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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리는 말과 죽이는 말
    2002-10-05 15:39:08   read : 4115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약3:1-12
    말은 크게 죽이는 말과 살리는 말이 있습니다.
    죽이는 말은 비수가 되어 상대방을 우울하게 만들고 용기를 꺾어 버리고 삶의 소망을 없애버립니다.
    사람을 소극적으로 만들고 열심을 떨어뜨리고 매사를 비판적인 사람이 되게 합니다.
    또 죽이는 말은 "할 수 없다, 안 된다"라는 부정적인 말을 하고 불평과 험담과 원망을 하고 다른 사람에 감정을 상하게 하고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하며
    남을 흉보는 말을 자주하고 과격한 말과 더러운 말로 남을 비방함으로서 사람을 낙심케 만들고 결국 사람을 죽이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살리는 말은 "감사의 말, 세워 주는 말, 위로의 말,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말로서 그 말을 들으면 꿈과 희망이 생깁니다.
    위로하고 격려하며 칭찬하는 말을 함으로서 낙심에 빠졌던 사람이 용기와 소망을 갖게됩니다
    더구나 긍정적인 말로 상대방을 세워주고 자부심을 갖게 만듭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수고했습니다. 는 말을 자주 함으로서 모든 사람에게 행복을 줍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옛 속담에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을 거꾸로 해석하면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의 인생에 큰 유익을 끼칠 수도 있지만 손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고사성어 중에는 "촌철살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치밖에 안 되는 바늘을 가지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처럼 비록 세 치의 혀로 사람을 감동시킬 수도 있고 파멸시킬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혀는 크기로 따지면 아주 작지만 그 혀가 끼치는 영향력은 사람의 일생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편소설 '깊이에의 강요'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주인 공으로 한 여류 화가가 열심히 그림을 그려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평론가가 작품을 구경한 후 그림에 대하여 평가를 하기를
    "당신 작품은 재능도 보이고 마음에도 와 닿으나 아직 깊이가 부족하다" 는 말을 합니다.
    이 화가는 재능도 보이고 마음에 와 닿는다는 말은 다 잃어버리고 깊이가 부족하다는 말에만 마음이 걸렸습니다.
    그녀는 깊이라는 두 글자에 집착을 합니다.
    깊이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집념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 '깊이'를 진전시키지 못하는 자신의 몸을 술과 약물로 혹사시킵니다.
    아름다웠던 모습은 고뇌와 집착으로 엉망이 되어갑니다.
    살아갈 의욕을 잃어버린 그녀는 결국 '깊이' 없는 자신의 그림들을 전부 찢어버리고 1백 39m의 높이에서 깊이를 알기 위하여 몸을 아래로 던져버렸습니다.
    말 한마디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우리 속담처럼 말이라는 것은 한 번 말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 속에 들어가 씨가 됩니다.
    그런데 그 씨가 어느 때는 사람에게 활기와 용기, 힘, 기쁨, 소망, 행복을 주는 생명의 씨 역할로 심어질 경우가 있고
    어느 때는 절망과, 우울, 슬픔, 고독, 포기 등의 사망의 씨로 심어질 때가 있습니다.

    말이란 혼자 하는 말이든 상대가 있어 하는 말이든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는 말이든 말은 사람의 마음 밭에 떨어져 씨가 되는 것입니다.

    1) 본문은 우리에게 말이 지니고 있는 위험성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습니다(1-2절)
    하나님은 야고보 사도를 통하여 "남을 가르치는 사람이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이니 선생이 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교사란 오늘날로 말하면 좁은 의미에서는 교회지도자요, 넓은 의미에서는 가정과 사회에 높은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누구든지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이 많으면 실수도 많고, 또한 자신이 말해 놓고 지키지 못함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할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9절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옛 말에도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는 말처럼 우리는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많이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를 듣고 둘 셋을 이상을 말하려다 보니 거짓말이 나오고 잘못된 얘기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는 사람 말하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2절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말에 실수가 없어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면 그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여기 온전하다는 말은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아름다운 표정에 담겨진 아름다운 말을 하는 사람 때문에 아름다운 사랑의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이 강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성경은 말이 사람의 온 몸을 굴레씌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절 하반절).
    사람의 말이 그 사람을 얽어매는 굴레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한 말에 의해서 스스로 제약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무슨 말을 했든지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사사기 11장을 보면 "입다"라는 이름을 가진 사사가 등장합니다.
    입다는 본래 기생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용맹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천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웃 나라가 이스라엘을 침략하자 사람들은 그를 군대의 대장으로 삼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전쟁에 나가면서 하나님께 서원하기를 "제가 승리하고 평안히 돌아오게 된다면 가장 먼저 대문에 나와서 영접하는 사람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습니다" 라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데 자기 무남독녀가 춤을 추면서 환영하러 나왔습니다.
    입다는 그 모습을 보고 옷을 찢으며 슬퍼하였지만 하나님과의 약속이었기에 그 약속을 지켜야 했습니다.
    경솔한 말 한 마디 때문에 사랑하는 딸이 목숨을 잃게 된 것입니다.

    한 번 내어 놓은 말은 주워담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마디의 말이라도 신중하게 자신을 살피고 말하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입니다.

    잠6:2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는 말처럼 인간의 행동은 그의 언어에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3-6절) 사람의 언어는 사람의 인생을 방향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말은 비록 사람보다 힘이 세지만, 그 입에 재갈을 물리면 사람의 뜻대로 조종할 수 있습니다.
    말의 입에 물리는 조그마한 재갈이 말의 온 몸을 어거하고 제어하여 사람에게 순종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성경은 배에 붙어 있는 키의 기능에 비유하여 말의 기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배의 뒤꽁무니에 붙어 있는 키라고 하는 것은 아주 작은 부속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것은 물 속에 들어가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 조그마한 키를 이용하여 선장이 원하는 방향으로 배를 조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사람의 말은 많은 나무를 태워 큰 불을 일으키는 작은 불씨와 같습니다.
    어떠한 불이든지 작은 불씨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몇 년 전에 강원도 고성지방에 큰 산불이 난 적이 있었습니다만 그 불도 작은 불씨에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몸에서 혀는 비록 가장 작은 지체 중의 하나이지만 말이 곧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것입니다.

    말은 능력이 있습니다.(3-6절)
    우리가 말하는 한 마디의 말은 작은 것이로되 무심코 내뱃는 한 마디의 말은 다른 사람과 우리가 속한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칩니다.
    말이 우리 인간사회나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아주 대단한 위력을 나타냅니다

    잘못된 말로 가정이 깨어지고 자녀가 탈선하고 사회가 혼란하고, 정치가 바로 서지 않는 것은 따지고 보면 언어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교훈하실 때,
    마7:1-3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비판을 하고 헤아리는 사람은 자신을 먼저 살피라고 했습니다.
    자신에게 색안경을 끼고 보니 모든 세상이 색있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적인 자리든지 공적인 자리든지 꼭 필요한 말만하고 그렇지 않으면, 상대의 말을 많이 듣는 편이 되어야 합니다.
    말을 많이 듣다보면 그 사람 의 인격, 됨됨이, 생각,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다는 알지 못하지만 대강은 알게 됩니다.

    가장 나쁜 사람은 자신도 온전하지 못하면서 남의 약점과 아픈 곳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하지만, 남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원칙을 따지기를 좋아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기 자신에게 관대하듯이 남에게도 관대하게 대할 것을 말씀하심니 다.

    말은 길들여져야 합니다. (7-8절)
    본문 7-8절에 보면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여지지만 사람의 혀를 능히 길들일 사람은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동물원이나 곡마단에서 잘 길들여져서 사람들 앞에서 조련사의 지시대로 움직이며 조롱을 떠는 짐승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모든 짐승들은 조련사에 의하여 조련되고 길들여집니다.

    사람의 혀는 작은 것이로되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능히 길들 일 수 없는 혀이기 때문에 어떤 때는 그 혀를 기지고 하나님을 찬양하지만, 어떤 때는 같은 그 혀를 가지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형제를 저주하기도 하는 것입니다.(9-10절)

    이와 같이 우리의 언어생활을 살펴보면 때로는 좋은 말을 하지만 때로는 같은 입으
    로 형제의 인격을 모욕함으로 상처를 입히고, 저주하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난 성도들은 그 언어생활부터 거듭나야 합니다.

    11-12절에 보면 우리의 언어생활을 "샘과 열매"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언어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을 외부로 나타내는 것이며, 인격의 표현인 것입니다.
    즉, 우리 속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그 언어생활의 정도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같은 입을 가지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형제를 저주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입술과 혀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돌아서면 형제를 비판하고 비방하는 말로 가득 채울 때가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의 입술을 통해 형제를 시기하고 질투하며 이간질하는 말을 일삼을 때가 있습니다.

    야고보는 자신의 마지막 권면을 위하여 두 가지 비유를 들었다.
    첫 번째 비유는 한 우물에서 두 가지 종류의 물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쓴 물을 내는 우물에서 단물을 동시에 낼 수 없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입은 하나인데, 그 한 입으로 찬양과 저주를 낼 수 없다.

    두 번째 비유는 한 나무에서 두 가지 종류의 열매를 낼 수 없다는 것이다.
    포도나무에서 감을 맺을 수 없으며, 감나무에서 포도를 딸 수가 없다.

    우리의 언어생활의 성패는 우리 속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의하여 조절되는 것입니다.
    악한 것을 담고 있으면 우리의 언어생활은 악할 수밖에 없으며, 선한 것을 담고 있으면 우리의 언어생활은 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2장 34-35절에서 바리새인들을 향해 말씀하시길,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말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사람의 말은 곧 그 사람의 속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언어생활을 살펴보면 그 사람의 마음과 인격과 신앙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언어생활은 곧 그 사람의 마음의 표현이요, 인격의 표현이며, 신앙의 표현입니다.

    우리의 말 중 우리의 자녀, 부부, 성도들의 생명 속에 파고들어 생명의 씨앗의 역할을 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 속에 파고들어 사망의 씨앗의 역할을 하는 말을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미국 정신과 의사 제럴드 젤리슨 박사는 사람들이 평균 8분에 한번씩 거짓말을 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전적으로 부패해 있기 때문에 언어 관습이 거짓말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내 자랑 같지만"으로 운을 떼는 사람은 사실은 자기 자랑을 하고싶어서 그러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드리고 싶지 않지만"으로 얘기를 시작하는 사람도 사실은 꼭 그 말을 하고 싶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약하고 악하므로 늘 자기방어와 자기 이익을 챙기게 되고 그 과정에서 거짓말은 자신도 모르게 싹트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내용이 사실이고 상대에게 유익을 준다고 하더라도 공동체의 덕을 살리는 말이 아니면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의 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 어떻게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사람 중에는 부정적인 사람이 있고 긍정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특성은 말로써 드러납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무슨 말을 해도 '안 된다'고 말합니다.
    생각을 해도 안될 조건만 찾아내고, 말을 해도 안될 조건만 말하게 됩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사람은 생각과 말이 긍정적입니다.
    결과를 보면 긍정적인 사람이 성공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속에는 역동적인 힘이 있습니다.
    사람의 말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 하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가 하면 살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우리의 언어생활을 통해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자신의 말을 다듬어 나가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3절에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
    ‘어거한다’는 말은 내가 가고 싶은 대로 끌고간다는 말입니다.
    내 말이 내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피그말리온 현상’ 입니다.
    내 운명은 내가 말하는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난 이런 사람이 된다’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난 안돼, 난 글렀어.’ 늘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안 되기만 기다리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난 글렀어, 글렀어’ 하는 사람은 좋은 일이 생기면 ‘어, 이상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합니다.
    그러다가 재수 없는 일이 벌어지면 ‘맞아! 그러면 그렇지. 재수 없는 내 팔자 어디가?’ 이럽니다.
    이 사람은 불행을 기다리고 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많습니다. 내가 정말로 나 자신에 대하여 얼마나 긍정적으로 말하는가?
    내 앞 일에 대하여 얼마나 소망스럽게 말하는가를 사정을 알게 되면 깜짝 놀랄 것입니다.

    민수기 14장에 보면 ‘들린 대로 행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광야 40년을 방랑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죽겠네, 죽겠네”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우릴 죽이려고 여기까지 끌고 왔나?” 그랬어요.
    하나님이 듣다 마침내, “들린 대로 행하리라” 하셨습니다.
    ‘죽고 싶다고 계속 말했으니 내가 죽여줄게’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말을 다 들으십니다. 또한 나의 속 사람이 내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 길로 인도합니다. 내 말은 내 운명을 지도합니다. 그러니 말조심해야 합니다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한 폴란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소년은 음악학교에 입학했으나 교수로부터 매우 비관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네 손가락은 너무 짧고 굵다. 유연성도 부족하다. 다른 악기를 택하도록 하라"
    소년은 낙심이 되고 마음의 기쁨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소년은 만찬회에서 피아노를 쳤습니다.
    그런데 식사가 끝날 무렵 한 신사가 소년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너는 피아노에 탁월한 소질을 갖고 있다. 열심히 노력해라" 소년은 중년신사의 격려에 크게 고무되었습니다.
    이 노신사의 이름은 안톤 루빈스타인이었습니다.
    소년은 그날부터 하루에 일곱 시간씩 피아노를 연습했습니다.
    그리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피아니스트로 성장했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피아노의 천재'로 불리는 잔 파데레우스키입니다.

    소년도 지혜로 왔지만 충고하는 사람 역시 훌륭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루빈스타인 존경받는 본 받을 만한 사람의 말이 효과를 보고 영향력을 키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어느 날 한 여인이 아들을 데리고 간디에게 상담하러 왔습니다. 여인은 간디에게
    "자기 아들이 사탕을 너무 많이 먹으니 많이 먹지 않도록 이야기 해 달라고 했습니다."
    여인은 생각하기를 훌륭하신 분이 아들에게 그러한 충고를 하면 아들이 잘 순종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간디는 여인에게 일주일 후에 다시 오라고 했습니다. 일주일 후에 여인은 아들과 함께 다시 간디를 찾아 왔습니다.
    간디는 아들에게 "얘야 사탕을 먹는 것은 몸에 해로우니, 먹지 않도록 해라."고 했습니다.
    여인은 간디에게 "별다른 이야기도 아닌데 왜 일주일씩 기다리게 했다가 다시 오게 하여 이제야 말씀하십니까? 그런 이야기라면 그때 해주셨어도 됐을 텐데."라고 했습니다.
    간디는 "나도 실은 그 동안 사탕을 많이 먹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일주 전에 나는 사탕을 끊었지요."라고 했습니다. 간디는 옳은 가르침이라고 해도 자신이 행하고 있지 못하는 것은 말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복된 소식을 전하고, 상한 심령을 치유하고, 좌절과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을 일으켜 살리기 위하여 우리에게 혀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우리의 언어의 표현이 그 근원으로부터 나오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언어는 곧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말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신앙을 알 수 있고 인격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그 어떤 사람도 자기의 말을 뛰어 넘어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에 의하여 우리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지는 축복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변에 망한 사람이 많습니다. 힘들고 어렵게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돈이 없어서? 아닙니다. 기술 부족 때문에?
    그것 때문에 망한 사람도 몇 퍼센트 안 됩니다. 그럼 뭐 때문에 망했을까요?
    죽이는 말 때문에 망한 것입니다.

    말이란 내 인격이요 내 운명입니다
    말이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인생을 망치게여 죽이기도 하고
    또한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로 죽을 사람을 살리기도 하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주여, 내 입술에 파숫군을 세워 주시옵소서(시 141:3)! 라는 시편 말씀을 명심하고 말에 실수가 없는 온전한 사람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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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적인 사람
    부르심에 합당한 삶
    심는 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짐을 지라
    일어나 올라가라
    살리는 말과 죽이는 말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
    부자와 가난한 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성도의 재물관
    세상이 감당 못할 사람들
    새로운 피조물
    보혈의 능력
    약할 때가 강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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