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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로 가시렵니까?
    2002-10-23 10:42:11   read : 2657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눅16:19-31 // 2002년 10월 20일

    □ 부자와 거지 나사로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는 어디를 가든지 부자가 있고 가난한 자가 있습니다. 미국과 같이 잘 사는 그런 나라에도 부자들이 모여 사는 부촌이 있고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빈촌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10억 20억을 웃도는 호화로운 주택들이 즐비한 부자촌이 있는가 하면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달동네 판자촌이 있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에도 두 사람이 등장하는데 한 사람은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 부자이고 또 한 사람은 나사로라는 이름을 가진 가난한 자입니다. 그러면 이 부자와 거지 나사로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먼저 부자의 삶에 대하여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같이 19절의 말씀을 다같이 함께 보겠습니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19절)
    옷이 날개라는 말과 같이 그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살았습니다. 자색옷은 당시에 왕이나 귀족들이 입는 비싼 옷을 말하며 고운 베옷은 같은 무게의 금보다 더 비싼 옷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며 지냈습니다.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했다는 말은 잔치를 벌였다는 말입니다. 영어 성경에는 파티를 열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부자는 비싼 옷을 입고 하루 이틀도 아닌 날마다 왕의 식탁과 같은 최고의 음식을 즐기면서 춤추며 노래하며 인생을 즐기며 산 것입니다.

    그러면 가난한 나사로는 어떻게 살았습니까? 20절과 21절을 다같이 보겠습니다.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20-21절)
    나사로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거지였습니다. 그는 물질적으로도 가난했지만 피부병을 앓고 있었던 건강치 못한 장애인이였습니다. 온 몸이 부스럼과 악창으로 성한 곳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몸만 건강하면 거지 노릇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온 몸에 진물이 흘러 내리고 냄새가 나는 이 나사로를 누가 점원으로나 머슴으로 고용하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다른 곳으로 옮겨다니지도 않고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음식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원래 거지는 절대로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매일 거지가 오면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거지들도 나름대로 스케줄을 따라 움직입니다. 옛날 우리나라 거지들도 대개 지도를 보면서 일년에 한차례씩 스케줄을 따라 마을을 돌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라는 각설이 타령이 나온 것입니다.
    나사로는 인간적으로도 참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누구하나 함께 해 줄 수 있는 가족도 친구도 없었습니다. 있다면 변함없이 늘 자기 곁에서 진물이 나올 때 그 가려운 부분을 입으로 핥아주는 개 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여름 벤쿠버를 갔을 때 많은 거지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가이더의 말에 의하면 겨울철이 되면 캐나다의 모든 거지들이 커다란 개 한 마리를 끌고 겨울을 지내기 위해 벤쿠버로 몰려 온답니다. 거지들이 개를 끌고 오는 이유는 개를 안고 잠을 자면 추위를 이길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개와 거지의 우정은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삶이 얼마나 대조적인지 모릅니다. 부자는 비싼 고가의 옷을 입고 날마다 사람들과 더불어 잔치를 즐기며 살아가는데 거지 나사로는 병든 몸을 안고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연명하며 개처럼 살아갑니다.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그러나 이것이 바로 세상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어디에나 부자가 있고 가난한 자가 있습니다. 미국처럼 풍요롭게 잘 사는 나라에도 부촌이 있고 빈촌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보세요. 몇 천만원짜리 옷이 불티나게 팔리고 하루 저녁 술 값으로 수백만원을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시락을 싸 가지고 올 형편이 못되어 배고픈 배를 움켜쥐고 운동장 한 구석에서 먼 하늘을 바라보는 결식아동들이 있지 않습니까? 하루 저녁에 몇 십만원 하는 곳에서 치료를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병원에 갈 돈조차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도 부자와 거지 나사로는 존재합니다.

    □ 나사로와 부자의 죽음
    그런데 세월이 흘러 이 두 사람이 다 죽게 되었습니다. 22절을 다같이 볼까요?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22절)
    그런데 먼저 누가 죽었습니까? 그동안 가난하고 병들어 외롭게 살던 거지 나사로가 먼저 죽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날마다 잔치하며 풍요를 누리며 살던 부자도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자도 죽습니다. 가난한 자도 죽습니다. 배운 자도 죽습니다. 배우지 못한 자도 죽습니다. 불로초를 구했던 진시황제도 죽었습니다.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고 외쳤던 나폴레옹도 죽었고,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어서 울었던 알렉산더 대제도 죽었습니다. 돈 많은 정주영씨도 죽었습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박정희대통령도 죽었고 야인시대의 주인공인 김두환씨도 한줌의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이것을 보면 죽음처럼 평등한 것은 없습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여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이 죽음의 법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죽습니다. 하루에 170만명의 사람들이 이 세상을 떠난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죽음을 외면하고 발버둥려도 우리도 언젠가는 그 170만명의 대열에 들어설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하루를 더 산다는 것은 그 만큼 죽음의 종착역에 가까워졌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아니 죽음이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영원한 안개를 본적이 있습니까? 아무리 안개가 짙게 끼었을지라도 아침의 해가 떠오르면 안개는 한 순간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50년 후에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한다면 50년 후에 이 자리에 나올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제가 볼 때 이 자리에 다시 나올 수 있는 사람은 1/3도 안될 것 같습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가 이 세상을 떠나고 우리의 선조들이 이 세상을 떠나고 가까운 가족들이 이 세상을 떠났듯이 저와 여러분도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할 사람들입니다. 죽음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러나 진실로 여호와의 사심과 네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뿐이니라"(삼상20:3하)고 했습니다. 생과 죽음은 한 걸음사이입니다.
    □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거지 나사로는 아무도 그의 임종을 지켜봐 주지 않는 가운데 쓸슬하게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무도 그의 죽음을 슬퍼하지도 않았습니다. 부자는 장사지내었다는 말이 있는데 나사로는 장사지내었다는 말이 없는 것을 보면 부자가 자기의 종들을 시켜 이른 아침 그 시신을 갖다 버리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외롭게 비참하게 나사로가 죽었지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다시 한번 22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22절)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죽으면 끝장인 줄 알았는데 죽음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한 명의 천사도 아닌 여러 명의 천사들이 나사로의 영혼을 왕처럼 받들어 아브라함의 품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품은 천국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누에가 나사로의 영혼이 육체의 장막을 벗고 나왔을 때 많은 천사들이 왕을 받들 듯이 그 영혼을 받들어 천국으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죽음은 끝장이 아닙니다. 죽음은 멸절이 아닙니다. 죽음은 영원한 세계의 시작입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심장의 멎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죽음은 심장의 멎음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영혼이 육체의 장막을 떠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육체와 영혼의 분리입니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도 "혼 나간다" "혼 나갈뻔 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로마의 우르반 대학의 대 강당에 이런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
    오래전 법대를 다니는 학생이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학업을 계속할 수 없자 필립 네리란 예수 잘 믿는 부자 노인을 찾아왔습니다. 네리는 그 청년의 요청을 들어 주기로 한 후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노인/ 그런데 이 돈으로 무엇을 하겠오?
    학생:우선 법대를 졸업해야 하겠습니다.
    노인/그리고 그 다음에는?
    학생:변호사가 되렵니다.
    노인/그리고 그 다음에는?
    학생:돈을 벌겠습니다.
    노인/그리고 그 다음에는?
    학생:집을 짓고 그리고 결혼식을 해야지요
    노인/그리고 그 다음에는?
    학생:자녀를 낳고 교육을 시켜야지요
    노인/그리고 그 다음에는?
    학생:점점 늙게 될 것입니다.
    노인/그리고 그 다음에는?
    학생:죽게 되겠지요
    노인/그리고 그 다음에는?
    학생:나도 몰라요
    여러분 ! 그 다음엔 무엇이 있을까요? 심판이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히9:2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그러면 부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장사 되매라는 말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장례가 치루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정말 꿈에도 생각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23절)
    죽으면 끝인줄 알았는데 부자의 영혼은 음부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음부는 지옥을 말합니다. 지옥은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라 단절된 곳입니다. 고통과 괴로움과 미움과 증오가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 부자는 음부의 고통 중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았습니다.
    여러분!
    천국에서는 지옥이 보이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옥에서는 천국이 보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그렇게 지옥을 만드셨을까요? 비교의 고통을 경험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세상의 고통이 많이 있지만 비교의 고통 만큼 아픔을 가져다 주는 정신적인 고통은 업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비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교는 나를 교만하게 만들기도 하고 비참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남편을 다른 남편과 여러분의 아내를 다른 아내와 여러분의 부모를 다른 부모와 여러분의 자녀를 다른 자녀와 비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부자는 그 음부의 고통 속에서도 두 가지를 구합니다. 먼저 24절을 보겠습니다. 음부의 고통 가운데 떨어진 부자가 첫 번째 구한 내용은 나사로의 손 가락 끝에 물 한방울만 떨어 뜨려 내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24절을 다같이 보겠습니다.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꿏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24절)
    지옥은 어떤 곳입니까? 목마름의 고통이 있는 곳입니다. 얼마나 목이 말랐으면 그 타오르는 불꽃 가운데서 손 가락 끝에 물 한 방울만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고 애원했겠습니까? 얼마나 고통 스러웠으면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라고 했겠습니까?
    찜질방에 가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시간대별로 불이 나옵니다. 뜨겁게 맥반석과 같은 돌에다 불을 가하여 빨갛게 달아오른 불이 나오면 사람들은 그 가까운 곳으로 다가가서 불을 쬐이면서 땀을 흘립니다. 그런데 만일 빨갛게 달아오른 그 불가마 속에 들어가라든지 그 빨갛게 달아오른 그 돌 위에 올라가 있으라고 하면 올라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올라가는 순간 오징어처럼 되어 버릴 것입니다 . 차라리 그 불꽃 가운데서 죽어버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지옥의 불은 희한한 불입니다. 활활 타오르는 빛이 없습니다. 고통과 괴로움을 주는 불인데 사람을 태워 죽이지는 않습니다.
    막9:48-49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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