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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軍 부대 위문 및 진중세례식 거행 / IS 성노예 탈출 여성 “우리는 계속 죽어가고 있다
    2016-02-18 22:12:15   read : 1392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한교연, 軍 부대 위문 및 진중세례식 거행

    ▲진중세례식 후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교연

    한국교회연합(대표회장 조일래 목사, 이하 한교연)이 지난 13일 서부전선 최전방 육군 보병 25사단 상승부대를 방문해 장병들을 위문하고, 신병교육대 내 사랑의교회에서 장병 3백여 명을 대상으로 진중세례식을 거행했다.

    이번 행사는 한교연 선교위원회(위원장 허상봉 목사)가 주관했으며, 대표회장 조일래 목사와 공동회장 등 임원, 상임위원장, 직원, 동대전성결교회 성도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한교연 위문단은 오전 제25사단 본부를 방문, 사단장에게 장병들을 위한 위문품을 전달했으며, 사단본부 회의실에서 작전 참모 등으로부터 브리핑을 들은 후 사단장과 장교, 병사들을 위해 대표회장 조일래 목사가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방문단은 승비룡부대 철책선 GP로 이동, 전망대를 참관하고 경계근무 중인 병사들을 격려했으며, 남북이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평화적인 통일을 이루는 날이 속히 오도록 기도했다.

    이어 신병교육대 내 사랑의교회에서 신병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중세례식을 거행했다. 세례식은 군종참모 김순규 목사의 집례로 김효종 목사(예장 호헌 총회장)의 기도와 동대전성결교회 찬양단의 특송, 허상봉 목사의 설교에 이어 김진신 목사(바른신앙교육원장)와 이태윤 목사(작은교회살리기위원장)가 국가 안보와 장병들을 위해 특별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대표회장 조일래 목사가 인사말을 전했으며, 입대 후 처음 예수를 믿기로 자원해 서약한 장병 300여 명에 대한 세례예식을 거행했다. 이날 세례식은 김윤기 목사(명예회장)의 축도로 마쳤다.

    선교위원장 허상봉 목사는 '담대하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며 "모든 환란과 어려움 가운데서 나를 굳건히 지켜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은혜가 장병 여러분과 두고 온 가족들에게 임하길 빈다"고 말했다.

    조일래 대표회장도 인사말에서 본인의 군생활을 회고한 뒤, "아무리 힘들어도 시간은 간다"면서 "아무나 오는 곳이 아닌 군대에 여러분은 건강한 대한의 아들이기에 선택받아 온 것"이라며 "기쁨과 감사로 승리하는 군생활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한교연 선교위원회는 세례를 받은 장병들에게 포켓용 신약성경과 십자가 팔찌, 핸드크림, 휴대용 랜턴, 십자가 배지, 군번 고무막, 때밀이 수건 등 장병 선물세트 5백개를 전달했고, 예배에 참석한 장병 모두에게 햄버거와 음료수를 나눠 주며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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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곳 교회가 연합해 전도해요", 일산서지방전도대 이야기



    ▲일산서지방전도대 대원들이 지난 3일 경기도 고양 일산서구 온누리교회 앞에서 다같이 모여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고양=전호광 인턴기자

    지난 3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의 한 아파트 단지. 김정화(77·새생명교회) 사모가 벤치에 앉아 있는 한 노인에게 다가갔다. 그는 노인 앞에 허리를 굽힌 뒤 미소를 지으며 말문을 열었다.

    “저희는 선생님한테 복된 소식을 전하려고 여기에 왔어요.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자 딸입니다.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구원 받으려면 하나님을 만나셔야 합니다.”

    이날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전도에 나선 사람은 김 사모만이 아니었다. 20명 넘는 크리스천이 곳곳에 흩어져 복음을 전했다. 이들은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어깨띠를 매고, 일산서구 감리교회 명단이 적힌 전도지를 들고 2시간 가까이 노상전도를 벌였다.

    전도에 나선 이들은 일산서지방전도대에서 활동하는 목회자와 평신도들이었다. 전도대에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일산서지방 소속 감리교회 32곳 중 절반인 16곳이 동참하고 있다. 대원들은 2008년 7월부터 명절 연휴를 뺀 매주 수요일마다 일산서구 곳곳을 돌아다니며 주님의 사랑을 전한다.

    전도대 대장인 김진열(62·신도제일교회) 장로는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비가 오거나 눈이 내려도 힘들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면서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참가 인원이 줄었지만 보통 40여명이 노상전도에 나섭니다. 처음에는 수줍어서 전도에 소극적이던 분도 경험이 쌓일수록 조금씩 나아지더군요. 지금은 다들 굉장히 저돌적입니다(웃음). 복음을 전하면서 교회에 나오라고 설득하는 일이 저희들에겐 ‘일상’이 됐습니다.”


    전도대가 모이는 곳은 매주 달라진다. 이날 이들이 집합한 교회는 전도대 소속 교회 중 한 곳인 일산서구 덕이로 온누리교회(김승녕 목사)였다. 대원들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점심식사를 한 뒤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복음을 전하면서 동시에 온누리교회를 지역 주민에게 ‘홍보’하는 일을 병행했다. 매주 ‘홍보’ 대상이 되는 교회는 달라진다는 게 대원들의 설명이었다.

    김승녕(55) 목사는 “일산서지방 교회들이 전도를 통해 ‘연합’의 가치를 깨닫고 있다”며 “매주 노상전도에 나서는 일은 예수님에게 미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자평했다.

    “저희들의 전도를 통해 교회를 처음 찾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이 지역에서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난 건 아닙니다. 그러나 언젠가 하나님의 역사가 있을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대원 중에는 노상전도를 통해 신앙의 참뜻을 되새기게 됐다는 이들도 많았다. 개인택시 운전기사인 이정자(58·여·성일교회) 권사는 수요일마다 일손을 놓고 전도에 동참하고 있었다. 그는 “구원의 기쁨을 전하는 것보다 보람 있는 일은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4년 전 겨울이었어요. 새벽까지 택시를 운전한 뒤 3~4시간만 잔 뒤 일어났어요. 그런데 전도대 활동에 참가하는 게 너무 귀찮게 느껴지더군요. 하지만 꾹 참고 현장에 갔고, 그날 5명을 전도하는 데 성공했어요. 여전히 내 주변에 내가 구원할 영혼이 많다는 걸 절감한 날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꾸준히 이 활동에 동참할 겁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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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준 목사, PCUSA 백인 위주 노회서 노회장 선출돼

    “6월 총회서 결혼 정의 재변경되길… 성경적 진리 대변할 것”



    ▲PCUSA 노스웨스트코스트노회원들이 노회장에 선출된 권준 목사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시애틀형제교회 권준 목사가 미국장로교(PCUSA) 노스웨스트코스트노회의 노회장으로 선출됐다. 백인 위주 이 노회에서 한인교회 목회자가 노회장으로 선출된 것은 처음이다.

    권 목사는 지난 11일(현지시각) 케스케이드뷰장로교회에서 열린 정기노회에서 55개 회원교회 노회원들의 환영을 받으며 임기 1년의 노회장에 선출됐다. 권 목사는 "노회장에 출마하고 미국교회를 섬기기로 결정한 것은, 이제 한인교회가 더 이상 미국 교단에 속한 것에 머물지 않고 복음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PCUSA 내부에서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교단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할 것"이라며 "한인교회를 미국에 심어 두신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뜻과 가치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이 미국을 살리는 것이다. 미국교회의 중심에서 복음의 본질을 일깨우고, 미국의 영적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라고 했다.

    노스웨스트코스트노회 소속 교회들은 시애틀 북부인 스노호미시, 알래스카 남부, 워싱턴주 중부와 동부 등에 분포하며, 이 노회는 교단 내에서도 복음적이고 선교가 활발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은 권 목사와의 일문일답.



    ▲시애틀형제교회 권준 목사.

    -노회장으로 선출된 소감은?

    "한인교회가 백인들이 모여 있는 미국교회를 섬길 수 있어 감사하다. 시애틀형제교회에서 목회하면서 한인들이 가진 진리와 영성을 어떻게 하면 미국교회와 나눌 수 있을까 고민해 왔는데, 교단 정화와 개혁을 위해 섬기고자 노회장직을 수락했다."

    -노스웨스트코스트노회가 한인교회 목회자를 노회장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한인교회와 함께 가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이전에는 한인교회의 영향력이 크지 않았으나, 이제는 우리 노회에서의 비중이 30% 가까이 된다. 한인교회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제는 한인교회가 미국교회를 섬길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미국교회도 한인교회 안에 있는 복음의 열정과 기도의 힘을 알고 있다."

    -노회장으로서 어떤 일들을 하게 되나?

    "모두 3번의 노회 모임을 갖게 된다. 그리고 오는 6월에는 오리건에서 열리는 미국장로교 총회 모임에 참석해 노회의 입장을 대변하게 된다. 지난 총회에서 우리 노회는 결혼 정의 변경을 부결시켰다. 노회장으로 성경적 진리를 대변하고 미국교회들을 섬기면서 선교적 교회로 이끌어 가고자 한다. 특별히 이번 총회가 결혼 정의를 재변경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면 좋겠다."

    -노회장 재임 기간 이후 계획은?

    "총회 이사회에서 계속해서 3년을 섬기게 된다. 총회 이사회는 노회가 상정한 안건과 현안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모임이라, 한인교회들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자리다."

    -미국장로교 내 보수 그룹인 펠로우십커뮤니티 이사로도 섬기고 있다.

    "그렇다. 미국장로교 안에서 성경적 진리를 고수하는 미국 목회자들의 모임으로, 미국장로교의 방향을 결정하는 크고 중요한 곳이다. 이사 대부분이 백인인데 400여 한인교회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어 감사하다."

    -미국 내 한인 기독교인들의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미국에서 성경적 가치가 무너지고 있다. 더욱 개방적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교회 교단들은 사회 정의를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민 오게 하시고 살게 하신 이유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미국에서 남은 자로서 우리가 가진 선한 영향력을 미국에 끼치고, 다음 세대를 건강한 지도자로 세워 미국을 축복하고 변화시키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더욱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포기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이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다. 그 사명을 구체적으로 발견하고, 남은 자로서 기도하고 말씀으로 생명을 살리는 일에 힘써야 한다. 그 일을 통해 이 땅에 부흥과 개혁을 일으켜 주실 것이라 믿고 있다.

    우리 2세들이 미국을 깨우고 선도하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1세들이 자녀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해야 한다. 영어권 2세 목회자들은 1세 목회자들보다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세상을 이끌어 갈 지도자를 키우고, 세상의 영적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교회가 돼야 한다."
    시애틀=김브라이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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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일방적인 선포인가 청중과의 공감인가

    실천신학회 학술대회서 '세월호 유족들 돌봄' 등 다양한 발제 이어져



    ▲이현웅 박사(가운데)가 발표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지난 12-13일 열린 한국실천신학회 제51회 정기학술대회에서는 '실천신학' 특성에 따라 '설교와 공감', '세월호 유족들의 상담치료' 등 다양한 발제가 이어졌다.

    이현웅 박사(한일장신대)는 '공감과 설교의 실천적 만남: 설교학적 측면에서의 공감에 대한 이해(설교신학)'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보통 하나님 말씀의 '일방적 선포'로 인식되는 설교행위에 있어 '공감'의 중요성을 제시한 것.

    이 박사는 "오늘날 한국교회 설교자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학문적으로 훈련되고 준비된 사람들이고, 설교학적으로도 상당한 수준들을 갖췄다. 청중 역시 교육 수준이나 성경에 대한 지식이 높아져 있다"며 "그런데도 왜 설교자들은 설교를 하면 할수록 힘들어하고, 청중은 설교에 더욱 흥미를 잃어가고 있는가"라는 문제 제기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소통)은 인간 상호 간의 공감(共感, empathy)이 형성될 때 가장 효과적으로 일어나므로, 우리는 공감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며 "설교도 형식과 방법에 있어 커뮤니케이션의 일종임을 생각할 때, 우리는 '커뮤니케이션을 효과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기재(器財)로서의 공감'에 마땅히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박사는 "사도 바울은 '사랑 없는 언어'는 그것이 아무리 신비한 방언과 천사의 말 같아도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고전 13:1)고 했다"며 "사랑의 언어만이 사람의 가슴에 와 닿을 수 있고 사람을 움직이고 비로소 사람에게 의미를 줄 수 있다. 그런데 이 사랑이야말로 상호 간에 할 수 있는 가장 큰 공감 아닐까"라고 전했다.

    그는 "진정한 설교를 위해서는, 설교자와 청중 사이에 메시지를 통한 공감이 일어나야 한다"며 "그럴 때 설교자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씀은 비로소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청중에게 바로 전달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공감'은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의 감정, 생각, 상황 속으로 들어가, 그가 느끼는 것을 같이 느끼고 그가 생각하는 것을 함께 이해하며 그가 처한 상황을 공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가 느끼는 것을 내가 느끼고, 상대의 감정과 경험과 상황을 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인식하며, 그 사람의 처지에서 같이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이를 설교학적으로 적용하여 '상대'를 '청중'으로, '나'를 '설교자'로 대체하면, '공감은 청중이 느끼는 것을 설교자가 느끼는 것이고, 설교자가 청중의 감정과 경험과 상황을 청중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인식하며, 청중의 처지에서 같이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된다"고 했다.

    이현웅 박사는 "설교는 설교자의 입을 통해 나가지만 청중의 귀를 통해 들린다는 점에서, 설교는 언제나 설교자와 청중이 공감하는 것이어야 한다"며 "그러나 오늘 우리 설교 현장은 과연 설교자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청중과 공감되고, 설교자들이 전한 메시지가 청중의 가슴에 와 닿아 그들을 뜨거워지게 만들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3천 명을 회개시킨 베드로의 설교(2:14-41)와 순교를 초래한 스데반의 설교(6:7-7:60)를 비교하기도 했다. 그는 "베드로는 그날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2:14)', '이스라엘 사람들아(22)', '형제들아(29)'라고 부르고 있는 데 비해,

    스데반은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7:51)',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하지 아니하였느냐(52)',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52)'라 말하고 있다"며 "두 그룹의 청중은 설교를 듣고 모두 마음에 찔림을 받았으나, 한 그룹은 회개했고 다른 그룹은 오히려 돌을 들어 설교자를 쳐 죽였다"고 비교했다.

    이 박사는 "스데반은 청중의 머리(head)에 설교했다면, 베드로는 가슴(heart)에 설교했다고 할 수 있다"며 "스데반은 청중의 지식과 이해를 목적으로 했다면, 베드로는 감동과 공감을 목적으로 했다. 스데반은 듣는 상대를 굴복시키려 했지만, 베드로는 듣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마음에 감동(感動)과 감화(感化)를 줬다. 이 두 설교자는 우리에게 '변화는 지식이 아니라 공감에서 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고 지적했다.

    이현웅 박사는 "이처럼 설교의 생명력은 공감에 있다"며 "설교자와 청중이 함께 공감하고, 설교자를 통해 선포되는 말씀이 청중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때, 그 말씀은 듣는 사람들의 심령 속에 살아 움직이는 말씀이 된다. 그때 말씀은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고, 죄와 죽음에 빠진 사람들을 구원하는 능력이 되며, 사람들을 회개하고 변화시키는 힘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감되는 설교를 위해 설교자는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그날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말씀을 철저하게 묵상·연구·이해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청중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는 "이것이 설교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이들이 해야 할 일"이라며 "설교는 제1청중이신 하나님, 그리고 제2청중인 사람들이 모두 공감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발제하는 권명수 박사. ⓒ이대웅 기자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아픔 표현할 자리 마련해야

    이후 권명수 박사(한신대)는 '사회적 애도 가능성 연구: 세월호 사건을 중심으로(상담치료)' 발표를 통해 '공동체적 의례'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목회적 돌봄과 상담을 행하는 우리들은, 이렇게 설명할 수 없는 참혹한 일을 경험한 이들에게 어떻게 돌봄을 행할 수 있겠는가"라며 "무엇보다 돌봄 목회자들은 유족들을 '지탱(sustaining)'하도록 하는 데 자신이 가진 자원과 시간을 경주해야 한다. 왜냐하면 돌봄 목회의 '지탱'이란 회복이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 현 상태를 유지하도록 지지해 주고 격려해 주는 돌봄을 말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후 권 박사는 "아픔을 겪는 유가족들과, 이들과 연대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상처 입은 마음을 애도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야 한다"며 "이를 통해 이들의 아픔을 외부로 표현케 하고, 이를 통해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다른 이들도 함께 그러한 애통의 자리에 들어가 아파하면서, 자식을 잃은 부모와 유가족의 마음을 건드려 줄 수 있게 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이는 누군가를 정죄하고 비판하기보다 세월호 사건의 아픔을 드러내고 노래하고 표현하는 자리, 곧 의례(ritual)의 형태를 띤 것이어야 한다"며 "애도를 위해 의례는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당사자들과 참여자들이 충분히 자신의 아픔을 표현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기간과 분위기를 적절하게 배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는 한 번에 그치는 문상과 차원이 다르다"며 "애도의례는 장시간에 걸친 반복된 의례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충분히 드러냄을 허용하고 권장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의례를 통해 참가자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공동체성을 회복시키면서, 유족들에게 자신들이 혼자가 아니며 다함께 애도하는 무리라는 심리적 일치감을 주어 애도를 상당히 진전시킨다"며 "이 방식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는 이유는, 유족들은 무엇보다 자신들의 이야기가 잊히고 묻히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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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교회 10년을 말하다 김포 커넥션교회

    다양한 문화 콘텐츠, 젊은 부부 사로잡았다



    ▲김성호 목사가 경기도 김포시 커넥션교회에서 카페 목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커넥션교회는 일반인을 위한 문화 행사와 놀이방이 있는 카페 등으로 주목받고 있다. 김포=전호광 인턴기자

    경기도 김포시 김포한강로 한강프라자 건물 9층. 탁 트인 한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쪽 벽에는 책들이 빼곡하게 정리돼 있어 북 카페를 연상시킨다. 미끄럼틀, 장난감, TV 등이 있는 23.1㎡(7평)의 놀이방도 있다. 231㎡(70평)의 카페엔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와 어린이가 많았다. 김포 커넥션교회(김성호 목사)의 평소 모습이다.

    ◇전도 패러다임 바꾼 ‘토요 콘서트’ = 2013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가정지원센터를 빌려 주일 예배를 드리던 김성호(54) 목사는 주중 전도가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도 패러다임을 바꿀 생각으로 문화콘서트를 기획했다. 주일엔 개포동에서, 수요일엔 서울 청담동 카페 등을 빌려 예배를 드렸다. 음악 공연과 특강 등을 접목한 이 예배는 일반인에게도 인기가 높았다. 이 같은 노하우를 살려 2014년 5월 경기도 김포 신도시에 교회를 개척했다. 2년이 안 됐는데 교인 60여명이 모였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은 교회에 처음 나왔다.

    김 목사는 “카페교회로 성공하려면 반드시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며 “콘텐츠를 기획할 때 지역의 특성과 필요를 살피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교회는 비신자를 위한 문화 행사인 ‘토요 콘서트’를 진행한다. 지금까지 20여 차례 열었는데 매회 100여명이 참석할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김포 신도시에는 어린 자녀를 둔 젊은 부부가 많았다. 여기에 착안해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샌드아트’나 설명이 있는 클래식 콘서트, 인디밴드·재즈·크리스마스 공연 등을 기획했다. 엄마를 위한 ‘리빙스쿨’과 자녀 교육, 커피 강의 등 다양한 주제의 행사는 물론 벼룩시장도 진행한다.

    김 목사는 “콘서트 등에선 직접적으로 복음을 얘기하지 않지만 관객을 섬기는 마음으로 공연을 준비하다보면 자연히 느끼고 감동하더라”며 “공연 일정이 정해지면 문자로 공연 정보를 안내하고 공연 후엔 이곳이 교회라는 것을 설명한다”고 말했다.

    ◇지역 주민 기호에 맞춘 서비스 제공 = 자녀를 둔 부모는 ‘놀이방’ 때문에 카페교회를 찾기도 한다. 이 놀이방은 1991년 KBS 대학개그제 1기로 데뷔한 개그맨 출신 전효실(44) 사모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방음시설을 갖춘 놀이방 덕분에 육아에 지친 엄마들은 편하게 쉴 수 있다.

    이 카페 교회 벽면은 ‘미니 갤러리’를 연상시킨다. 사진 속 주인공은 대부분 아이들이다. 사진 감상을 하면서 주일예배 안내판과 성경구절도 볼 수 있도록 시선을 유도했다.

    ‘사진 주보’도 눈길을 끈다. 김 목사 부부는 주중에 출석 교인을 대상으로 주보에 넣을 사진을 선정한다. 이 사진으로 전시도 한다. 주보가 인기를 끌자 자신의 아이 사진을 주보에 올려달라고 하는 요청이 많다.

    ◇카페교회, 일반 카페의 수준 이상이 돼야 경쟁력 있어 = 김 목사는 “카페교회 사역을 하려면 카페 인테리어, 분위기를 수준 높게 유지해야 한다”며 “사람들이 반할만한 공간으로 카페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부는 카페의 작은 소품도 발품을 팔아 구입하는 등 인테리어에 공을 들였다. 음료와 디저트 등 메뉴 연구에도 힘쓴다. 카페 일이 곧 교회 사역이기 때문에 작은 것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주일 예배는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하는 ‘통합 예배’로 진행된다. 교인 김보영(34·여)씨는 “많이 우는 아이는 놀이방에 있지만 대부분의 교인은 자녀와 함께 예배드릴 수 있는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간의 특수성 때문에 주중에 기도하고 찬양하는 모임은 쉽지 않다. 콘서트를 자주 개최하는 카페이다 보니 전문적인 음향 시스템과 조명, 넓은 공간 확보도 고민거리다.

    김 목사는 “카페 교회를 개척하고 싶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하고 카페 운영의 전문성, 열정 등을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한다”며 “카페교회는 주민을 만나는 최적의 공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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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 성노예 탈출 여성 “우리는 계속 죽어가고 있다”

    국제사회에 적극적 대처 촉구



    ▲작년 12월 유엔 안보리에서 IS의 폭력성을 증언했던 나디아 무라드의 모습. ⓒ유튜브 영상 캡쳐

    IS 대원들에게 가족을 잃고 성노예로 끌려갔다가 탈출한 여성이 자신이 당한 끔찍한 고문과 학대에 대해 증언하며 IS의 폭력성을 고발했다.

    영국을 방문 중인 나디아 무라드(Nadia Murad·21)는 지난 14일(현지시각) 미러(Mirror)지와의 인터뷰에서 "IS 대원들은 우리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여섯 명의 오빠들을 죽였고, 이어 어머니를 끌고 가서 죽였다. 나는 5천 명의 다른 야지디 여성들과 함께 성노예로 팔려갔다"고 했다.

    그녀는 "그들은 나를 모술로 데려가 강간했다. 밤이 되자 폭행하기 시작했고, 옷을 벗으라고 하더니 경비원 방에 밀어 넣었다. 그들의 악행은 내가 정신을 잃을 때까지 계속됐다. 이 같은 경험은 어머니와 오빠를 잊어버리게 할 정도로 끔찍했다"면서 "9세 정도 되는 소녀들이 성노예로 팔리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지금도 야지디족 여성 2천여 명이 단돈 10달러나 담배 10개비에 거래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여성을 상대로 저지른 일은 죽음보다 더 끔찍했다며 "1년 반이 지났으나 야지디족들을 상대로 한 대량 학살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의 곤경 앞에 세계가 침묵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무라드는 성명을 통해 "정부는 방황하는 이들을 보호하는 데 실패했다. 전 세계가 '범죄자'들인 IS에 맞서 일어서 줄 것을 요청한다. 나만을 위해서가 아닌, 전쟁의 영향을 받는 모든 여성들과 아이들을 위해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IS로 인해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쫓겨나 난민이 되었으며, 수천 명의 군인들과 시민들이 살해당했다. IS에게서 탈출한 많은 여성 희생자들 중 일부는, IS에 대적하기 위해 여성 민병대를 결성했다. 폭스뉴스는 "지난주부터 모술의 IS에 대항하기 위해 17~37세 야지디족 여성 수백 명이 '태양의 여인'(Sun Ladies) 민병대가 되어 훈련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모술 지역은 특히나 성노예들이 많다. 최근 몇 주간 IS에게서 탈출한 여성들이 증가하면서 이미 123명의 여성이 훈련을 마치고 전선에 투입됐으며, 새로 모집된 500여 명이 훈련 대기 중이다. 이 부대를 이끄는 카툰 카이데르 대위는 이라크 두호크에 마련된 임시 기지에서 진행한 폭스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신자르 탈환 당시에는 우리가 지원 부대로 활동했으나, 모술 탈환은 '실전'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유엔은 내전이 한창인 이라크에서 야지디족을 상대로 자행되는 IS의 범죄를 사실상의 대량 학살로 규정했다. 또한 이 문제를 논의할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 IS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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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회자가 월요일에 설교를 준비해야 하는 5가지 이유



    ▲톰 S. 레이너 박사.

    미국 라이프웨이연구소(Lifeway Institute)의 톰 S. 레이너 박사는 최근 크리스천포스트에 ‘목회자가 월요일에 설교를 준비해야 하는 5가지 이유’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레이너 박사는 칼럼에서 “나는 목회자들에게서 이야기를 듣는 것과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배우고 들으면서, 또한 블로그를 방문하는 여러분과 정보를 나누고 싶은 열정이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최근 많은 목회자들에게서 ‘설교 중 많은 부분을 월요일에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들었다. 물론 이러한 접근이 모든 목회자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목회자들이 월요일을 설교 준비에 있어 가장 중요한 날로 여기는 이유’를 배우는 것은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5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1. 목회자들의 주간 사역은 정신이 없고, 예상할 수 없다.

    주중에는 목회자들이 설교 준비에 방해를 받을 수 있는 일들이 많이 발생한다. 많은 목회자들이 반드시 가능한 빨리 설교 준비를 해야 하는 이유다.

    2. 목회자의 사역에 있어서 우선순위를 반영한다.

    설교를 월요일에 준비하는 것은, 그들의 사역에 있어서의 우선순위를 반영한다. 준비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 못할 수도 있는 주말까지 기다리기에는 설교가 너무 중요하다.

    3. 주중에 설교를 보다 정교하게 가다듬을 수 있다.

    만약 월요일에 설교의 많은 부분이 준비된다면, 목회자들은 주중에 본문을 수정하거나 내용을 덧붙일 수 있다. 이러한 선택은 특별히 ‘토요일 저녁’에는 불가능하다.

    4.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목회자들의 삶은 스트레스로 가득하다. 금요일이나 토요일까지 완성되지 않은 설교는 스트레스를 더할 수 있다.

    5. 지난주 설교에 대한, 더 나은 지속성을 제공한다.

    주일 설교는 다음 날인 월요일까지 새롭다. 만약 두 설교 사이의 연결 고리가 필요할 경우, 월요일에 설교를 준비하는 것은 시간상 근접성을 제공한다.

    레이너 박사는 “월요일에 설교 준비에 심혈을 기울이는 많은 목회자 여러분이, 그 이유를 우리와 공유해 주기를 바란다. 다른 접근 방법을 가진 목회자들이 있다면, 그분들도 그 이유를 우리에게 알려 주시면 좋겠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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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천 사건 가해자 목사 부부 살인죄 적용 서울신대,

    대국민 사죄 성명 발표…잘못된 정보로 인근 교회 협박 피해
    최승현 기자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부천 사건 가해자인 A 씨와 B 씨 목사 부부에게 살인죄가 적용됐다. 2월 12일 부천소사경찰서는 보도자료를 통해 C 양 사망 1주일 전 A 씨 부부가 딸 C 양이 헌금을 훔쳤다고 의심해 실신할 정도로 폭행했고, 사망 당일에도 7시간 동안 70여차례 때렸다는 A 씨 부부의 진술을 공개했다.

    경찰은 A 씨 부부에게 미필적고의가 있었다고 보고 살인죄를 적용해 12일 검찰로 송치했다. 이들 부부는 현재 유치장에 수감돼 있는 상태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C 양의 의붓 이모에게는 상습 아동 학대 혐의를 적용했다.

    A 씨가 겸임교수로 일했던 서울신학대학교(서울신대·유석성 총장)도 2월 12일 이번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서울신대는 소속 교수가 비극적 사건에 연루된 것에 대해, 학교 구성원을 포함한 모든 분들에게 사죄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서울신대는 이번 사건에 충격 받은 학생과 교직원, 교인들을 위해 학생상담센터를 통한 특별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근 지역의 학대 아동을 위해 '긴급아동구호센터'를 설립하는 대책도 마련하겠다고 했다. 향후 강사 채용 시 검증 절차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A 씨 신상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뜻하지 않은 피해자도 생기고 있다. 이번 사건에 공분한 네티즌들이 A 씨 교회에 항의 전화를 걸고 있는데, 포털사이트에는 다른 교회 번호가 잘못 등록돼 있는 것이다.

    부천 ㅊ교회 관계자는 "네이버와 다음에 올라 있는 A 씨 교회 정보에 우리 교회 전화번호가 올라 있다. 일부 네티즌들이 우리 교회가 가해 목사의 교회인 줄 알고 '목사들 다 불태워 죽여야 한다'며 지속적으로 협박 전화하고 있다"고 피해를 호소했다. 현재는 해당 교회 정보가 정정된 상태다.



    ▲ 서울신대는 2월 12일 성명을 내고 이번 사건에 대해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향후 대책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서울신대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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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님, 저는 전도한 적 없어요"

    그리스도인으로서 복음을 외치기 전에 갖추어야 할 것들
    박상현

    박상현의 누군가를 위한 '사이다'
    연재를 시작하며…

    나는 신학 박사도, 선교학 박사도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장로교회에 다니다가 20여 년을 감리교에서 신앙생활을 했으며, 성결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던 성도다. 신앙의 배경이 이렇다 보니 교단은 어디인지, 신학은 어디서 했는지, 어떤 특정한 교단 스타일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나는 유치원 시절부터 태권도를 시작하여 평생을 체육관에서 땀에 절은 도복을 입고, 먼지 때가 가득 붙은 발바닥을 털어 가며 퀴퀴한 땀 냄새와 함께 뒹굴었다. 나는 평생을 체육관에서 보낸 체육인이면서 연예인과 정·재계 인사들의 경호원으로 오랜 시간을 보낸, 직장 생활의 쓴맛과 단맛을 모두 경험해 본 사회인이기도 하다.

    내 글에는 성경 구절 인용도 없고, 뛰어난 글쟁이들의 화려한 비유도 없다. 평신도 선교사로 살아가면서 선교지에서 느낀 소회들이나, 평생을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 있으면서 깨달은 것들을 솔직하게 적을 뿐이다. 다만 이 글이 기독교인, 비기독교인 모두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 되길 소망한다. - 필자 주

    (박상현 선교사 인터뷰 바로 가기)

    "교회는 보수적이고, 확실하며, 도덕주의적인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경향이 있다. 음탕하고, 자유분방한 자들, 혹은 상처 입고 소외된 사람들은 교회를 피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한 가지뿐이다. 우리 목사들의 설교와 성도들의 행동이 예수가 사람들에게 미쳤던 그런 영향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목사와 성도들이 예수가 선포했던 것과 동일한 메시지를 선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팀 켈러(Timothy Keller) 목사가 [역간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베가북스)]에서 외친 이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이 그만 욕먹게 하는 것도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많은 성도들은 새로운 신자를 교회로 인도하는 것보다, 교회에서 상처받거나 실망하여 떠난 이들을 다시 교회로 인도하는 것이 확실히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교회에 데려다 놓으면 교회 공동체가 다 알아서 해 줄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새로운 신자를 찾기 바쁘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 당연히 둘 다 중요하다. 하지만 백날 "선교해야 한다", "예수천당 불신지옥" 외쳐 봤자 스스로 '크리스천'이라 고백하는 우리 삶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보기에 최소한 도덕적이거나 윤리적, 또는 상식적이지 않으면 아무리 당신이 목사이건, 선교사이건, 장로이건, 집사이건 당신의 직분과 직책이 소용없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게 뭘까

    지하철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 피켓을 들고 외치면, 그것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교회로 사람들이 찾아오던 시절이 있었다. 분명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부흥하던 1970~1980년대 한국교회는 학생과 청년들로 넘쳐 났다. 교회는 뜨거웠고 성도는 열정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부흥의 시기를 체험했던 세대는 장로와 권사가 되었는데, 그들의 자녀는 어디에 있는가. 여전히 우리는 부흥했던 과거 모습들만 회상하며 한국이 세계 최빈국에서 10대 경제 대국으로, 세계 최대 교회 건축물이 있는, 선교사 2만 명을 파송하는 나라로 성장했다고 스스로 칭찬하기 바쁘다.

    어떤 선교사를 보내고 있으며 어떤 선교사를 보낼 것인지, 세계에서 제일 큰 한국의 교회들이 어떻게 교회로서 기능하고 있는지, 경제 대국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고 있는 크리스천 리더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제는 지난 일을 자화자찬하지 않고, 어떻게 후손들에게 참된 믿음을 물려줄지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교회에 학생이 없다. 청년이 없다. 얼마 전 자체 기도원을 보유하고 있는 서울의 중형 교회 학생부 수련회에 갔는데, 참석 인원이 13명이었다. 담당 전도사에게 물어보니, 성도가 1,000명에 육박하는데, 교회 집사도 자녀들을 수련회에 안 보낸단다. 학원 스케줄 때문에.

    교회를 떠났거나, 예수를 믿지 않는 대부분의 비기독교인이 기독교 안티가 되어 가고 있다. 사역을 위해 희생당했던 목사와 선교사의 자녀들은 부모를 본받아 같은 길을 걷는 게 아니라, 죽어도 그 길은 안 가겠다고 마음먹는다. 왜 그럴까. 이 땅의 교회가 욕을 먹는 이유, 예수님이 오해받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래 전, 고 옥한흠 목사가 설교 시간에 나누었던 유명한 일화가 생각난다. 인도를 식민 지배하던 영국이 간디의 비폭력운동 앞에 무릎 꿇고 철수할 때, 간디가 그들을 향해 외쳤단다. 당신들이 믿는 예수는 가져가고, 성경 속의 예수는 두고 가라고. 그들이 믿는 예수는 그들이 만든 예수였지 성경 속 예수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 후 인도에서 사역하던 서양 선교사가 간디에게 찾아가서, "인도에 힌두교가 이렇게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기독교도 그렇게 될 수 있겠습니까?" 물었다고 한다. 간디는 이렇게 답했다.

    "첫 번째,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답게 사십시오. 두 번째,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세 번째,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이 이야기를 듣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게 도대체 뭘까' 한참 생각했다. 하루도 안 빠지고 새벽 기도회에 나가고, 꼬박꼬박 십일조를 내며, 주일 성수는 당연지사, 주차 봉사와 식당 봉사를 하고, 주일학교 교사와 성가대 등으로 교회를 섬기는 모습.

    자신이 섬기는 교회 안에서 어마어마한 헌신과 봉사,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김 집사가 있다. 늘 "난 이렇게 봉사했어", "난 이만큼이나 헌금했어", "나만큼 헌신한 사람도 없을 거야", "이 정도면 충분해". 그렇게 자기만족에 빠져 천국에 가기 위한 보험으로 교회에 다니는 김 집사. 그런데 어느 날 수요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로 향하는 김 집사에게 직장 상사가 이렇게 묻는다.

    "어이, 김 부장 교회 다녔어?"
    "…아, 네."

    내가 속해 있는 가정과 직장, 그리고 어떤 공동체든 내 삶이 그들과 구별되지 않으면 세상은 절대 우리 삶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구별된 삶은, 늘 성경을 들고 다니고, 술잔이 오가는 회식 자리와 모임은 무조건 피하며, 믿지 않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비기독교인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면서 교회에 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고, 예수님이 궁금해져야 한다.

    어떻게 그런 일이 우리 삶에 일어날 수 있을까. 늘 믿는 사람들과 밥 먹고, 믿는 사람들과 영화 보는 등, 믿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영향을 준단 말인가. 이런 고민이 있기는 한가.

    살면서 실수도 할 수 있고, 실패도 할 수 있다. 스스로 도덕적이지 못하게 살 수도 있는데, 비판과 정죄도 구분 못하고, (내 머릿속에 넣어 둔) 내게 유리한 성경 말씀을 앞세워 습관처럼 정죄하기 바쁘지 않았는가. 그런, 사람들을 이해 못하는 다양성이 기독교인들에게 부족하다는 생각을 나만 가지고 있을까.

    "목사님, 저는 교회 가자고 한 적 없어요"

    복음을 외치기 전에, 성경을 들이밀기 전에, 그리스도인으로서 꼭 갖춰야 할 게 있다. 최소한 도덕적이고, 상식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기본적인 인격과 소양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다. 기독교인이라고 티를 내고 살았던 당신이 비상식적일 때 욕은 하나님이 먹는다. 오해는 예수님이 받는다.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연예인들이 많이 모이는 한 교회의 예배를 영상으로 본 적이 있다. 예배를 마치고 그들을 불러내 토크 콘서트를 했다. 진행을 맡은 목사가 한 배우에게 묻는다.

    "A 자매는 어떻게 교회에 나오게 되셨어요?“
    "저는요. B 언니처럼 살고 싶어서요.“

    목사가 B 자매에게 어떻게 전도했느냐고 묻는다. B 자매의 대답이 가관이다.

    "목사님, 저는 전도한 적 없어요. 복음을 전한 적도 없고요. 교회에 가자고 한 적도 없어요."

    이 영상을 보는데 내 자신이 한참 부끄러웠다. B 언니처럼 살고 싶어서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B 언니가 믿는 하나님이 궁금해 예배에 참석하다가 믿음이 생기고 신앙생활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 삶에 이런 일들이 얼마나 일어나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효과적인 선교, 100번 1,000번 생각해도 가장 효과적인 전도는 당신의 삶을 통한 선교, 당신의 행동을 통한 전도다. 그렇다면 비기독교인에게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까. 오래 전 TV에 방영된 '양심냉장고'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사회에 있는 많은 법칙 중 우리가 당연시 생각하고 잘 안 지키는 규범을 찾아, 그 규범을 지키는 양심적인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프로그램이었다. 실패할 것 같았던 '양심 냉장고'는 국민들의 엄청난 호응을 받으며 큰 성공을 거뒀다. 누가 보지 않아도 양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보면서 국민들은 감동을 받았다. 희망도 보았다. 무엇보다 시민들에게 질서를 지키는 것에 대해 큰 동기 부여를 해 주었던 프로그램이다.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양심 냉장고'를 받은 사람들의 종교를 통계 냈는데, 50명 중에 49명이 기독교인이었더라. 추위에 벌벌 떠는 노숙인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 주는 시민을 몰래 촬영하여 통계를 내 봤더니 10명 중 9명이 기독교인이었더라. 한 지역의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 찾아와 말동무가 되어 주고 물심양면 도움을 준 이웃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더라….

    만약,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면. 우리 주변에서 교회를 비판하고 예수님을 오해했던 사람들의 마음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할 것이다.

    '아, 역시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르구나.'

    그냥 그리스도인이어서는 안 된다

    늘 가시적인 성과를 쫓고 거대한 숫자의 구렁텅이 빠져 있는 우리에게 이런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볼 수 있는 능력(분별력)이 있다면.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고, 너무 느린 방법 같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확신하건대, 교회를 욕하던 많은 비기독교인의 생각이 변하고 그들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에겐 예수님이라는 좋은 롤모델이 있지 않은가.

    남들이 다가가지 못하던 나병환자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었던 예수,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소외된 자들에게 다가갔던 예수. 자기 뜻대로 안 된다고 하나님께 대들었던 요나를 보고, 오히려 넝쿨로 그늘을 만들어 준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통해 당신께서 창조한 피조물을 향한 셀 수 없는 사랑을 보여 주셨듯이, 우리도 무언가 보여 주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그렇게 인간의 몸으로, 우리들 곁에서 삶으로 보여 주셨던 것처럼. 우리 주위의 수많은 비기독교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목사가 되기 전에, 선교사가 되기 전에, 장로·권사·집사가 되기 전에 갖추고 점검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껍데기만 그리스도인이 아닌,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학부에서 태권도와 신학, NGO를 공부하고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글로벌거버넌스(Global Governance)를 전공한 박상현 선교사는 인생에서 하나님께 젊음을 드리는 것을 소중한 가치라 여긴다. 박 선교사는 20대에 선교지에 가기 위해 할렐루야태권도선교단 활동을 하며, 29개의 자격증을 취득하고 12번의 선교 훈련을 받은 열혈 청년이다.

    지금은 GMP개척선교회 소속으로 탄자니아에서 태권도 국가대표 코치를 하며, 할렐루야태권도단을 창단하여 태권도를 통한 선교로 탄자니아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아내 박새롬 선교사와 두 딸 예나, 조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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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장로교회 첫 찬송가 편찬 과정

    1894년 언더우드 <찬양가>가 나오기까지, 초기 한국교회 '찬송'의 역사
    옥성득

    지난주에 두 개의 블랙홀이 만나면서 발생한 중력파(gravitational wave)를 들었다. 태초에 발생한 우주의 소리, 곧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다. 서양 기독교음악과 한국 음악 문화가 처음 만났을 때 만들어진 첫 찬송가 소리는 어땠을까?

    초기 한국교회는 각 교파별로 전용 찬송가를 한문 찬송가와 영어 찬송가에서 번역하고 편찬하여 사용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1912년까지 발행된 찬송가는 연대순으로 다음과 같았다. 이 가운데 1894년 언더우드의 <찬양가>만 비공식적인 개인본이었고, 나머지는 각 교파 선교회가 공인한 찬송가였다.

    감리회, <찬미가>, 1892
    장로회, <찬양가>, 1894 → <찬셩시>, 1895
    침례회, <복음찬미>, 1899
    성공회, <셩회숑가>, 1903
    성결교회, <복음가>, 1907
    안식교회, <예수재강림찬미가>, 1911
    구세군, <구세군가>, 1912

    1905년 장로회와 감리회 연합 운동의 결과 1908년 장감 연합의 <찬숑가>가 출판되었다. 이로써 '하나의 성경, 하나의 찬송'이라는 연합 전통이 장감 두 교단 사이에 만들어졌다. 따라서 찬송가집 없이 찬송하던 시기(1892년 이전)를 지나 1892년부터 1912년까지 20년간을 교파별 찬송가의 정착기로 볼 수 있다.

    그 당시 찬송가들에는 교파성, 번역성, 선교사 주도의 편집 등의 특징이 있었다. 물론 1931년부터 1967년까지 발간된 찬송가들과 비교해 보면, 1912년 이전에 오히려 한국인이 작사한 찬송, 한국 음계의 찬송, 한국 가사나 시조 전통을 잇는 4‧4조 가사, 전통 종교 용어 사용 등에서 토착화를 위해 더 많이 노력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초기 찬송가 편찬, 발간의 역사는 사실 서양 기독교음악이 한국 문화과 처음 접목하는 과정이었다. 이 부분은 음악사와 교회사 전문가들이 합력하여 종합적인 연구를 심화해야 할 분야이다. 특히 번역과 편집 측면에서 영미 찬송가의 영향뿐만 아니라, 배후에 많은 영향을 준 한문 찬송가들과 독일 찬송가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1894년 언더우드의 <찬양가>가 편찬되어 나오기까지, 장로교회에서 어떻게 찬송을 번역하고, 배우며, 예배 시간에 사용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감리교회는 다음 회에 다루겠다.

    정동장로교회가 쓴 족자 찬송가

    1887년 가을 서울에 한국교회들(새문안교회와 정동제일교회)이 탄생하자 처음에는 한문 찬송가에서 번역한 가사를 필사하거나 예배용으로 큰 한지에 한 장씩 써서 족자 찬송가(scroll hymns)를 만들어 넘기면서 불렀다. (시골에서는 1960년대까지 이런 차트 찬송가를 이용했는데, 책이 부족한 시절이라 주일학교에서는 거의 차트에 가사만 쓴 찬송을 보고 풍금 반주에 따라 불렀다.)

    당시 한국어에 가장 능한 언더우드가 모두 번역한 찬송들이었다. 선교사가 치는 풍금에서 나오는 생소한 서양 음계와 리듬에 낯선 가사였지만, 교인들은 온 마음을 다해 뜨겁게 불렀다. 감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더우드 <찬양가>(1894년) 서론을 보면, 최초의 찬송가집인 감리회의 <찬미가>(1892년)에 실린 27곡은 당시 번역되어 불리던 찬송을 모은 것이었고, <찬양가>에 수록된 50여 곡은 당시 장감 양 선교회에서 사용하던 찬송가를 모아 수록한 것이었다. <찬미가>의 27곡이나 <찬양가>의 50곡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여러 자료를 통해 일부는 알 수 있으며, 대부분이 언더우드 번역이었다.

    언더우드 찬송가 번역, 선교사들 찬송 지도

    언더우드는 예배용 찬송가가 필요해 출판을 서둘렀다. 1888년 말 출간을 목표로 언더우드는 찬송가를 번역하고 편집하고 있었다.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작은 찬송가를 출간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꼭 출판되어야 합니다." (Underwood to Ellinwood, Aug. 14, 1888.)

    언더우드는 찬송가 편찬뿐만 아니라, 여러 사경회에서 매일 한 시간씩 찬송 부르기를 가르쳤다. 메일 양이 풍금 반주를 하면 헐버트 부인과 하이든이 노래하고, 회중이 따라 부르도록 언더우드가 지도했다.

    "언더우드 씨는 지금 과로하고 있습니다. 권서들과 교사들이 지방에서 올라와서 현재 2주째 있는데, 그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을 따라 기독교 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는 오전과 오후에 수업이 있으며, 물론 매일 그 다음 날 가르칠 것을 시간을 들여 준비해야 합니다. 그는 매일 한 시간씩 (헐버트 부인과 하이든, 그리고 친절하게도 오르간을 쳐 주는 메릴의 도움을 받아) 그들에게 찬송가를 가르치는데, 물론 한국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Lillias Horton to Ellinwood, Dec. 22, 1888.)

    1888년 12월 중순부터 이듬해 1월 중순까지 언더우드의 사랑방에서 한 달 동안 열린 한국 장로교 최초의 신학반이자 사경회에서였다. 여러 지역의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서상륜(서울), 서경조(장연), 최명오(장연), 한석진(평양), 김종섭(평양), 백홍준(의주), 김관근(구성), 양전백(선천) 등이 참석했다. 간단한 신학 체계와 찬송 부르기, 예배 인도, 설교, 성경 낭독, 기도하는 법 등을 배웠다. 1901년에 시작된 평양신학교의 전신이었다.

    이 사경회에서 매일 한 시간씩 세 명의 여자 선교사와 언더우드가 함께 서양 찬송가곡을 따라 부르게 했다.

    주 교사는 파크대학(Park College)을 졸업하고, 1888년 11월 15일에 내한한 하이든(Mary E. Hayden, 1857~1900, 1890년 기퍼드 목사와 결혼)이었다. 그녀는 서울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노래는 가르칠 수 있었다.

    "하이든은 (중략) 학교 일뿐만 아니라 신학반에서 찬송 부르기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일은 처음에는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Underwood to Ellinwood, Jan. 9, 1889.)

    하이든은 정신여학당을 맡아 교사로 봉사하면서 찬송을 가르쳤다. 당시 언더우드는 헐버트와 함께 사냥을 갈 정도로 가까웠는데, 헐버트 부인이 언더우드의 사경회에서 찬송을 지도했음을 알 수 있다.

    신학반 사경회에 참석한 조사, 권서, 교사들은 1개월간 매일 한 시간씩 찬송 부르기를 배웠기 때문에 1889년부터 각 지역 교회에서도 족자로 찬송가를 만들어 예배 시간에 사용할 수 있었다.

    1888년 12월 23일은 주일이었고, 정동장로교회 예배 시간에 11명이 세례를 받았다. 예배실은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가득 찼다. 한국인 교인들은 이미 한국어로 마음을 다해 찬송을 크게 부르고 있었다.

    "예배는 한국어로 개회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진실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느꼈다. 이어서 우리는 마음과 영혼을 다하여 한국어로 '여호와의 영상 앞에'를 '올드 한드리드' 곡조로 불렀다. 찬송이 끝나자 다섯 명의 한국인이 일어나서 구세주에 대한 신앙을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세례를 받았다.

    기도에 이어 성경 본문 에스겔 33장이 낭독되었고 '우리 주 가까이'를 함께 찬송했다. 이어 내가 '파수꾼의 의무와 책임' 곧 '우리 할 본직분'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설교가 끝나자 아펜젤러 목사가 올링거 씨의 도움을 받아 성찬을 분배했다. 진실로 감동적인 예배였다." (Underwood, "Korea,"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 [June 1889], 457; 참고 Underwood to Ellinwood, Dec. 23, 1888.)

    여기서 우리는 영국 찬송가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와츠(Isaac Watts)가 쓴 유명한 '여호와의 용상 앞에'(Before Jehovah's Awful Throne)와 메이슨과 아담스(Lowell Mason, Sarah F. F. Adams)가 쓴 '우리 주 가까이'(Nearer my God to Thee)가 이미 1888년 12월에 번역되어 불렸음을 알 수 있다.



    ▲ '여호와의 용상 앞에'와 '우리 주 가까이' 악보

    전자는 <찬양가>에 제6장으로 수록되었고 7절까지 가사를 실었다. 후자는 제81장으로 4절까지 가사를 실었다. 이 두 곡은 <찬미가>(1895)에도 각각 제10장과 제51장으로 재록되었다. 따라서 최소한 1888년부터 정동에서 장로교회와 감리교회에서 예배 시간에 부른 첫 찬송은 이 두 노래였다.

    1890~1892년 번역 찬송들의 개정

    언더우드는 1890년 말과 1891년 초에 여러 소책자를 번역하면서 찬송가도 계속 한문과 영어에서 번역했다. "나는 찬송들을 개정하고 몇 곡을 더 번역했는데 한두 곡을 더 추가해서 아마도 내년에 출판할 것입니다." (Underwood to Ellinwood, Feb. 27, 1891.) 찬송가 한 장 번역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1891년 2월 연례 회의 자신의 문서 사업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지난 1년간 다른 일을 하면서 틈틈이 상황이 허락하는 대로 여러 새 찬송들도 번역했으며 이전에 번역한 찬송들은 조심스럽게 수정했는데, 상당히 많은 시간을 찬송가 준비에 사용했습니다. 이제 약 30곡의 찬송이 준비되었는데 대부분이 본국에서 널리 불리는 성가의 번역이며 나머지 몇 곡은 본토인이 작사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리듬과 박자 면에서 조심스런 개정이 필요합니다. 이 찬송들은 가장 이해하기 쉬운 용어를 채택하려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으며, 현재까지는 문어에 해당하는 문자(文字)인 한자어만을 사용했는데 용어를 이해할 수 있는 접촉점이 될 것입니다."

    언더우드는 선교회가 임명한 '편집위원회'의 일원으로 위원회 편찬본을 만들기 위해 1891년 2월까지 미국에서 널리 불리는 30여 곡을 번역했다. 몇 곡의 한국인 작사 찬송가도 포함시키고 있었다. 첫 찬송가 편찬부터 한국인이 작사한 찬송을 넣은 것은 그만큼 음률과 박자가 맞는 번역을 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언더우드는 1891년 3월 첫 안식년을 보내기 위해 한국을 떠날 때 그는 그가 만든 작은 찬송가를 편집위원회에 넘겨주었다. 그러나 2년 후 서울에 돌아왔을 때 그 찬송가는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었다. 여전히 예배 시간에는 족자를 보고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1893년 시작된 <찬양가> 편찬 작업…하ㄴ.님인가, 상주/텬쥬인가 용어 문제 점화

    1893년 5월 언더우드가 서울에 돌아오자, 편집위원회(마페트, 게일, 기퍼드)의 위원장 마페트 목사는 언더우드에게 찬송가 편찬을 일임했다. 감리교 찬송가 위원은 중국에 가 있었고, 위원회 일은 일반적으로 시간이 많이 걸렸다. 더욱이 찬송가가 즉시 필요한 상황이라 단독 추진을 부탁한 것이었다. 언더우드가 귀국한 후 몇 달간 집수리 때문에 벙커 부부 집에 머물렀는데, 이때 두 사람이 같이 찬송가 작업을 했다.

    언더우드가 안식년을 보낼 때 그가 번역한 찬송들을 편집위원들이 상당 부분 수정했다. 그러나 그 가사에는 일부 치명적 오류도 있었다. 예를 들면 '예수 사랑하심'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었다. "예수 나를 사랑하심 내 아네, 오 성경이 그렇게 말하게 / 어린아이들은 그에게 속하네, 예수가 피를 샀네." 바른 가사는 "예수 나를 사랑하심 내 아네, 오 성경이 그렇게 말하네, 어린아이들은 그에게 속하네, 예수가 피로 샀네"였다. 또 '주께로 더 가까이'에서 1절에 "십자가를 듣더라도"로 되어 있어 "십자가를 들더라도"로 수정했다. 언더우드는 이와 비슷한 여러 실수들을 개정했다.

    "나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주께서 나에게 한국어 찬송가 작업에 은사를 주셨고, 거의 모든 옛 한국어 찬송가는 내가 번역한 것이며, 그 일을 해 갈 때 찬송의 영이 내 속에 있는 것을 느꼈고, 새로 약 50곡을 추가하여 총 106곡의 찬송가를 가질 수 있었는데 대부분이 내가 직접 번역한 것이었습니다. 음악 전문가인 벙커 씨가 이번에 나를 도와주었습니다.

    나는 다른 선교회 회원들이 휴가를 즐기는 동안 밤낮 쉬지 않고 이 일을 했습니다. 출판비가 없는 것을 알고, 나는 전체 비용을 자비로 부담한 뒤 한국 선교 사업에 기부하려고 결정했습니다. 물론 출간되어 나왔을 때 그 수용 여부는 교회들과 선교사들에게 맡기려고 했습니다.

    감리교선교회는 그들의 찬송가위원회에 일을 중단하도록 지시할 정도로 나를 신뢰했고, 내가 교정지를 보내겠다고 제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절하면서 내 일이 제대로 되었을 줄 안다고 말했고, 출판된 찬송가를 감리교회 찬송가로 도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악보 출판비가 비싸서 1,000부를 찍는 데 은화 250불이 듭니다. 나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습니다. 나는 개정 찬송가를 회람시켰고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Underwood to Ellinwood, Oct. 28, 1893.)

    이미 일본 인쇄소에 원고를 넘기고 자비로 출판에 들어간 상태에서, 북장로회 편집위원회는 언더우드의 <찬양가>를 채택하지 않기로 했다. 그 결정에 북감리회도 동참했다. 언더우드에게 편찬을 일임하고 공식 찬송가로 채택하려던 두 선교회가 돌아선 것은 용어 문제 때문이었다. 곧 언더우드가 하ㄴ.님을 거부하고 대신 상주, 상제, 여호와만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한국에서 용어 문제가 점화되었고 이후 10년간 언더우드와 다른 선교사 간의 논쟁이 지속되었다.

    1893년 인쇄소에 넘겨 1894년 초에 출판…언더우드 일 처리 문제로 갈등

    서문을 완성한 시점은 1893년 9월이었다. 인쇄는 일본 요코하마에 있는 횡빈제지분사(橫濱制纸分社)에서 맡았다. 영문 서명은 , 발행처는 예수셩교회당(언더우드가 담임한 정동장로교회 내의 개인 출판사), 판매는 서울의 한미화활판소(The Trilingual Press)에서 맡았다.

    장로회의 찬송가 문제는 서울의 기퍼드 부인(Mrs. Gifford)과 평양의 리(Graham Lee) 목사에 의해 <찬셩시>(1895년)가 출판되면서 마무리되었다. 내한한 지 6년이 지난 기퍼드 부인은 음악과 노래에 소질도 있었고, 여자 선교사 중 가장 한국어에 능하고 번역에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찬송가를 번역했다. 리 목사 역시 음악에 능한 남자 선교사였다.

    언더우드는 서울에서 자신의 <찬양가>를 계속 사용했다. 1895년에는 개정판을 냈고, 1901년에는 악보 없는 판을 출판했다. 언더우드 입장에서는 한 선교사가 자비로 책을 출판할 자유가 있으며, 선교회가 그것을 막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선교회는 언더우드의 독불장군식 일 처리에 불만이었다. 1893년부터 마페트를 중심으로 한 평양 선교사들이 언더우드를 중심으로 하는 서울 세력을 견제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해방 이후까지 두 세력의 갈등은 계속되었고, 교파 분열까지 연결되었다. 더불어 오늘날도 찬송가 문제로 분쟁이 많다는 점에서 찬송가의 역사에 있는 어두운 면을 보게 된다.

    <찬양가>에 나타난 기독론, 구원론 중심의 찬양 신학…한국인 신자 작사한 곡도 수록

    찬양가 서문의 전반부는 언더우드의 찬양 신학이 드러나 있다. 그는 기독교만이 두려움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고 기쁘게 찬양하는데, 그 이유는 죄인으로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으나 예수의 대속적 죽음으로 용서함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들이 예수를 믿으면 참신 여호와를 주로만 알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는 아버지로 알 것이니, 이 생각을 하면 예배하러 올 때에 찬미할 수밖에 없고"라고 하여, 구약 시편 중심이 아니라, 신약의 기독론과 구원론 중심의 찬양을 지향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서문의 후반부다. 번역의 어려움을 말하고, 한국인 신자가 작사한 곡을 넣었음을 강조했다. 지금 맞춤법으로 고쳤다.

    "이 도는 조선에 온 지가 오래지 아니하니 외국 노래를 가지고 조선말로 번역하고 곡조를 맞게 하여 책 한 권을 만들었으니, 이 책에 있는 찬미가 다 한 사람이 번역한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번역하여 모아 둔 것이오, 또 이 중에 제4, 제29, 제38, 제61, 제93, 제113, 제115는 다 조선 사람이 지은 것이니, 그러나 곡조를 맞게 하려 한즉 글자가 정한 수가 있고 자음도 고하 청탁이 있어서 언문자 고저가 법대로 틀린 것이 있으니, 아무라도 잘못된 것이 있거든 말씀하여 고치기를 바라오며, 책은 잘못 지었을지라도 예배할 때에 이 책을 가지고 찬양하여 모든 교형들의 흥기하는 마음이 더 감동하기를 바라노라." - 칠월 이십칠 일 미국 목사 원두우 근서

    1894년 초에 출판된 언더우드의 <찬양가>는 악보가 있고 정식 체계를 갖춘 첫 찬송가였다. 이로써 오선 악보에 4성 음계가 표기된 서양 음악과 찬송가가 정식으로 한국에 소개되었다. 서문과 차례에 이어 천부 찬송(1~17장), 성자 찬송(18~54장), 성령 찬송(55~71장), 신도 생활(72~94장), 성회 찬송(95~117장) 등 5부로 편집하고, 부록으로 십계명, 사도신경, 주기도문, 색인, 영어 목록과 영어 서문을 붙였다.

    주목할 점은 약 10개의 찬송(4, 29, 38, 40, 61, 87, 93, 113, 114장)을 한국인 교인이 직접 작사하거나 한문에서 번안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115장 배단씨 십신가(培端氏 十信歌)를 한국인이 작사한 것으로 언더우드가 서문에서 밝혔고 흔히 그렇게 알고 있으나, 사실 배단은 중국 산둥에서 활동한 맥카티(Divie Bethune McCartee)의 한자명이었다.

    번역한 찬송가 제목은 영어와 한문으로 표기했는데, 이는 영어 찬송가와 중국에서 사용하던 한문 찬송가를 놓고 번역했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언더우드가 참고한 것이 분명한 네비어스(John L. Nevius) 편, <讚神聖詩(찬신성시) Zanshen shengshi [Hymns and Psalms]> (Shanghai: Presbyterian Mission Press, 1877)의 28장 '基督爲盤石(기독위반석)'(Rock of Ages)을 언더우드의 <찬양가> 36장과 비교하면 같다.



    ▲ 네비어스, <찬신성시>, 1877. 언더우드, <찬양가>, 1894.
    지금의 '만세 반석 열리니' 가사와 비교해 보면 상당히 다름을 알 수 있고, 그만큼 찬송가 가사 번역이 어려웠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면 한국인이 작사한 곡들을 살펴보자. 아직 한국인 작곡은 없었기 때문에 가사만 살피겠다.

    한국인이 작사한 찬송에 담긴 신앙고백…눈물의 빵 먹으며 기도한 성도 어찌 은혜를 잊으랴

    수록된 한국인 작사 찬송 가운데 처음 나오는 곡은 4장이다(맞춤법은 고쳤음).

    1절 이 세상을 내신 이는 여호와 하나뿐일세 / 천지 만물 내신 후에 일남 일녀 시조 냈네
    2절 오직 사람 귀하더니 마귀에게 미혹하였네 / 지옥고가 생겼으니 세세 자손 적악일세
    3절 착하신 여호와께서 자비지심 대발하사 / 성자 예수 탄생하니 십자가상 죽으셨네
    4절 이 은공이 크시구나 갚을 바를 모르겠네 / 일 년 일 차 성찬으로 그 큰 공로 잊지 마세
    5절 먹고 입고 쓰는 것은 은혜마다 감사하세 / 주색 간음 방탕 말고 일정지심 찬미하세

    창조, 타락, 구속, 예배와 성례, 성도의 생활이라는 각 절의 주제는 작사자의 복음적인 신학과 건전한 역사관과 세계관을 보여 준다. 4절은 목회자 부족으로 성찬식을 매년 한두 차례만 기념하던 상황을 보여 준다.

    성자 찬송(18~54장) 가운데 한국인이 작사한 두 곡은 그리스도의 속죄 은공을 강조한 후 예수를 따라 사랑과 도덕의 삶을 살 것을 강조한다. 38장의 1절과 3절을 보자.

    1절 우리 예수 큰 공로가 내 죄악을 모두 씻네 / 이 은혜를 생각하니 태산이 아주 가볍다
    3절 십계를 엄히 지키고 예수 행적 본을 받아 / 불쌍한 이 시사하고 병든 사람 치료하세

    성령 찬송인 61장의 작사자는 사후 천당을 바라보는 내세 신앙의 소유자이다.

    1절 예수의 높은 이름이 내 귀에 들어온 후로 / 전 죄악을 소멸하니 사후 천당 내 것일세
    2절 사람 육신 생긴 근본 생어토 귀어토 하네 / 가련하다 천한 몸을 조금도 생각지 말세
    3절 귀한 영혼 예수 따라 천당에 곧 올라가세 / 거기가 내 본향일세 착한 영혼 모였구나
    4절 지성으로 믿던 덕이 좋은 줄을 깨닫겠네 / 여호와와 동락하니 무궁무진 즐겁도다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천한 육신은 무시하고 천국에 갈 귀한 영혼을 위해 지성으로 믿는 공덕을 쌓아 영원한 천당의 복을 누리자는 내용은 영육 이원론과 타세 지향적인 신앙이 처음부터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동학혁명에 이어 청일전쟁이 진행되던 상황과 민중의 생활고를 생각하면 사후 천당을 바라던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93장은 그러한 교인들의 심정을 진솔하게 대변한다.

    1절 어렵고 어려우나 우리 주가 구하네 / 옷과 밥을 주시고 좋은 것을 다 주네
    (후렴) 어렵고 어려우나 우리 주가 구하네
    2절 우리 기도 다 듣고 항상 같이 있구나 / 우리를 자나 깨나 우리 주가 돌아보네

    한 벌 옷과 한 그릇의 밥을 놓고 감사 찬양하는 성도들! 고난의 시절을 잊은 세대는 다시 그 고난을 당한다. 눈물의 빵을 먹으며 기도한 성도가 어찌 주님의 은혜를 잊겠는가.

    1894년 애창곡 '하늘엔 곤찮고 장생불로'…처참한 현실에 지친 민중들 위로



    ▲ '하늘엔 곤찮고 장생불로' 악보

    혁명과 전쟁의 실존적 위기 속에서 살던 교인들의 신앙의 일면을 보여 주는 다른 찬송은 110장 '하늘엔 곤찮고 장생불로'이다. 이 찬송은 평양 선교사들이 만든 <찬성시> (1895)와 감리교의 <찬양가> (1897)에 재수록 되었는데, 청일전쟁 전후에 한국 교인들이 가장 애송한 찬송이었다. 사진에 1절이 있으므로 마지막 4절을 보자.

    4절 하늘엔 안 죽어 장생불로 / 생명을 안 끊어 장생불로 / 사람들 황천길 노소 없이 뫼로 가 / 하늘엔 무연세 장생불로

    기독교의 새로운 '영생' 개념을 도교의 '장생불로' 개념을 빌려 설명한 이 작가는 타 종교와의 접촉점과 유사성을 이용해 기독교 복음을 표현한 성취론자였다. 3-3-4조의 운율에, 첫 음절에 강세가 있고 전통 5음계와 비슷한 곡조여서 부르기 쉬웠다. 전쟁에 이어 콜레라가 창궐하면서 황천길 인생에서 천국 소망은 간절해졌고 이 노래는 애창곡이 되었다.

    동학 전쟁과 청일전쟁으로 들판에 널린 시체를 보다가 콜레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피난처를 찾았다. 심산유곡의 십승지지를 찾거나 십자기가 휘날리는 교회를 찾았다. 땅이 사람을 기르거나 먹이지 못하자 하늘을 찾아 호소하던 때였다. 그때에 개신교가 민중들의 심령을 천국으로 위로하고 영생의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1897년 <그리스도신문>은 기독교의 '영생'과 도교의 '장생불사' 개념이 다르다는 논설을 실었다. 곧 불사약을 먹고 신선이 되어 장생불사한 자는 없으므로 도교의 가르침이 헛되다고 비판했다. 또 영생을 주는 '약'은 신약과 구약밖에 없으며 그리스도 안에 부활의 영생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초신자들이 영생과 불로장생을 계속 혼동하자 1898년부터 이 노래는 찬송가에서 빠졌다.

    3장('닦은 마음 착한 행실'), 15장(영어 원문의 "엿새 일"을 "엿새 공부"로, "거룩한 의무"를 "착한 일"로 번역), 61장, 110장, 113장처럼 일부 찬송이 불교나 도교의 용어를 차용하여 새로운 기독교의 교리나 개념을 전달하려고 했다. 114장처럼 성경 말씀을 쉬운 한글 가사로 작사한 찬송도 없지 않았다.

    1절 만국 방언 다 잘하고 천사같이 강론한들 / 사랑 하나 없으면 헛것이요 쓸데없네
    4절 애주애인 못하면 바랄 것이 아주 없네 / 모든 은혜 풍부하나 사랑은 대신 못하네

    한글 운율과 서양 음계의 부조화…갓 쓰고 양복 입은 꼴, 1898년 이르러 해소

    언더우드는 서문에서 한글 운율과 서양 음계와의 부조화 문제는 계속 개선해야 할 과제라고 밝혔다. 21장 '예수 나를 사랑하오'를 음표대로 불러 보자.

    1절 예수나를 / 사랑하오 // 성경에말 / 씀일세
    어린아이 / 임자요 // 예수가피 / 로샀네
    (후렴) 예수날사 / 랑하오 // 예수날사 / 랑하오
    예수날사 / 랑하오성 / 경말씀 일 / 세
    2절 그임자돌 / 아가사 // 하늘문크 / 게여오
    내가사랑 / 하오면 // 하늘집에 / 같이가오

    반박자가 많아 빠르게 진행되는 리듬에서 두 음절 "하오"를 한 음에 발음하기는 쉽지 않았다. 또 1절과 2절의 2행에서 "성경에말/씀일세"나 "하늘문크/게여오"로, 후렴은 "예수날사/랑하오"로 통사적 의미가 분리된다. 리듬에 맞추기 위해 4-3조와 3-4조가 뒤섞여 있고 직역에 존칭어가 없는 번역 어투라 갓 쓰고 양복 입은 꼴이다.

    그러나 번역 어투와 음표에 따라 음절이 파편화되는 문제는 평양의 베어드 부인의 유려한 번역으로 이루어진 1898년의 <찬셩시>에 의해 해소되었다.

    1절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이네 / 어린 것이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후렴)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쓰셨네
    2절 저를 사랑하시니 저의 죄를 다 씻어 / 하늘 문을 여시고 들어오게 하시네

    이 4-3조의 가사는 120년 가까이 된 오늘까지도 사용되는데, 그만큼 한국어 운율, 행과 연의 첫 음절 강세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찬셩시>는 악보가 없었지만 예배 시간에 선창자가 부르면 회중이 따라 부르는 방식으로 쉽게 배울 수 있었다. <찬셩시>는 11판까지 출판되었고, 1908년 초판 6만 부가 발간된 첫 장로회와 감리회의 연합 찬송가인 <찬셩시>의 기초가 되었다.

    1907년 대부흥 이듬해에 나온 이 <통일 찬송가>(262곡)는 초판이 매진되면서 그 해에 6만 부를 재판으로 찍었고, 1910년까지 22만 5,000부, 이듬해 5만 부를 추가 발간하여 한글 보급, 근대 한국 음악 성립, 교회 일치 운동에 크게 기여했다. 1908년 이후 한국 장로회와 감리회는 연합 찬송가를 사용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지키고 있다.

    당시 한국인들은 어떻게 찬양을 불렀을까

    여전히 한국인들은 서양 음계가 생소했고, 찬송마다 박자나 음정에 상관없이 불렀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정동(새문안)교회와 곤당골교회에서는 예수학당의 학생들로 구성된 소년 찬양대가 이용되었다.

    "초등학교 소년들이 특히 찬송과 성경 읽기에서 나를 많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나는 또한 내 집에서 약 두 달간 단기로 여성 소그룹을 운영하고 일주일에 세 번씩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성경 공과와 네비어스 부인의 <예수교 문답>을 끝까지 가르치면서 두세 곡의 찬송을 가르치려고 의도했으나 질병으로 인해 중단했고 하나님의 때에 재개하기를 고대합니다." (언더우드 부인, "개인 보고서," 1894년 12월)

    곤당골교회에서 "에비슨 의사는 찬송을 인도하고 설교의 후반부 절반을 맡아 설교합니다. 매주일 아침 예배 때는 헌금 접시를 돌리는데, 소년들에게 일전이라도 연보하도록 격려합니다. 전 씨와 에비슨 의사가 제직회를 구성했습니다. 진지한 구도자들이 여러 명 있습니다. 학교 소년들로 소년 성가대를 조직했습니다." (언더우드, "서울 선교지부 전도 보고서," 1894년 12월.)

    이때 예수교학당에서 음악을 지도한 선교사는 밀러 부인이었다.

    "이상의 전도 집회에서 밀러 씨로부터 성경 진리를 잘 배우고 밀러 부인으로부터 노래를 배운 우리 학교의 소년들이 찬송과 전도로 좋은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들은 여러 예배를 훌륭하게 도왔고 그들이 종종 증거한 분명하고 직접적인 간증은 효과가 없을 수 없었습니다." (언더우드, "서울 선교지부 전도 보고서," 1894년 12월.)

    새 노래로 주를 찬양하자

    1894년이면 세례교인이라야 겨우 수백 명이었다. 백홍준, 서상륜, 서경조, 최명오, 한석진, 양전백 등 교회 지도자들도 믿은 지 10년 남짓이었다. 그때 그들은 구원의 기쁨을 새 노래로 고백했다.

    초대교회 교인들처럼 우리도 10년마다 혹은 20년마다 새 세대에 맞는 새 노래로 주를 찬양하자. 교회마다 10주년이나 20주년 단위로 기념 찬양을 새롭게 작사 작곡하자. 개인적으로도 신앙생활 10년마다 혹은 중요한 시점마다 새 신앙고백으로 새 찬양을 만들자. 우리의 목소리, 우리의 곡조, 우리의 운율로 된 '새 노래' (시편 33:3, 144:9, 149:1, 이사야 42:10, 요한계시록 14:3)를 만들어 주를 기쁘게 찬미하자. 천국에 가서도 부를 새 찬양으로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자.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시편 96:1)

    옥성득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UCLA) 아시아언어문화학과 임동순·임미자 석좌 부교수(한국기독교)이다.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와 국사학과를 졸업한 후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과 대학원을 거쳐 미국 프린스턴신학교와 보스턴대학교에서 기독교 역사를 공부했다. 2002년부터 UCLA에서 한국근대사와 한국종교사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 <한반도 대부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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