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살아나야 합니다(부흥) 2002.1.13 2002-09-04 16:11:46 read : 1672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역대하7:14-18절
남아메리카 가이나의 숲 속에는 "모라" 라는 거대한 식물이 자란다. 이것의 꼭대기에는 새들이 와서 쉬었다 가곤했는데 언젠가 그 자리에서 야생의 무화과 나무가 자라기 시작했다. 다른 지역의 무화과 열매를 쪼아 먹었던 새가 나무 위에서 배설한 씨가 자란 것이다.
이 씨가 어떻게 발아하여 나무로 성장하는가, 모라의 즙이 그것에 성장력을 공급하여 성장을 돕는 것이다. 모라는 결국 자신의 즙을 다른 식물에게 주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새들은 자꾸만 여러 가지 식물의 씨를 날라다 놓았던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공급능력이 없어진 모라는 지쳐서 힘이 빠지고 그리고 죽는다, 그러면 그 위에서 자라던 나무들도 영양공급을 받지 못하므로 죽게 된다.
우리의 심령도 교회도 계속하여 성령의 능력을 공급받지 못하면 믿음이 떨어지고 약화된다. 그러나 생명의 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하는 교회는 그 자원이 고갈되지 않고 계속하여 성장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은혜와 진리는 성도들이 누리는 으뜸가는 축복입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가정 위에 위와 같은 축복이 충만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한국 갤럽이 1998년6월8일-1997년을 기준으로"한국인의 종교 실태와 종교의식에 대한 조사"를 한 결과, 처음으로 개신교의 비율이 타종교를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었습니다. 18세 이상 성인 남녀 1.613명을 대상으로 방문을 통한 대면 조사에 따르면 개신교 비율이 20.3%로서 18.3%인 불교와 7.4%인 천주교를 앞질렀다.
같은 조사기관이 1984년에 조사한 결과는 불교가 18.8%. 개신교가17.2% 였고. 1989년에는 불교가 20.9%. 개신교가 19.2% 였다. 그러니까 개신교는 다른 종교보다 꾸준히 신도수가 증가했다. 하루에 1회 이상 기도하고 있는 신자의 비율이 불교인은 10.7%. 천주교인41.2%. 개신교인이64.2% 였고.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성경을 읽는 비율도 개신교는 50.4%로 가장 높고, 천주교33.5%, 불교는 9.0%에 그쳤다. 헌금, 봉사, 섬김, 모든 면에서 개신교가 앞섰다. 그런데 1984년에 비해 기도의 열기가 점점 식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은 교회의 부흥이 둔하되고 있고 오히려 교인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리가 들린다.
오늘 날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성도들의 참된 헌신과 진정한 부흥입니다. 오늘날처럼 기독교의 이름이 사방에 펼쳐있던 때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왜 교회가 부흥하지 못합니까?.
이 시간 주님께서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에게 편지할 때 사데 교회에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3:1). 오늘 이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영적인 각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라저 밥슨'이라는 언론인은"국민들의 소원을 변화시키는 진정한 영적 부흥만이 인류를 구원할 것이다, 섬기고자 하는 소원으로 가득 차야 하며, 안전보다는 힘을 구해야 하고, 유익보다는 인격을 앞세워야 할 것이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비극은 인격보다는 자신의 유익과 이익을 앞세우는 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길은 나를 통해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해야 합니다.
역사를 주도하시는 하나님, 그 가운데서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들어 쓰시고자 하시는데 우리가 참된 영적 부흥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영적인 각성을 하지 않는 다면 희망이 없습니다. 부흥은 요원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인 각성이요 부흥입니다.
1. 부흥이란 무엇입니까?
부흥이라는 말은"한번 쇠퇴한 것이 다시 성하여 일어남"이라고 했습니다. '소생하다. 부활한다, 재생한다' 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흥이란 지난날에 침체되고 쇠잔하였던 과거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여 다시 회복되고 복구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부흥이 없는 개인과 부흥이 없는 가정과 교회, 국가는 미래가 없으며, 발전이 없이 끝나기 때문에 쇠퇴하여 소멸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만사는 부흥하는 중에 더욱 부흥되어야 할 것이요, 쇠퇴하는 일이 있다고 하면 다시 부흥하는 일이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영어로 부흥(revival)이란 단어는 라틴어의 두 단어에서 온 복합어입니다. 하나는, '다시'라는 의미이며, 또 하나는 '산다'라는 두 단어로 되어 있어서. 즉 '다시 한번 살아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부흥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활동하심으로써 쇠퇴하던 것이 다시 한번 소성하게 되고,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산 것 같지 않은 그가 참으로 살아있는 존재로 소성된 것을말합니다.
사람이 한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 가지 우여곡절과 환경의 굴곡을 접하며 살아가지만 그 때마다 낙심하거나 주저앉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일에든지 거짓과 불의에는 굽히지 말고 다시 일어나고 부흥하므로 말미암아 지난날의 실패가 성공하는 현재와 미래로 바뀌어 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이 에드윈 오어'는 부흥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 부흥은 주님으로부터 새롭게 되는 때요, 새롭고 의미 있게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며, 영적인 각성으로써 영적 자각을 다시 얻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부흥은 새롭게 새로운 의미로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의 삶을 철저히 주님께 드리는 해위 입니다. 주님을 닮는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지배받는 삶, 성령충만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 것이 부흥의 삶입니다.
2. 부흥을 저해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① 게으름입니다.
잠언6장9절에 보면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 나겠느냐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으로 모으고 좀 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흥의 제일 적은 태만입니다. 즉 게으름입니다.
교회에서 가만히 보면 할 일은 많은데 태산처럼 산적되어 있는데 체면이나 따지고, 건설적인 의견제시 보다는 내가 제안한 일이 아니면 무조건 반대하고, 매일 모여서 회의나 하다가 귀한 시간 다 보내고 마는 그런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② 끼리끼리가 언제나 문제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은 어느 민족보다 당파심이 강하다고 합니다. 사색당쟁으로 수백 년 동안 당파 싸움만 해온 우리 민족의 생각 속에는 언제나 당파성이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나라에도 당파싸움이요, 사회에서도 당파싸움이요, 교회도 교파끼리 싸움입니다. 진실로 이 민족과 교회가 이런 끼리끼리의 마음들이 없어지고 하나가 된다면 반드시 부흥되어 질 것입니다.
목회하다 보면 간혹 생각들이 옹졸하고 편협한지 교회가무슨 일을 맡겨놓으면 주의 종에게 따지기나 하고 자기 마음대로 옹고집을 부리는가 하면 무슨 일에나 순종하고 따라오면 은혜도 되고 축복도 되겠지만 순종치 아니하고 자기의 불순한 인간성만 드러내고 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가 없습니다.
특히 교회 건축이라든지. 직분자를 세우는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합심단결 해도 어려운데 우리편이니 저쪽 편이니 하면서 갈기갈기 찢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③ 의타심입니다.
교회 일을 하다보면 이런 경우를 보게 됩니다.
"내가 아니더라도 그냥 되겠지" "누군가가 도와주겠지"하는 남을 의뢰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으면 교회가 부흥할 수 없습니다.
3. 어떻게 하면 부흥의 역사를 이룰 수 있을까요?
본문 14절에 부흥의 조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①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내 백성이란 하나님의 백성을 말하는데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된 여러분과 나의 생활에서부터 시작되어져야 합니다.
요나서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니느웨'를 부흥시키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이 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나를 보내게 되었으나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다시스'로 갔습니다.
'니느웨'가 부흥되지 못했던 이유는 저들이 사악했기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니느웨' 부흥의 가장 큰 장애는 '요나' 자신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들어 쓰셔서 니느웨에 부흥을 주시고자 하셨으나 그의 불순종이 부흥을 가로 막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가 회개하고 순종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요나로 하여금 말씀을 전하게 하고 그 결과 '니느웨'에 부흥이 있도록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깊은 교훈을 얻습니다.
교회 부흥은 여러분과 내가 영적 부흥의 열쇠라는 사실입니다. 다른 교회 성도들이 아닙니다. 다른 교회가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옥표교회의 부흥의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여러분과 저를 들어 쓰시기를 원하십니다. 믿습니까?.
② 악한 길에서 떠나는 일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당시 초대 교회에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그 사건이 초대 교회의 큰 경종을 울려 주었습니다.
그 때 비로서 초대 교회는 죄에 대한 새로운 각성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은 사랑하시되 죄는 미워하십니다.
그러므로 진정 부흥하기를 원한다면 악한 길에서 떠나는 일이 중요합니다. 남의 것은 돌려 주어야 합니다. 거짓말은 버려야 합니다. 미워하는 마음도 버려야 합니다.
무조건 비방하는 것도 버려야 합니다.
용납하지 못하는 것, 쓴 뿌리가 있는 것은 제거해야 합니다. 조그마한 일에도 불평하며 원망하는 것도 버려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버리지 않으면 기쁨이 없습니다. 참된 부흥도 맛볼 수 없습니다.
③ 겸손해야 부흥합니다.
겸손은 부흥의 제일 큰 요소입니다.
겸손은 미덕 가운데의 미덕입니다.
'성. 어거스틴' 은 "기독교의 제일 은혜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답하기를 제1도 겸손이요, 제2도 겸손이요, 제3도 겸손이요" 라고 말했습니다.
잠언서18:12절에"겸손의 반대는 교만인데 교만은 멸망의 시초라"고 하였습니다.
한서에 보면 '교즉망' 또는 '교자필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만이란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옛날 상전의 딸이 시집가는 데 하인이 따라 갔습니다.
중도에서 물을 건너게 되었는데 아씨가 물에 빠져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생명을 건지기 위해서 아무 생각없이 손을 내밀어 아씨를 구하고자 자기의 손을 내밀어 손을 잡으려고 하자 상전의 딸은 죽어가면서도 교만한 마음이 가득하여 "하인놈 주제에 이놈" 하면서자기 손을 잡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하인이 "아씨, 잘못했습니다" 하고 손을 놓아 버렸더니 상전의 딸은 물살에 밀려 떠내려가 죽고 말았답니다.
뭐좀 있다고 교만한 자여! 남 보다 조금 안다고 교만한 자여! 지위가 높다고 교만한 자여! 모두 다 그 교만에서 멀리 떠나 자기를 온전히 죽이고 겸손의 덕을 쌓기에 힘써야 사는 길이 있습니다.
사람의 가치는 겸손에 있습니다.
주님의 겸손을 배우는 성도가 겸손하지 않고 교만해서야 되겠습니까?. 새해는 우리 모두 겸손의 자리에서 섬김의 도를 다해야 합니다. 그래야 개인도 살고 가정도 살고 교회도 살며 나라와 이 민족도 살게 됩니다.
④'통회자복'하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기도 없이는 부흥이 불가능합니다.
기도없이는 능력있는 신앙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기도없이는 전도도 불가능합니다.
오순절의 역사는 120명의 성도들이 합심하여 기도한 결과로 이루어졌습니다(행2:42).
잘못된 모든 원인은 나에게 있음을 고백하고 통회자복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남을 탓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자신의 영적 상태에 만족하고 계십니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은 없습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이것만은, 이 성격만은 고쳐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없습니까?.
생활이 변화되기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요.
지금 부흥을 위하여 기도하시지 않겠습니까?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주님은 토기장이요, 저는 진흙입니다, 지금 바로 여러분 자신 안에서 먼저 부흥을 시작하십시오. 저를 변화시켜 주시고 제가 귀한 일에 쓰임받을 수 있게 해주시고 옥포교회의 부흥을 가져오는데 한 부분이 되게 해 주옵소서" 라고 말입니다.
⑤ 하나님의 전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을 가까이 하는 방법은 모이기를 힘쓰는 일입니다. 부흥을 원한다면 먼저 열심히 모여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부흥은 모여서 기도하고 모여서 마음을 같이하고 모였을 때에 성령의 불이 떨어짐으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고 그 불로 인하여 하루에 3천명 5천명에게로 옮겨 붙었던 것입니다.
물도 모여야 고기가 살고, 또 물이 마르지 않는 것입니다. 장작도 모여야 불이 붙습니다. 교회도 모여야 은혜가 있습니다. 범을 잡으려면 산으로 가고 고기를 잡으려면 물로 가야 하듯이 은혜를 받으려면 교회출석을 잘해야 합니다.
오늘의 거대한 미국이 있게 한 건국의 아버지"죠지 워싱턴"은 말하기를" 우리는 모이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고 표어를 세우고 미합중국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주 안에서 모여야 삽니다.
잘 모여야 교회가 부흥합니다.
한 번 두 번 모이는 일에 게을리 하면 결국 무력증에 빠져 모두가 죽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든지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모여서 기도하고 말씀 배우고. 봉사하고 충성하며 헌신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⑥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은 나를 버리시지도 않으시고 떠나지도 않으십니다.
주님은 내 안에 계셔서 나를 도우시고 나에게 힘을 주십니다.
나는 언제나 하나님의 존전에서 산다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의식을 가지고 살면 제멋대로 살지 않습니다. 두 마음을 품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자들입니다. 성경에서 내가 육체와 함께 정욕과 욕심이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세상에 대하여도 죽은 자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죽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를 찾아야 합니다.
주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주님을 더욱 알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피-폴스' 교회의 목사인 '오 제인 스미스'박사는 자기 교인들에게 선교사업을 호소하여 첫 번에 5명의 선교사를 파송한 것을 비롯하여 1954년11월까지 325명의 선교사를 그 교회의 부담으로 파송하고 그 후도 계속하여 선교사를 파송케 한 위대한 분이십니다.
교회를 크게 부흥케한 그는 어떠한 경우에 부흥은 일어나는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부흥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 대가(大價)를 지불할 때에야 비로서 임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확신한다.
내가 말하는 이것은 내가 지금까지 모든 부흥의 역사를 주의깊이 연구한 후에 얻은 결론인 동시에 또한 내 개인의 경험으로 확실히 느낀 바이다. 그 어느 교회, 그 어느 단체를 물론하고 부흥의 대가를 지불하고자 하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부흥은 일어난다고 하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그러면 그 조건이란 무엇인가? 다음 네가지 이다
1) 죄의 고백과 배상 2) 간절히 애써하는 기도
3)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 4) 성령의 부음을 받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흥을 원하면서도 기도를 소홀히 한다면 위선입니다.
자신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교회를 소홀히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성숙하기를 원하면서 말씀을 소홀히 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부흥을 원하면서도 모이기를 회피한다면 그것도 위선이며 거짓입니다. 복 받기를 원하면서도 겸손하지 못하면 어리석은 자입니다. 자신부터 먼저 부흥할 수 있도록 시도하십시오.
우리 모두 위대한 믿음을 구합시다
'윌리암 케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것을 시도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것을 기대하십시오"
부흥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기대하려면 기꺼이 희생코자 해야 합니다. 자기를 희생하는 댓가를 지불하지 않고서는 결단코 부흥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역사는 희생의 역사입니다. 교회는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의 목숨을 버리는 희생 위에서 세워졌고 든든히 서 가고 있습니다. 물질의 희생이 없이도 안됩니다. 자신의 생애를 드리는 헌신과 봉사, 충성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금년에는 모이기를 잘하는 교회가 되고 갑절로 성령의 능력이 임하는 교회가 되어서 할 일 많은 이 땅에서 부흥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개인과 가정 교회. 이 나라 이 민족이 부흥하는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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