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어버이 사랑의 무게는? 2002-07-29 19:02:24 read : 1552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본문 : 삼하18:31-19:8 어버이주일 2001.5.13
생명이 있는 모든 동물들은 어미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다 있
습니다. 물론 인간은 두말할 것 없지만 새나 동물이나 곤충이나 어류
등의 생활상을 보면 자기들이 낳은 새끼에 대한 사랑은 얼마나 강한
지 모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연어는 자기가 낳은 새끼들의 먹이가 되
기 위해 알을 낳은 후 죽습니다. 문어도 보면 알을 낳고는 얼마 있지
않아 죽습니다. 부리가 매우 발달한 페리칸이란 새는 큰 부리 주머니
를 이용하여 다른 새들이 공격해 올 때면 새끼들을 그 부리주머니에
넣어 안전하게 보호합니다. 그리고 추운 겨울이 되어 먹이 구하기가
어려울 때면, 페리칸은 최후의 수단으로 그 커다랗고 긴 부리를 이용
하여 앞가슴의 털을 마구 뜯어냅니다. 그리고는 날카로운 부리 끝으
로 살점을 집어내어 새끼들에게 먹입니다. 떨어지는 살점에는 피가 낭
자하고 그 고통이야말로 다 형용할 수 없지만 페리칸은 생명이 다하
는 최후의 순간까지 새끼를 위하여 사랑을 쏟습니다.
물고기 중에도 페리칸과 같은 가시고기가 있습니다. 이 고기는 작
은 민물고기로서 엄마 가시고기가 알을 낳은 후 어디론가 가버리면 아
빠 가시고기는 혼자 남아서 알을 돌봅니다. 알들을 먹으려고 달려드
는 다른 물고기들과 목숨을 걸고 싸웁니다. 먹지도 않고 잠자지도 않
고 열심히 알들을 보호합니다. 이윽고 알들이 부화합니다. 새끼들이
제 갈 길로 가고 나면 홀로 남은 아빠 가시고기는 돌 틈에 머리를 처
박고 죽어 버립니다.
새끼를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본능적인
요소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말잘 듣는 자식, 효도하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쉽습니다. 요즘같이 세태가 악하여 부모를 버리는 자식
들도 늘어나고 자식을 아예 낳으려고 하지 않는 젊은이들도 늘어나고
있고, 오직 자신들의 삶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아버지 어머니의 삶
은 배려해 주지 않는 이기적인 자식들의 모습을 알면서도, 당신들의
이익을 찾기보다는 오직 자식들이 잘되는 것을 소망하면서, 자신들은
정작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아프고 관절이 아프고 쑤시고 결리는 몸으
로 그렇게도 덩치 큰손자 손녀들을 돌보시는 것은 부모의 사랑이 아니
고 무엇입니까?
이런 세태 속에서 지난 8일에 어버이날을 맞이해서 당한 일을 어
떤 분이 글을 썼는데 자녀들이 억지로 가자고 해서 따라가니 옷을 사
주는데 실랑이를 벌이고 또 식당으로 안내하여 가는데 마치 그것은 납
치 당한 것과도 같았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을 맞았습니
다. 우리가 특별한 날을 정하여 특별히 지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
가 있습니다. 어버이날을 정하여 지키는 것은 아마도 어버이에 대한
사랑을 생각하며 어버이를 공경하자는 뜻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나라뿐 아니라 현대인들에게서는 점점 부모에 대한 효가 엷어지
고 있습니다. 자식들에 대한 효는 점점 엷어지고 가벼워져도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그렇게 많이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성도 여러
분, 여러분 어버이의 여러분에 대한 사랑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요? 어
버이의 사랑을 무엇으로 가치측정을 하겠습니까? 어버이의 사랑이 얼
마나 큰지를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백혈병에 걸린 10살 짜리 '정다움'이라는 아들과 가난한 남편을
버리고 떠난 아내를 원망하지 않는 채 살아가는 한 아빠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내는 화가와 재혼해서 외국에 가서 삽니다. 이런 형편에
처한 다움이 아빠는 다움에게 늘 말하기를 "공부는 중요한 게 아니란
다. 살아가는 걸 열이라고 한다면, 그 중 하나쯤밖에 안돼는 것이 공
부지" 아내가 담배 피우는 것을 싫어할 때 다움이 아빠는 담배를 끊었
습니다. 그때 아빠가 다움이에게 하는 말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선
싫은 일도 참아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해 주던 아빠요 남편이었습니
다. 다움이의 아빠는 자신보다 더 소중한 백혈병에 걸린 아들을 살리
겠다고 병든 아들을 2년동안 지극 정성으로 돌보았습니다. 전 재산을
다 팔았습니다. 자신의 자존심도 팔았습니다. 양심도 팔았습니다. 마
지막에는 팔 것이 없었습니다. 이제 아들에게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골수이식 수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도 막대한 수술비용이 필
요했습니다. 자그마치 이식 수술예치금이 2천만원, 그리고 일본여성가
운데서 골수를 찾았는데 그를 한국으로 데려오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비용이 2천여 만원이 필요하다는 계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돈은
없습니다. 그래서는 그는 불법인줄 알면서도 자신의 한쪽 각막마저 팝
니다. 아빠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었습니다.
본래 신장과 눈을 팔려고 계획하고서 종합검진을 하는 가운데 자
기 몸에 큰 간암덩어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신장은 팔
수 없게 되었고 각막을 팔게 됩니다. 다움이의 아빠는 교회에 나가지
는 않았지만 자신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고통 속에 살고 있
는 아들을 살려 달라고 하나님 앞에 애원합니다. 아들 대신 자기 목숨
을 가져달라고 몸부림칩니다. 이렇듯 아버지의 사랑으로 아이는 다행
히 골수이식이 잘되어 건강을 회복합니다. 그러나 정작 간암 말기인
자신은 죽어갑니다. 고침 받은 아들은 본래의 어머니에게로 떠나 보내
고 자신은 아들과 40일 동안 함께 지냈던 산골 마을로 들어가 조용히
죽음을 맞이합니다. 겨울에 눈이 내리는 가운데 겨에 간호하던 후배에
게 자신을 일으켜 달라고 합니다. 그가 죽음을 맞이한 어느 날 새벽
에 아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겠다고 하면서 "다움이 한테 교회에 나가
겠다고 약속해놓고 한 번도 가지 못했어, 지금이라도 기도해야 겠어.
날 좀 일으켜줘" 그래서 일어나 두 손을 모아 방바닥에 대고 그 위에
이마를 포개고 기도하는 자세로 고요히 죽어갔습니다."
이것은 실제적으로 있을 법한 우리 주위의 소재를 소설화시킨 조
창인 씨의 『가시고기』라는 소설책 줄거리입니다. 지난 2000년 1월 5
일에 출판된 이후로 폭발적인 인기 속에 계속 베스트셀러가 되어 지난
해 12월 22일에 133판을 출판한 책으로 지금도 많이 팔리고 있습니
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아버지 사랑이요, 남편이 매고 있는 멍에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부모님들은 아파 죽어가면서 까지도 생각하는 것은 자식입
니다. 그러나 자식들은 어떻습니까? 잘도 살고 있고 건강한데도 무거
운 것은 다 늙은 부모님에게 맡기고, 힘든 것은 다 맡기고, 자신들이
편안해지고 잘살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들의
자녀를 맡기는 오늘의 젊은 세태는 우리가 좀 생각해야 할 부분이 아
닐까요? 아직도 젊은 우리들, 우리의 삶이 있어야 한다고, 자신의 삶
이 있어야 한다고 직장을 포기하지 않고 살고 아이를 키우는 것을 어
른들에게 맡긴다면 어른들, 즉 부모님의 삶은 없어도 된다는 것입니
까? 우리가 좀 심도 있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부모님들의 삶을 얼마나 챙겼는지, 부모님들 삶을 생각한다
면 우리는 이제 단순히 어버이날 하루동안의 선물공세나 식사대접이
나 용돈 제공 등은 지양하고 근본적으로 부모님을 생각하고 효도하는
신앙을 가져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어버이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
을 우리가 측량할 길 없습니다. 세상에 그 어떤 저울이라도 어버이 사
랑을 잴 수 있는 저울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다윗의 가정 이야기입니다. 다윗은 이새의 막내아
들로 태어나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의해 이스라엘 통일왕국의 두
번째 왕이 되었습니다. 성전 건축을 위해 준비한 일이라든지, 성전 예
배에 대한 질서와 법규의 제정, 선한 정치로 말미암아 영토를 확장하
고 국권을 확립한 일들은 그야말로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전무후무
한 치적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에게 주어진 언약에 따라 그의 후
손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것은 정말 복받은 사람입니다. 그리하
여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를 시작하면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씀처럼, 우리가 다른 한
편에서 다윗을 생각할 때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많은
문제와 갈등 속에서, 때로는 죄의 깊은 구렁에 빠져 비극을 겪게 되
는 다윗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더더욱 다윗은 그의 가정 생활 속에
서 비극을 겪습니다. 분명히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앞으로 왕이 될 사
람은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고 했는데도 다윗은 아내를 여덟 명이나
두었습니다. 남의 아내와 불륜 관계를 맺고 그녀가 임신하게 되자 그
것을 은폐하기 위하여 전쟁에 나가있는 그녀의 남편을 불러들여 동침
시키려고 했지만 실패로 돌아가게 됩니다. 결국 다윗은 그녀의 남편
을 최전선에 내보내 죽게 만들었고, 그녀를 아내로 삼습니다. 여덟 명
의 아내에게서 난 자녀들끼리 간음죄를 짓고, 서로 싸우며 죽이는 살
인 사건이 발생됩니다. 심지어 그 자녀 중의 하나는 자기를 반역하여
왕위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그야말로 다윗의 가정은 성경에서 보기 드
문 문제 가정이었습니다.
오늘 본문내용은 다윗의 가정 문제중의 하나였던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를 반역한 사건 속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오늘 저는 본문
말씀 속에서 가정의 문제를 다 들추어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속에
서 보여준 다윗의 자식에 대한 어버이로서의 아름다운 사랑을 살펴보
려고 합니다. 사실은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를 반역함으로서 아버지 다
윗의 군대와 아들 압살롬의 군대와 전쟁을 했습니다. 아들의 미움은
아버지를 죽이고 한 나라의 왕이 되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진군해 왔습
니다. 아버지 다윗은 군대를 동원해 반란군을 막도록 했습니다. 아버
지의 마음은 걱정이 많았습니다. 아들을 죽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서도 반란군을 진압시켜야만 합니다. 그러니까 군대는 보냈지만 아들
이 죽지 않기를 바란 것입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구스 사람이 전령으로 왔습니다. 그는 고하기를 왕
을 대적하던 원수들을 물리쳤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쟁에서 이긴 것입
니다. 왕은 그러나 기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아들은 어떻게 됐는
가가 더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소년 압살롬이
잘 있느냐?" 전령이 기쁘게 말하기를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소
년과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라고 합니다. 그 말은 아들이 전쟁에서
죽었다는 말입니다. 아들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아비
다윗왕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본문 18장 33절 말씀을 같이 읽어봅시
다.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
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그야말로
슬픈 절규입니다. 비록 압살롬이 아비 다윗을 반역하고 왕이 되려고
했지만, 그 역시 아들은 아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아비를 반역했던 아
들 압살롬의 모습 속에서, 또한 아들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아비의 모
습 속에서 중요한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다.
먼저 아들 압살롬의 모습을 통하여 생각하고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 압살롬에게 주어진 환경과 여건은 좋지 않은 것은 결
코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아들로 태어나 부와 지위도 가지고 있었고,
능력과 재능도 있었습니다. 또한 그의 신체 역시 건강하고 외모도 뛰
어났습니다.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온 이스라엘 가운데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고,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
지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그야말로 훌륭한 여건 속에서 별 어려움이
없이 자란 자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자기에게 주어진 훌륭한
여건을 악용하였고, 자만에 빠져서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그러한 행위는 스스로 자기의 무덤을 파는 행위였습니다. 아비의 신앙
에 따라 신앙 생활은 했을 것이지만, 그의 삶의 모습을 볼 때에 그의
신앙은 껍데기 신앙에 불과하였습니다. 사실은 압살롬은 불효자식입
니다. 사무엘하 13:37, "다윗은 날마다 그 아들을 인하여 슬퍼하니
라"
사무엘하15:23, "온 땅 사람이 대성통곡하며 모든 인민 앞에서 건너가
매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니...," 사무엘하15:30, "다윗이 감람
산 길로 올라갈 때에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행하고 저와 함께
가는 백성들도 머리를 가리우고 울며 올라가니라," 이것은 다윗이 아
들 압살롬에게 쫓겨 도망갈 때 흘린 눈물이었습니다. 이렇듯 아버지
를 울게 하고 아버지를 도망 다니게 만든 아들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
식을 들은 아버지 다윗은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
리 내가 대신 죽었더라면 좋았을 뻔했다" 고 합니다. 아들은 대적해
서 아버지를 죽이려 했는데,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부모의 눈물이 주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
다. 대적한 압살롬을 생각하고 눈물을 흘린 다윗의 눈물은 우리들의
부모가 가지고 있는 똑같은 눈물입니다.
그 눈물에는 부모님만 가지고 있는 자녀에 대한 애절한 사랑이 담
겨져 있습니다.
부모를 대적한 자식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사랑이 담겨진 눈물입
니다.
아무리 인간이 죄를 범했을지라도 독생자 아들을 주기까지 우리
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눈물입니다.
다윗의 눈물은 아버지를 반역하여 군사들에게 쫓겨다니는 자녀의
평안을 걱정하는 눈물입니다.
차라리 내가 대신 죽었으면 하는 것은 자신의 목숨보다 자식의 목
숨을 더 사랑하는 부모의 눈물입니다. 이 눈물은 우리의 부모에 가슴
에 가득 담겨져 있는 눈물입니다. 그래서 자녀가 고통 당할 때, 자녀
가 서운하게 할 때 그리고 자녀가 불행해 질 때면 그 눈물은 샘솟듯
쏟아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픔을 이해해야 합니다. 독생자 예수를 죽이기
까지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외롭고 슬프고 고통스러울 때 우리를 위로하고 축복
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게 해주는 몸 된 교회를 사랑해야 합
니다. 그리고 또 나를 낳으시고 기르신 부모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또한 부모님 여러분! 이 압살롬의 모습은 바로 오
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녀들의 모습일 수도 있고, 이 땅의 젊
은 청소년들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습
니다. 우리들은 그야말로 잘 먹고, 잘 입고 부족함 없이 지냅니다. 그
러나 분명한 것은 그러한 외적 조건들이 우리의 자녀들을, 우리의 청
소년들의 일생을 윤택하게 하고 풍요롭게 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 안에 있는 내적 신앙입니다. 왜 오늘날 우리
의 자녀들, 청소년들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는 것입니까? 우리의
부모들이 내적인 신앙보다는 외적인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그렇
게 자녀들을 키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후에 그러한 자녀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고 후회하기 전에 하나님 중심, 신앙 우선 주의로 키우십
시오. 학업이 좀 뒤진다 해도 신앙만큼은 다른 사람에게 뒤지지 않도
록 최선을 다하십시오, 오늘 본문의 다윗처럼 자녀를 위하여 절규하
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특별히 여러분 가운데 부모님을 가까이 모시고 계시는 분 계십니
까? 여러분들은 아비 다윗이 압살롬을 위하여 그토록 슬퍼하고 울며
절규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우리는 아비 다윗
의 눈물 속에서 자녀에 대한 지극한 부모의 사랑을 발견합니다. 무슨
미련이 남아 있기에 다윗이 압살롬 같은 자식을 위해 그토록 슬피 울
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마음이요 사랑입니다.
자녀들이 이러한 부모님의 마음과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면, 어
떻게 부모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겠으며,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
까? 물론 압살롬은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지만
그 영혼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 이것이 바로 부모님의 사랑입
니다. 또한 자식 압살롬을 생각하며 울부짖는 다윗의 모습은 다윗 자
신이 자기의 죄를 뉘우치며 회개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분명히 압살
롬의 죽음은 압살롬 자신의 죄의 결과인 동시에 다윗 자신의 죄의 결
과이기도 하였습니다.
자녀를 둔 부모가 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지금 우리의 자녀
들에게 올바른 신앙 교육을 시키지 못한다면, 우리 역시 언젠가는 다
윗이 흘렸던 눈물을 흘려야 할 때가 반드시 오고야 말 것입니다. 그
때 가서 자식을 대신하여 죽겠다고 나서는 것 보다, 바로 지금 이 순
간부터 자녀들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고 신앙으로 가르치십시오. 지
금 흘리는 부모님의 눈물은 자녀를올바른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식을 향하여 울부짖는 다윗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죄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문루에 홀로
앉아 억제할 수 없는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용서해 주기를 원했던 아
비 다윗의 모습은, 바로 사랑하기를 원했으나 오히려 자기를 십자가
에 못박는 무리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또한 그 죄많고 무정한 아들 압살롬을 끝까지 사랑하면서, 용서해주기
를 원했던 아비 다윗의 모습은, 자기를 모욕하고 조롱하는 자들을 위
하여 기도하였던 그리스도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내 아들 압살롬
아 하고 탄식하며 울부짖는 다윗의 모습속에서, 우리는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
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
지 못하는도다 하면서 탄식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연상합니
다. 또한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하고 탄식하며 울부짖
는 다윗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
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닭이 그 새끼를 날개 아
래 모음 같이 내가 내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
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하면서 탄식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연상합니다.
바로 이것이 패역하고 반역하는 우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요
주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부모의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
시고 골고다를 향하여 오르실 때, 많은 여자들이 가슴을 치며 슬피 울
면서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우는 여자들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
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여러분! 왜 주님께서는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
까?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는 말씀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
고 회개치 아니함으로 장차 후손들에게 임하게 될 하나님의 심판을 생
각하면서 울라는 말씀입니다. 결국 유대 민족은 회개치 아니함으로 멸
망을 당하였고, 그들의 후손들은 흩어져 유리하며 방황하게 됩니다.
또한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는 말씀은 그들의 자녀를 위하여 기
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본래기도 라는 말의 의미는 묵상하다, 찬양하
다, 울며 부르짖는다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와 너희 자
녀를 위하여 울라 는 말씀은 너희와 너희 자녀들의 장래를 생각하며
울며 기도하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하여 울며 기도
할 때, 그 자녀는 망하지 않습니다. 울며 기도하는 가정, 결코 망하
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닥친 자녀의 위기, 가정의 위기를 극복하
는 최선의 방법은 바로 자녀를 위하여 우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특별히 자녀를 가진 부모님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의 자녀를 위하여 어떤 종류의 눈물을 흘리기 원하십니까? 신앙
으로 잘못 지도하고 가르친 자신의 죄를 뉘우치면서 회개하는 눈물입
니까? 오늘 본문에서 다윗이 아들 압살롬을 위하여 흘렸던 눈물처럼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통한의 눈물입니까? 아니면 자녀들의 장래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을 인도해 주시도록 울며 기도
하는 기도의 눈물입니까? 위대한 성 어거스틴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
은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어린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 이
상 다윗 가정의 비극이 우리의 가정에 나타나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렇듯 오늘도 우리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시는 부모님, 오늘도 당
신의 아픔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헌신하는 부모님들, 가
시고기처럼 결국 자식을 위해 모든 진을 다 쏟으시고 가실 부모님, 당
신의 살이라도 찢어주면서 까지도 자기 새끼를 먹이는 페리칸 새처럼
사시는 부모님들의 사랑을, 세대차이 느낀다고 무시하고 자신들에게
해준 것이 뭐 있느냐고 따지면서 부모님의 가슴에 못을 박는 자녀들
을 위하여 기도하시며 그래도 자식이 아프면 달려와 도와주시는 부모
님의 사랑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요? 부모님의 사랑의 무게를 조금이라
도 느낀다면 부모님을 공경하십시오.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사랑에
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지난 시절에 다해주지
못한 것까지도 마음 아파하시면서 해주시고 싶어하는 마음인데 반해
자식의 부모 사랑은 현재 무엇을 해드릴 수 있는가 보다는 지난번에
무엇을 해드렸는데 하는 생각을 지우지 않는 것입니다. 해 드린 것은
잊어버리고 해드리지 못한 것을 생각해서 항상 무엇이든지 해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사십시오. 그것이 곧 효도입니다. 하나님 앞에 선 성도
들이 하나님께 대한 충성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우리는 해드린 것
은 잊어버리고 해 드리지 못한 것을 찾아 해드린다면 우리는 항상 헌
신의 살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도 같은 부모님의 사랑 잊지 마십시
오.
<수정> <삭제>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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