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0월 10일 제목: 돕는 사람 창2:18 롬:8:28 2001-08-19 22:06:51 read : 1109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여러분도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만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그의 대통령 취임사에서 미국
민에게 이렇게 유명한 연설을 하였습니다.
"조국을 사랑하는 미국민이여 조국이 여러분을 위하여 무엇을 해줄까 기대하기 전에 여
러분이 조국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 를 먼저 생각하는 백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라
고 연설을 하였습니다.
우리 인간은 천성이 이기적이어서 남에게 베풀기보다는 먼저 받기를 생각하는 습성이 있
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누가복음 6장 31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받기를 원하면 그러면 너희가 먼저 주어야 하느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기 원하십니까?
그러면 이제부터 여러분은 먼저 남을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때에 비로서 주변 모든 사람들이 여러분을 도와 줄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답심리가 있어서 남이 도와주면 그 이상을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주님 말씀처럼 "얻기를 바라면 먼저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은 "돕는 사람" 즉 "먼저 돕는 사람이 됩시다"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 저를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우리는 이러한 말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를 만나든지 수시로 항상 나와야 합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부부간에도 서로 돕는 배필이 되어서 항상 묻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여보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택시 운전사라면 손님에게 항상 물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식당에 종업원이라도 손님에게 항상 먼저 물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제가 처음 롯데 월드를 잘못 들어가서 나오고 보니 롯데호텔 로비가 되었습니다
두리번 거렸더니 어디선가 예쁜 아가씨가 다가오더니 내게 물어 보았습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그래서 주공 아파트를 가려는데 어디로 가냐고 물어 보았더니 자기를 따라 오라면서 친
절하고 공손하게 길을 가르쳐 주면서 90도 각도로 안녕히 가십시오 라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참으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인생도 어려울 때 이렇게 우리에게 항상 무엇을 도와 도와 드릴까
요 라는 안내자가 있다면 좋겠다 생각해 보니 바로 들고있던 가방 속에 성경이 바로 우리
인생의 안내자라는 것을 개달았습니다.
우리는 항상 자신이 속한 곳에서 도움 받기를 바라는 것보다 먼저 돕는 자세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가족간에도 내가 이 가정을 위하여 무엇을 도울 것인가?
내가 내 아내와 남편을 위하여 어떻게 돕는 사람이 될 것인가
내가 속한 교회라면 이 교회를 위하여 어떻게 도울 것인가?
내가 속한 회사라면 내가 회사를 위하여 어떻게 도울것인가?
내가 종업원으로 일한다면 이 가게를 위하여 어떻게 도울 것인가? 를 먼저 생각하는 사
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느 큰 회사에 새로운 사장이 취임하게 되었는데 나이가 비교적 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신문 기자가 어떻게 이렇게 젊은 나이에 출세하게 되었느냐고 질문을 하자 그가
말하기를 "자기는 입사한 뒤부터 지금까지 항상 이 회사가 내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사장
처럼 내가 이 회사를 위하여 어떻게 도울 것인가?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 하였더니 어느새
이렇게 사장이 되었노라고 대답을 하였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도움을 받는 사람보다 먼저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창세기 2장 18절에 보면 첫 번째 사람을 만들었으나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아서 두 번
째 사람을 만들고 서로 돕는 배필이 되라고 하였습니다
배필이란 여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부부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돕는 배필이란 여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도 똑같이 아내를 돕는
배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남편이 아내를 돕는 배필이 못되고 괴롭히는 남편이 되다면 늙어서 후회를 하게
될 것이라고 우리 집사람이 말하였습니다
뉴스를 보아서 아시겠지만 요즘은 늙어서 아내로부터 이혼을 당하는 경우가 참 많다고
합니다.
우리 남자분 들은 늙어서 아내에게 버림받는 불행을 예방하기 위하여 더 늙기전에 조심
하여야 할 것 같아서 제가 미국의 어느 잡지에 늙어서 이혼 당한 남자들의 사례집을 소개
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남자는 치과의사인데 그는 살림을 모두 자기가 하고 그 아내에게는 1년에 단돈
우리 나라 돈으로 6만원을 주었답니다 그래서 이혼을 당했답니다
두 번쩨 남자는 평범한 회사원인데 평생에 선물을 딱 한번 했는데 그 한번의 선물이라는
것이 "감자 깎는 칼"을 선물했답니다 그래서 이혼을 당했다고 합니다.
세 번째 남자는 집안 일을 전혀 도와주지 않아서 아내가 청소를 할 때 그 남자가 도와주
는 것이라곤 걸래질 할 때 발을 들어주는 것이 고작이었답니다.
(이건 제가 많이 참고해야 할 경우인 것 같습니다)
네번째 남자는 집에 와서는 전혀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남자가 집에
와서 하는 말이 딱 세마디랍니다.
제가 경상도 말로 통역을 하겠습니다.
밥묵었나. 아들은. 자자 이 세마디였답니다.
다섯 번째 늙어서 이혼 당한 남자 군인데 그는 집안에 돌아오면 남편은 항상 상관이며
아내는 부하 신세였답니다 그래서 남편에 말 한마디가 법이었으며 그는 항상 아내에게 마
치 부하게게 말하듯이 명령조로 말하였답니다.(이사람은 군대와 가정을 혼돈한 모양입니)
여섯 번재 남자는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주의여서 부부싸움을 하면 항상 자기가 이겨
야 싸움이 끝났답니다. 그래서 이 남자는 아내가 "여보 내가 잘못했어요" 라는 말을 해야
싸움이 풀어졌답니다
남자분들이 불편할 것 같아서 그만하겠습니다
참으로 부부싸움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는데
"내가 옳고 네가 잘못이다" 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스타일 보다 자신이 "신발털이개형"
이 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교회들어 올 때에 "신발 털이개"를 보셨을 것입니다.
신발털이개 역할이 무엇입니까? 신발 털이개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여 나를 마구 밟아서 바같에 흙은 저에게 다 주시고 제발 바같에 흙을 안으로
뭍혀 들어가지 마세요"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현명한 아내와 남편이라면 신발털이개 처럼
"다 좋소 다 내가 잘못했소 다 내가 받아 줄테니 가정에는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
른도 계시고 애들도 함께 살아가는 사랑에 공동체니 가정에 평화만은 깨지 맙시다" 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면서 서로 돕는 배필이 되라고 하였음으로 우
리는 서로 도와야 하는데
사람들은 결혼을 하면 이 남자가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해줄 것인가 얼마나 남보다 잘
살게 될 것인가 라고 받기를 먼저 생각하고 주변에 잘 나가는 집과 비교를 합니다.
잘 나가는 집과 비교를 하니 그 집에는 있는게 많은데 우리 집에는 없는게 많아요 그 집
에는 살림살이도 많고 옷도 많고 돈도 많아요 그런데 우리 집은 그 집보다 없는 게 많아
요 그리고는 나는 불행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결국 항상 불만 속에서 살아가게 되고 결국 자신의 인생은 불행한 인생이 되며 그 원인
은 배우자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부간에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행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살림이 많고 돈이 많아도 예수 안믿고 맨날 술먹고 속섞이는 남편과 함께 라면
불행한 것입니다.
그러나 내 비록 가진 것이 없어도 내 마음속에 예쁜 자식과 수고하는 남편과 거룩한 예
수님이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것입니다.
뉴스를 보니 작년 우리나라 1년 동안에 집을 나간 여자가 십만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원인이 대부분 남자들에게 원인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지키는데 남자들의 역할이 주요한 것 같습니다.
지금 미국에는 지금 한창 가정을 지키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답니다.
그래서 미국 와싱톤 국회 의사당 앞에서 "가정을 지키자"는 대회를 하였을 때 놀랍게도
백만명이 넘게 모였으며 더욱 놀라운 것은 대부분 모두가 성인 남자였다 는 것입니다.
즉 가정을 지키는 책임은 우선 남자에게 달려 있다는 원리에 의하여 남자들이 가정을 지
키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도와 가야 할 것입니다.
기러기들이 브이V자 모양으로 날아 가는 것은 기러기가 혼자 날아 갈 때 보다 바람의 저
항을 절반이하로 덜 받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러기는 항상 브이자 모양으로 서로 의
지하며 날아간다고 합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서로 도와 갈 때에 힘이 덜 들지만 싸우기만 한다면 서로 손해보게 될
것입니다.
아프리카에 사이좋은 암소와 수소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못된 사자들이 이 소부부에게 덥벼 보지만 이 부부소가 항상 서로 붙어서 덤비기 때문에
이길 수가 없었답니다. 그런데 어느날 사자가 꽤를 내어서 암소보고 네 남편 수소가 바람
이 낫다고 거짖말을 하였습니다. 또 수소에게도 네 암소도 바람이 낫다고 거짖말을 하였
고 그 말을 들은 암소와 수소가 그 일로 서로 부부 싸움을 하게 되고 결국 갈라서게 되었
답니다. 그러자 이때라 생각한 사자가 혼자가된 수소에게 덥벼들어 죽이고 이어서 혼자된
암소도 사자 밥이 되었답니다.
이와같이 서로 도우면 어려움을 극복할 수가 있지만 혼자일 때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어
려운 것입니다.
정신병원을 방문한 사람이 마침 마당에서 정신병자들이 수백명이 놀고 있는데 지키는 사
람이라고는 딱 한사람이 막대기를 들고 지키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방문자가 어찌 이렇게
많은 정신 병자를 혼자서 통솔할수 있는냐 혹시 함께 덤비면 위험하지 않으냐고 염려를
하였더니 그 사람이 말하기를 정신병자들은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절대로 서로 협력할 줄
을 모르기 때문에 괜찮다고 하였답니다.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힘을 합할 줄은 모르면 아무런 일을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웃간에도 서로 도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이웃간에 주차 문제로 일조권 문제로 싸우다 못해 원수처럼 살아가는 경
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집을 지을 때에도 이웃간에 상대방의 입장을 보아 가면서 지어 가야 할 것입니
다. 미국에서는 자기 집에다 뺑기칠을 할 때에도 옆집 사람들에게 물어 보고 어떤 색깔을
칠해야 어울리는지 상의하면서 칠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집을 지을 때에 항상 분쟁이
일어나서 이웃간에 원수가 되어 버립니다.
제가 교회를 건축 실무일을 볼 때에 교회를 북쪽에다 지었기 때문에 일조권도 해당이 안
되고 지반에도 아무런 지장이 없는데 옆에 연립 주택 주민들이 구청에다 이의를 제기하였
습니다
소음과 먼지 공해 때문에 살수가 없으니 공사를 중단해 달라는 민원이었습니다.
담당 구청 직원은 무조건 민원을 해결하고 건축을 시작하라고 건축을 중단 시켰습니다.
그래서 합의 보기를 연립주택이 10집인데 처음에는 1억을 달라고 떼를 쓰기에 결국 2천
만원을 주고 해결하였으니 한집에 이백만원씩 돌아간 셈입니다
그런데 그 열가구 중에 놀랍게도 교회 다니는 사람이 세가구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협동이나 협력할 때에 한문으로 협자는 열십자옆에 힘력자 세개가 삼각형을 이루
고 있습니다.
그뜻은 십자가 옆에서 서로 힘을 합하라는 뜻이며 서로 힘을 합하면 하나님이 위에서 도
와 주신다는 뜻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읽은 로마서 8장 28절에 의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할 일이 있는데 서로 합
력하여 선을 이루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선이란 무엇인가 선행을 이야기
하는가?
우리는 현실적으로 해석한다면 그렇게 볼수도 있으나 원어에 뜻을 보면 여기서 선이란
하나님 나라를 말하는 것으로
우리가 서로 힘을 합하여 우리가 사는 곳이 마치 하나님 나라처럼 은혜와 감사와 사랑이
넘치는 곳이 되어서 결국 하늘 나라에 영광을 위함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0절에 보면 우리 믿는 사람들이 서로 합력하여 사랑이 충만하고 기쁨에 넘치는 생활을
하면 그 모습을 본 불신의 이웃들 역시 의롭다 칭함받고 그들도 주님 앞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서로 돕는 목적이 무엇인가?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1장 24절에서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자" 가 되려 함이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서로 돕는 이유는 상대방의 기쁨을 위하여 서로 돕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 생활에는 항상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생활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세상에서 주는 기쁨은 헛되고 찰라적이며 순간적인 허상에 기쁨입니다.
영원한 진리에 참된 기쁨은 주님 안에 거할 때에 주님과 동행하는 삶속에서 생겨나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24절 마지막에 사도 바울은 믿음 안에 섰을 때에 참된 기쁨이 있다고 한 것입
니다.
나룻배를 타고 건너던 두명의 크리스천이 신앙생활에서 한 사람은 믿음이 중요하다고 주
장을 하였고 또 한사람은 믿음도 중요하지만 전도를 위하여 선행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듣던 사공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여보시오 나도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
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둘다 중요한 것 같소
만약에 믿음과 선행 중에 한쪽만 주장한다면 이렇게 될 것이요 하고 오른쪽 노만 짖자
배가 제자리에서만 뱅글뱅글 돌았습니다. 또 역시 왼쪽 노만 짖자 배가 제자리에서 뱅글
배글 돌기만하였습니다. 보십시오 믿음과 선행중 하나만 중시한다면 이렇게 될 것이요 라
고 하였답니다.
맏습니다 우리의 신앙에 믿음도 중요하지만 서로 돕고 배푸는 선행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믿음과 선행이 함께 할 때에 나룻배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듯이 우리의 신앙도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유래의 예화를 소개하면서 마치려 합니다
어느 마을에 앉으뱅이와 맹인이 살았는데 두사람은 항상 사이가 안좋아서 상대방을 흉보
곤 하였답니다. 그런데 어느날 두 사람이 자신의 불편한 몸을 성하게 해달라고 산신령에
게 빌려고 집을 나섰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평소 같으면 쉽게 건널 개울을 건널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 서로 개울 앞에 만나서 서로 어찌 건너나 걱정을 하고 있다가 이윽고 둘이서 힘을
합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맹인이 눈뜬 앉으뱅이를 엎고 앉은 뱅이가 말하는 대로 맹인이 개천을 건너기시
작하였으며 위험하고 힘들었지만 서로 힘을 합치니 험한 물쌀을 무사히 건널 수가 있었답
니다. 이후로 두 사람은 매일 같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서로 의지하고 산신령을 만나러
갔으며 결국 서로 돕는 모습에 감탄한 산신령이 두사람의 소원을 들어 주었고 그 후로 두
사람의 이름이 한족은 지성이요 한쪽은 감천이라고 사람들이 부르게 되었답니다.
어찌보면 우리의 신앙 생활도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우리가 정성들여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서로 돕고 살아 갈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앞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주님을 위하여 내가 할 일은 생각도 안하고 하나님께 맨날 달라는
기도만 합니다
이제 우리도 성숙한 신앙인이 되었다면 이제 내가 주를 위하여 할 일이 무엇인가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로마서 8장에 합력이란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합력하라는 것이지 인간끼리 합력하라는 뜻
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무리 어려운 일에 부딪치더라도 하나님과 합력하면 불가능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 말씀이 협력하면 선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이제 뭔가 달라여 합니다.
우리는 항상 먼저 좀 손해를 보고 먼저 양보하고 먼저 베푸는 신앙 생활을 하여야 합니
다.
그래서 "나는 신발털이개" 가 되어도 좋다는 마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당신의 신발털이개가 되어도 좋사오니 우리의 소중한 가정과 신앙의 뜰에 세상 때
만은 가져오지 마세요 라고 말하는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토요일 교회에서 야간에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하여 그 동안 라면을 끓여 주다가
지난주 부터 교회에서 저녁에 밥을 하고 고깃국을 끊여 주고 닭도리 탕을 해주고 정성껏
저녁을 대접하였더니 학생들이 얼마나 고맙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신학생들이 매주 두명이상 다른 신학생들을 소개하여 데리고 오는 것을 보면서
먼저 베푸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겼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항상 이웃간에 가족간에 어디에서 일을 하건 간에 먼저 이렇게 인사하는
사람이 됩시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여러분 저를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우리는 이러한 말이 어디에 있는지 수시로 누구를 만나든지 항상 나와야 합니다
아무쪼록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라는 마음으로 금 주간도 서로 협력하고 돕는 배필
이 되어서 하나님의 선을 나타내는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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