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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2002-11-22 10:10:01   read : 3365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마가복음 10:13-16 // 021110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교 사회심리학 교수팀이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거리에 지갑을 떨어뜨리고 그것을 주워간 사람들이 지갑 속의 신분증 주소로 주운 지갑을 돌려준 사람이 얼마나 되었는지를 알아보았습니다. 실험 결과 45%퍼센트가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겨났습니다. 실험 중에 우연히 6월 4일이 들어 있었는데 이날 지갑을 주워간 사람들은 한 명도 되돌려 보내지 않았습니다. 이날은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가 살해당한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로버트 케네디는 당시 인기 절정의 인물로 강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물망에 오른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심리학자들은 '나쁜 소식이 사람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만드느냐?'하는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소식을 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나쁜 소식을 주어 그들의 반응을 살폈더니, 확실하게 좋은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협력적이고 덜 비판적이며 선의를 남에게 나타냈다고 합니다. 반면에 나쁜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비판적이고 비협조적이었으며 심지어 파괴적이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오몽근, 고난 맞서서 이기고 죄는 피해서 이기라. p.149)



    성도 여러분, 좋은 소식이냐 나쁜 소식이냐에 따라 삶의 태도가 바뀝니다. 더 나아가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바뀔 수도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자녀들에게는 어떠한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들을 축복해주시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몇 가지 내용에 주목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사람들이 자녀들을 예수님께 데려오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들이 예수님께 자녀들을 데리고 오는 일에 열심이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13절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우리는 이 말씀에서 세 가지 단어를 주목해 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자녀들을 예수님께로 데려오기를 간절히 원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들'이란 단어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어머니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아버지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아우토이스(그들은)'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 단어를 통해서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오는 사람들이 어머니와 아버지들뿐만 아니라, 그의 형이나 누나까지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어린 아이들'이라는 표현은 12살 정도된 아이들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파이디아'라는 말의 번역인데, 평행본문인 누가복음 18장 15절에서는 이 단어 대신, '아기들', '갓난아기' 등을 의미하는 '브레페'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주 어린 아이들로부터 어느 정도 자란 아이들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만져주심'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는 헬라어로 '핲토'로써 '만지다'라는 뜻 외에 '손대다'(touch), '어루만지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일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마태복음 19장 13절에는 이 단어를 '안수하고(케이라스 에피데)'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자녀들을 축복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호크마 성서 주석, 마태복음 편)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사람들이 자녀를 데리고 예수님께 나와 복을 빌어주기를 원하고 있다는데 주목해야 합니다. 여기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당연 하지요.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 그러나, 어떤 성도들은 이 부분에서 기복신앙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복을 빌어 달라고 나온 그 자리에 바로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믿고 복받는 것-잘못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는 예수님 믿고 복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기복신앙이 아닙니다. 우리는 뭐가 기복신앙이며 뭐가 아닌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기복신앙은 복을 잘못된 대상에게 구하는 것-그것이 기복신앙입니다. 예수님께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리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기복신앙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그런 복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복을 끼치는 복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TV에서 참 웃기는 광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홍콩 사람들의 삶을 담은 내용이었습니다.

    여러분, 홍콩이라는 곳이 어떤 곳입니까? 아시아에서는 상당히 발전한 곳입니다. 현대화된 곳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미신이 많은지 아십니까? 글쎄, 복을 빌기 위해서 복을 상징하는 오렌지를 끈에 매어 나무에 던집니다. 그렇게 해서 나무에 걸치면 복이 온다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불운을 제거하기 위해서 자신의 신발 굽을 망치로 계속해서 때리는데, 이런 일을 하는 직업도 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입니까? 아시아에서 그래도 선진국에 속하는 홍콩이라는 나라에 이런 문화가 있다는 것이 믿겨지십니까? 그런데, 실제로 존재합니다. 가상으로 꾸며진 이야기가 아닙니다. 왜 이런 모습이 나타납니까? 물질문명은 발달했지만, 영혼이 고갈되었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고갈되니까, 그나마 이런 미신적인 행동을 통해서라도 안식을 얻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쉼을 얻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해서 쉼을 얻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병든 영혼이 치유될 수 없습니다. 근본적인 치유가 없고서는 결코 병든 영혼이 치유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방법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병든 영혼이 치유받기 위해서는 예수님께 나와야만 합니다. 다른 것으로 치유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용한 의원을 찾아가면, 병든 육체는 치유될 수 있는지 모르지만 병든 영혼이 치유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만이 치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과연, 우리에게 "예수님만이 병든 영혼을 치유할 수 있다"라는 믿음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자녀들이 물질문명에 의해 병들어 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물질문명과 결탁한 성공주의로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는 모습이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아침에 학교에 가는 자녀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애야, 오늘도 하나님께서 너를 지켜주시기를 바란다."라는 말을 해본 성도가 몇이나 있습니까? "열심히 신앙생활 해야 한다"고 말하기보다는 "열심히 공부해야 성공한다"라고 말하기를 더 좋아하지 하지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가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최고의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신앙입니다.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신앙을 물려줄 수 있는 것-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많은 재산을 물려주고 싶으시지요? 내가 가지고 있는 권력과 명예를 물려주고 싶으시지요? 다 소용없습니다. 스스로 노력해서 얻지 않고는 그것의 가치를 알지 못합니다. 세상 돌아가는 거 잘 봐보세요. 재산 물려주었다고 해서 잘 삽니까? 형제들 사이의 우애가 금이 가기 시작해요. 권력도 그렇고 명예도 그렇고 다 똑같습니다. 정말, 여러분의 자녀들이 많은 재산을 갖고, 명예를 누리고 권력을 잡기를 원한다면, 그들 스스로 얻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험한 세상과 맞부딪히면서 살아 자신들이 목적한 바를 성취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것이 부모가 해야 할 일입니다.

    자녀들만을 험한 세상으로 내보내는 것이 걱정되십니까? 그러니까, 먼저 예수님께 인도하라고 말씀드리는 것 아닙니까? 자녀들의 삶이 예수님께 인도함 받고, 주님의 뜻에 따라 살 수 있도록 하라는 것 아닙니까?

    성도 여러분,

    더 이상 우리의 자녀들이 물질문명과 결탁한 성공주의 속으로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예수님께 인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자신부터 변화되어야 합니다.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합니까? 먼저, 우리의 자녀들에게 해를 끼치는 모든 일들을 중단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청소년들에게는 절대로 담배를 팔아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 심부름으로 왔다고 해도 팔아서는 안 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요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사업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건전한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인터넷 사업입니다. 인터넷이 우리의 자녀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굳이 자세하게 말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인터넷에 중독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살 사이트나 음란 사이트에 접속하기도 합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인터넷이 중독된 대다수의 학생들이 몰인정한 아이들로 변하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누구의 잘못입니까? 아이들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아이들이 잘 자라나기만을 바랄 수 있습니까? 어떻게 저들의 영혼이 순전하기를 바라고, 어떻게 저들의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이 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물질문명과 결탁한 성공주의를 은연중에 우리의 자녀들에게 그것만이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물질이 많을수록 많은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녀들을 물질 앞으로 이끌고 나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이름 앞에 자녀의 무릎을 꿇게 하기보다는 물질 앞에 무릎을 꿇게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성도들이 자녀를 키움에 있어서 공부보다는 인간됨을, 인간됨보다는 참된 신앙을 소유한 사람으로 키우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자녀를 키우되 신앙으로 키우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우리 부모는 물질의 노예가 아니라, 물질을 지배할 수 있는 분들이다"라는 강한 인상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서 알 수 있다시피 예수님께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데리고 나옴으로 해서 세상의 물질적인 축복보다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된 자로써의 사명임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2. "제자들의 모습은 어떠했는가?"에 주목해야 합니다.

    얼마 전 어느 교계 신문에는 이런 신문기사가 실렸습니다. "한국교회의 교회학교 학생수가 급감하고 있다. 모든 교회가 공통적으로 처한 이 위기 상황으로 인해 한국교회는 앞으로 점점 더 심각한 노령화와 공동화(空洞化)의 상황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모 교단의 통계위원회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지난 98년 10월부터 99년 8월 교회학교 학생수의 경우 유치부는 109,755명이었으며, 99부터 2000년에는 80,252명, 2000년부터 2001년은 78,642명으로 감소했다.

    특히 중고등부의 경우 98년부터 99년에 238,030명이던 학생수가 2001년의 경우 197,871명으로 20퍼센트 가량 줄었으며, 6년 전의 264,467명에 비해서는 30퍼센트인 70,000명 가량 줄어드는 등 감소폭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다른 모 교단 산하 교회의 교회학교 아동부 숫자도 최근 급격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3년 사이 68,000여 명이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교단의 회의록에 따르면 교단내 아동부 숫자는 96년 182,000여 명에서 98년 114,000명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최윤식, 교사 열정이 주일학교를 살린다, p.17-18)



    여러분,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까? 시간이 지나갈수록 아이들의 수가 줄어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는 그 원인을 오늘 본문 속에 나오는 제자들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오자, 제자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입니까?

    13절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꾸짖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당시 통상적으로 아이들은 낮고 천하며 귀찮은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제자들은 아이들의 행동으로 인해 예수님의 활동이나 가르침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호크마 주석, p.349) 이해가 되시지요? 우리도 이야기하다가 아이들이 방해가 되면, "애들은 가라!"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모습이 오늘날 교회에서도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는데 크나큰 문제가 있습니다. 많은 교회가 아이들을 애물단지로 생각합니다. 교회의 미래가 아이들에게 달려있다고 하면서 정작 아이들의 신앙교육에는 실제 많은 관심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실태를 비디오로 담아보았습니다. 한번 보시지요. <영상 보기>. 화면 속에 나온 교회가 어느 교회입니까? 바로 우리 교회입니다.



    사실, 처음 교회를 건축하려고 할 때에는 선교 교육관까지 건축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설계까지 끝마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IMF 기간 중 교회를 건축하다보니, 경제적인 여건이 안 돼 불가피하게 선교 교육관을 건축하지 못했습니다. 교회 건축을 위해서 우리가 얼마나 정성을 기울였습니까? 매일같이 기도의 제단을 쌓았고 물질적인 헌신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정말 열심히 참여해주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교회 건축을 위해 애쓴 우리 성도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릅니다. 다른 교회의 경우에는 교회를 건축한다고 해서 정든 교회를 떠나는 사람도 있었는데, 우리 교회는 오히려 건축 중에도 성장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IMF 체제 속에서도 헌금 생활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으로 우리의 자라나는 자녀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미안한지 모릅니다. 영상을 통해서 여러분들도 보셨지 않습니까? 한 부서의 예배가 끝나면 곧이어 분반을 하던 학생들이 예배를 드립니다. 분반이 조금이라도 일찍 끝나면, 아이들은 로비에서 기다려야만 합니다. 그러면 안에서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 때문에 대충대충 예배를 드립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분반 공부를 하는 모습은 어떻습니까? 그 시끄러운 식당에서 분반을 합니다. 그러니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물론, "배우는데 무슨 장소가 중요하냐?"라고 말할 분들도 계시겠지만, 집중력이 약한 아이들이 어떻게 이런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할 수 있겠습니까? "예전에는 이보다도 못한 상황에서 하나님 말씀 배웠습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이러한 생각은 구태의연한 생각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유혹하는 세상 문화를 보세요. 이전에는 교회 문화가 세상을 이끌어 갔는데, 지금은 오히려 세상 문화가 교회에 파고들어 교회 문화가 세상 문화에 종속되어 버리고 말았지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 자녀들이 마음껏 신앙생활 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줍시다. 그들이 하나님 안에서 비전을 찾고 평생을 주님께 헌신할 수 있도록 그들의 신앙을 키워나갈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줍시다. 우리 자녀들이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 와서도 쉼을 얻지 못하고 학교와 학원, 그리고 캠퍼스에서와 같이 허겁지겁 인생을 살아간다면, 지친 모습 그대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자녀들에게는 소망을 찾을 수 없게 됩니다. 제자들처럼 주님 앞에 나오는 아이들을 막는 죄를 범하지 맙시다. 그들이 정말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영감있는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그래서 그들의 신앙이 회복되고, 바른 가치관이 정립되어 인생의 참된 목적이 설정될 수 있도록 터전을 허락해줍시다. 그들의 문화로 그들의 생각으로 그들의 가치관으로 하나님을 바로 찬양할 수 있도록 열린 공간을 만들어줍시다. "나는 주일 학교 다니는 자녀를 두지 않았으니깐" - 이렇게 생각하지는 맙시다. 다른 사람을 바로 세우는 것이 바로 나를 세우는 것이요, 이웃의 자녀를 건전한 신앙을 소유한 사람으로 세우는 것이 바로 우리의 자녀를 진실된 신앙인으로 키워가는 지름길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의 미래가 될 아이들을 향한 여러분의 시선을 어떠한 시선입니까? 혹시, 내 신앙을 위해서 아이들이 주님께 오는 것을 막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들의 신앙보다는 내 신앙의 편의만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은 그러한 시선과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제자들을 분히 여겼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3.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을 안수하고 축복하셨다는 데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것을 용납하도록 하십니다. 그리고는 그들을 축복하십니다. 16절 말씀입니다.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지 아십니까? 당시 아이들이 어떠한 취급을 받고 자라야만 했습니까?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낮은 자, 천한 자, 귀찮은 자로 취급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어떻게 대하십니까? 안아주셨습니다. 안수해주셨습니다. 축복해주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축복의 내용은 무엇일까?"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아이들을 안고 안수하며 축복했을 때, 어떠한 말씀으로 축복해주셨겠습니까? 성경은 그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상적인 물질을 풍성히 누릴 것에 대한 축복은 하지 않았으리라 확신합니다. 예수님의 사역 중심에는 세상적인 물질의 풍성함을 얻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권력을 누리는 것을 당신의 사역 중심에 두지 않았습니다. 명예를 얻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사역 중심에 "하나님 나라"를 두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어린 아이들에게도 하나님 나라가 소중하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제자들은 어떠한 상황이었습니까? 서로 누가 더 높으냐를 한창 따질 때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그들의 믿음은 다윗 왕국의 재건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아이들이 예수님 앞에 나아오는 것을 막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오는 사람들의 발길을 막았던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영혼도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의 삶을 누리기를 간절히 소원하셨습니다.

    그럼으로, 저는 예수님의 축복의 내용이 이것이라 생각합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는 내게 정말 특별한 존재다"

    성도 여러분, 바로 이 말씀 속에 우리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담겨져 있다는 것이 느껴지십니까?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너의 삶을 인도해주겠다." "내가 너에게 천국의 삶을 맛보게 해주겠다." "너만이 내가 네게 준비한 천국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해주겠다." - 이런 주님의 음성이 이 시간 여러분의 마음속에 들려지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믿는 아이들이 영향력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예수 믿는 학생들이 이 나라의 비전이 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믿음으로 양육될 수 있도록 힘씁시다. 주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리게 합시다.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실 분도 주님이시요, 지경의 지경을 넓혀주실 분도 주님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실 분도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이와 같은 복을 누리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정 리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제자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오는 어른들을 막았지만, 예수님은 기꺼이 아이들을 안고 안수하며 축복해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우리의 자녀들에게 무엇으로 축복해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까? 돈입니까? 권력입니까? 명예입니까? 아니면, 반드시 성공해야 살 수 있다는 처세술로 그들에게 축복해주고자 하십니까?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복이 정말 중요한 것임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양육합시다. 그들이 바른 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그들의 터전을 만들어줍시다. 그 일이 바로 선교 교육관을 건축하는 일입니다. 물론, 이것이 전부일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마음껏 찬양하고 예배하며, 마음껏 기도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일 수 있을 때, 우리의 사회가 좀더 깨끗해지고 더 많은 영혼들이 주님 앞에 나올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 모두가 이 일에 앞장 서는 귀한 손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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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감사가 넘치게 하라
    탁월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되라
    삶의 균형을 이루라!
    마라에서 엘림으로
    부흥을 확산시키라!
    부흥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되라!
    흔들리지 않는 신앙인이 되라
    부흥을 경험하라
    부흥을 사모하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라
    섬기기를 즐겨하라
    욕망을 다스리라
    평생 사명을 가지라!
    의미 있는 삶이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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