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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벧전 2:19-20 애매한 고난도 참으면 아름다우니라
    2001-12-10 12:30:09   read : 1199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여러분은 젊었을 때에 꿈이 컸습니다.
    백마타고 온 기사와 함께 보든 사람들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아름답게 춤을 추는 공주가 되기도 했으며
    호수가 보이는 언덕 위에 하얀 집을 짖고 사랑하는 그이와 함게 저녁 노을을 바라보면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을 듣는 꿈을 꾸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소설가 교수, 의사, 정치가, 연예인, 사업가로 출세하여서 아주 높은 빌딩에 가장 전망 좋은곳에 사무실을 차리고 앉아서 빌딩 현관을 드나 들 때마다 경비원들이 부동 자세로 경례를 붙이는 가운데 비서를 대동하고 바쁜 듯이 걸어가는 여러분을 상상했을 지도 모릅니다.

    하여간 젊은 날에 여러분의 꿈은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애매한 고난을 받음으로 인하여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억울하고 참으로 애매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억울해도 어쩔수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닥친 애매한 고난은 이미 날아가 버린 화살이요 엎지러진 물입니다.

    참으로 여러분은 애매한 고난으로 억울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아무리 애매한 고난이라도 어쩔수 없이 여러분이 감당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몫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에게 호소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묵묵히 주님을 생각하고 참고 견뎌야 합니다.
    그러면 훗날 고난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애매한 고난도 여러 가지 있습니다.
    20절에 말씀대로 자신의 실수와 죄로 인하여 고난을 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의 죄와 실수 그리고 게으름으로 인하여 고난을 받았다면 그것은 애매한 고난이 될수 없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애매한 고난으로 생각합니다.

    가롯 유다는 자신의 육체의 소욕을 위하여 예수님을 은 30에 팔았고 결국 스스로 고난을 길을 가게 되고 결국 자살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와같이 유다의 고난은 자신의 죄로 인하여 받는 고난임으로 동정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진정 애매한 고난이란 내가 선을 행하다가 당하는 고난을 의미합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정의 편에 섰기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을 애매한 고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실수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믿음을 지키고 남을 위해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다가 애매한 고난을 당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A.D 300년경에 마카리우스라고 하는 유명한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마카리우스를 대단히 존경했습니다.
    그런데 동네 한 처녀가 임신을 했는데 이 마카리우스의 아이라고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마카리우스를 욕하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때렸습니다.
    그러나 마카리우스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묵묵히 참았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노동해서 번 돈을 모함한 여자에게 갖다주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인내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자 여자의 마음이 변하고 회개하고 자기의 잘못을 동네 사람들에게 자백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마카리우스를 다시 존경하고 그는 위대한 수도사의 자리에 설 수가 있었습니다.

    참는다고 하는 것은 가만히 있는 것, 낙심하고 쓰러져 있는 가운데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직접 대면하는 것입니다. 고난을 직면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으로 놀라운 인내를 보여주시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참는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예수님은 죄가 있으셔서 매를 맞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이 아 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들에게 욕을 먹고, 침 뱉음을 당하고, 매를 맞 고, 나중에는 살인 강도들이나 달리는 애매한 고난을 당하셨지만 묵묵히 참으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우리에게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라고 하신 말씀은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너희가 나처럼 애매한 고난을 당하여도 참음으로서 더 큰 영광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를 따라오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십자가를 지고 좇으라고 하시는 것은 나무 십자가를 지라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위에서 애매한 고난을 참으신 그 사랑과 희생의 정신을 닮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애매한 고난도 참아야 합니다.

    (부산 온천장 교회 여집사 이야기)

    예수님이 가르쳤던 8가지 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복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복과는 좀 다르지 않습니까?
    우리는 건강한게 복이고 웃는게 복이고 또한 출세하는게 복인데 주님의 8복은 좀 다릅니다.
    주님은 우는 것도 복이 될 수 있고 애통하는 자도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핍박받는 것도 복이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10절에 보면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

    주님은 성공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박수갈채를 받는 것만이 아름답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의를 행하다가 애매한 고난을 받는 것도 너희가 주님을 생각하고 참으면 그것이 아름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셉의 일생을 바라보면 그가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는 장면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형님들 앞에서 호통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은 것이 아니라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 그는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을 가기 위하여 옷을 벗어놓고 도망을 가고 그러다가 누명을 쓰고 감옥 속에서 애매한 고난을 당하는 장면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장면이 될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로 인하여 애매한 고난이 없었다면 요셉이 총리 대신되는 아름다운 장면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의를 위하여 애매한 고난이라도 견디는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일생을 보면서 여러분 어느 대목이 가장 아름다운 대목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어떤 사람은 오병이어를 가지고 오천명을 먹이는 이 위대한 기적을 행하시던 주님이 아름답다고 혹은 바다위로 걸어가는 주님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죄인처럼 사람들에게 체포를 당하시고 힘없는 자처럼 십자가 위에 애매한 고난을 당하시는 장면이야 말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인 것입니다.

    의를 위하여 애매한 고난을 받는 모습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내게 다가오는 애매한 고난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때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그때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참으면 그 때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고 생각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일생은 잘못 만난 사람으로 인하여 애매한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친구 때문에 아내 때문에 남편 때문에 형제 때문에 부모 때문에 주변 사람 때문에 애매한 고난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들을 탓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것이 결국 여러분이 어차피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잘 참음으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애매한 고난일지라도 선을 행함으로 참고 인내하면 고난도 오히려 아름다움이 될수 있다는 것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 때문에 억울하다고 말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더 큰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하여 애매한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19절 말씀을 우리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그렇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애매한 고난이 아름다와지는 비결이 여기 있습니다.
    고난을 당하면서 주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고난과 주님을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종류의 고난이라도 아름다운 고난이 되는 것입니다.
    '아하, 주님도 나처럼 고난 당하셨구나. 내가 당하는 이 아픔, 주님도 겪으셨구나.'

    내 고난이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생긴 고난이라면 그것은 아름다운 고난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고난 당했으니 주님의 고난이 내 고난이요 내 고난이 주님의 고난"이라고 하는 생각이 내 인생의 모든 고난을 아름답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여러분,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셨습니까? 보통 사람들은 분해하고 복수를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이 벌을 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혹 어떻 사람들은 왜 내 인생은 되는 일이 하나도 없냐' 이렇게 비관적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애매한 고난에는 그져 참고 인내하는 것 뿐입니다.

    우리는 억울하다고 생각할 때에 주님의 애매한 고난을 생각해 봅시다,
    '주님도 애매한 고난에 얼마나 마음이 상하셨을까?

    고난이라고 하는 말은 원래 트리블룸이라는 말에서 나왔는데 이 말은 껍질을 벗겨 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고난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때묻은 것을 벗겨주고 우리의 인격을 성숙하게 하고 우리의 인생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인격의 최대의 타락이 교만이라면 인격의 최대 경지는 겸손입니다.
    겸손한 자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킵니다.
    바로 고난을 통과 할 때에 풀무 속에 들어간 쇠붙이가 불순물을 다 제거되듯이
    우리의 인격도 고난을 통해서 교만이 겸손으로 바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위대한 사도 가 된 것은 애매한 고난을 참는 모습을 보인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사람이 스데반 집사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복음을 전하다가 억울하게 유대인들 의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 주여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욥소서" 라고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를 하고
    애매한 고난 속에서도 인내하면서 "천사의 얼굴을 보여준 스데반 집사의 모습을 사도바울은 곁에서 낱낱이 지켜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도바울은 스데반 집사가 애매한 고난을 참으면서 아름다운 천사의 얼굴로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보는 순간 그는 이미 그리스도를 만나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결국 스데반 집사의 애매한 고난은 헛되지 아니하고
    사도 바울이라는 위대한 사도를 탄생하게 만드는 결실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애매한 고난도 내 주변 사람에게 구원의 증거가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모든 고난은 주님과 연결시킬 때에 아름다와질 수 있습니다.
    주님 당하신 고난을 기억하면서 주님을 바라보면서 고난의 모든 사건들을 아름답게 만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난 중에 참는 것이 아름답다고 하셨습니다.
    본문의 20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우리는 애매한 고난에서 참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참는 것은 굴복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애매한 고난에 분을 억지로 삭이는 것이 아닙니다.

    애매한 고난이라도 주님과 함께 하시니 기뻐해야 하고 감사해야 하고
    고난을 통해 더욱 더 아름답게 변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애매한 고난을 참으신 아름다운 모습은 23절속에 들어 있습니다.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예수님은 욕을 먹고도 욕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애매한 고난을 당했다고 상대방에게 욕을 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파괴되는 순간입니다.
    아무리 애매하게 모함을 당하고 욕을 먹는 일이라도
    그 모함과 욕을 내가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흡수할 수 있어야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주님에게 침을 밷고 욕하는 사람을 향해서
    '주여,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는 저희가 저들의 하는 짓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욕을 먹고도 욕하지 않으셨습니다.
    애매한 고난을 받고도 분해 하거나 원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보통 사람은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구합니다.
    '지금은 당하지만 나중에 두고 보자 '
    이렇게 말하고 참는 것은 진실로 참는 것이 아닙니다. 참는 척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는 우리에게 애매한 고난을 끼친 사람을 급하게 심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너 어디 잘되나 보자"
    우리는 세상에 어떤 사람도 심판할 자격이나 권한이 없습니다.
    모든 결론은 하나님께서 내리게 하십시다.

    이 세상에 아무도 나쁘다고 심판하고 나쁜 사람이라고 판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주님을 생각하고 잘 참고 잘 견디면 아무리 미워하던 사람도 내게 필요한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25절을 보면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라고 했습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인생을 포기하는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바른 구원의 길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길 잃은 양은 헤매는 양이요. 맹수의 밥이 되는 양입니다.
    어린아이가 길을 잃으면 미아가 되고 부모를 잃으면 고아가 됩니다.
    직장인이 직장을 잃으면 실업자가 되고 사업가가 돈을 잃으면 폐인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보다 더 큰 상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믿음을 잃어버리면 그 영혼이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의학용어 가운데 "생명징후"라는 말이 있습니다.
    맥박, 호흡, 체온, 혈압이 정상일 때 생명징후도 정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생명징후인 맥박, 호흡, 체온 혈압이 비정상으로 올라간다든지, 반대로 낮아지면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의 생명징후는 예배와 말씀과 기도입니다,
    예배가 멀어지고 말씀과 기도가 멀어지면 그의 영혼의 생명 징후가 최악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사랑이 식고 증오가 치솟는 최악의 생명 징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필요없는 일로 흥분하고 화를 내고 억지로 참으면 혈압이 올라가 고혈압이 됩니다.

    "뇌내혁명"을 쓴 일본의 하루야마박사는 아무리 행복한 사람이라도 화를 내거나 누군가를 증오하면
    뇌속에서 "노드아드레날린"이라는 독성 호로몬이 분비되어서 건강을 잃는 시점이 되지만
    그러나 아무리 괴로운 환경에 처해 있어도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생각 하면 뇌는
    "베타엔돌핀"이라는 호로몬을 분비되어서 건강의 청신호가 울린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베타엔돌핀은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만들뿐만 아니라 노화를 방지하고 자연 치유력을 높이는 뛰어난 약리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애매한 고난을 받아도 기독교인이 표현하는 방법은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불평과 원망을 내쫓아 버립니다.
    그러나 불평과 원망은 반대로 감사를 쫒아 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애매한 고난을 만나도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어 감사하며 살아 갈 때에 고난도 영광이 될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새은 때로 원치 않은 고통의 날이 있습니다.
    민비는 조선 왕조에 가장 권세가 있고 가장 똑똑한 왕후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민비가 아프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서양 의사에게 진찰을 받게 되었습니다.
    서양의사가 가늘고 긴 유리 막대 하나를 빈비의 겨드랑이에 끼게 했습니다.
    빈비가 유리 막대를 겨드랑이에 끼었더니 얼마나 차가운지, 신경질을 부리며 꾸짖었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짖이요?" "마마, 죄송하오나, 잠깐만 참아 주시옵소서."
    그러나 빈비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내 건강을 위해서라면 좋소, 그러나 이왕 사용할 바에 좀 데워오시오."
    체온계가 차가우니까 좀 데워 오라고 말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의사는 그 말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이와같이 우리 인생은 내가 원치 않아도
    하나님은 우리를 테스트하기 차가운 유리 막대 같은 애매한 것으로 우리를 귀찮게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 길 살아가는 동안에 좋은 사람을 예정하셨지만 또한 좋지 않은 사람도 예정하셨습니다.
    기쁜 일도 신나는 일도 예정하셨지만 고통스러운 일도 하나님께서 예정하셨습니다.
    유리한 것만 예정하신 것이 아니라 불리한 것도 예정하셨습니다.
    내 인생의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 내 인생의 모든 고통과 슬픔들이 우리를 괴롭히지만 모두가 주님의 예정 안에 있는 도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율례를 배우고 겸손해지며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서 성숙한 신앙인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71절을 보면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고 시편 기자가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 사이에 어느 학생을 따돌리는 것을 왕따라고 합니다.
    이북에서는 왕따를 모서리 죽이라고 합니다. 귀퉁이로 자꾸만 몰아 세우는 것입니다.
    말도 하지 않고 같이 놀아 주지도 않는 왕따가 우리 주변에도 존재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려면 왕따를 당할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 지키는 것 때문에 왕따를 당할 수 있지만

    그러나 성도들의 "왕따"는 "왕을 따르는 사람" 이 바로 왕따입니다.
    우리는 왕을 따라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왕되신 주님에게 모든 것을 다 보이면 왕께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어려운 애매한 고난이라도 참고 인내하면 나의 앞에 애매한 고난이라도 축복의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천안에 가면 천안의 명물 호도 과자가 있습니다.
    천안 호도 과자의 원조는 천안 성심교회의 심복순 권사님입니다.
    그녀는 남편을 잃고 애매한 고난으로 마음이 슬펐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마음속에 복음을 위한 강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주여 내 평생 교회를 일곱 개를 짓기를 원합니다. 그것을 위하여 기도하오니 주여 나에게 길을 보여 주옵소서." 그가 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천안에 많이 나는 호도를 넣어서 과자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녀는 과자속에 호도를 넣어서 팔았더니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거부가 되었고 교회를 일곱 개나 지었으며 계속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정리하고 말을 마치게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애매한 고난이 있습니다.
    고난은 성공한 사람에게도 있고, 의사나 박사에게도 있으며 부자나 가난한 자,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에게도 애매한 고난은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 고난은 피할 수 없는 과제입니다.
    고난은 자기 잘못으로 올 수도 있고, 다른 이의 잘못으로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의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인격과 믿음의 능력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그리스도인의 고난의 때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때입니다
    고난의 원인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고난의 때에 그 문제를 하나님께 고하고 하나님과 기도로 교통하는 시간을 갖기 바랍니다.
    엘리야가 그러했고, 바울이 그러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들의 간구와는 별도로 필요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도 고난의 때를 하나님께 아뢰는 교통의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그리스도인의 고난의 때는 은혜의 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가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고난의 때는 은혜 받을 때입니다.
    우리는 병든 것도 은혜일 수 있고 가난하고 실패한 것도 은혜일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난의 때에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애매한 고난의 때라도 은혜와 복의 기회로 삼고,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애매한 고난을 받을 때 주님 생각하며 묵묵히 참고 내가 진 십자가를 잘 지고 가십시다.
    그렇게 하시면 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나 하나 때문에 가정이 밝아지고 직장이 밝아지고 동네가 밝아지게 될 것입니다.

    내가 애매한 고난이라도 참으면 많은 사람들이 나 때문에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인생입니다.
    "애매한 고난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참으면 아름다운 고난이 될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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