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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의 짐을 지라
    2002-10-19 08:58:43   read : 4171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갈 6:1-5)
    오늘 2절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사회나 국가나 교회에는 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법 중에 최고의 법은 그리스도의 법입니다.
    최고의 신앙경지에 이르는 길이란 그리스도의 법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법은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법 즉 말씀을 잘 지키는 사람에게 성공과 은혜가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한국사람들은 법을 잘 안 지키지만 겁이 나면 법을 잘 지킨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번 당하고 나면 벌벌 떠는 것이 우리 심성이라는 것입니다.
    장사를 하고 사업을 하고 공부를 하더라도 모든 삶에 궁극적 목적은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신앙인에게 그리스도의 법이 궁극적인 삶에 목적입니다.

    존경을 받는 어느 교장 선생님의 이야기입니다.
    이 분이 총각시절에는 시골에서 교편 생활을 했습니다. 하루는 학교로 출근하기 위해서 시냇물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앞에 놓여있는 징검다리를 하나씩 디디면서 건너다가 그만 잘못 놓인 돌을 밟고 물에 빠져버렸습니다. 신발도 다 젖고, 바지도 흠뻑 젖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젖은 몸으로는 학교에 갈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얼른 집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때마침 서울에서 잠시 내려오신 어머니께서 집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젖은 몸을 보고서 딱하다는 듯이 물어보셨습니다.
    "얘야, 어쩌다가 그렇게 물에 빠져버리고 말았느냐?"
    아들은 대답했습니다. "예, 어머니. 제가 징검다리를 디디고 시냇물을 건너다가 그만 잘못 놓인 돌을 밟아서 물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되물었습니다. "그래? 그러면 네가 밟았던 잘못 놓인 돌을 바로 놓고 왔느냐?" 아들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얼른 옷 갈아입을 생각만 했지, 미처 돌을 바로 놓아야 된다는 생각은 못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들을 나무랐습니다.
    "이놈아, 너 그런 식으로 해서 무슨 선생이 되겠다고 그러느냐? 얼른 가서 돌을 바로 놓고 오너라. 그리고 나서 옷을 갈아입도록 해라!"
    그는 어머니의 말씀이 조금 야속하게 들리기는 했지만, 백 번 고쳐 생각해도 지당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얼른 가서 잘못 놓인 돌을 바로 놓고 돌아왔습니다.

    그 뒤에 그는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돌을 바로 놓는 마음으로 매사에 임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기의 마음도 바르게 되고, 모든 사람들도 그 사람을 바르게 보아주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는 훌륭한 교장 선생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돌을 바로 놓는 마음이 오늘 우리에게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먼저 내가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고, 또 다른 사람도 바르게 설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1절 말씀을 보면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갈라디아 교인들 가운데 범죄한 이들이 있으며 그들은 잘못해서 실족해 버렸습니다. 죄악의 물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대할 때 성도들은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마땅할 것인가?

    바울은 1절 하반부에서 세 가지로 우리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온유한 심령으로" 대하라고 하였습니다.
    항상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태양과 바람이 나그네의 외투를 누가 벗길 수 있을 것인지 시합을 했습니다.
    그 때 강한 바람이 나그네의 외투를 벗겼습니까? 아닙니다.
    바람은 아무리 세차게 불었지만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태양이 미소를 띄면서 따뜻하게 비추일 때 나그네는 외투를 벗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온유한 심령이 마음의 문을 열고 그 마음을 녹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온유한 심령을 닮아야 합니다.
    서로서로 격려해 주고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십시다.
    그러므로 더불어 걸어가는 신앙의 길이 주 안에서 좀 더 기쁘고 좀 더 행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바로 잡고" 라고 했습니다.
    주변에 잘못을 범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바로 잡아 주어야 합니다.
    바로 잡아 준다는 것은 훈계나 충고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잘못을 깨닫게 해주어야 합니다.
    결코 정죄하거나 비판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남을 심판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 사람들을 도와서 바르게 깨닫고 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로,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입니다.
    우리 누군가 잘못을 했을 때, 비방하거나 심판하려고 들지 말고
    그것을 거울삼아서 우리도 그러한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연약한 존재입니다.
    남들이 빠진 시험에 나라고 해서 빠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야고보가 약3:2에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라고 하였습니다.
    마7:3의 말씀에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똑같이 실수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쩌면 더 큰 실수를 더 많이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자신을 먼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2절 말씀에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짐을 함께 져야 합니다.
    롬12:15 "즐거워하는 자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로 함께 울라" 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법은 사랑의 법으로서 그리스도의 법은 짐을 함께 지는 것입니다.
    멍에를 함께 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사라의 법입니다.
    성경은 자기의 짐을 질 뿐 아니라 짐을 서로 나누어지라고 하였습니다.
    "고통을 같이 나누면 고통이 반감되고 기쁨을 같이 나누면 그 기쁨이 2배가 된다." 는 말이 있다.

    성경은 연약한 자의 잘못을 비방하지 말고 포용할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주변에 고통 당한 형제들의 어려움을 같이 도와야 합니다.
    건강, 집안, 진로, 경제적인 것 등으로 고통 당하는 형제들을 같이 기도하고 도와주어야 한다.

    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
    하나님이 가장 가증스럽게 생각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 스스로 의롭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을 비판하고 정죄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남의 일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간섭하면서 판단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꾸 나를 내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그러한 심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갈6:4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고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보잘 것 없습니까? 얼마나 부족합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구속해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내가 잘나서 그런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쓸데없는 자를 구속해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잘했다 할지라도 남에게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할 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착각과 또 나를 내세우고자 하는 심리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남과 자신을 비교하여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비교함으로 인해 열등의식과 자괴감이 생길 뿐입니다.
    남과 재능을 비교, 직분을 비교하면 낙심이 되고 기쁨이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각각 자기의 자신의 일을 살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상급을 받는 자리에 하나님과의 관계는 1:1입니다.
    각각 맡은 일에 충성하고 하늘의 상급을 기다릴 뿐입니다.
    우리는 남에게 자랑할 것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으며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할 것도 없습니다

    오직 자기 자신에게 성실하고 하나님께 충성하면 됩니다.
    1.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니라"(5절)
    우리들이 각자 져야할 짐이 무엇인가.
    오늘 본문에서 짐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오는데 2절의 짐과 5절의 짐은 원어적으로는 서로 다른 말입니다.
    2절의 짐은 `바로스(baros)'로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말하며
    5절의 `짐'은 `포르티온(phortion)'으로 혼자 운반할 수 있는 작은 짐을 말합니다.

    우리는 살다 보면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 때문에 고통 당하며 번민할 수 있습니다. 자신 혼자 감당하기는 너무나 벅찬 짐일 수 있습니다. 이 때 믿음의 사람들은 그 짐을 함께 져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법이란 곧 사랑의 법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였습니다.

    인생항로에서 우리가 지어야 할 짐이 있습니다.
    (1) 우리가 주안에서 받은 소명의 짐, 직분의 짐이 있습니다.
    이러한 짐은 우리가 믿음의 분량대로, 받은 은사대로 주께서 맡기신 것입니다.

    마25:14에는 달란트의 비유에 보면 어느 날 주인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각각 그 재능대로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를 주어 장사하게 하였습니다.
    주인이 돌아왔을 때 5달란트 받은 종과 2달란트 받은 종은 열심히 장사를 하여 2배로 이익을 남겼고 그들은 주인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1달란트 받은 종은 땅에 묻어두었다가 주인의 꾸중을 받았습니다.
    1달란트 받은 종이 왜 장사를 안 했을까요.
    다른 종들과 비교해보고 1달란트 밖에 받지 못한 것에 대하여 낙심해서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크든 작든 하나님이 주신 분복이 있는 것입니다.
    남과 비교하여 불평하거나 원망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내가진 짐이 있고 남이 대신 질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불평하고 밑은 일에 충성하지 아니함으로서 1달란트 받은 종처럼 자기의 일에 방임하고 나태하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고전12장 보면 각각 받은 은사와 그리고 직분의 은사가 사람에 따가 다르다고 했습니다.
    4절에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라고 하신다.
    우리의 재능과 은사가 각각 다르고 우리의 직분은 각각 달라도 존귀한 것은 똑 같은 것입니다. 크든 작든 맡은 일에 충성하면 똑 같은 상급을 받는 것입니다.
    큰 기업체를 운영하든 큰 기업체에 직원으로 일하든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크든 작든 하나님 앞에 받는 상급은 똑같은 것입니다.

    옛날 성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군군신신 부부자자(君君臣臣 父父子子)라."
    나라가 제대로 되려면 임금은 임금 노릇을 잘하고 신하는 신하 노릇만 잘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이 평안하려면 부모는 부모 역할을 잘하고, 자녀는 자기들의 해야할 일을 잘하면 되는 것입니다.
    자기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자꾸 남의 일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관여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지어야할 남편의 약점의 짐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고 그것을 지십시오.
    내가 지어야할 아내의 짐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지어야할 부모님의 짐, 내가 지어야할 자녀의 짐, 내가 지어야할 식구들의 짐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십자가의 사랑으로 지십시오.

    어떤 소설에 공무원인 남자가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시골 여인을 사랑하여 결혼하였습니다.
    결혼 후에 이 남자는 시골 색시의 발을 항상 씻겨 줌으로 그 아내가 평생 남편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순종하고 깊이 사랑하며 사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먼저 베푸는 사랑을 실천한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섬기듯이 사랑하면 애처가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누가 잘했나 따지지 마시고 서로가 높이며 서로의 짐을 나누어지십시오.

    세상에 100점 짜리 남편이 없으며 100점짜리 아내가 없습니다.
    때로 서로에게서 부족한 점이 나타난다 할지라도 그 부족 한것도 나누어지면서 기다리면 어느 날인가 미운 정 고운 정이 들면서 일생 해로(偕老)하게 될 것입니다.

    「행복한 결혼은 서서히 이루어진다」는 재미난 조사가 있습니다.
    많은 아내들에게 '당신이 남편을 잘 만났다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었더니
    결혼 후 1년인 경우에는 98%, 결혼 후 2년인 경우 56%, 결혼의 햇수가 길어질수록 남편에 대한 실망도가 커갑니다.
    그러나 결혼후 25년이 지나면서 다시 만족도가 올라가 30년이 넘으면 95% 이상이 남편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 것입니다.
    자식들을 다 키워 출가시키고 났더니 그 때야 남편이 귀한 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기를 '결혼생활 25년 이전에 헤어지는 것은 조급한 결정이며 오래 살다보면 부부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현재 부족한 것이 많을지라도 미움보다 인내로 사랑하십시오.
    부부사이는 삶에 연륜이 깊어 가면 갈수록 사랑으로 서로의 허물을 덮을 뿐 아니라 서로의 허물의 짐을 지므로 결국 하나님이 기뻐하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2)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여러 가지 연약함과 삶에 짐이 고난의 짐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재능이 없고 부족한 것등 많이 있습니다.

    사도바울도 육체에 가시가 있었기 때문에 세 번이나 기도했지만 주님의 대답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은 모두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도리어 사도바울은 자신의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연약함이 있을 때 더욱 겸손하여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사람들이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으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고 교만하게 됩니다

    3) 십자가의 짐 : 그리스도를 따라 갈 때 발생하는 고난의 짐이 있다.
    마16:24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갈 때 세상적으로 손해를 볼수 있고 고난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역사상 많은 믿음의 선배들은 그리스도를 따라가기 위해 목숨을 버리기도 했습니다.
    일제하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고난을 당한 분들도 있고
    공산당에게 순교를 당한 많은 분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한 분들입니다.

    로마의 카타콤이나 터키의 갑바도기아에 가면 초대 교인들은 신앙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 수백년 동안 지하동굴에서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힘들어 보이는 삶에 짐이지만 그러나 실상은 가벼운 짐이라는 것입니다.
    마11:28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우리가 세상에서 내 죄짐과 비교할 때 주님이 주시는 짐은 가볍다는 것입니다.
    비록 육체적으로 어렵게 보일지라도 마음에는 놀라운 평화와 안식있음은 하늘나라에서 큰 상급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인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가을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그 다음 날은 미술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소풍을 주제로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자기 나름대로 그림을 열심히 그렸습니다. 파란 하늘도 그렸습니다. 친구들이 손에 손을 잡고서 즐겁게 걸어가는 모습도 그렸습니다. 또 나무도 그리고, 예쁜 꽃도 몇 송이 그려 넣었습니다. 아이는 그림을 다 그리고 난 뒤 바탕색깔을 무엇으로 할지 한참 생각하다가,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색깔인 진한 남색으로 정하고 바탕을 채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오셔서 아이의 그림을 보더니 아이를 나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녀석아, 환한 대낮에 이렇게 어두운 색깔을 잔뜩 칠해놓으면 어떻게 하니? 이런 엉터리 같은 그림이 어디 있어. 네 그림은 교실 벽에 붙여놓을 수가 없구나!"
    아이의 마음에는 깊은 상처가 남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아이는 그림에 대해서 자신감을 상실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채 1년이 지나갔습니다.
    아이는 2학년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선생님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첫 미술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하얀 도화지 위에다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그려보세요."
    다른 아이들은 신이 나서 열심히 그림을 그립니다. 그러나 이 아이만큼은 그림을 그릴 수가 없습니다. 1학년 때 담임선생님에게서 받았던 지적 때문이었습니다.
    도화지를 앞에 놓고 안절부절못하면서 속히 미술시간이 지나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끝날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교실을 한 바퀴 빙 둘러보면서 학생들의 그림을 하나씩 관찰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아이의 앞에 이르렀습니다.
    아이는 자기의 작은 심장에서 "쿵쿵!"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선생님은 그의 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야! 이 그림 정말 멋지구나. 온 들판에 하얀 눈이 흠뻑 쌓였네!"
    그러면서 아이를 칭찬해 준 것입니다. 아이는 선생님의 칭찬을 일평생 동안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왔습니다.
    때로는 위의 이야기에 나오는 1학년 때의 선생님과 같은 사람도 만났습니다. 때로는 2학년 때의 선생님과 같은 사람도 만났습니다.
    우리가 1학년 때 선생님처럼 내게 비난과 책망을 일삼는 사람을 만나면 우리의 마음의 문이 왠지 닫혀 집니다. 안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내게 칭찬과 격려를 많이 해주는 2학년 때 선생님과 같은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해집니다. 마음의 문이 열립니다.

    우리도 그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2학년 때 선생님처럼 하얀 백지를 놓고서도, "야! 정말 멋있는 그림을 그렸구나. 온 들판에 흰 눈이 쌓여있네!"라고 칭찬해 줄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이 바로 우리의 마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능치 못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주어진 의무와 책임을 회피하거나 전가해서는 안됩니다. 의무이행은 인간에게 있으며, 성공과 실패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은 성공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성공하기는 어려우나 누구나 성실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온전한 성공과 축복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사람에게 부족한 것은 열악한 환경이나 돈이 아니라 성실입니다.
    성실은 인간 삶의 기본자세요, 행동원리입니다. 자기 의무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으레 남의 말을 잘 하는 것입니다.
    사실 성실은 남보다 내게 더욱 유익한 것입니다.
    의무를 잘 감당했는가 하지 안했는가가 행복과 불행을 결정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나의 의무를 다할 때만이 성공하게 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각자 스스로 자신의 의무를 이행치 못했음을 회개하고 더욱더 새로워지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노오만 필 박사"는
    사람들이 걱정하고 불안 해 하는 것 중 40%는 지나간 과거에 대한 것이며, 50%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것이며, 10%만이 현재를 위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쓸 데 없는 걱정을 한다는 것이다.

    마11:28 예수님께서는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짐은 가벼움이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새로운 사람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지나간 것에 집착하고 잊지 못하는 것 때문입니다.
    즉 지나간 것을 "정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사하실 것입니다만 못 보던 물건들을이 나타날 때 막상 버리려면 아까워서 다시 싸가지고 간 적도 있으실 것입니다.
    그때는 다시 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지만 결국 다시 쓰지 않고 한곳에 계속 모셔만 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쓸데없는 것을 정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갖지 못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무거운 삶이 짓누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맡깁시다. 잘살고 못살고 성공하고 실패하고 오래 살고 짧게 살고 건강하거나 병들거나 그것은 내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살이 되어야 합니다.
    깨끗하게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의무 이상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남은 인생을 덤으로 산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새로운 창조적 역사가 있고 새로운 용기가 함께 하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독일의 순교자 본 훠퍼목사는 '타인을 위하여 살아있는 존재'를 강조했습니다
    우리들이 참으로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삶의 존재양식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법대로 사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것을 그는 '크리스천이란 남을 위한 존재'(Being for others)라 하였습니다.
    본훼퍼목사님은 세계2차대전 당시의 포로 생활을 했던 1945년 4월8일 주일아침 에 아침예배도 마치기전에 독일군인 둘이 찾아와서 본훼퍼를 향하여 나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감방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알고 있습니다.
    이제 목사님이 형장으로 나가는 길입니다.
    그때의 영국군인 포로된 군인하나가 “목사님 이것이 마지막이군요. 안녕히 가십시오.”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본훼퍼 목사님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오늘은 나에게 있어서 새로운 생명의 시작입니다.
    이제 하나님과 자유의 생활이 시작됩니다. 세상 고통스러운 생은 여기서 끝나지만 영원한 생명이 시작됩니다. 훗날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 이렇게 간증하며 형장으로 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의무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의무를 잘 감당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인생에 있어서 최선의 삶은 내게 주어진 삶의 매순간 순간을 충성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충성이란 내가 맡은 일에 정성을 다하여 일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후4:2)"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핑계나 이유에서든지 내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첫째로, 온유한 심령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야 합니다.
    둘째로, 다른 사람의 짐을 대신 져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셋째로, 남의 눈에 있는 작은 티를 뽑으려고 나서지 말고 내 눈에 있는 큰 들보를 깨닫고서 자기 성찰에 힘쓰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주안에서 좀 더 기쁘고, 즐겁고, 감사하고, 감격하고, 행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울면서라도 언약궤를 메고 벧세메스로 가는 두 마리의 암소처럼 의무를 이행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귀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는 자들을 축복해 주십니다.
    나무를 심은 주인이 나무에게서 찾는 것은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것은 맡기신 삶에 짐을 충실히 이행하는 충성스런 성도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각각 감당할 만한 짐을 주셨습니다.
    이 주어진 짐을 우리가 여생을 마칠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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