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를 위한 잔치 2002-10-16 11:43:15 read : 3366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2.10.13 // 누가복음 15:11-24
이 세상에 예수님보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잘 아시는 분은 없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대하여 알기 쉽게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먼저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에 사람들이 하나님의 품을 스스로 떠나간 것이 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께 요구합니다.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아버지는 마음으로 섭섭했으나 그의 요청을 긍정적으로 받아 주었습니다. "오 그래, 너도 이제 성장했구나" 사랑은 자유를 구속하지 않는 것이므로 그 아들의 권리를 존중해서 그의 몫인 재산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은 재물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로 줄행랑을 쳐버렸습니다. 사람은 자기의 본심을 오래 숨길 수 없습니다. 사랑도 숨기지 못하고 미움도 숨기 못합니다. 이 아들은 벌써부터 마음이 아버지로부터 멀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을 어찌 인생이 모르겠습니까? 이 세상에 자기가 선택한 자가 발전의 무신론자는 있어도 실제적인 무신론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독일 철학자 Immanuel Kant가 이미 말한 것처럼 하늘의 수많은 별이 하나님을 말하고 내 가슴에 있는 신적 도덕률이 하나님이 계심을 늘 밝히고 있지 않습니까? 만유의 소리를 듣고 양심의 소리를 듣는 인생은 도무지 하나님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인생은 하나님을 위하여 살고 싶지가 않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기보다는 내 중심으로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기 보다는 내 정욕을 만족시키며 살고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신 재산이 필요했습니다. 둘째 아들에게 더 이상 하나님은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수단이었습니다. "당신은 내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자산만 주시면 됩니다. 더 이상 간섭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관계는 끝났습니다. 아버지께 받은 것으로 멋지게 나의 왕국을 건설해 보겠습니다" 이제 그는 아버지의 간섭과 명령이 없는 자유천지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에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였다고 했습니다. 허랑방탕이란 말은 기준이 없는 삶을 살았다는 뜻입니다. 자기의 마음에 좋은 일은 무슨 일이든지 표준도 기준도 없이 도모했고 마음 내키는대로 물질을 사용했습니다. 예컨대 술은 약으로 먹는 것인데도 그는 매일 무절제하게 마셔댔습니다. 약주가 독주가 되었고 드디어 간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그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났고, 그 다음에 기술적으로 아버지의 재산을 움켜잡고는 기회를 틈타서 아버지에게서 독립하여 자기 사업을 차렸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재산과 자기의 능력에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자기 재산을 믿었고 자기 자신을 믿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동물인지라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연맹을 맺었습니다. "나 혼자는 안되어도 우리들은 할 수 있다"는 표어를 내걸고 열심히 과학을 연구하고 사업에 몰두합니다. "자원은 유한하되 창의는 무한하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큰 공사를 벌립니다. "우리의 두뇌, 우리의 자산으로 우리는 신적 왕국을 만들 수 있다. 신이란 사실 우리들 자신에 다름 아니다"고 떠벌리곤 했던 것입니다.
둘째 아들과 그 일행의 종교적 신념은 어떻게 변해 갔을까요? 신이 없다고 하기는 아무래도 찜찜하기 때문에 신은 언젠가 죽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보아라 신이 있다면 우리를 벌해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신은 방자하게 행하는 우리들에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자신들을 초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나보다 똑똑한 사람은 없다. 나만큼 잘난 사람도 없다" 사람치고 이런 자기 주장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각기 개성을 추구하며 자유를 즐거워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물질이란게 무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새로운 사업을 벌리려면 모자랐습니다. "조금만 더 있으면 되겠는데" 거짓말을 하고 부풀려 말해도 역시 자본은 모자라기만 했습니다. 그런데도 욕심이 앞서서 빚을 내어 사업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의 문제는 역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마다 자기 잇속이 앞서서 일마다 마음이 맞지 않고 부딪히기 시작합니다. 각기 자기 욕심따라 시도 때도 없이 자기 몫을 챙겨서 떠나가 버립니다. 조금만 참아도 되겠는데 그것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답답하기 이를데가 없습니다. "인간이 공동선을 추구하지 못하면 공멸입니다" 그렇게 부지런히 설득했지만 그것도 공염불에 불과했습니다. 내 재산이 어디 붙어 있었든지 훅 불려 날아가버리고 남은 것은 빚 밖에 없었습니다.
기가 막힙니다. 설상가상으로 흉년이 듭니다. 천재지변이 소문도 없이 밀어닥칩니다. 자연에 기근이 들자 문득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생각납니다. "그래도 인간이란 자연을 그물로 덮어 분석함으로써 자연을 정복해 오지 않았는가?" 다시 안간힘을 다해 봅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거울에 비친 자기의 몰골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얼마나 바짝 늙어버렸는지, 마음은 청춘인데 몸이 영 말을 듣지 않습니다. 간이 나빠졌는지 속이 영 머쓱 머쓱하고 자주 어지럽습니다. 드디어 육체에 기근이 든 것입니다. 자신을 잃어버리기 시작합니다. 사업은 다 날아가버리고 월급쟁이로 다시 취직을 합니다. 불경기가 계속되자 감원대상이 됩니다. 어느날 사장이 불러서 가보았습니다. "미안하지만 나가주셔야겠습니다" 하나님 없이 만든 문명이 인간을 버릴 때가 옵니다. 인간이 만든 고속도로는 그대로 있는데 고속도로를 달려가던 인간은 조만간 내려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아들은 벽에 부딪혔습니다. 문명은 구원이 아니었습니다. 예술도 구원이 아니었습니다. 기근은 인간을 비인간화하여 동물보다 못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인간의 자존심이 무너지자 정신적 가치체계 전부가 휘청거렸습니다. 인간이 정신인지 물질인지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러시아 공화국을 보세요. 소말리야 기근을 보세요. 어떻게 손을 써야 됩니까? 기근은 나라도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둘째 아들의 마음 속에 복음을 들려 주었습니다. "이 모든 혼란의 시작이 어디 있느냐? 네가 스스로 하나님을 박차고 나간데 있지 않느냐? 너는 스스로 영적 존재임을 거부하였다. 그러면서 너는 물질적, 사회적, 육체적 기반 위에 고고한 정신적 존재임을 자랑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 기근이 오고 궁핍이 왔다. 너는 과연 정신적 존재냐? 영적 존재냐? 너는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느냐? 네가 하나님이냐?"
본문 17절에 "이에 스스로 돌이켜"라고 했습니다. 인생은 아무 조건없이 스스로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돌이키게 하여 줄 계기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에덴 동산으로 하나님 자신이 찾아 오셨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이 어디 있는 줄 하나님이 몰라서 물으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스스로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자신의 입장을 깨달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담이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인생은 아무도 스스로 돌이켜 하나님께로 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났고 하나님을 배신했고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에 아무도 하나님 앞에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의 옷을 벗어 버렸습니다. 스스로 영적 존재가 아니라 정신적 존재라고 독립을 선언하였습니다. 벼룩도 낯짝이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갑니까? 더구나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심판하시고 영원히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두려워서 나아갈 수 없어요. 벗어서 못가고 두려워서 못갑니다. 얼굴이 없어 못가고 의가 없어 못갑니다.
그런데 신약에서는, 이 세상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둘째 아들아 네가 어디 있느냐" "내가 온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암남동 K씨를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우리는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구세주, 하나님의 아들 나사렛 예수가 들려주신 기쁜 소식을 듣습니다. 곧 하나님 아버지가 아직도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 그리고 그분이 나를 위하여 이미 모든 일을 끝내셨다는 것을 그분의 계시와 복음을 통해 들을 때 비로소 우리는 아버지께 돌아갈 믿음과 용기를 얻는 것입니다. 둘째 아들이 생각합니다.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17절). 그는 다시 자신을 영적 존재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창조하신 아버지는 영적으로 풍성하신 분이시다. 눈으로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영이 창조한 것이다. 영광의 풍성이 무한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내 아버지시다" 그러자 소망이 생겼습니다. 아버지께 가면서 회개의 기도문을 작성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기도하리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 기도문을 채 암송하기도 전에 아버지는 달려와서 둘째 아들을 끌어 안았습니다. 돌아온 순간, 회개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용서보다 위대한 완전한 회복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회개하라고 말씀하신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이미 회개를 끝내 버리셨던 것입니다. 둘째 아들은 집에 돌아와서 아버지의 사랑이 불변임을 깨달았습니다. 아버지께는 풍성한 자원이 있고 불변한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는 거저 우리의 중보자, 이 땅위에 사람으로 오신 아기 예수 곧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구주 예수를 믿음으로 아버지께 돌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돌아와 돌아와" 찬 315장을 부릅시다. 아버지는 우리의 죄책감을 염려하여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 입힙니다. 그 옷에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은 화목제물로 삼으셨으니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지난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시고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롬 3:23-26).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는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 3:27). 둘째 아들의 죄책감은 진정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그를 위해, 나의 죄사함을 위해 무언가 일을 완전히 끝내신 것입니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의 현재와 미래의 불안을 염려하여 손에 가락지를 끼워 주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 5:30). 그는 그 반지에서 마치 명품반지에 "It must be cartier"라고 새겨진 것처럼,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이란 글자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세상 끝날까지 나와 항상 함께 계시구나" 그는 내적불안이 사라짐을 느꼈습니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의 현재와 미래의 확신을 위하여 발에 신발을 신겨 주었습니다. 신발은 자유인으로서의 아들의 삶을 보증하는 물건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 8:14-17). 그는 그의 신발의 상표를 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 그는 오늘과 내일의 삶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품에 돌아오자 비로소 자기 자신을 올바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정신적 존재라는 공허한 허구에 사는 존재가 아니구나. 나는 참 실재이신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모든 기근을 풍족으로 바꿀 수 있는 영적인 존재이구나. 나의 아버지 하나님은 풍성한 생명과 영원 불멸의 사랑으로 나를 지으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나와 무궁토록 교제하시는 분이시구나. 하나님 아버지 안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그리고 성령 안에, 은혜와 진리가 있고 진정한 인간의 삶이 있구나" 아버지는 돌아온 탕자, 회복된 둘째 아들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 잔치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이전에 한번씩 세상으로 나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알고보니 그 잔치는 돌아온 탕자들을 위한 잔치였던 것입니다. 먼저 돌아온 탕자들이 갓 돌아온 탕자들을 위한 잔치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잔치 속에서 그들은 물질적, 육체적 기근이 극복되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잔치가 계속되면서 그들은 또한 자신의 사회적, 정신적 상처도 은혜롭게 치유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적 존재로의 회복이야말로 정신적, 사회적, 육체적, 물질적 치유와 회복의 완전한 근거가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탕자를 위한 잔치를 통하여 온전한 구원을 우리들 모두에게 베풀어 주고 계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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