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 2025년 04월 29일 (화요일)      로그인      회원가입
Home []    목사를 막아라, 텅빈본당 /목사 연금 1,600억으로 '돈 장사'한 집사 구속/ 캄보디아 박율 목사 체포 충격               최태민 구국선교단 참여 목사들 / 십일조 하지 말라는 목사 /한우갈비’외치는 기감목사들               기독교사회복지엑스포’ 서울광장서 개막 / 여호와의 증인 병역거부 무죄               선교사들 위한 안식관 두 곳/ '노트북이 뭐라고' 소송 총동원한 사랑의교회               언더우드 후손 28명 우리 고향은 South Korea/ 군종장교 범죄               박수홍, 하나님께 대한 최소한 예의/ 죽음의 질(Well dying) 중요               목사님이 운영하는 중고자동차 매매센터               예장통합 ‘제2의 세습방지법안’ 총회 통과/ 예수님처럼 교회도 하늘에서 내려와야               서울대 인권 가이드라인,적극 반대 /목회자의 고백 7가지 실수               총회장 2명을 배출한 여인의 힘! /복음화율 10% 안 되는데 주일학교만 1천 명              

  홈     이삼규     강문호.     고신일     곽선희.     김광일.     김기석.     김명혁     김병삼     김삼환     김상복     김성광.     김성수     김은호     김정호.     김홍도.     류영모.     명설교     박봉수.     오주철.     옥한흠     유기성     이동원     이성희.     이양덕.     이영무     이윤재     이재철.박영선     이정익     조봉희.     조용기.     주준태     지용수     피영민     하용조     한경직.     홍정길.임영수     해외목사님     관     괄사치유     기도문     (1)새벽     새벽.금언     인물설교     상식/주일     장례,추도.심방     가정설교     영문설교     목회자료/이단     교회규약     예화     성구자료     강해설교     절기설교     창립,전도,헌신,세례     어린이.중고등부     << 창세기>>     출     레     민     신     수     삿     룻     삼상     삼하     왕상     왕하     대상     대하     스     느     에     욥     시     잠     전도     아     사     렘     애     겔     단     호     욜     암     옵     욘     미     나     합     습     학     슥     말     <<마태복음>>     막     눅     요한     행     롬     고전     고후     갈     엡     빌     골     살전     살후     딤전     딤후     딛     몬     히     약     벧전     벧후     요일     요이     요삼     유     <<요한계시록>>     말씀별설교     제목별설교     A)행사,심방     B)행사심방     예수님행적설교     성구단어찾기     이야기성경     설교(틀)구성하기     자주사용하는본문     사건별설교(구약)     사건별설교(신약)  

:: 로그인 ::
 ID   
 PASS   
로그인  회원가입
Home
  설교작성법(여기누르면 다나옴)
  설교잘하는 방법(여기누르면 다나옴)
  동영상.간증자료(여기누르면 다나옴)
  교계 뉴스 ------- (전체보기)
  생활전도(여기누르면 다나옴)
  전도편지
  참고 설교(성구)
  장례식 샘플설교
  오래된 설교(왕)
  카드,핸드폰결제

설교내용검색

네이버.다음.구글


시작페이지 설정


호산나 자동차


교회인쇄주보디자인


밀알.현수막.주보


제주2박3일210.000원


(방송)설교 교회

해외교회사이트

예배와 찬양


목회자 컬럼
  • 교회와신앙칼럼
  • 뉴스미션칼럼
  • 뉴스엔조이칼럼
  • 당당칼럼
  • 남학매일성경
  • 기독공보칼럼
  • 기독목회칼럼
  • 베리타스칼럼
  • 강남신앙간증
  • 아멘넷칼럼
  • 크리스천칼럼
  • 타임즈칼럼
  • 강문호목사
  • 고신일목사
  • 김기석목사
  • 김대동목사
  • 김명혁목사
  • 김성광목사
  • 김승욱목사
  • 김형준목사
  • 김흥규목사
  • 명성훈목사
  • 박광철목사
  • 박건목사
  • 소강석목사
  • 이동원목사
  • 이성희목사
  • 이한규목사
  • 정근두목사
  • 정태기목사
  • 조태환목사
  • 조현삼목사
  • 밤중소리

  • 교단 사이트

    말씀,QT

    사전.지도사이트

    성화,주보그림자료

    성경연구공부자료

    성경신학 자료

    Home

    내잔을 함께 마시겠는가
    2002-06-07 19:40:24   read : 2044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설교자:박 종 화 목사
    ■ 설교일:2002년 3월 10일
    020310.ram(LOAD:64)



    구약의 말씀: 이사야서 54:7 ~ 10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다시 불러들이겠다. 분노가 북받쳐서 나의 얼굴을 너에게서 잠시 가렸으나 나의 영원한 사랑으로 너에게 긍휼을 베풀겠다. 너의 속량자인 나 주의 말이다. 노아 때에, 다시는 땅을 홍수로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내가 약속하였다. 이제, 나는 너에게 노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너를 꾸짖거나 벌하지 않겠다. 비록 산들이 옮겨지고 언덕이 흔들린다 하여도, 나의 은총이 너에게서 떠나지 않으며, 평화의 언약을 파기하지 않겠다." 너를 가엾게 여기는 주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서신서의 말씀: 빌립보서 1:15 ~ 21
    그리스도를 전파하면서도, 어떤 사람들은 시기하거나 다투는 마음으로 하고, 어떤 사람들은 좋은 뜻으로 합니다. 좋은 뜻으로 하는 사람들은, 내가, 복음을 변호하기 위해 세우심을 받은 줄을 알고, 사랑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지만, 시기하거나 다투는 마음으로 하는 사람들은, 나의 감옥 생활에 괴로움을 더하게 하려는 생각을 품고, 다투는 마음으로 순수하지 못한 동기에서 그리스도를 전파합니다.
    그렇지만 어떻습니까? 참으로 하든지 거짓으로 하든지, 무슨 방법으로 하든지 그리스도가 전파되고 있으니, 나는 그 일로 기뻐합니다.그렇습니다. 나는 앞으로도 기뻐할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기도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도와주셔서, 내가 풀려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내가 간절히 기대하며 바라는 것은, 내가 어떤 일에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전과 같이 지금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나의 몸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되시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시니,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복음서의 말씀: 요한복음서 12:20 ~ 26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들 가운데 그리스 사람이 몇 있었는데, 그들은 갈릴리의 벳새다 출신인 빌립에게로 가서 "선생님, 우리가 예수를 뵙고 싶습니다" 하고 청하였다. 빌립은 안드레에게로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은 예수께 그 말을 전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자기의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생에 이르도록 그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나를 섬기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있는 곳에는, 나를 섬기는 사람도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나의 아버지께서 그를 높여 주실 것이다."



    --------------------------------------------------------------------------------




    오늘 요한복음 본문에 이런 장면 하나가 연출되고 있습니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서, 예수에게 와서 직접 만나보고 상담도 하고 싶어하는 일단의 헬라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를 직접 알지 못했기 때문에 중간 과정을 거칩니다. 제자들에게 부탁을 한 것입니다.
    “예수라는 분을 한번 만나 뵙고 싶습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보고합니다. “손님들이 찾아왔는데 만나 뵙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지금은 내가 개별 면담을 할 시간이 지났다. 이제 인자가 큰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 이제 골고다 언덕으로 가서 십자가에 못박혀야 할 시간이다. 개별 면담 대신, 이 일을 계기로 세계 만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나라 이야기, 구원의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해보자.”
    오늘 복음서의 이 장면에서는 공개적인 예수님의 대화, 공개적인 상담, 공개적인 만남의 장면이 전개됩니다. 공개적인 대화의 일단으로, 오늘 예수께서 두 가지 이야기를 꺼냅니다. “밀알은 땅에 떨어져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서 영원한 생명의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밀알이 되어야 한다. 쭉정이가 되지 말아라.” 이것은 예수의 공개 대화입니다. 한때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 비유를 이야기하시면서, 마지막 때가 되면 농부가 추수할텐데, 알곡은 모두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모아서 불로 태워 없앤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알곡을 오늘의 본문에서는 밀알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의 말씀은 알곡, 다시 말해 선택받은 밀알도 밀알 그대로만 있으면 별 소용이 없고, 땅에 떨어져서 썩을 때에만 다시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쭉정이에 관해서는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아니 말씀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쭉정이는 땅에 떨어져 썩으면, 그야말로 그냥 썩고 맙니다. 그러나 밀알은 썩으면, 다시 뿌리로, 나무로, 잎으로, 생명체로 태어납니다.
    오늘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수난절 공동 대화의 첫 대목은 이것입니다. “그대들은 밀알입니까? 쭉정이입니까?” 신앙인은 밀알이 되기를 원합니다. 밀알이고 싶어합니다. 신앙인이 아니더라도 인간 쭉정이, 인간 쓰레기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알곡이, 밀알이 되고 싶어합니다. 저는 이 점을 생각하면서, 인간의 현실 가운데 한 가지를 상기합니다.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어느 나라, 어느 문화, 어느 경향에 속한 사람이든지 모든 인간은 똑같은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그것은 일단 때가 되면 땅속에 묻히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도 안 믿는 사람도 똑같이 죽음이라는 운명을 타고납니다. 피할 수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항상 더 잘 사는 것도 아닙니다. 아프지 않고 사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인간은 땅 속에 묻힙니다. 땅 속에 묻힌다는 말은 죽음을 뜻합니다. 모두 죽고, 모두 묻힙니다. 쭉정이도 밀알도!
    단, 예수와 함께 죽는 사람은 땅 속에 묻히지만, 거기서 뿌리를 내리고 움을 틔우고 다시 나무가 되고 생명의 열매를 맺습니다. 쭉정이는 썩은 대로 그냥 거름이 되어 나옵니다. 이 차이 말고는 인간은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피조물인 인간들이여, 추수 때 밀알이 되어 나와 함께 땅에 묻힙시다.” 이것이 오늘 예수께서 우리한테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의 첫 번째 대목입니다. 저는 여러분이나 저나 다 하나님의 복을 받는 밀알이 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이렇게 오래 살았는데, 이렇게 많은 노력을 했는데, 연구도 했는데 그것 아깝지 않습니까? 그 동안의 수고가 물거품이 된다면 얼마나 아깝습니까? 하루를 살아도 뜻을 세우고 밀알로 삽시다. 쭉정이로 썩지는 마십시다. 어느 하나라도 세우고 죽읍시다. 밀알이 되어 어차피 땅속으로 들어갈 몸, 뿌리 하나라도 내리십시다. 이것이 인간의 욕구요, 인간에게 준 하나님의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진리 같지만, 밀알과 쭉정이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둘은 한줄기에서 자랍니다. 한솥밥 먹고 자랍니다. 같은 공기를 마십니다. 한 줄기, 한 뿌리에서 나왔으나, 알곡과 쭉정이는 추수 때 완전히 구분됩니다. 밀알 되는 노력, 이것은 하루에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붙어 있는 한, 쉼 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알곡 되신 여러분에게 주님께서 복을 내리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 대목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알곡인지, 쭉정이인지 언제 압니까? 그걸 미리 안다면 얼마나 잘 준비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예수께서는 알곡과 쭉정이는 추수 때 가서야 분명히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추수 때가 되기 전까지는 구분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벼나 곡식이 다 자라서 추수하게 되면, 그때에는 곡식줄기를 잘라냅니다. 인생의 말기, 인간 역사의 종말, 세계 역사의 끝, 생명이 붙어있는 모든 피조물의 끝, 그때에 가서야 비로소 밀알과 쭉정이가 구분된다고 했습니다.
    그럼 우리는 인간 역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물론 기다려야 합니다. 알곡인지 쭉정이인지 구분하기 위해서, 우리의 숨이 끊어져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물론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의 종말은, 한 인간의 종말과 온 세계의 종말은 우리가 재단하거나 결정할 권한이 없습니다. 미안하지만 아무 권한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에게 닥치는 종말을 받아들이는 역할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리 힘있는 자도, 아무리 지혜 있는 자도, 헬라철학이 강조한 대로 지혜의 최고봉에 있는 사람도 자기 종말은 스스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유대인의 욕구처럼 최고의 카리스마와 힘을 가진 사람도 자기의 종말은, 역사의 종말은 결정할 권한이 없습니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일 뿐입니다.
    그럼 우리는 살면서 기다리기만 해야 합니까?
    예수께서는 우리와 언제나 함께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종말 때도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종말이 있기 전, 지금 살아 숨쉬는 매순간에도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임재! 그분은 오늘 우리 가운데에도 함께 계십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열두 시 십삼 분, 이 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분이 함께하셔야 우리의 생명이 가능합니다.
    여러분 지금이 우리 인간의 종말일 수 있습니다. 혹시 내일 침대 위에서 우리는 종말을 맞을 수 있습니다. 종말이 도둑같이 와서 우리 영혼을 불러갈 수 있습니다. 우리 종말은 우리가 생각지도 않게 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이 있고 호흡이 붙어있는 순간 순간마다 그것이 종말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인생의 마감이라고 생각하고, 신앙에 굳게 서야 합니다. 멀리 있는 역사의 종말을 대비할 뿐 아니라, 실존의 매순간까지도 종말인 줄 알고 살아가면, 하나님의 복이 함께할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버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교회에서 흔히 하는 얘기로, 우리 전도합시다, 선교합시다 하면, 사람들의 답이 이렇습니다. “아직은 젊으니까, 실컷 놀다가 좀 늙으면 할께요.” “제가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어서 좀 뒤에 갈께요.” 이런 얘기 많이 들으시죠? 자기의 끝이 언제일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뒤로 미루지 마십시다. 지금 이 순간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은총의 시간이라면 미룰 수 있습니까? 혹시 지금 순간이 하나님이 주시는 엄청난 심판의 시간이라면 그걸 마다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우리 생의 고비 고비마다 하나님은 종말의 하나님으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인간의 역사가 완전히 끝나는 순간에도, 역사의 종말, 세계의 종말에도 하나님은 심판자로, 구원자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정해진 추수 때가 있지만, 지금이 항상 인생의 추수 때임도 기억하십시다. 이것이 오늘 예수께서 주신 또 하나의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항상 오늘의 시간이지, 내일로 미룰 수 있는 시간이 아닙니다. 항상 함께 계시는 하나님, 그분은 하나님 나라에 이르도록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죽음이라 이름하는 끝을 끝이라고 보지 말고, 내일을 위한 생명의 시작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생명을 잃는 것이라고 생각지 말고, 새로 얻는 것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이별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새로운 만남의 시작이라고 생각하십시오. 떠났다가 아니라 새로운 생명나라에 도착했다고 생각하십시오.”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입장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쭉정이에게는 이런 역설적 진리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역설적인 이 진리는 오늘 밀알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것입니다.
    또 하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밀알이 되어 땅에 떨어지면 썩어서 뿌리를 내리고 나무가 되어 열매를 맺는다고 했는데, 아무 곳에나 떨어져도 다 그렇게 됩니까? 여러분이 꽃을 심을 때, 농사를 지을 때 아무 데나 꽃씨를, 씨앗을 뿌리면 다 싹이 나고 열매가 맺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옥토에 뿌려지는 경우만 가능합니다. ‘숨’이 있는 곳에서만 가능합니다. 이 땅은 하나님이 숨쉬는 곳, 그곳에 밀알이 떨어질 때에만 싹이 난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땅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땅 위의 하늘만 보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인간은 땅과 땅 밑에는 하나님의 숨결이 없는 듯이 생각하고서, 땅을 엄청나게 착취하며 살았습니다.
    어떻게 해서 씨앗이 움이 터서 나무가 됩니까? 살아서 숨쉬는 땅, 그 땅 속에 묻힐 때에만 씨앗은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기적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땅 위의 것만 하나님의 창조물이 아닙니다. 땅 아래에도 하나님의 피조물이 있습니다. 바다 밑에도 생명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땅을 오염시켰습니까? 얼마나 바다를 많이 오염시켰습니까? 그렇게 오염된 땅에서는 생명의 뿌리가 내릴 수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를 죽이는 자살 행위입니다. 집단 자살 행위, 살인 행위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이 창조주 하나님의 질서를 짓밟았습니까?
    밀알로 택함 받은 여러분, 여러분은 떨어져 썩어야 되겠는데, 우리가 썩은 바다 위에 떨어지면 결코 뿌리를 내릴 수 없습니다. 썩은 땅 속에 떨어지면, 뿌리내리는 것은 고사하고 완전히 죽어버립니다. 우리 인간은 우리에게 주어진, 셈할 수 있는 시간 속에 살다가, 땅 속에 들어가서도 하나님의 호흡 가운데서 그분과 같이 산다는 것이 창조의 섭리입니다.
    옥토에 떨어진 씨앗만이 생명을 싹틔울 수 있습니다. 옥토가 어딥니까? 성서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는 “나는 이제 영광을 받아야 할 때가 왔다. 내가 십자가를 져야 할 때가 왔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밀알로서 십자가라 이름하는 땅에 뿌려져서 부활의 영광을 만들어내십니다. 실제로 우리가 뿌려져야 할 땅, 그것은 십자가라 이름하는 땅입니다. 이 땅에 묻힐 때 비로소 부활의 영광으로 피어날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포기하는 사람은 미안하지만 싹을 낼 수 없습니다. 그 사람에게서는 하나님의 숨결이 숨쉬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각자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십자가 없는 땅은 미안하지만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인간 역사상에 큰 괴로움이 바로 이것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십자가 없이 부활을 누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고통 없이 기쁘게 살아 볼까? 어떻게 하면 아픈 데 없이 건강한 몸으로만 살 수 있을까? 우리 인간의 고민 아닙니까? 착한 인간에게도, 고귀한 신앙인에게도 질병이 옵니다. 괴로움이 옵니다. 아픔이 옵니다. 그때 밀알에 관한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아픔, 고통, 좌절, 그것들을 생명체의 한 운동으로 보고, 거기에 매이지 말고, 그 고난과 좌절 속에서 싹을 틔우면, 새로운 치유와 부활과 화해의 새 생명이 피어난다는 진리를 깨달으십시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복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만, 과학자들은 생명의 신비를 풀어내려고 합니다. 우리가 보기에, 인간이라는 생명체, 이 생명체는 신비하고 아름답습니다. 이 아름다운 생명체의 형성과 구성원리가 어떤 건지 알려고 하면 그것을 알려주는 정보가 필요한데, 이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을 과학자들은 DNA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인간생명체 구성의 정보를 담고 있는 DNA의 사슬들을 하나 하나 풀어서 빈 그릇에 담아 놓는다고 해서 그것이 생명체입니까? 그렇지는 않지 않습니까? 생명체가 된다는 것은 살아있는 세포 속에 DNA가 활동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죽어있는 세포 속에는 DNA가 아무리 있어도 정보를 제공 못합니다. 그것은 생명체가 아닙니다. 살아있는 세포 속에 있는 DNA, 그걸 추출하면 우리 생명의 신비의 정보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세포가 뭉친 생명체는 스스로 존재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생명체는 있는 그대로 존속하지 않습니다. 자기 밖에 있는 공기를 숨쉴 수 있어야 생명이 유지됩니다. 자기 몸 바깥에 있는 음식을 먹어야 칼로리를 취할 수 있고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 외부에서 비추이는 태양 빛과 열이 있어야 우리는 살 수 있습니다. 몸 안에 있는 것만으로가 아니라, 밖으로부터 오는 여러 가지를 통해서 우리는 생명체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말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에게 주신 만물의 영장, 하나님의 형상을 타고난 인간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복,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은혜 없이는 인간의 생명은 유지될 수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우리가 오늘 예수의 말씀을 통해서 깨달을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저는 그분의 말씀이 들리는 듯합니다. “나와 함께 십자가에 묻히자. 그러면 십자가상에서 새로운 생명이 움터서 나와 함께 부활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느니라.”
    여러분도 마찬가지겠지만, 저는 과거에나 지금이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노래들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 노래만 나오면 그냥 흥겹습니다. 그 노래를 들으면, 촬영지인 잘츠브르크 언덕도 머릿속에 상상이 됩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진정한 행복을 주는 소리가 있습니다. 십자가라는 토양 속에서 묻힌 하나님의 아들, 인자라 이름하는 밀알이 십자가에 묻혀서 우리한테 호소하는 소리입니다. 혹시 그 소리를 사운드 오브 뮤직이 아니라,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Sound of Silence)라고 할 수 있을까요?
    침묵의 무덤 속에서 울려나오는 생명의 소리,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까? 부활절 때까지만 기다리십시오. 그때에는 확연히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가슴이 열린 사람, 영혼이 열린 사람은, 십자가에 묻힌 그분 예수 그리스도가 무덤 속에서 내는 침묵의 소리를, 죽음의 장소에서 울려나는 그 구원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쭉정이는 결코 그 소리를 못 들을 것입니다. 자기를 죽이는 그 알곡만이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십자가라는 토양 속에 있는, 십자가 속에 묻힌 생명은 반드시 부활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여 밀알을 택하시고, 십자가에 묻힌 밀알을 통해서 이렇게 새 역사를 이루십니까? 뭐가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조화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십자가와 연결시키고, 토양과 연결시키고, 다른 밀알들과 연결시키십니다. 인간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그분이 창조하신 그 모든 것과 서로 얽히고설켜서 살아갑니다. 인간은 네트워킹입니다. 네트워킹이라는 말을 성서는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의 줄입니다. 그 줄은 죽음과 삶과, 이 세상과 저 세상과, 시간과 영원,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모든 것을 상호 연결해가면서 끊이지 않게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끈과, 하나님의 사랑의 네트워크가 오늘 우리를 살아 있는 생명체로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우리가 져야 할 것은 토양인 십자가입니다. 이 토양 속에서 부활의 생명체를 품고 부활의 생명체로 거듭나는 복, 그것을 우리 모두에게 주셨습니다.
    지금은 기다리는 때, 침묵 속에서 이 생명의 말씀을 듣는 복된 시절입니다. 아멘







    독자 설교

    설교작성하기 (3년 후에는 자동삭제됩니다.)
    이 름 E-mail
    제 목



    프린트하기 기사메일보내기 독자설교


    이전으로
    마음껏 살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의 때
    하나님 나라의 교회
    용서하라- 잊지말라
    악마와 싸우려면
    향기로운 제단
    눈뜬 소경
    고난의 혼을 제거하라
    베델의 감격
    겸허한 자에게 은혜가
    오염된 성전은 허물라
    보물은 값지게 쓰라
    빛의 열매
    일용할 양식
    항존 하시는 하나님
     | Home | 사이트맵 | 설교검색 | 설교전체보기 | 설교쓰기 |개인정보취급방침 | ___ | 
    Copyright by 본 설교신문 자료를 다른사이트로 무단복사 절대금합니다(추적장치가동)/설교신문//이새롬/사업자번호220-09-65954/서울시강남구도곡로1길14삼일BD1121호/통판:서울강남01470/문자로 질문바람010-3761-0691/E-mail:v919@naver.com   Contact Web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