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가 장미꽃같이 2002-10-23 11:07:48 read : 2751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2-10-20 // 사35:1-10
여러분,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가운데 특별히 좋아하는 찬송가가 있습니까? 몇장입니까?
저는 어려서부터 가족 예배때 찬송을 불렀던 몇가지가 늘 기억에 남았습니다. 어려서도 그랬지만 지금까지도 저에게 힘을 주고 소망을 주는 그런 찬송이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황무지가 장미꽃같이"입니다.
1.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피는 것을 볼 때에 구속함의 노래 부르며 거룩한 길 다니리
2.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그의 영광 볼 때에 모든 괴롬 잊어버리고 거룩한 길 다니리
3. 마른땅에 샘물 터지고 사막에 물 흐를 때 기쁨으로 찬송부르며 거룩한 길 다니리
4. 거기 악한 짐승 없으니 두려울 것 없겠네 기쁨으로 노래부르며 거룩한 길 다니리
5. 거기 죄인 전혀 없으니 거룩한 자 뿐이라 주가 주신 면류관 쓰고 거룩한 길 다니리
(후렴)거기 거룩한 그 길에 검은 구름 없으니 낮과 같이 맑고 밝은 거룩한 길 다니리
할렐루야! 아멘.
힘이 나지요? 유행가 부르는 것과 얼마나 차이가 있습니까? 우리 아이들이 유행가를 잘 부르면 "야, 잘한다!"고 박수치면서 "이 아이가 유행가를 이렇게 잘 불러요!"하면서 자랑을 하는데, 그것 아무쓸데 없습니다. 우리 어려서 자라던 친구 가운데 "인생은 나그네길~"을 부르던 친구는 별볼일이 없습니다.
찬송부르면 희망이 있습니다. 여러분 자식이나 우리 자녀들에게 찬송 많이 가르쳐서 하나님의 은혜 받는 백성 만드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송해야 합니다.
이번 28일 부흥사경회를 앞두고 주제를 `복음으로 변화되라`고 했는데, 도대체 복음으로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를 두고 기도하는데,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이 찬송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그 설교제목을 정했습니다.
성경을 보게 되면 "황무지가 장미꽃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오늘 이사야 선지자가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황무지`는 `사막`, `광야`, `메마른 땅`입니다. 그 자체로는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황무지는 씨앗을 심어도 싹이 나지 않는 땅입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입니다. 쓸모없는 땅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 속에는 황무지같은 인생이 있습니다. 쓸모없는 인생입니다. 세상이 다 나를 버렸습니다. 절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땅에도 장미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이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미우라 아야꼬라고 하는 처녀가 있었습니다. 20살에 폐결핵에 걸리고 척추병 때문에 병상에 누워있어야만 하는 아주 불쌍한 여인입니다. 황무지 인생입니다.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사막이요, 광야 인생입니다. 이런 여인을 어디에 쓸수 있겠습니까?
남들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 자신도 쓰레기같은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여인이 변화가 됩니다. 어떻게 변화가 되었는가?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를 믿은 후로 180도 바뀌어서 새로운 소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여인은 얼마 살지 못할 것 같았지만 77세를 살았습니다. 1999년 10월 27일에 하나님 나라를 갔는데, 이 여인이 늘 평소에 애송하는 시가 있었습니다.
작자미상의 시입니다.
<아프지 않으면 >
아프지 않으면 드리지 못할 기도가 있습니다.
아프지 않으면 믿지 못할 기적이 있습니다.
아프지 않으면 듣지 못할 말씀이 있습니다.
아프지 않으면 접근하지 못할 성소가 있습니다.
아프지 않으면 우러러 뵙지 못할 성안이 있습니다.
아! 아! 아프지 않으면 나는 그 무엇일수조차 없습니다.
여러분, 이 시의 내용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픈 것은 무슨 뜻입니까? 여러분, 한번 아파 보십시오. 그 아프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이고 슬픔인지 모릅니다.
제 아내가 다리가 부러져 수술을 받고 지난 여름동안 병치료를 하는데, 가끔 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마, 제가 너무나 잘해 줘서 감격해서 우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슬프고 서글퍼서 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외롭답니다. 힘이 들어서 운다고 합니다. 전 구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우는 것입니다. 그게 아픈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미우라 아야꼬`는 이 아픔을 통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했고 하나님의 성전을 찾아서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미우라 아야꼬`에게 그런 영적인 눈이 띄워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플 적에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물론 우리는 아플 적에 그 아픔 때문에 고통스럽고 슬프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죽고 싶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황무지에서도 장미꽃을 피운다는 것입니다. 장미꽃을 피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지혜입니다. 다윗은 `고난도 내게 유익이라`고 고백하지 않습니까? 욥을 아시지요? 욥은 `나의 가는 길을 주께서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고백합니다.
황무지같은 인생입니다. 그러나, 장미꽃같은 복으로 바꾸어 주실 줄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가졌던 믿음의 내용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은혜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이사야의 축복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사야35:1-4 황무지가 장미꽃이 될 것이다.
35:5-7 사막에 샘이 솟게 될 것이다.
35:8-10 대로를 지나 시온에 이르게 될 것이다.
여기 `황무지`라고 하는 말은 사막, 광야, 메마른 땅이라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성경에는 백합꽃이라 표현했습니다. 백합화가 피게 될 것이라.
여러분, 메마른 땅에 우기가 와서 비가 내립니다. 비가 그치고 해가 납니다. 그러는 동안에 거기 싹이 납니다. 들의 야생화가 핍니다. 그런데, 그 피는 것을 보면 우리 백합화처럼 소탐스럽게 나지는 않습니다. 장미꽃같이 큰 꽃도 아닙니다. 조그마한 야생화가 피는데, 하얀 꽃, 빨강 꽃 각양각색의 꽃들이 피어 납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 사람들은 백합화가 피기에 백합꽃이라 했습니다. 서양사람들은 장미꽃이라 표현을 합니다. 그러나 내용은 똑같습니다. 그런 사막같은 곳도 화원같이 아름다운 곳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막은 죽음이고 대로는 왕의 길입니다. 그 길은 전쟁하러 나가는 큰길입니다. 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니기 때문에 강도들이 득실거리고 아주 위험한 곳입니다. 사막은 죽음인데 비해, 샘은 생명입니다. 대로는 강도떼가 다니는 위험한 곳이지만 시온은 하나님의 천국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꾸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황무지같은 인생, 황무지같은 환경에도 절대로 좌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기회가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장미꽃같은 환경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이런 은혜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황무지가 장미꽃이 되는 방법과 길이 있다.
황무지가 장미꽃이 될 수 있는 두가지 비결은
1.하나님을 믿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을 믿지 말고 하나님만 믿으라는 것입니다.
사35:3-4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하나님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약한 손을 강하게 하고, 떨리는 무릎을 굳게 세워가지고 그 하나님을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사35:5-6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띌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할렐루야! 아멘.
하나님을 믿는 가운데 이런 은혜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은혜는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을 믿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다른 것을 더 믿고 있습니다.
3대 거짓말
하나, 처녀 "시집 안간다."
둘, 노인들 "죽고 싶다."
셋, 장사꾼 "이익을 남기지 않는다."
8대 거짓말
하나, 부자가 되면 행복할 것이다.
둘, 유명해지면 행복할 것이다.
셋, 딱 맞는 결혼상대를 만나면 행복할 것이다.
넷, 친구들이 많으면 행복할 것이다.
다섯, 매력적인 외모를 가지면 행복할 것이다.
여섯, 신체장애가 없으면 행복할 것이다.
일곱, 가까운 누군가가 죽지 않으면 행복할 것이다.
여덟, 세상이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하면 행복할 것이다.
위의 조건들을 다 갖춘다 하면 어느 정도는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입니다. 온전히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거짓말이란 것입니다. 미국에 이민 간 사람들이 다 잘 살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리보다 잘 살고 교육환경도 좋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정말 잘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 미국의 시애틀에 미국여성들의 쉼터가 있는데, 불행스럽게도 얼마나 잘 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 중엔 외국인 남편에게 야구방망이로 머리를 맞아 골이 벌어졌습니다.
수술받은 후 남편에게 버림받아 갈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샤론의 집`에 와서 1년이상을 몸 요양한 후 직장구해서 잘 살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 자식들에게 버림받은 시어머니, 요즘엔 잘 믿는다는 신앙인 가운데도 꽤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쉼터를 `친정집`이라고 부릅니다.
그냥 와서 쉬었다 가는 곳입니다. 미국이고, 그렇게 환경이 좋은데도 말입니다.
이년 전, 우리가 이 일을 끝마치면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더 욕심을 부려서 `청소년 센터`를 만들었습니다. 만삼천여평의 대지 위에 `청소년센터`를 만들어서 그것도 개원한 후에 얼마나 잘 되는지 모릅니다.
미국에 자녀를 교육시키러 가서 부모들이 그냥 살수는 없지 않습니까? 부모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하는데,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점심만 먹고 일찍 오면, 갈 곳이 없는 것입니다. 이 아이들이 못된 행동을 하고, 깡패, 마약을 합니다. 그 아이들을 데려다가 공부시키고 놀게 하고 부모가 오면 데려다 줍니다. 너무나 잘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환경이 좋으면 다 잘 될 것 같습니까?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믿으면 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미국 이민간 사람들이 돈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갑니까? 그러나, 돈 가지고 간 사람들은 절대 성공하지 못합니다. 왜? 돈이 떨어질 때까지 일을 안 합니다.
여러분,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40년을 컸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교육을 받고, 대단한 일을 했습니까? 그러나, 첫 번째 일에 히브리민족을 위해서 한다고 하는 것이 살인죄를 범하고 쫒겨 났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광야 40년의 삶을 삽니다.
인생의 낮아질대로 낮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부르실 때, 그는 `내가 무엇이관대 바로에게로 가며 이스라엘에게 가겠습니까?`라고 고백합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녕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내 능력, 내 의지, 아무 것도 믿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출애굽의 지도자로 세우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이 출애굽의 지도자를 그만두게 하실 때가 언제입니까? 백성들이 불평원망하고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며 물을 달라 할 때, 모세가 화가 나서 "내가 너희를 위해서 물을 주랴" 하며 하나님의 기적을 일으킬 때, 모세가 `나`를 내세울 때 하나님은 모세의 사역을 그만 두게 하시고, 새로운 일꾼 여호수아를 세우시지 않습니까?
여호수아는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우리의 힘이면 가나안 땅을 점령할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는 백성들을 향해서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을 섬기겠노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사람을 세워서 가나안 땅을 점령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믿는 사람을 통해서만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이사야` 선지자의 이름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예언을 할 때, 유다왕 아하스가 왕으로 나라를 살리기 위해 누굴 믿을 것인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앗수르, 바벨론, 이집트 어느 나라를 믿을 것인지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왕은 앗수르를 믿어야 되겠다고 생각하며 `친 앗수르` 정책을 펼칩니다.
그런데, 북쪽의 이스라엘은 `반 앗수르` 정책을 펼칩니다. 아하스왕이 앗수르를 데리고 오자, 앗수르는 북 이스라엘을 망하게 합니다.
아하스 임금은 `내가 선택을 잘했구나`하고 앗수르가 영원할 줄 알았지만, 앗수르가 망하고 바벨론이 큰 힘을 차지하게 되자, 그 바벨론이 남 유다를 망하게 하고 마는 것입니다.
세상이 이렇습니다. 세상은 내게 힘이 되지 않습니다. 이사야는 자기 이름대로 `참된 번영과 축복은 주위 강대국을 믿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데 있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살게 하실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웹스터`라고 하는 미국의 유명한 문학가, 언론인, 학자인 분이 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이런 유명한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까?" 란 질문에, 그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오늘날의 나를 있게 했다." 고 대답했습니다.
주님은 오늘 그 신앙의 고백을 듣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해야 될 신앙의 고백인 줄로 믿습니다.
제가 `송명희`라고 하는 시인을 만날 때는 1985년이었습니다. 극동방송의 `김장환`목사님이 소개를 하셨는데, 이분을 저희 학교의 간증강사로 초청을 했는데, 깜짝 놀랬습니다. 뇌성마비도 그런 뇌성마비가 없습니다. 말은 하는데, 제대로 하지도 못합니다. 세상에 태어날 때, 산부인과 의사가 머리를 집게로 집는 가운데 너무나 집어서 그렇게 됐다고 합니다. 그날도 모셔올 때, 뒤에서 여러 사람이 안고 와서 강대상 위에 겨우 앉혀서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가 쓰는 시를 보면서 감동을 받게 됩니다.
그가 받는 시 가운데, `나`라는 시가 있습니다.
`나`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인생이 180도 변화되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중에 이런 간증을 합니다. 하나님이 음성을 들려주시길 `나를 믿으라, 네가 믿지 아니하면 죽으리라. 내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인생이 180도 달라지고 그의 인생엔 새로운 기쁨과 감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마틴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 얼마나 힘이 들었습니까? 반대하는 사람도 있고, 위협하는 사람도 있고, 밤 잠을 못자는 것입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이 교회가 제 것입니까? 하나님 것입니까?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고 기도하고 평안히 잠을 잤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께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이 몸이 누구의 몸입니까? 내 것입니까? 하나님 것입니까? 하나님, 이 인생 책임져 주실 줄로 믿습니다."
무엇 때문에 근심하고, 걱정하고, 염려합니까? 우리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서, 하나님앞에 승리하는 삶을 사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황무지가 변해서 장미꽃이 되는 두 번째 비결은,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35:8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
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소설 중 이런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많은 병자도 고치시고, 죽은 사람도 살리셨는데, 그 사람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기록을 찾아보았지만, 이 사람의 마음 속에는 `일평생 나 주를 위해 살다가 죽었습니다.`하는 제자들의 기록이 있기를 바랬지만, 성경 내용중 어디에도 잘 살았다는 기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상상하기를 「예수님께서 평소 고쳐 주신 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몸소 방문했습니다. 어떤 곳에 갔더니, 말도 못하게 된 주정뱅이가 있었습니다.
주님이 "자네는 어떻게 이런 주쟁뱅이가 되었는가?"하고 물어보셨습니다. 그 주정뱅이는"저는 원래 절름발이 거지였습니다. 그때는 제가 손만 내밀면 얻어먹을 수 있어서 편했습니다. 그런데, 두 발이 성해지고 나니, 아무도 도와주질 않았습니다. 스스로 벌어먹고 살다보니, 힘이 들어서 주정뱅이가 되었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른 곳에 가니, 추한 창녀가 있었습니다.
창녀에게 "너는 어떻게 이렇게 비참해 졌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녀는 "저는 원래 창녀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예수님을 따르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새사람이 되어서 살아보니, 너무나 따분하고 재미도 없고 행복도 없어서 영 살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창녀가 되어 지내다 보니, 이꼴이 되었습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주님이 다른 곳에 가보니, 불량배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람을 치고 받는 깡패였습니다.
주님이 "자네는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가."하고 물으셨습니다.
깡패가 대답하길, "저는 본래 장님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제 눈을 뜨게 해 주셨을 때는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눈을 뜨고 보니, 세상이 어떻게나 더러운지 모르겠습니다. 못된 것도 많고 부조리한 것도 많고 제 신경을 건드리는 것이 너무 많아 어쩌다 보니 깡패가 되고 말았습니다."하는 것이었습니다. 」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믿음의 복을 유지하지 못한 사람들의 비참한 이야기를 우화로 만들었습니다마는 이것이 남의 이야기입니까? 우리들의 이야기는 아닙니까?
구원이라 하면, 신분의 구원이 있습니다. 내가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백성`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신분의 변화가 된 사람은 생명이 자라듯 신앙이 성장해야 됩니다. 그 성장이 무엇입니까? `존재로서의 변화`입니다.
다시 말하면, 과거에 내가 좋아했던 것을 잊어 버리고 새로운 것을 좋아해야 되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닮아가고, 하나님의 성전을 만들어 가고, 그리스도의 몸을 만들어 가는 것이 구원받은 자의 삶입니다. 그것이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얼마전 책을 보다 보니, 21c 우리 신앙의 문제가 무엇인가 하는 내용입니다.
크게 두가지 내용입니다. 하나는, 다원주의입니다. `다원주의`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 많은 종교가 있는데, 이 종교를 큰 눈으로 보게 되면 다 똑같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거짓말이 어디 있습니까? 이러면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무관심입니다. 여기 화분이 있습니다. 이 화분을 망칠려면, 어떻게 합니까? 이것을 뜯거나, 휘발유를 끼얹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무관심한채로 방치해 두면 말라버려 죽습니다. 오늘 우리의 영적인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지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싸울 필요도 없이 무관심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없이 그냥 살아 보십시오. 관심없이 살다 보면 우리 영혼도 피폐해지고 망하는 것입니다. 무관심처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거룩이라고 하는 것은 구별되었다는 뜻입니다. 다른사람과는 달리 사는 것이 성도입니다. 다른 집과 다르게 구별된 것이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왕따를 당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사람들이 먹는 음식과, 믿는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 다릅니다. 세상사람들의 관심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얼마나 잘 먹고 잘 입는 가에 따라 인생의 높낮이를 따지는 것입니다. 얼마짜리를 먹었는가, 얼마짜리 핸드백을 가졌는가.
그러나 우리 신앙인은 거룩한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옷입니다. 그것이 거룩한 삶을 사는 길임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구원의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거룩한 삶을 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을 누리지 못하는 인생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황무지가 변해서 장미꽃이 되는 그런 복된 삶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도 이 말씀이 이번 한주간 우리로 승리케 하는 말씀이 되길 바랍니다. 신앙 부흥회가 우리에게 참으로 놀라운 축복의 기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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