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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어서 천국 가는 것만 복음인가? '할렘'서 사역하는 이태후 목사
    2016-06-16 15:53:44   read : 720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죽어서 천국 가는 것만 복음인가?

    필라델피아 '할렘'서 사역하는 이태후 목사…"구원은 하나님의 샬롬이 회복되는 것"
    강도현

    미국은 백인 교회와 흑인 교회가 나뉘어 있다. 교회가 그래도 되나 싶지만 불과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국 일부 남부 지역에서는 흑인과 백인이 법에 의해 다른 학교에 다녔다. 학교뿐 아니라 화장실, 음식점, 호프집, 버스 등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흑인과 백인의 경계가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투쟁하고 희생한 결과, 법적으로는 인종 구분이 금지되었지만 교회는 예외였다.

    미국에서 인종 문제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당한 지 48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인종의 벽은 허물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흑인 인구 상당수가 빈곤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할렘'으로 대표되는 빈민가가 사실상 '흑인 지역'이라는 건 비밀이 아니다. 그 와중에 필라델피아 빈민가에서 흑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한국 사람이 있다.

    흑인 빈민가에서 한국 사람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슈퍼마켓, 세탁소, 패스트푸드 중식집에 가면 한국인 오너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목회와 사역을 위해 그곳에 산다.

    이태후 목사는 2003년 필라델피아 빈민가에서 사역하기 시작했다.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한인 교회에서 사역한 지 7년 정도 되었을 때였다. 6개월간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깊이 고민하던 중에 빈민가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그의 사역은 이미 많은 언론이 다루었다. 필라델피아 지역 신문에서도 그의 사역을 조명했다. 한국인 목사 사역을 한인 언론이 아닌 현지 언론이 다룬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최근 <조선일보>에서 진행한 인터뷰가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언론들은 주로 그가 어떤 일을 하는지 다뤘다. 그러나 <뉴스앤조이>는 그의 사역보다 그가 사역을 하게 된 신학적, 목회적 이유가 더 궁금했다. 사역 이야기는 이미 많이 소개된 상황이라, 신학 이야기를 주로 해 보자는 기자의 요청에 이태후 목사도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 미국 필라델피아 할렘가에서 사역하고 있는 이태후 목사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강도현

    - 목사님의 신앙 그리고 신학이 궁금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은 목사님이 자선 활동을 한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교회가 자선 활동을 하는 것이야 흔한 일이죠. 그런데 그것이 복음 혹은 전도와 어떻게 연결되는 건지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분들은 의아해 할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그게 자선 활동이지 목회는 아니지 않냐"는 거죠.

    제가 목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과 연결됩니다. 대학에 들어가서 미학 공부를 시작할 때는 박사까지 마치고 학교에서 일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공부하면서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안에 팽배한 안티 기독교 분위기를 느끼게 된 거죠. 자연스럽게 신앙에 대해서 질문을 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믿는 복음은 분명 기쁜 소식인데. 그 당시,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매스컴에 자주 나오는 일부 대형 교회들 그리고 소위 유명하다고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면 예수님이 가르쳐 주셨고 직접 보여 주신 복음과는 너무 달랐거든요.

    사람들이 안티 기독교가 되는 이유는 예수의 가르침 때문이 아니에요. 지금까지 예수의 삶과 가르침 때문에 안티 기독교가 된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어요. 문제는 교회가 보여 주는 모습이 실제 예수의 삶과는 너무 다르다는 거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교회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야 한다는 일종의 기대가 있거든요. 현실에서 그런 기대가 무너져요.

    교회가 오히려 권력과 부를 추구하고, 설교로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미명하에 권력과 부의 추구를 합리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돌아서거든요. 요즘에도 뭐 달라진 것이 없죠. 최근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홍 모 변호사가 실은 강남 대형 교회 출신 아닙니까.

    - 그런 문제의식은 충분히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의식이 '복음'하고 어떻게 연결이 되나요?

    제가 이해하는 복음의 진수는 누가복음 4장 16절에서 21절 말씀입니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의 첫 번째 설교 본문이 이사야서 61장이었다고 하죠. "주의 영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라는 말씀입니다. 누가는 이 설교를 가장 처음에 배치함으로 예수님의 미션을 정의한 것이죠.

    우리 한국교회에서 전통적으로 이해한 복음과 상당한 이질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이사야 61장 말씀에 한국교회가 주로 사용하는 죄, 용서, 믿음, 천국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샤야서 61장을 어떻게 복음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느냐. 이 말씀은 구속사적인 맥락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아담과 이브 이후에 족장 시대, 이스라엘 국가 시대, 그리고 바벨론 포로기 이후 디아스포라 시대를 거쳐 오면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속의 역사를 예수님이 완성하시겠다는 의미거든요. 하나님의 구원은 한 개인이 예수님 믿어서 죽은 후에 하늘나라 가고 이 땅에서는 복받아서 잘 먹고 잘사는 차원이 아닙니다. 죄로 인해 왜곡되고 파괴된 하나님의 샬롬이 회복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샬롬에는 네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영적 샬롬 –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회복 △심리적 샬롬 – 나 자신, 스스로와의 관계 회복 △사회적 샬롬 – 타인과의 관계 회복 △생태적 샬롬 – 환경과의 관계 회복입니다. 이 네 가지 샬롬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이 땅에서의 삶이 괴로운 거에요. 신문 사회면 기사에 나오는 그 수많은 문제가 넓게 보면 이 네 가지 샬롬 중 하나가 파괴되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죠.

    사회적 샬롬이 깨지니까 우리 삶이 어떻게 왜곡되나요? 내 자식은 가장 좋은 대학에 보내야 하고,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야 하지만, 파키스탄에서 일곱 살짜리 어린이가 바늘에 찔려 가며 손으로 축구공을 만들어도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합니다.

    세월호도 마찬가집니다. 그 배에 내 아이가 타고 있었다면 이렇게 무관심할 수 있을까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강남에 있는 학교나 유명한 외고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다가 참사를 당했다고 하면 2년이 지나도록 이런 식으로 끌 수 있었을까요? 경제적, 정치적 힘이 없는 사람들의 아이들이니까 듣기 싫어하는 거 아닙니까.

    - 내 죄를 위해 예수가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다라는 아주 전통적인(?) 복음의 이해로는 부족하다는 말씀인가요?

    복음이 뭘까요? 먼저 내가 하나님과 영적인 샬롬을 통해서 거듭남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의 시작이죠. 그 다음에는 내 자아를 회복해야죠. 내가 얼마나 귀하게 창조된 하나님의 자녀인지 인정하는 것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주어진 처지와 환경보다는 이 상황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뜻이 무엇일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오늘 내가 있는 자리에서 펼쳐 나가야 하는 것이죠. 나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면 과도한 자아비판, 열등감 같은 소모적인 감정싸움에 지나치게 흔들릴 수 있고요. 그 반대로 너무 교만한 것도 자기 자신과의 화해가 되지 않아서 그런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고 나서는 사회적 샬롬입니다. 학연, 지연, 혈연으로 연결되지 않아도 상대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고 그를 존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인종이 다르거나, 출신 지역이 다르거나, 종교가 다르거나, 성적 정체성이 다르거나,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게 있더라도 그 사람에게서 창세기가 증언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볼 줄 아는 겁니다. 나와 다른 가치 체계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와 화평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지평이 복음입니다.



    ▲ 이태후 목사는 하나님의 샬롬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적 샬롬, 심리적 샬롬, 사회적 샬롬, 생태적 샬롬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이 땅에서의 삶이 힘든 것이라 했다. ⓒ뉴스앤조이 강도현

    - 누가복음 4장에 나오는 예수님 설교에는 특별히 '희년'을 언급하고 계신데요. 그것도 복음으로 이해하시나요?

    그렇죠. 사실 그것이야말로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희년을 선포하시고 나서 "이 말씀이 너희들이 듣는 가운데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시거든요.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역사상 희년을 제대로 실행한 적이 없다고 봅니다. 사람의 탐욕이 끝이 없으니까요. 역대하에 보면 바벨론 포로기 70년간 예루살렘 땅이 황무한 채로 버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이 있어요. "그 70년 동안 예루살렘은 그간 누리지 못했던 안식을 누렸다." 상징적인 말씀이죠. 7년에 한 번씩 땅을 쉬게 하라고 하셨는데 이스라엘이 그렇게 하지 않았거든요. 어떻게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통해 그 땅이 누리지 못했던 안식을 주신 거죠. 그런 역사적인 맥락 안에서 예수님이 희년을 선포하신 겁니다.

    물론 레위기에 나오는 희년 제도를 21세기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희년 정신이 무엇이냐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토지가 유일한 생산 수단이었던 고대 근동 사회에서 희년은 경제적 평등, 정의로운 부의 분배를 뜻합니다. 그것이 완전 균등한 분배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출애굽 이후에 가나안 땅을 배분하는 과정에서는 말 그대로 균등한 분배를 했었죠.

    그 이후에는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부의 편중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연 재해도 있을 테고 경영을 잘못했을 수도 있고요. 그렇게 문제가 발생하면 생계를 위해 일시적으로 땅을 팔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식년이 일곱 번 돌아온 다음 해인 50년째 희년이 도래하면 본래 땅 주인에게 다 돌려줘야 했던 것 아닙니까? 결국 어떤 사정으로 한 가정이나 집단이 가난해지고 노예가 되더라도 그 가난과 신분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 뜻입니다.

    땅을 돌려준다는 것이 부의 균등한 재분배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수십 년간 타인의 토지를 소유하거나 혹은 노예를 소유함으로써 잉여생산물을 축적했거든요. 성경은 축적된 잉여생산물을 토해 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정으로 노예가 됐던 사람들이 다시 자유민이 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마련해 주는 겁니다. 새로운 시작인 거죠. 하나님께서 애굽의 노예였던 이스라엘을 자유민으로 만들어 주셨던 것처럼 희년은 50년마다 오는 출애굽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을 한 하나님의 백성은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게 희년입니다. 예수님이 희년을 선포하신 것이 그런 의미고 그게 복음이죠.

    - 그렇다면 복음을 한 개인의 회심으로만 볼 수 없다는 말씀인데요.

    희년을 경제적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죠. 그 당시는 농경 사회였기 때문에 땅을 가진다는 것은 오늘날 의미로 치면 자산을 소유한다는 의미거든요. 당시 사회를 상상해 보면 땅에 밀, 올리브, 포도나무를 심잖아요. 한쪽에는 목초지에 양과 염소와 소를 키웠단 말이죠.

    그럼 식탁에 빵과 올리브오일, 포도주, 그리고 우유와 버터, 가끔은 양고기가 올라오는, 오늘날로 쳐도 상당히 훌륭한 저녁 식탁을 누리는 거잖아요? 하나님이 출애굽 한 이스라엘에게 선물하신 구원은 단순히 노예 신분에서 자유롭게 된 것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인간의 존엄성과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을 허락하신 거란 말이에요.

    예수님이 선언하신 복음도 그런 구약의 의미를 당연히 포함하고 있다고 봐야죠. 누가복음에서 말씀하신 '가난한 자에게 기쁜 소식'이라는 것은 단순히 죽어서 천국 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88만원 세대에게는 정규직이고, 노숙자에게는 쉴 수 있는 쉼터와 쫓겨날 걱정 없는 임대주택 같은 거에요.

    천국이 뭔가요? 죽어서 가는 '곳'인가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우선하는 것은 바로 이 땅에서 이뤄지는 하나님의 나라죠. 눈먼 자가 눈을 뜨고, 갇혀 있는 자가 풀려나는 것은 질병이나 사회적인 불의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한다는 말씀이죠.

    구원은 개인적인 사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사건입니다. 폭력과 불의가 난무하는 사회에 평화와 정의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고아와 과부 같은 사회적 약자, 우리 시대에서 적용하자면 일용직 노동자, 새터민,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이런 사람들에게 웰빙이 보장되는 사회를 구현하는 게 중요합니다. 왜냐면 사회적 약자의 웰빙이 보장되는 사회라면 다른 사람들의 권익은 이미 보장이 된 거니까요.

    - 그렇다면 흑인 빈민가에서 그들과 함께 하는 사역이 복음의 파생적인 활동이 아니라 복음 그 자체라는 말씀이군요.

    누가복음 4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그런 거죠. "가장 약한 사람들의 권리와 복지가 보장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완성하려고 했던 하나님의 나라다."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은 자선사업이 아니라 복음이에요.

    복음과 자선 활동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이원화된 사고입니다. 오병이어 사건 때 예수님에게 "왜 그들에게 빵을 주시나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었나요? 예수님에게는 이 두 개념이 분리된 적이 없습니다. 왜냐면 복음은 죄로 무너진 세상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그 죄의 영향으로부터 구원하는 것이니까요.

    우리 한국교회를 생각해 볼까요? 우리는 한국전쟁 이후에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구호물자를 받았습니다. 그걸로 한국교회가 성장했어요. 많은 구호물자가 한국교회를 통해서 들어왔기 때문이죠. 그런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교회가 어떻게 이걸 자선사업이라고, 복음하고는 다른 것이라고 말하는지 모르겠어요. 역사를 망각한 거죠.

    - '구원', '복음'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핵심인 것 같습니다. 목사님은 구약에서 시작해 예수님까지 오는 과정으로 복음을 설명했는데요. 한국에 있는 많은 교회가 복음서 이후 신약으로만 복음을 설명하거든요. 더 정확히 말하면 바울의 서신서를 중심으로 복음을 설명하죠. 이 부분이 조금 의아스럽긴 합니다. 한국 대부분 교회가 따르는 보수 신학 관점으로 보자면 바울을 비롯한 신약 기자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재정의한 것이 아니라 보충 설명을 했다고 봐야 하는데 정작 복음을 설명할 때는 바울서신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거든요.

    미국 근본주의 신앙도 사실 비슷하죠. 제가 신학자가 아니라서 조심스러운데요. 예수님의 가르침과 바울의 가르침이 심한 경우에는 완전히 다르다고 보는 신학자들도 분명 있지요. 저는 동의하지 않고요. 맥락을 벗어난 것이라 생각해요. 바울 사도는 랍비였기 때문에 구약에 대해 너무 잘 알았고,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죠.

    그래서 바울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반복할 필요가 없었던 거에요. 바울서신은 구약 성경과 복음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초대교회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중점적으로 다룬 것이거든요. 목회서신이잖아요. 바울의 서신서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과 복음서를 전제하고 읽어야 하는데, 오히려 보수 교회가 마치 서신서를 구약 없이도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우리 신앙을 너무 교리화시킨 것 같아요. 그것은 서양 학문 전통 때문이기도 한데요. 뭐든지 합리적인 사고 위에 체계화를 시키다 보니까 우리 신앙도 그런 체계화를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구원과 복음을 교리화시켜 놓고 마치 옳은 교리를 알고 있으면 구원이 성취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한국교회도 역사적으로 이단 시비가 많다 보니 교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통이 생긴 것 아닌가 싶어요. 교리가 복음은 아니잖아요. 예수님이 보여 주신 복음은 삶 그 자체거든요. 제가 하는 사역도 사회사업, 소셜 미션 이런 게 아니라 그냥 복음이에요.

    성 프란치스코가 그랬잖아요. "항상 복음을 전하십시오. 필요하면 말로 전하셔도 됩니다." 그렇다고 제가 복음을 제대로 살아 낸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그런 삶의 지향을 갖는 거죠. 우리 동네 사람들이 제게 그래요. "목사님, 썸머 캠프를 보니 복음이 뭔지 알겠네요." 그런 반응을 볼 때 기쁘죠.



    ▲ 이 목사는 한국교회 핵심 문제 중 하나가 신앙을 교리화시킨 것이라 했다. 예수님이 보여 주신 복음은 '삶'인데, 교리를 지나치게 중요시한다는 지적이다. ⓒ뉴스앤조이 강도현

    - 한국교회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구원의 관점에서 보면, 목사님 사역을 통해서 "예수님이 내 죄를 대속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나와야 사역의 열매가 있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목사님 사역이 '영혼 구원'에 초점이 맞춰진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묻는다면요?

    제가 미국에서 교제하는 신학도 중에 한국의 진보적인 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도 상당히 진보적이라고 알려진 신학교에서 박사과정에 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이 친구가 제가 나온 기사를 페이스북에 공유하면서 "내가 아는 아주 보수적인 목사님이…"라고 썼더라고요. 제 부친은 '순장로교단'이라는 아주 보수적인 교단의 목사였습니다. 그 영향을 받은 저는 어떻겠어요.

    저도 기본적으로 보수적이에요. 죄 문제는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캠프에서도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아이들이 있어요. 왜냐하면 아이들이 실제로 죄 문제로 고민을 하거든요. 그런 고민을 하는 아이들에게 죄를 대속하는 구주로서 예수님을 말해 주죠.

    그런데요. 우리가 죄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지혜와 분별력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 사람들은 스스로 지은 죄보다는 (그들은) 사회적으로 그들에게 가해진 구조적 악에 의해서 더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거든요. 인종차별은 불과 몇 십 년 전 일이고 현재진행형이죠.

    심지어 요즘의 도시계획도 흑인 빈민가를 고립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되거든요. 이분들이 가난한 이유를 게을러서, 공부하지 않아서, 일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하는 한국 분들이 많은데요. 물론 그런 부분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이유는 노예제도 때부터 지금까지 미국 사회가 흑인들을 차별하고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여러 정책으로 속박했다는 게 핵심입니다. 어떤 사회학자는 흑인들을 '보이지 않는 철장'에 가둬 놨다고까지 표현을 했어요.

    그렇다면 이분들에게 "당신은 죄인입니다. 회개하십시오"라고 말하는 게 옳을까요? 아니면 그들이 겪는 고통을 공감하고, 같이 아파하는 게 먼저일까요? 더 나아가 이들이 겪은 고립과 차별이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불의한 것이라고 말해 주는 것이 먼저 아닐까요?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어떤 의미입니까? 하나님의 샬롬을 맛보게 하는 것이 복음이고 전도입니다. 그 가운데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죠. 구원의 역사가 있으니까 목사인 제가 이 일을 하는 거죠.

    긴 대화를 나누고 나서 '보수적인 목사'가 왜 흑인 빈민가에서 청소하고 아이들을 위한 캠프 사역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복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싸움이다. "내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그리고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천국 간다." 우리가 생각했던 이 간단한 두 문장으로는 복음과 구원을 다 설명할 수 없다는 말이겠다.

    로마서 10장 9절 말씀이 생각난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도 바울이 이 편지를 썼을 당시를 생각해보면 로마 황제가 아닌 예수가 주라고 고백하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입으로 시인했다는 것은 마음으로 믿었다는 것의 보증이다.

    아니, 바울은 목숨을 내놓고 예수를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구원의 요건이라고 말한다. 2016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가 주라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만큼이나 합당한 각오와 희생 없이 '마음으로 믿는' 것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이태후 목사님은 한국과 미국에서 주류적 위치에 있었으면서도 가장 비주류적인 사역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미국 사회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 다음 편에는 미국 사회와 교회 그리고 그가 하는 사역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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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즈 걸린 동성애자' 랩으로 풀어낸 CCM 래퍼

    'W.라이노' 이창수 "나는 보수 중도…동성애는 죄, 혐오는 안 돼"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W.라이노'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CCM 힙합 가수 이창수 전도사(31). 얼마 전 '비상구'를 발표했다. 중간 템포의 비트 위에 동성애자들 이야기를 랩으로 풀어냈다.

    이 노래에서 W.라이노는 자신을 동성애자로 가정한다. 직접 작사하고 노래까지 불렀다. 가사는 직설적이다. 에두르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동성애자가 들으면 반감을 일으킬 만한 가사도 눈에 띈다.

    1절

    처음부터 나도 남자가 좋았던 것은 아니었어
    남자로 태어났고 강해지고도 싶었어
    하지만 아버지가 날 버렸을 때부터
    채우지 못할 빈자리가 하나 생겼어
    넉넉치않은 살림 탓에 물려받았던
    레이스 달린 우리 누나들이 입던 옷
    내 기억이 시작되기 전부터 입었던
    치마, 차마 미워는 못 하겠어
    엄마 누나들은 좋은 사람이었어
    가난. 그 말고는 괜찮은 삶이었어
    다만, 점차 난 누나들 닮아갔고
    정말 있어선 안 됐을 일이 일어났어
    친구들 따라 교회에 다니던 나
    친해진 형집에 놀러 갔던 날
    우리 레슬링 놀이하고 놀래
    방법은 말야 일단 옷을 다 벗고 바지도 벗어

    2절

    그때가 아마 내가 열한살 때였지
    사춘기가 찾아와 그때 마침
    불안정한 남성 호르몬의 팽창
    정서적 공백이 주는 외로움이 찾는 것은
    여자가 아닌 남자
    한번쯤 만나 보고 싶어 아빠
    지금은 알지만 몰랐네 진짜 날
    그저 내 몸이 기억하는대로 따라가
    종로와 이태원 거리를 걸어다니며
    욕정을 불태워 머리가 아파올 때면
    잊어보려고 해도 이젠 몸이 기억해
    고통을 이겨 보려 쾌락으로 병드네
    오래 낫지 않는 감기인가 싶었지
    변기에 피를 토하기 전까진 그랬지
    붉은 반점은 그냥 피부병이었지
    에이즈 양성반응인 걸 알기 전까진

    3절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이미 끝난 것은 아닐까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밤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이미 끝난 것은 아닐까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밤
    신이 나를 만드셨다며
    신이 나를 사랑한다며
    근데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 나는
    여자가 되고 싶어 하는 남자 괴물
    이렇게 된 건 아버지 때문
    그렇게 키웠던 어머니 때문
    강간한 교회 형 그 때문
    나를 이렇게 만든 건 신 때문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
    거짓말 하지 말아
    행복한 결혼식과 축복 꿈이잖아
    지금도 사랑받는 꿈을 꾸면서 살아
    근데 그 꿈은 매일 아침이면은 깨잖아
    게이라는 이름 날 호적에서 지운
    어머니와 가족들 누가 나의 친구
    붉은 반점의 피부 누가 나의 친구
    어디에 있나요 나를
    구원하실 예수

    후렴

    여기 있어 너의 비상구
    도와주고 싶어 너의 탈출
    얘기해 줄 수 있겠니 너의 아픔
    감추지 않아도 돼 그동안 못한 말들(X2)

    1절은 동성애가 선천적이 아닌 후천적이라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한 남자가 어떻게 동성애자가 되었는지 원인을 짚었다. 아버지의 부재, 경제 문제와 집안 환경, 성폭행 등 성장기 아픈 상처들이 내용이 담겨 있다. 2절에서는 무분별한 동성 간의 성관계, 이로 인한 에이즈 감염을 말한다. 3절은 동성애자의 절규를 담고 있다. 자신의 인생이 망가진 원인을 하나하나 제시하면서 그동안 신과 예수는 무엇을 했느냐고 토로한다.

    보수 신학교에 재학 중인 W.라이노는 지금까지 '중도'의 길을 걸었다고 말했다. 무수한 관계 속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게 노력했다는 것이다. 동성애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입장을 스스로 보수 중도라고 생각한다. 탈동성애자들의 증언과 각종 자료를 토대로 가사를 썼다. 가사를 찬찬히 살펴보면 W.라이노가 동성애를 분명히 반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가 말했다.

    "동성애는 죄다. 동성애자를 사랑해야 한다. 혐오는 안 된다."

    보수 기독교계가 흔히 말하는 "사랑하지만 반대한다"와는 다른 점이 있다. W.라이노는 '그러나'와 '하지만'을 배제했다. 두 접속사는 사실상 '혐오'를 전제로 한 표현이라고 했다. 한국교회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동성애를 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말이다.

    6월 11일, 보수 기독교계는 퀴어 축제 장소 맞은편에서 맞불 집회를 개최했다. 당시 W.라이노는 대한문 앞 반대 집회 현장을 둘러본 다음 서울광장으로 향했다. 퀴어 축제에 참석해 문화 공연을 보고,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퍼레이드에도 참여했다.


    "군인권센터 부스에서 소시지를 사 먹었다. 5만 원 내고 4만 6,000원을 거슬러 받았다. 그 찰나에 잔돈을 제대로 받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성애자들은 도덕적이지 않다고 생각한 것 같아 스스로 부끄러워졌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동성애자들을 만나 보지도 않고, 몇몇 사람 이야기만 듣고 반대하는 것은 아닐까, 몰지각·몰이해가 혐오를 낳는 것은 아닐까. 동성애자들을 그저 성적으로 타락한 대상으로만 보는 것도 여기에서 오는 건 아닐까.

    동성애자들 중에는 이성애자 이상으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이들이 있으며, 육체적 관계를 배제한 플라토닉 사랑을 추구하는 이들도 있다. 혐오와 무관심이 아닌 배려와 유관심으로 그들을 바라봐야 할 때인 것 같다."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면서 동시에 반대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공존할 수 있을까. 거칠게 말하자면 '중도' 또한 동성애 '혐오'에 해당하는 것은 아닐까. W.라이노가 말했다.

    "나는 동성애 전문가가 아니다. 동성애에 대한 제한된 경험과 지식 가운데서 최선을 다해 작사하고 불렀다. 내 노래는 동성애 문제에 대한 '답'으로 발표한 게 아니다. 예술가는 시대의 현실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일 뿐이다. 이제 목회자·신학자·교수·법학자·의사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답을 제시할 차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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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보던 여아 6년간 상습 성추행, 인면수심 목사

    용돈 주겠다며 옷 벗기고 사진 촬영…항소심서 징역 3년 선고받아
    이용필 기자



    ▲ 위탁 아동을 수년간 성추행해 온 목사가 징역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용돈을 주는 대가로 신체 중요 부위를 만지거나, 알몸을 사진 촬영했다. (출처 ljupco / 123RF 스톡 사진)

    "X 쓰레기 같은 목사를 아는데 제보하고 싶어서요. 어떻게 하면 되나요?"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2주 전 <뉴스앤조이> 사무실로 한 통의 제보 전화가 걸려 왔다. 제보자는 아동청소년보호법 위반으로 수감 중인 목사를 고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폭행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제보자는 몇 달 전 출소했다. 감옥에서 우연히 A 목사를 만났다. 같은 방에 지내면서 서로의 직업과 죄목 등을 알게 됐다. A 목사는 자신의 죄목을 숨기지 않았다. 대신 수감자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했다. 수사기관으로부터 강압적인 조사를 받고 누명을 쓰게 됐다는 것이다. 제보자는 A 목사를 딱하게 여겼다.

    그 마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A 목사와 함께 재판을 받은 동료 재소자들이 "A 목사 주장은 거짓"이라고 알려 줬다. 오갈 곳 없는 여자아이를 집에 데리고 살면서 몹쓸 짓을 저질렀다는 이야기였다. 제보자는 기자에게 "나도 한때 교회에 다녔다. 그런데 '목사'가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확인을 위해 판결문을 입수했다. 실제 A 목사는 징역형을 선고받고 현재 모 교도소에 수감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A 목사의 죄목은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위계등간음)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13세미만미성년자위계등추행)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강제추행)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이다.

    A 목사는 올해 2월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6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80시간 이수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형이 가볍다며, 반대로 A 목사는 형이 무겁다며 항소했다. 2심 재판부는 5월 선고 공판에서 징역 3년으로 감형했다.

    <뉴스앤조이>는 판결문을 토대로 A 목사가 저지른 범죄를 재구성했다. 아직 미성년자인 피해자의 신원 보호를 위해 특정 지명, 인명 등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착한' 목사의 이중생활

    A 목사가 담임으로 있는 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구 백석) 소속이다. 시골 마을에서 목회를 해 온 A 목사는 마을 안에서 '착한' 목사로 통했다. 경제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데려다가 먹이고 키웠다. 지역신문에 '미담' 주인공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A 목사는 집 밖에서는 선량한 목사였지만, 집 안에서는 파렴치범에 지나지 않았다.

    B 양은 집안 경제문제로 가족과 떨어져 살았다. 친척 집을 전전했지만 폭언과 구타로 정신적 충격을 많이 받았다. A 목사와 함께 살게 된 B 양은, A 목사 요구를 거부하면 과거처럼 살게 될까 두려웠다. 목사는 이 점을 파고들었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6년간 B 양을 상습적으로 유사 강간하고 추행했다. 몹쓸 짓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2013년 여름, A 목사는 운전 도중 조수석에 앉아 있는 B 양을 성추행했다. 속옷 안으로 손을 넣어 중요 부위를 만졌다. 용돈을 달라고 찾아온 B 양에게 '대가'를 요구하기도 했다. 2015년 5월, 교회 2층 서재에서 B 양을 자기 무릎에 앉힌 채 가슴과 중요 부위를 만졌다.

    성추행만 한 게 아니다. 목사는 카메라로 B 양을 촬영했다. 2010년 여름 문화 상품권을 주겠다며 B 양의 옷을 모두 벗긴 후 사진을 찍었다. 또 얼마 뒤에는 컴퓨터를 사용하게 해 주는 조건으로 B 양의 중요 부위를 만지고, 사진 촬영했다.

    끔찍한 범죄는 계속 이어졌다. 2014년 용돈을 달라고 찾아온 B 양을 침대에 눕히고 음부에 손가락을 집어넣은 채 사진을 찍었다. 목사는 2015년 3월에도 같은 수법의 범죄를 저질렀다.



    ▲ A 목사는 2심에서 3년 감형받았다. 합의를 본 피해자가 선처를 호소했고, 목사가 1심과 달리 2심에서 자신의 죄를 모두 인정했다는 이유에서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2심서 범죄 사실 모두 인정…합의·초범 등 이유로 감형

    A 목사는 1심 재판에서 죄목 일부만 인정했다. 강제 또는 위력으로 추행과 촬영을 하지 않았고, 유사 성행위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해자가 어렸을 때부터 범행이 지속적으로 이뤄졌고,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명백히 표시했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위탁부이자 종교인으로서 피해자를 건전하게 양육하고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추행 및 유사 성행위를 하고 사진 촬영까지 했다. 죄질이 극히 불량하므로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A 목사에게 징역 6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80시간 이수 판결이 내려졌다. 1심 재판부와는 달리 2심 재판부는 2015년 5월 선고 공판에서 징역 3년을 감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과 합의를 본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고 △1심에서 일부 범행을 부인했던 피고인이 2심에서 모든 범행을 인정하고 뉘우치는 모습을 보였고 △피고인이 초범인 점을 감안할 때 1심의 양형이 무겁다며, 감형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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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 신학생 "H 교수 '갑질'에 공포 느껴" 주장

    H 교수 "확인차원에서 불러서 얘기… 그걸 녹음해가지고…"

    【 <교회와신앙> : 엄무환 목사 】 1년여 동안 학내 사태로 심한 몸살을 앓았던 영남신학대학교(영남신대, 총장 오규훈 목사)가 평온을 되찾는가 싶더니, H 교수가 연구실과 강의실에서 한 장애인 신학생에게 던진 말들로 ‘갑질 논란’이 일어 시끄럽다.

    장애인 신학생 B 씨는 H 교수의 ‘갑질’에 공포 느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H 교수는 확인차원에서 한번 불러서 얘기한 것을 녹음해가지고 문제를 만들고 있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학교의 조사에 응해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H 교수는 영남신대 학내사태를 주도한 서명교수 가운데 특히 세 명의 핵심 교수 중 한 사람이며, 문제의 발단도 지난 학내 사태 때 H 교수가 한 발언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 모 전 총장이 경찰에 명예훼손으로 H 교수를 고소했다. 이 고소 사건에 학내사태 당시 H 교수로부터 ‘권 모 전 총장에 대해 불륜스캔들에 관한 루머가 있다 카더라’ 식의 얘기를 들은 신학생이 참고인 자격으로 증인을 섰는데, H 교수가 이 신학생에게 연구실과 강의실에서 심한 말을 했다는 것.



    ▲ H 교수에게 ‘갑질’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B 신학생 ⓒ<교회와신앙>

    H 교수로부터 심한 말을 들었다는 B 신학생은 현재 영남신대 목회연구원 3학년 졸업반으로, 당시 모욕감과 공포심을 느꼈으며, 그날 이후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등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어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B 신학생은 또 H 교수에 대해 조사해달라고 학교에 청원하였을 뿐만 아니라 청도경찰서에 고소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체 장애 3급인 B 신학생은 자신에 대해 “대체로 말의 속도도 상당히 느린 편이고 또한 걸음 거리도 정상인과 다르게 불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곧은 정신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씀드리면 신체장애는 있지만, 정신장애는 없다.”고 밝힌 후, H 교수의 연구실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지난 3월 24일 오후 1시경에 H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제 의지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교수님의 의도에 따라 1시간 동안 갑질과 협박을 당했다.”면서 “그 당시 연구실에서 저의 심리 상태는 상당히 두려웠다. 많이 불안했고 떨렸다. 공포의 시간이었다. 죽을 지경이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한 마디로 심하게 공포를 느꼈다.”고 토설했다.

    B 신학생은 “저는 졸업반이다. H 교수님은 저한테 필수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이 과목을 F학점 받으면 졸업을 못한다.”면서 “그래서 불안했고, 두려웠고, 무서웠고. 공포심을 느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그날 이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B 신학생이 H 교수의 연구실에서 가진 면담 내용이라며 제시하는 녹취록에는 “내가 자네를 어떻게 가르치겠어? 내가 자네를 성적을 줄 수 있어?”라거나 “정확하게 자네 기억이 다 정확한 거야. 문제는 선생하고의 관계가 목적적인 주 주체의 얘기 빼 놓고도 사사로운 얘기까지 끄나풀을 잡아 가지고 이르고, 고발하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자네를 누가 친구하고 누가 사담을 하겠어?”라거나 “나는 자네 인간성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되게 무서움을 느껴.”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또 “제자들한테 뒤에 등 칼로... 칼 꼽히는 거예요.”라거나 “‘루머’라고 얘기하고, 학내 사태 전반적인 걸 같이 얘기할 수 있는 공유하는 마음으로 얘기했는데, 그것이 일러주는 요소가 돼 버린 거야.”라는 말도 들어 있다.

    B 신학생은 H 교수의 “내가 자네를 어떻게 가르치겠어? 내가 자네를 성적을 줄 수 있어?”라는 대목에서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H 교수의 이 말에 대해 B 신학생은 “H 교수님의 발언을 듣는 순간 ‘졸업하기가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B 신학생은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H 교수님의 발언은 별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H 교수님의 목소리가 순간순간 격앙되었고 마치 취조하듯이 윽박지르는 발언이어서 분위기가 살벌한 상황이었다. H 교수님의 발언은 나에게 엄청난 협박과 공포감으로 다가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B 신학생은 “저로서는 그 상황에서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면서 “그것 때문에 정신적 충격을 받아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스트레스 수치가 높아 의사의 권유에 따라 병원에 입원하게까지 되었다.”고 밝혔다.

    B 신학생은 “H 교수님이 ‘나는 자네 인간성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되게 무서움을 느껴. 제자들한테 뒤에 등 칼로... 칼 꼽히는 거예요. 저쪽에 가서 저쪽에서 뭐∼ 신뢰 가 더 되었든지, 더 뭐∼사랑을 받았든지 어쨌든지 간에 나는 내 등 뒤에 칼자루가 꼽힌 거야.’라는 발언을 들었을 때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자칫하면은 피를 볼 수가 있어.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어. ...’라는 H 교수의 발언에 공포감마저 들었다.”고 전했다.

    이어서 B 신학생은 “유감스럽게도 5월 29일(금요일) 2-4교시에 있는 ‘신학-영성-목회’ 수업 시간에 공개적으로 H 교수님께서 제2차 갑질을 했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H 교수가 수업시간에 한 발언 가운데 동료 교수에 대한 비난과 B 학생에 대한 비난, 게다가 사실이 아닌 내용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다수 학생들에게 전파했다며 H 교수의 발언에 반박하는 내용을 담은 진정서를 작성하여 학교에 제출했다.

    B 신학생은 진정서에서 “H 교수님은 ‘딱 한 건 고발해서 금방 취소했어요’라고 했다. 정말 H 교수님이 학내사태와 관련하여 고발 1건만 하셨는가? 정말 그러한가? 목사이기도 한 H 교수님이 왜 이런 심각한 거짓말을 수업 시간에 했는지 학교는 조사를 해야 할 것이다. 알 사람은 다 알지 않는가. 들리는 소문에는 H 교수님을 포함한 서명교수들이 학교를 상대로 37건을 고소 고발한바 있다고 한다(소문과 사실이 차이가 있으면 좋겠다). 여기서 ‘딱 한 건 고발해서 금방 취소했어요. ... 고발 한 건 했어요’라는 H 교수님의 말은 전적으로 거짓말이다. 수업 시간에 행해진 거짓말에 대해서 학교에서 조사를 해 주시기 바란다. 왜냐하면 이는 교수의 도덕성과 윤리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B 신학생이 H 교수가 수업 중에 한 발언이라며 자료로 제시하는 녹취록에는 “..... 14사람 그룹에서 전부다 쪼다들만 남았나봐. 딱 한 건 고발해서 금방 취소했어요. 그게 뭐냐? 기독공보 신문에 나간 거짓말쟁이다 뭐다하는 것을 이사들을 고발했어요. 그러나 총회가 다 화해하고 즉각 다 물리치라. ..... 고소 고발 다 취하하라. 그 결정을 9월 달 총회에서 딱 결정하자마자, 우리 네 사람 총회에 참석했다가 내려오면서, 그 다음날 아침 8시 반에 검찰청에 가서 바로 즉각 취소했어요.”라는 말과, “나도 쉽지 않은데, 취하하면 손해 볼 것 생각 안했어요. 하나의 진짜, 교단 총회가 모든 것 없다. .... 다 취하해라 할 때 ..... 고발 한 건 했어요. 그런데 그거 고발 낸 사람이 더 많더라고. 아직도 고소가 있고, 고소 건이 계속 물려 상고하고, 항소하고, 계속되는 이건 무슨 영성일까?”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B 신학생은 또 “H 교수님은 ‘고발하고 고발하고, 선생도 학생 고발하고, 학생도 선생 고발하고’라고 언급했다. 영남신학대학교에서 학생이 선생을 고소한 사람은 진정인 밖에 없다. 학교 안에서 진정인이 H 교수님을 고소했다는 사실을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진정인은 H 교수님과 관련된 사항을 학교에 청원한 것뿐이며, 어느 누구에게도 청원과 고소와 관련된 일을 말할지 않았다. 그런데 수업 시간에 도대체 이런 강의 내용이 가능한 것인가? 학교에 묻고 싶다. 이는 진정인을 향한 대단한 갑질이다. 3월 24일에는 1:1의 관계에서 갑질이 이루어졌고, 5월 29일의 경우는 수업 시간에 공개적으로 제2차 갑질이 이루어졌다. 진정인에 대한 H 교수님의 갑질이 두 차례 발생하였다. 학교에서 조사가 반드시 요구되는 부분이다. 교수는 강자이다. 반면 학생은 약자이다. 진정인에게 H 교수님은 대단히 무서운 존재이다. 정말 두렵고, 무섭고, 불안하고, 공포에 사로잡힌다. 어찌 해야 되는가?” 하고 자신의 심경을 피력한 후 “피해자인 진정인을 학교에서 보호해 주십시오! 더 이상 H 교수님으로부터 갑질을 당하지 않게 말입니다.”하며 학교 측의 도움을 요청했다.

    B 신학생은 진정서에 “학교에 진정합니다. 최소한 수업 시간에 거짓말에 근거한 강의가 행해지면 곤란할 것입니다. 그리고 학생을 갑질하는 교수의 태도는 마땅히 제거되어야 할 부분입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B 신학생의 청원을 받은 학교 측은 현재 이 사건을 학생실천처(처장 김승호 교수)에서 맡아 청원인인 B 신학생과 피청원인인 H 교수 쌍방 간의 의견을 듣고 처리를 하기 위해 준비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승호 처장은 “먼저 양측을 불러 사실파악을 한 후 H 교수에게 문제점이 있다고 발견되면 학교 규정에 따라 다음 절차가 진행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B 신학생이 H 교수를 상대로 경찰에 고소를 제기한 상태이기 때문에 경찰 조사에서 H 교수가 무혐의 판정을 받게 될 경우 학생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더욱이 H 교수는 학교 내에서도 영향력이 적지 않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H 교수를 다루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피력하는 익명의 제보자도 있다.

    그러면서 “설령 경찰에서 H 교수에게 무혐의 판단을 내릴지라도 이를 근거로 학교 측에서 H 교수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울거나 또는 H 교수의 파워에 밀려 학생에게 불리한 처분을 내리게 된다면 피해학생으로부터 지금보다 더한 반발이 예상될 뿐 아니라 영남신대의 신앙적, 도덕적, 윤리적 기준까지 의심받을 수 있는 후폭풍이 거세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B 신학생은 “저는 H 교수님으로부터 권 모 전총장님의 불륜 스캔들에 관해 전해들은 얘기를 사실대로 얘기한 것 밖에 없다. 그것을 경찰에 가서 진술했다고 H 교수님이 저에게 협박성 발언을 한 것이다.”면서 “H 교수님께서 사실이 아닌 유언비어를 학생에게 흘린 것은 분명 잘못된 처사가 아닌가. 그것도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동료 교수님의 명예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불륜스캔들에 관한 내용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여 회개하는 모습을 보여야 신학대학교 교수님답지 않겠는가. 그런데 오히려 잘못을 지적한 학생을 언어폭력으로 억압하여 정신적 충격을 받아 병원에까지 입원하게 만든 결과를 초래했다. 데모학생들은 감싸면서 진실을 밝힌 학생에겐 이렇게 신경과 병원에 입원시킬 정도로 협박성 발언을 해도 되는가. 반드시 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한편 H 교수는 <교회와신앙>의 전화인터뷰 요청에 대해 “엄기자님, 예전처럼 원하시는 대로 쓰시면 되잖아요. 지난번에 엄 기자님 처음 뵈었었는데 당황스러웠는데 엄 기자님과 얘기하기 좀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B 씨하고 권 총장님하고 다 그쪽 라인이니까.”라며 인터뷰를 피하는 태도를 나타냈다.

    그래도 질문을 이어가려 하자 H 교수는 즉각 말을 끊으면서 “아 그건 학교에서 조사가 진행 중이어서 학교에서 오라고 했는데 오지를 않으니까 학생처에서 조사하겠다고 부르니까 응하지 않으니까. 그런 상황인데...”라고 말했다. H 교수는 또 “저는 학생을 확인차원에서 한번 불러서 얘기했어요. 그걸 녹음해가지고... 학교에서 조사하는데 응해야지요. 저도 응해야지요. 학교에서도 전혀 안되는데 바깥에서 나가서 떠든다고... 신문사가 그것으로 큰 덕을 보는지 뭔지 모르겠지만... 학교조사에도 응하지 않는 일을 바깥에서 외부에서 먼저 시도한다면 낭패지요.”라며 언론에서 다루는 것에 대해 불쾌하다는 감정을 드러냈다.

    취재를 마칠 즈음에 학생실천처장 김승호 교수로부터 이런 문자메시지가 왔다.

    “엄 목사님 어제 목사님과 통화 후에 H 교수를 설득해서 오늘 아침에 방금 B 학생 병문안 차 병원에 갔습니다. 본인을 만났지만 면담을 거부하는 바람에 병원을 나오면서 이렇게 문자를 보내드립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학교 측에서 그래도 나름대로 문제 해결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예장통합(총회장 채영남 목사)이 제100회 총회에서 표방한 화해 정신에 따라 학교가 서명교수의 모든 문제를 덮고 다시 강의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1년도 채우기 전에 잡음이 나오고 있다. 그 진원지가 학내사태를 주도한 서명교수 가운데 핵심인물인 H 교수라는 점은 영남신대가 이번 사안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주목거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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