인생들에게 새힘을 주셔서 독수같이 날개짓을 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저 높은 하늘의 세계를 향하여 올라가도록 도와 주실 것입니다.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욥도 그러했으며. 요셉도 그러했습니다. 다니엘도 그러했으며, 다윗도 그러했습니다.

    인도에 파송된 선교사 한 사람이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기도를 했습니다. 하루는 새벽 세시에 인도 사람 한 사람을 데리고 사람들이 없는 들로 나갔습니다. 그름까지 낀 새벽 하늘은 몹시 캄캄했습니다, 앞이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게다가 엎서가던 인도 사람은 검은 옷을 입고 있어서 다만 음성을 들으며 뒤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얼마를 가던 선교사가 그만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인도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길이 어딥니까? 어디가 길입니까?”
    그러자 인도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기는 길이 없습니다, 나를 붙들고 따라오십시오”

    여러분! 캄캄한 죄악 세상에사 나를 살리는 챀ㅁ된 길은 오직 예수뿐입니다. 방향을 정하지 못해서 방황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여 고민하는 성도님이 계십니까? 오직 예수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의 앞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가 가는 길을 열어주십니다. 오직 주만 바라봅시다, 주님만 믿고 따라갑시다. 주님이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잠언16장9절에“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라”고 하였습니다. 영원히 사는 생명의 길인 예수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을 붙들고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혹시 절망 가운데 빠져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세상것만 바라보다가 실망하여 지친 사람이 있습니까?
    세상것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절망합니다. 좌절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희망이 넘칩니다. 참소망이 생깁니다.

    우리는 눈을 들어 주를 바라 봅시다.
    “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바울은 일생 동안 오직 주만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사랑의 예수님만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전능하신 주님만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비록 자신을 찌르는 육체의 가시는 있었지만 항상 기쁨과 감사와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움 속에 처해 있어도 고통 속에 있을지라도 주님만 바라보는 사람은 소망이 넘칩니다. 큰 위로를 받게 됩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올지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는 사람이 됩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내일을 바라보고 오늘을 등한히 하지 않습니다.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사는 승리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찬송가85장-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남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 자심만을 바라보며 살지 맙시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만 바라보지 마십시요.
    세상 허영에 마음 뺏기지 마십시요.
    헛된 우상을 바라보지 맙시다.

    정함이 없는 세상 것만 바라보지 맙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삽시다.
    주님은 우리의 구주시기 때문입니다.

    참평안과 참 기쁨과 참된 힘과 능력과 소망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이 외침이 한 주간을 살아갈 우리 모두의 신앙고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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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성한 삶을 사는 비결을 소개합니다
    나의 믿음이 하락세인가, 상종가인가?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행동하는 믿음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왜들, 그토록 불안하게 생각하십니까?
    죽음의 운명에서 새로운 축복의 운명으로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베다니에 오셔서 역사하신 예수님
    받는 자 보다 베푸는 자가 행복 합니다
    인생 풍랑은 누구에게나 어디든지 있습니다
    기적의 역사는 믿음으로 이루어 집니다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하나님은 상한 심령의 제사를 원하십니다
    나의 가는 길을 여호와께 맡기자
    “우리의 여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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