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명교회, 작은교회로 파송위해 문닫는다 /작은교회 빚 갚아주기 운동 나서는 교회들 2016-03-10 23:46:45 read : 1568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1,000명 모이는 교회, 다음 주 문 닫는 사연
"교회 커진다고 무슨 의미 있나"…인천 ㅂ교회, 인근 작은 교회로 교인 파송
최승현 기자
▲ 인천 ㅂ교회는 돌아오는 주일인 3월 13일, 교회 문을 닫는다. 이 교회 박 아무개 담임목사는 "교회 큰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교인들 주변 작은 교회로 보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인천에 있는 한 교회가 다음 주 주일 교회 문을 닫겠다고 발표했다. 1,000여 명의 교인들은 3월 13일 이 교회에서 예배를 할 수 없다. 대신 인근의 작은 교회들로 가야 한다.
인천광역시 동구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ㅂ교회 얘기다. '2016 동행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10주마다 한 번씩, 1년에 다섯 번 교회 문을 닫기로 했다. 돌아오는 13일은 교회가 문을 닫는 첫 번째 주다.
이유는 간단하다. 교회에 교인이 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교회 박 아무개 담임목사는 교단 내에서 설교를 잘한다고 알려져 있다. 박 목사 설교를 들으러 교회를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교회는 계속 커져서 출석 교인 2,000명을 넘기기도 했다.
박 목사는 인위적으로 교회 규모 줄이기에 나섰다. 주변의 작은 교회, 형편이 어려운 교회로 교인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매주 출석 인원 중 600명은 다른 교회에 보내려고 해 왔다. 지금도 주일 아침이면 교회에 '다른 교회를 가려는 ㅂ교회 교인들'이 줄을 서 있다. 교인 수는 1,000명대로 줄었고, 지금은 매주 300여 명이 다른 교회를 출석한다. 하지만 그래도 교인 수는 줄지 않았다. 결국 박 목사는 아예 교회 문을 닫는 초강수를 뒀다.
<뉴스앤조이>는 ㅂ교회 교역자들에게 자세한 이유를 물어봤다. 이 교회 부교역자로 있다가 최근 개척한 김 아무개 목사는 "주위에 어렵게 사시는 목회자들이 많다. 세탁소를 하시는 목사님도 있고, 택시를 운전하는 분도 있다. 이들이 활력 있게 목회할 수 있도록 교인들을 계속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미자립 교회가 자립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주변 지역 10여 개 교회로 교인들을 보내고 있다. 십일조 등 헌금 생활도 아예 그 교회에서 하라고 말한다. 그렇게 작은 교회들에 정착한 이들이 적지 않다. 교단도 가리지 않는다. 감리회뿐 아니라 장로교 소속 교회들로도 교인을 보내고 있다. 김 목사는 "기복주의, 번영신학을 내거는 교회만 아니면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교회는 교회대로 박 목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박 목사 설교 시간을 줄였다. 1부와 2부 예배 설교만 하고, 3·4부는 부목사가 맡는다. 1년 전 설교들은 모두 볼 수 없도록 홈페이지에서 내렸다고 말했다. 아직 나이도 많이 남았지만 내후년 정년 은퇴할 계획까지 모두 세웠다.
박 아무개 담임목사는 "개척교회로 내보내려고 하는데 교인들이 안 가려고 한다. 그래서 교회 문을 닫아 버렸다. 남들은 자꾸 교회 크게 하자거나 건축하자고 하는데, 큰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교회는 가난해야 한다. 다 주고, 사역자들은 월급 제일 적게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한 달 사례비로 100만 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보내긴 하는데, 정착할 수 있을까
ㅂ교회가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당장 교회로서는 감당해야 할 부담이 늘어난다. 1년에 5주 헌금이 줄면 단순 계산만으로 예산 10%가 빠지는 셈이다. 교회 운영에 어려움이 생길 것을 걱정하고 있다.
박 목사의 설교 스타일을 놓고 교단 내에서 '신사도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박 목사 스타일에 익숙해진 ㅂ교회 교인들이 다른 교회에 잘 정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생긴다.
실제로 김 아무개 목사는 "ㅂ교회 교인들은 선의로 인근 작은 교회를 위해 전도에 나섰다가 '왜 이런 식으로 하냐'면서 되레 욕을 먹은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교회에 선뜻 마음을 두지 못하고 정착에 실패하고 되돌아온 사람들도 있다.
김 아무개 목사는 "이런 점을 극복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인근 교회 목사님들과 만나서 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교인들이 새로운 교회에서 갈등 없이 정착하고, 교회 간 신학적 차이에서 나오는 문제를 줄이려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교회 문을 닫는 13일에는 부교역자들도 일단 인근 교회에 출석한다. 박 목사도 돌아오는 주에 한 장애인 선교 단체에서 예배할 예정이다. 이날 교인들의 참여도를 보고 앞으로 미흡한 부분을 보완할 계획이다. 그는 교회가 잘한 것 하나 없고 칭찬받을 일을 한 것도 아니라며 "교회 이름을 내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동구 화수동 방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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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교회 빚 갚아주기 1+1운동 나서는 교회들
작은교회에 승합차 지원하는 등 자립의지 북 돋는 부평서지방회 선교사업
심자득
▲ 부평서지방 이인구 감리사가 시상을 하고 있다
부평에 속한 36개 감리교회의 모임인 부평서지방회가 지방내 작은교회의 자립화, 도약화를 지원하기 위한 선교사업의 일환으로 스타렉스(승합차) 지원 사업과 빚 갚아주기 운동을 펼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부평서지방은 우선 올해 지방내 작은 교회중에 차량구입이 절실한 5개 교회를 선정하여 해당 교회가 1천5백만원을 준비하면 차량구입에 필요한 나머지 금액 1천만씩 총 5천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 방침에 따라 조건을 갖춘 5개 교회중 1개교회에 승합차량 인도가 완료됐고 나머지 4개 교회는 출고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한다.
전액을 지원하지 않는 이유는 해당 교회의 자립의지와 자구노력을 이끌어 내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교회가 일정 금액을 준비하면 같은 금액을 지원하는 일종의 1+1 방식을 적용함으로써 동기유발과 책임감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냈다.
올 해 승합차 지원 대상교회는 오름교회, 충헌교회, 부활교회, 어울림교회, 사랑교회 등 5개교회 였다. 이중 사랑교회는 재정상황이 열악해 지방의 감리사(이인구 목사)가 지방내 교회의 협조를 얻어내어 교회준비금 1천5백만원을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협조요청 과정에서 한 교회도 거절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교회가 준비해야할 1천5백만원 이외의 차량구입액(약 5천만원)은 지방내의 부평교회(홍은파 목사)가 전액 지불했다. 부평교회는 부담금을 정직하게 내는 교회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부평서지방은 이후로도 매년 한 두 교회를 선정해 승합차 지원 사업을 펼쳐간다는 방침이라고 한다.
▲ 부평서지방회가 지원하여 구입한 승합차
부평서지방은 또 올해부터 교회 빚 갚아주기 운동도 적극적으로 전개해 가기로 했다. 빚 때문에 고통 당하는 교회를 선정하여 지방내의 모든 교회가 십시일반으로 기금을 모아 전달하는 방식이다.
다만 이 경우 역시 일방적으로 전액을 갚아주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빚을 갚기 위해 일정액을 모은 만큼 지방에서 같은 액수를 지원한다는 조건이다. 앞서 차량지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해당교회의 의지와 자구노력을 이끌어 내기 위함이다. 이미 한 교회가 5천만원을 목표로 기금을 모으고 있는 중이며 지방의 교회들 역시 이 액수만큼 기금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한다.
부평서지방은 또 크지 않은 교회지만 도약의 힘을 불어 넣어 주기 위한 ‘도약교회 자립화 지원사업’도 펼친다. 월세교회는 전세교회로 이전하게 하고, 성전건축중이거나 건축을 위한 대지를 구입할 시 지방회에서 5천만원을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이 사업에도 1+1규칙이 적용된 것을 알수 있다.
각 사업에는 수혜 교회 선정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한 내규가 있다. 이 내규는 지난달 27일 부평의 선린교회에서 개최된 부평서지방 제18회 지방회에서 공포되어 시행됐다.
한편 이렇듯 지방이 펼치는 자립화 사업(운동)에 지방의 평신도단체들도 동참하고 있다. 남선교회연합회(회장 이기봉 장로)는 재정적인 지원 뿐 아니라 남선교회원 20~30명으로 구성된 ‘희망 전도대’를 조직하여 특정 교회를 위한 전도활동을 1년 동안 펼치고 250만원 상당의 전도용품도 제공하기로 했다.
이 외에 원로장로회는 두개의 작은교회를 선정하여 오후 예배에 15명내외가 격주로 참석하는 방법으로 예배를 돕고, 청장년선교회에는 매월 1회 지역전도를 실시하는 동시에 연 500만원 내외의 선교비를 전달하는 등 지방의 목회자와 평신도 모두가 지방내 모든 교회의 자립화를 위해 협력하고 있다.
지방이 펼치는 이들 사업에 대해 부평서지방의 이인구 감리사는 “지방 내 모든 교회들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상생하고 화합하는 본을 보여준 사례들이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하고 “작은 교회들이 광야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게 아니라 내 옆에 이웃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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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바이블영화제’, 사순절 ‘고난’ 묵상… 기독 명화로의 초대
내달 16일까지 안산 명화극장서… 어르신·다문화 가족엔 할인혜택
안산시기독교연합회와 명화극장은 8일부터 다음달 16일까지 경기도 안산 단원구 중앙대로 명화극장에서 ‘고난’에 초점을 둔 ‘제5회 바이블영화제’를 연다.
사순절을 맞아 고난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영화 ‘프리덤’ ‘에스더와 왕’ ‘낮은 데로 임하소서’ 등 영화 23편을 상영한다. 프리덤은 ‘어메이징 그레이스’ 작사자인 존 뉴튼 사제의 실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에스더와 왕’은 페르시아 제국시대의 유대인 학살과 관련된 하만의 음모와 ‘지혜의 여인’ 에스더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낮은 데로 임하소서’는 맹인 안요한 목사의 생애를 그린 영화다.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존경받은 신앙인의 인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도 선보인다. 일제시대 신사참배 반대뿐만 아니라 민족계몽운동에 앞장섰던 손양원과 주기철 목사, 문준경 전도사를 다큐멘터리 영화 ‘그사람 그 사랑 그 세상’ ‘아들의 고백’ ‘남도의 백합화’에서 각각 만날 수 있다.
기독교 고전 영화 ‘벤허’ ‘십계’ ‘쿼바디스’도 볼 수 있다. ‘미션’ ‘장미의 이름’ ‘브레이브 하트’ ‘불의 전차’ ‘왕중왕’ 등과 같은 명작도 준비돼 있다.
안산 명화극장은 경기도 유일의 실버 영화관이다. 55세 이상 어르신들에게는 2000원, 다문화 가족에게는 3000원의 관람료를 받는다. 50인 이상의 단체 관람 시에는 원하는 시간대에 영화를 볼 수 있다. 영화제 관계자는 “안산 시민과 기독교인들에게 치유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031-480-3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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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동 주민 10명 중 7∼8명 “봉은사역보다 코엑스역 좋다”
강남구, 지하철 9호선 역명 선호도 조사 결과… 15일 區 지명위원회서 심의 “민의 반영해야”
서울지하철 9호선 929정거장(현 봉은사역) 역명에 대한 주민 선호도 조사 결과 코엑스역이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여론조사 왜곡과 정교 유착 논란 등을 불러왔던 봉은사역명의 개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 강남구청(구청장 신연희)은 8일 대회의실에서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명 개정 관련 주민 설문조사’에 보내온 주민들의 응답지를 개표했다. 현장을 참관한 노성학 코엑스역명추진위원회 부위원장에 따르면 791명의 삼성동 주민이 참여한 설문조사에서 ‘코엑스역’이 460표(58.1%)를 얻었다.
이어 ‘코엑스(봉은사)역’이 145표(18.3%)로 2위를 차지했다. ‘코엑스역’과 ‘코엑스(봉은사)역’을 선택한 표를 합하면 605표로 76.4%에 이른다. 반면 현행 ‘봉은사역’은 105표(13.3%)에 그쳤고 ‘봉은사(코엑스)역’도 63표(8.0%)에 불과했다. 18표는 무효 처리됐다.
강남구청은 봉은사역명의 문제점이 집중 제기되자 서울시 역명 제·개정 절차 및 기준에 근거해 지난달 18일부터 지난 3일까지 주민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역 반경 500m 이내에 있는 2953가구에 참여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강남구청 교통정책과 관계자는 “(역명을 개정해 달라는) 장기 민원의 해결을 위해 절차를 밟아 이번 조사를 진행한 것”이라며 “강남구지명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해 그 결과를 서울시지명위원회에 제출하는 절차만 남았다”고 밝혔다. 강남구청은 오는 15일 오후 5시 구지명위원회를 개최한다.
김상호 코엑스역명추진위원장은 “이번 선호도 조사엔 지역주민의 민의가 강하게 반영돼 있다”며 “서울시는 주민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 봉은사역명을 코엑스역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코엑스는 국내외 중요 회의가 연간 50차례 이상 개최되는 국제적 명소”라며 “이곳 방문객은 연간 외국인 91만명과 내국인 5000만명에 달하지만 봉은사는 연간 25만명에 불과하다. 코엑스는 강남구를 넘어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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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욱 목사 "삼일교회 사임은 미숙한 결정"
교단 신문에 사과문 발표…수도권 개척 금지'·'성 중독 치료비' 언급 없어
이은혜 기자
▲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지 <기독신문>은 전병욱 목사의 사과문을 게재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전병욱 목사(홍대새교회)가 사과문을 발표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지 <기독신문>은 3월 1일 전병욱 목사의 사과문을 실었다. 이는 평양노회 재판국의 판결에 따른 것이다.
전 목사는 자신에게 제기된 다수의 성추행 혐의 중, 평양노회 재판국이 인정한 단 한 건만 언급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한 자매와 커피를 마시던 중 부적절하게 농담을 주고 받게 되었고 이후의 상황에서도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전 목사는 담임목사직을 사임하면서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으나, 이는 단순하고 미숙한 결정이었다고 했다. 특히 자신이 삼일교회를 떠난 뒤 교회와 교인들까지 비웃음거리가 되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지난 2월 2일 평양노회 재판국은 전병욱 목사에게 공직 정지 2년, 강도권 정지 2개월에 처했다. 전 목사는 사과문에서 이 판결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앞으로는 오직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념하겠다고 했다.
전병욱 목사는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피해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잘못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도 없었다. 그저 "하나님과 교회 앞에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다"고만 했다.
다음은 사과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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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문
한국교회와 성도님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1993년부터 30세의 나이로 삼일교회의 담임목사 직분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부족하기만 한 종을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지만 오직 은혜로 과분한 직분 감당하던 중 2009년에, 저는 하나님과 교회 앞에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한 자매와 커피를 마시던 중 부적절하게 농담을 주고받게 되었고 이후의 상황에서도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입니다.
받은 은혜가 컸던 만큼 그 여파는 컸습니다. 저는 사임함으로써 모든 일을 마무리하려 했으나 결과적으로 그것은 단순하고 미숙한 결정이었습니다. 사임 이후 일은 오히려 커져만 갔고, 덧붙여진 말은 말을 불러 수년간 교계를 소란케 하고 많은 이들을 힘들게 하였습니다. 특히 영혼 구원의 열정만을 가지고 헌신한 삼일교회와 성도들이 감당하였던 귀한 사역들까지도 폄하되고 비웃음거리가 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한때 교회를 섬겼던 자로서 너무도 참담하고 괴로운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한국교회의 모든 성도 여러분.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성도로서, 은혜와 사랑에 빚진 자로서 하나님 앞에서, 교회와 모든 성도들 앞에서 잘못을 범하였습니다. 최초 이 모든 일에 발단을 제공한 것도 저의 잘못이며, 이후 대응 또한 지혜롭지 못했습니다. 그저 침묵하며 인내하는 것만이 능사인 줄로만 생각하였고, 저의 잘못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송구스러워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것이 일을 키웠습니다.
삼일교회가 한층 더 뜨겁고 강하게 사명을 감당할 순간에 저의 문제로 중단케 되어 교회와 성도에게 죄송합니다. 많은 성도들의 마음을 어렵게 하고 한국교회 전반에 누를 끼친 것까지 이 모두가 안타깝기 그지 없는 저의 잘못들입니다. 이 모든 일들에 대해서, 재삼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이번 노회 재판의 판결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앞으로는 매사 더욱 신중하고 낮은 자세로 오직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념하겠습니다.
2016년 3월 1일
목사 전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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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비하 아니라 비교다"
[인터뷰] 논란의 중심 소강석 목사…"반대파 끌어 달라 권면하려 대통령 칭찬"
이용필 기자
▲ 국가조찬기도회 설교 내용으로 논란을 빚은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가 적극 해명에 나섰다. 여성 비하 발언 논란에 대해 대통령을 권면하기 위해 비교한 것이라 해명했다. 정치 문제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입장을 밝혔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논란의 중심에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가 떠올랐다. 3월 3일 국가조찬기도회에서 한 설교가 문제였다. 소 목사는 여당도 야당도 아닌 '예수당'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테러방지법 제정, 개성공단 중단,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찬성 입장을 밝혔다. '정교 유착'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동시에 '여성 비하' 발언이 문제가 됐다. 소 목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카리스마를 언급하며 "세계 유명 여성 정치인은 튼튼한 몸매와 육중한 거구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여러 매체에서 이 대목을 문제 삼았다.
소강석 목사는 이 모든 비판에 대해 '확대해석'일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일부 기자들이 설교 전문도 읽지 않고, 단편적인 부분만 발췌 보도하며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 반대파도 끌어안아 달라는 말을 하기 위해 박 대통령을 칭찬했다는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세계 유명 여성 정치인과 박 대통령을 비교한 것이지, 여성을 비하할 의도는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정책에 대해서는 입장 변화가 없었다. 테러방지법에 독소 조항이 있지만, 국민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중단은 정부의 어쩔 수 없는 결단이라고 했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소 목사는 자신의 설교가 이렇게 논란이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20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 자신을 비판하는 것은 좋지만, 악감정을 가지고 비아냥거리는 것은 지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 목사와의 인터뷰는 3월 9일 오후, 새에덴교회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소강석 목사와 나눈 일문일답.
- 국가조찬기도회 설교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무엇보다 대통령을 너무 띄워 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많다.
이 대목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모든 국민의 어버이요, 목자의 심정으로 대통령님과 뜻을 달리하는 분들까지도 달래고 어르고 품어 주실 때 온 국민이 하나 되고 대한민국이 다시 비상하며, 대통령께서는 역사에 성공하는 국가 지도자로 남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이 부분은 애드리브다. 쓸까 말까 많이 고민했다. 설교문에는 괄호를 쳐 놓았다. 대통령을 칭찬하는 게 주목적이 아니라, '권면'하는 게 의도였다.
청와대 비서관들조차 감히 이런 고언을 못 한다고 들었다. 대통령이 원칙에 확실하고 신념이 분명하지만, 국민과 불통하고 반대편을 끌어안는 게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내가 이야기를 한번 하고 싶었다. 이런 권면을 듣지 않으면 대통령은 끊임없이 불행하고 스트레스 받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민적·사회적 악순환이 이어지게 된다. 선순환을 위한 목적으로 애드리브를 썼다. 국가조찬기도회 역사상 대통령께 권면한 사람은 아마 거의 없었을 것이다.
- 여러 매체에서 여성 비하 발언을 문제 삼기도 했다.
설교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감히 제가 보기에도 대통령께서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지신 분입니다. 더구나 세계 몇몇 유명 여성 정치인들과는 완전히 차별화된 분이십니다. 그분들도 다 나름 성공한 정치인지만, 그러나 대부분 튼튼한 몸매와 육중한 거구를 자랑하고 있지 않습니까."
세계 유명 여성 정치인을 폄하한 것이라면 내가 당연히 사과해야 한다. 그런데 이건 비하가 아니라 비교다. 이름을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뚱뚱하다는 말을 쓴 것도 아니다. 격조 있는 언어를 쓴 것이다. 대통령 몸매를 말하고자 한 게 아니고, 여성으로서의 미와 덕, 모성애적인 따뜻한 미소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말한 이유를 알아야 한다. 대통령을 권면하기 위한 일종의 화술이자, 작전이었다. 바로 뒤에 반대파를 끌어안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것이다. 반대파가 있으면 때로는 인내하고, 목자의 마음으로 다가가서 달래고 어르라는 의미로 한 것이다.
- 이 발언을 했을 때 박근혜 대통령도 크게 웃었다.
대통령이 웃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 소 목사가 나이는 젊지만,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구나.' 이걸 깨달았다면 나는 욕먹어도 괜찮다. 사회적 선순환이 이뤄지니까.
- 대통령 권면이 설교의 핵심이었나?
설교의 큰 주제는 통일이다. 한국교회가 지난날 일제강점기와 근현대사를 이루는 데 있어서 부흥의 진원지가 되고, 국가 발전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지금은 국가와 교회가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교회도 거듭나야 한다. 국민의 아픔을 보듬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 종교로 거듭나서 통일에 기여하자는 게 골자다.
- 테러방지법과 개성공단 중단,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찬성했다. 정부 정책을 노골적으로 지지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그걸 정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정치적이다. 혹자는 목사는 선지자가 돼야 하고, 권세자를 공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구약시대는 신정주의 국가였다. 하나님과 언약 관계가 비틀어지면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 가차 없이 공격했다. 그러나 이사야서를 보면 얼마나 소망이 많은가. 선지자가 때로는 제사장적인 가슴을 가지고 어루만지고 또 격려했다. 이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테러방지법에 약간의 독소 조항이 있다. 그걸 누가 모르는가. 그래서 필리버스터로 이어진 것 아닌가. 필리버스터, 출발은 좋았다. 그런데 선지자의 눈으로 봤을 때, 정치인들이 자기들 욕망을 구현하는 수단으로 이용했다. 국민 혈세를 받는 분들이 '깡'으로 하면 안 됐다. 어차피 통과됐지 않는가. 그렇게 '깡' 부리는 것보다 여야가 서로 합의했으면 좋았을 뻔 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북한이건, 우리건 국민 안위가 중요하다. 그래서 야당도 근본적으로는 반대하지 않았다. 독소 조항이 문제였다. 나 같은 사람도 감찰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예민했다. 야당 의원, 국정원 출신자들과 다 통화해 봤다. 만약 국정원 직원이 사적으로 감찰하면 난리가 나니 그럴 리 없다 하더라. 이런 이야기를 듣고 빨리 합의했으면 좋았겠다고 말한 것이다. 테러방지법이 통과되지 않는 상태에서 '이거 무조건 통과해라'고 했다면 정치적 발언이다.
▲ 소강석 목사는 "최연소 목회자로 국가조찬기도회 설교자로 나섰다. 기회가 한 번 더 주어지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정부의 개성공단 중단 조치에 찬성하는 발언도 했는데.
개성공단 문 닫은 것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 가슴이 아프다. 평양을 7번 넘게 다녀왔다. 누구보다 민족주의자고, 평화통일을 원하는 사람이다. 개성공단은 마지막 보루로 남겨야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이미 저질러 놓았다. 내가 그 자리에서 잘못됐다고 해도, 고쳐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마음이 아프지만, 큰 틀에서 본다면 북한의 변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어쩔 수 없는 결단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크게 정치적인 발언일까?
- 개성공단을 중단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런 생각을 가져 본 적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해야 될 때가 있고, 안 해야 할 때가 있는데, 북한 주민에게 준 임금이 공공연하게 통치 자금으로 흘러가지 않았는가. 개성공단이 있어야 된다고 강력하게 말하기는 개인적으로 좀 어려운 부분이 있다.
- 통일부장관은 개성공단 중단 이유 중 하나로, 북측 근로자 임금 70%가 노동당으로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핵무기 개발 비용으로 쓰인다고 했는데, 막상 근거 자료는 내놓지 못했다.
나는 정치인이 아니라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 이런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마당에 개성공단을 그대로 둬야 한다고 말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만일 이런 부분이 없었다면, (개성공단은) 마지막 보루이자 북한과 소통할 수 있는 과정이고, 북한 주민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중단 결정은)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고 본다.
- 이명박 대통령 시절,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까지 있었지만 개성공단은 계속 운영됐다.
어쩔 수 없는 거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MB 대통령에게 남북대화는 계속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예를 들어 DJ나 노무현 쪽 사람이 북과 대화를 하자고 하면 국민에게 의심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전혀 그런 분이 아니니, 이번 기회에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잘 활용하며 북과 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개성공단 문제는 박 대통령 혼자만 노력해서 안 된다고 본다.
-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찬성 취지 발언도 했는데.
역사 문제는 참 예민하다. 두 가지가 이슈다. 대한민국의 건국 시기를 놓고 논쟁이다. 미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도 뒤따르고. 한국 사회는 너무 이분법적 사고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 교회는 매년 중·고등학생 장학생을 선발해,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가 있는 상해임시정부 등을 견학한다. 나는 독립운동 투사들과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한다. 대한민국 건국은 분명 임시정부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법통의 계승은 임시정부가 시작이다.
그러나 임시정부는 국가 요소를 두루 갖추지 못했다. 영토와 주권이 없었다. 임시정부의 정신은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 이승만 박사가 비로소 국가의 요소와 형태를 갖춘 대한민국 정식 정부를 세웠다. 그것도 국민 합의를 통해서. 대한민국의 건국과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본다.
근현대사에서 기독교가 빠져 있는 부분은 문제가 있다. 오늘 한국교회는 비판받아야 될지 모르지만, 그때 기독교 역할은 역사에 기술돼야 한다. 우리는 전통문화와 민족문화만 강조한다. 근대 문화도 알아줘야 한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다.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로 바꾼 것은 성급했다고 본다. 그렇다고 검인정이 잘했는가. 조금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역사는 팩트와 해석이다. 자기 주관과 재해석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지금 검인정은 미 제국주의 겨냥, 기독교에 대한 폄하 아닌가. (기독교에) 관심이 없지 않은가. 검인정 기준 원칙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는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칭찬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개인적인 관계 때문이지 않겠는가. 가령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재를 했다는 부분은 다 아는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나라만큼 빠르게 근대화를 이룬 나라가 없다. 내가 이번에 언급한 이유는 한국교회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근대화, 산업화를 이루는 데 박정희 대통령 역할도 크지만, 한국교회 역할도 못지 않았다.
▲ 소 목사가 이번 국가조찬기도회 설교문을 가리키고 있다. 일부 언론들이 전문도 보지 않은 채 기사를 썼다고 비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최근 한 인터뷰에서 "대통령도 '힐링'과 '격려'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대통령도 나약한 인간인데, 힐링과 격려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분이 힐링과 격려를 받고, '내가 더 국민을 더 사랑해야지', '내가 대한민국의 대통합을 이뤄야지', '어떻게든 남북 관계를 개선시켜야지'라고 생각하는 데 단 1~2%라도 기여를 한다면, (설교는) 국민에 대한 서비스다.
- 힐링과 격려는 대통령보다 오히려 우리 사회의 어려운 이웃에게 더 필요하지 않겠는가.
당연하다.
- 그런 점에서 국가조찬기도회 설교에서 어려운 이웃 이야기가 언급됐으면 어땠을까. 세월호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이랄지.
구체성은 좀 떨어지지만 언급했다. 이런 내용이다.
"우리 한국교회는 더 큰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조국의 경제 발전의 영적 진원이 됐지만, 우리 자신도 모르게 성장주의와 물량주의에 편승했습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번영을 위해 먼저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고, 교회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국민의 아픔에 동참하며, 민족의 상처를 보듬고, 시대의 사상과 정신을 이끌어 가는 교회로 부활해야 합니다."
- "북한의 핵 도발과 전 세계적 테러 위협, 경제 위기 등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당연하다. 그러니까 북한도 긴장하고 있지 않은가. 예레미야서를 보면 긴장이 있는데 거짓 선지자들은 없다 없다 했지 않는가. 긴장이 있는 게 사실이다. 긴장 관계를 평화 모드로 바꾸어야 한다.
- 경제 위기는 늘 있어 왔지 않는가.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니 한반도가 바로 영향을 받지 않는가. 일본도 영향을 받지만, 일본 경제는 우리 경제의 세 배나 된다. 경제학자들이 올해 말에 제2의 IMF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 2016>에서 올해 경제난에 시달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1월 미국에 가서 상원의원들을 만났는데, 한국 경제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 목사님 발언은 최근 정부 담화문과 유사해 보인다. 야당과 시민단체에서는 국민의 심리를 위축시킨다고 지적하는데.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다.
- 박근혜 대통령이 모든 일을 잘한 것도 아닌데, 쓴소리도 했어야 되는 것 아닌가.
쓴소리 한다고 한 것이다.
- 그 점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았다.
부각이 안 됐다? 그러면 설교자가 설교를 잘못한 것이다. 국가조찬기도회는 기본적으로 쓴소리하는 자리는 아니다. 설교 서두에 "비판하는 자리는 아니다"라고 언급하려 했는데 못 했다. 비판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오늘 우리는 기도와 격려를 하자고 했다. 대신 대통령에게 주문했다. 기독교 근대 문화도 (교과서에) 실어 달라, 반대파도 좀 끌어 달라고.
▲ 소 목사는 자신을 비판하는 것은 좋지만, 비아냥거리지는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국가조찬기도회에 예언자의 모습이 사라졌다는 지적도 있다.
성경에서 비전을 예언하고, 미래를 말하는 게 예언자다. 나는 기본적으로 예언자적 역할을 했다고 본다. 공격(비판)하는 게 선지자라고 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을 속이거나, 국민을 유린하거나 무시하면, 당연히 쓴소리를 해야 한다. 그러나 관점과 시각이 다를 수 있다. 공연히 쓴소리를 잘못해서 오히려 대통령과 국민을 이간질하고, 국민 대통합에 고춧가루를 뿌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쓴소리를) 하더라도 대통령이 알아들을 수 있게, 기분 좋게 깨달아서 통치를 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선순환을 만들어 내는 게 오늘 이 시대의 설교자다.
- 박근혜 대통령도 비판받을 부분이 많지 않는가.
인터넷에서야 그렇지. 나도 신기한 게 지지율이 끝없이 40% 후반에 머물러 있다. 이런 현실도 감안해서, 목사들은 대통합에 앞장서야 한다. 국가조찬기도회는 기독교만의 잔치가 아니다.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대부분 선배 목사들은 성경을 강해했다. 그러나 나는 성경을 인프라로 삼고, 성경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접근했다. 통치자들이 어떻게 국민을 섬기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하는지 그려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경만 강의해서는 안 되고, 성경 내용을 토대로 비전도 제시해야 한다.
- 국가조찬기도회 설교에 대한 반응을 보고 느낀 점이 있다면.
몸매가 취지가 아니었는데, 한 번 더 하면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설교를 하고 나서 내가 이렇게 비판받아야 할 사람인가 싶었다. 많이 놀랐다. 앞으로 이런 자리가 또 주어진다면 더 많은 자문을 받고 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비판이 선진 문화를 이루는 것은 사실이지만, 비판에도 격조와 예의가 있어야 한다. 나를 비판하는 것은 좋지만 악감정을 가지고 비아냥거리는 것은 지양했으면 좋겠다.
결론은 잘해 보자고 그런 것 아닌가. 맘에 안 드니 맘에 들게 해 달라는 것 아닌가. 그분들의 비판을 새기겠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악감정은 갖지 말자. 진보건 보수건 어떻든 간에 같은 대한민국 국민 아닌가. 격조 있고 품격 있게, 선진 시민사회, 아름다운 국가 공동체를 이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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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이 한국 식당서 ‘이 구절’ 봤다면 뒷목 잡고 쓰러졌을 것”
교수·교인·목사 입장에서 본 ‘성경 오용’과 ‘가나안 성도’
▲토크쇼가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이정후 집사, 성기문 교수, 우한별 목사. ⓒ김은애 기자
‘평신도와 가나안 성도를 위한 구약 해석 세미나'가 3월 3일부터 17일까지 매주 목요일 세 차례 서울 용산구 청파동 삼일교회에서 열리고 있다. 현대목회와사역연구소(소장 우한별 목사)가 주관하는 이번 세미나는 3주 동안 각각 토크쇼(3일), 대담(10일), 강의(17일) 형식으로 진행된다.
3일 '한국교회 구약 적용, 왜 문제인가? 사례와 해석의 원리'를 주제로 열린 토크쇼에는 대신총회신학원의 성기문 교수, 가나안 성도로 지낸 경험이 있는 이정후 집사, 우한별 목사 3인이 참여했다. 이들은 각각 각각 교수, 교인, 목사 입장에서 한국교회 구약 해석의 오류와 문제점, 해결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우한별 목사는 시작에 앞서 "한국교회에서는 성경 오독으로 인해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는데, 신앙과 삶에 대한 해석이 되지 않아 힘들어하고, 말씀을 이용해 잘못된 선택을 정당화하기도 한다"며 "이런 부분들이 한국교회를 멍들게 하고 가나안 성도를 발생시킨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문제점의 이면에는 구약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문자주의에 사로잡힌 잘못이 있다"며 "때문에 이번 세미나를 통해 성도에게 어떤 관점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봐야 하는지를 제시하려 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성기문 교수는 먼저 한국교회가 성경을 오용하게 된 원인으로 '목회자들의 성경 해석 권한 독점'을 꼽았다. 그는 "목회자들이 성경 해석의 권한을 독점하면서 성도의 의문과 질문을 금지시켰다"며 "다양한 관점이나 사유는 위험하다고 판단해, 가르침이 획일화·단편화됐다"고 했다.
이정후 집사는 "성경을 읽거나 말씀을 묵상하다 보면 궁금증이 생기는데, 목사님은 질문하는 것을 싫어하시는 것 같다"며 "성도 간에 성경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나눌 기회도 적었다"고 했다.
또 "성경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면 혼자서 신앙서적이나 주해서를 찾아볼 때도 있는데, (목사님은) 이것도 안 좋아하시더라"며 "혼자서 성경공부를 하는 성도에 대해, 교회에서는 목사님과 등을 지거나 각을 세우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교인들이 이단으로 몰려서 교회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가나안 교인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우 목사는 "가나안 성도 사역을 하고 있는데, 이단들이 가나안 성도를 포섭하는 것을 많이 봤다"며 "또 교회에서 평신도를 대상으로 성경을 가르치지 않다 보니, 이단들이 잘 활약할 수 있는 여지와 터전을 마련해 주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한 예로, 구원에 대한 이해가 자기중심화되다 보니 구원파가 활약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며 "교회 앞에 '신천지 출입금지'를 붙여 놓고 신천지의 위험성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반 성도를 대상으로 성경공부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성 교수는 "어릴 때 열심히 교회를 다니던 성도가 관계성이 틀어지거나 성경공부의 부재 등으로 교회를 이탈하게 되면, 교회를 대적하는 성향을 갖게 되는 것을 많이 봤다"며 "교회가 신앙적으로 포용력을 가지고 가나안 성도를 보듬어 주고, 성경에 대한 바른 관점을 가르치는 것에 관심을 많이 가지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성 교수는 성경 오용의 또 다른 원인으로 '실용주의'를 꼽았다. 그는 "목회자들이 은혜를 끼쳐야 한다는 과도한 목적지향적 설교를 하다 보니, 과정이나 동기가 상실되고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며 "과도한 비유 해석과 본문 이탈 등의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고 했다.
또 "설교의 예화가 아름답고 감동적인데, 진실 규명(?)이 안 된 예화로 설교하기도 한다"며 "물론 예화는 성경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부차적인 요소지만, 은혜를 끼치려면 뭐든 된다는 식은 잘못"이라고 했다.
이 집사는 "신도 입장에서 설교를 듣다 보면 목적이 뻔히 보일 때가 많다"며 "설교의 끝은 '헌신해라', '헌금 많이 해라' 등이었고, 심하게는 '헌금 안 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식의 설교를 들은 적도 있다"고 했다.
또 "교회에 가면 안식을 얻고 하나님과 인격적 교제를 하고 싶은데 사실상 어렵다"며 "교회에 일하러 가는 것 같을 때도 있고, 좋은 성도를 가늠하는 기준이 '예배에 몇 번 참석하고 헌금을 얼마나 하는지' 등이 되는 것 같아 씁쓸할 때도 있다"고 했다.
구체적인 성경 오용 사례에 대해 성 교수는
▲창대하리라(욥 8:7)
▲사르밧 과부(왕상 17:8-16)
▲일천번제(왕상 3:1-15, 대하 1:3-12)
▲벧세메스로 가는 소(삼상 6:12)
▲죄의 용서(레위기 6:1-7)
▲정복자 하나님(여호수아서, 사사기) 등을 꼽았다.
그는 욥기서의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말씀에 대해 "본문 전체 문맥을 보면 복에 대한 말씀이라기보다는, 의인인 욥이 고난을 당하는 모습을 보며 친구들이 '너의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 것'이라는 식으로 비꼬는 말씀"이라며 "이 말씀을 식당이나 회사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욥이 살아서 한국의 식당에서 이 구절을 봤다면 뒷목 잡고 쓰러졌을 것"이라고 했다.
'일천번제'에 대해서는 "소원 성취의 수단 혹은 헌신의 척도로 설교한다"고, '벧세메스로 가는 소'에 대해서는 "소와 같이 최선을 다해 헌신하고 마지막에 죽으라는(?) 식으로 설교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또 "구약의 하나님에 대해 잔인한 정복자로 오해하기도 하고, 물리적 전쟁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여 절에 가서 불상을 실제로 파괴하는 등 문제를 일으킨다"며 "이는 영적인 전쟁에 대한 문자적 해석이 빚은 오용 사례"라고 했다.
'헌금과 십일조'(말라기 3장)에 대해서는 "목회자들이 십일조나 헌금을 의무화하고 헌신의 척도로 삼기도 하고,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도둑질하는 자라고 설교하기도 한다"며 "십일조의 의무 여부, 혹은 사용처에 대해 충분히 논의해서 결정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높은뜻정의교회의 '정의헌금' 같은 식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의헌금'은 매월 셋째 주일 교인들이 교회에 헌금하지 않고 직접 선교와 구제에 사용하도록 한다. 그는 "헌금에 대한 강박관념을 갖지 않아 보는 것도 헌금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는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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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 공직자 집중 공격하는 불교단체, 종교전쟁 원하나”
교회언론회, 종자연의 ‘낙선운동’ 비판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이하 종자연) 최근 4.13총선 예비후보자 중 기독교 관련 인사들(새누리당 7명/ 더민주당 3명)을 '낙선 대상'으로 분류한 데 대해, 한국교회언론회(대표 유만석 목사)가 2일 논평을 통해 "종자연은 비뚤어진 잣대로 공직자의 종교자유를 유린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종자연이 밝힌 분류 이유는 '정교분리·종교중립 위반'이다. 종자연은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국가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여야 하는 공직자로서, 특정 종교를 위해 발언하고 공직을 수행하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고 본연의 의무를 저버린 행위"라며 새누리당과 더민주당에 낙천 대상 후보자의 공천 심사에 신중을 기해 줄 것을 요구하는 공문도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언론회는 "공직자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엄연히 종교의 자유를 누릴 권한이 있다. 법률용어사전에서 종교의 자유를 '종교의 선택·변경의 자유, 무종교의 자유, 종교적 사상 발표의 자유, 예배 집회의 자유, 종교 결사의 자유를 포함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종교의 자유에는 그 신앙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신앙 실행의 자유' 도 포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회는 "공무 수행이 아닌 개인 신앙활동까지 공직자라고 해서 종교 편향의 올가미를 씌우려 한다면, 이는 헌법의 자유와 권리를 유린하는 종자연의 안하무인(眼下無人)의 폭거"라며 "언제부터, 그 누가 불교단체 종자연에게 대한민국의 공직자들에 대한 종교편향 심판권을 주었는가?"라고 반문했다.
언론회는 "더구나 종교편향을 들먹이면서 기독교 공직자들에게 집중 공격을 가하는 종자연은 불교단체로서 종교전쟁이라도 불사하겠다는 건가?"라며 "다종교사회에서 상대 종교인들의 신행(信行)마저 꺾어 보려는 종자연은 종교 간 분쟁과 국론분열을 조장하는 나쁜 단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언론회는 종자연을 향해 "이제라도 공직자들의 종교자유를 유린하려는 폭거를 중단하고, 공개한 예비후보자 열 분들과 새누리당과 더민주당에도 공개 사과를 하기 바란다"며 "다종교 사회에서 굽어진 잣대를 들이대며 함부로 종교편향의 칼날을 휘두르는 건, 종교분쟁을 유발하고, 국가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반역적 행위"라고 했다. 다음은 언론회 논평 전문.
불교 종자연, 종교편향 핑계로 기독교 관련 4.13총선 예비후보자 낙선운동
- 종자연은 종교편향의 비뚤어진 잣대로 공직자의 종교자유를 유린하지 말라
- 종자연은 평화로운 한국 다종교사회에서 종교 간 갈등과 분쟁을 조장하지 말라
- 종자연은 낙천대상자 열 분들과 각 정당들에게 사과하고, 마음을 넓혀 종교 간 화 목과 상생의 길로 나서라
불교단체인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이하 종자연)은 지난달 26일 4.13총선 예비후보자 중, 기독교관련 예비후보자 10명(새누리당 7명/ 더민주당 3명)을 낙선대상 후보자로 지목하고, 새누리당과 더민주당에 낙천대상 후보자의 공천심사에 신중을 기해줄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종자연이 밝힌 낙선 이유는 '정교분리, 종교중립 위반'이라는 그럴듯한 궤변이다. 종자연은 법적 근거로 <헌법 제 20조 1항>의 '종교의 자유'와 <헌법 제20조 2항>의 '국교 불인정과 종·정 분리', <국가공무원법 제59조의2 1항>의 "공무원 직무수행의 종교차별 금지>와 <동법 제59조의 2항>의 '공무원의 소속 상관 종교차별 행위에 대한 불복종 권리' 를 들고 있는 모양이다.
또 종자연은 공천배제 요청 이유를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국가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여야 하는 공직자로서 특정종교를 위해 발언하고 공직을 수행하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고 본연의 의무를 져버린 행위이다."며 "낙천자들은 국민의 선택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종자연의 금번 공천배제, 낙선운동은 기독교 공직자들에 대한 심각한 종교편향적 공격행위이고, 헌법에 보장된 종교자유 유린 행위이다.
낙선대상자 대부분이 기독교인이거나 기독교 관련 발언자들이다. 공직자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엄연히 종교의 자유를 누릴 권한이 있다. 법률용어사전에서 "종교의 자유를 "종교의 선택 · 변경의 자유, 무종교의 자유, 종교적 사상발표의 자유, 예배집회의 자유, 종교결사의 자유를 포함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종교의 자유에는 그 신앙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신앙 실행의 자유' 도 포함하고 있다.
공직자가 자기가 믿는 종교단체 행사에서 신앙적 표현을 하는 것은 헌법 제20조 1항에서 보장하고 있는 지극히 당연한 국민으로서의 개인권리이고, 자유다. 종자연이 말하는 <국가공무원법 제59조의2 1항>의 "공무원 직무수행의 종교차별 금지>와 <동법 제59조의 2항>의 '공무원의 소속 상관 종교차별 행위에 대한 불복종 권리' 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헌법 제17조>는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라고 명시하고 있다.
공무수행이 아닌 개인 신앙활동 까지 공직자라고 해서 종교편향의 올가미를 씌우려 한다면 이는 헌법의 자유와 권리를 유린하는 종자연의 안하무인(眼下無人)의 폭거이다. 언제부터, 그 누가 불교단체 종자연에게 대한민국의 공직자들에 대한 종교편향 심판권을 주었는가?
더구나 종교편향을 들먹이면서 기독교 공직자들에게 집중 공격을 가하는 종자연은 불교단체로서 "종교전쟁이라도 불사하겠다" 는 건가? 다종교사회에서 상대 종교인들의 신행(信行)마저 꺽어 보려는 종자연은 종교간 분쟁과 국론분열을 조장하는 나쁜 단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4.13총선 예비후보자 종교편향을 들먹이면서 왜 종자연은 불교신자들이나 불교에 대해 우호적인 발언을 한 예비후보자들의 과거 발언들은 문제 삼지 않는지 모르겠다. 지난 2일자에 국민일보가 발표한 친 불교관련 공개발언 예비후보자들만 해도 7명이나 된다. 그들은 불자라고 해서 봐주는 건 아닌지(?). 기독교 공직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불교단체 종자연의 비뚤어진 잣대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자신들을 다치게 할 것이다.
종자연은 작년 12월, 기독교 연예인들이 시상식에서 행하는 신앙적 감사표현이 꼴사나워서 각 방송사들에게 공문을 보내 이를 제지하려 들었다. 또 예전에 불교단체들은 운동선수들이 시상식에서 감격에 젖어 행하는 신앙적 감사표현 마저도 저지하기 위해 물의를 일으켰다. 좋은 일이 있어 자기가 믿는 신에게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건 신앙인의 본연으로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이건 종교편향이 아니다.
한국교회는 다종교사회인 한국에서 종교의 신념과 가치관에 의해 발언하는 공직자들의 개인적 신행을 시비건 적이 없다. 공직자라 해도 신앙공동체 안에서 자기 신앙의 표현은 고결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종자연은 이제라도 공직자들의 종교자유를 유린하려는 폭거를 중단하고, 공개한 예비후보자 열 분들과 새누리당과 더민주당에도 공개 사과를 하기 바란다. 다종교 사회에서 굽어진 잣대를 들이대며 함부로 종교편향의 칼날을 휘두르는 건, 종교분쟁을 유발하고, 국가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반역적 행위이다.
4.13총선을 앞두고 종교단체들이 예비후보자들에게 선거공약에 자기네 종교의 선한 가치관을 공약에 넣어줄 것을 부탁하는 것은 자유민주국가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종자연이 불교단체로서 대자대비의 정체성을 지키며 타 종교와도 조화로운 화목과 상생의 길로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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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사회에서도 교회는 지속성장이 가능하다"
"미래 교회의 성장동력은 무엇인가?"
감리교 교회성장클럽 주최 <교회성장을 위한 신학포럼-교회성장을 고민하는 목회자와 신학자의 만남>
심자득
미래 교회의 성장동력은 무엇인가?
29일 서울 중랑구의 한마음교회(김승룡 목사)에서 감리교 교회성장 클럽이 주최한 <교회성장을 위한 신학포럼-교회성장을 고민하는 목회자와 신학자의 만남>이 ‘미래교회의 성장 동력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개최됐다.
주제강연자로 박해령 교수(협성대학교 구약학)가 <성서학적 관점에서 본 교회와 그 미래>를, 신동욱 교수(협성대학교 신약학)가 <미래 교회의 성장동력에 관한 고민>을 강의했고 논찬 및 질의자로 황현숙 박사(협성대 신약학), 홍순원 박사(협성대 기독교윤리), 조춘성 목사(성서교회, 대전과기대 강사), 김영선 박사(협성대 조직신학), 권혁남 박사(협성대 실천신학), 임형수 목사(청주 벧엘교회)가 나섰다.
교회성장 클럽(회장 김승룡) 회원 목회자들과 협성대 교수들, 재학생들 등 200여명이 참석했으며 감독회장 선거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는 김영진, 전명구, 조경열 목사와 서울연회 감독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는 강승진, 원성웅 목사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미래사회에도 교회는 존속하고 성장도 할 것
“사회, 문화, 정치적으로 교회가 한국사회에 끼친 긍정적 공헌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성장제일주의와 경쟁주의, 물질주의, 기복신앙, 교리중심주의, 이원론적 신앙, 개교회주의, 교권주의, 저질목회자 양산, 내세주의 반에큐메니컬, 신학의 빈곤, 정치적무관주의, 합리성결여, 교리중심주의 등의 과실로 인해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 위기상황의 극복에 교회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박해령 교수(협성대학교 구약학)는 미래교회도 성장할 수 있을지를 위와 같이 염려하면서도 “교회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자신의 기준으로 삼을 때에만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한스 큉의 말을 인용해 “미래사회에도 종교는 존속할 것이며 교회성장 역시 지속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각종 지표가 말해주는 마이너스 성장 예상과 상반된다.
박교수는 미래사회에서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고 현재 교회의 추세가 이어진다면 부정적인 미래가 될 수 밖에 없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교회의 사명이 있고 존재 이유가 있다”고 역설했다. “과학과 의술이 삶의 질을 바꿀 순 있지만 구원을 가져다 주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존속 이유에 대한 확신이 기저에 깔려있다.
성장할 것이라는 예상도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까지 알곡과 가라지가 섞인 ‘혼합된 단체’이기 때문에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져야 할 것”이므로 “봉사자와 구원의 도구자로서 현존하며 끊임없는 자기개혁의 정신과 교회의 원형적 모습인 초대교회의 순수한 모습으로 환원해 간다면 미래에도 교회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박 교수는 다시 한스 큉의 저서 「가톨릭교회」를 인용하여 교회에 미래가 있으려면 △기독교의 기원에 뿌리를 두고 현대의 임무에 집중 △가부장주의 타파와 여성과의 협력을 유지 △배타적 신앙고백과 관료주의 극복, 교회일치운동 실천 △제국주의적 교회가 아닌 더 큰 진리에 존경을 나타내는 포용적이고 포괄적인 교회 등 네가지 목회 패러다임의 대변혁을 충족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미래성장동력은 복음의 본질 회복에서부터
“교회건축에 목매고, 예배는 바알 종교화 되고 있으며 신앙고백과 삶이 분리되어 교회 리더십이 붕괴되었습니다. 교회가 더 성장하려면 지금까지의 경험을 버리고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 외에 없습니다”
신동욱 교수(협성대 신약학)는 신약학자의 입장에서 미래 성장동력의 키워드를 찾았다. 먼저 교회환경의 부정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성장의 동력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교회가 성장할 수 있는지를 살폈다.
신교수가 짚어 본 교회의 내적 외적 환경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교회의 부채규모는 늘어가고 인구절벽이 눈앞에 다가오며 교회는 젊은이들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내적으로도 다양한 성장프로그램을 시도해 봤지만 이미 교인숫자는 줄어들고 있는데다가 교회마저 물질만능(바알)에 사로잡혀 복음의 본질이 왜곡된 채 세속화 되었고 교회는 예전의 대 사회적 신뢰를 잊어 버렸다고 했다.
신교수는 그 대안이 될만한 ‘교회성장동력’으로써 ‘복음의 본질 회복’을 주창했다. 구체적으로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것 △역동적인 예배를 드릴 것 △상식이 통하는 교회행정을 펼칠 것 △어린이와 청소년 등 가정중시목회를 할 것 △지역사회봉사를 통한 교회 이미지를 재고할 것 등을 강조하면서 각 항마다 사례교회를 제시했다.
신교수는 결론적으로 교회성장은 “출석교인 숫자가 아니라 파송교인 숫자”라고 정의 내렸다.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했던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베드로처럼 “지금까지의 경험을 버리면 주님이 열어주시는 새로운 현실을 경험하게 된다”면서 오히려 “지금이 부흥의 기회다”라고 역설했다.
주제강연이 길어져 논찬과 질문은 비교적 짧게 진행됐다. 먼저 황현숙 교수(신약학)는 “나사렛에서도 선한 것이 나온다”고 역설하며 예수님을 닮은 신학생들을 많이 배출해 미래 교회지도력 양성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교수로서의 다짐을 밝혔다.
홍순원 박사(기독교윤리학)는 “소금이 단맛과 짠맛 두 가지를 가질 수 없다.”며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때 교회가 회복될 것임을 강조했다. 조춘성 목사(성서교회)는 교회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있음을 상기시키며 해소방안을 물었다. 이에 대해 박해령 교수는 “더불어 함께 사는 교회 공동체성의 회복”을 제시했다.
김영선 박사(조직신학)는 “가르치고 학습하는거보다 보여주는게 중요하다”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모습과 목회자들의 바른 리더십이 교회 회복에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했다.
권혁남 박사(실천신학)는 “교회성장에는 그 조직의 비전, 미션, 자원이 무엇인가가 중요한데 교회성장학이 놓친 실수는 자원만 확보하려는데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전략적 접근은 또다른 실패를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임형수 목사(청주 벧엘교회)는 주제강연자에게 교회성장을 멈춘 복음의 변질 이유와 목사들의 변질 이유를 물었다. 이에 대해 신동욱 교수는 “성경을 설교라는 직업적(?) 이유에서 읽는 것은 곤란하다.”면서 “목회자가 먼저 하나님을 뜻을 구하는 자세로 성경을 읽어야 할 것”을 권면했다.
이날 강연에 앞서 감리교교회성장클럽의 김승룡 회장은 “다들 목회가 힘들다며 교회성장이 안된다고 하는데 여전히 수십 명 수백 명씩 성장하는 교회를 보며 동역자 수십 명이 모여 기도와 공부를 시작하다가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면서 “함께 기도하는 가운데 성장 지속가능한 한국교회의 비전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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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소리 지르지 마라!
지성수
집을 떠난 지 100일 만에 별수 없이, 기어코 집으로 돌아왔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분주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하니 내가 사기꾼 노릇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잘 되기 어려운 일을 하자고 여러 사람을 부추겨서 움직이도록 해 놓고 왔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이야 말로 사기꾼들의 전형적인 행태가 아닌가?
사기꾼의 특징은 헛된 꿈을 꾸게 만들기,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일,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퍼뜨리기. 근거가 부족한 이야기하기 등등이다. 물론 나는 좋은 뜻에서 이야기를 했지만 엄밀하게 따지자면 위의 예에 해당한다고 보겠다. 계산이 분명해야 하는 이 세상 상식으로 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가 만난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 사회의 비주류에 속해 있으면서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현실적으로는 계산이 잘 안 나오는 문제들을 가지고 씨름을 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예수가 한 행동을 보면 모두 그렇지 않았던가? 무지랭이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허파에 바람을 집어 넣는다든지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든지 하는 황당한 소리들이 당시로서는 모두 허망한 이야기가 아니었겠나?
어렸을 때 역전에 가면 야바위꾼들이 있었다. 좌판에다 종지를 엎어서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서 어느 종지 안에 주사위가 있는지 맞추는 게임이었다. 게임이라지만 실지로는 눈속임이다. 어수룩한 시골 사람 정신을 빼놓아서 돈 버는 것이다.
분명 휘휘 돌아가는 종지 안에 주사위가 들어 있는 걸로 '믿었는데, 그게 아무 종지에도 들어 있지 않았으며, 나중에 자기 편 종지를 들 때 슬쩍 굴려 넣는다는 걸 어수룩한 사람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종지를 쫒아 다녀 봐야, 야바위판에는 주사위가 없는 것이다. 야바위판 종지가 휘휘 돌아가는 순간 주사위는 이미 야바위꾼의 소매 속이나, 손바닥에 있는 거다.
종교도 잘못하면 이 세상과 다음 세상을 놓고서, 물질과 정신을 놓고서, 영혼과 육체를 놓고서 야바위를 하는 꼴이 되기 쉽다.
종교의 나와바리는 형이하학에서 형이상학으로 지상에서 영원까지 워낙 넓어서 무엇이 진리인지 무엇이 사기인지 감을 잡기가 어렵다. 그래서 사기꾼들의 숙주가 되기 딱 좋은 곳이다.
나는 장례식을 치룰 때 마다 야바위를 생각한다. 모처럼 죽음이라는 인생의 절재절명의 명제 앞에 서 있는 대중들에게 진리에 직면하게 하기는커녕 값싼 감상적 위로를 푸짐하게 제시하기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천국, 부활 등등을 나열하며 무엇인가 있는 것 같으면서도 아무 것도 없는 설교 내용들을 들어 보면 더욱 그렇다.
그렇지 않아도 설교라는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설교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제법 치밀한 논리와 확신을 가지고 설교를 한다고 하지만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공허하고 관념적인 언어로 말장난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야바위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을 속이는 야바위꾼들과 다른 점은 설교자들은 종종 확신에 넘쳐서 소리를 지른다는 것이다.
한국에 가서 몇 교회 예배를 참석했었는데 목사들이 왜 그렇게 설교 시간에 소리를 지르는지 듣기가 괴로웠다. 내 눈에는 목사의 큰 소리 설교에 익숙해 있는 신자들이 오히려 이상해 보였다. 애가 타는 입장에서 부르짖는 집회 현장이 아니고는 요즘 세상에 큰 소리를 지르는 곳이 어디 있는가? 직업 정치인인 국회의원들도 국회 발언에서 큰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호주나 미국에서는 목사가 설교 중에 톤을 높이는 예는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반면에 흑인들은 설교 할 때 소리를 많이 지른다.
흔히 대화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벗어나는 행동으로 간주되어 다툼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목사들은 왜 설교 중에 함부로 목소리를 높이고 핏대를 세우는가? 제발 그러지들 말았으면 좋겠다. 조용조용히 해도 하나님이 잘 알아들으시고 사람들도 알아듣는다.
어느 선교사 아들이 안식년 때 한국에 와서 예배에 참석했다가 소름이 돋고 머리가 쭈뼛쭈뼛 선다고 해서 웃은 적이 있었다. 교민 가정의 한 아이가 한국에서 온 목사가 설교를 하는데 예배에 참석해서 설교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니 까 엄마에게 “Why is he so angry?” 라고 해서 웃긴 적도 있었다.
설교 시간에 큰 소리치는 것은 한국 사람이 대체로 논리적이라기보다는 감성적이라서 큰 소리를 칠수록 호소력이 있다는 생각에서 나올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원인은 한국의 개신교 전래가 부흥집회 위주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실 대부분 한국 개신교회의 예배는 전례적 특성보다는 집회적 성격이 강하다. 초기 선교 당시 집회 환경이 육성 위주였고 그것이 계속 쌓이고 반복되다 보니 설교의 톤의 올라가고 성량이 커졌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젊은 사람들은 소리 질러대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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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는 별난 DNA를 가지고 태어난 족속인가
— 역지사지의 안경으로 세상을 보라 —
임종석
목사는 동네북
목사들은 지금 수난의 시대를 살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돌을 맞고, 이리 가도 저리 가도 매를 맞는다. 오뉴월에 개 패듯 하는 매를 맞는다면 너무 거칠고 저속한 표현이 되겠지만, 마치 동네북이라도 치듯 이 사람도 두들겨 대고 저 사람도 매질을 한다. 그런데 이는 어느 누구도 아닌 목사 자신들의 탓이다.
목사라면 마치 비리의 온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바라보는 사람이 많다. 물질을 탐하는 경향이 심하다 해서 ‘목사’를 ‘먹사’라고 듣기도 민망한 닉네임으로 부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그 같은 현상에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다는 데에 우리 기독교계가 안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러나 목사들 모두가 비리에 발을 담근 것도 아니고 물질에 욕심을 부리는 것 또한 아니다. 그렇다 보니 그들 중에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특히 농어촌의 미자립 교회 목회자들은 그에 분통을 터트리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들어온 헌금이래야 어디에 찍어다 붙여야 좋을지 모를 정도로 빈약하여 사례비조차도 제대로 받는다는 게 꿈같은 이야기이니 말이다.
그런데도 필자는 그런 목사님들도 포함한 모든 교역자님들에게 하나의 질문을 하고 싶다. “그럼, 목사님은 기복신앙을 가르친 잘못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까?”라고. 필자는 이 땅의 교역자들 가운데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있다 해도 극히 소수일 것이다.
그런데 이는, 그러니까 구복신앙이라고도 하는 기복신앙은 목사들이 저지르고 있는 그 숫한 비리와 탐욕에 뒤지지 않는 죄악이다. 왜야 하면 그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복신앙, 그것은 기독교의 탈을 쓰고 있지만 기독교 신앙이 아니다. 기독교와 정반대의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사이비요 이단이다.
여기에서 한 번 생각해 보자. 이단을 교회로 끌어들이는 일보다 더 큰 죄악이 얼마나 있겠는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그보다 더 큰 죄악을 들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교역자라면 비난을 받고 욕을 먹어도 싼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내가 목사가 되었다면 지금 어떻게 하고 있을까. 나는 저들과 다를까. 다르다면 얼마나 다를까. 나는 지금의 나와 같은 교인들이나 세인들로부터 어떠한 비난도 받지 않고 욕도 먹지 않을 만큼 성경이 말하는 대로 사역자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있을까.
이런 말을 하면, 그럼 목사들의 불신앙적 행태를 보고만 있으라는 말이냐고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교인들의 입을 막으려는 그런 수작 작작하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해 보자는 것이다.
아무리 심각한 문제라 해도 역지사지해 봄으로 많이 해결될 수 있다. 그리함으로 문제 자체가 고개도 들지 못하고 끝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내가 목사가 됐다 해도 지금의 목사들이 범하고 있는 죄악들을 그들과 똑 같이 저지를 수 있는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을 안다면 같은 비난을 해도 그 비난은 비난으로 끝나지 않고 문제해결의 힘을 갖게 된다.
나라를 망국(亡國)으로 내몰고 있는 지역감정을 놓고 생각해 보자. 양 지역에서 서로 상대를 가리켜 애초부터 상종 못할 종자로 태어난 것들이라고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아니다. 우리는 ‘동’이나 ‘서’나 같은 배달이니 크게 다를 리 없다. 환경의 차이로 약간의 경향적 차이는 있을 수 있어도 유전자조차도 다른 것은 아니다. 동의 사람이 애초부터 서에서 태어났거나 아니면 일찍이 서로 가서 살았다면, 그리고 서의 사람이 동에서 태어나거나 동으로 가서 살았다면 그곳 사람들과 한 치도 다르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목사도 다르지 않다. 그들이라고 별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들도 나와 똑 같은 사람인데, 나는 목사 아닌 교인이 되고, 그들은 일반교인 아닌 목사가 된 것만이 다를 뿐이다. 그러니 그들을 향해 비난이나 욕을 하기 전에 역지사지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환언하면 크리스천으로서의 나 자신을 돌아보자는 말이다. 그리하지 않고 비난이 됐건 욕이 됐건 내뱉기만 한다면 내 입만 더러워지고 내 인격만 손상될 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사실 자신도 목사이면서 필자만큼 목사들을 향해 비난을 많이 하는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다. 필자가 목사가 된 이유에는 목사를 비난하기 위한 것도 들어 있으니 더 말해 무얼 하겠는가. 목사들이 바뀌지 않으면 한국 기독교는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교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내쫓은 상태로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그들을 보고도 침묵할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일반교인이 목사를 비난하면 비난을 위한 비난으로 들리기 쉬우나, 목사가 목사를 비난하면 누워서 침 뱉기가 되겠지만, 아니 그러니 더욱 뭔가의 이유가 있어서, 또는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서 하는 것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크기에 필자가 목사들의 비난에 인색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목사시취논문 심사위원을 서로 하려는 이유
필자가 목사가 된 이유를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문서선교를 해 보고 싶어서이다. 문서선교라 해도 무슨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냥 믿음의 글을 써 보고 싶어서이다.
글이란 참으로 매력 있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을 하루에 몇 명이나 만날 수 있을까. 대중 앞에서 연설을 하는 것 같은 경우를 제한다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글을 통해서라면 몇 백, 몇 천 명도 만날 수 있고, 그 이상도 만날 수 있다.
그렇다고 다다익선식의 만나는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말은 아니다. 글을 쓰다 보면 독자들의 입맛에 맞추고 싶은 유혹을 받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리한다면 설교자가 교인들의 입맛에 맞춰 ‘헌금을 많이 하면 복 받는다’는 식의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게 된다.
설교자는 ‘예수를 믿어도 가난할 수도 있고, 병약할 수도 있으며, 교통사고 같은 것으로 졸지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설교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게 하나님의 벌이 아니라 은혜일 수 있다는 것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글 쓰는 사람도 인기를 끌지 못해 읽어 주는 사람이 적은 내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이라면 주저 없이 쓸 수 있어야 한다.
필자는 목사들에 대한 비난의 글을 쓰는 걸 하나님의 뜻으로 알아 사명감을 가지고 집필에 임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글을 읽어 주는 독자가 다른 글에 비해 많은 편이다. 그런 것이 <당당뉴스>의 한 특징인 것 같기도 하다.
필자는 <당당뉴스>에 글을 쓰기 전에는 오프라인 신문과 잡지에 썼다. 그런데 그들 신문과 잡지에는 마음 놓고 교회나 목사에 대해 비난하는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쓰더라도 에둘러 썼다. 그런 글 쓰는 걸 사명으로 알고 있는 필자인데, 가슴 답답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그런데 <당당뉴스>에 쓰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은혜로 알아 감사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풀이라도 한 것처럼 속이 시원해졌다는 말은 아니다.
사실 필자는 말이 은퇴 목사이지 목회를 해 본 적이 없다. 영락없는 무늬만의 목사요, 속빈강정이다. 필자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타인이 본다면 그럴 것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두셋 소개하고자 한다. 이 또한 목사 사회의 부정적인 한 단면이니 그들에 대한 비난이 될 것이다. 필자의 전도사와 목사 시취(試取) 때의 일화이다.
전도사 시취 때였다. 필자보다 스무 살 정도 연하의 시취위원 목사님 한 분이 왜 전도사가 되려 하냐기에 믿음의 글을 쓰기 위해서라 했더니, 그것으로는 사명감이 약하다며, 이번에는 전도사 시취이니 통과시켜 주지만 목사 시취 때는 어림없다고 하셨다. 그러며 꼭 전도사가 되고 목사가 되어야만 믿음의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도 했다. 마치 신입사원을 직접 뽑는 대기업의 회장 같았다. 전능자 같기도 했다.
지금처럼 다양성이 요구되는 세상에 목사가 하는 일을 목회로만 한정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싶었다. 그리고 그 시취위원 목사님의 말대로라면 목회 또한 전도사가 되고 목사가 되어야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싶기도 했다.
목사 시취 때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시취위원 목사님은 모두 다섯 분이었는데, 그 가운데 네 분은 의심의 여지없이 갑이었다. 을은 물론 필자였다.
당시 시취논문은 작성자가 주제를 준 위원들을 일일이 찾아가 직접 제출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필자도 물론 그렇게 했다. 위원 한 분의 교회는 도(道)가 다른 지역에 있었으므로 그리로 찾아갔는데, 그날은 공교롭게도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다. 교회를 찾는 데에도 애를 먹었다. 도시 변두리의 허름한 건물 2층에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목사님을 예배실 옆에 딸린 작은 방에서 만났는데, 지나는 예배실은 낮인데도 발걸음 옮기기가 조심스러울 정도로 어두웠다. 불이라도 켰으면 했으나 목사님은 그러지 않으셨다.
자리에 앉자 목사님은 이런저런 말씀을 마치 설교라도 하듯 일방적으로 많이 하셨다. 그러며 중학생 정도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수준의 문학 이야기를 지루하게 오래 늘어놓았다.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하고 있는 백발이 성성한 교수를 앞에 앉혀 놓고 젊디젊은 목사가 장황하게 문학론 강의를 한 것이다. 그래도 들을 수밖에 없는 필자는 고통을 참느라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다 났다.
선생이 직업인 사람은 가르치려는 버릇이 상대를 가리지 않고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목사도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니 그런지는 몰라도 누구나 가르치려 드는 경향이 있다. 교회에서는 아예 전능자가 되기도 한다. 교인 중에 탁월한 건축가가 있는데도 교회신축 같은 일에 그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자기 고집으로 일관하기도 한다. 하려는 사업에 전문가가 있는데도 담임목사가 한 마디 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모든 일에 달통한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감 놔라 배 놔라’ 한다.
한 시취위원 목사님의 교회는 같은 도에 있었으나 가깝지 않은 곳이었다. 40여 킬로를 달려갔으나 목사님은 누군가와 낚시를 갔다고 교회에도 교회부지 안에 있는 사택에도 계시지 않았다. 교회 건물은 얼마나 오래 손을 대지 않았는지 폐가(廢家)를 방불케 했고, 넓지 않은 마당에는 풀이 날대로 나 자라서 말라 죽어 가고 있었다. 교회를 이렇게 방치해 두고도 교인들이 줄지 않는다면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얼마를 기다렸다가 목사님이 돌아오셔서 마당에서 선 채로 논문을 전달해 드리고 돌아왔다. 아마 안으로 들어가자고 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밖이 그런데 안이라고 정돈인들 제대로 되었겠는가.
그런데 그 목사님께서는 시취논문의 제목을 주실 때부터 필자를 무척 당혹스럽게 했다. 그 주제라고 하는 것은 “OO교회 집사의 특성”이었는데, 필자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이 의미하는 것을 알 수가 없었다. 소속 교단 교회의 집사 특성을 논하라는 것이겠지만, 그게 성경이 말하는 집사와 무엇이 어떻게 다른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같은 교단의 몇몇 목사님들께 여쭤 봐도 아는 사람이 없었고, 교단 신학대학의 조직신학 전공 교수님께도 물어 봤으나 모른다 했다.
하는 수 없이 주제를 주신 그 목사님을 찾아 힌트만이라도 주시라고 통사정을 해 봤으나 신학대학 도서관에 가면 관련 자료가 산더미처럼 쌓였으니 스스로 알아 해결하라 하셨다. 하는 수 없이 방금 말한 그 조직신학 교수님의 안내를 받아 대학 도서관 서고에 들어가서 같이 찾아 봤으나 그런 자료는 있지 않았다.
필자는 성경에서 집사 관련 기사들을 샅샅이 찾아 주석과 강해서 등을 참고로 집사직의 개념을 정리한 뒤 소속 교단 교회의 집사와 연관시키려 시도하는 가운데 논문을 집필했다. 그런데 결과는 참담했다. ‘“OO교회 집사의 특성”도 모르다니 OO교 목사의 자격이 없다.’ 이것이 필자보다 십 수 년이나 연하인 그 목사님이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필자의 면전을 향해 구두로 해 준 심사평이었다.
결국 그 목사님께 필자 교회의 담임목사님께서 뇌물성 선물을 안겨 주고서야 겨우 통과가 되었다. 그런데 필자는 아직껏 그 “OO교회 집사의 특성”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로 믿음의 글이라는 것을 이렇게 쓰고 있다. (독자들 가운데 혹 자기 소속 교단 교회 집사의 특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가르쳐 주었으면 한다.)
이분들 외에도 시취와 관련하여 갑으로서의 권력을 행사한 분들은 둘이 더 있었으나 이정도로 그만둘까 한다. 단, <당당뉴스> 칼럼에서 “시골 교회 잔혹사”라는 제목을 봤는데, 필자가 시취과정에 겪은 그 같은 실상을 결론적으로 말하여 ‘목사사회 잔혹사의 한 단면’이라고나 해 두고 싶다. 늦깎이로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된 죄의 탓이라 스스로를 위로라도 해야 했지 않나 한다.
목사들이 변하지 않는 게 비난이 없어서인가
<당당뉴스>에는 잘못이 이미 굳어져 버려 관례화되고 제도화된 현실을 타개하고자 노력하는 글들이 많이 실리고 있다. 다른 데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개혁적이라면 개혁적인 것들이다. 목회자들에 대한 비난이 그렇고 십일조를 포함한 헌금에 대한 주장들도 그렇다.
옛날 같으면 목회자를 비난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기름 부은 종을 비난하는 것으로 여겨져 큰일 날 일로들 알았다. 헌금에 토를 다는 것은 불경도 그런 불경이 없어 금기시되었다.
그런데 <당당뉴스>가 그 같은 금단의 영역을 침범한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독자들은 그에 공감하며 박수를 보내고 있다. 목회자만이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모든 믿는 사람이 “왕 같은 제사장”(벧전2:9)이요, 제물로서의 헌금은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것이 한국교회의 전반적인 현상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안다. <당당뉴스>에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든 그것을 읽은 사람들이든 그들 가운데에는 신앙에 대한 잘못을 고쳐 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이들이 많다. 그렇다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보니 그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도 적지 않고, 이단들이 숨어들어 댓글이라는 미명으로 훼방을 놓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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