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8월29일: 피곤에서 승리하는 방법 이사야 40:31 2001-08-19 22:03:22 read : 1282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몇일 전에 신문과 TV에 작은 기사가 나왔는데 기사의 내용은 이러한 내용입니다.
몇해전에 성수대교가 아침 출근길에 부러져서 많은 사람들이 사망한 것을 여러분은 기억
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때 어느 여학교 학생들이 등교길에 많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죽은 여학생중에 한 아버지가 딸에 죽음으로 인하여 낙심을 하고 더구나 피곤
한 삶에 회의를 느끼고 딸이 떨어져 죽은 그 다리 밑에서 자살을 한 것입니다.
그 아버지는 낙심과 피곤한 삶을 이기지 못하고 죽은 것입니다.
그가 여호와를 앙망하였다면 결코 자살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삶에 피곤이란 자살로 이르기도 하는 것입니다.
"전쟁중에는 전투로 인하여 군인들도 많이 죽지만 특이하게도 민간인들의 자연사망도 급
격히 늘어난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 연구해보니 전쟁으로 인하여 일반 사람들이 생활의 어려움과 짜증으로인하여
피곤을 느끼고 결국 이 피곤이 많은 사람들을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피곤이란 생명을 단축하는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삶에 피곤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하여야 이 피곤에서 벗어 날수가 있는가
그 원인과 처방을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게습니다.
그러면 먼저 피곤이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찾아 보도록 합시다.
여러분은 자기에게 해당되는 것이 있는지 체크헤 보시기 바랍니다.
피곤의 첫 번쩨 이유는
너무 지나친 욕심입니다.
때로 우리는 욕심과 욕망이 지나쳐서 자신이 누리는 축복을 모르고 남에 것을 먼져 쳐다
보고 자신을 원망합니다.
이런 우화를 아실 것입니다.
어느날 개가 잔치집에 가서 고기를 하나 얻어서 입에다 물고 냇가에 다리를 건너게 되었
습니다,
그런데 다리 위에서 내가 물속을 보니까 어떤 개가 자기보다 더 큰 고기를 입에다 물고
있거든요 그래서 욕심이 동하여 물속에 개를 향하여 어엉하고 짖어 댓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그 개의 입에 있던 고기도 없어졌고 자기 입에 있던 고기도 없어 졌습니
다.
사람들은 자신에 누리는 삶에 여건을 항상 부족하게 생각하고 남에 것에 관심을 갖고 자신
이 누리는 복을 모르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항상 사람들은 피곤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설교를 하는 중에 자기 아들이 일류 대학을 못들어가고 2차 대학에 들어
간 것을 한탄하면서 못난 아들을 탓였습니다.
그 설교를 듣고 나오던 딸만 셋을 낳아서 항상 시집과 남편에 죄의식을 갖고 살아오던
어느 여집사가 하는말이
"2차 대학은 커녕 고등학교를 나온 아들이라도 있었으며 좋겠다며 복에 겨운 목사님을
흉봤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너무 욕심이 많은 것이 피곤에 이유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현재 상황에 만족을 하여야 합니다.
"여보 돈 못 벌어도 좋아요 내 옆에 있는 것만이라도 나는 행복하다우" 라고 고백하는
아내가 되어야 합니다.
"여보 당신이 사기를 당하여 돈을 잃어 버렸어도 좋아요 건강이 좀 안좋으면 어때요 내
옆에 있는 것 만이라도 나는 좋다우" 라고 말하는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애들아 공부 못해도 좋다 건강하게 잘만 자라다오"고 마음속으로 고백하는 부모가 되어
야 합니다.
제가 아는 분의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는데 그만 백혈병에 걸려 여의도 성모 병
원에 입원을 하여 문병을 갔습니다.
그애 어버지가 고 3수학 선생으로서 자식을 일류대학에 넣기 위하여 온갖 과외를 하다가
자식이 백혈병에 걸려서 죽느냐 사느냐 하는데 대학이 무슨 필요합니까?
결국 학교를 자퇴하고 백혈병은 날씨가 따듯해야 좋다고 하여서 꽘으로 요양을 갔고 자
식을 위하여 결국 부모가 예수를 영접하고 여호와를 앙망하며 간절히 기도드리니 지금은
몸이 좋아 져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사람은 세상에 욕심을 두어서는 안되며 진실로 무엇이 중요한 지를 알아야 합니다.사람
들이 자신에 욕심을 낮추지 않을 때에 인간은 이기주의와 끊임없는 불만족으로 인하여 피
곤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욕심의 뿌리는 이기주의입니다.
나만을 생각하는 마음이 욕심이며 이기주의 인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 내가 가진 것에 만족을 하고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향하여 베풀줄을 알
아야 합니다. 그때 우리의 욕심과 이기주의가 달아나고 삶에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
다.
그런데 우리는 매일 욕심이 지나쳐서 자기에게 불만을 갖고 끊임없이 피곤을 느끼게 되
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 환경을 만족하고 주님 안에서 참된 평안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쩨 피곤에 이유는 죄의식입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죄의식 속에서 살아갑니다.
인간은 육신에 정욕에 안목에 정욕 이생에 자랑으로 인하여 스스로 죄를 지음으로서 죄
의식을 자초하기도 합니다.
죄를 지었을 대에 사람들은 징계에 대한 불안으로 평안을 느끼지 못하고 결국 피곤을 느
끼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쩨 피곤에 이유는 육신에 피곤으로 인하여 영혼까지 피곤하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
다. 우리의 영혼은 육신이라는 자동차를 타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전에 부산에 갔을 때에 비행기 시간이 늦어서 택시를 타고 빨리 가자고 하였더니 이
택시 운전사가 지름길이라면서 비포장길로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나중에는 정신이 어지러
울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서울에 와서는 나이가 지긋한 택시 운전사를 만나서 천천히 가자고 하였더니 이
운전기사 분이 편안하고 친절하게 운전을 함으로서 택시에 내려도 기분이 좋아요.
이와같이 우리의 영혼은 육신이라는 자동차를 타고 있는 것임으로 육신이라는 자동차를
안전하게 편안하게 몰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려고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육신을 혹사합
니다.
그런데 육신에 혹사는 바로 영혼에 피곤으로 이어지고 결국 삶에 피곤을 느끼게 되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에 평안함을 위하여 육신에 무리를 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스포츠도 정도것 해야지 영혼에 피로가 가도록 운동을 지나치게 하다가는 오히려 사고를
당하여 죽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육신에 건강이 영혼에 건강이요 피곤을 이기는 비결인 것입니다.
네번째 사람들이 홀로있으려 하기 피곤을 느낍니다.
인간은 그 스스로는 의지가 약하고 그래서 스스로 선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무엇인가 의지하고 그 안에서 지혜를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홀로서기를 합니다.
남을 믿지 않고 독선적으로 고독속에서 자신만을 믿고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불안하고 의지 할 데가 없으니까
엉뚱하게 세상과 육체속에서 말초 신경적인 쾌락을 찾으려고 술에 취해보고 여러 가지
오락을 찾습니다.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이요 참된 기쁨이 없습니다.
가로수에 어린 나무에는 나무가 쓸어지지 않고 똑바로 자라도록 버팀목을 해주듯이 인간
도 스스로는 혼자 서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뭔가 의지할 데가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누구한데 의지하여야 하나요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가 앙망하고 의지 할 곳인 것입
니다.
다섯 번쩨 바르게 사는 방법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피곤을 느낍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려면 운전하는 방법을 먼저 알고 또한 연습을 하여야 합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인생도 사는 방법을 알아야 하고 사는 연습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인생을 처음 살아 보는 것이며 그 끝이 어딘지도 모르고 어느 길로 가
여 하는지 알지 못하여 우왕자왕하면서 살다보니 피곤을 느낍니다.
등산을 제일 잘하는 방법은 무엇일 까요
발이 빨라야 할 까요?
장비가 좋아야 할 까요? 물론 다 좋습니다.
그러나 지도가 없으면 아무리 발이 빠르고 장비가 좋아도 헛 일입니다.
우리의 인생 길도 찾아가는 지도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의 인생에 반려자가 되며 사는 길을 알으켜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세상에서 지혜를 찾습니다. 처세철학 책을 읽고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
전을 읽고 유명한 학자들의 수필이나 에세이집을 읽으면서 사는지혜를 얻고자 합니다.
저도 젊은 날에는 그렇게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인 해답이 없는 한 순간적인 방법이요 세상을 사는 요령일 뿐인 것
입니다.
우리는 성경속에서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성경속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리고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속에 말씀을 사모하고 마음 깊은 곳에 묵상을 하고 진실로 사는 방법을 찾
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피곤에 이르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그렇다면 피곤에 이르지 않고 새힘과 능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면 새로운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멀리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포로 생활이란 지겹고 끊임없이 피곤을 느끼는 생활일 것입니다. 10년 20년 30년 50년
60년이 지나도 포로 생활은 끝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완전히 낙심과 피곤에 지쳐서 저절로 탄식과 원망이 터져 나
옵니다
27절에 보니까 "어찌하여 우리의 사정이 여호와 하나님께 숨겨졌으며
즉 알려지지 않았으며 더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정을 듣고 수리 즉 왜 해
결해 주시지 않는가?" 라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은 28절에서 어찌 너희는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느냐? 고 하나
님에 대한 지식이 무지함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잘못 알아서 잘못된 길로 가기도 하고 그래서 낙심을
하는 경우도 많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바르게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28절과 29절에 보니까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28절에 첫째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이땅에 처음이 하나님이요 마지막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시간의 개념이 없으신 영원한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세계에 들어가면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28절에 두 번쩨 하나님은 어떻한 분이시냐?
땅끝까지 이 땅에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몇일 전에 미국의 조지아주에서는 이제 더 이상 학교에서 다윈의 진화론을 못가르치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제 신문에 보니까 미국에 대통령 후보로 가장 1등의 자리
를 차지하고 있는 지난번 부시 대통령의 아들 부시후보가 "자기는 창조론을 지지하며 학
교에서 하나님의 창조론을 가르치도록 하겠다고 하자 현 부통령인 고어 라는 대통령 후보
도 "자기도 창조론을 지지한다" 는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얼마전 케네디 대통령의 아들이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는 기사를 보았을 것입니
다. 그런데 신문에는 케네디가에 비운이 언제 끝날것이나가 라는 기사를 보니
과거 케네디 대통령 암살당 한 후 동생 로버트 케네디 역시 암살을 당하는등 케네디 가
문에는 끊임없이 불행한 사고가 일어남으로서 비운의 가문이라고 낙인 찍는 것을 보면서
과거 카토릭 신자였던 케네디 대통령이 학교에서 성경가르치는 것을 금지 시킨 것을 생각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을 불법화한 대통령을 하나님이 이뻐할 리는 없는 것입니
다.
우리는 땅끝까지 모든 천지를 하나님이 창조하였음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28절에 하나님은 피곤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으로 부터 세상 사는 지혜와 명철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
다.
네 번째 29절에 하나님은 피곤하고 무능한 우리에게 새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길을 잃고 헤메는 아이가 멀리서 아버지를 만난다면 얼마나 반갑고 새로운 힘을 얻을 까요
어린아이는 아버지를 만난 기쁨으로 인하여 낙심속에서도 새로운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을 만난 우리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새능력과 새로운 힘을 얻어야 하는
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어려운 삶으로 인하여 낙심과 좌절을 만나도 이스라엘 백성들 처럼 하나
님은 어디 계십니까? 왜 우리의 기도를 결재해 주시지 않나요 라고 원망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삶이 피곤하다 할 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앙망한다면
마치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하늘에 솟아 오르듯이 새로운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으면 어디로 갑니까?
우리는 무조건 아래로 내려 갑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아래로 내려가는 것 같지만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산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산에서 길을 잃으면 반대로 산꼭대기를 향하여 올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산 정상에 올라
가서 사방을 둘러보고 자신이 서있는 곳이 어디인가 알아야 하고 마을이 어느 방향을 향
하여 있는지 방향을 확실히 알고 그곳을 향하여 내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하루 하루를 정신없이 살다 보니 내가 가는 길이 어딘지 방향을 모르고
무엇을 위하여 살아가는지 삶에 향방을 모르고 살아 갈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독수리처럼 높이 날아서 향방을 알아야 합니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가는 것이며 빠른 길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니까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를 앙망함으로 새힘을 얻는데 여호와를 앙망하는 세가지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
다.
첫 번쩨 독수리처럼 여호와를 앙망하라고 하였습니다.
독수리는 새기를 훈련시켜 날개 하는 방법이 특이 합니다.
어미 독수리는 새끼 독수리를 움켜쥐고서 하늘 높이 솟아 올라 갑니다.
그리고는 사정없이 새끼 독수리를 땅에 떨어뜨려 버립니다.
그러면 새끼 독수리는 땅에 떨어지면서 날아 보려고 있는힘을 다하여 애를 써봅니다.
그러나 아직은 혼자 닐기에는 날개에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거의 땅에 떨어지려고 할
때에 어미 독수리가 순식간에 새끼 독수리를 낚아 챕니다.
그리고 또다시 공중에 올라가서 새끼 독수리를 땅에 떨어 뜨립니다.
이렇게 수십번 반복을 하면서 새기 독수리가 혼자 나는 방법을 배우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주시는 방법이 독수리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연단을 주실 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새끼 독수리처럼 연단을 통하여 새로운 힘과 강인한 믿음을 주시기 위
함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연단과 사단의 유혹으로 인하여 스스로 짊어진 연단을
구분을 못하고 모두 하나님을 원망하고 낙심하여 교회를 떠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스스로 죄를 짖고 스스로 고난을 차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 번째: 여호와를 앙망하되 달음박질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에 목표를 알았으면 우리는 경주하듯이 달음박질도 필요한 것입니다.
소를 냇가에 몰고는 가지만 소가 스스로 물을 먹어야 하는 것이며 밥상을 차려 주어도
밥은 자기 스스로 먹어야 하듯이 하나님은 기회를 주지만 우리는 미련하고 게을러서 기회
를 축복으로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우리는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위해서 자신에 의지와 노력도 필요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달음박질하는 것은 일에 대한 열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든 그일에 미치듯이 열성을 다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에도 열성이 있어야지 미지근하면 곧 식어서 재미가 없고 냉냉하여 보람도 없고 결
국 포기하기 쉬운 것입니다.
무엇을 위하여 달음박질을 할것인가?
"그것은 세상에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하늘의 영광에 면류관을 위하여 열심히 달려가
야 하는 것입니다.
때로 살다보면 "사방에서 우겨쌈을 당하여도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핍박을 당하여도 버린바 되지 않도록 열심히 달려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걸어가라고 하였습니다.
아니 달려가도 시웠찮은데 왜 걸어가야 하나요?
그것은 우리의 삶이 고난의 시기며 환난의 시절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폭풍우를 만났을 때에는 조심스럽게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기도하였으나 기도 응답이 없을 때에도 걸어가야 합니다.
기도 응답이란 때로 늦을 때도 있는 것으로 기다리는 마음으로 천천히 걸어가야 하는 것
입니다.
이제 베드로가 물속에 빠진 이야기로 말을 마치려 합니다
마테복음 14장에 보면
어느날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항해하다가 밤 사경 쯤에 예수님께서 바다위
로 걸어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귀신인줄 알고 깜짝 놀랐지만 예수님인 줄 알고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욕심이 나서 자기도 예수님 처럼 바다위를 걷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님에게 요청을하였습니다.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위로 걸어 오라 하소서" 그래서 예수님이 허락을 하
였습니다.
처음에는 물위에서 예수님만을 바라 봄으로서 걸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세
차게 몰아치자 베드로거 예수님을 보지 않고 바람을 보자 무서워 결국 물속에 빠져 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소리를 쳤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그래서 예수님이 손을 내밀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을 하였느냐"
여러분
혹시라도 고난의 길에 환난의 길일 지라도
여호와를 앙망하시고 주님에게 베드로처럼 외치시기 바랍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그때 주님이 베드로에게 한 말을 생각해야 합니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을 하였느냐"
그래도 좋습니다 다시 한번 여호와를 앙망하고 주님에게 외치시기 바랍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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