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가 실패하는 이유 2002-11-13 14:38:30 read : 3577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2년 10월 27일 // 여호수아 7: 1-15
성도가 실패하는 이유(수7:1-15)
그리스도인은 단지 교회에 다니는 것만으로,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신 고귀한 존재, 즉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달라야 한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달라야 한다.
만일 사업을 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믿지 않는 사업가와는 달라야 하고,
직장에 다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믿지 않는 직장인과는 달라야 한다.
학교 다니는 그리스도인 학생이라면, 믿지 않는 학생과 달라야 하며,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인 주부라면, 믿지 않는 주부와는 달라야 한다. 그 이유는 2가지이다.
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은 믿지 않는 사람과 구별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② 또한 믿지 않는 사람들도 역시, 그리스도인은 자기들과 다르게 살아주기 원해서,
'믿는 사람이 그렇게 행동을 할 수 있느냐?'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도 세상도, 그리스도인들은 다르게 살기를 기대하신다. 그러면 무엇이 달라야 하나요?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생각이 달라야 한다. 세계관과 가치관이 달라야 한다.
가치관이 중요한 이유는, 그 사람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따라, 삶의 모든 영역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똑같은 상황과 환경인데, 서로 다르게 행동하는 이유는,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생각이 다르면 해석이 달라져서, 결국 행동이 다르게 나타난다.
돈을 써도, 세상 사람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하여 쓰지만,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쓴다.
공부를 해도 자신의 출세를 위하여 하지만,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공부하고 출세한다.
세상 사람들은 현재와, 가까운 미래를 위해 살지만, 성도들은 마지막 심판대 앞을 생각하며 산다.
세상 사람들은 오래 살고(壽), 돈 많고(富), 건강하고(康寧), 덕을 좋아하여 즐거이 행하고(攸好德), 제명대로 즐겁게 살다가 편하게 죽거나(考終命), 또는 존귀하게 되거나(貴) 자손이 많음(子孫衆多)을 '오복'이라며, 복 받았다 성공했다고 말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긍휼이 여기며,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케 하며,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고,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복이라고 믿고 행한다.
이렇게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은 해석이 다르며, 같다면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근거해서, 영적인 시각으로 보고 해석해야 한다.
영적으로 보면, 이 세상은 영적인 싸움터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전쟁용어가 많이 등장한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바울 사도는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고후10:3-4)하였다.
신앙생활은 매일 매일의 전투이다. 성도에게는 날마다 영적 싸움이 있다.
그 싸움은 우리 마음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최전선이다.
영적 전쟁은, 단지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이 가지는, 특별한 은사나 소명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자동적으로, 영적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영적으로 준비되었든 안 되었든, 전투가운데 있기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무장해야 한다.
여호수아서는 승리의 책으로, 가장 사랑 받는 구약의 책 가운데 하나다.
어떻게 하면 승리하고, 어떻게 하면 패배하는지 말해주지만, 결국 승리하고 승리의 열매를 나눈다.
실패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기에, 실패했을 때 원인을 잘 파악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점령해 가는 과정 중에 겪었던 실패의 사례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했을까요?
1. 불순종(1).
지금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은, 승리의 연속이었다.
넘쳐흐르는 요단강을 거뜬히 건너, 가나안 땅으로 당당히 들어갔다. 커다란 여리고 성도 무너뜨렸다.
그 비결은 하나님 말씀에 온전한 순종에 있었다. 온전한 순종이 이적을 만든다.
우리는 때로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다가는,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뒤쳐질까봐, 두려워 떨 때가 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끝까지 순종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기적은 나타난다.
한 번의 순종으로는 상황을 바꿀 수 없어도, 끝까지 순종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역사 하신다.
여리고 성이 어떻게 무너졌는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할 때, 무너졌다.
가나 혼인잔치의 이적도, 온전히 순종할 때 무너졌다.
한참 연회가 무르익고 있을 때, 포도주가 떨어져 더 이상 하객들을 대접할 수 없게 되었다.
이때 손님으로 오셨던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아귀까지 가득 채우라"고 명하셨다.
하인들은 "왜 우리가 물을 채워야 하느냐?"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인들은 따지지 않고, 항아리에 물을 아귀까지 가득 채웠다.
예수님은 다시 명령하셨다. "이제는 그것을 떠서, 하객들에게 나누어 주라"
하인들은 "냉수 먹고 속차리라는 말이냐며, 불평하지 않고, 예수님 말씀에 순종했다"
그들이 맛을 보는 순간,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놀라운 이적이 일어났다.
요단강에 몸을 7번 잠근, 나아만 장군도 마찬가지다.
6번째까지는 몸이 깨끗해지지 않았다. 7번째 물 속에 들어갔을 때에도, 몸은 깨끗하지 않았다.
7번째 몸을 잠그고 나왔을 때, 몸이 깨끗해졌다. (끝까지 순종하면, 역사는 나타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철저히 끝까지 순종하기 바란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면 순종하고, 이해할 수 없다면 복종하라.
온전히 순종하고 복종하는 삶이, 우리 인생의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 낸다.
조그만 아이 성에서, 이스라엘이 대패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기 때문이다.
이 전쟁은 헤렘( )의 전쟁인데, 하나님께 바쳐졌진 전쟁으로, 악을 완전히 멸해야 한다.
수6:18-19을 보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서 분명히 경고하셨다.
여리고 성을 정탐하고 그 성을 무너뜨린 후에, 여리고 성에서 얻은 모든 전리품은, 아무것도 손대지 말고, 모두 하나님 앞에 구별하여 바치라고, 주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아간'은 바쳐진 물건( )에 욕심을 품고, 몰래 감췄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다.
아주 좋은 외투 한 벌과, 금덩이를 보자 탐심이 생겨서,
쥐도 새도 모르게, 아주 은밀하게, 여호와께 바쳐야 할 물건들을 도적질했다.
이 범죄는 어쩌다 모르고 지은 죄가 아니라, 치밀한 계획을 세워 고의적으로 죄를 범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를 싫어하시지만, 고의로 지은 죄에 대해서는 용서가 없다.
실수나 과실로 인한 죄에 대해서는 피할 길을 주시고,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터놓으시지만,
고의로 지은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벌하신다. 한 사람의 범죄로 무고한 36명이 죽고, 이스라엘은 패배하여, 백성들의 마음은 녹아 물 같이 되었다(6).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신다. 속이려고 하지 말라.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신의 재산을 팔아 얼마를 감추고, 하나님을 속이려 하였다가 죽었다(행5장).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우리에게 거룩 하라고 하신다. 승리의 비결이 하나님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범죄는 실패를 부르게 된다. 죄의 결과는 사망이다.
따라서 멋대로 행동해서 죄를 범하지 말고, 말씀에 순종함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자.
2. 교만하면 실패한다(2-3).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의 명성이 그 온 땅에 퍼지니라"(6:27)
그런데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성기를 누린 후에, 수렁으로 굴러 떨어졌다.
왜 교만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자신이 그 일을 이루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성공했다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 없이는 성공이 불가능하다.
(1) 성공 후에 여호수아는 기도하지 않고, 아이 성에 정탐꾼을 보냈다.
여리고 승리에 도취되어, 그 다음 영토를 정복하려는 마음밖에 없었기에, 그는 엎드리지 않았다.
만일 엎드렸다면,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죄를 알게 하시고, 죄를 해결해서 승리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성공 후에, 기도하지 않았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가장 교만한 사람이다.
다윗은 기도의 사람이었는데,
삼상 27장을 보면, 언제부터인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음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기도가 멈추어져 있다면, 기도를 쉬고 있다면, 그는 이미 실패하고 있는 중이며, 패배하고 있는 중이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큰 것을 작게 보는 담대함이 생기고, 작은 것을 크게 보는 겸손함이 생긴다. 이런 은혜가 있기 바란다.
(2) 교만해진 정탐꾼들의 보고
정탐꾼들은 여리고 성에 비교해, 상대적으로 작은 '아이'성을 보고 돌아와서, 이렇게 보고하였다.
"…백성을 다 올라가게 말고, 2-3천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마소서"(3)
이 말은, 자신들이 여리고 성을 함락시켰다는 착각이다.
사실 그들이 한 일은, 여리고 성을 걸어서 돌은 후, 나팔에 맞춰 소리를 질렀을 뿐이다.
함락시키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그런데 자신들이 행한 것처럼 착각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이 말대로, 단지 3천 명쯤 보내어, 아이 성을 치게 했다가 패배하고 말았다.
호랑이도 토끼를 잡을 때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방심하면 당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을 때, 더 큰 시험이 찾아옴을 기억하라.
그래서 "…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고 했다.
은혜를 체험한 후, 감사와 감격이, 흥분과 자랑과 교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
어제의 성공이 오늘의 성공을 보장치 못한다. 어제는 성공하였다고 자만한다면, 오늘은 실패한다.
오늘의 승리가 내일의 승리를 보장치 못한다.
오늘은 승리하였다고 교만하게 내일을 준비하지 않으면, 내일은 패배하게 된다.
따라서 승리한 후에 오는 자만심은, 하나님을 망각하게 만들기에, 늘 겸손히 깨어 있기 바란다.
3. 공동체 의식이 없었다(11).
'아간'이 물건을 훔쳤는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언약을 어겼다고 말씀하셨다(11).
또한 아간이 물건을 훔쳤을 때, 이스라엘이 가문의 계보가 나와,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1, 18).
죄는 한 사람이 짓지만, 죄의 벌은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버지가 놀음을 해서 돈을 날리면, 아버지만 괴로운가? 아니다. 가족 전체가 괴로움을 당한다.
아담의 범죄로 인류에게 죄가 들어오게 되었다.
이처럼 세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한 사람의 죄는 여러 사람에게 크나큰 해가 된다.
아간이 자신의 행동이,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생각했다면, 범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 하나쯤이야'하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몸인 교회는, 단순한 사회 조직체가 아니라, 영적 유기체이기에, 말할 나위도 없다.
그래서 한 성도가 죄를 지으면, 교회의 한 지체이기에, 그 결과가 교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은, 교회를 구성하는 각 성도들의 삶에 따라 결정된다.
좋은 교회는 그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들이 좋으면, 좋은 교회가 된다.
그리스도인이 사랑으로 연합하는 모습은,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강력한 간증이 된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133:1)하였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신앙 속에, 하나로 연합될 때, 위대한 역사를 창조하게 된다.
우리는 공동체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나의 고통은 너의 고통이요, 너의 좌절은 나의 좌절이며, 당신의 범죄는 우리의 범죄다.
당신이 쓰러질 때, 당신 한 사람이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쓰러진다.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위기 속에서, 민족 공동체, 교회 공동체, 가정 공동체가 흔들리고 있다.
어떤 이는 가정을 버리기도 한다. 이럴 때 서로 위로해 주는, 공동체를 형성해 가기를 바란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Red wood'라는 참나무가 있다.
이 참나무는 수령이 2,3천 년쯤 되며, 높이가 100m넘고 둘레도 8-9m나 되는 큰 나무다.
이렇게 큰 나무가 어떻게 비바람을 이겨내는가를 연구하다가, 나무 밑을 파보고는 알아냈다.
이 덩치 큰 나무는 뿌리를 깊이 박고, 다른 나무들과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 까닭에 어떤 기상 변화에서도, 견딜 수 있었다. 신앙 생활도 이와 같다.
전4:10-12에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했다.
성공을 향해 가는데는 상당한 투쟁이 필요하지만, 망하는 데는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계란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계란을 깨는 것은 눈 깜짝할 사이다.
교회를 세우는데는 모두 노력해야 하지만, 교회를 망치는데는 한 사람이 못되게 굴면 망한다.
다시 한번 정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모든 성도들이, 악한 것에 대해 늘 이기도록 계획하셨다.
그런데 가끔 성도들이 패하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1) 하나님께 불순종하기 때문이다.
성도의 능력은 순종에 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악한 것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자.
(2) 교만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약4:6)
가장 교만한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 겸손히 엎드려 기도함으로 승리하자.
(3) 공동체 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되면 무엇이든지 승리할 수 있다.
모기도 모이면 천둥소리를 낼 수 있다. 개미도 모이면 사자와 코끼리를 잡아먹는다.
'나 하나쯤이야 하며' 빠지지 말고, 우리의 힘을 모아서 아름다운 역사를 이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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