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 2025년 04월 03일 (목요일)      로그인      회원가입
Home [설교작성법(여기누르면 다나옴)]    목사를 막아라, 텅빈본당 /목사 연금 1,600억으로 '돈 장사'한 집사 구속/ 캄보디아 박율 목사 체포 충격               최태민 구국선교단 참여 목사들 / 십일조 하지 말라는 목사 /한우갈비’외치는 기감목사들               기독교사회복지엑스포’ 서울광장서 개막 / 여호와의 증인 병역거부 무죄               선교사들 위한 안식관 두 곳/ '노트북이 뭐라고' 소송 총동원한 사랑의교회               언더우드 후손 28명 우리 고향은 South Korea/ 군종장교 범죄               박수홍, 하나님께 대한 최소한 예의/ 죽음의 질(Well dying) 중요               목사님이 운영하는 중고자동차 매매센터               예장통합 ‘제2의 세습방지법안’ 총회 통과/ 예수님처럼 교회도 하늘에서 내려와야               서울대 인권 가이드라인,적극 반대 /목회자의 고백 7가지 실수               총회장 2명을 배출한 여인의 힘! /복음화율 10% 안 되는데 주일학교만 1천 명              

  홈     이삼규     강문호.     고신일     곽선희.     김광일.     김기석.     김명혁     김병삼     김삼환     김상복     김성광.     김성수     김은호     김정호.     김홍도.     류영모.     명설교     박봉수.     오주철.     옥한흠     유기성     이동원     이성희.     이양덕.     이영무     이윤재     이재철.박영선     이정익     조봉희.     조용기.     주준태     지용수     피영민     하용조     한경직.     홍정길.임영수     해외목사님     관     괄사치유     기도문     (1)새벽     새벽.금언     인물설교     상식/주일     장례,추도.심방     가정설교     영문설교     목회자료/이단     교회규약     예화     성구자료     강해설교     절기설교     창립,전도,헌신,세례     어린이.중고등부     << 창세기>>     출     레     민     신     수     삿     룻     삼상     삼하     왕상     왕하     대상     대하     스     느     에     욥     시     잠     전도     아     사     렘     애     겔     단     호     욜     암     옵     욘     미     나     합     습     학     슥     말     <<마태복음>>     막     눅     요한     행     롬     고전     고후     갈     엡     빌     골     살전     살후     딤전     딤후     딛     몬     히     약     벧전     벧후     요일     요이     요삼     유     <<요한계시록>>     말씀별설교     제목별설교     A)행사,심방     B)행사심방     예수님행적설교     성구단어찾기     이야기성경     설교(틀)구성하기     자주사용하는본문     사건별설교(구약)     사건별설교(신약)  

:: 로그인 ::
 ID   
 PASS   
로그인  회원가입
Home
  설교작성법(여기누르면 다나옴)
   일반설교 작성법
   강해설교 작성법
  설교잘하는 방법(여기누르면 다나옴)
  동영상.간증자료(여기누르면 다나옴)
  교계 뉴스 ------- (전체보기)
  생활전도(여기누르면 다나옴)
  전도편지
  참고 설교(성구)
  장례식 샘플설교
  오래된 설교(왕)
  카드,핸드폰결제

설교내용검색

네이버.다음.구글


시작페이지 설정


호산나 자동차


교회인쇄주보디자인


밀알.현수막.주보


제주2박3일210.000원


(방송)설교 교회

해외교회사이트

예배와 찬양


목회자 컬럼
  • 교회와신앙칼럼
  • 뉴스미션칼럼
  • 뉴스엔조이칼럼
  • 당당칼럼
  • 남학매일성경
  • 기독공보칼럼
  • 기독목회칼럼
  • 베리타스칼럼
  • 강남신앙간증
  • 아멘넷칼럼
  • 크리스천칼럼
  • 타임즈칼럼
  • 강문호목사
  • 고신일목사
  • 김기석목사
  • 김대동목사
  • 김명혁목사
  • 김성광목사
  • 김승욱목사
  • 김형준목사
  • 김흥규목사
  • 명성훈목사
  • 박광철목사
  • 박건목사
  • 소강석목사
  • 이동원목사
  • 이성희목사
  • 이한규목사
  • 정근두목사
  • 정태기목사
  • 조태환목사
  • 조현삼목사
  • 밤중소리

  • 교단 사이트

    말씀,QT

    사전.지도사이트

    성화,주보그림자료

    성경연구공부자료

    성경신학 자료

    Home > 설교작성법(여기누르면 다나옴)(전체리스트)

    설교자의 표정
    2002-04-10 00:21:28   read : 2059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정장복교수 - 설교단에서 보여주는 설교자의 표정(facial expression)

    : 설교단에서 보여주는 설교자의 표정(facial expression)

    Q. 설교자가 설교단에 섰을 때 자신의 표정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저의 솔직한 심정은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가정이나 일터나 설교단이나 구분없이 자연스럽게 보여주면서 살고 싶습니다. 여기에 대한 의견을 주시면 합니다.

    저는 주신 질문을 앞에 놓고 많은 생각을 해 봅니다. 아무런 꾸밈새가 없던 에덴에서의 삶을 연상해 봅니다. 그리고 금지된 선악과를 먹고서 달라진 우리의 눈을 생각해 봅니다. 사실 에덴에서의 인간 눈이 달라진 이후부터 우리는 남을 의식하고 살아야하는 인간 사회가 되었습니다. 인간이 꾸밈없이 창조된 모습 그대로를 노출하면서 산다는 것은 이상일 뿐 현실이 아님을 모두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설교자는 솔직한 인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진솔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남의 눈을 가장 많이 의식하고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 이유는 목사란 단순하게 수평적으로 엮어진 공동체의 일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배하는 공동체의 책임자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책임은 설교사역입니다.

    생각하면 설교는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사역입니다. 단순한 언어와 관계가 있는 기능들뿐만 아니라 외형적인 모습까지 모두가 입체적으로 동시에 움직이게 되는 종합 예술이라고 이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자의 외형적인 복장이나 인상 등은 설교 전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겉치레가 아닙니다. 진실을 감추는 행위도 아닙니다. 한 인간의 모습을 잘 보이려는 장식의 차원이 아닙니다. 그것은 설교자가 전달해야 할 메시지가 손상 받지 않고 진리의 존엄성을 간직한 체 회중들의 가슴에 스며들게 하는 보조적 역할을 감당하는 소중한 요인입니다.

    Q. 주신 말씀에서 설교자의 인상이 갖는 중요한 의미들을 다시 알게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설교자의 표정에 대한 말씀을 들려주시면 합니다. 그 중요성과 의미들을 듣고 싶습니다.

    A. 언어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됩니다. 하나는 성대와 입을 통하여 나오는 음성 위주의 언어입니다. 이 언어는 자음과 모음을 결합하여 말을 만들어 의사 전달을 하게 됩니다. 자신들의 공동체에서 계약된 표기들을 각자 따로 만들어 그 공동체 안에서만 사용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어학에서는 이것을 삶의 양태를 함께 하는 공동체의 언어라고 합니다. 또 하나는 신체언어입니다.

    이것은 아무런 음성도 사용하지 않고 몸의 부분들을 사용하여 의사를 소통하는 또 하나의 언어입니다. 모두가 음성언어만 가지고 살기에 이것만이 최고의 의사 전달의 도구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 이론에서는 음성언어보다는 신체언어가 인간의 의사 전달에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통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음성 언어보다는 말하는 사람의 표정(facial expression)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의사(意思)가 훨씬 정확하게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설교자는 이러한 신체언어의 중요성과 효과성에 깊은 관심을 기울어야 합니다. 설교자의 표정관리는 설교전달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의 진실성과도 연계됩니다. 뿐만 아니라 설교자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의 표현도 신체언어가 절대적인 몫을 담당합니다.


    Q. 신체언어에 대한 의미와 그 중요성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어떤 부흥사들의 경우 그들이 보여준 신체언어에서 많은 사람이 혐오감을 감추지 못합니다. 상습적이고 직업적으로 이어진 그들의 몸가짐과 제스쳐와 얼굴표정 등은 오히려 진실성을 경감(輕減)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여겨집니다. 이러한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신지요?

    A. 신체언어의 남용에 대한 정확한 평가입니다. 신체언어는 설교전달의 절대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습관과 연결되고 거짓 꾸밈의 탈을 쓰게 되었을 때는 엄청난 탈선의 무기로 변질됩니다. 설교자가 이 위장(僞裝)된 신체언어에 맛을 붙이면 설교의 생명은 종장(終章)을 맞게 됩니다. 그리고 그 설교자는 곧 설자리를 잃게 됩니다.

    저는 길가에서 사람들을 모아 놓고 물건들을 파는 일회성 상인들의 선전언어와 그 진지한 표정에 여러 번 속은 경험이 있습니다. 손에 사들고 온 그들의 물건이 진품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을 때마다 나의 어리석음을 탓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들이 나를 매혹시킨 그 음성언어와 신체언어를 떠올리면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오늘의 많은 회중들은 설교자들이 내 뿜는 그 화려한 음성언어와 신체언어 앞에 감격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아멘'을 연발합니다. 그러나 훗날 그들은 직업적으로 사용되는 그 신체언어에 서서히 실망하게 됩니다. 그 모두가 허구(虛構)였다는 것을 곧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체언어란 진지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도 습관화되거나 속임의 장치로 사용되어서는 안됩니다. 자기 감정과는 무관한 눈물 짖는 표정을 비롯하여 설교단에서의 마음대로 종횡무진하는 몸가짐 등은 삼가야 합니다. 우리의 문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바 있는 공자는 그의 논어 학이편(學而篇)에서 "교묘한 언변과 풍부한 표정에는 진실성이 매우 드물다."는 말을 남기고 있습니다. 우리의 설교자들이 음미해 볼만한 말입니다.

    Q. 저는 늘 교인들을 대할 때마다 부드럽고 인자한 인상의 소유자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런데 설교단에 서기만 하면 나의 인상은 달라진다고 합니다. 평소의 미소는 없어지고 긴장과 불안과 초조의 표정이 가득하다는 평을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며 정상적인 인상을 소유하는 길은 없는지요?

    A. 사실 밝고 단정한 설교자의 인상은 메시지 전달을 원활하게 하는 소리 없는 첫 언어입니다. 설교단에서 보여주는 설교자의 맑고 깨끗한 표정은 회중들의 마음을 맑게 해주는 좋은 도구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잔잔한 설교자의 첫 미소는 회중들에게 안정과 기쁨을 안겨줍니다. 설교자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부분은 유창한 설교보다는 맑고 깨끝한 얼굴에 온순하고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설교하는 모습입니다.

    모든 설교자가 이러한 인상을 소유하기는 참으로 힘이 듭니다. 인상이란 살아온 가정과 환경에 의하여 그려진 얼굴 위의 그림입니다. 기쁨과 감사로 언제나 웃음이 가득한 가정의 출신과 짜증과 불안과 다툼으로 가득한 가정에서 살아 온 사람의 얼굴에는 각각 다른 그림을 발견하게 됩니다.

    설교자가 설교를 하기 직전에 나타난 불안과 초조의 인상은 이러한 가정배경과의 연관성보다는 설교라는 막중한 사명의 순간 앞에 갖게되는 긴장감 때문입니다. 설교는 설교자의 의견발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운반하여 주는 순간이기에 설교자의 긴장감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점은 일반적으로 많은 설교자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충고를 드리고 싶습니다.

    먼저는, 설교자의 준비 문제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준비는 두 가지입니다. 설교자로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몸과 마음의 준비입니다. 또 하나는 그 주일의 설교에 대한 철저한 준비입니다. 설교의 구성과 자료가 모두 100 % 원고화하고 그 원고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일입니다. 이럴 때 설교자는 자신력을 갖게 되고 자신의 표정까지 관리할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둘째는, 설교자가 설교단에 올라설 때 갖는 마음가짐입니다. 설교의 준비가 완벽하던지 모자라든지 설교의 무거운 짐을 성령님께 완벽하게 맡겨야 합니다. 설교자 스스로가 은혜 있는 설교를 하겠다는 욕심이나 의지의 발동은 설교단에서는 금물입니다. 설교자가 온전히 성령님의 도구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맡기는 자세가 있을 때 평화가 주어지고 자신의 얼굴 표정도 달라집니다.

    셋째는, 설교 도중에 발음이 틀리게 되고 원고의 내용을 잊었더라도 당황하지 않아야 합니다. 당황할 때는 그 인상부터 부정적인 표현을 하게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차분한 감정과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Q. 설교자의 얼굴 표정이 메시지의 내용이나 설교자의 의도에 따라 자주 바뀌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지 알고 싶습니다. 설교자의 표정이 너무 자주 바뀔 때 솔직히 가벼운 인상을 받게 되고 연기자의 모습처럼 느껴지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A. 좋은 질문입니다. 유교를 중심한 우리의 문화권은 자신의 의사를 거침없이 표현하는 언어나 표정이 환영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우리의 문화권은 좋고 싫음을 기탄 없이 표현하는 개방사회가 아닙니다. 지도자는 언제나 자신의 느낌을 심중에 품고 표현을 천천히 해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것은 개인 중심으로 살아가는 서구사회와 달리 우리들은 좁은 땅에서 형성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하여 개인주의를 억제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설교자가 언어의 문장마다 얼굴의 표정을 바꾼다는 것은 권할만한 일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의 문화권에서 기대하는 설교자는 어디인가 묵직하고 진지한 인간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가볍게 기쁨과 슬픔의 감정을 표현하는 연기자들과는 차이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 한국교회 회중들의 심성입니다. 그러한 기대에 설교자가 미치지 못할 때 회중들은 아쉬움을 갖게되고 때로는 경멸의 눈초리도 보내게 됩니다.

    그렇다고 설교자의 표정이 슬픔을 말할 때나 십자가의 수난을 말할 때도 미소를 띄고 계속 있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설교자의 표정은 그 메시지의 내용과 동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 자주 그리고 진하게 그 얼굴에서 표현된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언어의 고저와 속도가 바뀔 적마다 얼굴 표정도 달라지게 된다면 회중들은 우선 안정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설교자는 경솔한 인상을 풍기게 됩니다.

    Q. 저는 매주 설교를 듣는 평신도입니다. 우리교회 설교자는 무슨 연고인지는 알지 못하나 앞이마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머리를 내리고 설교를 합니다. 거기에다가 두껴운 안경태까지 겹쳐서 답답함을 느낍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하여는 신학교의 설교학 교육에서 어떻게 취급하시는지요?

    A. 사실 설교자의 인상은 스스로 가꾸어야 합니다. 그것은 선천적인 생김새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맑고 깨끗한 모습을 갖출려는 설교자의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머리카락을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단정한 모습을 벗어나려는 젊은 설교자들에게서 그러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가는 길에 어느 나이 많은 권사님이 언제나 이마를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있었던 젊은 설교자와 악수를 합니다. 권사님은 용기를 내여 손을 들어 목사의 이마에 그 머리카락을 올려보면서 "우리 목사님 이마에 숨켜야 할 흉터가 있으신가? 어디 좀 봅시다." 했다는 사례입니다.

    머리카락이 이마를 덥고 있다거나 두꺼운 검은 안경태를 착용하는 것은 설교자의 인상을 밝게하는데 지장을 줍니다. 연예인들은 자기의 특유한 이미지를 심기 위하여 다양한 형태의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설교자는 그러한 형태를 따를 이유가 없습니다. 설교자는 일반적으로 이마가 시원스럽게 보이도록 하여 설교자의 인상이 밝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점은 설교훈련 시간에 많이 강조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생각하면 설교자는 자신이 원하는데로 모습을 갖추고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설교자는 언제나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회중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회중의 눈길은 자신들에게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자만은 단정한 인상을 풍기고 정숙한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하고 쳐다보고 있습니다.

    Q. 우리 목사님은 좋은 설교자이십니다. 목사님의 설교 내용과 전달은 누구도 비교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은 목사님의 미간에 굵은 주름살이 상하로 잡혀 있어서 언제나 그 얼굴은 부정적인 인상을 풍기게 됩니다. 참으로 아쉬운 부분입니다. 이 지적이 지나친 나의 욕심이라면 용서하세요. 그러나 모든 설교자들이 알아 두셨으면 하는 문제입니다. 여기에 대한 한 말씀을 언급해 주시면 합니다.

    A. 지적하신 문제는 많은 설교자들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두 눈썹 사이를 가리키는 양미간(兩眉間)을 찌푸리는 것은 분명히 부정적인 표현에 많이 등장하는 표정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표시할 때 흔히들 미간을 찌푸리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성격이 급하거나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서 흔히들 보게 되는 표정입니다. 뿐만 아니라 잠의 형태나 극치의 감정을 표현할 때 나타나기도 하는 표정입니다. 이러한 표정을 짖는 것이 젊을 때부터 습관화 된 사람은 미간에 내 천(川)자와 같은 골이 잡히게 됩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그 골은 풀리지 않는 깊은 주름으로 평생을 따라 다닙니다. 이러한 표정은 설교자의 인상에 치명적인 손상을 안겨줍니다.

    설교자는 언제나 긍정적인 사고와 인상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설교자에게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인상은 매우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우리의 주변에서는 은혜가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로 가득한 사람들을 봅니다

    그들은 대부분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입니다. 그 얼굴에는 맑은 미소가 보입니다. 더욱 자세히 보면 그 양미간에는 전혀 주름이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설교를 가르치는 교수들은 어떤 경우도 미간의 주름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인상의 맑고 밝음이 양미간에 아무런 선이 없는 경우임을 발견하면서 그 중요성을 더욱 실감하고 있습니다.

    대화의 정리

    인간 사회는 언어가 있기 전에 얼굴의 표정을 통한 의사소통이 먼저 있었다. 그래서 인간은 소리를 통한 의사소통을 갖기 전에 상대의 표정을 먼저 읽는다. 그 표정에 의하여 자신이 필요한 것들을 예상한다. 그의 기분상태를 비롯하여 원하는 것까지도 미리 짐작하고 소리를 통한 언어에 접한다. 그러기에 표정이란 소리 없는 의사소통의 일차적 관문이다. 이 관문의 중요성은 설교현장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인간이란 누구나 좋은 인상을 소유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 원한다. 험상궂은 인상의 소유자가 자기 앞에 나타날 때 모두가 경각심이나 거부감을 갖게 된다. 그래서 몽테뉴는 그의 {수상록}에서 "좋은 외모는 인간사에 있어서 훌륭한 추천장이다"라는 말을 남기게 되었다. 설교자만을 쳐다보고 그 입에서 나오는 메시지를 기다리는 설교현장의 '관객'들은 그들의 눈을 설교자의 표정을 비롯한 외모에 집중하고 있다. 그가 주고 있는 표정이나 인상에서 호감을 주지 못하는 설교자는 그 만큼 '관객'과의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인간이란 하나의 과일을 살 때도 겉모양을 세심히 주시한다. 그 세심한 주시는 좋은 알맹이를 찾기 위한 과정이며 노력임에 틀림이 없다. 오늘의 회중들은 설교자의 입을 통한 언어가 있기 전에 그의 인상과 표정을 통하여 우선적인 안정감을 갖기 원한다. 그의 잔잔한 미소 앞에서 자신들의 얼굴에도 미소 짖기를 원한다. 이러한 양자의 미소의 출발은 의사소통을 가져올 수 있는 비옥한 옥토가 된다. 그 옥토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설교자와 회중은 기쁨과 감사와 슬픔과 고통의 비바람을 함께 경험하면서 말씀의 깊은 세계에 함께 진입(進入)하게된다.




    독자 설교

    설교작성하기 (3년 후에는 자동삭제됩니다.)
    이 름 E-mail
    제 목



    프린트하기 기사메일보내기 독자설교


    이전으로
    일반설교 작성법
    참된 설교 /빌립보서2:6-8/ 하용조 목사
    설교와 상상력
    설교, 무엇이 문제인가
    살아있는 설교
    설교의 영광과 한계
    잘못된 설교
    인터넷 설교 작성법
    경동교회가 주보에 다음 주 설교 본문을 미리 적는 이유
    설교 믿으라고만 하지말고 믿을 내용을 주라
    선배 목회자에게 듣는 부활절설교 힌트
    서론에서 설교의 성패가 결정
    설교준비 이렇게 하라
    설교 이야기
    진실한 설교
    설교의 본질/ 설교의 접근방식
     | Home | 사이트맵 | 설교검색 | 설교전체보기 | 설교쓰기 |개인정보취급방침 | ___ | 
    Copyright by 본 설교신문 자료를 다른사이트로 무단복사 절대금합니다(추적장치가동)/설교신문//이새롬/사업자번호220-09-65954/서울시강남구도곡로1길14삼일BD1121호/통판:서울강남01470/문자로 질문바람010-3761-0691/E-mail:v919@naver.com   Contact Web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