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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활동가로 살아가는 고승덕 딸 캔디 고/ 천지창조, 믿기지 않아 시험 드시나요?
    2016-06-02 16:33:21   read : 941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고승덕 딸 아닌 '세월호 활동가'

    '캔디 고' 인터뷰(1)…"한 인간이 사회 일에 관심을 두고 공감하는 것은 당연하다"
    경소영

    [뉴스 M = 경소영 기자] 지난 4월 뉴욕에서 세월호 2주기 추모 행사가 열렸다. 그곳에서 한 여성을 보았다.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뒷자리에 앉은 그는 앳된 얼굴이었지만 학생 같지는 않았다.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 같아 한참 멀리서 지켜보았다.

    행사가 시작되고 얼마 후 카메라에 아까 본 낯익은 얼굴이 잡혔다. 그가 뚜벅뚜벅 단상에 올랐다. 그림을 통해 세월호를 기억하고 알리는 작업을 진행한 예술 집단 '크리에이트(K/REATE)'를 소개했다. 그의 이름은 '캔디 고', 이름을 듣는 순간 '아하! 그때 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 흥분했다.

    2년 전, 서울시 교육감 선거 후보였던 고승덕의 딸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 하나로 대한민국이 들썩였다. 뉴스에서 보았던 얼굴이 떠올랐다. 단상에 오른 그와 방금 떠오른 사진 속 얼굴은 분위기가 비슷했다. 그는 예술을 통해 세월호 사건을 알리고자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의구심이 들었다. 그 '캔디 고'와 동일 인물일까?

    세월호 추모 행사와 캔디 고,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지금 생각하면 미안한 일이다. 편견이란 이리도 강력하고 무서운 것이다. 행사가 끝나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저, 혹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밝은 목소리로 답이 들려왔다. "네! 저 맞아요."

    연예인을 만난 느낌이었다. 호들갑을 떨면서 반갑게 아는 척을 했다. 그러나 혹시 실례가 될까, 함께 사진도 찍지 못하고 헤어졌다. 아쉬운 마음에 그 날 밤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어 정중하게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했다. 물론 바로 수락을 해주었다.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고 한 달 후 <뉴스 M> 인터뷰로 다시 마주하게 됐다.

    편견 앞에 서다

    그의 프로필은 화려하다.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외손녀이자 전 서울시 교육감 후보 고승덕 변호사의 딸, 고 전 후보의 낙선에 큰 영향을 미친 글을 썼다. 그 일로 매우 유명해졌다. 그때 그 사건은 지금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악의적인 댓글도 수없이 많다. 캔디 고 씨에 대한 소문과 편견은 지금까지 난무한다. 기자는 세월호 추모 행사에서 '캔디 고'라는 흔하지 않은 이름을 듣고도 직접 물어보기 전까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 또한 언론에서 캔디 고 씨를 규정한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 생긴 의심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궁금했다. 그의 행보가 특별해 보였다. 캔디 고 씨는 '활동가'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세월호를 미국 사회에 알리고자 노력하는 '활동가' 말이다. 더구나 그 활동은 한국과 한국인을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 기자가 상상했던 '캔디 고'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부유한 유명인의 2세는 기부할 수 있을진 몰라도 실제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진 '활동가'로 살아가기는 어려울 터이다.

    편견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 단호한 냉소가 내재해 있던 것은 비단 기자 개인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도 다 그럴 것이라는 말로 생각을 감싼 채 비겁하지만 잠시 대중에게 숨은 채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습과 좀 다른 것 같은데 어찌 된 일이냐고 말이다.

    "사람들은 내가 굉장히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생각한다. 그건 오해다. 할아버지가 몸담았던 기업은 삼성 같은 글로벌 대기업이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군인 출신이었고, 정부를 위해 일했다. 게다가 할아버지의 돈이 엄마의 돈이 아니듯, 내 돈도 아니다. 미국에 왔을 때 엄마는 싱글맘이었고, 힘들게 우리 남매를 키웠다. 난 과외를 하며 용돈을 벌었다. 내가 부유하게 자랐을 것이라는 추측은 사람들이 흔히 잘못 알고 있는 오해이다."(관련 내용은 다음 인터뷰 기사에서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캔디 씨 자신은 비록 부유하게 자라지 않았지만 부유하게 자란 사람이라도 사회 참여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회 문제는 공감하는 일이며 결국 내 가족, 내 이웃의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부유하거나 부유하게 자란 사람은 왜 사회적인 이슈에 관심을 두면 안 되는 지 모르겠다. 그건 합리적인 생각이 아니다. 그저 한 인간으로서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관심을 두고 공감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 피해자가 내 이웃일 수도 있고 내 사촌일 수도 있지 않나. 나와 관련이 없다고 해서 사회적인 이슈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위치에 있던, 나의 배경이 어떻든지 간에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캔디 씨는 지극히 상식적인 자기 생각을 명확하게 말했다. 그런 답변이 기자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그동안 언론에 비친 그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던 탓인지 모르겠다.



    ▲ 부유하거나 부유하게 자란 사람은 왜 사회적인 이슈에 관심을 두면 안 되는 지 모르겠다. 한 인간으로서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관심을 두고 공감하는 것은 당연하다. ⓒ <뉴스 M> 유영

    캔디와 아버지

    캔디 씨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건 2년 전, 서울시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쓴 고승덕 전 후보에 대한 페이스북 글 때문이었다. 고 전 후보에게 그동안 연을 끊고 살아온 두 자녀가 있었다는 사실이 세간에 알려진 것이다. 캔디 씨는 부모의 이혼 후 어머니를 따라 미국에 왔다. 그 후 아버지는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자신의 자녀에게 연락하지 않아도 괜찮다. 무척 상처받는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하지만 나는 부녀 관계를 계속 이어가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연락을 거부했다."

    캔디 씨는 그때의 상황과 감정에 대해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자녀를 돌보지 않았던 고 전 후보의 행적은 세상 사람들에게 공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선거 결과가 그것을 말해주었다. 대중에게는 과거 교육감 선거에서 낙선한 한 정치인으로 기억되겠지만, 여전히 캔디 씨에게는 20년여 간 꾸준히 자신을 외면하고 살아 온 아버지일 뿐이다. 인터뷰 중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캔디 씨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고 전 후보에 대한 기억을 들려주겠다고 했다.


    "어릴 적 아버지와 둘이 길을 걷다가 어떤 사람이 쓰레기를 줍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나에게 '저런 일 하고 싶지 않으면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저런 불쌍한 인생을 살고 싶지 않으면' 이라고 말했다. 늘 남을 자신보다 낮게 보고 그런 말들을 자주했다. 그 사람에겐 그 일이 중요한 일일 수 있다. 우리 각자 모두가 사회에 주어진 중요한 일이 있지 않나. 그 사람은 내가 위에 있으니 내 밑에 나보다 못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굉장히 견디기 힘들었다.

    당시 그가 출마한 공직이 교육감이 아니었다면 그러한 글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아버지는 교육감 선거 이전에도 공직 생활을 했다. 하지만 교육과 관련한 자리에 좋은 교육을 제공할 수 없는 사람이 선출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자녀 교육도 제대로 돌보지 않았던 것을 떠나 사람과 교육을 생각하는 관점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를 위해서도 서울 시민을 위해서도 진실을 알려야 했다."

    2년 전 그가 쓴 페이스북 글이, 단순히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향한 개인적인 마음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어릴 적부터 어른들의 말을 무조건 수용하지 않고 고민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아버지의 유전을 받아 굉장히 고집이 센 사람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독립적이다. 엄마도 나에게 어떠한 공부나 과외도 강요하지 않았다. 주입식 교육보다는 자유롭게 교육받길 원했다."

    조금 의외였다. 본인의 성격 형성에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의 영향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가 페이스북에 썼던 글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내용이 아니었다. 30년간 살아오며 형성된 다부지고 똑 부러진 성향, 그리고 세월의 풍파 속에서 자신을 오롯이 지켜낸 캔디 씨 그 자체였다.



    ▲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아버지의 유전을 받아 굉장히 고집이 센 사람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독립적이다. 그가 출마한 공직이 교육감이 아니었다면 그러한 글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아버지는 교육감 선거 이전에도 공직 생활을 했다. 하지만 교육과 관련한 자리에 좋은 교육을 제공할 수 없는 사람이 선출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 <뉴스 M> 유영

    그런 그에게 어리석게 느껴져도 어쩔 수 없는 질문을 이어갔다. 사실 2년 전 그가 쓴 글에 대해 당시 말들이 많았는데 가족의 어떤 압력이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물어야 했다.

    "온전히 내 생각과 결정으로 쓴 글이다. 나는 어른이고 나 혼자 충분히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도 나에게 쓰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진실을 묵인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국민은 투표해야 하니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

    고향의 봄과 가을이 그립다

    이미 2년 전 언론을 통해 알려진 캔디 씨의 진심 어린 목소리다. 그러나 당시 많은 언론에서는 그 글을 정치적 공방으로 몰아갔다. 악플도 적지 않았다. 악플 따윈 신경도 쓰지 않을 것 같았던 당당한 캔디 씨였지만, 당시를 떠올리며 표정이 굳어졌다. 정적이 흘렀다. 무언가 안 좋은 기억이 났는지 조금 어두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2년 전에 내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나서 가장 많이 들었던 소리가 '한국에 사는 사람도 아니면서 왜 나서냐'는 말이었다. 정확한 지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미국에 원해서 오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엄마의 손에 이끌려 오게 됐다. 어린아이에게 선택이나 결정권이 있을 리 없었다.

    1998년 이후로 한국에 가을이나 봄에 가지 못했다. 한국의 사계절은 매우 아름답지 않나. 한국의 봄과 가을이 정말 그리웠다. 봄과 가을의 계절을 나는 잊지 못한다. 가을의 낙엽과 봄의 꽃내음도 생각난다. 미국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나는 누군가와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헤어졌다고 말하고 싶다. 한국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에 와서도 계속 한국 뉴스를 찾아보았다. 우리말이 서툴러서 한국 뉴스를 보고 이해하는 데에 꽤 시간이 걸린다. 그래도 계속해서 보고 있다."

    가슴이 콱 막혔다. 그의 마음 한 켠에 쌓인 케케묵은 먼지가 바람에 날려 흩어짐을 느꼈다. 한국을 떠나던 날, 그가 흘렸을 눈물이 먼지에 섞여 눈앞이 흐릿해졌을 아이가 보였다. 상처와 눈물이 없는 어린 시절이 혼자 겪는 일은 아니었을 테다. 성인이 된 캔디 씨는 그를 둘러싼 편견을 뒤로한 채 담담히 자신의 인생길을 걷기로 했다.

    예술가에서 법학도가 되기까지

    캔디 씨는 현재 로스쿨 3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다. 학부에서는 문학과 조형예술을 복수 전공했고 석사는 미술 비평으로 학위를 받았다. 문학과 예술을 공부해 예술 분야로 나가던 캔디 씨에게 로스쿨 입학은 조금 특이한 이력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문학과 미술비평을 전공했지만, 프리랜서로 일하기는 조금 힘들었다. 잡지 편집부에서 일을 하면 좋지만 굉장히 치열하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시기 서점에서 대학원 입시 책들을 보게 되었다. 그중에 눈에 띈 게 LSAT(법대입시시험) 책이었다.

    굉장히 흥미로웠다. LSAT은 법 지식을 물어보는 게 아니라 대부분 논리적인 질문들로 채워진다. 마치 퍼즐을 푸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 뒤로 책을 사서 하나하나 풀어보았다. 그 모습을 본 엄마의 친구가 법대에 지원해보라고 권유해 시험을 치렀다. 성적이 꽤 잘 나와 상당한 장학금을 받았다. 저렴하게 공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진학을 고민했다."

    그는 로스쿨에 가게 된 과정을 '재미있는 스토리'라고 표현했다. 흥미로 시작하여 우연한 기회에 로스쿨에 시험을 보고 합격까지 했지만, 꼭 법대에 가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입학 결심을 굳히게 한 하나의 동기가 생겼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6월 3일에 있었다.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건 5월 31일이었다. 이 글이 여파를 몰고 올 거라는 짐작은 했었지만, 한국 시민들이 내가 법대에 진학하게 되는 걸 알면 내 말과 글이 더 신뢰가 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국 시민들이 알아줬으면 했고, 내 진심을 더 믿어주길 바랐다."

    그는 한국 시민들에게 진심으로 말했다. 중대한 진로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줄 만큼 간절했다. 그건 진실을 향한 갈망이었다. 법대생의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면 기꺼이 그 옷을 입을 수 있었다.

    ▲ 나는 세월호 사건을 뉴스에서 찾아보다가 서울시 교육감 후보로 아버지가 나온 것을 알게 됐다. 당시 한국 시민들은 한창 세월호 사건으로 희생된 아이들을 추모하고 있었다. 그런 기간 내가 쓴 글 때문에 세월호 뉴스가 묻히는 느낌이 들어서 굉장히 미안했다. 세월호 희생자 추모는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실이 규명되고, 유가족들에게 정확한 답변과 보상이 있을 때까지 나도 내가 있는 장소에서 계속 참여할 것이다. ⓒ <뉴스 M> 유영

    세월호 활동가로 살아가는 이유

    캔디 씨가 글을 올린 2014년 봄은 세월호 사건으로 전 국민이 슬픔에 빠져있던 때였다. 그는 두 사건이 겹쳤는지 매우 슬픈 눈으로 말했다.

    "나는 세월호 사건을 뉴스에서 찾아보다가 서울시 교육감 후보로 아버지가 나온 것을 알게 됐다. 세월호 사건은 4월에 일어났고, 페이스북에 글을 쓴 것은 5월이었다. 당시 한국 시민들은 한창 세월호 사건으로 희생된 아이들을 추모하고 있었다. 그런 기간 내가 쓴 글 때문에 세월호 뉴스가 묻히는 느낌이 들어서 굉장히 미안했다. 세월호 희생자 추모는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실이 규명되고, 유가족들에게 정확한 답변과 보상이 있을 때까지 나도 내가 있는 장소에서 계속 참여할 것이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진정성을 증명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캔디 씨는 당시 결심한 대로 로스쿨에 다니고 있다. 그리고 세월호 진실 규명을 위해, 더불어 그가 품은 미안한 감정을 행동으로 옮기는 활동가가 되었다. 옳다고 생각한 그대로 행동했고, 그 행동의 진실성을 위해선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런 캔디 씨의 인생을 어느 누가 정치적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뉴욕 지리에 어두운 기자 대신 캔디 씨는 인터뷰 장소 섭외까지 담당했다. 그의 지인들이 하는 카페, 미용실 등을 소개해 주었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 우리는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장소를 제공해 준 한인 예술가 친구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캔디 씨는 영락없는 보통 한인 청년이었다. 한국에 대한 아련한 기억은 그에게 아름다움으로 남았다. 여전히, 앞으로도 계속 한국에 관심을 두고 활동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했다.

    한국을 떠나고 싶지 않았던 11세 소녀는 어느새 미국에 정착한 한인 청년이 됐다. 20여 년 동안 미국 땅에서 지냈다. 그 세월 동안 과연 캔디 씨는 어떻게 살았을까. 그의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졌다. 우리는 한 번 더 만나기로 했다. 어느 유명인의 딸 '캔디 고'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캔디 고'를 만나러 가는 길이 무척 설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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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지창조, 문자 그대로 믿기지 않아 시험 드시나요?

    ▲ 이번 포럼은 접수 개시 20일 만에 신청자 300명이 꽉 찼다. 행사 당일에도 일찌감치 사람들이 자리를 채웠다. 나중에 온 사람들은 자리가 없어 바닥에 앉았고, 일부 서울대생들은 자원봉사까지 맡아 가며 포럼을 들으려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우주 창조'에 대한 신학자와 과학자의 대담…"과학으로 하나님의 섭리 발견하자"

    최승현 기자





    ▲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모색하는 포럼이 열렸다. 포럼을 주최한 우종학 교수는 문자주의에서 벗어나고, 과학과 대화하며 성경을 보아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우주 창조'를 주제로 과학자와 신학자가 만났다. 페이스북 그룹 '과학과 신학의 대화(과신대)'가 주최한 첫 번째 오프라인 포럼이 5월 30일 서울대학교에서 열렸다.

    창세기 1장 '천지창조'는 한국교회에서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창조과학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접근해 우주 나이가 6,000살이고 하나님이 하루 24시간 7일에 걸쳐 지구를 창조하셨다고 주장한다. 지질학과 천문학의 발견으로 우주 나이가 140억 년, 지구 나이도 46억 년이라는 학설을 정설로 받아들이는 과학계와 끊임없이 마찰하고 대립하고 있다.

    이날 포럼은 우종학 교수(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와 김근주 교수(기독연구원느헤미야)의 기조 발제를 시작으로, 우리가 어떻게 창조 기사를 이해하고 어떻게 과학을 성경과 연관시켜 볼 것인지 고민하는 자리였다. 과학과 신앙 사이에서 고민하며,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300여 석을 가득 채웠다.

    우종학 교수는 자연 세계 현상을 해석하는 학문인 과학과, 특별 계시의 텍스트인 '성경'을 해석하는 신학 간 관계에 대해 말했다. 과학을 통해 밝혀진 놀라운 우주의 세계는 성경 텍스트를 뒤엎거나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 발견과 신학적 해석을 토대로 창조주를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구약에 나타난 우주와 세상 창조에 대한 이해'를 주제로 발제한 김근주 교수는 "창조에 관한 대다수 본문이 시(詩)의 형태를 취한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창조가 이스라엘 민족 찬양의 중심 주제였음을 보여 준다"고 했다. 고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질서 있게 세상을 창조하셨음을 글자 그대로 믿었을 테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고대 세계관에 입각해 성경을 볼 것이 아니라고 했다.

    김 교수는 창조과학이 "문자 그대로 창조 기사를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그렇다면 성경에 나와 있는 노예제 찬성과 여성 안수 금지, 독재 권력에 대한 순종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 김근주 교수는 문자적이든 유비적이든 성서 자체가 주는 메시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말씀의 메시지가 어떻게 다가오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이어진 패널 토의는 우종학 교수와 김근주 교수를 비롯해, 권영준 교수(연세대학교 물리학과), 이택환 목사(그소망교회)가 이어갔다. 이날 주제는 '우주 창조'였지만, 중간중간 기독교인이라면 궁금해할 만한 질문들이 나왔다. 질의응답 식으로 진행된 패널 토의 사회는 이명희 CBS 아나운서가 맡았다.

    -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이 6일간 창조하시고 7일째 쉬셨다고 되어 있다. 하루의 개념은 정확히 무엇인가?

    이택환 / 하나님이 태양을 넷째 날 만드셨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전 3일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하루라는 게 태양이 있어야 가능하지 않나. 물리적인 '하루'가 아닌 문학적인 개념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창세기 1장 곳곳에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를 반복하고 있는 게 그 힌트다.

    창세기 저자가 24시간, 6일로 이해하고 창조 기사를 기록했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천문학적・지구과학적 개념이라기 보다는 신학적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은 하루면 온 세상을 다 만들 수 있는데 굳이 왜 6일에 걸쳐 만드시고 7일째 쉬셨을까? 이것은 창조의 과정 가운데 안식일 신학이 들어 있다는 걸 명확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결국 창세기 1장은 "너희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바빌론에 포로로 갔다"는 내용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 성경 말씀을 문자적, 유비적으로 의미를 구분하는 게 목회자마다 달라서 혼란스럽다.

    이택환 / 예를 들어 창세기 2장에 사람을 창조하실 때 아담의 코에 생기를 넣으셨다고 하는데, 역사적 사실로 본다면 하나님이 인공호흡을 하셨다는 것인가? 허파가 있으셔서 들숨과 날숨을 내쉬었다는 의미일까? 이것은 하나의 비유적인, 인간을 치밀하게 창조하셨다는 의미로 봐야 할 것 같다.

    우종학 / 창세기 1장 전체를 유비적으로 볼 것인지 문자적으로 볼 것인지, 어려운 점이 있다. 문자적이라는 게 뭐냐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빛이 있으라"를 어떻게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할까. 문자적으로 이해한다는 말도 사실은 해석이 필요하다. 성경 텍스트가 전하려고 했던 본래 의미를 파악해야지, 이것을 검증하려 한다든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는 건 문자적이건 유비적이건 틀릴 가능성이 높다.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메시지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 성경 저자가 믿고 표현한 내용이 진리가 아닐 수 있다는 의미일까?

    김근주 / 결론적으로는 그럴 것 같다. 다 받아들이지 않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이미 우리가 성경 말씀을 취사선택해 오고 있다면, 본문에 대해 할 수 있는 한 아전인수 되지 않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하는 게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 그렇다면, 예수의 부활도 문자적으로 볼 수 없는 것일까?

    이택환 / 예언자 발람에게 나귀가 말하는 내용이 민수기 22장에 있다. 나귀가 움직이지 않으니, 발람이 왜 안 가냐며 나귀를 죽이려 하자, 나귀가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못 가는 것"이라고 화가 나 얘기를 한다. 이것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건 곧 부활을 못 믿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는다.

    역으로 질문을 해 보자. 교회가 부활을 전하는 종교인가 아니면 나귀가 말하는 것을 전하는 종교인가.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믿음으로 구원받는가, 발람 사건을 믿어서 구원받는가, 아니면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는 것을 문자적으로 믿어서 구원받는가?

    근본주의・문자주의의 문제는 성경에서 무엇이 진짜로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 구분을 못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것은 다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그럼 나귀가 말하는 것과 예수 부활도 똑같다는 것인가? 발람 이야기를 우화나 비유로 이해하면 부활도 그렇게 여긴다고 생각하는데 이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인지 구분하는 게 신학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김근주 / 복음서에 보면 부활의 목격자, 증인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 부활 사건은 본문 자체를 보면 목격자 이야기가 굉장히 중요하다. 요나 물고기 뱃속은 목격자 없는 게 문제가 되나? 요나서 전체는 편협하고 배타적인 요나와 그에 비해 뜻밖의 사공들 니느웨 사람들을 말하고 있다. 요나서 연구할 때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는 사실 여부로 신앙이 왔다갔다한다는 게 말이 될까? 예수 부활은 목격자가 관건이고, 증인도 수도 없이 나온다.

    출애굽기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어떻게 홍해가 갈라져 벽이 되었는지 절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출애굽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건 부활의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부활 메시지 자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우종학 / 이런 내용을 의심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과학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실 하나님 전지전능하시다. 나귀건 말이건 다 말하게끔 하실 능력이 있다고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데, 이 사건에서 실제로 나귀가 말한 것인가 아니면 우화적으로 쓴 것인가. 우화적인 것이라고 선택한다면 그런 선택 자체가 하나님의 전능성, 기적을 베푸실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하나님이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와 하셨냐 안 하셨냐는 다른 것이다.



    ▲ 패널로 나선 네 사람은 기독교가 과학과 충돌하거나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아 보이는 부분에 대해 토의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 성년창조론의 문제는?

    우종학 / 매력적이긴 하다. 하나님이 6,000년 역사의 지구를 만드셨는데 46억 년 나이가 들어 보이는 지구를 만드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담을 지난주 창조하시면서 서른 살로 창조하셨다는 얘기다. 그래서 성년창조론이라고 부른다.

    가장 큰 문제는, 그렇다면 아담이 1~29살까지의 기억이 있으면 안 된다. 그런데 우리가 우주를 볼 때는 지구 생성 이후 46억 년의 역사를 거쳐 온 과정이 앨범처럼 다 있다. 그런 내용을 봤을 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사건인데 있었던 것처럼 꾸며서 보이는 것이라고 하면 하나님을 사기꾼으로 만드는 거다. 그러한 점에서 성년창조론은 신학적 차원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권영준 / 성년창조론은 기본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우주가 아니라 박제된 우주로 가둬 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동물을 죽여서 박제하면 모양만 남아 있지 기능은 없다. 예를 들어 우주를 6,000년 전에 만들었다고 한다면 138억 년은 박제된 것이다.

    학생들에게 이렇게 설명한다. 어머니의 사랑이 담뿍 담긴 밥과 국, 반찬 먹는 거랑 3분 카레에 즉석 밥 먹는 것 중 어느 쪽 식사에서 사랑이 더 느껴지느냐고 묻는다. 하나님이 박제된 우주를 만들어 놓고 여기 살아라 할 때의 사랑과, 138억년간의 과정을 통해 자연 세계를 만들고 때가 되어서 우리로 하여금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시고 살게 하셨을 때의 사랑 중 어디에 정성이 더 담겼겠는가? 나는 후자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낀다.

    - 과학으로 성경을 해석하면, 과학을 성경보다 더 위에 두는 것 아니냐. 성경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물음이 많다.

    권영준 / 물이 끓는 걸 보고 왜 끓느냐는 질문을 던지면, 누구는 끓는 점에 도달해서, 누구는 배가 고파서 라면을 먹으려고 불을 켜서라고 대답한다. 모두 답이다. 마찬가지로 신학적 답을 찾아야 할 때 자연과학을 아무리 뒤져도 신학적 답이 안 나온다. 그런 경우 과학이 신학의 권위를 누른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 이들은 창조과학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잘 모르면서 좋은 내용이니 무조건 부르고 본다는 식은 곤란하다면서, 먼저 지도자들이 창조과학의 문제점을 알 수 있도록 총회나 선교단체에서 프로그램을 열어 교육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감정적으로 대응하지는 말자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 진화의 특징, 기본 요소로 말할 수 있는 적자생존은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 성품과 너무 다르지 않나? 하나님이 진화를 주관했다고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우종학 / 진화라는 게 우발적이고 우연적이다. 자연법칙하고는 굉장히 다르게 하나님의 창조성을 드러낼 수 있다. 자연법칙은 굉장히 기계적으로 보일 수 있는데, 진화는 하나님이 갖고 계신 자연법칙과 반대의 가치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내적 풍요하심을 볼 수 있다.

    오히려 신학적 측면에서, 진화를 하나님이 가진 놀라운 능력의 또 다른 채널로 보면 훨씬 더 풍성하다. 진화를 통해 하나님의 자기 비우심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수께서 오셔서 왕이 된 게 아니라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자기를 비우시고 고난과 고통의 길을 걷지 않나. 그렇게 준비해 오신 창조의 작업 속에는 진화의 모습이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진화를 보면 이해할 수 없고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과 닮아가는 과정으로 만들어 가는 역사로 본다면 더 풍성한 질문이 가능할 것 같다.

    김근주 / 진화 자체가 '생명체는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는 과학자들의 발견이다. 우리 인간도 정자와 난자가 결합한 최초의 모습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사람이지 않다. 진화가 아닌 시간에 따른 변화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다. 원숭이를 보면서 '쟤가 진화해서 사람이 됐다고?' 이렇게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

    - 계속적 창조는 창조의 미완성을 의미하는가? 종의 창조는 종의 진화를 의미하는가? 성경은 창조를 완성하시고 안식했다고 하는데.

    우종학 / 전통적으로는 무로부터 유의 창조가 일어났고, 하나님은 이후부터는 보존하신다는 개념이 우세했다. 그런데 근대과학이 등장하고 우주 나이를 알게 되면서, 그 긴 과정 동안 하나님께서 계속 창조하고 있다는 개념이 중요해졌다.

    현재 우주에서 전혀 없던 게 새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이미 있는 에너지가 물질이 된다든지 하는 변화 과정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말 그대로 없던 물질과 에너지가 생겨야 하기 때문에 '무로부터의 창조'다. 그 이후, 계속적 창조라고 하는 것은 뭔가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가시고 우주 전체가 존재할 수 있도록 경륜하시는 것으로 보면 좋을 것 같다.

    "창조과학, 올바른 신학 아니지만 감정적인 대응 자제해야"

    패널들은 창조과학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한국교회가 창조과학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탈(脫)창조과학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대화를 이어갔다.

    - 한국교회에 창조과학이 득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창조과학에 대한 평가는?

    이택환 / 3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초기 창조과학자들은 근본주의자였고 문자주의자였지만 신앙과 스펙이 화려했다. 박사, 의사, 교수고 신앙생활도 반듯하게 잘했다. 그러니 교회에서 볼 때는 저 사람은 신앙적으로 세상적으로 성공했다는 모델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한때 교회와 선교단체 수련회에서 특강하면 나중에 창조과학 시간이 제일 좋았다고들 했다. 그러나 창조과학은 제대로 된 과학도 아니고 올바른 신학도 아니다. 유령 과학이자 유령 신학이다. 교회와 선교단체가 배회하는 유령 과학에서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권영준 / 우리나라 사람들은 쉬운 답을 빨리 외우려는 면이 있다. 수업을 해 보면, 치밀하게 준비해 짜임새 있게 강의하면 "강의 잘 못한다. 어렵다"고 하는데, 열심히 농담하다가 마지막에 1.2.3 요점 정리해 주면 "명강의다"고 한다.

    깊이 고민하기 보다 문자적으로 믿으면 되니까 득세하는 것 아닌가 싶다. 창조과학이 좋은 점은 창조 역사를 문자적으로 변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다. 그 창조과학으로 뭐 한 게 없다. 창세기 변증 외에 인류에게 어떤 유익을 끼쳤는지 잘 모르겠다.

    김근주 / 원체 성경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인생의 복잡한 문제에 쉬운 대답을 제시해 왔다. 그러다 보니 성경절대주의나 문자주의가 우리 교회 전체에 퍼진다. 창조과학뿐 아니라 여성 안수나 권력을 대하는 태도에서 우리 교회가 줄기차게 선택해 온 것 역시 '문자 그대로'다. 그대로 믿으면 고민할 필요 없는 것이다.

    우종학 / 구약에 보면 하나님을 보고 싶어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든다. 하나님을 언어로 다 설명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다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명확하게 알고 싶어 한다. 창조과학은 그런 면에서 화끈하고 매력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창조과학은 문자 안으로 하나님 끌어내려서 인간의 생각 범위 안에 하나님을 가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참 하나님의 모습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전능하지만 정의하기 어려운 하나님, 잘 풀리지 않는 하나님, 과학으로 정의되지 않는 하나님을 그대로 믿으면 된다.


    참석자들은 창조과학에서 벗어나려면 교단 총회와 선교단체 등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고민하는 프로그램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했다. 목회자들도 창조과학에 대해 잘 모르면서 '좋은 것'이라는 소리만 듣고 강사를 불러다 강의를 시켜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다만 이러한 과정 속에서 창조과학자들에 대한 감정적인 비난은 자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우종학 교수가 주도해 만든 과신대는 '창조과학'의 문자주의에 반대하고, 과학과 이성에 기반해 성경을 합리적으로 보고, 둘 사이의 관계를 고민하는 그룹이다. 온라인상에서 활발한 논의를 이어가던 차에 마침 새물결플러스에서 번역한 <창조론자들>의 출간을 기념해 첫 번째 오프라인 포럼을 열었고, 20일 만에 300명이 참가를 신청했다.

    참석자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집중해 강의를 들었지만, 아직도 기존 가치관과 과학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듯했다. 한 참석자는 "구원받았는지, 구원은 무엇인지,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대답해 달라"는 질문을 네 명에게 던지기도 했다.

    우종학 교수는 포럼을 연례 행사로 발전시키려 구상하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6월부터는 스터디 모임을 만들어 더 활발하게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우 교수는 "과신대를 통해 과학과 신학을 다 인정하면서 서로 대화하는 흐름을 만들어 가려고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흐름이 약하고, 주로 창조과학식으로 과학을 부정하는데 머물러 있다. 과학자들 중에도 크리스천이 많은 만큼, 이들과 함께 대화하면서 성경과 자연을 읽어 가고 기독교를 변증하며 무신론의 다양한 공격에 대응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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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인 교회와 다단계] 박한길 회장 등 애터미 주주 4명이 1000억 원 ‘꿀꺽’



    애터미 박한길 회장.
    유병언 계열 구원파 출신으로
    지난 2014년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박 회장이 주식 배당금으로
    6년간 챙긴 돈만 250억 원이 넘는다.


    미국 한인 교회에도 널리 퍼진 다단계 업체 애터미가 지분 100%를 가진 4명의 최대 주주 뱃속만 채워주는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지난 2015년 감사보고서를 보면 지난해에만 배당금으로 450억 원이 지급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지급된 배당금만 1000억 원가량 된다.

    현재 애터미가 발행한 주식은 총 20만 주로 박한길 회장과 도희경 사장, 박지훈 씨, 박한결 씨가 각각 5만 주씩 동일하게 나누어 가졌다. 그동안 지급된 배당금은 2015년 450억 원, 2014년 260억 원, 2013년 235억 원, 2012년 14억 원, 2011년 61억 원, 2010년 15억 원 등이다. 주주 4명이서 6년 동안 주식 배당금으로 챙긴 돈만 1035억 원이 넘는다.

    배당금으로 지급된 금액은 회사 순이익의 절반에 이른다. 애터미가 6년간 남긴 당기순이익은 총 2215억 원이다. 순이익에서 배당금 비율이 46.7%에 달할 정도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지난 2014년 재정 현황만 살펴도 주주 4명에게 너무 많은 금액을 지급했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지난 2014년 배당금은 총 260억 원, 주주 주주 한 명이 65억 원을 배당금으로 받았다. 같은 기간 다단계 사업자들에게 지급하는 후원수당은 총 1780억 원이었고, 이를 17만 명에게 분배됐다. 한 사람에게 1년간 105만 원을 후원수당으로 주었다. 다단계 업체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상부 몇 사람만 돈을 준다는 점이 배당금 분배로도 드러난 것이다.

    한인 교회와 애터미

    개인 사업자들이 활발히 활동해 올리는 수익에 비해 애터미 박한길 회장 등 주주들이 챙기는 배당금이 너무 크다. 현재 애터미는 미국에서도 활발하게 성장해 가고 있다. 뉴욕과 LA 등 한인이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확고하게 자리 내렸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 애터미 제품을 하나라도 안 쓰고 있는 사람이 드물다고 할 정도로 사회와 교회에 확산했다. 제보에 따르면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있는 한 한인 교회는 전 교인이 애터미로 얽혔다고 한다.

    애터미는 그동안 신앙과 사업을 내세우며 사업을 키워왔다. 인터넷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박한길 회장 강연에서도 신앙은 자주 확인할 수 있다. 신앙을 두고 30분 이상 이야기하는 강연도 있다. 한인 교회에서도 박 회장의 말이 자주 인용되거나 비슷한 이념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교인들을 볼 수 있다. 심지어 목회자들도 다단계 사업을 통해 교인들과 사업 관계를 이루기도 한다.

    “작은 목회로는 수입이 늘 불안정하잖아. 이 사업이 잘 정착하면 평생소원인 선교에만 집중하면서 사역하려고 해.”

    동료 목사에게 애터미를 권한 박 아무개 목사의 말이다. 그는 실제 동료 목사를 애터미 사업장에 데려가 하부 조직에 넣으려고 했다. 말은 좋다. 생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격려부터 하부 조직만 잘 만들면 평생 앉아서 돈을 벌 수 있고, 그 돈으로 하고 싶은 사역에 집중할 수 있다는 일확천금을 이루자는 꼬드김까지 다양했다. 한 교회 공동 담임을 맡은 그는 교인들과도 교인들과도 매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 목회자들은 한편으로는 이해한다면서도 안타깝다고 이야기했다. 박 목사 측근이었던 한 목회자는 “예수께서 성전 정화를 하시면서 상인들을 쫓으셨는데, 목사가 교회를 장사의 소굴로 만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DART에 올라온 애터미 2015년 감사보고서 기록. 순이익 중 절반에 해당하는 450억 원을 주주 4명이 배당금으로 가져갔다. (DART 누리집 갈무리)

    유영 neovocalis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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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덕영 칼럼] 성경에 없는, ‘민족’ 관련 이상한 신화 세 가지


    성경은 역사적 계시이다. 그 어떤 책에서도 볼 수 없는, 인류의 민족 분산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제공한다. 성경은 이들 모든 인류를 한 혈통으로 만들었다(행 17:26). 그런데 이들 혈통에 대해 한국교회에는 이상한 세 가지 신화가 있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오랫동안 세대주의의 영향권에 있었음을 보여 주는 씁쓸한 증거이기도 하다. 그 세 가지 신화는 다음과 같다.

    첫째, 셈족이 선민이고 특별한 복을 누린다는 신화

    성경 어디에도 그런 신화는 없다. 오늘날 셈족 후손들인 엘람(야벳 후손 메대와 함께 오늘날 이란 형성), 앗수르(현 이라크 모술 땅 중심의 국가), 아르박삿(주로 현 이스라엘과 아랍 민족 형성), 룻(현 소아시아, 즉 터키의 일부 지역), 아람(현 시리아) 이들 어느 민족에게서도 선민이라든가 특별한 복을 누린다는 증거는 없다. 하나님은 혈통적 셈족이 아닌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주신다.

    둘째, 이스라엘이 특별한 복을 누리는 선민인가?

    이스라엘 민족이 말씀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롬 3:2). 그러나 성경은 혈통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라고 말한다(롬 3:28). 뼛속까지 철저한 유대인인 사도 바울은 할례나 무할례나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갈 6:15). 이스라엘이 아닌 그리스도를 믿는 백성이 복되다(갈 2:16).

    '온 이스라엘'이 구원받지 않느냐고 항변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롬 11:26). 이스라엘은 이미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때에 두 나라로 갈라져 버렸다가 주전 722년(앗수르에 북이스라엘 멸망)과 주전 586년(바벨론에 남유다 멸망)에 망해 버렸다. 우리 고조선이 망한 것보다도 근 500년 전이었다.

    이후 남유다 왕국이 성경 예언대로 70년 만에 귀향하기는 하였으나, 10지파가 중심이 된 북이스라엘은 사마리아인화되어 존재감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2500여 년이 지난 지금 '온 이스라엘'을 어떻게 구원한다는 말인가?


    과연 혈통상 온전한 이스라엘이 있단 말인가? 칼빈은 이들 '온 이스라엘'을 영적 이스라엘(유대인과 이방인 전부), 즉 구원의 대상 전부를 말한다고 보았다. '온 이스라엘'이란 모든 시대, <선택된 모든 유대인>(무차별적인 모든 유대인이 아님을 명심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즉 <온>이라는 말이 단 하나 예외 없는, 집단적이고 전체적이며 민족적이고 국가적인 이스라엘 전체의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대주의자들은 주님 재림 직전에 좀 더 의미심장한, 이스라엘의 충만한 수가 차게 되는 극적인 회심이 반드시 일어날 거라고 주장한다. 도대체 예수님 재림 때까지 지상에 온전한(조금도 다른 종족이 피가 섞이지 않은) 유대인이 있을까? 그들이 지금에서야 모두 돌아 온다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구원관과 맞을까? 성경은 이런 구원에 대해 전혀 말하고 있지 않다.

    세대주의는 그리하여(롬 11:26)를 '그리고 그 후'라고 해석하여 '그리고 그 후' 모든 이스라엘이 구원받는다고 하나, '헬라어 '후토스'는 우리 개역개정판처럼 '그리하여'(이리하여)로 보는 것이 옳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오랫동안 믿음과 회개의 기회를 주셨음에도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완강히 저항하고 십자가를 외면하고 심지어 조롱하다가 재림 직전 어느 순간에만 집단적으로 회심하여 돌아온다는 사상은, 성경적 해석과 상식에 전혀 맞지 않는 미숙한 주장일 뿐이다.


    따라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받는다는 것은 육체적·민족적 이스라엘 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이방인 전체가 아니듯, 온 이스라엘 역시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아닌 것이다. 주후 2000여 년 역사 전체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를 모르게 죽도록 외면하고 미래 어떤 시점의 이스라엘 전체만 구원받는다는 특권 사상은, 성경의 주된 사상이라고 전혀 볼 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과 1941-1945년 핍박받은 유대인들의 시련을 보여 주는 유대 인구 통계 자료가 있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280만 명->120만 명으로 급격한 유대 인구 축소가 있었고, 루마니아(80만->35만), 폴란드(325만->300만), 헝가리(40만->30만), 불가리아(6만->1만 1천), 독일(23만->18만),

    리투아니아(15만 5천->13만 5천), 라트비아(9만 5천->8만 5천), 이탈리아(4만 5천->7천 5백), 체코(31만 5천->27만) 등 유럽 유대 인구 증가 지역은 전무하였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커다란 시련이 있었음을 보여 주는 통계다. 신앙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이스라엘에게 별난 복은 없는 것이다.

    순수한 이스라엘 사람도 없을뿐더러 유대교 신앙도 달라졌다. 다양한 기독교파가 논쟁하듯, 유대교도 종교적 색깔에 따라 하레디(극정통 유대교인), 다티(종교적인), 마소르티(전통적), 힐로니(세속적) 등으로 분열하였다. 이들 종교적 색깔조차 서로 다른 유대인을 어떻게 모두 구원한다는 것인가. 그런 보편적인 성경적 진리는 없다.


    체코 프라하에서 프란츠 카프카의 팸플릿 광고를 찍으려다, 사진조차 찍지 못하게 막던 다혈질적이고 완고하고 신경질적이며 아주 인색한 정통 유대인 젊은이에게 크게 실망한 적이 있다. 필자 장녀에게 유대인 친구 안나가 있다. 안나는 서류상으로만 유대인일 뿐 유대교도 이스라엘도 신앙도 어떤 의미인지 모르고, 자신에게 유대인 피가 얼마나 섞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오직 먹고살기 위해(독일의 유대인 배려 정책 덕으로) 러시아에서 독일로 이주하여 살다가, 유대인들에게 유난히 관심이 많은 필자 딸에게서 유대인들을 위한 무료 유대청년 이스라엘 관광 연수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소개받고 공짜 이스라엘 여행을 신나게 즐겼다.

    안나가 더 유대인인지, 유대인 회당을 목사인 아빠보다도 훨씬 더 잘 알고 키부츠 유대 공동체를 최소 5군데 이상 체험한 우리 딸이 더 유대인에 가까운 것인지……. 특별한 이스라엘은 없다. '온 이스라엘이 모두 구원을 받으리라'는 구절은 문자적 이스라엘 전체가 아니라 온 이스라엘의 남은 자(믿는 자), 즉 이방인의 충만한 수(믿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와 같은 것이다.


    셋째 우리 민족이 특별하고 제2선민인가?


    특별한 '모두 구원받을 이스라엘'이 없듯이 제2선민이란 없다. 제1선민도 없는 데 우리 민족이 무슨 제2선민이란 말인가? 구약 시대에도 예수 시대에도 은혜 시대에도 여전히 완강한 이스라엘을 그렇게 선민으로 받들고 싶은가? 또 다른 의미의 중화 사상 같아 씁쓸하다. 제1, 제2선민은 없다. 이스라엘이나 이방 니느웨나 모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백성이 있을 뿐이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어 택함을 받은 백성이 복되다.

    조덕영 박사


    ================================================
    '예배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예배보다 중요한 것은 예배자의 삶
    신성남

    나는 예배와 설교를 생각할 때마다 예수님과 사도들의 삶을 자주 묵상한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과 매주 모여서 별도로 주일예배를 드렸다는 기록을 본 적이 없다.

    요즘 한국교회 '예배주의자'들의 뜨거운 주장처럼 예배가 그토록 엄중하게 우리 삶의 중심이 되어야 옳다면 할례와 세례까지 받으셨던 예수님은 왜 매주 정기적인 예배를 부지런히 하지 않으셨을까. 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능력의 주님께서 계속 큰 이적을 행하시며 더 많은 사람을 모으고 도처에 큰 건물을 세워서 더욱 열심히 예배를 드리지 않으셨을까.

    그 이유는 사실 단순하다. 예수님과 제자들에게는 삶이 예배고, 삶이 기도고, 삶이 선교고, 삶이 봉헌이고, 그리고 일상의 삶이 제사였다. 나사렛 목수 예수는 주일마다 제자들과 회당에 모여 공적 예배에 힘쓰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루하루를 세리와 창기와 병자와 가난한 민초와 세상 속에서 함께 사셨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배 중에만 임재하시는 것일까. 당연히 그건 아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예배의 유무나 교회당 안과 밖으로 구분하는 건 참으로 유치하기 짝이 없는 중세식 이원론적 발상이다. 도리어 하나님은 매 순간 우리 인생의 모든 영역 속에 임재하시기 때문이다.

    성도에게는 교회도 세상의 사역지이고, 세상도 교회의 사역지이다. 따라서 공적 예배가 매우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예배는 단지 성도들 신앙생활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란 점을 직시해야 한다.

    특히 성도들은 예배를 무속화하고 이벤트화하여 이를 목회 야망과 교회 성장의 불의한 도구로 악용하려는 일부 직업 종교인들을 극도로 경계해야 한다고 본다.

    흔히 교회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잘 드려야 복을 받는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우선 순서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이미 큰 복이니 마땅히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따라서 무조건적인 예배우선주의는 마치 "조상에게 제사를 잘 지내야 복을 받는다"는 미신적 신앙만큼이나 위험하고 단순한 기복 사상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진솔한 '삶'이지 예배로 표현되는 '종교의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배보다 중요한 것은 예배자의 삶이다. 다시 말해서 성도의 삶이 영적 예배의 중심이어야 옳은 것이지, 공적 예배가 반드시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삶으로 예배했다. 수고함으로 예배하고, 옥에 갇힘으로 예배하고, 매 맞음으로 예배하고, 자지 못함으로 예배하고, 굶주림으로 예배하고, 또한 헐벗음으로 예배했다(고후11:23-27).

    물론 나는 우리 모두 바울처럼 고난받고 죽을 고생을 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예수님이 직접 세우신 사도들조차 자신을 낮추며 '만물의 찌꺼기'처럼 살았으니, 적어도 '주의 종'이라는 소명을 받았으면 최소한의 분수와 양심이라도 지키며 살아 달라고 부탁을 하고픈 것이다.

    목사는 종의 직분이다. 그리고 종의 모습은 본래 그리스도의 제자들처럼 찌꺼기같이 되는 것이다. 종은 노예나 다름없는 신분이다. 주인이 시키면 싫어도 해야 한다. 주의 제자들 중에 편하고 풍족하게 살다가 죽은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는 이유이다. 그들은 복음을 위해 기꺼이 고난을 감수한 진정한 종이었다.

    그런데 요즘 어떤 종들은 정말 하고 싶은 짓 다 한다. 누릴 것 다 누린다. 무슨 핑계와 명분을 대서라도 기필코 잘 먹고 잘산다. 그리고 스스로 다 잘났다. 그들은 결코 교인을 섬기지 않는다. 오히려 교인들이 열심히 돈 바치고 몸 바쳐서 그들을 섬기고 있다. 그게 모두 삶을 속이고 예배를 잘 치장한 덕분이다.

    화려한 건물, 많은 청중, 유창한 설교, 우아한 기도, 그리고 아름다운 찬양이 저절로 신령한 예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때로는 가짜들이 진짜보다 더 능숙하다. 더 근엄하고 더 종교적이다. 더 뜨겁고 더 열심이다. 더 친절하고 더 인간적이다. 더 박식하고 더 유능하다. 더 잘 웃기고 더 잘 울린다. 하지만 성도들은 그런 겉모습에 속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예배를 분별해야 하는 슬픈 시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고전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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