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사역자의 선출 2002-11-21 13:21:24 read : 2770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2-11-10 // 행6:1-7
오늘은 우리 교회에서 일할 일꾼인 장로 삼인을 선거하는 날입니다. 여러분, 누가 될
것 같습니까? 어떤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까?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교회 장로가
되면 이런 질문을 합니다. 교회에서 봉급 얼마나 받습니까?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도 이와 같이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직분자 중에는 우리는 돈
도 안 받고 일한다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잘못된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봉급 얼마나 받느냐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극히 세
상적이고 신앙이 없고 하나님이 없는 사람같이 보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지옥가
지 않고 천국 갈수 있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 가고 있고 이
땅에 나그네로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
님의 은혜를 알면 이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습니다.
저희 집에 큰 아이가 엄마 빨래하는 일을 도와주곤 합니다. 어제도 늦게까지 빨래하는
것을 보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마는 고등학교 3학년때 이 아이가 빨래를 하면서 하는
말이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고3 수험생을 빨래시키는 집은 우리집 밖에 없을거야."
라고 하면서도 엄마의 일을 잘 도와 줍니다.
저희 학교 다닐 때는 봄에 교복 입으면 하복 입을 때까지 빠는 일이 별로 없는데, 요
즘엔 매일같이 갈아 입으니까, 이 딸 아이가 도와 주는데, 이 딸 아이가 한번도 "엄마
나 빨래 했으니까, 돈 주세요."라든가, "너 빨래했으니까, 돈 가져가."하는 이야기를 해
본 일도 없고 들은 적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부모님의 은혜로 내가
살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 백성 된 우리
들이 일좀 한다고 해서 "나 봉급 안 받고 일한다"는 말을 감히 할수 있느냐는 말입니
다. 말이 될 수가 없습니다.
장로는 성직입니다. 목사가 성직인 것처럼, 장로, 권사, 집사, 성가대원, 교회학교 교
사, 주방에서 봉사하는 분들, 청소하는 분들 교회에서 하는 모든 일들이 성직입니다.
이 성직은 구별된 직을 의미합니다. 교회가 성전이고 이 강대상을 성구라고 하는 것입
니다. 저는 이런 강대상을 결혼식장에서 보았습니다. 화려한 조명과 으리으리한 장식
을 이런 강대상이 결혼식장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성구라고 하지 않습니
다. 우리 교회 옆에는 교회보다 몇 배 큰 빌딩이 웅장하게 서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
는 그것을 성전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전, 성구, 성직의 성은 거룩 성(聖)입니다. 거룩한 집이고, 거룩한 물건이고, 거룩한
이를 의미합니다. 거룩하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고, 성
구는 하나님의 물건이고, 성직은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전, 성구, 성직
의 명칭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붙여진 이름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
나님께 쓰임받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가진 능력이나 크기에
따라 붙여진 명칭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시기 때문에 성(聖)자가 붙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좋은 일군의 기준은 그 외모나 가진 능력보다 하나님 앞
에 쓰임 받기에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군 가운데 모세를 보십시오. 사십년 애굽의 왕자로 훈련 잘 받았습니다.
대단한 실력가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나이 팔십세에 부르셨습니다. 살인자요, 도망자로 광야에서 목자생활하던 인생입니다.
하나님 부름 받았을 때에 나는 스스로 자격이 없는 자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하나
님이 그를 쓰십니다. 그 때 하시는 말씀이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십니
다. 하나님의 일꾼은 자기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심의 능력으
로, 하나님이 쓰심으로 큰 인물이 되는 것이 교회 일꾼입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임금 다윗을 보십시오. 교만한 사울왕을 패하시고, 그 대신 왕으로
누구를 선택할까 할 때에 사무엘 선지자는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서 다윗의 아버지 이
새의 집으로 갑니다. 여덟명의 자녀들 가운데 첫째부터 일곱째 까지는 정말로 임금감
입니다. 사무엘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다윗이
라고 하는 작고 보잘 것 없는 아이, 부모조차도 이 아이는 아니라고 할 때, 하나님께
서는 `나는 외모를 보지 않고 마음의 중심을 본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보잘것없는 목동
소년 다윗을 이스라엘의 이대 임금으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다윗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었습니다. 함께
하심을 믿고 그 능력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교회의 일꾼입니다. 사람들은
외모를 보고 판단을 합니다. 어느 학교를 나왔는가, 재산은 어느 정도인가, 사회적인
지위는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 등. 중요합니다. 일하는 데 있어서는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쓰시는 하나님의 일군은 내가 가진 능력보다 하나님께 쓰임받기에
좋은 일군입니다.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만드시고 어리석은 자를 들어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하시면서, 하
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 땅에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일꾼을 가르켜서 성경은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과 관계없는 교회 일꾼은 교회 일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늘 함께 하는 사람, 늘 필
요로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게 되면, 교회의 일꾼을 선출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교회 일꾼으로 쓰시는가 하는 것을 생각
해 볼 수가 있습니다.
교회의 일꾼은 어떤 사람인가?
첫째, 영적인 사람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영을 쫓아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영에 순종하는 사람이 영적인 사
람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백성이 되고 성령이 그 마
음속에 임재하신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
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고, `너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너희 속에 성령이 계신
것을 알지 못하느뇨` 라고 하면서 성령이 우리에게 함께 하심을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임재로 다 된 것이 아니라, 로마서 8장 14절은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
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에
따라 사는 사람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프리카의 선교사 가운데 리빙스턴이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콩고로 가라` 하는 명령을 듣고 콩고로 가서 한 마을을 지나게 되었습니
다. 이 마을의 법은 이 마을을 지나가려면 추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추장이 허락하면 이 마을을 지나갈 수 있습니다. 추장이 허락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순교할 수도 있는 참으로 위급한 상황입니다.
추장이 나타났습니다. 으리으리한 금장식을 하고 부하를 거닐고 나타났는데, 보기만
해도 겁이 납니다. 가진 것을 다 내놓으라고 해서 성경도 내놓고 가재도구도 내 놓고
다 내어 놓는데, 리빙스턴의 마음 속에 다 가져 가고 좋은데 저것만은 가져가지 말았
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성경이 아닙니다. 염소였습니
다.
리빙스턴은 아프리카에서 선교하는 동안 위장병이 생겼습니다. 먹을 수 있는 것이 별
로 없어서 염소 젖을 먹고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 염소만은 제발 가져가지 않기를 바
랍니다.`라고 하는데, 그 기도를 들으셨을까요? 아닙니다. 그리고, 추장이 그 염소를
가져가면서 막대기 하나를 던져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럴 수 있습니까? 그렇게 가져가지 말라고 기도했는데, 염소를 가져가고, 그
대신 막대기 달랑 하나 던져 놓고 갑니까?"
그러자, 옆에 있던 안내인이 이와 같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선교사님, 그 막대기는 중요한 막대기입니다. 이것은 추장의 막대기, 홀입니다. 이 막
대기만 있으면 이 지역의 어느 마을을 지나가더라도 무사 통과할 뿐만 아니라, 왕이
받는 대접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리빙스턴은 그 때 깨달았습니다. `선교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
인줄로 믿습니다.`
내 소원대로라면, 염소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염소 하나가 아니라, 그
위험한 상황들을 다 아시고 그 상황들을 무사통과할 수 있는 이 홀을 주신 것입니다.
홀만 있으면 지나 가기만 하겠습니까? 염소젖만 먹겠습니까? 그 이상의 것도 다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리빙스턴에게 마음의 평안이 왔습니다. 그리고 기쁨이 솟습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고 복음 증거 했을 때에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 올
수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대로 사는 사람
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일꾼은 이처럼 영적인 사람이 되어
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들은 교회의 일꾼으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3절에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
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교회일꾼의 자격은 성령 충만, 지혜 충만, 그리고 사람들에
게 칭찬받는 사람입니다. 성령충만은 성령에 완전히 사로잡힌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지혜 충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인만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입
니다. 성령에 사로잡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충만한 사람, 하나님만 바라
보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영적인 사람입니다. 하나님 없이는 안 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세우신 귀한 일꾼들을 알지 않습니까? 모세를 보십시오. 출애굽의 지
도자입니다. 광야 사십년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낸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입니
다. 그는 가나안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바라보면서 그 고생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네 사명 다 끝났다.`라고 하실 때 모세는 그 말씀에 순종합니다.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고 느보산에 올라가서 120세에 장렬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 올라가서 아들 이삭을 바칩니다. 그는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겸손히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요셉은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러
나, 그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원망불평하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
합니다. 그래서 그는 애굽의 국무총리로 세우십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 갑
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섬깁니다. 하나님 섬기는 것 때문에 고통받지만, 한번도 하나님
불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높이 들어 쓰셨습니다. 다윗은 사랑하는 아들이 죽
기 때문에 병 낫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지만, 이 아들이 죽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하고 겸손합니다.
욥을 보십시오. 의인입니다. 그러나, 고난을 받습니다. `고난 중에도 나의 가는 길을
주께서 아시나니 나를 이와 같이 단련하신 후에도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하면서 욥이
나 다윗이나 요셉이나 다니엘이나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다 하나
님 앞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고 순종하며 또 그 안에서 겸손한 삶을 살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적인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축복하시고 이런 사
람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사람은 어려운
일을 당해도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양순하라고 하셨습니다.
뱀이 왜 지혜롭습니까? 뱀의 지혜가 무엇입니까? 뱀은 다리가 없습니다. 배로 다닙니
다. 그러나, 뱀을 보면 땅을 가던지, 물 속을 가던지, 나무나 우리가 가기 힘든 돌짝
밭에도 올라갔다 내려 갔다 어떤 상황과 형편에도 잘 갑니다.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하는 지혜입니다. 내가 좋은 때만이 좋은 것이 아니라 어려운 때에도 좋은
것을 알고 이 상황을 잘 감당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지혜가 없는 사람들은 조금만 어려운 일 당하면 시험
에 들고 맙니다. "그 교회 안가겠습니다. 봉사 안 하겠습니다." 이런 말들을 합니다.
영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이 없는 사람, 영이 타락한 사람 육신대로
사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 이익을 위해 삽니다. 그래서, 세상과 사람을 경쟁상대로 보
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움, 시기, 질투가 있는 사람입니다. 부부지간에도 하나님의 영
이 떠나가니까, 아담이 하와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형제지간에도 하나님의 영이 떠
나가니까, 가인이 아벨을 죽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나고, 영적으로 타락한 사람은 지혜가 없습니다. 어려운 상황을 당하
면 시험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사람, 어려운 일이 있어도 하나님만 바라
보고 그 안에 승리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영적인 사람은 예수님을 닮아 갑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된다는 것입니다. 부부는
서로 닮는다고 합니다. 부부라고 다 닮습니까? 아닙니다. 안 닮는 부부도 얼마든지 있
습니다. 부부가 닮는다는 것은 식성이 닮고 취미가 닮아 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람
이 생각이 같을 수가 있습니까? 양보하고 겸손하고 이해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겠
습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다 쉽게 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영의 지배를 받으면서 우리의 주어진 상황 속에 이것도 하나님의 은
혜인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게 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것입
니다.
찬송가에도 있지 않습니까?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그 맘에 평강이 찾아옴은 험악한 세상을 이길 힘이 하늘로부
터 임함이로다 주님의 마음 본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우리가 주님을 본받고 주님 본받기 위해 내 정욕 다 버리면 주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
기십니다.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그리스도
가 사는 것입니다. 쉼이 있고 평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소망을 갖게 되
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철저히 하나님의 영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직책을 가졌다고 되는 것도 아니며, 시간을 오래 끈다고 되는 것도 아니며 주님 바라
보고 주님을 닮아야 됩니다. 주님 때문에 손해를 봐야 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세상을 보라 그러면 고뇌할 것이다
당신의 자신 내부를 보라 그러면 의기소침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보라 그러면 쉼을 얻을 것이다
주님 우리에게 힘 주시고 능력 주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영적인 사람은 언제나 하
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언제나 겸
손합니다. 모든 것을 내어 놓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장로 임직을 받는 분들이 피택이 되면 이 분들에게 경건 카드를 내주려고 합니
다. 그래서 주일 낮 예배, 오후 예배, 수요 기도회, 심야 기도회, 새벽 기도회, 성경공
부반, 경조사 참여 여부등 모든 것을 했느냐 안했느냐를 기록해서 경건카드를 받으려
고 합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예배 드리는 사람이 예배 드리지 않는 사람보다 더 믿음이 좋습니
다. 성경 안 본 사람보다 본 사람이 더 낫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십일조도 마찬가
지입니다. 하나님의 영에 이끌려 사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일을 외면할 수가 있습니
까?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의 영적인 사람이 영적인 사람이 하나님의 교회의 일꾼이 되
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두 번째는 사역자입니다. 교회 일꾼은 사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역자는 일꾼이고 일
하는 사람입니다. 초대교회에 문제가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어떤 사람입니까? 성령충
만하고 삼천명, 오천명이 돌아오고 부흥하는 교회입니다. 성도들이 감동 받아서 자기
의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참으로 향기롭고 아름다운 교회입니
다. 그러나, 이런 교회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구제하는 데 있어, 누구는 적게 주고
누구는 많이 나오느냐 하는 것으로 원망과 불평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일꾼을 세우는데, 이 일꾼들이 어떤 일꾼이냐 하면 문제 해결을 위
해 세운 일꾼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사역자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꾼이 타락하면 자기 역할을 오해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오히려 더
크게 만듭니다. 비난하고 거짓증거합니다. 이러면 안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 무디 목사님이 그 옛날에 삼천명을 놓고 설교를 했습니다. 마이
크 없이 삼천명한테 설교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듭니까? 혼신의 힘을 기울여 설교를
하고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한 넥타이를 맨 한 점잖은 신사 한 사람이 찾아 와서는
"목사님, 오늘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 설교를 한시간 반 이상 듣다
보니, 설교 가운데 영문법적으로 틀린 곳이 열 여섯군데나 나왔습니다." 하는 것입니
다.
그래서, 무디 목사님은 웃으며 "선생님, 참 잘 보셨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배 이상
은 틀렸을 것입니다. 제가 배운게 별로 없어서 그렇습니다. 저는 적게 배운 이 지식
갖고 주님의 복음 증거하는데 쓸려고 크게 애를 씁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좋은 지식
갖고 주를 위해 쓰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교회 일꾼은 문제를 해결하고 덮어주며, 문제 있는 사람을 세워 주는 것이 교
회 일꾼이지, 문제점을 찾아내고 비난하는 사람이 교회 일꾼이 아닙니다.
교회에 무슨 일이나 있어야 재미 있는 것처럼, "목사님 일 없대? 장로님 무슨 일 없
대?"합니다. 교회에 무슨 일이 있어야 좋겠습니까? 무슨 정보원이라도 됩니까? 작은
문제 하나 갖고 크게 만들어 교회를 시끄럽게 만드는 그런 일이 우리 교회에는 없겠지
만 이런 일이 교회 공동체 속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일꾼을 세우는 것은 비난
하라고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있는 사람을 문제를 잘 마무리 해주고 세워주는
것이 교회의 일꾼이 하는 일입니다.
여러분, 바리새인의 뜻은 분리주의자입니다. 이들이 왜 분리주의자입니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던 이들이 우리가 이런 포로 생활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해
서 그러하니 말씀 연구하자해서 말씀의 박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율법을 갖고
이들이 한 것이 무엇입니까? 교인들의 죄만 찾아 내는 것입니다. `넌 이런 죄를 지었
고 저런 죄를 지었다.` 교회가 이들을 가리켜서 성경의 박사임에도 불구하고 분리주의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런 바리새인들을 가리켜서 독사의 자식들아 하시며
하나님 교회의 암덩어리라고 하십니다.
율법의 정신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을 구원해서 하나님의 자녀
를 만드는 것입니다. 교회 일꾼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죽어가는 이를
살리우는 일에 앞장 설 때 이것이 진정한 교회 일꾼의 모습인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 교회 일꾼은 자리를 잘 지켜야 합니다.
조금만 문제 있으면 떠날려고 하는 것은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부르나이 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더운 지방이니까, 모기가 많습니다. 모기를 박멸하
려고 해서 정부에서 디디티를 대량 살포했습니다. 생각대로 모기가 없어지고, 모기가
없어지니까, 모기가 가져오는 학질이나 말라리아에 걸릴 일이 없어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모기가 사라지고 난 후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모기를 잡아먹고 사는
말벌이 모두 죽어버렸습니다. 이 말벌은 모기 뿐 아니라 나방도 잡아 먹었는데, 말벌
이 죽자, 나방이 급격히 번성하게 되고, 이 나방이 주민이 사는 집 지붕에 들어가 뜯
어 먹기 시작합니다. 지붕이 남아 나지 않아 비가 새고, 많은 오두막들이 힘없이 무너
지는 것입니다.
이번엔 나방을 죽일려고 지붕에 대량의 디디티를 살포했습니다. 그래서 나방과 파리가
죽었는데, 파리를 잡아먹던 도마뱀이 디디티 먹은 파리를 먹고 죽게 되고, 쥐들을 잡
아먹던 도마뱀들이 죽게 되자, 그 결과 쥐들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쥐들이 많
게 되자, 페스트라는 질병이 창궐합니다.
곤경에 빠진 정부는, 곳곳에 고양이들을 내려 놓았다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어디에나 어려움이 있고,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잠언 16장에 하나님께서 악한 것도 적당하게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이 세상에 완벽한 교회는 없습니다. 초대교회도 완벽하지 못
했습니다. 우리에게 일하라고 직분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가족은 완벽합니까? 부부가 사랑하고, 부모자식간에 그렇게 사랑합니까?
완벽합니까? 아닙니다. 문제 있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이유는 서로 사랑하고 세워주
기 때문입니다. 맘에 안 든다고 이렇게 갈라지고, 저렇게 갈라진다면, 갈라지지 않을
집들이 어디에 있습니까? 다 참고 사는 것입니다.
교회 일꾼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세워주려는 마음으로 살아 갈 때에 교회가 하나 되
는 것입니다. 원로 목사, 원로 장로를 없애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한 교회에 장로로 이십년을 있었다고 한다면, 장로로만 있었겠습니까?
장로 되기 전에 적어도 몇 십년은 있었을 것 아닙니까? 몇십년 동안 한 교회를 섬긴다
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기분 좋은 일만 있었겠습니까? 힘들고 어려운 일들, 교회를
떠나고 싶은 맘이 들고 싶은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를 지킨 것입니다.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귀한 일입니다. 내 맘에 안 든다고 이리 저리 떠나고
흩어진다면 그것이 좋은 것입니까?
진정으로 좋은 교회는 내가 일할 수 있는 교회, 사역이 있는 교회가 진정 좋은 교회입
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평가하실 때에 무엇으로 평가하시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우
리에게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살아있는 돌이
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돌이 어떻게 살아 있을 수 있습니까? 버려진 돌이 하나님
전의 모퉁이 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냥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하면 버려진 돌입니
다.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나, 모퉁이 돌에 나의 작은 돌을 가져다 놓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쓰임받는 돌이 살아 있는 돌입니다.
산 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장로는 특히 목사의 협력자입니다. 어떻게 협력하시겠습니까? 부족하지만, 서로 위해
주고, 도와주는 길밖에 없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이 항상 좋은 사람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드립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들이 좋은 사람 되게 해 달라고도 기도합
니다. 내가 너 만나서 복덩이다 하는 소리 들어야 하지 않습니까? 반대로 얼굴도 보기
싫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보면서, 하나님 제가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를 원
합니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교회의 일꾼입니다.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며 세
워 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주시고 승리케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영적인 사람이 타락하면 사역에 얼마나 성공을 했는가에 가치를 둡니다. 달란트 비유
를 보십시오. 다섯달란트 남긴 사람만 칭찬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남긴 사람에게는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
리를 보실 때에 교인의 숫자나 성전의 크고 작음을 물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얼
마나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사람다운 가를 보시는 것입니다.
저는 `가난한 과부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합니다. 내 가진 것 다 드려 주님을 섬
기고 주님이 정말로 너는 부자다 라고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일꾼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로 이 모습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향기로운 재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
인줄로 믿습니다. 어떤 일꾼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어떤 일꾼이 되어야 겠습니까?
영적 사역자가 우리 교회의 일꾼이요, 우리들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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