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사람 2002-11-12 18:50:25 read : 4340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롬8:5-11)
세상을 즐겁게 살기 위해서 어떤 사람이 여러 가지 재미있는 제안을 했습니다.
1) 아내(남편)에게 꽃을 선물하라
2) 지갑에 100만원의 현금을 갖고 다니라
3) 가끔 모르는 사람의 요금을 대신 내주라.
4) 모르는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라
5) 항상 잘 닦인 구두, 최고급의 옷을 입어라
6) 모르는 사람에게도 상냥하게 인사하라.
그 가운데 마지막 특별히 항상 "세 가지 새로운 유머를 알아두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저와 여러분의 즐거운 삶을 위해서 유머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 영화를 찍는 감독이 죽을 때에는 무엇이라고 말하면서 죽을 것 같습니까?
"나 이제 죽습니다. Ready go!"
일평생 동안 "Ready go!"라는 말만 외쳤으니까, 자기가 죽을 때도 그 말을 외치면서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코미디언은 죽을 때 무엇이라고 말하면서 죽을 것 같습니까?
"웃지 마세요! 저 진짜로 죽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장의사는 죽을 때 무엇이라고 말하면서 죽을 것 같습니까?
"드디어 내가 우리 집 매상을 올리게 되었도다!"
그러면서 죽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그러나 아주 죽는게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육의 사람이 아니고 영의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으면 이제부터 우리는 육신을 좇아 살지 않고 영을 좇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육의 사람이 아닌 영의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몸부림을 쳤다는 것입니다.
1948년 화란의 암스테르담에서 세계교회협의회가 열렸습니다.
그때 세계 각국의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한 자리에 다 모였습니다. 첫날 개회예배를 드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의아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강단 앞에 큰 관이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얀 꽃들로 주변을 장식했습니다. 누군가의 장례식을 치르는 광경이었습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곳에 참석한 사람 가운데 누가 사고로 돌발적인 죽음을 당했구나! 그래서 갑자기 이 시간에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구나!"
드디어 사회자의 인도에 따라 모든 사람이 한 줄로 서서 관속에 있는 사람에게 조의를 표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씩 앞으로 나와서 관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모두가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는 사람의 시체가 들어있는 것이 아니고 큰 거울이 하나 놓여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관속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누구의 모습을 쳐다보았겠습니까? 각자가 자기의 얼굴을 쳐다본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뜻이었겠습니까?
영의 일을 생각하기 위해서 육신의 일들은 장사지낸바 되어버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영은 의로 인하여 산 것입니다.
잠시 잠깐의 세상입니다.
죄로 인하여 죽은 몸의 행실에 따라서 살려고 하지 맙시다.
날마다 우리의 몸을 쳐서 복종시키며 영을 좇아서 영의 일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를 구주와 주님으로 모셨음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사망에서 이미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한 마디로 더 이상 육신을 좇아서 살지 말고, 영을 좇아서 살라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는 영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육신의 삶을 쫒아 살면 그것은 곧 사망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을 좇아서 살아갈 때 그 속에는 생명이 있고 평안이 있습니다.
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기 전에는 육신을 좇아서 살았습니다.
육신의 일들을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음으로 영을 좇아서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언제나 영적인가 육 적인가를 가지고 사람을 분별했습니다.
아벨은 영에 속한 사람이었지만 가인은 육에 속했습니다.
그래서 가인은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영에 속했지만 사울은 육에 속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왕위를 빼앗기고 최초의 자살자가 되었습니다
이삭은 영에 속했지만 이스마엘은 육에 속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은 지금까지도 이스라엘은 대적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영에 속했지만 에서는 육에 속했습니다.
그래서 에서는 약속의 축복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나사로는 영에 속했지만 부자는 육에 속했습니다.
그래서 부자는 지옥 불에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이와 같은 일은 우리의 삶에 그대로 공존되어 재현되고 있습니다.
인간이 근본이 영적인 존재이지만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아주 달라질 수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영이 없는 동물처럼 같은 동족인 사람을 죽이고 온갖 죄악을 저지릅니다.
신문에 기사를 보면 아들이 부모 살해한 뒤 창고에 사체 유기
전남 무안경찰서는 8일 부모를 둔기로 때려 살해한 혐의로 박모(29.)씨를 긴급체포했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전날밤 자신의 집에서 아버지 박모(52), 어머니 김모(43)씨와 말다툼을 벌이다 부모를 둔기로 때려 숨지게 한 뒤 사체를 마당 창고에 유기한 혐의다. 박씨는 안방 장롱 속에 숨어있다 안방 문이 잠겨 있는 것을 이상히 여긴 경찰에게 붙잡혔다. [연합]
사람은 마귀처럼 악할 수도 있으며 천사와 같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육신의 일을 쫒아 살면 어떻게 됩니까?
6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사망입니다.
그러나 영의 생각 속에 생명이 있고 평안이 있습니다.
육신을 좇는 자란 부패하고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좇아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이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 방탕과 연락과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나 영을 좇는 자란 성령, 즉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이란 "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같은 것입니다.
이런 열매를 맺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생명과 평안을 주십니다.
왜 우리가 육신의 일을 생각해서는 안됩니까?
7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며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의사가 없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과는 정상반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육신의 생각에 이끌리게 되면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법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8절 말씀을 보십시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의 희생을 통해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아니하십니다.
여러분!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이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결코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시련이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까닭입니다.
영의 사람으로 바꾸려고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직도 우리를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육의 생각을 영의 생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영의 생각만이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에 있는 자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우리는 몸의 행실을 죽이면서 살아야 합니다.
9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자가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아무리 윤리적으로 완벽하게 살고 도덕적으로 착하게 산다 할지라도 그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0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두 가지가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몸"은 "영"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죄"는 "의"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죽은 것"은 "산 것"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몸이 아니라 영을 택해야 할 것입니다.
죄가 아니라 의를 택해야 할 것입니다.
죽은 것이 아니라 산 것을 택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부패한 육신도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 홀연히 변화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11절 말씀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 우리의 부패한 육신도 변화가 될 것입니다.
육의 몸은 신령한 몸으로 바뀌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을 쳐서 복종시키며 영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생각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세상 적인 정욕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하려면 우리 마음을 하나님에 대한 생각만으로 가득 채우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고무 보트는 튜브 안에 공기가 가득 차 있을 대 비로소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이 온통 아내에 대한 생각만으로 가득 차 있는 남편은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팔지 않게 마련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자의 마음이 오로지 주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할 때 그는 육 적인 일에 끌려가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육적인 것을 철저하게 끊어야 합니다. 육 적인 것 대신 영적인 것을 가득 채워야 합니다.
어느 주일 아침 미국으로 이민간지 10여 년쯤 된 교포 부부가
작은 말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일주일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바닷가로 놀러가자"는 것이고 부인은 "그래도 명색이 집사라는 사람이 어떻게 주일날 교회 안가고 놀러 가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부인은 남편이 일주일동안 일에 지쳐 모처럼 꺼낸 말을 거절할 수 없어서 승낙하고 바닷가로 가서 친구들 부부와 어울려 하루를 잘 보냈습니다.
친구들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남편은 몇 잔의 술까지 마셨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이 "운전할 수 있겠느냐"는 걱정에 "이 정도면 문제될 것 없다"고 하면서 귀가했는데 바닷가를 떠난 지 30분도 안되어 앞에서 오는 컨테이너 트럭과 정면으로 부딪쳤고 부인은 그 자리에서 숨지고 남편은 병원으로 옮기던 중 죽었습니다.
장례식을 마친 많은 사람들이 남긴 말은 두 마디였습니다. "주일날 교회 갔더라면..." "술이 원수야." 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비참합니까?
셋째는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합니다.
최근 심리학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존재다."
이 말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인간은 변화하는 것만큼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고, 생각하는 것만큼 변화하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생각하는 만큼의 세계를 산다는 것입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얼마만큼의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만큼의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환경이 달라지면 생각이 달라질 줄 알지만 아닙니다. 환경이 아무리 달라져도 생각이 달라지지 않는 사람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일생동안 살아가면서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 등을 겪는데 이 모든 문제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바로 '생각'입니다.
원래 태어날 때부터 성공적으로 태어난 사람은 그 누구도 없습니다.
또 행복하게, 불행하게 결정되어 태어난 사람도 없습니다.
선하게 되거나 악하게 되는 것이 남에게나 환경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각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사람의 운명은 그 생각이 결정합니다.
마음의 생각으로 선하게 살아야지 하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 됩니다.
공부하는 사람이 "내가 공부해야지"라는 생각 때문에 공부를 하게 됩니다.
"남에게 사랑을 베풀어야지"하는 생각이 마음 속에서 우러나면 그 사람은 남에게 선과 자비를 베풀게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생각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닮아서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닮는다고 할 때 어떤 행동을 닮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생각이 주님과 같아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먼저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는 사람은 그 생각을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는 뜻입니다.
우리 속의 모든 생각을 다 주님께서 지배하시고 다스리시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생각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생각으로 사람을 죽이고 살립니다.
악한 생각이 결국은 사람을 악하게 만들고 선한 생각이 사람을 선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하나를 바로 가지면 위대해 질 수 있습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욕심의 본능을 따라 자기중심적입니다. 자기정욕에 매여 삽니다. 교만과 욕심 더러운 마음에 매이면 결국은 자신을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복은 곧 생각하나의 차이입니다.
내가 믿는다는 것은 믿음을 생각하는 것이고 내가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생애와 운명은 그 사람의 생각여하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생각을 바로 가짐으로써 내 운명을 바꾸어야합니다.
무슨 생각을 마음에 심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달라집니다.
생각은 씨앗과 같아서 행동을 싹이 나고 습관으로 뿌리내리고 품성을 자라서 인격이라는 열매를 맺고 운명이라는 결과를 추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곧 성령의 생각을 해야 합니다.
성령의 생각을 한다는 것은 언제나 무슨 일을 할 때
"하나님은 이럴 때 어떻게 생각하실까?"하는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로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라도 2:5)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생각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마음은 무슨 생각을 품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잠언 15:13에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생각은 감사와 기쁨과 행복한 생각이며 근심을 몰아내고 소망의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생각을 가집시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가 행복하게 평안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우리 심령 속에 평안이 충만해야 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러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청주에 어느 교회 목사님의 전하는 이런 인상 깊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목사님의 친구가 장애인으로서 판사가 되었는데 그 가정 내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두 분은 제천 한 마을에서 함께 자랐는데 목사님 집은 잘 살고, 친구 집은 너무 가난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아버지가 술만 마시고 도박을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집도 논도 밭도 팔아서 도박으로 날려버려서 어머니는 삯바느질을 해서 근근히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도박해서 돈을 다 잃고 눈이 벌개져서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그 어머니에게 "돈 내놔"라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여보, 논밭 팔고 집도 팔아 거지같이 셋집에 들어와서 삯바느질을 하는데 무슨 돈이 있소?"라고 하니까 "바느질해서 번 돈 있잖아. 내놔."라고 했습니다. 그 때 어머니가 돈을 주지 않으니까 아버지는 홧김에 잠자고 있던 아들을 들어서 마당에 던져버렸습니다. 그로 인해서 이 아들은 척추가 어긋나고 다리가 부러져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이 아들이 장애인이니까 아이들이 함께 놀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는 골방에서 기도하며 공부만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수재가 되어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판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장애인 아들이 아버지를 모시고 관광하러 다닙니다. 아버지에게 정중히 효도를 다했습니다. 온 고을 사람들이 판사가 된 것보다도 효성을 다 하는 그 아들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자기를 장애인으로 만든 아버지인데도 그의 생각이 긍정적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원망하거나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뜻이 계셔서 아버지를 만나게 하셨고, 또 내가 장애인이 되어서 오히려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고 생각 한 것입니다.
생각을 바꿈으로 말미암아 위대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아버지를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골방에서 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긍정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를 살려냈습니다.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 편으로 돌려놓읍시다.
계속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하신 은혜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생각 할 때에 우리의 인격이 달라지며, 운명이 바뀌며, 불행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으로, 실패자가 성공한 사람으로 바뀔 줄 믿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중심, 자기 교만, 자기욕심 이런 것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의 유업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마귀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마귀는 사람의 생각을 나쁘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선하게 만드십니다.
"회개한다"는 말은 "생각을 갈아넣는다"는 뜻입니다.
생각을 바꾸어 넣는 것이 회개입니다.
우리가 잘못 가는 길에서 돌아서는 것은 생각이 바뀌어야 가능합니다.
생각을 바꾸지 않고는 불의한 길에서 돌아 설 수가 없습니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이사야 55:7)
하나님께로 돌아오려면 먼저 불의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 생각을 스스로 조절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생각을 조절하기 위하여 성령께서 내 생각을 다스리시도록 맡겨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내 안에서 역사 하셔서 내 생각을 성령의 생각으로 바꾸어 주실 때에 주님의 마음이 됩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게 됩니다.
로마서 8:9에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속에 성령님이 거하시면 우리가 육신의 생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으로 사는 사람이 됩니다.
물론 우리는 인간이라 나쁜 생각이 머리에 스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 속에 나쁜 생각이 자리잡지 못 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잠시 욕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 품지 말아야 합니다.
못된 생각을 털어 버려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내 생각을 다스리시도록 맡겨야 합니다.
그리하여 내 마음을 주님의 생각으로 채워야 합니다.
그러면 생명이 넘쳐 날 것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항상 행복한 것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행복한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해지고 불행한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해집니다. 행복과 불행은 환경으로 인한 것이 아니요, 자기의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불평하고, 불만하고, 탄식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쓴잔을 스스로 마시는 것입니다.
언제나 감사한 것을 생각하고 좋은 것을 생각하면서 그 마음에 항상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소망으로 채울 때 그 사람은 행복합니다.
천국을 생각하고 좋으시고 사랑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마음 속에 생각하면서 주님께서 내게 주시는 약속을 꼭 믿으며 사는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섭섭한 생각, 미운 생각, 원통한 생각, 분한 생각을 품고 있으면 불행해집니다.
그 때 주님께서 주신 은혜를 생각하고 주님께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사해주시기 위하여 십자가 지신 사랑과 용서하심을 회상하면서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가난할 때 가난을 원망하지 말고 머리 둘 곳도 없이 사신 주님을 생각하고
고난이나 환란이 왔을 때 주님께서 당하신 십자가의 고난을 생각하고,
내가 배신당해서 억울할 때 제자들로부터 배신당하신 주님의 고통을 생각하고,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빌라도 법정에서 억울한 누명을 받고서도 "아버지여 저들은 알지 못하여 그러하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주시옵소서"하시던 주님의 십자가 위에서의 기도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주님 생각으로 채우면 행복한 삶이 됩니다.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죄악가운데서 살아온 것을 회상해 보십시오.
주님이 여기가지 인도해 주신 것, 보호해 주신 것, 생각하십시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올 것입니다.
여기까지 살아온 것이 기적입니다.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겨오면서 여기까지 살아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에게 이런 은혜를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나의 부모를 보내주시고 친구를 만나게 하시고, 가족을 만나게 하신 것을 생각하면서 감사하십시다.
예수님은 마6:33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영을 좇아서 영의 일을 생각하면서 살아갈 때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의 발걸음은 평탄할 것이며 형통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람은 육의 일에 치중하지 말고 영의 일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살다 보면 우리의 부패한 육신 때문에 영과 육의 갈등 속에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육의 사람처럼 육신의 일에 치중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사람답게 우리의 육신을 쳐서 복종시키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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