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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립 60주년 맞은 가나안농군학교 김평일 교장 / 보이스카웃, 동성애 리더 허용… 교계 지원 중단
    2015-11-27 00:03:33   read : 1713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설립 60주년 맞은 가나안농군학교 김평일 교장 “성실 절약 정직… 가나안정신 살려야 행복”

    ▲매일 새벽 5시면 울렸던 개척종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경기도 양평 가나안농군학교
    김평일 교장. 뒤편에 보이는 곳이 입소하는 원생들이 묵는 숙소이다. 양평=강민석 선임기자

    1955년 고 김용기(1912∼1988) 장로가 야산을 개간해 만든 농장에서 문을 열었던 가나안농군학교가 올해 60주년을 맞았다.

    경기도 하남시 풍산동 4만㎡에서 농장으로 시작됐던 제1가나안농군학교는 지난해 10월,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으로 이전해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하남 농군학교는 70만여명의 훈련생이 거쳐 간 곳입니다. 아버님의 열정과 신앙, 정신이 고스란히 깃든 곳인데 보금자리 주택지구 개발로 인해 헐값 보상을 받고 이주해야 했습니다. 안타깝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양평에서 교육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고 김용기 장로의 삼남으로 학교장인 김평일(73) 장로는 “2011년 양평수목원 땅 6만㎡를 매입해 전 직원이 개간에 매달려 이사할 수 있었다”며 “거의 매일 양평과 하남을 오가며 일하느라 체중이 10kg 이상 줄었지만 건강은 오히려 좋아졌다”며 밝게 웃었다.

    가나안농군학교는 1960∼70년대 한국 정신개혁운동의 중심이었다. ‘하면 된다’ ‘가난을 싸워 이긴다’ 등이 새마을운동 구호가 됐고 새벽 5시에 울리는 농군학교의 ‘개척종’은 “새벽종이 울렸네”로 시작하는 새마을노래를 만들 정도로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정·재계인사 중 이곳에서 교육을 받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90년대 접어들면서 원주에 생긴 제2가나안농군학교와 함께 입소인원이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

    “시대가 급변하고 있는데 예전의 교육방식으론 한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농군학교의 정체성은 지켜가면서 직장인,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의식개혁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내용을 모두 바꾸었습니다.”

    농군학교는 10일 이상의 합숙프로그램도 있었지만 요즘은 2박3일 동안 의식개혁과정과 미래설계과정 두 과정만 운영한다. 강의만 실시하지 않고 농장견학과 등산 등 내용도 다변화시켜 호응을 얻고 있다. 또 단체나 기업의 요청에 따른 맞춤 프로그램도 효과적으로 짜주고 있다.

    “양평으로 와서 지난 1년간 4000여명이 입소했는데 잘 운영되기엔 다소 부족한 인원입니다. 20여만원 남짓한 훈련비로는 강사비 등 운영비로 다 나가거든요. 그렇지만 입소자들이 이곳서 변화를 받아 참된 인생의 가치를 발견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질 때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보람과 기쁨이 있습니다.”

    김 교장은 농군학교 일 외에도 30여년째 탈북자들을 돕는 일에도 앞장서왔다. 명절마다 탈북자를 초청해 잔치를 열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탄생한 평화통일탈북인연합회 이사장도 맡고 있다. 7000여명이 회원으로 가입된 이 단체는 ‘평화통일예술단’ 등을 통해 통일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김 교장은 “가나안농군학교의 변하지 않는 핵심가치는 열심히 일하고 최대한 절약하고 진정한 행복을 맛보자는 것”이라며 “많은 분들이 공기 맑고 경치가 뛰어난 이곳 양평농군학교에 와서 자연과 더불어 새롭게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들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을 맺었다 (kor-canaan.or.kr·031-774-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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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찬송 불렀으면…” YS 마지막 만찬서 가족에 제안



    ▲사진=김현철 페이스북

    신앙심이 두텁기로 유명했던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 전 가족들과의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되뇌었다고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몇 주일 전 서울의 한 호텔에서 가족들과 식사를 함께 하다 “찬송가를 함께 불렀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먼저 했다고 23일 중앙일보가 전했다. 선택한 곡은 평소 즐겨 찬양하던 ‘나의 갈 길이 다 가도록’이었다. ([관련기사] YS가 생전에 좋아했던 성경 구절·찬송가)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 하시니. 내 주 안에 있는 긍휼(矜恤) 어찌 의심하리요.” 가족들은 그 순간 마지막 만찬임을 직감하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부른 찬송가를 녹음한 것으로 전해졌다.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악보와 음성이 담긴 영상을 첨부한다. 잠시 함께 감상해보자.

    서울 충현교회 장로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성경 ‘이사야서’ 41장 10절도 자주 읊었다고 한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그가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마다 붙잡은 말씀이었다.

    지난 22일 빈소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둘째 동생 김호아(81)씨는 “이사야서는 오빠가 살아생전에 좋아해 외우곤 했던 문구였다”며 “직접 부른 노래 역시 즐겨 부르던 찬송가였다”고 매체에 소개했다. 그는 “언니(손명순 여사)가 오빠가 아프면서부터 말을 잘 안 하고 우울해한다”며 “지금도 말이 별로 없다”고 눈시울을 붉혔단다.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을 지낸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장례는 국가장으로 치러진다. 국가장 기간인 오는 26일까지 전 국민은 조기를 게양해야 한다. 영결식은 26일 목요일 오후 2시 국회의사당 본관 앞에서, 안장식은 영결식 종료 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거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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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삼환 목사, '세습은 없다'고 말해 달라"

    장신대 학생 65명, "김하나 목사의 태도 변화로 혼란 가중"
    최유리 기자



    ▲ 장신대 홈페이지에 명성교회의 세습을 우려하는 65명의 신학생들이 글을 올렸다. 이들은 김삼환 목사에게 '세습'과 관련한 입장을 밝혀 달라고 요청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김삼환 목사가 나온 장로회신학대학교(장신대) 홈페이지에 11월 24일, '김삼환 목사님께 65명의 후배들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아시아엔>에서 보도한 '명성교회'와 '새노래명성교회'의 합병 기사가 오보로 판명 났지만, 문제를 대수롭게 넘길 수 없는 신학생들이 김삼환 목사에게 공개편지를 띄운 것이다.

    이들은 김삼환 목사 아들 김하나 목사의 태도 변화를 지적하며 김삼환 목사가 공개적으로 "변칙 세습, 합병이 없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밝혀 달라고 요구했다. 2013년 종교개혁 기념 세미나에서 김하나 목사는 "명성교회의 담임목사직을 맡으라고 해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김하나 목사는 <뉴스앤조이>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시 내가 그렇게 이야기했으니 (한 말을) 지키겠다거나 지키지 않다고 하기 어렵다. 최대한 좋은 길을 가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 달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혼란만 가중하는 김하나 목사의 이런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장신대 학생들은 김삼환 목사에게 "부디 한국교회의 암담한 현실 앞에 서 있는 이 후배들에게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 달라"고 당부했다. 또 김 목사가 장신대 게시판이나 다른 언론을 통해 확실하게 답변하기를 기다리고 기도한다고 전했다.

    다음은 학생들이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김삼환 목사님께

    안녕하세요 목사님. 장신대 학생들입니다. 드리고픈 말이 있어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직접 찾아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여건상 서면으로나마 인사를 드립니다. 너그러이 이해해 주십시오.

    얼마 전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한 기사가 있었습니다. '명성교회'와 '새노래명성교회'의 합병 소식을 다루고 있었지요. 다분히 추측성이 짙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사는 굉장한 파급력을 끼쳤습니다. 수많은 담론도 형성됐었지요. 물론 대부분의 반응은 부정적이었습니다. 다행히 곧 <뉴스앤조이>를 통해 '오보'라는 것이 확인됐고, 이로 명성교회 후임자 문제는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게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통합 측 신학생인 저희들은 이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없었습니다. 혹여나 명성교회 정도의 영향력 있는 교회가 합병이라는 변칙 세습을 강행할 경우, 한국 사회가 보일 부정적인 반응이 심히 우려됐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무 힘도 없는 저희들이지만 무언가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이 글은 그 마음의 결과물입니다. 예의 없는 행동인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까지 하기로 결정한 저희들의 간절함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김삼환 목사님, 저희는 듣고 싶습니다. 목사님의 목소리로 "세습은 없습니다.", "변칙 세습인 합병은 없습니다"라고 당당히 밝히는 발언을 듣고 싶습니다. 일전에 아드님인 김하나 목사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세습금지법'이라는 제도는 "그것을 따를 주체적 용기와 결단"이 없다면 얼마든지 다른 방법으로 법망을 피해 갈 수 있는 허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법망을 피해 간다 해서 어느 누가 그것이 세습이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어느 누가 그 모습을 보고 지탄하지 않겠습니까. 목사님, 저희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하는 것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떳떳하게 밝혀 주십시오. "명성교회에 합병과 같은 변칙 세습은 없습니다"라고.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아드님인 김하나 목사님의 태도 변화 때문입니다. 김하나 목사님은 평소 "세습은 없을 것"이라고 밝혀 왔던 것과 달리, 최근에 "그때 내가 한 말은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또다시 확인해 주기는 좀 그렇다. 당시 내가 그렇게 이야기했으니 (한 말을) 지키겠다거나 지키지 않겠다고 하기 어렵다.

    최대한 좋은 길을 가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 달라. 이 정도로밖에 말 못하는 점 이해해 달라"고 말을 했습니다. 대체 무엇 때문에 투명하게 밝히지 못하는 것인지요. 혼란만 가중시키는 이러한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제 목사님께서 당당하게 변칙 세습인 합병은 없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여기 장신대 게시판을 통해서든, 아니면 다른 언론을 통해서든 목사님의 확실한 답변이 올라오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또 기도하겠습니다. 명성교회와 새노래명성교회가 이 땅의 가시적 교회로 하나님의 영광을 널리 드러내는 교회가 되길 기도하겠습니다.

    부디 한국교회의 암담한 현실 앞에 서 있는 이 후배들에게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 주십시오. 희생과 섬김의 길을 걸었던 그리스도처럼, 특권 포기라는 섬김의 길을 통해 먼저 된 자의 본을 보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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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혜진 “하나님 말씀을 주세요. ‘러브소나타’에서 드디어 만나”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누가복음 19장5절)

    배우 한혜진이 지난 10월 딸을 출산한 이후 몸을 회복하자마자 주일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금은 신실한 크리스천이지만 그는 과거 고 하용조 목사가 제안한 ‘러브소나타’에 참석해 신앙을 회복했다.

    한혜진은 CTS 기독교TV 크리스천 토크프로그램 ‘내가 매일 기쁘게’에 지난 2007년 11월20일에 출연했다. ‘故 하용조 목사의 제안, 자존감을 회복하기까지’의 주제로 이야기를 전했다.


    한혜진은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님이 전화를 주시더니 신촌세브란스 병원으로 와줄 수 있겠냐고 물어보셨다”며 “거절이 안 됐다. ‘알겠습니다’ 하고 갔다. 가보니 목사님이 암투병 중이셔서 투석을 하고 있었는데 너무 힘든 모습으로 계셨다. 그때 하나님께서 일본 땅에 대한 비전을 주셨는데 ‘러브소나타’에 참여해서 함께 해줄 수 있냐고 물어보셨다”고 말문을 열었다.

    한혜진은 “사실 가기 싫었다”며 “신앙도 밑에 있고 자존감도 낮았을 때였다. 왜 내가 거기 필요하지. 그렇지만 투석을 받고 계신데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일이 없는 것도 다 알고 계셔서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한혜진은 일본 문화선교프로그램인 ‘러브소나타’에 가서 하나님을 만난 간증을 이어갔다. 그는 “‘러브소나타’에 가서 충격을 받았다”며 “함께 스물 몇 명의 연예인이 같이 갔는데 그 분들의 신앙을 보고 너무 놀랐다. 마치 하나님이 내가 꼭 필요해서 부른 것 같은 교만이 있었는데 아니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해줄 사람들은 너무 많았고 하나님을 열렬히 사랑해줄 사람들도 많았다”고 전했다.

    그는 “제가 너무 도전을 받아서 질투심을 느꼈다”며 “저도 날마다 감사하고 싶고 뜨겁게 저들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었다. ‘나도 하나님 음성 듣고 나도 하나님 만나고 싶다’고 울부짖었다”고 고백했다.

    한혜진은 당시 하나님으로부터 삭개오의 말씀을 받았다. 한혜진은 “그날 하나님이 삭개오의 말씀을 주셨다”며 “삭개오가 예수님을 너무 보고 싶어서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데 ‘삭개오야 속히 내려와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겠다’고 하셨다. 하나님이 나한테 직접 말씀을 하신다는 게 이런거 구나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혜진은 “그때부터 날마다 큐티를 하는데, 그 큐티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편지로 받게 됐다”며 “그 기쁨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순간순간마다 놀라울 정도로 해주고 싶은 말씀을 주시고, 제가 깨달아야 할 말씀을 주셨다”고 전했다. “그때부터 회복되고 치유가 됐다”며 “하나님 앞에서 고난도 은혜로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한혜진은 “기도할 때 무작정 기도만 하고 하나님 음성을 전혀 듣지 못할 때가 많았다”며 “‘하나님 왜 말씀을 안 주세요’ 그랬는데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데 우리가 못 보기 때문에 그런 듯하다. 제가 그랬었다. 이제는 제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말씀으로 주시고 말씀에 따라 순종하거나 반응하니까 여기가 천국이구나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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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정 꽃장식, 3일장은 ‘일제잔재’- 하이패밀리 송길원 목사



    바람직한 가정문화 정립 운동을 펴고 있는 개신교 단체 ‘하이패밀리’ 대표 송길원 목사는 24일 수의, 상복, 3일장, 꽃 장식, 영구 운반 방식 등을 5대 일제 잔재의 장례문화로 꼽았다.

    그는 간담회에서 “1934년 조선총독부가 우리의 관혼상제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발표했던 의례준칙 중 장례에 관한 것에는 현재 장례문화의 토대가 되는 조항들이 있다”며 비단옷이 아니라 포목을 수의로 입히는 것, 굴건제복 대신 두루마기와 두건, 팔의 완장 등을 착용하는 것, 장례기간을 3일장으로 하는 것 등을 사례로 지적했다.

    영정 주위에 화려한 꽃 장식을 하는 것은 1980년대 일본의 장례문화 유행이 장례업자들에 의해 수입돼 번져나간 것으로, 영정 뒤에 병풍을 설치하는 것이 우리 전통이라고 송 목사는 설명했다.

    또 장지로 영구를 운반할 때 포목에 관을 묶어 다리 밑으로 끌고 운반하는 것도 일제 잔재로, 우리 전통은 고인에 대한 예우를 갖추기 위해 상여를 어깨에 메고 가는 것이었다고 송 목사는 덧붙였다.

    송 목사는 현대 사회에 맞는 우리식 장례문화로 평상복 중 제일 좋은 의복을 수의로 입힐 것, 1일장이나 3일장 중 자유롭게 선택할 것, 영정 주변 꽃 장식을 생략할 것, 영구를 어깨에 메고 운반할 것 등을 제안했다.

    송 목사는 “유교식 문화가 현대사회에 맞지 않으니 간소화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까지 일본을 따라 해서는 안 된다”며 “현대 사회에 적합한 새로운 장례문화를 정착시켜 낭비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이패밀리는 그동안 ‘웰다잉’을 주제로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죽음에 대해 성찰하는 ‘유언의 날’을 제정하고, 말기 환자 가족들을 위한 ‘임종휴가법안’을 발의했다.

    또 세상을 떠나기 전에 꼭 해야 할 일들과 가족과 지인에게 남기고 싶은 말들을 정리하면서 행복한 종말을 준비하는 ‘해피엔딩 노트 쓰기’ 운동도 벌였다.

    하이패밀리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우리 장례문화에 침투해 있는 일본의 잔재를 조명하고 새로운 장례문화를 정립하기 위한 노력도 펼쳐나가기로 했다.

    경기도 양평에 수목장을 운영해 온 하이패밀리는 현재 양재동에 있는 센터를 수목장 인근으로 옮길 예정이다.

    수목장 인근 3만평 부지에 다음달 개관하는 갤러리를 시작으로 내년 5월 게스트하우스, 9월 센터를 차례로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하이패밀리는 매년 연말 개최하던 인문학 체험학습을 올해의 경우 ‘종활(終活)-삶의 시작점에 서서’란 주제로 내달 8일 양평 수목장 인근에 개관하는 갤러리에서 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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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 살해, 성폭행범 검거

    데이비 블랙번 목사, 아내 살해범 ‘용서하겠다’ 밝혀
    news M



    ▲ 아만다 블랙번 살해 용의자인 래리 테일러(Larry Taylor)와 잴런 왓슨(Jalen Watson)

    미국 현지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다뤄진 인디애나폴리스 목사 사모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사건발생 12일 만에 검거됐다.

    소위 ‘아만다 블랙번 살인사건’으로 알려진 이번 사건의 용의자는 18살의 래리 테일러(Larry Taylor)와 공범인 21살의 잴런 왓슨(Jalen Watson)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리조닛 처치(Rosonate Church)의 데이비 블랙번 목사의 아내인 아만다 블랙번을 지난 10일(화) 총을 쏘고 금품과 차를 훔쳐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 아만다 블랙번 사모와 1살난 아들 웨스턴

    경찰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은 살인, 강도, 불법무기 소지 등 10여가지의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임신 중이었던 아만다는 강도들에 의해 성폭행을 당했으며, 경찰은 이 과정에서 남겨진 DNA를 확보해 수사를 벌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살해범인 래리 테일러는 사건 당시 감시카메라가 자신들을 찍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살해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만다는 인디애나주 제일침례교회 필 비어스 목사의 딸로 사건당시 임신 12주차였으며, 1살짜리 아들과 함께 있었으며, 아침에 체육관에서 운동하고 집에 돌아온 데이비 블랙번 목사가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아내를 발견했다.

    이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계자는 강도 높은 어조로 “우리 도시에 이런 살인자가 활보하게 할 수 없어 열흘 넘게 제대로 자지 않고 수사 중이다”며 “너희 스스로 생각하는 것처럼 결코 무사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를 잡기 전까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고 천명하기도 했다.

    한편, 용의자 검거 소식을 접한 데이비 블랙번 목사는 “내 안에서 솟구쳐 오르는 감정은 증오와 절망입니다. 하지만, 저는 용서와 은혜 그리고 희망의 길을 선택했습니다”라며 “지난 10년간 아내와 함께하며 배운 것이 있다면 ‘감정에 휘둘려 결정을 내린다면 결과는 희망과 열매가 없는 삶이다’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그들을 증오하지 않고 사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라고 전했다.

    블랙번 목사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뉴스프링교회(NewSpring Church)에서 교육목사 등으로 사역하다 2012년 뉴스프링교회의 도움으로 아내와 함께 리조닛교회를 개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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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스카웃, 동성애 리더 허용… 교계 지원 중단

    몰몬교는 어정쩡한 입장 취해… 걸스카웃은 휠씬 더 개방적

    김정언 기자 skm01_@daum.net

    【 <교회와신앙> 김정언 기자 】 어린 청소년들에게 봉사정신과 훈련을 제공해오면서 세계적 명성을 떨쳐온 미국 보이스카웃이 지난 7월 하순에 향후 동성애 리더를 받아들이기로 함에 따라 지원금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이는 미국 보이스카웃(BSA)이 지난 2013년 최초로 동성애자 단원을 수용하기 시작한 데다 추가로 올해 동성애 리더를 받아들이기로 함에 따라, 그동안 BSA를 지원해온 보수적인 기독교계가 지원을 끊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동성애 커플은 배도자’라고 선언한 몰몬교(후기성도예수그리스도교회, LDS)는 이러한 결정을 한 BSA를 계속 지원키로 하는 어정쩡한 입장을 취해 보수적 기독교계와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 동성애 깃발을 든 한 보이스카웃 단원 ⓒpbs.org

    105년 역사를 자랑하는 BSA은 현재 260만명의 어린이 단원(커브 스카웃)과 보이스카웃, 자원봉사자, 익스플로러들과 이들을 돕는 성인 자원봉사자 100만명 등 무려 총 1억 1500만 명이 관여돼 있는 등 막강한 단체이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출산율 저조, 비디오게임, 여타 청소년단체, 오늘날 청소년들의 바쁜 삶 때문에 계속 단원수가 급감해왔다. 가장 최근엔 동성애 단원 영입 문제로 난고를 겪고 있다.

    마이클 서보우 BSA 총단장도 최근, 미국 청소년 모두를 겨냥해 1세기 이상 해온 프로그램을 지속할는지 아니면 목표를 줄여서 캠핑이나 사냥 등의 취미생활로 축소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6-21세 청소년들을 상대로 전통적인 아웃도어 스킬 즉 광야 생존기술과 지오캐싱(보물의 좌표를 따라 GPS를 이용해 찾는 놀이), 공학, 수학 등을 이처럼 무상제공해온 다른 단체가 없다.

    응급처치 방법으로부터 로봇학, 지역봉사 등 300가지 기술을 익혀야 받을 수 있는 이글(독수리)스카웃상(ESA)은 가히 '소년학 박사학위'라 부를 정도다. 이글스카웃 서비스 프로젝트는 그동안 1억 5000만 시간을 써서 해온 사상 최대의 유스서비스 이니셔티브이다. 공립학교나 공원, 자선단체 등이 이글스카웃프로젝트의 긍정적 영향을 받지 않은 예가 거의 없을 정도이다.

    수많은 청소년들과 젊은 성인들, 특히 아버지가 없는 그들에게 스카웃은 거대한 '공허 메움이' 역할을 해 왔다. 최상의 청소년훈련 프로그램으로 평가받아왔다. 그런데 지금은 스카웃 활동이 더욱 필요한 때다. "정신적으로 강하고, 심적으로 깨어있고 도덕적으로 곧은" 소년들을 기르는 이 단체가 현재는 세류에 뒤흔들리는 신세가 돼가는 것이다.

    이런 판국에 동성애 파동으로 인한 난국까지 겪게 된 것은 보이스카웃 최대의 위협으로 떠올라 있는 상태이다. 전통적으로 보이스카웃을 지원해온 남침례교(SBC)도 지난 7월말 향후 수많은 교회들이 보이스카웃과 단절할지 모른다는 예고를 한 바 있다.

    라니 플로이드 SBC 총회장은 "슬프고 안타깝게도 나는 성경적인 성윤리 위에 서있는 교회들이 BSA에 대한 지원과 개입을 중단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남침례교 산하 교회들은 2013년까지만 해도 전국 3,900개 이상의 보이스카웃단들을 지원해 왔다.

    프랭크 페이지 SBC 실무위원회 의장도 "보이스카웃은 그동안 용기와 단호한 기품을 청소년들에게 심어왔다."며 "그러나 정치공정성에 타협하는 이상 용기가 줄어들어 이젠 살살부는 아침 미풍에마저 항복의 깃발을 쳐든 모습에 슬픔을 금할 길 없다."고 말했다. SBC는 이미 지난 2013년 동성애 단원을 받아들이기로 한 보이스카웃의 결정에 크게 실망했었다.

    장기간 보이스카웃의 최대 지원단체의 하나로 군림해온 몰몬교(후기성도예수그리스도교회, LDS)는 최근 보이스카웃이 게이 리더를 세우기도 했는데도 여전히 지원하기로 했다. 이유는 몰몬교 산하 보이스카웃들은 자체의 종교적․도덕적 가치관에 따라 리더를 맘대로 세울 수 있다는 확약을 스카웃 본부 측으로부터 받았기 때문.

    몰몬교는 현재 3만 8,000개 스카웃 유닛에 속한 42만 7,000명의 보이스카웃 단원들을 지원하고 있다. 전국 유스스카웃의 18%를 차지하는 셈. 몰몬교는 지난 7월 게이 스카웃 리더들을 금지하려던 정책을 철회하는 것은 큰 시련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8월에 이르자 몰몬 지도자들은 몰몬교가 지원하는 유닛 자체에서 스카웃 리더에 대한 결정을 맡기겠다는 스카웃 측 입장을 듣고 그대로 머물기로 한다고 발표했다. 이 ‘어정쩡한’ 입장이 사람들에게 혼동을 주었다.

    몰몬교가 강세인 유타주의 보이스카웃 유타국립공원지부(UNPC)는 가을 모금 중이었으나 이런 영향을 받아 지원금이 확 줄어들었다. 스탠 락 하트 지부장은 "모두에게 고통스런 날"이라며 "우리가 알고 우리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보이스카웃을 돕다가 돌연 중단했다."고 마음 아파했다.

    이 지부는 몰몬교 본부가 있는 솔트레이크시티 남부의 9만 여명 되는 단원들을 70여 직원들을 통하여 거느리고 있는데 단원들의 99%가 몰몬교의 지원을 받아왔다. 고 베키 록하트 전 유타주의회 하원의장의 남편이자 전 유타주 공화당 주지부장을 역임하기도 한 록하트에 따르면 '스카웃친구들'(FOS)이 연말에 하는 모금이 전체 자원봉사 지원비와 기록관리, 여름캠프 기금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록하트는 "사람들이 보이스카웃에 화 낼만도 하지만 적은 도움들이 모여 단원들이 성장하고 발전하고 남성이 되는 것을 도와준다."고 말했다.



    ▲ 걸스카웃(GSUSA)은 훨씬 더 자유개방적이다. ⓒjoystake.blogpot

    한편 지난 2012년 100주년을 맞은 비슷한 여성단체 걸스카웃(GSUSA)은 훨씬 더 "열린" 입장이어서 하나님 앞 선서로 제한된 보이스카웃과 달리 부처나 알라신 앞에서도 선서를 하며 성오리엔테이션을 막론한 생활양식, 성오리엔테이션과 상관없이 어떤 여성도 받아들인다.

    콜로래도 걸스카웃은 지난 2011년 최초의 트랜스젠더 소녀(7세)를 받아들여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걸스카웃엔 현재 소녀들과 성인 등 약 280만 단원들이 속해 있고 지난 100여년간 약 6천만 여성들이 개입돼 왔다. 또한 전국에 100여지부와 92개국에 해외 지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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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평화라는 신화

    동남아에 부는 불교 근본주의 바람
    편집국

    불교 근본주의가 동남아의 타이, 미얀마, 스리랑카 세 나라에서 세를 얻고 있다. 이 세 나라는 소승불교가 주류인데, 강경파 승려들이 성장을 밀어 주고 있다.

    강경파 불교는 민족과 종교가 다양한 미얀마에서 떠오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강경파 불교는 2010년 이후 미얀마의 민주화 과정에서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확대되는 상황의 혜택을 크게 받고 있다.

    미얀마 전역에 걸쳐 오랫동안 쌓여 있던 반 이슬람 정서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서부에 있는 라카인 주에서 그렇다. 2012년에 일어났던 폭력사태에서는 200명이 넘게 죽고 수만 명이 피난했는데, 피해자 대다수는 이슬람인인 로힝야 족이었다. 라카인 주에서는 약 15만 명이 고향 마을을 떠나 난민촌에 갇혀 있다. 이들은 난민촌을 떠날 자유도 없으며 (미얀마에서는 이들의 국적을 인정하지 않아서) 투표권도 없다.

    그 뒤 중부 지방의 메이크틸라에서도 폭력사태가 일어났고, 중국과 접경한 북부의 샨 주의 라시오, 그리고 미얀마 제2의 대도시인 만달레이에서도 사건이 났다. 이런 일들은 주로 “마바타”(Ma Ba Tha)라고 알려진 급진주의 단체가 주동했는데, 이 단체는 미얀마의 40만 승려 가운데 절반이 회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미얀마 마바타의 강경파 승려가 지난 9월 21일 만달레이에서 인종과 종교에 관한 입법을 지지하는 집회에 나타났다.(사진 출처 = http://www.ucanews.com)

    마바타, 즉 “인종과 종교 보호위원회”는 자신들이 새로 확인한 힘을 이용해 인종과 종교에 관해 제한하는 여러 법률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이들 법률은 지난 8월에 통과되었으며 미얀마 인구의 4퍼센트를 차지하는 이슬람인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국제적인 비난을 받은 이 법률들에는 여성의 출산 시기를 강제적으로 일정하게 떼어 놓는다거나, 불교인 여성이 비불교인 남성과 결혼할 경우에는 사전에 혼인신고를 하도록 하는 조항들, 종교 간 개종을 통제하는 법률, (일부다처를 허용하는 이슬람을 겨냥해) 하나 이상의 짝을 두는 사람을 처벌하는 법률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에 대해 마바타의 고위 간부인 우파르모카 스님은 야당인 민주민족연맹의 압도적 승리를 환영하면서도 아웅산 수치가 이들 종교법안을 폐기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경고를 날렸다. 그는 이들 법률은 “불교를 보호하기 위해 필수”라고 주장했다. 소수종교를 억압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불교 여성을 보호”하려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불교를 보호하지 않으면) 방글라데시나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처럼 (미얀마도) 이슬람이 지배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 말은 마바타가 자신들의 노선을 정당화하는 핵심 설명이다. 이슬람 인구는 미얀마에서는 4퍼센트, 타이에서는 6퍼센트이며, 스리랑카에서는 9.7퍼센트다.

    한편, 사회적 발언을 활발히 해 온 마웅보 추기경(양곤대교구)은 이들 종교법안을 강력히 비판하며, “증오의 행상인”들이 미얀마에서 자비를 가르쳐 온 불교의 가치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같은 문제”

    “미소의 나라”로 알려진 타이에서는 2004년에 말레이시아와 접경한 남부 국경지대에서 말레이 족 이슬람인들이 일으킨 무장투쟁으로 지금까지 5000여 명이 죽으면서 불교 강경파가 득세하고 있다.

    방콕에 있는 세계불교청년협회의 뽄차이 삐냐뽕 회장은 지난 6월에 미얀마에서 열린 한 회의에 다른 타이인 수십 명과 함께 참석해서 마바타를 지지했다. 두 나라는 한국과 일본만큼이나 서로 역사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다. 그는 에 두 나라는 불교를 보호하기 위해 처리해야 할 이슬람과의 난제들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마바타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미얀마 라카인 주의 상황을 보니 우리나라 타이 남부의 문제와 똑같습니다.”

    미얀마와 마찬가지로, 타이에도 불교를 국교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승려 단체들이 있다.

    한편, 스리랑카에서는 근본주의 불교단체인 “불교의 힘”(BBS)이 전임 마힌다 라자팍사 정권의 지원을 받아 종교적, 인종적 차별을 자아냈었다. 라자팍사는 수십 년을 끌던 (이슬람) 타밀 반군을 진압하여 내전을 끝냈으나 그 뒤 그간의 많은 인권탄압 등으로 국내외의 비판과 제재를 받았으며 지난 1월에 있었던 대선에서 예상 밖으로 패배했다.

    신사회평등당(NSS)의 위크라마바후 카루나라트네 사무총장은 “라자팍사 정권이 무너진 뒤, 불교 근본주의자들은 이제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아시아가톨릭뉴스>에 “이런 종류의 공격이 이제는 스리랑카에 위협이 아니라고 본다. 새 정부가 들어선 뒤로는 스리랑카에서는 종교 극단주의가 줄었다”고 했다.

    파리 테러 뒤에 라닐 위크라마싱헤 총리는 스리랑카는 모든 형태의 테러를 아주 명확하게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들 세 나라의 문제는 강경파들이 교육수준이 낮은 농촌 지역에서 자신들의 메시지를 퍼뜨리면서 정치적 지지를 확보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소수파인 이슬람인을 겨냥하고 있다.

    미얀마에서 보는 것처럼 근본주의에 밀려 대중과 지역사회가 옆으로 밀려나면, 이슬람국가(IS)와 같은 근본주의자들이 아시아 전역으로 세를 확대해 조직원을 모을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 된다.

    불교 강경파들은 자신들이 하는 짓이 오히려 자국민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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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시대에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월터 브루그만의 <안식일은 저항이다>(복있는사람)
    이원석

    <안식일은 저항이다>(복있는사람)는 <뉴스앤조이> '톨레레게' 12월 7일(월) 모임에서 나눌 책입니다. 톨레레게에 참가하길 원하시거나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시면 글 아래를 참고해 주세요. - 편집자 주
    교회의 안식일은 통상 일요일이다(이날 주님이 부활하셨다고 믿는다). 이를 주일이라 부르는데, 적절하지 않은 명칭이다. 바로 모든 날이 주의 날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주되심 앞에서 어느 한 요일을 특권화할 수 없다(유대교의 안식일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안식일의 초점

    안식일을 준수하는 특정한 형식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형식과 떨어진 실질은 무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질을 잃어버린 형식은 공허하다. 그 실질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이것이 안식과 예배를 결합하는 이유이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시간의 성전이다.

    그러니까 안식을 통해서 세상의 신들을 배척하고 해방과 휴식을 제공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 뜻이다. 애초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면, 교회가 특정일에 안식한다고 하는 방식을 준수할 이유가 없다. 실은 경배야말로 안식의 초점을 넘어 모든 일상의 초점이다.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로마서 14장 5-6절)

    여기서의 초점은 안식일의 본질이 온전히 구현되지 못하는 현실에 놓여 있다. 안식일의 정신에 대해 우리는 더 공부해야 한다. 더욱이 '피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이미 일반 출판계는 안식에 대해 다룬 책들을 적잖이 내고 있는 실정이다.

    안식일의 전통

    여기에서는 헤브라이즘 계열(유대교와 기독교)로 한정 짓겠다. 만일 한 권을 택한다면, 아브라함 헤셸의 <안식> 뿐이다. 안식의 신학에 관한 한, 아직 이를 능가할 책이 나온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 심오한 통찰은 말할 것도 없고 유려한 언어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여기에서 <안식>의 내용에 대해서 다루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헤셸이 랍비라는 사실만은 언급해야 할 것이다. 즉 <안식>은 유대교의 텍스트이다. 안식에 대한 그들의 이론과 실천은 깊고 넓다. 우리는 유대교 전통과의 대화를 통해 안식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혀야 한다.

    그러니까 우리의 얄팍한 안식 수준을 넘어서려면, 그들에게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우선 필요한 것은 안식에 대한 바른 안목이다(물론 그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저 성수주일 안내문을 내걸고 가게 휴업하거나 예배당에 가서 주일예배를 드리는 걸로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유대인들 사이에서 두드러지게 볼 수 있는 생활양식이다. 하지만 언약의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핵심 요구에 반응해 온 그리스도인들을 오랫동안 사로잡아 온 것은 관습이요 규율이다. 불행히도 우리 사회에서는 안식일이 자유를 안겨 주려는 본래 의도에 어긋나는 율법주의와 도덕주의, 청교도 법과 삶의 현실을 부인하는 관습이라는 함정에 빠지고 말았는데, 이는 주로 청교도 전통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다." (55쪽)

    <안식>에서 나아가 좀 더 배우기를 원한다면, 마르바 던의 <안식>과 더불어 (위에 인용한 책인) 브루그만의 <안식일은 저항이다>(복있는사람)를 집어 들어야 할 것이다. 물론 그 외에도 여러 좋은 책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로 충분하리라고 본다.

    안식은 저항이다



    ▲ <안식일은 저항이다> / 월터 브루그만 지음 / 박규태 옮김 / 복있는사람 펴냄 / 172쪽 / 1만 원
    <안식일은 저항이다>는 헤셸의 <안식>처럼 소품이지만, 저자인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은 성경과 현대를 교직하는 가운데 예언자처럼 박력 있게 강설을 진행한다. 사실 브루그만은 고급 독자와 신학자들에게 <예언자적 상상력>(복있는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는 구약학자이다.

    <안식일은 저항이다>의 구조는 '수미 쌍관'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안식일과 첫째 계명)과 6장(안식일과 열째 계명)이 연결된다. 안식일 준수 계명은 십계명 가운데 네 번째에 해당한다. 이를 앞의 첫 계명과 뒤의 마지막 계명에 접목해서 안식일의 맥락을 확장시킨다.

    첫 계명이 뜻하는 바는 재물 축적을 강제하는 무한 생산(노동) 시스템과 이로부터의 해방을 제공하는 자유의 하나님의 대비하는 것이다(이집트의 잡신은 노예 착취를 강제하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노예를 넘어 짐승조차 보호하신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자유는 안식일을 통해 향유된다.

    "따라서 창조의 정점인 안식일과 출애굽의 정점인 안식일이 모두 상품을 추구하는 파라오의 욕망을 거부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중략) 첫 번째 계명은 이스라엘이 부닥쳤던 두 가지 유혹, 곧 우상을 섬기라는 종교적 유혹과 상품을 섬기라고 꼬드긴 경제적 유혹과 관련이 있다." (37쪽)

    서울의 야경이 아름다운 이유가 회사의 야근 때문이라고들 한다. 농담이긴 하나, 어느 정도 진실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이 아름다움은 (하나님을 알게 하는) 진리의 빛을 가리는 사악한 아름다움이며, 또한 (상품을 숭배하게 만드는) 자본주의의 타락한 아름다움일 것이다.

    브루그만은 물신숭배로 구현되는 자본주의 시스템과 이집트의 착취 구조를 병치시킨다. 우리의 아름다운 야경(빌딩)과 이집트의 웅장한 피라미드가 중첩되는 것이다. 이는 정점에 올라가지 못하는 모든 이가 짓밟히며, 정점에 이르더라도 영원히 안식할 수 없는 구조이다.

    브루그만은 계속하여 각 계명의 사회적 맥락에 주목한다. 탐욕을 금하는 마지막 계명이 가리키는 바는 도시(예루살렘) 엘리트와 시골 농부의 지배-종속 관계의 타파에 있다. 첫 계명이 외부의 착취 구조를 비판한다면, 마지막 계명의 내부의 착취 구조를 경고하는 것이다.

    탐욕을 금지하는 마지막 계명이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웃이다. "아주 짧은 구절 속에 '이웃'이라는 말이 세 번이나 나온다는 점"(143쪽)이 흥미롭다. 바울에 따르면, 이웃 사랑이야말로 (마지막 계명을 포함한) 두 번째 돌판에 새겨진 계명들을 완성시킨다(로마서 13장 9절).

    탐욕이 지배하는 현대사회는 이웃을 사랑하기는커녕 절멸하게 만든다. 대처 수상의 말처럼 이제 사회는 없고, 개인만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가 해체되고,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는 데에만 골몰하는 이기적 개인이 호명된다. 이는 고대이집트에서도 다를 바가 없었다.

    "야훼가 내리신 명령에는 사회에서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 가운데 이웃이 들어 있고, 이웃끼리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 유지를 대담하게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략) 이집트 시스템에는 이웃이 없고, 다만 위협과 경쟁자만이 있었다." (63쪽)

    그렇다면 이웃, 특히 약자를 괴롭히고 착취하는 탐욕의 체계를 멈추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는 "열째 계명을 안식일을 지키라는 넷째 계명의 맥락 속에 놓고 다루"기를(164쪽) 제안한다. 안식은 곧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탐욕의 행위를 멈추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식일은 불안 전문이 되어 버린 사회의 구체적 관행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제한하거나, 그만두거나, 벗어 버리는 것이다. (중략) 안식일은 우리가 소유가 아니라 선물로 산다는 것을 인정하는 마당이요, 우리가 상품을 쌓아 두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 신실한 관계에서 만족을 얻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마당이다." (165쪽)

    "일을 그치면 불안도 줄어들지만, 또한 남는 에너지를 이웃에게 다시 쏟게 된다. 시내 산의 하나님이 하시는 기이한 요구는 이웃에게 쏟는 사랑으로 불안만을 야기하는 생산성 중심 풍조에 맞서라는 것이다.” (66-67쪽)

    이렇게 수미 쌍관적으로 (첫 계명과 안식일의 관계를 다루는) 첫 장과 (마지막 계명과 안식일의 관계를 다루는) 마지막 장이 시스템을 다룬다면, 사실상 본문에 해당하는 2장부터 5장에서는 안식일이 비판하는 네 가지 항목을 다룬다(불안, 강요, 배타주의, 과중한 일).

    애초에 브루그만에게 있어서 안식일은 곧 저항(비판)이다. 원제(Sabbath as Resistance)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안식일 준수는 주류 질서에 맞서는 대안을 몸으로 증언하는 행동이요, 주류가 주장하는 가치들 뒤편에 만연한 여러 가치와 가설들에 맞선 저항이다." (56쪽)

    그렇다. "일을 그치고 쉬는 이런 신실한 행위는 일종의 저항 행위다."(73쪽) 이는 분명 브루그만의 대표작이 <예언자적 상상력>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게다. 그러고 보면 <안식>의 저자인 아브라함 헤셸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 <예언자들>이라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이는 창세기의 안식과 예언서의 비판이 깊은 데에서 통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첫 장과 마지막 장이 그러하듯이 가운데 본문들에서도 안식일은 비판인 동시에 대안이 된다. 위에서 인용한 바와 같이 안식일 준수는 저항인 동시에 "대안을 몸으로 증언하는 행동"이다.

    그렇기에 "안식일은 단순한 멈춤이 아니다. (중략) 안식일은 변화를 일으키는 멈춤이다."(95쪽) 탐욕을 버리고 이웃을 돌보는 등으로 무언가 변혁을 일으키지 않고 그저 개인적으로 심신의 휴식을 취하고 쇄신하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그것은 바른 안식(일)이 아니다.

    시간을 드려 주님을 예배하자

    안식일에 대한 브루그만의 강설은 한국교회에 적실한 메시지이다. 우리는 한국교회가 시간을 대하는 태도를 성찰해야 한다. 시간(안식)에 대한 태도가 탐욕을 조장하는 세상의 체계에 저항하는 능력과 이웃, 특히 약자를 대하는 태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한국교회는 유독 재정의 십일조를 강조한다(새벽 기도 강조와 함께 어딘가 한국적인 데가 있다). 신약성경에서 강조하는 것은 아니지만(우리 주님은 십일조보다 의와 인과 신을 강조하셨다, 마태복음 23장 23-24절), 한국교회는 이를 좋은 신앙의 증거로 삼는다.

    그렇다고 십일조 폐지를 촉구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가 십일조를 요구하는 동기가 돈을 의지함에 있는지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는지가 종종 헷갈리지만, 제자도의 차원에서 십일조를 실행할 수 있다(실은 그 이상도 가능하다). 맘몬과 하나님이 대비되기 때문에 더 그렇다.

    따라서 우리는 십일조의 실행을 비판하기 전에 교회적 맥락에서 조심스레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시간의 경우에도 이와 동일하게 존중해야 할 것이다. 일요일(주일)에 드리는 예배 한두 번으로 만족해서는 곤란하다. 하나님을 위해 우리 시간을 더 할애해야 한다.

    안식은 예배를 넘어서 삶으로 확장된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안식의 삶이 실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안식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이는 안식의 기초를 세워주며 또한 그 자체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된다(공부는 지성으로 드리는 예배이다).

    안식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토대로 하여 한 날(안식일)의 예배를 넘어서 모든 날의 삶을 재구성해야 한다. 안식이 예배를 넘어서 삶이라고 말한 것이 뜻하는 바는 안식(일)의 정신이 모든 날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가 바로 서면, 모든 날이 이를 따른다.

    "모세는 신명기에서 안식일이 축제일이요,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에 이르는 날들 속에도 옮겨 놓은 새로운 사회적 실체라고 생각한다.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은 7일 전부를 다르게 살아간다." (93쪽)

    시간을 들여 사람이 되자

    물론 하나님을 위한 것은 동시에 우리를 위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도와 예배와 묵상은 모두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만큼 우리 영혼에 유익하게 작용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며, 또한 하나님의 전이다.

    안식일이 시간의 성전이라면, 공간의 성전은 아마도 우리(인간)일 것이다. 예배드릴 때에 주님이 임하시는 곳은 예배 처소가 아니라 공동체다(마태복음 18장 20절). 안식의 깊이가 심화되는 만큼 영혼의 성숙도 진전된다. 안식을 위해서 시간을 들여야 하는 부수적 이유이다.

    "우리는 '시간을 들여 거룩해지자'라는 찬송을 부르곤 했다. 그러나 어쩌면 이제는 '시간을 들여 사람이 되자'를 불러야 한다. 아니, 결국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안식일은 거룩해지려고, 사람이 되려고, 사람답게 살려고 시간을 들이는 것이다." (168쪽)

    우리의 시간을 흠향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초점은 어디까지나 예배이며, 궁극적으로 보자면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에 있다. 그러고 보면 애초에 우리가 향유해야 할 안식의 모범이 바로 하나님이 아니시던가. 하나님의 창조는 그분의 안식과 더불어 종결되었다.

    "하나님이 쉬셨다! 하나님이 일을 그침을 즐기셨다!" (67쪽)

    "하나님은 일중독자가 아니시다. 하나님은 생산 일정을 들이밀며 닦달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 반대로 하나님은 확신을 가지고, 고요히, 평화롭게 쉬신다." (70쪽)

    "하나님이 창조의 일곱째 날에 쉬셨음은 야훼가 일중독자가 아니요, 피조물이 온전히 제 기능을 하리라는 것을 전혀 염려하지 않으시며, 피조물의 행복이 끝없는 일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32쪽)

    (일을 자아의 기반을 삼는) 일중독자는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이다. (영혼까지 노동하고 만성피로를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무한 노동과 무한 생산의 지배 체제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달라야 한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보여 주신 다른 길을 걸어야 한다.


    ===================================================
    나라든, 교회든 이렇게 하면 망한다

    모리스 버먼의 <미국은 왜 실패했는가>(녹색평론사)
    김학현

    "고래는 가면일 뿐이야. 내가 찾는 악마는 그 가면 뒤에 숨어있다고!"

    2010년(우리나라는 2013년 개봉)에 나온 트레이 스톡스 감독의 영화 '퍼시픽 모비딕'에 등장하는 대사라오. '모비딕'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고래와 싸우는 이야긴데, 뭐 결국 모두 고래에게 먹혀 버리지요. 인간의 경험과 기술과 지식이 별로 쓸데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기가 막힌 영화라오.

    그렇소. 여보! 우리는 어느샌가 거대 고래를 찾느라 분주한 시대를 살고 있소. 그러면서 문명의 혜택이나 화성 탐사와 같은 신기술의 신을 숭배하게 되고. 쩝! 종교보다 더 종교적인 재화와 권력과 기술과 진보의 신 숭배! 결국 무너지고 만다오. 이 영화는 허먼 멜빌이 쓴 <모비딕>을 원작으로 한 거요.



    ▲ <퍼시픽 모비딕> 스틸 컷. (사진 출처 (주)케이알씨지)
    '허슬링'의 미국…그들만의 이야기인가

    '침몰하는 배'로 은유되는 미국 사회의 모습을 실패로 규정하고, 그 신물 나는 이기적 문명과 경쟁적 죄악을 떠나 멕시코로 이민 간 문화 비평가 모리스 버먼. 그는 "미국은 실패했다"고 말하고 그 실패의 원인이 '허슬링'(Hustling)에 있다고 힘주어 강조하오.

    그의 책 <미국은 왜 실패했는가>는 '허슬링'을 '경제 이익을 위해 사기나 강탈 등의 수단을 주저 없이 사용하는 행태'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하오. 미국 사회가 그렇다는 거요. 마치 거대 고래를 없애려다 자신들을 죽음의 나락으로 들이미는 <모비딕>의 주인공들처럼, 이 위대한 싸움에서 결국 승리하리라는 망상에 젖어 경쟁하고 짓밟으며, "전진! Go! Go!"를 외친다는 거요.

    맥두걸은 미국의 성장은 '창조적 부패'에 근거한다고 보고 있소. '도처에 존재하는 저속함'을 기반으로 한 미국 사회의 물질문명은 겉으로는 그럴싸해 보이오. '세상에서 이득을 얻는 것이 이들의 주된 목표이고 종착점이며 의도'여서 돈이 안 되면 가치가 없는 것이 되는 거지요.

    공공심과 도덕은 결핍되나 부에 대한 끝없는 갈증은 폭증하는 사회,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미국 사회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고. "삶이 어떤 것이든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존엄성과 인간적 규모가 필수적"인데 이를 무시한 사회는 이미 망한 사회나 다름없는 것이죠. 여보! 지금의 미국이 바로 이 시점에 있고, 언젠가는 자신이 만든 가면을 쓴 악마 고래에게 먹힐 수밖에 없을 것이오.

    "허슬링 또는 기회주의에도 물론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야심, 혁신, 근면, 조직 그리고 미국인들의 '할 수 있다' 정신은, 이 나라가 건립되고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전 세계 공산품의 3분의 1을 생산해 내는 결과로 이어졌다." (10쪽)

    이런 긍정적인 측면에도 저자는 "(허슬링이) 오히려 미국인들에게 해를 끼치기 시작했다"고 분석하고 있소. 그렇게 생산한 생산품을 팔기 위해 다시 허슬링을 사용하는 악순환을 거듭하는 것이지요. 이런 악순환의 고리는 인간성은 피폐하고 부와 상품은 쌓이는, 물건이 사람 위에 군림하는 형태의 미국 사회(미국을 모델로 하는 현대사회 모두)를 만드는 것이오.

    교회를 파고든 '허슬링'



    ▲ <미국은 왜 실패했는가> / 모리스 버먼 지음 / 김태언·김형수 옮김 / 녹색평론사 펴냄 / 272쪽 / 1만 5,000원

    여보! 내가 목사이니 교회 얘기를 해 볼까요. 우리나라에서 강남의 한 교회 목사가 노만 빈센트 필의 <긍정적 사고방식>이란 책을 소개하고, 교회에서 그의 사상을 접목하여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소. 그러면서 1970~1980년대에 이 책이 성경보다 더 성경적인 책으로 부상했었소.

    박정희 때 새마을운동과 유사한, 그때 교회에 분 폭풍과도 같은 '하면 된다' 열풍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소. 그렇게 교회들은 개척만 하면 부흥하여 대형 교회로 성장하고…. 당시에 성장한 교회를 모두 싸잡아 호도하고 싶은 생각은 없소.

    어느 사회건 윤리와 도덕이란 게 있지 않겠소. '하면 된다'의 윤리, 다른 말로 하면 신자유주의라 할 수 있을 거요. 이 열풍의 덕을 톡톡히 본 이들은 수단과 방법은 어떠해도 좋소. 다만 목표만 이루면 되오. 쉽게 말하면 "교회가 부흥했는데 무슨 딴지냐?"하는 논리라오.

    그렇게 성장했던 교회들은 한결같이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교회 세습'을 단행했소. 그들에게 세상의 비난쯤은 그리 신경 쓸 일이 아니오. 성적 타락은 물론 입에 담지 못할 상스러움이 교회 강단을 타고 내려오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오.

    혹시나 교회가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목사가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말하면 "교회도 키우지 못한 주제에 무슨 비판이냐"는 식이요. 이게 바로 미국에서 배운 허슬링의 대표적 행태라고 말해도 될 거요. 그러면 불 보듯 빤한 건 '망한다'는 거요. 그렇게 가면 망하오. 그게 '하나님의 성전'이라 해도.

    목사가 '먹사'가 되고, 기독교가 '개독교'라고 일컬어져도 눈 하나 깜짝 않는 이들이 교회에 수두룩하오. 그때에 성장의 재미를 본 이들은 남을 신경 쓰지 않죠. 지금의 부와 권력을 그 누구에게도 나눠 줄 생각이 없으니.

    교회 밖의 사람들은 이렇게 '교회 아닌 교회'를 보며 모든 교회를 욕하고, 의식 있는 교회 안의 사람들은 '가나안 교인(교회 안 나가는 교인)'으로 전락하게 되오. 지금 한국교회의 이 손쓸 수 없는 사태는 다 미국에서 배운 것이라 생각하오. 신자유주의 허슬링 현상, 바로 이거지요.

    나라도 교회도 본래성 회복이 필요하다

    미국은 '독립선언서'에서 영국의 독재와 부패를 비판하고 공민도덕의 이상을 세우겠다고 천명했소. 소위 청교도 정신이죠. 하지만 이미 미국은 '청교도에서 양키로' 전락한 지 오래라오. 저자는 로마제국 말기에 벌어졌던 일이 똑같이 21세기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말하오.

    공화주의 탈을 쓴 허슬러 국가, 민주주의의 탈을 쓴 세계를 상대로 한 경찰국가. 세계의 선을 지향한다며 벌이는 제국주의적 확장, 비즈니스가 우상이 된 나라, 소비가 천국이라 가르치는 나라…. 이것이 꼭 미국만의 이야기일까요. 우리나라는 미국의 판박이, 이하도 이상도 아니라오.

    "재화와 돈, 권력, 기술 그리고 '진보'의 열광적 추구가 결국 배를 들이받아 산산조각 내고 있는 고래를 만들어 냈다. 바로 미국의 외교정책이 9·11을 유발했다. 바로 미국의 경제정책이 2008년 붕괴를 초래했다. 미국의 생활 방식 전체가 변증법적으로 바로 그 생활 방식을 무너뜨리고 있다." (187쪽)

    그렇소. 이대로 가면 결국 거대 고래라는 악마가 나라든 교회든 치받아 침몰시킬 거요. "알 카에다보다 골드만삭스 같은 기업들이 미국에 더 위험한 존재다"고 한 크리스 헤지스의 말을 곱씹을 때라고 생각하오. 목표 지향적 국가가 GDP를, 수단을 무시한 교회가 사이즈를 자랑할 때 그들이 서서히 키운 거대 고래는 그들을 삼킬 이빨을 날카롭게 세우고 큰 아가리를 벌릴 것이오.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이 글에서 말하는 '여보'는 제 아내만이 아닙니다. '너'와 '나', '우리'입니다.

    김학현 / 목사. 예수님 닮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하지만 그게 그리 쉽지만 않다고 생각. 세종시 연서교회를 담임, 관심사를 글로 써 여기저기 내붙이기도 하는 '안다미로'라는 아이디의 소유자.


    =============================================
    전태일의 예수 됨과 전태일 삶의 예수다움

    이 시대가 전태일을 다시 부르는 이유
    정중규

    나는 차마 전태일을 예수라 부를 수 없다. 그의 예수 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예수의 예수 됨이 교회에 의해 너무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태일의 마음에는 예수의 마음이, 전태일의 삶에는 예수의 삶이 고스란히 녹여져 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최근 신학계에 '예수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했다지만, 굳이 2000년 전 고고학적 흔적을 찾으러 나사렛 동네 갈릴리 땅 그 시대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을까.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다"(막 14:7)는 예수의 말씀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밑바닥 삶 한가운데에서 메시아가 출현했다. 착취와 억압이 있는 곳에 해방과 자유의 메시아가 탄생한다. 파라오의 학정에 못 견딘 고대 이집트 왕국의 히브리 노예들 사이에서 출애굽 사건이 일어나고, 로마제국과 유대 종교 권력의 이중 질곡에 시달리던 갈릴리 땅에서 예수 운동이 일어났듯, 전태일은 박정희 정권의 노동 착취를 담보로 한 압축 경제성장의 폐단이 낳았다고 할 수 있다. 가혹한 채찍질이 잠들어 있던 혼에 불을 댕기고 민중을 깨운다. 무기력을 떨쳐 일어나는 저항은 그렇게 시작된다.



    ▲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중 한 장면.
    전태일 '사건'에서 드러난 민중의 메시아성

    전태일이 죽음의 순간 껴안고 있었던 '근로기준법 해설서'는 예수께서 껴안고 못 박혀 돌아가신 십자가, 전태일의 십자가였다. 그 십자가에서 부활의 꽃이 피어 노동의 새벽을 열었다. 그의 죽음이 각별한 의미를 지닌 이유다. 그래서 전태일은 개인이기도 하지만 개인을 넘어선다. 그는 모든 가난한 노동자, 자신의 말대로 '너 안의 나'였다.

    그런 전태일 사건 현장에서 서남동과 안병무의 '민중신학'이 탄생했다. 그들이 곧장 '고난 받는 민중의 메시아성'을 깨친 것도 그런 것이었다. 예수 '사건'처럼 전태일 '사건'이 민중의 메시아성을 드러냈다는 것은 전태일의 희생이 가져다준 혁명적 변화에서 드러난다. 대한민국의 노동운동은 전태일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는 노동운동사에 큰 획을 그었다.

    하지만 전태일 열사가 불꽃으로 산화한 지 45년, 다시 노동 현실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600만 명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OECD 평균보다 2배가 넘는 최악의 노동 상황을 맞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 개혁'은 사실상 '노동 개악'이다. 고용 유연화와 정규직 보호 완화 등으로 노동자들은 해고라는 칼날에 평생 쫓기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대부분이 서민들인 소자본 자영업자들의 폐업률이 80%를 넘는 현실은 또 어떠한가. 가난한 이들의 삶이 갈수록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작금의 현실이 다시 전태일을 불러내고 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45주기 대구 시민 문화제 웹 자보. (사진 제공 정중규)
    전태일의 고향 대구, 전태일을 다시 찾는 대구

    마침 전태일의 고향 대구에서 처음으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대구 시민 문화제를 열었다. 지난 11월 12일의 '우리 시대의 노동' 토론회와 '대구+전태일 기억하고 상상하라' 집담회를 시작으로 2·28기념중앙공원에서 대규모 추모 공연이 있었으며, 21일에는 전태일 문학상 수상 작가들을 초대해 '전태일의 정신, 문학의 길 - 작가와의 대화'도 열었다. 특히 문화제 기간 내내 오오극장 갤러리에서는 전태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시들을 액자에 담은 시전(詩展)이 '울타리 밖의 전태일'이란 타이틀로 열렸으며, 마지막 날에는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 씨와 함께, 어린 전태일이 다녔던 청옥고등공민학교(현 명덕초등학교), 그가 거주했던 집 등을 따라 그가 대구에 남긴 삶의 흔적들을 찾아보고, 계산 오거리 교통섬에 있는 생가 터에서는 전태일 공원 선포식도 거행했다.

    박정희 대통령과 삼성 그룹 이건희 회장의 도시 대구에서 노동자의 아이콘 전태일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불러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지금은 서울 강남을 숙주로 삼는 보수의 메카지만, 대구는 원래 1946년 10월 항쟁조차 그 시작이 '기아 데모'였을 정도로 체제 저항적인 도시였다. '동양의 모스크바'로 불릴 만큼 진보적 움직임이 활발했다는 것은 그만큼 억압과 착취가 횡행했었고 그 구조악에 눈뜬 이들이 많았다는 것이리라. 그렇게 깨어 있던 도시 대구에서 전태일은 1948년에 태어났다.

    메시아의 메시아다움은 동정과 공감의 마음에서

    철학자 김상봉의 "대구는 박정희의 도시가 아니라 실은 전태일의 도시다. 전태일이 누구인가? 그는 슬픔의 예수와 분노의 예수, 눈물의 예수와 빛의 예수를 자기 속에 하나로 구현한 영혼이었다"는 규정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 이유다. 메시아의 메시아다움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동정(compassion)과 공감(sympathy)의 마음에서다.

    전태일이 그러했다. 그는 열사이기 이전에 지극한 사랑의 마음을 지녔던 젊은이였다. 전태일이 일기장에 남긴 고백,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감정에는 약한 편입니다.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날 기분은 우울한 편입니다. 내 자신이 너무 그러한 환경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 마음으로 전태일은 차비를 털어서 점심을 굶고 있는 시다들에게 풀빵을 사 주고는 자신은 걸어서 출퇴근하는 일을, 그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를 때까지 수년간 계속했다. 예수의 서른세 살보다 더 짧은 스물두 살로 삶을 마감한 전태일이 임종 직전에 남긴 말 "배고프다!"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외친 "목마르다!"와 같은 존재적 절규였다.

    노동운동, 전태일의 마음으로 비정규 노동자들 껴안아야

    전태일은 그렇게 머리에 앞서 우선 마음이 먼저 움직였다. 진보란 무엇인가. 그 뿌리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측은지심이다. 빈곤한 노동 대중을 향한 마르크스의 애절한 마음이 없었다면 맑시즘이 태어날 수 있었을까. 현장의 '사건'과 '실천'(praxis)을 통해 태어난 민중신학과 해방신학의 여정도 그러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진보하면 머리가 앞선다. 마음을 잃은 진보, 진보를 되살리는 길이 어디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특히 노동운동이 가장 약한 이들에게 온전히 쏟았던 전태일의 그 마음을 되찾아야 한다. '말로만 비정규직 끌어안기'가 아니라 전태일의 가난한 노동자들에 대한 연민과 동료애 그 연대 의식으로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껴안아야 한다. 노동운동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껴안지 못한다면 청계천의 전태일 동상은 철거되는 것이 차라리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한미사 공장 안에서 동료들과 함께(맨 오른쪽이 전태일 열사). (사진 출처 전태일재단)
    헬조선 청년들에게 청년 전태일을 돌려주고 싶다

    더 나아가 가난하게 살면서도 사람에 대한 사랑을 놓치지 않고, 인간을 물질화한 시대에 돈보다는 사람이 먼저고 노동자도 사람이라는 인간 선언을 온몸으로 드러냈던 스물두 살 전태일. 그 전태일의 마음을 '헬조선' 악몽에서 헤어날 줄 모르는 이 시대 청년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이지만, 단군 이래 최저의 대우를 받는다는 그들. 스스로 88세대, 3포 세대, 5포 세대, 열정페이 세대 등으로 부르며 절망에 빠진 젊은이들이 그런 청년 전태일의 삶을 눈여겨봤으면 싶다.

    특히 대구의 경우 매년 1만 명의 젊은이들이 빠져나가는데, 그만큼 희망이 없는 도시라는 뜻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대구는 교육열에서 전국 최고다. 곧 각자도생의 길로 해결하려는 것인데, 이미 현실은 각자도생으로는 풀 수 없게 꼬여 있다. 학생 자살률 전국 1위라는 불명예스런 수치가 그걸 드러내고 있다. 대구가 스물두 살 청년 전태일을 다시 불러야 하는 이유다. 그를 롤모델로 삼아 대구가 남을 눌러 이겨야 자신이 산다고 믿는 살벌한 경쟁이 펼쳐지는 비교육적인 도시가 아니라, 도시 공동체의 정신을 회복하고 힘없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비롯한 가난한 이들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는 인간적인 도시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전태일의 예수 됨과 전태일 삶의 예수다움

    다시 전태일이다. 전태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산업화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길이다. 해고의 칼날에 피 흘린 노동자들이 굴뚝 위로, 크레인 위로, 광고판 위로, 철탑 위로 올라가고, 농성 텐트 속에 2,000일, 3,000일 넘게 갇혀 있는 노동 현실. 빈익빈 부익부 양극화 심화에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가난한 이들이 죽음의 유혹에 흔들리고 실제로도 죽어 나가는 민생 도탄 시대.

    한번 무너지면 다시는 일어날 수 없게 패자부활전조차 용납하지 않는 승자 독식 사회, 그러기에 그 어느 때보다 공정하고 정의롭고 상식이 통하는 공평한 사회에 대한 갈망이 높은 시대. 겉은 화려하나 속은 아픔으로 가득 찬 우리 사회에 전태일은 공동체적 삶의 연대망 구축으로 사회의 전체성(holistic)을 회복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전태일의 이름을 다시 부르는 것은 훼손된 예수의 예수 됨을 복구하는 것이다. 넋과 기가 꺾인 이들을 향한 측은지심으로, 그 시대의 소외되고 가난하고 병든 이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사시다 끝내 가장 보잘것없는 그들을 당신과 동일시하며 돌아가신 사람의 아들 예수. 하지만 지난 2000년간 사람 됨을 탈색당한 채 십자가에 못 박혀 계셨던 예수. 예수의 예수 됨을 다시 부활시키는 데, 아니 하느님의 사람 됨과 사람의 하느님 됨을 교회가 다시 절절히 체험하는데 전태일의 삶만큼 예언적인 삶이 또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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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더우드 후손 28명 우리 고향은 South Korea/ 군종장교 범죄
    박수홍, 하나님께 대한 최소한 예의/ 죽음의 질(Well dying) 중요
    예장통합 ‘제2의 세습방지법안’ 총회 통과/ 예수님처럼 교회도 하늘에서 내려와야
    서울대 인권 가이드라인,적극 반대 /목회자의 고백 7가지 실수
    총회장 2명을 배출한 여인의 힘! /복음화율 10% 안 되는데 주일학교만 1천 명
    김영란법 시행… 교계는 어떻게 / 무릎으로 승리한 맥아더
    국제성막훈련원, 광야 성막 재현 /서울시, 신천지 위장행사에 혈세 지원
    이정현 대표 , 두려울 때마다 기도/ 칼뱅은 '여성 안수' 인정했다
    이단에게 기회 한 번 주자, 채영남 총회장/교회 선택의 최우선은 여전히 '설교
    목사, 장사의 신(神)이 되다
    다시 만든 벤허 보니 충격적 / 김진홍목사, 검찰조사 /17년 키운 아들, 알고보니 목사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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