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이 가장 사랑하는 말씀/ 헌법재판소 성매매 합법화 2015-12-31 15:01:14 read : 1732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기독교인이 가장 사랑하는 말씀은 ‘요 3:16’…
美 사이트, 크리스천이 자주 찾는 성경 구절 100가지 발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전 세계 기독교인에게 가장 사랑받은 성경 구절은 요한복음 3장 16절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최대 온라인 성경 사이트인 ‘바이블게이트웨이(Biblegateway.com)’는 28일(현지시간) 올해 신자들이 가장 많이 찾아본 성경 구절 100가지를 발표하고 “크리스천들은 성경 말씀을 통해 선하심 속에서 일하며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결과는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 영어권 국가 1억6000만명이 지난 1년간 인터넷 홈페이지(스마트폰 앱 포함)를 방문한 페이지뷰 16억건을 분석한 것이다.
조사에 따르면 가장 인기 있는 구절은 요한복음 3장 16절이었으며, 예레미야 29장 11절(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이 뒤를 이었다. 이어 빌립보서 4장 13절(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로마서 8장 28절(하나님을 사랑하는…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시편 23편 4절(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안위하시나이다), 빌립보서 4장 6절, 로마서 12장 2절, 잠언 3장 5절, 고린도전서 13장 7절, 잠언 3장 6절 순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이 검색한 키워드는 ‘사랑’으로 조사됐으며, 믿음 평안 소망 기쁨 결혼 은혜 기도 성령 치유 순으로 나타났다. 신자들이 찾아본 성경 말씀과 검색어는 대부분 위로와 희망을 담은 내용이었다.
바이블게이트웨이 관계자는 “신자들은 개인적 차원에서 영감을 주는 말씀을 읽으며 격려와 소망을 얻었다”며 “하지만 인기 성구들은 성경 전체의 주제를 대표하는 구절들은 아니었다”고 말해 크리스천들의 성경 읽기가 다소 자기중심적으로 치우쳐 있음을 드러냈다. 실제로 죄의 회개와 관련된 구절은 100가지 중 4가지에 불과했다.
성경 구절의 키워드 검색은 굵직한 사건이나 이슈에 따라서도 차이가 났다. 지난 2월 이집트의 콥트 기독교인들이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참수당했을 때 ‘참수’를 찾는 사람이 많았고, 미국의 동성결혼 합법화에선 ‘동성애’와 ‘소돔과 고모라’ ‘혐오스러움(abomination)’ 등이 검색됐다. 지난 9월 슈퍼문 개기월식 때에는 ‘블러드 문(bloody moon)’이 검색 1순위에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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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합법화, 헌법 최고 가치인 인간 존엄성 훼손"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바성연
바른성문화를위한국민연합(대표 안용운, 이하 바성연)이 28일 오후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매매 합법화를 반대하며 탄원서를 발표했다.
바성연은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제21조 제1항에 대한 위헌심사에서 헌법재판소장 및 재판관들께서 합헌 결정을 내려 주시기를 간곡히 탄원한다"며 "성매매 합법화는 한국사회의 건전한 성윤리도덕을 붕괴시킨다.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양심에 의하여 성매매는 명백히 공의에 어긋난 죄악이므로 법에 의해서 억제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성매매 합법화는 헌법의 최고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다. 인간의 성(性)은 인격 및 인간의 존엄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며 "그러므로 인간의 성은 사고파는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성매매 합법화는 고귀한 성을 상품화함으로써 인격적 가치를 훼손한다"고 했다.
또 "성매매 합법화는 성매매산업을 번창하게 만들며 한국 사회를 성적으로 타락시킨다"면서 "간통의 만연, 미혼모와 사생아의 증가, 근친상간, 이혼에 의한 가정 파괴, 가정 붕괴에 따른 청소년 범죄 증가 등의 사회 병리 현상을 증가하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바성연은 "성매매 합법화가 되면 13세 이상 미성년자들도 성매매를 할 수 있게 된다.
현행 형법상 13세 미만의 미성년자에 대한 간음·추행은 동의하에 이루어져도 강간 또는 강제 추행죄로 처벌이 된다"며 "성매매 합법화가 되면 13세 이상의 미성년자가 성매매를 하였을 때에 현행법으로는 막을 수 없다.
따라서 성매매 합법화는 어린 청소년들의 성매매를 허용함으로써 가출 청소년들의 성매매, 미혼모, 사생아 등의 증가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도 덧붙였다.
아울러 "성매매 합법화는 한국 사회의 윤리도덕을 붕괴시키고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며 성매매 여성을 증가시키고 향락산업을 번창하게 만들며 젊은 여성들로 하여금 성매매의 유혹을 받게 만든다"며 "따라서 한국의 미풍양속을 지키기 위하여 성매매 처벌법에 대해서 합헌 결정은 반드시 내려져야 한다고 본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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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각오 주기철’ 시청률 9%… 성탄절 놀라운 응답
시청자 소감 500여건 올라와… 포털 실시간 검색어 10위권에
▲KBS1 TV가 25일 방영한 다큐멘터리 ‘일사각오 주기철’의 한 장면. 작은 사진은 주 목사의 생전 모습.
KBS 제공
공중파 방송에서 기독교 프로그램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에 저항하다 순교한 주기철(1897∼1944) 목사의 삶을 담은 KBS1 TV의 프로그램 다큐1의 성탄절 특집 ‘일사각오(一死覺悟) 주기철’(연출 권혁만 PD)은 서울과 수도권에서 평균 시청률 9.15%였다.
25일 밤 10시에 방영된 ‘주기철’의 시청률(닐슨코리아 집계)은 서울 9.7%, 수도권은 8.6%였다.
KBS 관계자는 27일 “올해 방송된 다큐1 프로그램의 최고 시청률”이라며 “종교적 인물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이런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KBS 다큐1 홈페이지에는 시청자 소감이 500여건이 올라왔다. 주 목사의 삶에 감동했다는 크리스천의 반응이 주를 이뤘지만 일반인도 적잖게 소감을 남겼다.
한 시청자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 이 나라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고 말했다.
올해 4월부터 지난주까지 40회가 방송된 다큐1의 누적 시청자 소감은 90여건에 불과하다. 방송 직후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주요 포털에는 주기철이 실시간 검색어 10위권에 오르내렸다.
‘일사각오 주기철’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내년 3월 초 전국 영화관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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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총·한교연·한국교회언론회, "한일 위안부 합의는 외교적 성과"
보수 교계 단체들 일제히 환영…과거보다 진일보했다 평가
이용필 기자
▲ 한일 양국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합의가 24년 만에 최종 타결됐다. 그러나 이번 합의 결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한기총·한교연·한국교회언론회 등 교계 보수 단체는 성명을 통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사진은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소녀상의 모습. ⓒ뉴스앤조이 이은혜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12월 28일 열린 한일 양국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와 관련해 보수 교계 단체들이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들은 한국 정부의 노고를 격려하고, 일본 정부가 합의 내용을 준수해야 한다는 성명을 일제히 발표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이영훈 대표회장)는 답보 상태였던 위안부 문제를 풀어 갈 단초가 마련됐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일본 정부가 책임을 통감하고, 군의 관여를 인정한 것은 외교적 합의의 큰 성과라고 했다. 일본 정부 예산으로 기금을 조성하기로 한 것도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합의 이행이라고 했다. 한기총은, 일본 정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위안부 문제가 끝날 수 있고, 아니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위안부 범죄가 일본 정부와 군에 의해 조직적으로 자행된 것을 인정하고 절대 번복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한국교회연합(한교연·조일래 대표회장)은 이번 합의를 과거보다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했다. 불행했던 과거사를 매듭짓고 미래로 나아가기 바란다고 했다. 다만 한교연은 그동안 일본의 행태를 봤을 때 몇 가지 우려되는 점도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의 '책임 통감'과 '사과 표명'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외교부 장관이 표명한 것이지 일왕이나 아베 총리가 직접 사과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한교연은 "피해자 할머니들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풀리지 않는 한 합의 문서는 한낱 종잇조각에 불과하다. 향후 독도 영유권 주장과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에 있어서도 일본이 진심으로 과거를 뉘우치고 반성하는 태도와 행동을 보여 달라"고 촉구했다.
한국교회언론회(유만석 대표)는 한일 정부가 위안부 문제 협상을 시작한 지 1년 8개월 만에 타협했다면서 중요한 성과라 했다. 이번 합의와 별개로 일본 정부의 참회는 계속돼야 한다고 했다. 한국교회언론회는 "최종적·불가역적 타결은 자칫 일본 정부의 과거사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도 있다. 법적 책임을 언어유희로 모면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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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인 역사학자들, 한일 위안부 합의 비판
"'책임 통감'이란 말 듣기 위해 다 줘 버린 꼴"…교계 단체들, 정대협 성명 지지
이용필 기자
▲ 12월 29일, 주한일본대사관 앞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가수 이광석 씨가 김민기의 '아름다운 사람'을 부르면서 한일 외교장관 회담 합의에 항의했다. 김원웅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장은 이날 "한일 회담은 일본에게 면죄부를 안겨 준 굴욕적인 합의"라고 성토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한일 양국이 12월 28일 외교장관 회담을 열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에 대한 방안을 최종 합의했다.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고, 한국 정부는 이번 합의를 통해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를 "당시 군의 관여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또, 아베 총리 이름으로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했다.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재단을 한국 정부가 설립하고, 일본 정부는 지원금 10억 엔을 내기로 했다.
정부는 "일본 측이 약속한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번 발표를 통해 일본 정부와 함께 이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등 3개 조항을 발표했다. 국제사회에서 비난·비판을 자제하겠다고 했다.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 이전 문제는,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관련 단체와의 협의를 통해 해결되게 노력하겠다고 했다.
합의와 관련해 주요 언론은 "해묵은 과제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마침표를 찍었다", "한일 관계에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역사적인 합의"라고 보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현실적인 여건하에서 최선의 노력을 이루어 낸 결과다. 한일 관계 개선과 대승적 견지에서 피해자분들과 국민의 이해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일 양국 합의는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가 실명으로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 공개한 지 24년 만에 이뤄졌다.
<뉴스앤조이>는 기독인 역사학자들이 이번 한일 양국 합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확인해 봤다.
불가역적이란 용어 꼭 필요했나?
역사학자 윤경로 교수(전 한성대 총장)는 양국이 발표한 합의문에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다고 지적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최종적, 불가역적'이라는 단어를 썼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는 뜻이다. 일본 측이 이 용어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정부도 그대로 받아썼더라. 일본이 원하는 대로 된 것 같다. 앞으로 정부가 다른 소리를 하지 못하게 두 단어를 쓰며 못을 박은 것이다. UN이나 국제사회에서도 위안부를 언급하지 말라는 말이다.
또, '당시 군의 관여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라는 문장은 일본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는 인상을 준다. 소녀상 이야기도 좀 이상하다. 왜 한국 정부가 소녀상을 언급하는가. 일본 합의문에는 나와 있지도 않다. 저쪽에서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도 아닌데, 왜 우리가 먼저 그런 여지를 주는 것인가. 할머니들이 수요일마다 시위를 하지만 그 앞에서 무슨 위협을 가했다고 '안녕과 위엄의 유지'를 위해 대응하겠다는 말을 넣었을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미 합의 이전에 논의가 진행됐던 것 같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일본 정부에 '책임을 통감한다'는 말 한마디 듣기 위해 한국 정부가 모든 걸 다 줘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번에 일본이 언급한 '책임 통감'은 과거 일본 총리들이 여러 번 한 말이다."
옥성득 교수(UCLA)는 합의문에 결정적인 하자가 있다고 지적했다.
"합의문은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과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명쾌히 규정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 문제를 둘러싼 논쟁은 언제라도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아베 총리가 직접 사과하는 대신 사과문을 대독시켰다. 진정성이 없다. 얼마든지 합의 사항을 바꿀 수 있다. 진정성 있는 사과라면 이후 일본 역사 교과서에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와 군의 강제 동원 사실을 밝혀야 할 것이다. 10억 엔보다 중요한 것이 진실을 밝히고 교육하는 것이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김승태 연구위원은 이번 합의는 돈만 받고 끝낸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합의 이전에 당사자인 위안부 피해자의 동의와 수용이 있었어야 하는데 전혀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의견도 반영하지 않고 묻지도 않았다. 한일 합의라고 말하기 이전에 일본은 역사적 범죄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와 배상 등을 해야 한다. 이와 관련된 내용을 교과서에 싣고 기록으로 남겨 교육도 해야 한다.
합의 내용만 놓고 봤을 때 '돈'으로만 해결하려는 모양새다. 할머니들이 돈 때문에 목숨 바쳐 싸운 게 아니지 않는가. 지금 진행되는 것만 보면, 돈만 받고 끝낸 한일국교정상화의 데자뷰에 지나지 않는다."
이치만 교수(장신대)도 '최종적 및 불가역적'이란 문구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최종적·불가역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해도 될 정도로, 과연 일본이 반성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과거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했는데, 아베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이를 번복하지 않았는가. 종군 위안부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등 과거사를 왜곡한 전례가 있음에도 우리 정부가 왜 최종적·불가역적이라고 썼는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 정대협은, 평화비 소녀상은 어떤 합의의 조건이나 수단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는 주한일본대사관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를 위해 소녀상 문제를 관련 단체와 협의해 해결하겠다고 합의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정대협, "굴욕적 합의 받아들일 수 없어"
위안부 피해자들과 함께 일본 정부 측에 법적 책임과 재발 방지를 촉구해 온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12월 28일 성명을 통해 '굴욕적 합의', '외교적 담합'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정대협이 발표한 성명에는 고난함께·기독교환경운동연대·영등포산업선교회·생명평화 등 교계 단체와 시민단체 116곳이 이름을 같이 올렸다.
정대협은 "일본 정부가 이번 합의에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지만, 군에 의해 조직적으로 자행된 범죄라고 인정한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다. 아베 총리가 직접 사과한 것도 아니고, 사과의 대상도 모호해 진정성이 담긴 사죄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일본 정부가 범죄 가해자로서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 등 후속 조치 사업을 적극적으로 이행해야 함에도 재단만 설립한 것도 문제라고 했다. 나머지 의무를 피해국인 한국 정부에 떠넘기는 것은, 돈만 주고 손을 떼겠다는 의도로 보인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대협은 정부가 내건 약속은 충격적이라고 비판했다.
"피해자들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 온 관련 단체와 상의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굴욕적 합의를 내놓으며 정부가 최종 해결 확인을 하는 것은 명백한 월권행위이며, 피해자들을 다시 한 번 커다란 고통으로 내모는 일이다. 되를 받기 위해 말로 줘 버린 정부의 외교 행태는 굴욕적이다.
평화비는 어떤 합의의 조건이나 수단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평화비는 피해자들과 시민사회가 천 번이 넘는 수요일을 지켜내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과 평화를 외쳐 온 수요 시위의 정신을 기리는 산 역사의 상징물이자, 공공의 재산이다."
교계, 위안부 피해자들 끌어안아야
기독인 역사학자들은 대응 방안을 묻는 말에, 지속적인 '관심'과 일본 정부에 추가 조치를 요구해야 한다고 답했다.
김승태 연구위원은 기독교는 피해자의 편에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계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은데 관심이 부족한 것 같다. 정대협에서 활동했던 분들과, 지금 수요 집회를 인도하는 사람 중 기독인이 많다. 그러나 몇몇 분이 힘쓰는 것이지 한국교회 전체로 봤을 때는 너무 무관심하다. 경쟁할 것은 아니지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쉼터는 불교계가 운영하고 있다. 기독교계가 기여할 게 많은데 관심이 부족한 편이다. 피해자의 편에 서는 예언자적 정신이 필요한 때다."
윤경로 교수는 기독교인들이 역사의식을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70년, 우리는 해방 이후 앞만 보고 달려왔다. 많은 성취도 이뤘다. 이제는 조금 쉬면서 뒤를 좀 돌아보고, 교회가 무엇인지 성경이 원래 담고 있는 뜻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성찰이 좀 필요한 것 같다. 새롭게 역사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말이다. 한국교회가 추구했던 세속·물질주의 가치관은 기독교적인 가치관이 아니다. 그런 것들을 한 번에 바꿀 수 없지만 조금씩 바꿔 나가야 한다."
옥성득 교수는 일본 정부에 추가 조치를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
"일본 내 양심적인 역사학자와 인권 단체 등과 협조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추가 조치를 요구해야 한다. 곧 일본 역사 교과서에 위안부·징용·징병 등 일제 말 일본 정부의 죄악상이 들어가도록 해서 재발을 막는 평화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운동해야 한다.
위안부 관련 역사 자료 발굴 등 연구를 심화해야 하며, 학문 연구를 지원해야 한다. 또 세계 여론과 미국 정치계 등을 향해 계속해서 위안부 관련 역사적 사실을 알리고, 일본 정부가 성실하게 강제 동원에 대해 책임지는 조치를 취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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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였던 아들과 삶을 포기하려 했던 엄마의 감동 실화
▲「다시 집으로」.
마약과 동성애에 빠져 집을 떠난 아들과 삶이 무너져 내린 엄마가 다시 희망을 찾기까지의 감동적인 실화를 담은 책 「다시 집으로」가 발간됐다.
중국인 이민자 안젤라 위안은 미국에 정착해 남편과 치과병원을 운영하며 성공가도를 달렸지만, 남편과의 관계에서 신뢰가 깨졌고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들 크리스토퍼 위안마저도 자신의 품을 떠났다. 자신이 꿈꿔 온 모든 미래가 무너진 그녀는, 목숨을 버리려는 극단적인 결정을 한다.
또 미국에서 태어난 이민 2세 크리스토퍼 위안은 이방인처럼 늘 위축되고 소외돼 있었다. 자신의 성정체성 문제로 가족과 갈등을 겪게 됐고, 결국은 동성애와 마약을 좇다 에이즈에 감염된 채 어떤 미래도 꿈꿀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엄마인 안젤라 위안과 그녀의 아들 크리스토퍼 위안, 삶이 무너져 내린 절망적인 순간에 이 두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 치유의 길로 들어선다.
안젤라 위안은 깨어진 가정을 회복하고 아들의 참된 행복을 소망하기까지 고통스럽고 기나긴 과정을 거쳐야 했다. 크리스토퍼 위안은 생의 끝자락에서 주님을 만났고,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회복하면서 삶이 회복되는 놀라운 경험을 한다.
크리스토퍼 위안은 무디신학교(MBI)에서 학사 학위를, 휘튼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벧엘신학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으며, 무디신학교에서 시간강사로 있다.
안젤라 위안은 사업가로서 중국과 미국의 문화적 차이를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한 두 사람은 함께 미국과 각국을 순회하며, 탕자가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이 책을 추천한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원회는 "동성애 확산과 포괄적차별금지법 제정 추진 저지에 힘쓰고 있는 한국교회에 크리스토퍼 위안과 안젤라 위안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구원과 복음, 그리고 거룩한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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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송구영신 예배, 첫 시작은? 1885년 12월 31일…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등 장로교·감리회 연합으로 철야 기도
옥성득
송구영신 예배와 기도회는 초대교회부터 지켜 온 교회력에 있는 전통적인 절기는 아니다. 그러나 모라비안교회가 드리던 12월 31일 밤 철야 기도 예배(all night prayer service)가 18세기 중엽 존 웨슬리에 의해 영국 감리교회의 제야 예배(watch night service)로 예전으로 정착되었다가, 미국감리교회를 거쳐 1880년대 한국선교회 교회 시작과 더불어 소개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 증거가 부족하여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한국 제야 예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살펴보자.
웨슬리의 '언약 기도'
제야 예배는 묵은 한 해의 허물과 죄를 회개하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면서 신앙의 결단을 새롭게 하면서 하나님의 복과 은총을 비는 거룩한 시간이다. 웨슬리는 계약신학에 기반하여 언약 갱신 예배(Covenant Renewal Service)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점차 감리교회의 제야 예배로 바뀌게 되었다. 예배 때 사용한 웨슬리의 '언약 기도'를 보자. (필자의 번역)
저는 더 이상 제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 뜻대로 저를 배치하시고, 원하시는 이들과 함께 동역하게 하소서.
저를 행동하게 하시고, 고난받게 하소서.
주께서 저를 고용하시거나, 주를 위해 실직시켜 주소서.
주님을 위하여 저를 상석에 올리거나, 비천한 자리에 내려가게 하소서.
저를 가득 채워 주시거나, 텅 비게 하소서.
저에게 모든 것을 주시거나, 아무것도 가지지 않게 하소서.
제가 가진 모든 것을 기꺼이 단 마음으로 바치오니
주께서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여 주소서.
하오니, 영광스럽고 복 되신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이시여,
주님은 저의 것이며, 저는 당신의 것입니다.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
땅에서 맺은 이 언약을
하늘에서 인준하여 주소서.
아멘.
이 기도를 현대 예전으로 바꾸어 사용하는 교회들이 많다. 한국교회도 상황에 맞게 현대화하여 교독문 형식으로 기도하면 좋을 것이다.
첫 제야 예배, 1887년 12월 31일 아냐
김경진 교수는 1887년 12월 말에 열린 벧엘감리교회(아펜젤러 담임)와 정동장로교회(언더우드 담임)의 한국인 '연합 기도 주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 첫 송구영신 예배를 했다고 보았다. 김 교수는 이때 아펜젤러가 이 제야 기도회를 제안했고, 기도회 마지막 날 웨슬리의 언약 갱신 예배를 소개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감리교회의 전통적인 제야 예배를 이후 한국 감리교회와 장로교회가 연합으로 시행했다고 보았다. [김경진, "The Context, Contour and Contents of Worship of the Korean Church: Focused on the Presbyterian Church," <장신논단> (2012년 10월), 72; 참고]
위 사실이 여러 온라인 사이트에 인용되어 있으므로, 먼저 한두 가지를 바로잡는 게 필요하겠다. 첫째, 1888년 설날의 장감 연합 기도회는 신정이 아니라 구정 설날부터 1주일간 했다. 즉 1887년 12월 말이 아닌 1888년 2월 12일(주일)에 기도회를 시작해 1주일간 두 교회가 매일 저녁에 연합으로 모여서 기도했다. 기도회의 마지막 날은 1887년 12월 31일이 아니라 1888년 2월 20일 월요일 저녁이었다.
둘째, 이 연합 기도회는 아펜젤러가 제안한 것이 아니라, 정동장로교회 한국인들이 제안했다. 셋째, 구정 첫날부터 일주일간 기도회를 하고 마지막 날에 웨슬리의 언약 갱신 예배를 한 것이 아니라, 성찬식으로 마무리를 했다. 자료 어디에도 웨슬리의 그 기도문이 사용되었다는 말이 없으며, 마지막 날은 설날 전날인 제야의 밤도 아니었다.
김 교수가 주장하는 근거 자료인 1888년도 미국 북장로회 해외선교부 연례 보고서[Annual Report of the Board of Foreign Missions of 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USA (New York: Mission House, 1888), 170]를 보자.
"At the opening of the Korea New Year we are to have a week of prayer, and the Presbyterian church has asked the Methodist church (native) to unite. This they have consented to do, and we are looking forward to a glorious season."
즉 구정 때 소수의 한국인 교인들이 일주일간 연합 기도회를 열고 서로 격려하며 힘을 얻었다. 정동장로교회가 먼저 제안한 것을 벧엘감리교회가 수용하여 함께 모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은 언더우드가 구정 직전인 1888년 2월 6일 자로 엘린우드 총무에게 보낸 편지에도 나온다.
"일주일간의 기도 주간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국 설날 혹은 중국 신년(구정)이 시작될 때 본토인들끼리 연합 기도 주간을 가질 계획입니다. 우리는 감리교회에 연합을 제안했고, 마지막 날 성찬식을 베풀 것입니다. 우리는 이때를 고대하며 큰 복을 기대합니다." [옥성득 편역, <언더우드 자료집 1> (연세대출판부, 2005), 91]
위의 두 자료는 기도회 전에 쓴 글이다. 연합 기도회 후에 쓴 글은 다음 잡지 기사로, 언더우드가 1888년 3월 말이나 4월 초에 썼다.
"한국은 외국인에게 개방된 지 5년이 되었다. 선교사들이 온 지는 만 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 도시에 50명에 가까운 세례교인을 가진 두 개의 조직된 토착인 교회가 있다. 선교사들의 기도 주간 때 한국인 교인들이 외국인들이 일주일 동안 매일 저녁에 모이는 이유를 물었다. 이유를 말해 주자 이를 좋게 여기고, 한국 설날 때 본토인 기독교인들이 함께 기도 주간을 갖자고 제안했다.
모두 이 제안을 기쁘게 환영했고 계획하고 준비했다. 한국 설날은 1월 12일에 시작되었고, 2월 20일까지 매일 밤 모임을 가졌다. 모임의 절반은 한국인 지도자들이 인도하고, 나머지 절반은 선교사들이 맡았다. (중략) 우리는 기도 주간을 성찬식으로 마무리 지었는데, 모두 복된 시간이었다고 느꼈다." [Underwood, "Prayer Week in Korea," Gospel in All Lands (Aug. 1888), 361]
이 기사는 한국인들이 선교사들의 제야-신년 기도회를 보고 자신들도 신년 기도회를 할 것을 계획했으며, 구정 첫날 저녁인 1888년 2월 12일부터 20일 월요일 저녁까지 연합 기도회를 했다고 알려 준다. 특히 8일간의 기도회에서 4일은 한국인들이 인도하고, 나머지 4일은 아펜젤러나 언더우드 등이 인도했다.
기도회에 참석한 자들은 모두 자신의 신앙을 간증했다. 나라와 고종, 다른 나라의 선교 사역, 한국에 온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했다. 마지막 날 저녁 20일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참석하여 성찬식으로 마무리하여 한국인 초신자들의 신앙을 강하게 하고 격려했다. 참석자들은 기도회 후 담대히 전도했다. 다른 사람들을 교회에 데리고 와서 교인들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세례 신청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첫 철야 제야 기도회, 1885년 12월 31일
그러면 첫 제야 기도회는 언제 어디서 드렸을까? 한국에 온 첫 목회 선교사들(언더우드와 아펜젤러)은 1885년과 1886년 12월 31일에 제야 기도회를 했다. 언더우드가 1891년 미국에 첫 안식년 휴가를 갔을 때 10월 23일 내슈빌에서 열린 미국 신학교 선교 연맹에서 한국 선교를 호소하는 연설을 할 때 첫 선교사들의 1885년 12월 제야 기도회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우리는 그곳 한국에 1884년과 1885년에 도착했다. 우리는 제야 철야 기도회로 모였다. 아내들을 포함해서 10명, 두 명의 하인까지 합해서 12명이 모였다. 그곳에 우리뿐이었다. 짐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찼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편에 서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
기도 제목에 대해서는 미리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 있는 한 가지 짐, 곧 다음 해에는 구원받은 한 영혼을 보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온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가능할까? 하나님은 놀랍게 축복해 주셨다. 1886년 7월 11일(18일) 우리는 첫 개종자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중략)
1886년 연말에 우리 선교사들은 다시 만났다. 우리의 기도 제목은 내년에 더 많은 영혼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해 달라는 것이었다. 2년 만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1887년 9월에 23명의 교인으로 첫 교회를 조직하도록 허락하셨다. 1888년 말 선교사와 교사를 포함해서 우리 교인은 100명을 넘어섰다. 이상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신 방법이었다." [Underwood, "Address," Report of the Twelfth Annual Convention of the American Inter-Seminary Missionary Alliance (Pittsburgh: Mirdock, Kerr & Co., 1892), 54.)
1885년과 1886년의 12월 31일 제야 기도회는 장로회와 감리회 선교사들이 연합으로 모였다. (장소는 누구 집이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1885년 말에는 알렌 부부, 언더우드, 아펜젤러 부부, 헤론 부부, 스크랜턴 부부와 스크랜턴 모친 등 10명이 참석했다. 1886년 말에도 동일한 다섯 가정에 엘러즈가 추가되었고, 다음 사진에서 보듯이 스크랜턴의 딸 어거스타와 서울에서 태어난 첫 외국인 아이인 아펜젤러의 딸 엘리스도 함께 사진을 찍었다.
▲ 1886년 12월 31일 제야 기도회(알렌 촬영) 사진. 벌써 문에 유리를 넣어 개량 한옥을 만들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왼쪽 위부터 헤론 부부, 아펜젤러 부부, 스크랜턴 부부와 스크랜턴 모친, 엘러즈, 언더우드, 엘리스 아펜젤러, 알렌 부인.
▲ 1886년 12월 31일 제야 기도회(스크랜턴 촬영) 사진. 왼쪽 위부터 아펜젤러 부부, 스크랜턴 부인, 언더우드, 헤론 부부, 스크랜턴 모친, 엘러즈, 어거스타 스크랜턴, 알렌, 엘리스 아펜젤러, 알렌 부인.
이들은 1885년 12월 31일 밤 함께 철야 기도회로 모여, 마태복음 28장 선교 명령과 임마누엘의 약속을 기억하며, 내년에는 한 명의 개종자를 허락해 달라는 담대하고 야심 찬 기도를 드렸다. 선교지 도착 1년 만에 개종자라니. 다른 지역에서는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1886년 7월 18일 노춘경이 세례를 받아 그 기도는 응답되었다.
다시 1886년 12월 31일 철야 연합 기도회에서도 더 많은 영혼을 얻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 응답으로 1887년 9월에 23명의 교인(14명의 세례교인)으로 정동장로교회가, 10월에 4명의 세례교인(박중상, 한용경, 최성균, 장씨)으로 벧엘감리교회가 설립되었고 곧 최씨의 아내가 첫 여성 수세인이 되었다.
이 두 교회 교인들은 선교사들이 1887년 12월 31일부터 1888년 1월 초까지 1주일간 연합 기도회로 모이는 것을 보고, 위에서 본 대로 구정 때 한국인 연합 기도회를 가졌다.
1885~1888년 제야 기도회 때 아펜젤러가 웨슬리의 언약 갱신 기도문을 사용했을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이를 보여 주는 자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1889년이나 그 이후에 제야 기도회를 드렸는지 확실하지 않다. 1890년 1월 서울에 도착한 마페트의 기록에도 그해 구정 설날 전후에 기도회로 모인 일을 보고하지 않는다.
구정 설은 사경회 기간으로 발전
초기 교회의 제야는 구정 전날이었으며, 설날이 되면 농한기라 정월 대보름까지 쉬었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1주일에서 2주일 동안 사경회를 열었다. '설'의 어원은 '설다'와 '사린다'이다. 낯선 시간이 다가오므로 몸을 사리고 근신하며 경거망동하지 않고 삼간다. 그래서 설날을 신일(愼日)로 불렀다. 교회는 설날 보름 기간을 성경 말씀 앞에 개인과 공동체를 비추어 보고 근신하며 기도하는 구별된 거룩한 시간을 가졌다.
정월 대보름 전날 14일 밤에는 액운과 돈을 담은 제웅(짚으로 만든 허수아비 처용)을 집 밖에 버렸다. 재앙을 짊어지고 버려진 제웅은, 구약시대 매년 속죄일 대보름날 대제사장에게 안수받은 뒤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지고 광야에 버려진 희생양(레 16:21)과 비슷했다. 정월 대보름날에는 액운을 날려 보내기 위해 연날리기했다. 곧 제야부터 정월 대보름까지는 송구영신하며 재약 영복하는 기간이었다.
한국교회는 제웅을 버리는 풍속을 바꾸어 회개하는 사경회로 만들었다. 남을 희생양으로 만들었던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반전(反轉)의 역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에서 시작되었다. 복음서는 희생자와 피해자가 쓴 첫 책이자, 그들의 대변자인 무죄하신 예수께서 죄와 악을 이기고 승리했음을 선언한 첫 책이었다. 사경회는 그 복음서를 공부하고 내면에 숨겨진 욕심과 폭력을 회개하는 기간이었다. 동시에 망해 가는 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해서, 그리고 일제의 희생 제물로 식민지가 된 민족의 해방과 부활을 믿고 기도하는 기간이었다.
제야 기도회 때 조심할 일
1. 한 해 동안 지은 죄를 쓴 종이를 태우는 소지(燒紙): 기본적으로 무당의 소지는 부정(不淨)적인 것을 불(火氣)로 태워 없애는 부정풀이 방법의 하나이다. 기도할 때 소지하는 것은 무교의 굿에 사용하는 방법으로, 화려한 종이꽃과 같이 종이로 만든 무구(巫具)를 무당이 굿을 한 후 태워서 하늘로 올린다.
이때 가벼운 종이 불이 잘 올라가면 신이 감응하여 부정이 없어진 것으로 여기고, 소지 종이가 잘 타지 않고 잘 올라가지 않으면 부정이 제거되지 않았다고 보고 다시 굿을 한 후 소지한다. 점쟁이도 소지의 방법으로 길흉을 점친다. 그래서 1890년대 초기 개신교 소책자를 보면, 기도할 때 향촉을 쓰거나 소지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 <예수교 문답>(1895년)에서 저자 네비어스 부인은 기도할 때 향촉과 소지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문답했다.
2. 성경 말씀 뽑기: 이 또한 무당이나 점쟁이가 사용하는 한 해의 신수(身數)를 보여 주는 점괘를 뽑는 방법을 차용한 것이다. 헌금(복채)을 바치고 성경 말씀을 복권 뽑듯이 골라 1년 신수와 운세를 점치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그것은 올해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성경에 보면, 가룟 유다의 죽음으로 공석이 된 12번째 예수님의 제자를 제비로 뽑는다. 그것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증언하는 증인(순교자)이 될 수 있는 자격이 되는 두 사람 중 한 명을 선정하는 확증의 방법이었다. 알 수 없는 1년 운수를 점괘 고르듯이 뽑는 것이 아니었다.
미래는 하나님 손에 정해져 있다. 바꿀 수 있는 것은 과거다. 과거를 청산하는 회개 작업, 옛 것을 바로 보내는 송구(送舊)의 역사 청산 작업이 있을 때, 하나님이 마련해 놓으신 새해를 영신(迎新)할 수 있다.
옥성득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UCLA) 아시아언어문화학과 임동순·임미자 석좌 부교수(한국기독교)이다.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와 국사학과를 졸업한 후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과 대학원을 거쳐 미국 프린스턴신학교와 보스턴대학교에서 기독교 역사를 공부했다. 2002년부터 UCLA에서 한국근대사와 한국종교사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 <한반도 대부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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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어떻게 할 것인가
박봉수
본문 / 신명기 8장 1-10절
인생은 이별의 연속입니다. 이 땅에 태어날 때 이미 어머니 뱃속과 이별하며 인생은 시작되었습니다. 자라면서 점점 따뜻한 부모님 품을 떠나 학교로 사회로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커서는 자라온 가정과 이별하고 새로운 가정으로 나아갑니다. 때로는 공부하기 위해 또는 일을 위해 집을 떠나기도 하고 나라를 떠나기도 합니다. 그렇게 살다가 결국 이 세상과도 이별하고 저 하나님 나라로 나아갑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참 많은 이별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우선 사람들과 이별하며 살아갑니다. 가족들과 이별을 겪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을 겪습니다. 이런 저런 연관된 사람들과 이별을 겪습니다.
다음으로 공간과도 이별하며 살아갑니다. 정을 붙이고 살았던 고향과 이별하기도 하고, 이사하면서 정붙이고 살았던 집과도 이별하기도 합니다. 학교와 이별하고 직장과 이별하고 공동체와도 이별합니다.
그리고 시간과도 이별하며 살아갑니다. 매일 매 순간 시간과 이별하며 살아갑니다. 가장 실감나는 것은 오늘과 같은 이런 세모에 한 해를 떠나보내며 한 해와 이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이별을 겪으면서 아픔을 겪습니다. 이별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아픔은 바로 슬픔입니다. 특히 상실에 대한 슬픔이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 곁을 떠나 없을 때 정말 우리는 큰 슬픔을 겪습니다. 그것이 사별로 다시는 이 땅에서 만날 수 없는 이별일 때 그 슬픔은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별을 잘 해야 합니다. 이별의 아픔을 잘 극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 아픔이 두고두고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우리 인생 자체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습니다.
그러면 이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이별을 잘할 수 있을까요?
작가 김형경이라는 분이 <좋은 이별>이라는 에세이집을 펴냈습니다. 도대체 좋은 이별이란 무엇일까 라는 궁금한 마음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이분은 이별이 가져다주는 가장 큰 고통은 상실에 대한 슬픔이라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별 뒤에 찾아오는 이 상실의 슬픔을 잘 다독거리지 못해서 마음속에 큰 상처로 남게 되고 두고두고, 자신을 힘들게 하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이별은 ‘나뿐 이별’인 것입니다.
이분은 이별 때문에 상실에 대한 슬픔이 일어날 때 애도의 기간을 갖으라고 권합니다. 이 기간 동안 슬픔 가운데 있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라고 권합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그 상실의 아픔과 슬픔을 흘려보내라고 권합니다. 상처 뒤에 새살이 돋아나듯이 새로운 소망, 새로운 비전, 그리고 새로운 자아가 마음속에서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런 과정을 거치며 이별을 겪어내는 것을 ‘좋은 이별’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이별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별을 자기 힘으로 이겨내려는 몸부림일 뿐입니다. 그저 이별의 슬픔을 줄이고 슬픔의 기간을 단축하는 정도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 정도를 좋은 이별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이별을 잘 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그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믿음의 수용
신명기는 모세의 일종의 고별 설교입니다. 모세는 지난 40년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으로의 행군을 진두지휘했습니다. 이제 가나안 땅이 바라보이는 요단 동편 모압 평지에서 그 인생을 끝내게 됐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별을 해야 합니다. 자기가 이끌던 이스라엘 백성들과도 이별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해오던 사역과도 이별해야 합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착잡했을까요? 다시는 가족들을 볼 수 없는 먼 길을 떠나야 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그동안 40년을 생명처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며 이끌어왔던 이스라엘 백성들과도 이별을 해야 하니 그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그러나 민수기와 신명기를 자세하게 읽어보면 모세는 결코 이별의 아픔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았습니다. 이별의 아픔 때문에 힘들어하기 보다는 차분하게 이별을 준비했습니다. 그 이별을 후회 없는 이별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신 34장 1절 이하를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여기까지’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하나님께 오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이 이별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이 명령을 수용했던 것입니다.
삼하 12장을 보면 쉽게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이 밧새바와의 부적절한 관계로 하나님께 범죄했습니다. 이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중병에 걸렸습니다. 다윗이 아이를 낫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모든 일을 제쳐두고 철야하며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7일 만에 죽었습니다.
주목할 것은 다윗의 태도입니다. 아이가 불쌍하기도 하고 밧새바가 안 됐고 해서 크게 슬퍼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아이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는 슬퍼하기는커녕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했습니다. 그리고 왕궁으로 돌아가서는 잘 먹었습니다. 슬픔을 툴툴 털어버렸던 것입니다.
지켜보던 신하들이 이해할 수가 없어서 다윗 왕에게 물었습니다. “이 일이 어찌됨이니이까?” 삼하 22:7을 보면 다윗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이런 이야기입니다. 이미 다윗은 나단 선지자로부터 이 아이를 하나님께서 데려가실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로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께 그 뜻을 돌이키셔서 아이를 살려달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래 뜻대로 아이를 데려가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하나님께서 뜻 가운데 이 아이를 데려가셨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믿음으로 아이와의 사별을 수용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이별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믿음으로 수용하면 이별의 슬픔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다 좋은 계획 가운데 이별하게 하셨다는 것을 알기에 이별의 슬픔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2015년과 이별하는 시점에 서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2015년을 보내고 2016년을 맞으라 하시기에 우리는 2015년을 보냅니다. 그리고 희망 찬 2016년을 주실 것을 믿기에 아쉽지만 송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의 기억
오늘 본문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별설교로 남긴 말씀 가운데 일부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으로의 행군의 시대를 끝내고 가나안 시대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모압 평지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나아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일종에 시간과의 이별 그리고 공간과의 이별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모세는 본문 2-3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이제 광야 생활 40년을 마무리하면서 그동안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억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별을 잘 하려면 감사한 마음으로 돌아보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동안 함께 했던 시간들을 돌아보며 아름다운 추억을 마음에 간직하고 감사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아름다운 기억들을 마음에 간직하고 감사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한국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한국을 잘 아는 한 미국인이 교육자들이 모인 모임에 초청되어 강연을 했다고 합니다. 이분이 강연을 시작하면서 한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한국 교과서와 미국 교과서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아느냐는 질문입니다. 이분이 제시한 답은 ‘영웅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미국 교과서에는 많은 영웅 이야기가 있는데 한국 교과서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 아이들은 영웅의 이름을 열거해 보라면 누구라도 20여명은 거뜬히 댄다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한국 아이들은 그저 이순신, 세종대왕 하다가 만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비극도 비극으로만 끝내지 않습니다. 그곳에서도 영웅을 찾습니다. 상실의 현장에서도 무엇인가를 찾아내려고 애쓰는 나라입니다. 9.11 테러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책임소재를 따지자면 대통령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에서 물러나도 시원치 않을 상황입니다. 그러나 미국사회가 주목한 것은 테러 당시 현장에서 인명을 구하기에 온 힘을 바쳤던 소방대원들을 비롯한 지원봉사자들입니다. 저들을 기리기 위해 미국은 그곳을 ‘영웅구역’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9.11 사태의 아픔을 잘 극복하고 사회 통합의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세월호 참사를 겪은 뒤에 우리나라가 보인 태도입니다. 세월호 참사 때 승객 중에 김홍경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가장 탈출하기 좋은 위치에 있었으면서도 탈출하지 않고 구명조끼 수십 벌을 찾아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고 또 커튼을 찢어 끈을 만들어 학생들을 끌어올려 20여명을 구조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이런 사람을 영웅으로 높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사 후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고 위암 진단을 받고 투병중인데도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책임소재를 따지느라 그리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느라 세월만 보내고 상처를 더욱 깊이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별을 잘 하려면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할 수 있으면 밝은 모습을 보려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의 기억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추억을 마음에 남겨두어야 합니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교훈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감사의 기억을 소멸시키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 교훈은 마음속에 깊이 담아두되 겉으로는 감사의 기억을 드러내게 해야 합니다.
이제 2015년을 마감하는 시점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깊이 하나씩 세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감사의 기억으로 담아두시기 바랍니다. 물론 내가 실수했던 일들과 그 교훈도 기억의 깊은 곳에 묻어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대세는 감사의 기억이 되게 해야 합니다.
희망의 기대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저들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복된 미래를 열어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7절 이하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된 앞날을 활짝 열어 주실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들에게 희망을 가지고 앞날을 바라보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근거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역사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냉정하게 앞날을 분석해 본다면 비관적입니다. 과연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원주민들을 다 내쫓고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인가가 회의적입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인명피해가 있을 것인지 두려운 상황입니다. 그 땅을 차지한다고 해도 그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회의적입니다. 그 땅이 그렇게 옥토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 말씀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망찬 비전을 가지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희망찬 비전의 근거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부정적인 상황을 바꾸시고 저들의 희망을 구체적으로 실현해 가실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제롬 그루프먼이라는 분은 <희망의 힘>이라는 책에서 희망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희망이란 마음의 눈으로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길을 볼 때 경험하는 상승 감정이다.’ 희망은 마음의 눈을 열고 더 나은 미래를 볼 때 일어나는 감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희망은 가지고 싶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희망은 그저 마음속에 밝은 미래를 그려놓는다고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의 눈으로 밝은 미래가 보여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삼상 14장을 보면 블레셋과 이스라엘과의 전투장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때 블레셋 군대는 전차 3만, 기마병이 육천, 보병은 해변의 모래같이 많았습니다. 이스라엘 군인은 겨우 3천이고 저들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었고 농사짓던 농기구를 들고 전쟁에 나섰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전투를 벌이려하기 보다는 바위틈에 숨어 떨었습니다.
이 때 요나단이 삼상 14:6을 보면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 하였느니라.”
지금 요나단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더 나은 미래를 믿음의 눈을 열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펼쳐주실 놀라운 미래를 믿음의 눈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별을 할 때 이별 후 펼쳐질 아름다운 미래를 믿음의 눈을 열고 내다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희망을 가질 수 있고 희망을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희망을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2016년을 내다봅니다. 세상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온통 부정적인 이야기들뿐입니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의 눈을 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펼치실 복된 미래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희망의 기대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이 송년주일입니다. 2015년과 이별하고 2016년을 맞이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우리가 이별을 잘해야 하겠습니다. 믿음으로 2015년을 보내야 하겠습니다. 감사한 기억을 마음에 담으며 2015년을 보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앞날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2015년을 보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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