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교사 2만7205명…/ 사랑의교회 강남예배당을 가다 2016-01-08 11:32:48 read : 1647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한국 선교사 2만7205명… 171개국서 사역
2015 선교사 파송 현황
▲한국교회는 국내외 경제위기와 교회 정체 속에서도 꾸준히 선교사를 파송해 세계 복음화에 힘써왔다. 2012년 개최됐던 ‘선교한국 대회’에서 청년들이 세계 선교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전 세계에 파송된 한국 선교사는 지난해까지 총 171개국, 2만 7205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보다 528명이 증가했지만 10년 간 증가폭으로는 최저치를 기록했다. 또 복음화율 5% 미만의 미전도지역에 파송된 선교사들은 전년도에 비해 대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교사 절반 이상은 10개국에 집중돼 있어 선교사 ‘쏠림’ 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는 7일 서울 강동구 구천면로 명성교회에서 제26회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선교사 파송 현황을 발표했다. 집계는 교단선교부를 포함, 선교단체 234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이다. 그러나 노회나 개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들은 빠져있어 실제 활동중인 선교사는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KWMA 한정국 사무총장은 “발표한 수보다 1만명 정도는 더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는 2011년 2만3331명, 2012년 2만4742명, 2013년 2만5745명, 2014년엔 2만6677명이었다. 매년 1000명 이상씩 증가하다 3년 전부터 증가세가 둔화돼 500명대까지 떨어졌다.
이 같은 증가폭 감소세는 젊은 세대(20∼30대)의 지원이 줄었고, 은퇴 선교사가 증가하면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또 선교단체에 따라서는 선교사 자격 요건을 강화하면서 이름만 있는 선교사들은 통계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일부 단체는 75세 이상 선교사들도 제외했다고 KWMA 관계자는 전했다.
1000명 이상 선교사를 파송한 단체는 예장합동 총회세계선교회(GMS)와 예장통합, 감리회선교국 등 교단선교부였으며, 인터콥과 바울선교회, TIM, OM선교회 등 선교단체들도 상승세를 이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특정 국가에 선교사들이 몰려있는 현상은 여전했다. 10대 파송국가 현황(표 참조)에 따르면 전체 선교사의 절반 이상인 51.6%가 상위 10개국에 집중돼 있었다. 동북아 A국이 가장 많은 4162명의 선교사가 파송됐고 이어 미국 2668명, 필리핀 1672명, 일본 1494명, 인도 1059명 순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필리핀은 복음화율 15.5%가 넘는 ‘기독교국가’ 임에도 선교사 수는 전년에 비해 소폭 증가했다.
가장 많이 증가한 지역은 동남아시아로 229명이 더 파송됐다. 이는 아시아 지역이 지리적으로 한국과 가깝고 다양한 종교문화권이 분포돼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슬람권 지역에도 많이 파송돼 남아시아 94명, 중동 67명, 중앙아시아 59명이었다.
선교사들의 사역 내용으로는 교회개척이 압도적으로 많아 140개국에서 1만1579명이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제자훈련(142개국, 9033명) 캠퍼스(70개국, 2470명) 교육(78개국, 1418명) 순으로 나타났다.
한편 KWMA는 전세계한인선교기구연대(KAMSA) 발족을 위한 선포식을 갖고, 향후 전 세계 한인교회와 현지 선교사들을 네트워크 하는 협의회를 조직하기로 했다. KWMA 신임회장에는 명성교회 김삼환 원로목사가 선임됐다.
서울 강남역 인근 서초대로에 있는, 사랑의교회(담임 오정현 목사)의 강남예배당. 사랑의교회가 약 2년 전 서초역 인근 새 예배당으로 옮기기 전까지 약 28년 동안 사용했던 이곳은, 지금은 사랑의교회의 갱신을 부르짖으며 특히 오정현 목사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일부 교인들이 사용 중이다.
새해의 기운이 가득했던 1월의 어느 평일 찾아간 강남예배당은, 그러나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문에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보이는 것들이 아직 붙어 있었고, 그 틈으로 보이는 마당에는 흰색 천막이 있었다. 문 밖 경비초소는 비어 있었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자신을 "경비원"이라고 밝힌 한 남자가 다가왔다. "항상 이렇게 문이 닫혀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수요일과 금요일, 주일, 그 외에도 때에 따라 개방하고 있다"고 했다. 기자가 "교회 관계자를 만나고 싶다"고 하자 "없다"고 답했고, 다른 걸 물으니 "(경비원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잘 모른다"고 답했다.
이후 강남예배당 관계자와 연락이 닿았다. 그는 "매주일 오전 11시 목회자를 초청해 이곳에서 기도회를 연다"고 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사랑의교회의 개혁과 갱신을 위해서"라고 덧붙였다.
'예배'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 것은, 혹시 모를 문제를 의식한 때문으로 보인다. 사랑의교회가 소속된 예장 합동 동서울노회 관계자는 "교단 법에 따라 당회가 허락하지 않는 예배는 인정될 수 없다"고 했다. 반면 사랑의교회 새 예배당에는 매주 약 3만 2천 명의 교인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굳게 닫혀 있던 강남예배당의 정문. ⓒ김진영 기자
인근 한 식당을 찾았다. 이 식당 주인은 "(사랑의교회가 새 예배당으로 옮긴 후) 손님이 많이 줄었다. 옮기기 전에는 매주일 약 1시간 30분 간격으로 손님들이 계속해서 왔었다"며 "그런데 지금은 주일 점심시간 외에는 손님이 크게 들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주변에 있던 일부 음식점들은 술집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강남예배당은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곳 중 하나인 강남역 인근에 있다. 이날도 대로변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이 예배당 주변은 한산했다. 평일에도 교인들이 드나들던 예전과는 크게 달랐다. 주차장도 텅 비어 있었다. 예배당 맞은편에서 기독서적을 팔던 북카페도 지금은 없다. 대신 식당이 자리했다.
사랑의교회는 당초 강남예배당을 리모델링해 故 옥한흠 목사 기념관을 세우고 한국교회와 사회를 위한 공공재로 쓰는 방안을 논의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선 리모델링조차 어려울 것 같다. 예배당 노후화로 인한 안전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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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가가 공연 후 동성애 합법화... 이것은 영적 싸움"
[인터뷰] 다큐 <나는 더 이상 게이가 아닙니다> 제작한 김광진 감독
동성애 문제를 집중 조명해 화제와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다큐멘터리 <나는 더 이상 게이가 아닙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지난해 12월 초부터 LA 지역의 한인교회들에서 상영되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영어 자막까지 삽입해 한인 2세는 물론 영어권 국가들에 보급하는 것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영화를 제작한 김광진 감독은 뉴욕 출신의 미주 한인으로, 이를 위해 1년 10개월간 조사와 인터뷰를 수행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이와 같다. "동성애는 죄다. 그러므로 치유되어야 한다." 그러나 소위 "나는 정상"이라고 말하는 이성애자들에겐 또 다른 경고를 날린다.
"이성애자라고 죄인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동성애자들을 혐오하거나 교회 밖으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
▲김광진 감독.
동성애 끊을 수 있는 길은 예수 보혈의 능력 뿐
선천 아닌 선택... 교회가 어떻게 포용할지 숙제
'복음적 메시지'와 '동성애 실체' 균형 맞추려 해
-이 다큐멘터리가 화제와 논란을 동시에 일으키고 있다. 제작하게 된 동기는?
"최근 미국 공립학교에서 동성애를 가르치는 법안이 통과되면서, 부모들이 항의했다가 동성애 혐오죄로 체포되거나 감옥에 가는 일이 발생했다. 이런 사건들을 보며 '이 문제가 우리의 코앞에 닥쳤다'고 느꼈다.
RT미디어는 선교 영상물을 제작하는 단체인데 이곳에서 동성애에 관해 올바르게 교육할 수 있는 동영상을 만들어 보자는 제안이 왔고,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원회와 호산나넷 등이 협력하게 됐다. 나 역시 동성애에 관해 잘 몰랐기 때문에 '동성애가 무엇인가' 같은 기본적인 질문부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신앙인 가운데에도 동성애자가 있으며, 또 동성애로부터 빠져나온 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큐멘터리 제작을 마치며 내린 결론이 있다면?
"하나님 입장에서는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똑같은 죄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성애는 여러 죄 중의 하나이며, 우리도 죄의 종류는 다를 수 있지만 역시 죄인이다. 따라서 동성애자를 쳐다보지도 만나지도 않겠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우리는 모두 구원받은 죄인이 아닌가?
그래서 이 영화는 단순히 동성애가 무엇인가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을 넘어서, 동성애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돕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교회도 동성애자들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그들을 도울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교회를 다니다가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하고 떠난 사람이 많았다. 어떻게 동성애자를 포용할 것인가? 그것이 교회에 던져진 숙제다."
-동성애의 해악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는데 비판을 받지 않았나?
"물론 협박이나 비판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그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비판은 아니었다. 즉 동성애자 입장에서 감정적으로 화가 날 수는 있는 내용이지만,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동성애의 모든 것, 특히 그들이 말하는 사랑의 실체를 끝까지 보여 주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동성애는 정말 유전인가? 에이즈는 무엇이고 걸리면 어떻게 되는가? 탈동성애자의 간증을 보여 주면서 치유가 가능하다는 답을 주고 싶었다.
물론 '동성애도 치유될 수 있다는 복음적인 메시지'와 함께 '동성애의 실체' 두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동성애자에 대해 혐오적으로 묘사해 그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없도록 노력했고,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래서 탈동성애자들을 인터뷰했고, 그들이 예수를 만나고 동성애에서 벗어난 경우가 많음을 알게 됐다. 물론 성 중독 프로그램 등의 세상적인 방법으로 치유된 사람도 있었지만, 다시 돌아가고 마는 사례도 봤다.
그런 점에서 동성애에서 벗어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리스도 예수 보혈의 능력 뿐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에서 벗어나기가 쉽지는 않았다. 동성애의 쾌락을 기억하고 있는 육신의 반응을 이기는 일이 몹시 어렵다. 5-10년 이상 걸린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도 엄청난 인내력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동성애자가 돌아올 때 탕자를 받아주는 것과 같은 넓은 마음이 필요하다."
-동성애는 타고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니다. 동성애자들은 그렇게 선택한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 책임을 회피하는 방법이 '태어날 때부터 동성애자였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중도에 포기한 이유도 '태어날 때부터 그랬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이것이 자신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은 '은혜의 찰나'다.
복음을 만나고 나면 말씀대로 살고 싶어지고, 성경이 동성애를 죄라고 하기에 그 말씀에 순종하게 된다. 동성애와 기독교의 부딪힘은 '이것이 죄인가 아닌가'의 문제인데, 진화론으로 인해 창세기 1장이 부정되고 결국 하나님의 창조질서도 거스르게 된 것이라 본다. 나도 동성애 문제를 부드럽게 돌려서 말하고 싶었지만, 이 문제는 결국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해야 하기에 그런 식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 다큐멘터리에 거는 기대가 있다면.
"난 1년 10개월간 25명을 인터뷰했다. 편집에만 수 개월이 더 걸렸다. 이 기간 동안 나는 동성애자를 더 깊게 이해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들의 아픔을 이용해서 돈을 벌어 보자'가 아니라, 하나님은 동성애자들을 향해 깊은 애정을 갖고 돌보심을 알게 됐다.
특히 무명의 감독을 통해 주님의 치유와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확신하게 됐다. 이 영화로 한 명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사명을 다한 것이다. 레이디 가가가 동성애 금지국에서 공연하고 나면 그 나라에서 동성애가 합법화된다고 한다. 이렇게 한 명이 영적 흐름을 바꾸어 놓는다. 이 문제는 영적 싸움이기에 우리가 반드시 대비해야 한다.
미주에서는 특히 청소년·대학생들이 봤으면 좋겠다. 원수는 다음 세대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도록 한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서도 자녀 세대를 세워가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순결, 아름다운 성에 대한 미디어 교육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영화업계에서 이런 영화를 만들면 사실상 끝장이다. 나도 협박을 많이 받았지만, 그런 협박을 받으니 오히려 반드시 해야겠다는 결단을 하게 된다.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기 위해 내 커리어가 희생된다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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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한에게 임신한 아내 잃은 美 목사, 강단 복귀해 ‘용서’ 강조
작년 11월 임신한 아내를 잃은 데이베리 블랙번(Davery Blackburn) 목사가 강단으로 복귀했다.
블랙번 목사는 200명의 교인들에게 “그녀는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했고, 그랬기에 모두를 사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진짜 적은 아내를 살해한 사람들이 아니라 사탄”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폭스59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진짜 적은 인간이 아니다. 아만다(Amanda)에게 나쁜 짓을 한 2~3명이 아니다. 진짜 적은 사탄”이라며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닌 이 세상 공중 권세 잡은 자들과 벌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베리 블랙번 목사와 아내 아만다. ⓒ페이스북
아만다는 작년 11월 10일(이하 현지시각), 침입한 괴한에게 심각하게 구타당한 뒤 총을 3번 맞고 사망했다. 당시 그녀는 임신 중이었다. 관계자들은 래리 조 테일러 주니어(18)와 잘렌 왓슨(21)을 용의자로 지목했다.
블랙번 목사는 “구원은 아내를 살해한 자들에게도 비껴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하나님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구원에 있어서 누가 제외될 수 있는가? 적들은 그녀에게서 생명을 빼앗아 간 존재다. 그들은 강도 같이 와서 생명을 빼앗고 파괴했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세상의 죄는 사망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적은 죄를 행할 때 대리인들을 이용한다. 오늘날 이들이 이용하고자 하는 대리인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가? 그는 우리를 구석으로 몰아서 숨게 하려 한다. 우리의 숨을 거두어가길 원한다. 자, 그는 잘못된 가족들과 잘못된 교회를 가지고 엉망으로 만든다. 듣고 있는가?”라고 했다.
애틀랜타 현지 언론은 전날 “(아만다 살해 사건의 용의자인) 테일러가 11월 4일 발생한 롤랜도 곤잘레스-헤르만데스 살해 사건에도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살해, 신체에 심각한 상해를 가져온 강도 등의 혐의 뿐 아니라 강간 및 가택 칩임 혐의도 받고 있다.
얼마 전 블랙번 목사는 11월 9일 아내가 죽기 몇 시간 전에 남긴 일기를 공개했었다. 일기에서 아만다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고백했다.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눈을 들어, 그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라. 이 땅의 모든 것은 그의 영광과 은혜 안에서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어제 예배에서 놀라웠던 일은, 내 마음이 충만해져서 교회의 많은 이들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주님을 만나 배우고 자라서 다음 단계를 밟게 된다. 내 눈으로 이 모든 것을 알게 해 주심을 감사한다. 주님을 사랑한다. 영광과 찬양을 올려 드린다”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블랙번 목사는 크리스마스 설교에서 아내를 잃은 슬픔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는 “때로는 마음이 아프다. 누군가 내 머리를 계속 밀어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상처가 너무 깊어서 숨을 쉴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러나 작은 이유들로 인해 며칠 혹은 몇 시간 동안 숨을 쉴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난 희망을 느낀다. 오직 이 희망 때문에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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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은 자기 비움이고, 성공은 자기 확장이다
데이비드 브룩스의 <인간의 품격>(부키)
이원석
<인간의 품격>(부키)은 <뉴스앤조이> '톨레레게' 1월 11일(월) 모임에서 나눌 책입니다. 톨레레게에 참가하길 원하시거나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시면 글 아래를 참고해 주세요. - 편집자 주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는 '보보스'(bobos)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 언론인이다. 2000년에 출간한 저작 <보보스>(동방미디어)를 통해 널리 알려진 이 개념은 보헤미안(bohemian)의 감성과 부르주아(bourgeois)의 재력을 겸비한 신흥 엘리트 계층을 가리킨다(그러니까 보보스는 보보의 복수형이다). 그 묘사는 비단 미국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보보스>는 브룩스 자신의 말에 따르면, 코믹 사회학(comic sociology)이다. 적당한 자학적 개그를 겸비한 그의 매력적인 글쓰기는 외려 보보스를 멋지고 쿨하게 묘사하는 데에 성공한다(자학이라 함은 브룩스 자신이 보보임을 자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엘리트가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주는 일급 교양서적인지라, 힘들여 구해 볼 가치가 있다(절판되었다).
브룩스에 대한 내 속내는 이렇다: "적이지만 훌륭하군." 사실 그는 미국의 공화당 계열을 대변하는 일급 칼럼니스트이다. 그가 유려하게 써 내려간 글은 다른 이의 칼럼을 우습게 만든다. 하지만 그의 글에 전부 동의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공화당 사람답게 그의 글은 항상 어떤 사회(구조)적 측면을 배제하고 있다. 그 의도적인 누락이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브룩스의 작품을 손에 들려면, 그의 보수적 포지션을 명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는 의심의 여지없이 미국 공화당 라인을 대변하는 일급 저격수이다. 부시 당시에는 네오콘의 핵심 구성원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경우에 따라 오바마를 지지하여 보수 진영의 비판을 자초하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합리적 보수의 한 전범(典範)과도 같다.
보수 진영의 일급 저격수
그런데 보수의 아이콘 브룩스가 신작, <인간의 품격>(The Road to Character)을 냈다. 그가 이 책을 통해 미국을 가르는 거대한 문화 전쟁에 참전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전쟁은 공화당과 민주당이 맞서고, 보수와 진보가 대립하는 세계관의 충돌이다. 공화당 라인을 지지하는 그는 이 전쟁 속에서 확실히 보수 진영의 전통적 가치관에 기울어져 있다.
하나 어떤 의미에서 브룩스의 신작은 기이하다. 신간이 출간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솔직히 그의 윤리학적 전환에 의구심을 가졌다(해서 <인간의 품격>을 부키에서 출간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한데 놀랍게도 그는 여기서 이전의 자신이 대변하는 계층(보보스)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다(물론 <보보스>에서는 이 엘리트 계층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감추지 않았었다).
"우드스톡 페스티벌은 피상적으로 말하자면 주류 문화의 가치관에 반항하자는 것이었다. 그러 그 후 수십 년에 걸쳐 밝혀졌듯 이 운동도 결국 '빅 미'의 또 다른 버전일 뿐이었다. 자본주의와 우드스톡은 모두 자아의 해방, 자아의 표현에 관한 것이다. 상업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쇼핑을 하고 '라이프 스타일'을 만드는 것으로 자아를 드러낸다. 우드스톡 문화에서는 구속을 벗어던져 버리고 스스로를 찬양하는 것으로 자아를 드러낸다. 상업주의적 부르주아 문화가 1960년대 보헤미안 문화와 융합할 수 있었던 것은 두 문화가 모두 개인의 해방을 선호했고, 얼마나 자기만족을 이룰 수 있느냐가 삶의 척도라고 사람들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190~191쪽)
브룩스의 윤리적 회심은 보수 교회에조차 호감을 살 만하다. 미국의 보수 교회는 주로 공화당 라인에 서고 있다. 보보스라는 용어를 만들어 내고 예찬하던 이가 이렇게 스스로 비판을 감행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처음부터 보수의 아이콘이었으나 쉬운 일은 아닐 게다. 이는 저자의 입장이 논지의 옳고 그름을 정하지 않는다는 자명한 사실을 기억하게 한다.
따라서 브룩스의 입장 이전에 그의 주장 자체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그가 내 편이니 옳다거나 혹은 그가 내 편이 아니기에 그르다는 식으로 대하는 것은 책을 읽거나 주장을 듣기 위한 태도로 적절하지 않다. 더욱이 인격 성숙이라는 심오한 문제를 다룰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이제 그의 책으로 들어가려 한다. 먼저 책의 형식부터 살펴보자.
전기식 구성의 목적
▲ <인간의 품격> /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 김희정 옮김 / 부키 펴냄 / 496쪽 / 1만 6,500원
<인간의 품격>의 원제는 "덕성(품성)을 이루는 길"(The Road to Character)이다. 이를 위해 브룩스가 채택한 방식은 위인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몇몇 인물들이 어떻게 해서 강인하고 굳건한 인격을 일굴 수 있었는지에 대한 책이며, 수세기에 걸쳐 그들이 자신의 중심을 강철처럼 벼리고, 현명한 마음을 기르는 데 적용해 왔던 사고방식에 대한 책이다."(9쪽)
그러니까 브루스가 <인간의 품격>을 통해서 제시하는 것은 평전(評傳)이 아니라 전기다. 인물에 대한 객관적 평가로 특징되는 평전과 달리 전기는 특정한 목적을 염두에 두고 그 전기의 주인공을 예찬하거나 비판하기 위해 작성된다. 평전이 연구를 위한 것이라면, 전기는 (특정한 의도에 따른) 교육을 위한 것이다. 그러니까 전기는 본질적으로 이데올로기적이다.
브룩스 자신이 전기식 구성의 훈육적 목적을 인정한다. "이 인격 수양의 방법이 실제 삶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띠게 되는지 설명해 보려 한다. 이를 위해 도덕적 교훈을 담은 전기식 일화를 소개할 것이다."(11쪽) 나는 이런 방식에 다소 비판적이지만, 그렇다고 유용성을 부인하는 것도 아니다. 요는 전기적 집필은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브룩스가 조지 마셜 장군을 통해 "조직과 제도를 중시하는 성향"(213쪽)에 대해 다루는 것은 명백히 이데올로기적 활용이고, 이에 대해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결론부에서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거나 "조직이나 집단을 위해서 일하"는 것보다 "천직을 중심에 두고 삶을 꾸려 나가"야(471쪽) 한다고 균형을 맞추는 점에 대해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평범하다
사실 나는 브룩스가 의도하는 바에 대해서 적극 공감하고 있다. 그는 겸손을 핵심 미덕으로 내세우고 있다. 기독교는 흔히 자신을 벌레만도 못한 존재로 낮추는 자기 비하를 겸손으로 착각한다. 이는 (하나님의 형상을 무시하기에) 성경적으로 부당하고, (인간에 대한 균형감각을 결여하기에) 심리학적으로 해롭다. 반면 겸손에 대한 브룩스의 이해는 매우 정확하다.
"지적 겸손의 가장 완전한 의미는 멀리서 바라본 자신에 대한 정확한 자각이다. 스스로를 아주 가까이에서 클로즈업해 보며 캔버스를 온통 자기 자신으로 채우는 청소년기의 관점에서 시야를 확대해 풍경 전체를 조망하는 관점으로 삶의 과정이 이행해 가는 것이다. 그 속에서 자신의 강점과 약점, 자신이 관계 맺고 의존하는 사람들, 그리고 더 큰 이야기에서 자신이 할 역할을 파악한다." (31쪽)
현대는 자아 숭배를 독려한다. 마침내 "내가 이루어 낸 것을 보라. 나는 정말 특별한 사람이다"(24쪽)라고 부르짖는 셀프 홍보의 시대가 되었다. 세상은 우리를 유혹한다. 너는 특별하다고. 그러니 꿈을 가지라고, 비전을 품으라고, 네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만들라고. 사실 자아 숭배의 결과는 열정 소진이다(그 열정 덕분에 이 사회의 지배 구조만 강고해진다).
따라서 데이비드 브룩스의 메시지는 중요하다. "그 누구도 나보다 더 나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 또한 그 누구보다 나은 것은 아니다."(24쪽) 그렇다. 우리는 모두 평범하다. 우리보다 큰 사람도 없고, 또한 우리보다 작은 사람도 없다. 자기 계발의 시대에 듣기 어려운 메시지를 여기에서 발견하게 되니 반갑고 놀랍다.
브룩스가 1장에서 제시한 '커맨드 퍼포먼스' 방송에 대한 이야기는 어딘가 우습게 들리지만, 적어도 방향은 바로잡혀 있다. 우리가 독립한 날에 그들은 2차 대전의 승리를 경축하지만, 자기를 내세우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 우리 모두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감정은 겸손일 것입니다."(22쪽) 이는 버라이어티쇼를 진행한 빙 크로스비의 말이다.
물론 일본의 패전 시인을 받아내기 위해 핵폭탄을 투하했던 것을 고려한다면, 오만은커녕 자괴감이 들어야 마땅할 것 같다. 하지만 "더 큰 이야기에서 자신이 할 역할을 파악"하고, 이의 수행 자체를 앞세우고 수행자(agent)인 자신을 뒤로 하는 그들의 자연스런 반응은 정당한 것이다. 하나 이는 자아 숭배의 시대인 현대에는 지극히 희귀한 미덕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 "우리의 기본적인 문제는 자기중심성에 있다."(32쪽) 이제 신앙 서적에서마저도 '너는 특별하단다'라고 하는 헛소리가 난무하고 있다. 그야말로 (올바른 심리학이 아니라) 자아를 숭배하는 왜곡된 심리학에 물든 왜곡된 기독교다. 하나님의 눈에는 모두가 평등하고, 평범하다. 모두 인류와 교회(그리스도의 몸)의 유기적 일부로 존재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몸의 특정한 지체가 홀로 돋보이고, 그가 화려한 조명을 받는다면, 이는 머리되신 그리스도에 대한 모독이다. 성공을 드높이는 간증이 종종 문제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서로 사랑할 것을 명령하는 예수의 말씀과도 어긋난다). 이는 어쩌면 교회가 그간 극단적으로 자기 비하를 주장한 탓에 자기 숭배라는 다른 극단으로 나아가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는 나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타인과 비교해서 억지 감사를 자아내는 방식과 궤를 같이 한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 중 대부분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점이 있는지 끊임없이 비교하고 찾는다."(33쪽) 그렇게 남보다 나은 형편에 놓인 자신을 확인하고 안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눈에는 모두가 동일하다고 하는) 불편한 진실을 회피하는 것이다.
인간은 구부러진 목재
하나님의 눈에는 아무도 특별하지 않고 평범하다는, 곧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동등하다는 통찰에 뒤이어 데이비드 브룩스가 내놓는 것은 인간의 한계에 대한 천명이다. 누구도 완전한 원을 그릴 수가 없는 것처럼 또한 완벽하게 정의로울 수도 없다. 그는 칸트의 말을 인용한다: "인간이라는 뒤틀린 목재에서 곧은 것이라고는 그 어떤 것도 만들 수 없다."(34쪽)
이는 <세계시민적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이라는 논고에 들어 있다. 인용문 출처를 꼼꼼하게 소개하는 브룩스가 이 문장의 출처에 대해서는 누락시켰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알아야 하는 상식이라 판단했던 모양이다. 다행하게도 이한구 교수가 편역한 <칸트의 역사 철학>(서광사)에 국역본이 수록되어 있으니 30분만 시간을 들이면 완독할 수 있다.
인격(과 영성) 수련의 견지에서 위에 언급한 칸트의 명제가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 정상으로 올라가려면 심연으로 내려가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 주님이 말씀하신 바에 일치한다. 말석으로 내려가는 자가 상석으로 불려가게 마련이다. 십자가(죽음)의 길은 부활(영광)의 길에 앞선다(No Cross, No Crown). 영성가 헨리 나우웬이 말한 하향성의 길이 바로 이것이다.
여기에서 전제가 되는 것은 인식, 도덕, 심리, 관계에 걸친 인간의 근본 한계이다(종종 원죄로 설명된다). "'뒤틀린 목재'라는 개념에서 '한계'가 차지하는 자리는 광대하다."(436쪽) 하지만 점차로 사회의 흐름이 바뀌는 가운데 사람들의 반응도 이것을 따라갔다. 브룩스는 2차 대전 이후로 미국이 이러한 한계에서 가능성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 것을 주목한다.
"전쟁이 끝난 직후, 사람들은 삶을 낙관적‧긍정적으로 보며 가능성을 모색하는 책은 무엇이든 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438쪽) 해서 벤저민 스포크 박사의 육아법이 등장하고, 노만 빈센트 필 목사의 <적극적 사고방식>이 유행되고, 칼 로저스류의 인본주의 심리학이 뿌리내리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런 변화로 인해 사회적 불의가 다소 개선된 측면도 있다.
우리의 추도문
보보스 개념의 창시자가 이런 논의를 전개한다는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보스>를 통해 미국 엘리트의 생활 세계를 보여 주던 브룩스가 <인간의 품격>을 통해 성숙한 인간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려고 한 맥락을 간과할 수는 없다. 이는 스티븐 코비가 기술보다 인격을 강조하며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김영사)을 펴낸 것처럼 사회적 요청과 맞물린다.
브룩스가 이력서에 올릴 법한 화려한 업적보다 추도문에 올릴 만한 따스한 인품을 주목한다고 하니, 왠지 자기 계발서의 변종처럼 읽힐지도 모른다. 사실 (나의 업적과 더불어 인격을 회고하게 하는) 내 묘비명을 적는 프로그램은 자기 계발이 선호하는 과정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들여다본 내면세계에 대한 그의 성찰은 의외로 심오하고 탁월하다.
무엇보다 데이비드 브룩스가 우리의 영혼 앞에 제시하는 방향 자체는 지극히 정당하다. 현대인은 가시적 업적을 추구하는 외적 자아(아담1)를 강조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길을 잃고 허우적댄다. 하지만 교회는 달라야 한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기를 요청받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모름지기 숨겨진 성품을 연마하는 내적 자아(아담2)의 방향으로 틀어야 한다.
하지만 브룩스는 이를 기독교나 유대교와 같은 특정한 종교들에만 해당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가 제시하는 자기 부인의 메시지는 세상을 향해 선포되어야 한다. 부풀려진 자아는 우리 시대의 우상이다. 우리는 세상이 섬기는 우상을 드러내고, 그 우상에 맞서 싸워야 한다. 물론 이것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다.
과도하게 팽창한 현대인의 자아(hubris)는 극도로 시달리고 있다(미키 맥기의 <자기계발의 덫>이 이를 잘 다룬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 자아의 짐을 해결해 준다. 모든 인간은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 주님을 통해 자아의 짐을 내려놓아야 한다. 특히 지금과 같은 자아 팽창의 시대에 있어서 자기 부인의 영성은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 같은 것이다.
하지만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은총은 값없는 은총이나 또한 동시에 값비싼 은총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의 멍에보다 가볍다. 하지만 십자가를 지고 우리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우리의 모든 삶을 바쳐야 한다. 우리가 세상에 보여 주어야 할 모습은 바로 이것이다. 오직 십자가 아래에 놓인 교회 공동체만이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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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방문한 첫 개신교 선교사는?
중국 선교의 선구자, 칼 귀츨라프…1832년 충청 고대도에서 복음 전파
옥성득 sungoak@hotmail.com
새해 첫 주이므로 1832년 조선을 방문한 첫 개신교 선교사인 칼 귀츨라프(Karl Friedrich August Gützlaff, 1803~1851)를 살펴보자. 1832년 동인도회사는 중국 무역을 개척하도록, 로드 앰허스트 호의 린드세이(H. H. Lindsay) 선장을 북중국에 파견했다. 중국어를 익힌 귀츨라프는 독립 선교사로 이 항해에 통역이자 의사, 원목으로 동참하여 중국과 조선 선교를 시도했다. 그는 충청도 고대도에 한 달 이상 머물며 한문 주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하면서 한문 소책자를 나누어 주고 전도를 시도하다가 돌아갔다. 한국 개신교 선교는 그렇게 미미하게 시작되었다.
스코틀랜드인 영국성공회 선교학자 닐(Stephen C. Neill)이 <기독교 선교 역사>에서 "성자, 괴짜, 몽상가, 진정한 선구자, 혹은 기만된 열광자"로 다양하게 평가될 수 있다고 말한 귀츨라프. 괴짜요 열광자였던 그를, 그리고 무모했던 그의 선교 시도를 과연 오늘날 조직 교회나 교단 선교회 차원에서 어떻게 평가할까?
1832년 7월, 충청도 고대도 방문
귀츨라프는 서해안 일대와 백령도를 거쳐 7월 21일 군산만 창선도에 도착했고, 7월 25일에는 충청도 홍주만의 고대도에 도착했다. 그는 고대도(古代岛)에서 약 한 달간 머물면서 의약품과 성경과 전도 문서를 나누어 주면서 복음을 전했다. 고대도는 안면도와 원산도 사이의 작은 섬으로 현재 보령항과 대천항에서 가깝다. 귀츨라프는 홍주(洪州) 목사 이민회(李敏會)와 수군우후(水軍虞候) 김영수를 통해 국왕 순조(純祖)에게 통상 청원 문서와 함께 성경을 전달했다.
▲ 중국인 선원 복장을 한 귀츨라프
29세 청년 귀츨라프는 섬 주민들에게 한문 성경과 한문 소책자를 반포하면서 전도하려고 노력했다. 어학에 재능이 많았던 그는 홍주 목사의 서생(書生) 양씨(梁氏)의 도움을 받아 한문 주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하려고 노력했다. 그가 가르치고 번역한 한문 주기도문은 다음과 같았다.
귀츨라프는 조선을 방문한 후 남긴 여행기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사람들은 유교의 교리를 널리 믿고 있다. 공자를 모시는 사당들이 있으며, 그의 가르침은 무오하다고 믿는다. 비록 우상을 섬기지만 불교를 싫어하며 도교는 잘 모른다." 한국인 종교에 대한 그의 결론은 이렇다. "한국에는 분명 거의 종교가 없다." 곧 종교 부재 상태이므로 전도하기 어렵지만, 일단 기독교가 들어가면 성장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가 섬에 한 달 정도만 머물렀기 때문에 전도의 결실은 없었다.
귀츨라프는 1832년 7월 27일 자 일기에 다음과 같은 기도문을 남겼다.
"아무튼 이는 하나님의 사역이다. 나는 자주 기도하면서 조선 선교를 하나님의 은혜로운 보살핌에 맡겼다. 조선에 뿌린 거룩한 진리가 사라질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믿는다. 주께서 정하진 시간에 열매가 맺힐 것이다."
8월 17일에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계획 속에 다시 방문할 기회가 은혜로 주어질 것을 믿는다. 이것을 기대할 동안, 우리는 그 접근을 앞당기기 위해 매우 애써야만 하며, 힘을 다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십자가의 영광스러운 도를 전파해야 한다. 조선의 왕이 성경전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는 받기를 거절했는데, 지금은 읽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강경 주변의 모든 관리들과 많은 평민들은 성경을 받았다. (중략) 성경은 비록 미약한 시작도 복 주신다고 약속했다. 조선에 더 나은 때가 곧 밝아 올 것이라고 희망하자."
▲ Karl F. A. Gützlaff, Journal of Three Voyages Along the Coast of China, in 1831, 1832, & 1833 with Notices of Siam, Corea and the Loo-Choo Islands(London: Frederick Westley & A. H. Davis, 1834) 안표지와 8월 17일 자 일기 마지막 부분(355페이지).
제주도와 선교의 꿈
귀츨라프 일행은 여러 섬들을 지나 남쪽으로 더 내려왔다. 8월 17일 제주도를 지나며 쓴 글은 지금 읽어도 영감을 준다. 제주도가 좋은 선교 지부가 될 수 있는 전략적 위치에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조선의 여러 섬들에 기독교가 접근 불가능하지 않다고 확신했다. 한중일 삼국 중간에 위치한 제주도는 이제 무비자 지역으로 세 나라 사람들의 왕래가 잦다. 이곳에 아시아선교센터를 만들고 동아시아와 남아시아 선교를 추진한다면, 180여 년 전 귀츨라프의 꿈이 이루어질 것이다.
귀츨라프의 한국 방문에 대해 "바닷가를 스쳐 지나갔을 뿐"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는 평가도 있다[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대한기독교출판사, 1984), 135]. 그러나 귀츨라프가 일기에 썼듯이 소멸되지 않는 "하나님의 진리의 씨"가 한반도 땅에 뿌려졌으며[백낙준, <韓國改新敎史>(연세대학교 출판부, 1973), 43~44], "주님께서 작정해서 짚어 주신 날에는 반드시 열매가 맺힐 것"으로 보는 관점이 그의 선교 방법론과 연관하여 더 바람직할 것이다. 비록 서구 식민 자본주의를 위한 탐사 여행에 동행했지만, 말씀과 성령의 능력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그의 선교신학이 한국 방문을 가능하게 했다.
▲ 귀츨라프가 만든 한글 자모표. Chinese Repository (July 1834), 136.
귀츨라프는 누구인가
귀츨라프는 유대인으로 프러시아 포메라니아의 한 작은 마을인 피리츠(1871년 독일령이 되었다가 현재는 폴란드의 Pyrzyce)에서 1803년 7월 8일 태어났다. 진젤도르프 백작의 영향과 후스의 후손인 보헤미아인들의 신앙 분위기 속에서 그는 18세에 베를린에 있는 선교사 학교에 입학하여 중생을 체험하고 경건주의 신앙을 배웠다. 이어서 3년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있는 화란선교회의 신학교에서 3년간 신학을 공부했다. 중국 선교에 대한 관심으로 런던에 가서 중국 선교의 개척자인 모리슨(R. Morrison)을 만났으며, 중국 선교를 결심했다.
귀츨라프가 1826년 루터교 목사로 안수를 받은 후, 화란선교회는 그를 정식 선교사로 자바에 파송했다. 그는 그곳에서 중국어를 배웠다. 인도네시아 바타비아(지금의 자카르타)에 도착한 때는 1827년 1월 6일 그의 나이 24세 되던 해였다. 1829년에는 화란선교회에서 탈퇴하고, 중국인 집단 거주지인 방콕에 가서 태국어로 성서를 번역하기도 했다.
1831년 선교가 금지된 중국 마카오에 가서 모리슨을 만나 같이 활동했으며,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 독립 선교사가 되었다. 1832년에는 로드 앰허스트 호에 승선하여 북중국과 조선과 유구 열도를 방문했다. 이후 선교 여행을 위해 아편 무역선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는 중국인들과 함께 지내며 중국옷을 입고 중국 음식을 먹었으며 중국식 이름 곽실렵(郭實獵)을 채용했다. 1835년 영국 사절단 서기로 임명되어 자급하는 선교사가 되어 중국 선교에 헌신하다가 48세에 사망했다.
문서 선교로 중국 개척한 선구자
귀츨라프는 선교의 한 준비 단계로 광저우(廣州)에 출판소 겸 인쇄소인 중국익지회(中国益智會会)를 설립하여 한문 잡지와 서적 출판을 통해 중국인들에게 서양과 서양 문명을 먼저 소개했다. 그 활동의 하나로 1833년 8월 1일 광저우에서 중국의 첫 월간지인 <東西洋考每月統記傳>을 발행했다. 이외에 <大英国統志>, <古今萬國綱鑑>, <萬國地理全集> 등을 출판, 반포했다.
그러나 아편 문제로 영국과 청의 관계가 점차 악화되자 귀츨라프는 출판소를 싱가포르로 옮겨 전도 소책자 20여 권을 출판했다. 기존의 문명서 대신 전도를 위한 소책자를 주로 발행했다. 이러한 왕성한 문서 활동으로 당시 귀츨라프는 당시 한문 전도 책자를 가장 많이 저술하고 출판한 선교사가 되었다. 그는 한문 서적을 출판할 뿐만 아니라, 중국 해안 지역에 자주 방문하여 그 서적들을 반포했다. 그는 아직 개항이 되지 않은 1830년대에 중국 선교를 가장 활발하게 전개한 중국 선교의 선구자였다.
중국인 신자 훈련시켜 대중 전도
귀츨라프는 중국 기독교 토착화론의 선구자로 평가된다[Jessie G Lutz and R. Ray Lutz, "Karl Gutzlaff's Approach to Indigenization: The Chinese Union," in Daniel H. Bays ed., Christianity in China (Stanford, CA: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6), 269~291]. 그는 1834년부터 마카오에 거주하면서 "내 평생에 중국을 복음화하자"라는 야심 찬 목표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서구와 중국의 문화 차이가 크므로 외국인 전도는 효과가 없다고 보고, 약간의 신학 지식으로 훈련된 중국인 신자를 통한 대중 전도를 추진했다. 선교사는 중국인 전도자들을 지도·감독하는 자여야 하며, 중국인들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중국 문화에 깊이 들어가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좁은 지역을 집중 선교하기보다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다수 개인을 회심시키는 방법을 옹호했다. 서구식 교파 교회의 설립이나 학교 교육은 그의 관심이 아니었다. 성령이 회심의 궁극적 원천임을 신뢰하면서 성경 말씀의 능력을 믿고 나아갔다.
이 방법론이 구체화된 것이 1844년 조직된 복한회(福漢會, The Chinese Union)였다. 신속한 내륙 전도를 위해서 18개 지방에 중국인 전도인과 권서를 파송하고, 귀츨라프 본인이 번역한 성경과 여러 소책자를 반포하도록 했다. 1846년부터 매년 약 600여 명이 세례를 받는 등 폭발적인 성과를 보이자, 1849년 9월 귀츨라프는 복한회 지원을 호소하기 위해 유럽 여행을 나섰다. 그는 영국과 독일에서 뜨거운 호응을 받았고, 바젤선교회와 레니쉬선교회는 지원 선교사 4명을 중국으로 보냈다. 한편 영국에서는 중국복음화협회(Chinese Evangelization Society)가 조직되었다. 중국복음화협회는 1853년 허드슨 테일러(J. Hudson Taylor, 1832~1905)를 첫 선교사로 중국에 파송했다.
그러나 런던선교회의 레그(James Legge 理雅各, 1815~1897)는 귀츨라프의 토착인을 통한 열광적인 선교 방법을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중국인 전도자들을 조사한 뒤, 그들의 신앙 지식과 도덕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귀츨라프의 수세 조건이 너무 허술하며, 많은 중국인 전도자들은 교리 지식이 엉성하고 아편을 피우며, 홍콩을 떠나지도 않고 내륙 여행을 한 것처럼 거짓 보고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유럽에 도착한 이 보고서는 귀츨라프의 변호와 항변에도 불구하고 모금 여행에 치명상을 입혔다. 1850년 11월 유럽을 떠나서 홍콩에 온 그는 조사에 착수하면서 적극적인 전도에 나섰다. 그러나 그의 복한회는 다른 선교사들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다. 병중에 이루어진 유럽 여행과 과로, 복한회로 인한 갈등이 겹쳐 귀츨라프는 1851년 8월 9일에 사망했다. 그가 없는 복한회는 아내의 노력에도 지탱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중국 복음화 열망은 헛되지 않아 뒷날 테일러의 중국내지선교회를 통해 열매 맺게 되었다[Howard Taylor, J. Hudson Taylor: Biography (Chicago: Moody Press, 1965), 16].
민경배 교수는 귀츨라프가 전하려고 했던 교회 유형을 미국 개신교의 교파형 교회와는 다른 '서구형 프로테스탄트 교회', 곧 정치와 교회의 유기적 연결, 공동체 신학, 강한 교회론 등을 특징으로 하는 서구적 교회라고 서술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귀츨라프는 이른바 서구식 국가교회나 교파형 교회를 이식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교단 소속 선교사인 레그 등과 달리 경건주의와 복음주의 계열의 독립 선교사로서 수세 조건이나 전도인의 요구 조건이 까다롭지 않았다.
근대 개신교 선교의 세 가지 유형을 단순화 하면 ①교단의 지원을 받아 교단 교회를 설립하는 교회 선교(church mission), ②중국내지회처럼 초교파적이며 선교 자금 모금을 특징으로 한 선교회 선교(society mission), ③귀츨라프가 첫 모델이며 슈바이처가 대표적인 예가 되는 개인이 자신의 선교 방법과 선교지를 선택하는 자유 선교(free mission) 등이다. 귀츨라프는 1834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마카오와 홍콩에서 영국 대사관의 중국어 통역 겸 서기(영국 무역상무관)로 일하면서 주말과 여가 시간을 이용해 선교한 자비량 선교의 선구자로서 독립 선교사로 지냈다.
귀츨라프의 선교, 어떻게 볼 것인가
첫째, 귀츨라프의 여행기에 나타난 오리엔탈리즘을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한국의 섬과 자연은 아름답게 묘사하지만, 그 안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문제가 많다고 본다. 한국 종교에 대해서는 무종교로 단정하는 인상이 있다.
둘째, 귀츨라프의 선교 방법을 비판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는 독립적인 개인 선교사였고, 경건주의에 바탕한 개인 영혼 구원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아편선이나 동인도회사의 무역선을 이용해서 선교지를 방문했다. 선교라는 선한 목적을 위해 악한 수단을 사용할 수 있을까.
셋째, 귀츨라프의 영향과 유산을 다시 평가해야 한다. 그의 여행기는 토마스 목사와 로스 목사에게 영감을 주어 한국 선교를 시도하도록 만들었다. 귀츨라프의 개척 정신은 번즈(W. Burns)에게 영감을 주어 만주 선교를 개척하도록 만들었다. 귀츨라프-번즈의 토착 선교, 개척 선교 정신은 허드슨 테일러에게 영향을 주어 중국내지선교회를 만들었다. 이런 점에서 귀츨라프는 중국 선교에서 번즈와 테일러, 한국 선교에서 토마스와 로스라는 영적 후계자를 얻었다. 울며 씨를 뿌린 자는 기쁨으로 거둘 것이다. 이 세대에 이루지 못하면 다음 세대에 이루어질 것이다.
옥성득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UCLA) 아시아언어문화학과 임동순·임미자 석좌 부교수(한국기독교)이다.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와 국사학과를 졸업한 후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과 대학원을 거쳐 미국 프린스턴신학교와 보스턴대학교에서 기독교 역사를 공부했다. 2002년부터 UCLA에서 한국근대사와 한국종교사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 <한반도 대부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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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 사람을 입으라
본 문: 엡 4:22-24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
오늘은 에베소서 4장 22절로 24절 말씀가지고 “새 사람을 입으라”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함께 따라하시겠습니까? “새 사람을 입으라” “새 사람을 입으라”
새해가 밝았습니다. 2016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의 가나안으로 주신 한 해입니다. 여러분이 하루하루를 믿음으로 정복해 나아갈 때 올 한 해는 여러분 생애 최고의 해, 최대의 해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큰 은혜와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어떠한 신앙의 자세로 살아가야 될 것인가?
1. 옛 사람을 버리라
가장 중요한 것이 첫째로, 옛 사람의 모습을 버리는데 있습니다. 사람들은 과거에 붙잡혀 살면서 과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과거가 주로 상처 입은 과거, 고통과 괴로움과 슬픔이 있는 과거들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어서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늘 그러한 절망과 좌절과 상처 속에 머물러 있는 많은 사람들을 봅니다.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옛 사람을 버리라.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 예수 믿기 전에는 우리도 다 죄의 노예였지만 예수 믿고 새사람이 되었으니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 옛 사람의 모습에 대해서 에베소서 2장 3절은 설명합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그렇습니다. 우리의 과거의 모습은 이와 같은 죄의 노예요, 진노의 자녀였던 것을 우리가 기억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나서, 이 옛 사람의 모습을 벗어 버려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벗어 버릴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옛 사람과 싸워야 되는데,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옛 사람과의 싸움에서 날마다 승리할 수 있지만, 우리가 기도하지 아니하고 찬양하지 아니하고 말씀 묵상하지 아니하면 옛 사람에 붙잡혀서 또 넘어지고 또 넘어지는 그러한 문제 속에 살아가고 갈등 속에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갈등에 대해서 로마서 7장 21절 이하에 설명을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사도 바울은 예수님 이후로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도 육신의 몸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이러한 옛 사람과 끊임없는 영적 전쟁을 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장 22절에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옛날의 습관)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할렐루야! 벗어 버렸다는 것은 우리의 결단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옛 사람과 싸워서 옛 사람의 옷을 벗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쉽게 분노하고 좌절하고 상처받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남을 정죄하고 부정적인 데 사로잡혀서 파괴적으로 살던 옛 사람을 과감하게 벗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여러분은 끊임없이 옛 사람에 잡혀서 또 절망하고 또 상처받고 또 낙심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 것으로 참된 만족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쾌락은 잠깐입니다. 주님께로부터 오는 은혜가 영원한 것이고, 주님께서 주시는 만족이 참된 만족인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3장 5절에,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사는 옛 사람의 모습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옷 입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 많이 하고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우리는 죄의 유혹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젊은 나이에 그 유혹을 뿌리치고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유혹은 끊임없이 다가옵니다. 우리를 넘어뜨립니다. 그런데 하와는 뱀의 유혹을 받고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말미암아 죄가 인류 가운데 뿌리를 내리게 된 것입니다. 탐욕은 죄의 원인이요, 우리를 멸망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이와 같이 우리에게 성경은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주여, 날마다 나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서 옛 사람의 모습이 사라지고 새사람의 모습으로 내가 변화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로마서 8장 13절에 말씀합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주여, 성령으로 충만해서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날마다 새사람으로 거듭나 변화된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갈라디아서 5장 16절 말씀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여러분, 성령님을 의지하십시오. 말씀 붙잡고 간절히 기도해서 성령이 충만하면 우리는 옛 사람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미움과 분노와 원망과 불평과 상처와 고통으로 얼룩진 옛 사람을 벗어 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지 아니하고, 말씀 묵상하지 아니하고, 예배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아니하면, 우리 옛 사람이 강해져서 나를 붙잡아서 다시 나를 과거의 모습에 주저앉혀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주님 안에서 변화된 모습으로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주님을 섬기기 위해 늘 기도하고, 말씀 묵상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을 늘 기억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주여, 주의 말씀으로, 보혈의 능력으로 나를 새롭게 하여 주셔서 성령님과 동행하며 옛 사람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승리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최근 미국에 거주하는 중국인 모자가 쓴 『다시 집으로』라는 책이 나와서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중국인 2세 크리스토퍼 위안의 이야기입니다. 치의과대학을 다니던 촉망받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자신의 성정체성에 빠져서 술과 마약과 동성애에 빠졌고 결국 에이즈에 걸려서 집을 나가게 됩니다.
엄마 안젤라 위안은 남편과 치과병원을 운영하는 치과의사입니다.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한 이민 1세입니다. 그러나 이 가정에 문제가 생겨나면서 남편과의 관계도 멀어지고 유일한 희망인 둘째 아들마저 동성애자라고 밝히고 집을 나가자 ‘이제 나는 이 인생 살아 무엇 하나.’ 삶을 포기하려 했습니다.
“나는 겉으로는 성공한 인생이었지만, 안으로는 공허했다. 우수한 성적이나 대회 수상으로 내게 긍지를 느끼게 해주던 예전의 그 아이들이 아니었다. 장남 스티븐은 방탕하게 생활했고, 둘째 크리스토퍼는 내 앞에서 자신이 게이라고 선언했다. 동성애자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나는 이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나!”
자살하러 가려고 기차에 올라탔다가 우연히 전도 소책자를 받게 되었는데 읽다가 주님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성령이 감동하신 것입니다.
“그때 싸늘하게 식어 버린 내 심장을 깨우듯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9). 하나님이 사랑한다고? 나 같은 사람을? 그때 작고 고요한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내 사람이다!‘ 그 한마디는 산산이 부서진 내 심장을 아물게 하는 연고였다!”
이렇게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 독실한 크리스천이 됩니다. 남편과의 관계도 회복됩니다. 부부는 아들을 위해 날마다 기도했습니다. 교회에 중보기도를 요청해서 100명이 넘는 성도들이 특별 중보기도를 했으며 그 어머니는 7년 동안 매주 월요일마다 금식하며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습니다. 아들 위안이 마약을 팔다가 치과대학에서 쫓겨나가고 마약과 동성애가 더욱 심해져서 결국 마약복용 혐의로 체포되어 감옥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에게 위기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감옥에 들어가서 그제야 부모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옥 안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을 믿고 나서 동성애를 끊고 완전히 새사람이 되어서 감옥에서 나온 후에 신학을 공부합니다. 시카고에 있는 무디 바이블 인스티튜트에서 공부를 하고 휘튼 대학에서 공부를 한 뒤 주의 종이 되어서 미국과 전 세계를 다니며 간증하고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동성애에 빠진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야 됩니다. 그들을 죄인 취급하면 안 됩니다. 불쌍히 여기고 기도하고 그들이 벗어날 수 있도록 그들을 주님께로 이끌어야 되는 것입니다. 동성애는 나쁘지만 동성애에 빠진 사람은 불쌍히 여겨야 됩니다. 공산주의는 나쁘지만 북한사람을 위해서 우리가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만이 저들을 변화시킬 수 있고 저들을 절망에서 회복시켜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난 후 주의 종이 되어서 이와 같은 고백을 합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내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출소하고 집에 돌아왔던 날, 현관 로비를 가득 채우고 있던 노란 리본을 평생 잊지 못합니다. 그때를 떠올리면 하나님의 자비로움과 부모님의 조건 없는 사랑이 나를 따뜻하게 감싸는 것을 경험합니다. 나에게는 언제든지 돌아갈 집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여러분, 주님의 은혜가 임하면 이렇게 마약과 동성애에 찌들었던 사람도 그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으로 변화되어 주님 앞에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심령이 새롭게 되라
둘째로 우리는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심령이 새롭게 되면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3절은 말씀합니다.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우리가 날마다 옛 사람의 모습을 버리고 심령이 새롭게 될 때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합니다. 그런데 우리 힘으로 옛 사람의 모습을 벗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14절입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예수의 보혈로 날마다 우리가 정결히 씻음 받고 변화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주님의 귀한 일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주님 앞에서 우리가 늘 바로서기 힘쓰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주님의 보혈로 늘 변화 받고 치료받고 용서받고 새 힘을 얻어서,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는 일꾼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약속의 말씀 붙잡고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무장해서 주님의 뜻을 분별하고 행하는 주님의 귀한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2절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주여, 주님의 뜻을 깨달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셔서 주님의 뜻을 깨달아 알고 그 뜻을 분별하여, 주의 뜻대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로 18절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범사에 늘 좋은 것을 택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1절의 말씀입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여러분, 여러분 자신이 올해는 결단해야 됩니다. 하나님,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것을 내가 하기 원합니다. 그러한 선택을 하고 그러한 결정을 해서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나의 삶이 되게 주님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존 맥아더 목사님의 말씀입니다. “신자가 되면 하나님이 새 마음을 허락하신다. 그러나 새 마음에 새 생각을 채우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는 순간 우리에게는 새 마음이 주어지지만, 그때부터 이 새 마음에 올바른 생각을 쌓아나가야 한다.
이런 이유로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 4:8).’
주여 우리 마음이 새로워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날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이 굳어진 마음을 깨뜨리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새사람이 되어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게 하여주시옵소서.
존 스토트 목사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처럼 살 수 있을까? 거룩함의 길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사시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의 조명을 통해 예수님의 영광을 볼뿐만 아니라, 성령의 내주하시는 능력을 통해 예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간다.”
성령이 임하면 우리의 굳은 심령이 깨어지고 새롭게 변화됩니다. 에스겔 36장 26절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주여, 우리에게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주셔서 우리의 굳어진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 되게 하여주시고, 주님이 기뻐하는 마음 되게 하시고, 새 모습으로 변화되어서 주님을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3. 새사람을 입으라
여러분, 여러분의 심령이 새롭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앞에서 우리가 무엇보다도 먼저 절망과 고통과 괴로움과 상처에 얽매였던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심령이 새롭게 되어, 셋째로 우리는 새사람을 옷 입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4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새사람을 입으라. 새사람을 입는다는 것은 내가 스스로 그렇게 노력을 해야 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어릴 때는 어머니가 젖도 먹여주고 밥도 떠 먹여주고 세수도 씻겨주고 옷도 입혀주고. 그렇게 했지만 이제 아이가 커가면서 스스로 혼자 옷도 입고 혼자 세수도 하고 혼자 밥을 먹는 것처럼 우리가 은혜 받고 난 다음 스스로 서야 합니다. 스스로 날마다 새 옷을 입으려고 몸부림 쳐야 되는 것입니다.
늘 원망하고 불평하고 부정적으로 살던 옛 사람의 옷을 벗어버리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옷을 입고 믿음의 전진을 해나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늘 말씀을 붙잡고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성령 충만함 받아서 새롭게 변화된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작은 예수로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권면의 말씀 그대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의 마음을 품고 한평생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와 겸손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에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온유와 겸손은 섬김으로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대접받기를 좋아합니다.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대접받기를 좋아하고 칭찬 받고 더 많은 것을 갖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반대의 삶을 사셨습니다. 마태복음 20장 28절의 말씀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의 모습은 섬김 그 자체였습니다. 희생이었습니다. 낮아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우리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갑니다. 높아지려고만 하고 더 가지려고만 하고 희생하지 아니하고 대접을 받으려고만 하는 우리들의 연약함 때문에 늘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다툼이 왜 생겨납니까? 여러분, 내가 낮아져서 엎드리면 싸울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내 주장만 옳다하고 다른 사람의 주장이 틀리다고 하니까 다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사회에서나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도 내가 낮아지지 아니하면 싸움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여, 우리가 예수님 모습을 닮아서 온유와 겸손을 옷 입게 하여주시고 섬김과 희생의 삶을 살아가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 모두가 예수님이 가신 그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면서 예수님의 섬김의 본을 몸소 실천하게 하여주옵소서.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진리로 무장하고 의로움의 모습으로 살아야 될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4절입니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으로 무장해야 됩니다. 세상 사람들의 음성을 듣고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음성을 듣고 말씀을 꼭 붙잡고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의로 무장을 해야 됩니다. 주님의 의는 무엇이냐. 주님 보시기에 바른 것, 주님 보시기에 주님이 인정하시고 기뻐할만한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내가 하나님의 의 앞에 어떤 모습인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주여, 주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게 하여주옵소서. 우리가 믿음의 사람으로, 말씀의 사람으로 살아 갈 때 우리에게 주님의 은혜를 더해주시는데, 로마서 1장 17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주여, 우리가 의로운 사람이 되어서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의 전진을 해나가게 하여주옵소서. 늘 진실 된 말만 하게 하여주옵소서. 마음에 분노를 품지 않게 하여주옵소서. 이웃의 것을 탐내지 아니하고 가진 것으로 이웃을 구제하며 살게 하여주옵소서. 더러운 말을 하지 아니하고 선한 말, 남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하며 살게 하여주옵소서. 우리가 새사람을 옷 입고 살게 하여주옵소서.
우리 마음 가운데 먼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서 주님이 주신 기쁨과 평안함이 넘쳐나게 하여주옵소서. 로마서 14장 17절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주여, 내 마음에 이와 같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여주시옵소서. 내가 주님과 동행하며 새사람으로 옷 입음으로 말미암아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쳐나게 하여주시옵소서.
도움 받았던 어린이에서 도움 주는 청년으로 변화된 원종건 형제의 간증입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2015년 감동뉴스부분 1위를 차지한 원종건 군 사연입니다. 10년 전에 MBC의 ‘느낌표-눈을 떠요’에서 앞 못 보는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해주는 개안수술 프로젝트에 나온 아인데, 잘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엄마와 열세 살 난 종건 군의 사연이 소개되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눈물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집안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종건 군의 여동생은 태어나자마자 스웨덴으로 입양되었고 종건 군의 아빠는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고 엄마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중증장애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불평하지 않고 어릴 때부터 엄마의 준과 귀가 되어 폐품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엄마를 도왔습니다.
그런데 2005년, 방송국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엄마가 각막수술을 받고 눈을 뜹니다. 할렐루야. 어머니가 기도하는 분이었어요. 눈을 뜬 어머니가 가장 먼저 한 말은 “우리도 더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자!” 그의 엄마는 늘 어릴 때부터 앞을 못 보지만 점자성경을 읽으면서 아들을 기도로 키웠습니다.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폐품 줍는 일을 하는데 자신들보다 어려운 이들을 위해서 그것을 사용했습니다. 엄마에 대해서 아들이 말합니다.
“폐품 모으는 일이 큰돈은 되지 않아요. 하지만 어머니는 항상 따로 돈을 모아두세요. 제일 먼저 십일조를 하시고, 컴패션(NGO)을 통해 동남아 어려운 지역 친구들을 돕고 계세요.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렇게 살았어요. 기도하다 보면 하나님이 알아서 필요를 채워주셨죠.”
이런 엄마를 보면서 어릴 때부터 감사의 사람, 나눔의 사람으로 성장하여서 매년 여름마다 동남아선교를 나가고 성년이 된 후 제일 먼저 장기 기증 서약을 하고 헌혈에도 참여해서 대한적십자사 헌혈 은장을 수상하기도 했고, 2009년 성산청소년 효행대상에서 효행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재학 중인데, 대학생 해외봉사단으로 활동하고 있고 네팔에 가서, 또 현지인을 섬기는 사역에도 그가 헌신해서 많은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뱃속에서부터 하나님을 알게 해주신, 그리고 삶 가운데에서 실천으로 가르쳐주신 어머니께 항상 감사해요. 어머니의 말씀에 따라 제 꿈에는 나눔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장애가 해결될 수 있었고, 방송 이후에 관심을 보내주신 많은 분들 덕분에 여러 가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세상에 대한 감사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줌으로써 얼마나 많은 것이 변할 수 있는지를 느꼈습니다. 제가 받은 만큼 사회에 돌려주고 싶습니다!” 할렐루야.
이제 주님과 함께 새해를 열어가면서 옛 사람의 모습을 과감히 벗어버려야 합니다. 다시는 절망하고 낙심하고 상처를 주고받고 분노하고 미움 속에 살던 이러한 옛 사람의 모습을 취하지 말고 벗어버리고 심령에 변화를 받아, 말씀과 성령 충만함으로 새사람으로 옷 입고 우리 주님이 가장 기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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