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양 예수여! 2002-10-23 10:50:50 read : 2744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2년 10월 20일 // 요한복음 1: 29-34
어린양 예수(요1:29-34)
사람들은 죄에 대해 말할 때, 보통 4가지로 반응한다.
(1) 죄를 아주 가볍게 본다.
큰 죄를 범해놓고도 "나만 그러냐!,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하며, 가볍게 넘겨버린다.
(2) 죄인처럼 안 보이려고, 자기 자신을 위장하는 태도가 있다.
선행이나, 수양을 통해,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괜찮은 사람이므로, 죄인이 아니라고 위장한다.
(3) 죄에 대한 이야기를 몹시 싫어한다.
죄를 미워해서 싫은 게 아니다. 그냥 죄라는 말 자체가 싫다.
그래서 교회에서 죄 이야기를 하면, 아주 불쾌하게 생각하고,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이들은 가급적이면, 죄를 말하지 않고,
죄를 말하더라도, 노골적이고 다루지 않는 설교자와 교회를 좋아한다.
미국 시카고 주변의 헤몬드 침례교회의 잭 하일스 목사님께서, '죄를 해결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강하게 설교하니까, 죄를 지적하는 말이 듣기 싫던 어떤 사람이, 견딜 수 없어서 목사님을 향해 총을 쐈다. 이런 일이 2번 있은 후, 교회 강단 앞에는, 방탄유리를 놓게 되었다.
(4) 죄에 대하여 말할 때, 자기와 연결시켜 죄를 버리고 회개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 말씀하시는구나!'하며, 무릎꿇고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선다.
그렇다면 우리는, 죄에 대하여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바라기는 죄를 버리고 주님께 돌아오는 성도가 되기 바란다.
왜 죄를 버리고 돌아와야 하나?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히9:27)고 하였다.
죄가 있다면, 반드시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고, 죄를 지으면 반드시 죽게 된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진단하신 결과,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고, 그 죄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 되었다.
그래서 인류는, 무서운 형벌을 받아야 한다.
그 형벌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이다. 또한 끝없는 영원한 고통이다.
한도 끝도 없이 계속되는, 영원한 고통이기에, 반드시 죄를 해결해야 한다.
1. 죄를 해결하는 방법
하나님은 아무런 근거 없이, 무조건 죄를 용서해주신다면, 하나님 자신이 먼저 모순에 빠지므로,
하나님은 속죄의 방법을 성경에 기록하셨다. 속죄의 공식은 다음과 같다.
① 죄를 지은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롬6:23).
② 생명은 피에 있다(레17:11).
③ 죄를 지으면, 피를 흘리고 죽어야 한다.
④ 만일 자신이 죽기 싫으면, 죄 없는 사람이, 대신 피 값을 지불하고 죽으면 된다.
하나님께서는 죄 짓고 죽을 사람을 살리는 방법, 대리로 죽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놓으셨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사람 대신 죽을 수 있는 짐승을 허락하셨다. 흠 없는 짐승이 인간의 죄를 뒤집어쓰고 죽어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죽을 죄인도 살려주셨다.
아무 짐승이나 죽으면 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지정한 짐승이라야 가능했다.
주로 소, 양, 염소, 3가지였고, 가장 대표적인 짐승으로는 양이었다.
그러나 반드시 흠 없고 완벽한 짐승이어야 했다.
눈이 빠지거나, 다리를 절룩거리는 것은, 대신 죽을 수 없었다.
완벽한 짐승이라야, 죄를 대신해서 피를 흘릴 수 있는 속죄양이 될 수 있었다.
레17:11에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사한다"고 했다.
그래서 죄지은 사람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제단 위에는, 짐승의 피가 계속 흘렀다.
어떤 사람이 죄를 범해서 깨끗한 양을 끌어다가, 제사장에게 가서 제사를 지낸다.
제사장은 양을 잡고 "당신의 죄는, 이 양의 피 때문에 용서받았소" 용서의 기쁨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한 시간도 안돼서, 또 죄를 짖는다. 그러면 또 다시 양을 잡아야만 한다.
한번 상상해보자. 우리는 하루에 죄를 얼마나 범하는가?
하루에 한번만 범했다고 해도, 양이나 소가 하루에 전체적으로 얼마나 많이 희생당할까요?
그래서 구약시대에 짐승을 잡을 때, 여기저기 피가 튀고, 피비린내 나는 냄새가 난다.
아무리 흠 없는 짐승을 잡아 죽여도, 매번 죄지을 때마다 끌고 가야 했다.
또한 죄짓는 사람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지를 않았다.
짐승이 내 죄를 뒤집어쓰고 죽었다면, 짐승이 애처로워서 죄지으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똑같은 짓을 계속하니까, 마음은 근본적으로 치유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매번 죄지을 때마다, 피 흘리지 않아도 되고,
단 한번 피 흘리고 죽으므로, 영원히 그 죄를 다 용서할 수 있는 피를 찾으셨다.
단순히 죄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죄짓는 마음까지도 치료할 수 있는 피를, 하나님이 찾으셨다.
이런 조건을 갖춘 기가 막히는 피가, 천하에 어디 있는가?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하기 위한 피는, 너무도 기가 막힌 피이기에, 짐승의 피여서는 안되고, 죄지은 인간의 피도 안 된다. 피라고 다 피가 아니다. 조건이 맞아야 한다.
아무리 피가 소중하다고, 에이즈에 걸린 사람의 피를 맞을 사람이 누가 있나요?
인간은 모두 다 죄가 있기에, 죄가 없는 분은, 영원하신 하나님 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이기에 죽을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죽으려면, 인간으로 오셔야만 했다.
죄가 없어야 하고, 또한 사람이라야 죽을 수 있기에,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어,
저와 여러분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우리를 위한 피다.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언약의 피니라'(막14:24)고 하셨다.
왜 언약의 피라고 했을까요?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예수님께서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어준다면,
"그 피 때문에, 그 피를 믿는 모든 사람의 죄를 무조건 용서해주마."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붙들기만 하면, 죄에서 영원히, 완전히 용서함을 받는다.
이것이 기독교가 전하는 복음, 죄에서 용서받을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이다.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어주마. 이것이 바로 십자가요, 십자가의 피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속죄양)으로 오셨음을 소개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사53:6에서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고 예언했다. (♬ 어린양 예수, 806)
2.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
성경전체를 통해 볼 때, 하나님께서 인간구원을 위해 희생되는 속죄물이, '양'이라는 동물이다.
(1) 에덴 동산에서, 희생된 어린양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범하였다.
하나님께서 입혀주셨던 영광의 옷이 다 벗겨지고, 스스로 부끄러워, 숲 속에 숨어서,
무화과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수치를 가리려고 하였다.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든 옷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말라 부스러졌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친히 동산의 양을 잡아,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혔다(창3:21).
죄지은 인간, 아담과 하와의 죄를 가리기 위해, 최초의 어린양이 희생되었다.
(2) 출애굽 당시, 유월절에 희생된 어린양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400여 년 동안, 종살이하며 시달려 왔다.
마음이 강퍅한 바로 왕은, 이스라엘 민족을 놓아주지 않고, 더욱 가혹하게 괴롭혔다.
하나님께서는 최후의 방법으로, 온 애굽 땅의 장자를 죽이는 재앙을 내리기로 작정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재앙을 면하도록,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하셨다(출12장).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 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출12:13)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슬초 묶음을 취하여,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다.
얼마 후, 애굽 전역에 천지를 진동하는 통곡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심판하는 하나님의 천사가,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르지 아니한, 애굽 땅의 모든 집에 들어가 장자와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을 죽여 버렸기 때문이다.
바로 왕으로부터 여종에 이르기까지, 장자는 모두 죽어, 애굽은 모두 초상집이 되고 말았다.
드디어 애굽의 바로는 모세를 향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애굽에서 떠나라고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살이에서 해방을 얻고, 죽음의 재앙에서 구원을 받았던 이유는,
어린양을 희생시켜, 그 피를 문설주에 발랐기 때문이다.
(3) 성전에서 드리는 어린양
성전시대에는 죄범한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양 한 마리를 끌고 제사장 앞에 가서, 양의 머리에 두 손을 얹고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이런 죄를 범했는데, 이 모든 죄를 이 양에게 전가시킵니다. 이 양이 나의 모든 죄를 지고 피 흘릴 때,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하고 기도했다.
이렇게 자기의 모든 죄를 양에게 다 옮긴 후에는, 칼을 들고 양을 사정없이 내리쳐 죽였다.
구약의 제사는, 더러운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어린양이 죽게 됨을 보여준다.
3. 어떻게 우리 죄가 옮겨질 수 있나?
예수님은 침례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다. 침례는 크게 2가지의 뜻이 있다.
(1) 연합이다. 하나됨을 말한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심으로,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예수님은 죄인이 되셨다.
(2) 죽음과 부활이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죄인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죄인으로 죽으셨다.
또한 죄 없으신 예수님은 무덤에서 부활하셨다.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물 속에 들어감으로 죽으시고, 물에서 나옴으로 부활을 보여주셨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실 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임을 알았다.
그래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29)증거 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침례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님께로 옮기셨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신 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해결하셨다.
하나님과 죄인들이 교제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다. 그러나 믿음으로 받지 않으면 소용없다.
어느 전쟁터에서, 통신병은 아주 중요한 연락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통신 선이 끊어져, 연락할 길이 없었다.
통신대에 속한 병사들은, 불안과 초조감 속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명령을 수행하는 유일한 방법은, 끊어진 전선을 연결하는 길뿐이었다.
하지만 전쟁중이라 달리 연결할 방법은 없고, 적의 공격은 전 아군의 생사를 위협하고 있었다.
절대절명의 상황에서, 한 통신병이 끊어진 양쪽의 전선을 자기의 양손으로 붙잡았다.
자기의 생명을 걸고, 마지막 메시지를 아군 지원 부대에 보냈다.
그 통신병은 생명을 바쳐 아군을 위기로부터 구하고, 자신은 장렬한 죽음을 맞았다.
통신병이 죽음으로 선을 연결했지만, 믿고 통신을 보내지 않았다면, 승리할 수 없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우리의 끊어진 관계를 연결하기 위하여, 인간으로 오셨다.
그리고 침례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심으로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
예수님의 침례는, 죄를 씻는 침례가 아니다.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는 침례다.
침례요한은 어린양을 보라고 말한다. 믿음의 눈으로 보라는 말씀이다.
이제 우리는 주님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 세상의 죄를 홀로 지시고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자.
그리고 제자들인 우리도, 희생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야 한다.
오늘 내가 선 자리에서, 이 시대의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자. 학생은 학교에서, 사업가와 직장인은 각자의 일터에서, 어린양이 되어, 어린양의 영광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전하는 자가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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