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2월 9일 은혜 받을 만한 때/고후6:1-2 2001-12-09 13:39:14 read : 1375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오늘 말씀은 "은혜 받을 만한 때"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늘 함께 하시기 축원합니다.
바울 선생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1절)고 권면했습니다.
본래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의 전도를 통해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 성도들인데 거짓 선지자들의 감언이설로 믿음에 상처를 입어서 교회를 소란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이들을 향해 과거에 받았던 은혜를 헛되게 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그 은혜를 계속 유지하고 감사하며 사명대로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불신앙적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는 때가 많습니다.
우리 주님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인데 그 은혜를 헛되게 할 수가 있습니까?
지난번 노회 주최 부흥회에 갔더니 강사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자기 교회에 주일만 억지로 나오는 교인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 남자 집사님이 배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정밀 진단을 해보니 위암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안이 난리가 났습니다. 부인은 매일같이 새벽기도회 나오고 남자 집사님도 문병가면 눈물을 흐리면서
"이번만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 남은 여생 주를 위하여 충성하겠노"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지극한 정성을 하나님이 보셨던지 은혜롭게 수술이 잘 끝나고 퇴원을 하고 건강한 몸으로 열심히 신앙을 생활을 잘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지 교회에서 잘 보이지 않습니다.
사업을 시작했는데 너무 바쁘고 잘되는 것입니다.
얼마 후에는 아예 예배에 불참하는 날수 가 점점 늘어만 갔습니다.
목사님이 심방 가서 말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았으니 잊지 말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라" 고 충고를 했더니 대답이
"목사님 하나님의 은혜를 잊을 수 있나요? 그런데 요즈음 너무 바빠서요 .장사도 철이 있거든요. 목사님 좀 한가하면 교회 열심히 나갈게요" 그러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한가하게 만드셨습니다.
사업이 망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두고 오늘 본문 1절에서 "은혜를 헛되이 받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뒤에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은혜를 받았으면 고마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난주에 결혼식에 갔더니 주례를 보시는 분의 말씀이
부모님의 은혜를 아는 것이 인륜에 근본이요
부모의 은혜를 깨닫고 효도하는 자녀는 다 잘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 은혜를 모르고 효도할 줄 모르는 자식 치고 잘되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효도하는 자녀는 하는 일이 잘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기뻐 받으신 하나님은 은혜의 축복을 또 다시 내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죄와 사망가운데 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죄를 용서받고 거룩함에 이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은혜가 소중하기 때문에 본문에서 바울은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라고 은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더 강조하는가 "자기 스스로가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죽을 몸이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 은혜가운데 살지 못하면
잘못 마귀의 유혹에 속아서 실족하기 쉬운 것이 인간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고 바르게 받아야 합니다.
1절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고했습니다.
먼저 바울은 자신의 입장을 설명합니다.
자기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는 일편단심 신앙에 변화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그런 태도로는 더큰 축복을 받기 어렵습니다.
여러분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금은 보화가 아닙니다.
자기가 부모로부터 스승으로부터 주변 사람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잊지 말고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은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은혜 받은 생활을 하지 못하면 삶에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못합니다.
왜 신앙 생활을 오래해도 삶에 변화가 일어나지 낳는가?
받은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은혜 받은 것을 감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대학 강단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가
아버지를 살해함으로 더 큰 사회적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신문을 읽어보니 그리스도인 이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가 정말로 은혜를 체험하고 거듭난 신자였다면 그런 일은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나라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은혜를 모르고 교회만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인들이 사회에서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진정으로 은혜를 받았으면
거듭난 새 사람이 되고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삶에 변화가 일어 날 것입니다.
여러분 은혜 받은 사람은 자기 위주로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고 겸손한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성경 속에 보면 사울 왕은 은혜를 헛되이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겸손했습니다. 왕으로 삼으려고 하니까 도망가 숨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울을 세워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는 처음에 은혜를 잘 받았으며 아울러 예언을 하는가 하면 나라 정치를 잘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였습니다. 배은망덕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외면하면서부터 교만하고 시기심에 악신에 눌린 생활을 하였습니다.
결과는 자신도 그의 왕가도 몰락했습니다
우리는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고 잘 받아야 합니다.
즉 받은 은혜를 망각하지 말고 받은 은혜를 감사와 헌신으로 잘 써야 합니다.
그러면 은혜는 언제 받아야 합니까? 은혜는 지금 받아야 합니다
2절 끝을 보면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라고 했습니다
"보라"는 말은 은혜의 공개성을 말합니다. 은혜는 눈에 나타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그 모습이 눈에 띄게 나타납니다 뭔가 다릅니다..
은혜 받은 사람의 컽 모습이 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본문에 보면 은혜는
"지금 숨쉬는 순간, 살아 있는 이 시간 이 순간에 은혜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금"이란 말은 시간적으로 마지막 순간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에게 지금은 잘못하면 마지막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한시간에 한명씩 교통사고를 세상을 죽는다고 합니다.
바로 지금 이 시간이 어떤 사람에게는 마지막이 되는 것입니다.
과거는 지났기 때문에 우리 것이 아닙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역시 우리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바로 지금이라는 이 시간이 우리의 것입니다.
지금은 긴박한 마지막 시간이요 지금이라는 이 시간의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다음으로 미루면 안 됩니다.
II. 은혜란 무엇입니까?
구약에서 『헤세드』라고 합니다.
『사랑의 매로 꾸짖다』는 뜻으로
어떤 면에서는 모순되는 듯 하지만 사실은 사랑하기 때문에 징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고난이 왔습니까?
사랑함으로 더 잘되라고 사랑의 매를 드시는 것입니다.
자녀에게 매를 대는 어머니의 마음은 속울음이 나옵니다.
여러분의 슬픔을 당할 때에 하나님은 속울음 소리를 들으셔야 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세드의 은혜를 주십니다
신약에서는 {카리스}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값없이 주시는 축복의 은혜』라는 의미입니다.
은혜란 하나님께서 값없이 거저 주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렇다고 은혜란 싸구려이기 때문에 값없이 거저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주변에는 공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싸구려가 아닙니다
만약에 공기가 비싸게 사먹는 것이라면
돈 없는 많은 사람들이 공기가 없어서 죽어 갈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공기와 은혜를 모두 값없이 주신 것입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가보면 좋은 작품들과 그림에는 가격이 붙어 있는데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모나리자』밑에는 『값이 없다, priceless』라고 표기되어 있다고 합니다.
아주 비싼 것은 값을 메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받았을 때에 진정으로
생각이 변하고 표정이 변하고 태도가 변하고 삶이 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언젠가 말씀드렸듯이
은혜 받은 사람은 성공하려면 먼저 생각이 변해야 합니다.
왜" 모든 행동은 생각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소극적인 생각, 부정적인 생각, 절망적인 생각, 비관적인 생각,
나는 안 된다, 나는 틀렸다, 이제 이미 늦었다, 이젠 어쩔 수 없다, 는 생각에서
뛰쳐나오지 않으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인생은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되는 것입니다.
꿈을 가지십시오 야망을 가지십시오
부정적으로 생각하니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전에 이런기사가 나왔습니다.
이혼한 부모의 밑에서 자란 자식도 결국 이혼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려서부터 비극적인 상황속에서 자라면서 그런 상황에 익숙하고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에 훗날 조금만 어려워도 부모의 과정을 닮는 것입니다.
은혜받은 사람은 두 번째 태도가 달라야 합니다.
지식이나 학벌이나 기술보다 태도가 성공에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머리 좋고 좋은 대학 나오고 기술 좋으면 뭐합니까
교만하고 독선적이고 잘난체 해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 절대로 혼자서는 어려운 것입니다.
머리는 조금 나빠도 성실한 태도, 적극적인 태도, 겸손한 태도 예의 바른 태도, 열성적인 태도, 가 중요한 것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세 번째 표정이 달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은혜를 "카이로" 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 뜻은 "유쾌하다,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유쾌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행복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표정이 다릅니다
표정이 밝습니다. 광고 문안대로 유쾌 상쾌 통쾌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표정이 변하고 아울러 삶이 변하고 인생이 변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여러분 더 이상 은혜를 미루고 소홀히 취급하지 맙시다
지금은 내 시간이므로 지금 은혜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큰문을 넓게 열어 놓으셨는데
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못 받는가
욕심으로 구하기 대문입니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기회가 와도 내 것으로 받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은혜 받을 만한 기회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일에는 다 기회가 있습니다. 인생의 성공과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내게 은혜의 기회를 열어주는 때가 있습니다.
바로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입니다.
미련하고 욕심이 많고 준비되지 않은 성도는 찾아온 기회를 잃습니다
(1) 열심히 모여 기도할 때 은혜를 받습니다.
은혜는 기도를 통하여 받습니다.
렘 33 : 3에 "너희는 나에게 부르짖어 구하라 내가 너에게 응답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81장10절에는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했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는 것입니다.
옛날 페르시아에서는 황제가 충성된 신하에게 상을 내릴 때에는 입을 벌리라고 한 뒤에 그 입에 진주나 보석을 넣어 주었다고 합니다. 황제 입을 벌리라는 그 능력을 의심해서 조금 벌리거나 안 벌리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입을 넓게 열라"고 하는데 입을 다물고 있거나 조금 열면 되겠습니까?
제비새끼들이 어미가 날아오면 그 노란 입을 힘껏 벌리고 짹짹거립니다.
제일 많이 벌리고 보채는 놈 한데 먼저 먹이를 넣어 줍니다
입을 넓게 열려면 기도 소리가 크고 간절하게 갈급한 마음으로 하여야 합니다.
"나는 부요 하여 부족함이 없다"고하는 사람은 실상 가난한 자요 가련한 사람입니다. 부족함을 못 느낄 때 기도의 입이 열리지 않습니다.
갈급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 할 때에 할 때 입을 넓게 열 수가 있습니다.
그럼으로 간절한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소원이 간절해야 입을 넓게 열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입을 넓게 열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간절한 소원이 없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는 응답을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나 기도할 때
잠자는 것도 아니고 흐리멍덩한 가운데 하는 것은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내 전적으로 씨름을 해야 합니다.
야곱도 그렇게 밤새워 싸우듯이 기도해서 축복을 받았습니다.
불타는 소원으로 한이 맺힌 듯이 끈덕지게 간청하면 성령을 받고 능력을 받습니다.
영국의 스펄젼이 젊었을 때 날마다 새벽시간, 주일에는 낮 시간, 저녁시간에 빠지지 아니하고 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너는 왜 그렇게 예배시간마다 빠지지 아니하고 참석하느냐 아들이 대답하기를
"어느 시간에 생수의 강이 흐를지 모르니까 빠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스펄젼은 어느 날 새벽시간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목사가 되었고 가장 설교를 잘하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2)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자가 받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원하는 자, 은혜를 사모하는 심령 위에 풍성한 은혜를 주십니다.
시 42:1에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 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사모하는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신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 보면 다락방에 모였던 120명이
성령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오순절에 성령을 충만히 받았습니다.
1) 은혜를 사모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를 기울여 듣습니다.
2)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합니다.
3) 마음을 열고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아멘으로 받습니다.
4)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하옵소서 제가 듣고 행하겠나이다
라는 마음으로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직접주신 말씀으로 들어야 은혜를 받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은 지는 오래 되는데 매일 달라고만 하였지 주를 위하여 한 일은 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각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의 과거를 일신하고 그리스도 안의 새로운 삶을 다짐해야 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하나님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은혜를 받으라고 선포하시는데
과연 어느 받을 준비가 되었는가?
오늘 우리의 마음의 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하나님은 은혜를 거두어 가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인생은 후일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인생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알게 뭐야?" 하고 적당히 살아갑니다.
이현주 씨의 동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밀가루를 싣고 빵 공장에 가는 트럭과 시멘트를 싣고 벽돌공장에 가는 트럭이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휴게소에 멈추어 섰습니다. 트럭운전사는 화장실에 갔다 와서 트럭을 탔는데 그만 서로 바꿔 타고 말았습니다.
두 운전사는 똑같이 알게 뭐야하고 생각하며 차를 몰아 목적지로 갔습니다.
그러니까 시멘트를 실은 트럭은 빵 공장으로 가고 밀가루를 실은 트럭은 벽돌공장으로 간 것이지요. 공장기술자는 "알게 뭐야"라고 말하면서 빵 반죽에 시멘트를 붓고 벽돌반죽에다가 밀가루를 쏟아 부었습니다. 거기서 나온 빵이 가정에 배달되고 벽돌은 집 짓는
데로 배달되었습니다.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집이 무너지고 사람들은 이빨이 부러진 채 배를 움켜쥐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현실입니다. 지금 중국 사람들이 생선에다 납을 넣고 우리나라에 어떤 사람들은 고춧가루에다 톱밥을 넣어요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내가 알게 뭐야?"하는 식으로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한번밖에 없는 우리의 인생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에 값지고 보람되게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자세로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내리는 것입니다.
1. 은혜 받은 사람은 첫 번째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고린도후서6장11-13절) 본문에 "네 마음을 넓히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넓히려 들면 바다처럼 넓어질 수가 있고
좁아지려면 바늘구멍처럼 좁아 질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넓히라"는 말씀은 많이 있지만 "좁히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큰복을 받으려면 마음이 넓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좁은 마음에 고집과 독선과 편견으로 살아갑니다
우리의 마음이 좁아지면 어떤 일을 당했을 때에
근시안이 되어서 멀리 보지 못하고 어둡고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이 넓은 사람은 똑같은 일을 당해도
불행이 아니라 다행으로 긍정적으로 감사로 받는 것입니다.
(예: 소매치기, 교통사고 )
본문에 내용대로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남을 용서해야 마음이 넓어집니다.
예수님이 남의 죄를 용서하라는 말을 듣고 베드로가
"하루에 일곱 번까지 용서하면 되겠습니까?" 할 때에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490번만이 아니라 회개하는 사람은 무한히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고후6:14절에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라고 말씀합니다.
신명기 22장 10절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실 때,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한 멍에에 메워) (밭을) 갈지 말며"라고 말씀하십니다.
소와 나귀는 크기와 성격이 각각 다른 짐승으로 함께 보조를 맞추기가 힘듭니다.
소와 나귀의 다름으로 밭 갈기가 더디 되고 함께 망하는 일은 있어도 잘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가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덜하지 않습니다.
고려의 마지막 충신들 중의 한 사람이었던 정몽주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는 시조(時調)로써 불충한 자들과 교제하지 말고 악을 도모하지 말라고 타일렀습니다.
나는 비록 희고 깨끗한 몸이요 성결한 삶을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어떤 부류의 사람들과 짝하여 있느냐에 따라서 나의 삶이 모습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했습니다.
비슷한 성격과 일을 도모하는 것들, 짐승들, 사람들끼리 모이게 마련이라는 뜻입니다.
간신들과 짝하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간신히 되고, 역적들과 어울리는 사람은 타의에 의해서 역적모의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었지만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여 살게 되면, 종종 믿지 않는 남편이, 아내가 하자는 대로 따라갑니다.
남편이나 아내 중에 어느 한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이면 주일날 교회 가는 일에 있어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그러다 보면 서로 타협하게 되고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 종잡을 수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 세상 인구의 80% 이상이 아직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요,
그러니 믿지 않는 사람들과 일체의 접촉을 갖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일체의 접촉을 갖지 않기 위해서는 깊은 산 속에 들어가 믿는 사람들만이 단체로 수도원 생활을 하거나 신앙촌과 같은 촌락을 형성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고 하시면서, 세상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변화시키라고 명하십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믿는 사람들이 세상을 피할 것이 아니라 세상 중에 살아야 할 것이므로
너희는 세상에 살되 믿지 않는 사람들과 짝하여 그들의 삶의 모습대로 살지 말라는 권고입니다.
"멍예를 같이하지 말라"(Do not be mismatched)고 한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려서 그들이 이끄는 대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자세 주에서 어깨동무를 하는 자세가 있고 마주봄의 자세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불신자와 어께 동무를 하는 것이 아니고 마주 보는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지 않는 자와의 교제나 결혼으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그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는데 신약의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에서 온전합니까?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의 품성이나 모습은 여전히 유혹에 약하고 세상적인 것에 빠져들기가 쉽습니다.
바울은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절대로 멍에를 같이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몇 가지를 대조시킵니다.
14절에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라고 했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빛이신 그리스도께로 나온 자들인데 아직도 어두움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과 함께 도모할 일이 없습니다.
어두움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할 일이 한 가지 있는데 그들을 빛이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입니다.
16절에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우상을 둘 수가 없습니다. 이는 가증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고전 3:16-17, 6:19).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 각 믿는 사람 안에 머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이 계시는 성전인데
어찌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우상을 마음에 품을 수가 있겠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정결한 생각과 마음을 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앞에 두기를 원하는 모든 것들을 몰아내야 합니다.
하나님 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우상입니다.
우리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에 속하여 있어야 합니까?
1)불법에 속할 것인가 의에 속할 것인가?,
2) 어두움 가운데 있을 것인가? 빛 가운데 거하며 빛을 발하는 자들이 될 것인가?
3) 헛된 일을 꾀하는 자가 될 것이낙 하나님의 일을 구하는 자가 될 것인가?
누군가 슈바이처 박사에게 "당신은 왜 의사가 되었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나는 말로만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어떤 유익한 말일지라도 실천이 따르지 않는 말은 죽은 말일뿐입니다.
사람들이 기독교 신자들에게 "말은 잘한다"고 냉소를 보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꾼들로서 실제 말보다는 행함이 앞서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은 은혜를 받을 때입니다
은혜를 받았으면 받은 은혜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 의로워진 자들에게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
하나님은 결코 자녀들이 잘되고 은혜를 깨닫고 주를 본받아 거룩하고 성결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모두 그와 같기를 주님에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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