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믿음교회 부목사 몰카 사건과 관련해 변승우 담임목사가 경고 예언이 그대로 적중됐다는 글을 교회 공식 카페에 올렸다. (큰믿음교회 카페 갈무리)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지난 11월 3일, 대형 마트에서 휴대폰으로 한 여성의 특정 부위를 찍다가 붙잡힌 부목사는 서울 큰믿음교회(변승우 목사) 소속이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부목사의 핸드폰에서는 다른 여성 2명을 찍은 동영상이 추가 발견됐다. (관련 기사: 큰믿음교회 부목사, 대형 마트서 여성 몰카 찍다 검거) 11월 6일 변승우 목사는, 부목사의 사표를 수리할 예정이라고 교회 공식 카페를 통해 알렸다. 또,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라면서 교인들에게 부목사를 위로해 달라고 했다.
변 목사는 이틀 뒤인 8일 교회 카페에 '사랑하는 큰믿음 가족 여러분, 우리 모두 힘을 냅시다(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쓴 글)'는 제목의 글을 한 번 더 올렸다. 그는 A4 2장 분량의 글에서, 처음에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왜 하나님이 막아 주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그 이유를 알려 줬다고 했다.
"그 결과 저는 이번 사건이 아이반 터틀 목사님이 집회 둘째 날 '어떤 분들에게는 이것이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숨겨진 고의적인 죄를 지금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 죄를 드러낼 것이다'고 엄중 경고한 것의 성취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 일이 폭로되도록 허용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켜서 자신이 제2, 제3의 주인공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미국 크리스천 라디오 Faithwalk News &Views의 사회자 겸 콘퍼런스 강사이기도 한 아이반 터틀은 지난달 큰믿음교회에서 집회 강사로 나섰다. 변 목사는 당시 아이반 터틀 목사의 말을 언급하면서, 경고의 의미를 지닌 부정적 예언이 부목사의 몰카 사건을 통해 정확히 성취됐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 큰믿음교회 교인들은 변 목사의 글을 적극 지지했다. 2,700개가 넘는 지지 댓글이 달렸고, 조회 수는 하루 만에 1만 2,277을 기록했다. (큰믿음교회 카페 갈무리)
그러면서 변승우 목사는, 아이반 터틀 목사가 집회에서 한 말을 소개했다.
"큰믿음교회는 대한민국의 모든 교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가진 교회입니다. 그런데 여러 목회자들이 이 사실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변 목사가 위협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중략) 변 목사님은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큰믿음교회가 받게 될 축복은 목사님의 생각을 뛰어넘는 아주 놀라운 축복입니다. 목사님께서 지금까지 큰믿음교회 안에서 목도하고 경험한 일들은 단지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제 큰믿음교회는 전 세계적으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새 생전으로 이전하고 5년 이내에 변승우 목사의 비전이 두 배 이상 확장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중략) 목사님에게 아브라함에게 임했던 축복이 임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에게 복의 근원이 된 것처럼, 큰믿음교회는 수백, 수천만 명에게 놀라운 축복이 될 것입니다."
변 목사는 글 말미에 "우리 모두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 전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합시다. 또 그 목회자가 진정으로 회개하여 회복되고 피해자들에게 주님의 위로와 평강이 임하도록 기도합시다"고 했다.
변 목사가 쓴 글의 조회 수는 하루 만에 1만 2,277을 기록했다. "빛 되신 주님 앞에서 다시 저 자신을 돌아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목사님 말씀대로 우리 교회에 전화위복이 될 줄 믿습니다", "아멘, 큰믿음교회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 줄 것입니다"와 같은 지지 댓글이 2,700개 넘게 달렸다.
=============================================
임신12주 사모, 강도의 총격으로 사망
인디애나주 리조닛교회의 아만다 블랙번, 자택에서 총격당해
▲ 데이비 블랙번 목사, 아들 웨스턴과 아내 아만다 블랙번(사진:리조닛교회)
28세의 임신중이었던 목회자 사모가 10일(화) 집에 침입한 강도에 의해 머리에 총상을 당했으며, 교인들의 기도와 의료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요일 숨졌다.
리조닛 처치(Resonate Church)의 데이비 블랙번 목사의 아내인 아만다 블랙번(Amanda Blckburn)은 인디애나주 엘크하트에 위치한 제일침례교회 필 비어스 목사의 딸로 임신 12주차였던 것으로 밝혀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교회 페이스북에 따르면 “어제(10일), 우리 목사님이 운동 후 집에 왔을 때 누군가가 집을 부수고 침입한 한 흔적과 그의 아내 아만다가 총상을 입고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발견했다”며 “즉시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머리에 입은 총상으로 사망했다”고 전했다.
경찰관계자는 “아만다가 화요일 오전 8시 30분경에 자택에서 무장강도에 의해 머리에 치명적 총상을 당한 것을 확인했으나, 용의자에 대한 구체적 정보는 확인되지 않았다”며 “그녀는 무장강도와 다투는 과정에서 살해된 것으로 보이며, 그녀의 아들 웨스턴은 해를 입지 않았다”고 밝혔다.
교회 홈페이지에 따르면 블랙번 목사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뉴스프링교회(NewSpring Church)에서 교육목사 등으로 사역하다 2012년 뉴스프링교회의 도움으로 리조닛교회를 개척했다.
블랙번 목사는 “어떤 말로도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없다. 나의 아내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름답고 은혜로 충만한 여성이었다”며 “나는 나의 든든한 동역자이자 최고의 친구를 잃었기에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감당해야할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그는 로마서 8장 28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을 언급하며 “슬픔으로 며칠 교회를 떠나 있겠지만, 결코 교회를 떠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나의 아내가 원치 않을 것이다”며 “아만다는 예수님을 그들의 구세주로 모실 수 있도록 그녀가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을 그녀의 소명으로 알고 있었다. 나를 향한 그녀의 바람은 우리가 함께 시작했던 것을 계속하는 것이다”며 교회 사역을 계속할 것임을 밝혔다.
블랙번 목사가 사역했던 뉴스프링교회의 노블 목사는 “블랙번 목사는 우리 교회에서 사역할 당시 아만다와 결혼했으며, 교회를 다니지 않는 이들을 전도하기 위해 인디애나폴리스에 새로운 교회를 개척했다”며 “우리는 블랙번 목사와 아만다가 받은 소명을 잘 알고 있었기에 리조닛교회를 개척하는 것을 도왔다. 우리는 그가 이번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다”고 전했다.
편집부 / <뉴스 M / 미주 뉴스앤조이>
==============================================
“회심 없는 설교, 골 못 넣는 축구선수와 같아”
합동 전도정책포럼 개최… 박현신 교수와 김남준 목사 등 발표
▲포럼이 진행되고 있다. ⓒ김진영 기자
예장 합동(총회장 박무용 목사) 제100회기 총회 전도정책포럼이 ‘전도설교(복음제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9일 서울 사랑의교회(담임 오정현 목사)에서 열렸다.
이날 포럼은 박무용 총회장의 설교로 드린 개회예배에 이어 천석봉 목사(전도국장)의 주제 설명과 6번의 강의 및 2번의 주제별 좌담 순서로 진행됐다. 강사로는 박현신 교수(총신 신대원 설교학), 김남준 목사(열린교회), 방성일 목사(하남교회), 홍승영 목사(장지교회), 김정윤 목사(빛트인교회), 권기웅 목사(원남교회)가 나섰다.
천석봉 목사는 “전도설교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자, 불신자들을 구원하고 성도를 구원의 감격 속에서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도록 돕는 것”이라며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에 믿음이 있는 자나 없는 자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흐르는 복음의 메시지를 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천 목사는 “1907년 평양대부흥이 일어난 것도,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를 선포되자 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죄에 대한 회개가 불 같이 일어났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다시 전도설교를 해야 한다. 강단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강력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선포해야 한다”고 했다.
개회예배에서 ‘복음을 전파합시다’(요 3:14~18)를 제목으로 설교한 박무용 총회장은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어떻게 하면 주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한 영혼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때문”이라며 “복음전도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출발해야 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때 가능하다. 우리가 구원의 기쁨과 감격으로 복음을 선포할 때 성령께서 역사하실 것”이라고 전했다.
▲박현신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김진영 기자
이어 첫 강사로 나서 ‘전도설교에 대한 개혁주의 설교학적 관점’을 제목으로 발표한 박현신 교수는 “개혁주의 변증적 관점에서 전도설교는 ‘신자들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말씀)’를 묻고 있는 불신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벧전 3:15)하고, 그들의 불신앙에 대한 ‘성경의 적용’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전도설교는 △반드시 성경적 하나님에 대한 설교신학에서 출발해야 하고 △인간의 전적 타락을 기초로 하며 △철저히 그리스도 중심적이어야 하고 △복음적인 중생을 위한 ‘회개와 믿음’의 반응 및 결단을 촉구한다. 또 △모든 과정에서 성령의 역할이 결정적임을 강조한다.
특히 그는 “철저히 성경에 근거하면서도 역사적 개혁주의 신앙고백과 교리에 뿌리를 둔 설교신학에 기초해 강해적 전도설교를 회복하고 발전적으로 추구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설교학자들과 설교자들이 함께 성경의 전도설교 예시와 바울의 전도설교, 역사적 개혁주의 전도설교와 현대의 모델 등을 더욱 면밀히 연구하고 한국교회에 적합한 강해적 전도설교 모델을 구체적으로 만들어야 할 때다. 특히 그리스도와 하나님나라 복음 중심적 전도설교를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박 교수는 또 “전제주의 변증적 전도설교(apologetic evangelical preaching) 전략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오늘날 전도설교자들은 회의주의적 불신자가 의심을 가지고 자신의 설교를 듣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설교 가운데 그들에게 필요한 설명을 준비하는 존중과 배려가 필요하다. 나아가 기독교 진리와 복음에 대한 적극적인 증명과 비판 차원의 변증적 전도설교를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
두 번째 강사로 나선 김남준 목사는 ‘전도설교(복음제시) 방법과 전략’을 제목으로 발표했다. 김 목사는 “바람직한 전도설교는 모든 인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인생의 근본적인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리고 그 답을 청중들이 받아들일 만하도록 인격적인 접촉을 통해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도설교자가 교회 안에서 신자들끼리 익숙해진 담론이나 용어만으로가 아니라, 불신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담론과 언어를 가지고 설교를 풀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김 목사는 “전도설교는 바로 십자가와 부활이 하나님의 세계를 향한 경륜에 있어서 왜 중심이 되는지를 유능하게 설득하고 능력 있게 선포하는 것”이라며 “그러므로 전도설교자들은 십자가와 부활의 신학적인 의미를 어떻게 세계와 인류의 삶에 철학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그 답을 찾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특히 “전도설교자가 마지막으로 도달해야 할 목표는 청중이 회심하는 것”이라며 “아무리 설득력 있고 유능하게 설교했다 할지라도 그 결과 회심이 없다면, 그것은 마치 화려한 드리블로 온 관중의 마음을 사로잡지만 골을 넣지 못하는 축구선수와 같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김 목사는 “사람의 마음을 깨뜨려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리스도께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은 오직 성령님의 역사”라며 “그러므로 모든 일을 다한 후, 그 훌륭한 준비가 저절로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오히려 성령의 능력을 의존하고 회심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한 편의 전도설교는 하나님과 세계와 인간과 자신에 대한 웅장한 전망을 보여줄 수 있는 사상이 담긴 설교여야 한다”면서 “이 일을 위해 설교자는 성경의 진리를 단편적으로만 이해하지 말고, 그 속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웅장한 사상의 체계를 성경과 신학에 대한 탐구로 배워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 방성일 목사는 ‘전도설교(복음제시)의 교회적 적용’, 홍승영 목사는 ‘어린이에게 어울리는 전도설교(복음제시)’, 김정윤 목사는 ‘청소년이 잘 듣는 전도설교(복음제시)’, 권기웅 목사는 ‘청년이 집중하는 전도설교(복음제시)’를 제목으로 각각 강연했다.
=====================================================
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 졸업생, 美 변호사 시험 9명 합격
국내 유일 미국식 로스쿨, 졸업생 대비 합격률 70%대
▲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 수업 장면. ⓒ한동대 제공
한동대학교(총장 장순흥) 국제법률대학원 졸업생 9명이 지난 7월 미국 워싱턴 D.C.에서 시행된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매년 2월과 7월 두 차례 시행되는 미국 변호사 시험에서 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은 올해 총 29명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워싱턴 D.C. 변호사시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이번 7월에 시행된 워싱턴 D.C. 변호사 시험의 전체 응시생 대비 합격률은 39.1%로 예년보다 합격률이 소폭 하락했는데 반해, 한동대 졸업생들의 누적 합격률은 70%를 웃돌고 있다. 한동대의 전체 응시생 대비 누적 합격률은 미국 유수의 로스쿨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지난 2002년 ‘국내 최초 미국식 로스쿨’을 표방하며 개원한 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은 미국 7개 주에서 294명의 미국 변호사를 현재까지 배출하면서, 국제법 분야 명문 로스쿨로 발돋움했다.
전 교수진이 미국 변호사 출신으로 구성돼 있으며, 교과 과정은 100% 영어로 진행된다. 또 재학 기간 정부 부처, 대검찰청, 대법원, 국내외 로펌, 기업 등의 인턴십을 통해 실무 능력도 동시에 배양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제 법조인도 양성되고 있다. 졸업생들이 소정의 현지 교육과정 이수와 시험 응시 절차를 통해 인도와 뉴질랜드, 호주 등지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있는 것.
에릭 엔로우(Eric Enlow) 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 원장은 “국내 유일 미국식 3년 학위과정 로스쿨인 우리 대학원에서 지속적으로 미국 변호사를 배출, 국내 법률 시장에서 증대되는 외국 변호사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다”며 “이미 변호사로 활동 중인 졸업생들의 평가도 우수해 법률시장에서 그 위상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
잠비아 선교사, 강도 피습 중상
현지 한인교회서 사역 김용현씨… 도서관 건축 인부가 강도 돌변
잠비아 선교사, 강도 피습 중상 기사의 사진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서평양노회는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활동 중인 김용현(52·사진) 선교사가 강도의 피습을 받아 중상을 입었다고 12일 밝혔다.
강도들은 지난달 29일(이하 현지시간) 수도 루사카의 김 선교사 집에 침입해 각목과 벽돌로 공격하고 돈과 휴대폰, 컴퓨터 등을 훔쳐 달아났다. 강도들은 김 선교사가 진행 중인 어린이 도서관 건축 현장의 인부들로, 김 선교사를 폭행한 후 집에서 멀리 떨어진 외진 곳으로 끌고 가 방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선교사는 피습 후 교회 성도와 가족들에게 발견돼 근처 병원으로 옮겨져 머리와 입술 봉합 수술을 받았다. 병원 진단 결과 머리와 갈비뼈 등에 금이 갔으며 팔은 골절상을 입었다. 발견 당시 김 선교사는 출혈이 심했으며 특히 머리 상처가 깊어 구토를 계속했다고 가족들이 전했다. 김 선교사는 현지에선 수술이 어려워 11일 저녁 한국으로 출발했다. 국내에 도착하는 대로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김 선교사는 국내에서 목회활동을 하다가 10년 전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잠비아에서는 7년째 사역 중이다.
==================================================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 둘러싸고 다시 한 번 소송전
갱신위, '위임목사 청빙 결의 무효' 고소…오 목사 지지 측, 당회원 장로 등 고소
최승현 기자
▲ 사랑의교회가 다시 한 번 소송전에 휘말렸다. 갱신위 교인들은 사랑의교회가 공동의회에서 결의한 오정현 목사의 위임목사 청빙을 무효화해야 한다며 소송을 걸었다. 2003년 오정현 목사가 사랑의교회 위임목사로 청빙됐는데, 신분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사랑의교회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 동서울노회가 사랑의교회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오정현 목사를 반대하는 일부 교인들이 위임목사 결의 무효 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낸 것과 오정현 목사를 지지하는 일부 교인들이 반대 교인들을 노회에 고소한 것 때문이다.
사랑의교회 장로 4명을 포함해 사랑의교회갱신위원회(갱신위) 교인 9명은 2003년 위임목사 청빙 당시 문제가 있었다며, 지난 6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동서울노회와 오정현 목사를 상대로 '위임목사 결의 무효 소송'을 냈다.
11월 5일 첫 번째 공판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양측 주장의 기본적인 사실 확인이 이루어졌고, 제출할 증거자료 등을 논의했다. 두 번째 공판은 12월 11일로 예정되어 있다. 2차 공판부터는 오정현 목사의 총신대학교 입학 관련 자료, 출입국 기록 조회 결과 등 증거자료를 놓고 심리할 예정이다.
갱신위 교인들이 지적하는 부분은 무엇일까.
예장합동 헌법상 다른 교단 목회자가 예장합동 목사가 되려면, 총신대학교 신대원에서 편목 과정을 밟고 강도사 고시를 본 후에 노회에서 강도사 인허를 받아야 한다. 오정현 목사는 미국 다른 교단에서 안수를 받았기 때문에 사랑의교회에서 목회를 하려면 이 과정을 꼭 거쳐야 했다.
갱신위는, 오 목사가 총신대 입학시험을 볼 당시 면접이나 시험을 위해 한국에 들어오지도 않았으니 총신대학교 입학이 원천 무효라고 했다. 또한 사랑의교회가 공동의회를 열고 오정현 목사의 위임목사 청빙을 결의했을 당시, 오 목사는 강도사 인허를 받지 않은 상태였다고 했다. 당시 오정현 목사의 출입국 기록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게 갱신위 교인들의 주장이다.
오정현 목사 조사? 아니면 오정현 목사 고소 교인 재판?…설전만 하다 끝난 당회
교회가 속한 동서울노회도 피소했다. 노회는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8월 초 임시노회를 열었다. 노회는 우선 사랑의교회 당회에 공문을 보내 어떻게 된 일인지 조사하라고 했다. 8월 말 노회가 교회로 보낸 행정명령에는 "이 문제에 대해 당회가 우선적으로 이를 조사하여 재판하고 노회에 결과를 보고하라"고 되어 있다.
사랑의교회 당회가 모였으나 갈등 양상만 드러났다. 9월 19일 열린 당회에서는, 노회가 말한 '이 문제'라는 문구를 서로 다르게 해석하면서 대립했다. 당회 서기 최 아무개 장로 등은 "오정현 목사를 향해 소송을 한 사람들을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오정현 목사를 반대하는 장로들은 "오정현 목사의 청빙 과정에서의 문제점이 있는지 없는지를 조사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걸 어떻게 고소한 교인들을 재판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냐"며 반발했다.
▲ 오정현 목사는 "내가 표절이면 사임한다고 했나, 대필이면 사임한다고 했지"라고 말하는 등, 이날 당회에서 자신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최 아무개 서기 장로는 한발 더 나아가 오정현 목사를 고소한 4명의 장로를 의사 결정 과정에서 제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파 장로 16명을 제외한 나머지 장로들도 이에 찬성했다. 그러자 반대파 권 아무개 장로는 "지금 반대하는 장로, 개혁을 주장하는 장로들은 제척 사유에 해당하니 다 내보내고 오정현 목사를 추종하는 장로들만 남겨서 만장일치 하겠다는 건가"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결과적으로 사랑의교회 당회는 오정현 목사의 위임목사 문제와 관련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유야무야 마무리됐다.
반대파 장로들은 오정현 목사에게 "소송도 제기되는 등 논란이 자꾸 커지니 목사님이 먼저 나서서 증빙서류 공개하고 깔끔하게 마무리해야 한다"고 했지만, 오정현 목사는 어떤 말을 해도 교인들이 믿지 않는다며 반발했다. 원인이 자기한테 있는 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여러분들 생각해 보세요. 사랑의교회가 화합이 돼서 잘되기를 모두가 다 원하시는데, 누가 지금 화합을 깨트리는 겁니까? 제가 깨트리는 겁니까? (중략) 원인이 지금 누구에게 있습니까? 제게 있다면 제가 사죄하고 용서 구하고, 내가 왜 그걸 못 하겠어요?
제가 그러면 사죄하고 용서하고 다 이해가 되면 모든 걸 끝내시겠어요? 그렇다면 제가 그대로 하겠어요. 그런데 그래도 안 해 주실 거잖아요. 내가 그렇게까지 이해가 될 만큼 말씀을 드렸는데도 이해를 안 해 주시잖아요. 왜 다른 분들은 이해를 하시는데 왜 이해를 못 하세요? 형벌 받았잖아요, 내가. 3년 동안."
노회, 갱신위 교인들 재판 예정…재판국원 '편파성' 놓고 설왕설래
동서울노회가 갱신위에 의해 피소했지만, 반대로 노회가 오정현 목사 지지 교인들에 의해 피소한 갱신위 교인을 놓고도 재판해야 한다.
사랑의교회 이 아무개 집사는 오정현 목사를 고소한 갱신위 교인 9명을 포함해 총 13명을 지난 7월 동서울노회에 고소했다. 갱신위 교인들이 6월에 소송한 것뿐만 아니라, 그동안 오정현 목사와 대립해 온 활동들을 문제 삼았다. 오정현 목사에게 사임을 협박했고 교회 앞에서 시위를 해 예배를 방해했다는 이유, 좌파 정치 세력과 연계해 건축을 반대하는 주민 소송을 진행하는 등 교회를 분열시키려고 했다는 이유 등 총 14건을 고소 이유로 써냈다. <뉴스앤조이>나 MBC 등 언론을 동원해 거짓 사실로 오정현 목사를 비방하고 교회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도 있었다.
고소인 이 아무개 집사는 사랑의교회 주연종 목사를, 피고소인 갱신위 교인들은 예장합동 소속 교단 목사 7명을 변호인으로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고소장을 받은 동서울노회는 갱신위 교인들을 치리할 재판국을 구성하기로 결의하고, 노회 목사·장로 7명을 재판국원으로 선임했다. 그런데 노회 안에서는 재판국이 공정하게 구성되었는지 여부를 놓고 말이 무성하다.
갱신위 교인들을 치리하게 될 재판국이 오정현 목사에 우호적인 사람들로 구성됐다는 이야기가 돈다. 한발 더 나가 이번 기회에 오정현 목사에게 잘 보이려는 목사들이 갱신위 교인들을 면직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반대파 장로 16명 때문에 당회를 마음대로 하지 못하니, 이들 중 일부를 면직해 오정현 목사를 지지하는 장로만으로 당회 의결정족수를 채우겠다는 것이다.
11월 3일, 기자는 재판국원들에게 소문에 대해 물었다. 이들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한 목사는 "전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전혀 대응할 가치도 없는 소문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는 "재판 건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대응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재판국원들이 오정현 목사와 가까운 사람들로만 구성됐다는 얘기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다. 기삿거리도 못 된다"고 했다. 그는 "재판은 정치가 아니다. 교단 헌법대로 할 것이다"고 말했다. 총신대 입학 동기로 알려진 재판국장 김 아무개 목사도 헛웃음을 치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
그런데 현직 노회 임원의 이야기는 좀 다르다. 그는 "(재판국 구성에) 오정현 목사 색깔이 진하긴 하다"며 재판국 구성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다른 한 노회원 목사도 "특정인을 오정현 목사 지지하는 사람이라고 한다거나, 오 목사와 친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는 없다. 그러나 그동안의 행태나 노회 내에서의 발언과 행동을 보면 그쪽(오정현 목사)에 가까운 사람들로 구성이 된 건 맞다"고 말했다.
한편 재판국이 편파적이라며 반발해서 국원직을 사퇴한 것으로 알려진 김 아무개 목사는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나이도 많고, 내년에 은퇴를 앞두고 있어 사퇴한 것이다"고 했다. 기자는 편파성 논란 때문에 사퇴한 것이냐고 물었지만, 그는 "기사화할 만한 내용을 말하기는 어렵다"고만 답했다.
========================================================
"전병욱 사태, 나와 상관없는 문제라는 인식이 발목 잡아"
삼일교회TF, 다시 한 번 평양노회에 전병욱 목사 면직 촉구
이용필 기자
▲ 삼일교회TF팀이 예장합동 평양노회에 전병욱 목사의 면직을 촉구했다. 성범죄를 저지른 전 목사가 아직까지 회개나 반성을 하고 있지 않다면서 치리를 통해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전 목사가 담임으로 있는 홍대새교회가 사실과 다른 성명을 발표하는 등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삼일교회치유와공의를위한태스크포스팀'(삼일교회TF팀)이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평양노회(김진하 노회장)에 전병욱 목사(홍대새교회)의 면직을 또다시 촉구했다.
삼일교회TF팀은 11월 9일, 삼일교회 C관에서 '평양노회의 전병욱 목사 징계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성범죄를 저지른 전 목사에게 올바른 권징을 내려 실추된 공교회의 거룩성을 회복하길 바란다고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삼일교회TF팀 강병희 목사, 나원주 장로, 권대원·박동선·이수미 집사를 포함, 삼일교회 교인과 취재진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기자회견은 권대원 집사의 경과보고로 시작됐다. 지난 2009년 성추행 피해자의 제보로 촉발된 사건은, 2015년 9월 예장합동 총회의 전병욱 목사 재판 결의로까지 이어진 상황이다.
삼일교회TF팀은, 전병욱 목사가 성추행을 저질러 놓고도 회개나 반성도 없이 버젓이 목회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오히려 적반하장식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전병욱 사건의 본질을 흐린다고 지적했다.
앞서 홍대새교회는 지난 7월 18일과 25일, 8월 8일 총 세 차례에 걸쳐 전병욱 목사를 변호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는 △전 목사와 삼일교회 측이 2년간 수도권 개척 금지를 합의한 적 없고 △성 중독 치료비를 받은 적 없고 △성범죄 사실이 과장됐고, 삼일교회가 수소문한 피해자들 역시 믿을 수 없다고 나와 있다. (관련 기사: 홍대새교회, "전병욱 목사는 성 중독자 아냐")
삼일교회TF팀의 이야기는 다르다. 전 목사는 전별금 명목으로 주택 구입비 10억, 퇴직금 1억 1,500만 원, 2년간 목회 활동 중단에 따른 봉급 1억 3,000만 원, 기타 예우(성 중독 치료비) 명목으로 1억 원을 지급받았다. 총 13억 4,500만 원을 받았다. 박동선 집사는 "전 목사가 2년간 수도권에서 목회를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2년치 봉급을 미리 지급했다"면서 홍대새교회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장부에 '성 중독 치료비' 대신 '기타 예우'로 한 것은 민망스러웠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박 집사는 "사실 그대로 쓰지 못한 것은 우리 잘못일 수도 있지만, 이 부분을 문제 삼는 것은 참 비양심적이라고 생각한다. 전 목사가 장로들에게 '치료를 받고 오겠다' 등의 발언을 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의 상담은 공신력을 얻기 위해 '여성의전화'를 통해서 진행했다며 "과장은 없다"고 말했다.
▲ 삼일교회TF팀은 올해 6월 조직됐다. 전병욱 목사를 상대로 전별금 반환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전교인 회개 기도회, 공청회 등을 이어 가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질의응답 시간에는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지금까지 진행된 전병욱 목사 재판이 지지부진했던 것처럼, 앞으로 진행될 재판 역시 큰 차이가 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나왔다. 삼일교회TF팀 나원주 장로는 지금까지 진행된 재판 절차만 놓고 봤을 때 징계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회 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총회에 상소할 수 있기에 최선을 다해 싸워 나갈 것이라고 했다.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 전 목사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나 장로는 "피해 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전 목사가 '정말 아니다'고 부인한 적이 없다. '죄송하다'면서 사과문까지 쓰고, (삼일교회를) 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나와 상관없는 문제'라는 왜곡된 인식이 사태 해결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권대원 집사는 "사건이 벌어진 지 6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해결이 안 되고 있다. 총회 목사와 장로들이 자기 교회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문제"라고 했다.
삼일교회TF팀은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기 위해 전병욱 목사 성추행 사건을 적극적으로 알릴 것이라고 했다.
▲ 이날 기자회견에 대한 관심은 높았다. 기자회견이 열린 예배실에는 취재진과 교인 50여 명이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아래는 성명 전문.
전병욱 목사 면직 촉구를 위한 삼일교회 성명서
지난 2월, 전병욱 목사 범죄를 조사하기 위해 꾸려진 평양노회 재판국이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해체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후 9월에 열린 예장합동 총회에서 전병욱 목사를 징계하라는 내용이 긴급동의안으로 올라갔고, 총회는 이 안건을 평양노회로 돌려보내 다시 재판을 열도록 결의했습니다.
이에 삼일교회는 한국교회가 거룩성을 회복하고 이 사건으로 피해 입은 모든 이들에게 회복과 치유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병욱 목사의 면직을 간곡히 촉구합니다.
삼일교회는 이미 지난 수년간 평양노회에 여러 차례 전병욱 목사 면직을 요청한 바 있고, 이와 관련하여 기자회견과 집회 등을 통해 씻기 힘든 한국교회의 오명과 이로 인해 교회를 불신하는 풍조를 바로잡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또한 이러한 노력에 한국교회 내의 지각 있는 수많은 인사가 동참했으며 출판과 언론을 통해 회자되면서 교회 밖의 사회에서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2014년 9월 평양노회에서 극적으로 전병욱 목사 사건에 대한 재판국이 구성되었으나 평양노회는 지기 싫은 짐을 억지로 떠맡은 듯 시간을 끌었습니다. 이 재판 과정에서 삼일교회는 수많은 자료를 제출하였고 심지어 피해자들이 수치심을 무릅쓰고 참석해 눈물로 직접 증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판결을 앞둔 상황에서 재판국원들 중 일부가 의문스러운 행태로 재판을 무산시켰고 결국 평양노회는 분립을 이유로 재판국을 해체하는 몰지각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지난달 10월, 총회의 결의에 따라 재판을 준비해야 했던 평양노회는 오히려 홍대새교회의 노회 가입 청원을 승인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교회 헌법상 무임목사는 재판할 수 없다는 이유를 핑계로 삼아 말입니다. 평양노회에 묻고 싶습니다. 2014년 9월에 재판국이 구성될 당시에도 홍대새교회는 노회 가입이 되지 않았고 전병욱 목사 역시 무임목사 상태였는데 어떻게 전 목사가 재판국에서 조사를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까. 그때는 가능했고 지금은 안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렇게 평양노회의 일관성 없는 모습으로 미루어 볼 때 평양노회는 전병욱 목사가 참된 회개와 자숙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을 뿐 아니라 그의 죄를 방관하고 세상이 이 사건을 잊을 때까지 버텨 보겠다는 무리수로밖에는 읽히지 않습니다.
한때 한국교회의 스타 목사로 차세대 지도자로 추앙받던 전병욱 목사의 범죄는 비단 한 개인의 일탈만이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와 일반 사회에까지 큰 상처와 충격을 준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올바로 징계하기는커녕 몇 년째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 예장합동 교단 평양노회의 모습은 이를 지켜보고 있는 많은 사람에게 큰 실망과 좌절감을 안기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이 세상과 후대에 오욕의 기록이 아닌, 교훈으로 남기 위해 이제라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는 충분히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평양노회는 전병욱 목사 사건에 대한 올바른 권징을 통해 실추된 공교회의 거룩성을 회복시키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공의를 세우는 일에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속히 전병욱 목사의 재판을 진행하여 목회자의 도덕성을 바로 세우며 상처와 탄식으로 얼룩진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 주시기를 간곡히 촉구합니다.
정재영 교수 <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 북토크…김기석 목사, 김선일 교수 패널로 나서
강동석 기자
▲ 11월 9일, 강변역 테크노센터 14층에 있는 은혜와선물교회에서 열린 <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IVP) 북토크에는 신학 교수들을 비롯한 가나안 성도 관련 사역자들, 가나안 성도와 이런 현상에 관심 있는 사람들 총 100여 명이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강동석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교회는 떠났지만, 신앙인으로서 정체성은 유지하고 있는 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을 '가나안 성도'라고 한다. 2013년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조사 결과로 추정하면 한국교회의 가나안 성도 숫자는 100만 명이다.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로 나온 862만이라는 개신교 인구와 2005년 이후 10년간 개신교의 교세가 꺾이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100만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최근 IVP에서 가나안 성도 문제를 종교사회학적으로 다룬 책이 출간됐다. 정재영 교수의 <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 – 가나안 성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IVP)이다. <뉴스앤조이>는 10월 20일, 책 내용과 관련해 저자인 정재영 교수를 인터뷰한 바 있다. (관련 기사: "나도 가나안 성도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IVP는 지난 11월 9일, 가나안 성도 현상을 좀 더 심층적으로 다루고, 그 내용을 소개하기 위해 <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 출간 기념 북토크를 열었다. 강변역 테크노센터 14층에 있는 은혜와선물교회에서 열린 북토크에는 신학 교수들을 비롯한 가나안 성도 관련 사역자들, 가나안 성도와 이런 현상에 관심 있는 사람들 총 100여 명이 참석했다.
▲ 북토크는 정재영 교수의 강의로 시작됐다. 정 교수는 자신의 책 <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의 내용을 요약하고 정리하여 오늘날 가나안 성도들이 처한 현실과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뉴스앤조이 강동석
북토크는 정재영 교수가 책 내용을 개괄·요약하는 방식으로 강의하고, 패널들과 대담을 나눈 다음, 청중들의 질의응답을 받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사회는 일산은혜교회의 남오성 목사가 맡았다. 패널로는 청파교회를 담임하는 김기석 목사,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실천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김선일 교수가 나왔다.
먼저 강의를 시작한 정 교수가 가나안 성도들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 이야기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나안 성도는 흔히 오해되듯이 그저 교회를 잠깐 다니다가 그만둔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나름 교회에서 아주 오랫동안 의미 있게 신앙생활했던 사람들이다. 교회 다닌 기간이 평균 14년이 넘었고, 직분도 받았고 절반 정도가 구원의 확신이 있었다. 교회 활동에도 90% 정도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그리고 3분의 2가 교회를 한 번도 옮기지 않았거나 한 번만 옮긴 경우였다. 흔히 말하는 나이롱 신자, 선데이 크리스천, 교회 쇼핑족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 교수는 열심히 신앙생활한 사람들이 왜 교회를 떠났는지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가나안 성도는 크게 두 부류, 교회를 떠났지만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이 뚜렷한 사람들과 문화적인 기독교인으로 구원의 확신이 있지는 않지만, 본인을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나뉠 수 있다고 했다.
가나안 성도가 등장한 원인도 크게 두 가지로 봤다. 포스트모던 사회로 변하면서 극단적인 개인주의적 신앙을 추구하는 경우가 생겼고, 한편으로는 기성 교회에 워낙 문제가 많다 보니까 교회를 떠나게 됐다는 것이다.
가나안 성도들이 꼽은 기성 교회에 대한 불만으로는 교회에서 신앙을 강요한다는 것, 목사를 포함해 교인들 사이에 소통이 단절돼 있다는 것, 교인들의 신앙과 삶이 불일치하다는 것 등이 있었다. 정 교수는 교회 이탈자, 가나안 성도들을 위한 경계 집단들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신우회와 같은 파라처치(Para-church)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실제로 한 신우회 같은 경우 회원 상당수가 주일날에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가나안 성도들의 교회가 기성 교회에 도전을 주고 있으며, 교회의 바른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오늘날의 중대한 과제라고 했다.
▲ 정재영 교수의 강의가 끝나고 이어진 대담은 사회자 남오성 목사가 던지는 질문에 대해 패널들끼리 돌아가면서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뉴스앤조이 강동석
아래는 이어지는 대담과 질의응답을 정리한 것이다.
"목사님, 저희는 난민입니다"
남오성 목사: 목사님 한 분, 교수님 한 분을 패널로 모셨다. 김기석 목사님과 김선일 교수님이다. 김 목사님은 청파감리교회 담임이다. 청파감리교회는 가나안 성도들이 가장 많이 몰려드는 교회라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가나안 성도들을 접하면서 들려줄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 김선일 교수님은 실천신학을 가르치는데, 전문 분야가 전도학이다. 떠난 사람을 어떻게 데려올지도 목회에서 중요한 과제다. 이분들의 이야기를 들을까 한다. 두 분 다 책을 읽었을 텐데, 읽으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 김기석 목사는 책 표지에 있는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김 목사는 표지 속에 있는 한 인물이 문지방, 경계선에 서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표지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면서 가나안 성도의 현실과 그들의 마음을 생각했다고 밝힌 김 목사는 표지 속 백색 십자가에서 세상의 모든 고통을 안고 있는 그리스도가 연상된다고 덧붙였다. ⓒ뉴스앤조이 강동석
김기석 목사: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다소 부족한 것이 통계를 통한 현실 인식이다. 정 교수님이 종교사회학자로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표본 집단들을 통해 통계를 내주어서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정 교수님의 연구는 한국교회를 위해서도 소중한 일이다.
김선일 교수: 가나안 성도와 관련한 사람들의 고민과 논의를 잘 통합해서 해석한 책이라 본다. 한국에는 신학과 목회의 콘텍스트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부족한 편이다. 미국에서는 종교사회학자들의 현상과 사실에 대한 분석이 전제가 된 다음에 목회신학과 실천신학의 주제인 '어떻게 새롭게 목회할 것인가' 문제로 넘어간다. 이 책이 상당히 좋은 목회와 선교에 대한 재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본다.
남오성 목사: 가나안 성도로 있다가 청파감리교회에서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했다는 분들을 나도 몇 분 안다. 그런 분들에게서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김 목사님이 목회 현장에서 경험한 얘기를 듣고 싶다.
김기석 목사: 실제로 우리 교회는 외부에서 유입되는 교인들이 제법 많은 편이다. 얼마 전 이들과 친교실에서 차를 마시는데 그런 얘기를 하더라. "목사님, 저희들은 난민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의식 있는 분들을 밖으로 밀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비극적으로 느껴졌다. 교회론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 그러나 오늘날 가나안 성도 현상을 목사들이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있는 이들이 세상에 많이 있다고 하는 것, 아파하면서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이 신앙을 일상화하는 데 있어서 좋은 기회가 된다고 본다.
남오성 목사: 김선일 교수님은 전도학자로서 가나안 현상을 교회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보나.
김선일 교수: 가나안 성도 현상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기존 교회를 반성하고 갱신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본다. 선교할 때는 언제나 새로운 교회와 새로운 선교 공동체의 출현이 예고된다. 가나안 성도들을 다시 데려오는 것이 우리의 과제가 아니라 그곳에서 신앙 공동체 현상이 나올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새로운 신앙 공동체가 나올 가능성을 진단할 수 있고 제시할 수 있을 때 가나안 성도에 대한 논의가 건강해질 수 있다.
소속 없는 신앙, 가능한가
남오성 목사: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얘기를 나눠 보려 한다. 좀 큰 틀에서 가나안 성도 현상을 두고, 미래적으로 이런 것을 준비하면 좋지 않을까 제안할 만한 것들이 있나.
▲ 김선일 교수는 차분한 어조로 가나안 성도들의 모임을 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 교수는 가나안 성도들의 모임이 어떤 의미에서 응집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자칫 공동체성이 없는 사교의 장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강동석
김선일 교수: 이것은 정 교수님이 몇 번 질문 던진 '소속 없는 신앙이 가능한가?'의 문제다. 소속감이 없으면 신앙의 구심점이 없다. 공동체를 갈망한다고는 하나 공동체로 기능할 수 있는지, 함께 계승하고 기억하고 공유하는 이야기와 신앙의 신념들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위험성이 있지 않나 싶다. 새로운 교회의 가능성을 말했지만, 소속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지 않겠나 본다.
남오성 목사: 김기석 목사님이 보기에는 어떻게 방향 잡고 준비하는 게 좋겠나.
김기석 목사: 어차피 세상은 빠르게 변화되고 있다. 흐름을 보고 당황만 할 것은 아니다. 이 시대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교회를 상상하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세상을 '그게 정말 당연한 거야?' 의문부호를 붙이고 새로운 세계, 하나님나라를 상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 안에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얘기해 왔다. 이제는 이것이 통하지 않는다. 가나안 교인들이 등장하고 있는 현실은 교회의 위기인 동시에 상당한 기회다. 기존 교회에 큰 충격을 줄 것이고, 정리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이것이 목회와 사역의 구조를 바꾸어 낼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이 현상을 비교적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싶다.
남오성 목사: 정 교수님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됐으면 좋겠나.
정재영 교수: 현실 교회에서 공동체가 생각처럼 잘 안 된다. 기존 틀을 깨고 나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통계에서 봤을 때 틀 자체 거부하는 이들이 아니고 애착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공동체가 뭔지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거기서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닌가. 서로 피해 안 주는 상황에서 나이스하게 생활하는 게 진짜 신앙인가. 치고받고 싸우면서라도 진지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교회에 문제 있으면 싸워야 하나, 떠나야 하나
이후 이어진 질의응답은 질문지를 통해 질문을 받고, 패널들이 답을 하는 시간이었다.
남오성 목사: 마음으로는 가나안 성도가 되고 싶다는 청년의 질문이다. 출석 교회에 여러 문제가 있을 때 가나안 성도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기 위해 어떤 마음가짐과 행동이 필요한가.
김기석 목사: 청년들이 요즘 너무 힘들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떠돈다. 교회 안에서조차 청년들이 날개가 꺾인 시대다. 청년의 특성은 불온함인데, 교회라는 곳이 불온함을 용납하지 않는다. 답답하다. 나는 청년들에게 방황의 여지를 많이 주는 교회가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교회 안에 머물기 위한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 스스로 대안이 되기 위해 애를 써 보기도 하고 동료들과 함께 새로운 세계도 모색해 봐야 하지 않을까.
남오성 목사: 모태 신앙의 경우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교회에 나가기도 한다. 그들이 청년이 돼서 가나안 성도가 되기도 한다. 이들을 위한 대안은 무엇일까? 나는 사실 청년부 목회자로 오래 생활했다. 이런 경우 방황밖에 답이 없다는 말을 한다. 고통과 방황이 있어야 자기 신앙이 나타나고 성숙될 수 있다고 본다. 자기 신앙을 찾는 결단의 과정이 필요하다 본다. 또 다른 질문이다. 김 목사님에 대한 질문인데 청파교회에 오는 사람들과 함께 교회의 새로운 방향을 연구, 검토하고 있는 게 있나.
▲ 이날 남오성 목사는 충실하게 사회자 역할을 했는데, 청년들의 현실적인 신앙 문제에 대해서는 따로 코멘트를 하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강동석
김기석 목사: 우리 교회가 잠시 왔다 쉬어 가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형태로서의 교회를 새롭게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절망하는 까닭은 고백은 있지만, 그것이 삶으로 번역되는 과정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서 느끼는 공허함 같은 것들이 있다. 상처받고 들어온 부상자들에게 따뜻한 차 한 잔 대접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
남오성 목사: 가나안 성도들을 위한 교회, 가나안 성도들의 교회는 다른 것 같다. 기존 교회가 가나안 성도들을 품어야 하나. 그들을 향한 독자적인 선교 사역을 기획하는 게 중요할까.
김선일 교수: 둘 다 필요하다고 본다. 가나안 성도들이 모인 교회를 직접 체험한 분이 이런 말을 썼다. 같이 모이는데 응집력이 떨어지고 교회를 지속하는 추동력이 떨어졌다. 공동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삶의 나눔이 있어야 하고, 자연과 이웃과 사회와의 유기적 관계가 있어야 한다. 사교적 공동체일 때는 더는 나갈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기 부인의 영성이라고 본다.
남오성 목사: 목사 중심, 교회 중심이 교회 문제로 부각되고는 한다. 이를 탈피하기 위해 필요한 변혁의 요소는 무엇일까. 제왕적 목회, 고통받는 사람들. 참아야 하나, 싸워야 하나, 나가야 하나.
김기석 목사: 싸울 수 있으면 싸우고, 면역력이 부족하면 떠나면 되고, 이도 저도 아니면 견뎌야 하고. 답이 없다. 목회자들 문제에 대해서는 칼 바르트 말을 가져올 수 있을 것 같다. 바르트는 자기 확신에 찬 설교자가 가장 위험하다고 말했다. 목회자들은 항상 답을 제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답을 알고 있는 자로 처신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허위의식을 만들어 내고, 이 가면이 그들에게 특권을 주기 때문에 벗을 생각 안 한다. 대부분의 목회자가 그렇다고 본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싸우되, 겸손하게 싸워야 한다고 본다. "당신 틀렸다"고 말하면, 서로 변화할 가능성이 적어진다. 나는 예수의 영성의 핵심을 비폭력 저항이라고 본다. 정말 그러한가 볼 수 있는, 부드럽지만 끈질긴 저항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재영 교수: 새로운 생태계, 새로운 관점의 확장을 고민하는 분들이 네트워킹을 하는 게 중요해 보인다. 혼자만의 투쟁,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대화하는 장을 만들어 나가는 활동을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연대하는 장을 만들면 어떨까 싶다.
안 사람, 바깥 사람 구분을 넘어서
남오성 목사: 각자 마지막으로 마무리 발언을 한다면.
▲ 질의응답 시간이 끝나고, 북토크는 가나안 성도를 위한 김기석 목사의 기도로 마무리됐다. 김 목사는 "많은 이들이 절망하고 떠나갑니다. 그들을 절대로 비난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세상을 지배하는 분이시니 그분들까지 품에 안아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굳어졌던 한국교회 현상을 풀어내는 촉매가 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했다. ⓒ뉴스앤조이 강동석
김선일 교수: 신앙을 여정이라는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신앙은 여정이라는 것. 그리스도와의 연합한 삶으로 나아가는 여정에 있다는 것으로 신앙의 패러다임을 바꾼다면 지나치게 안 사람과 바깥 사람을 나누는 교회의 관습적 태도를 넘어서서 포용적이고, 좀 더 유연한 교회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일상, 직장과 이웃 속에서 신앙이 바르게 성장하고 증명하는 것이 교회와 목회자의 역할이다. 여정과 일상이 회복될 때 가나안 성도를 포괄할 수 있는 교회 목회 방향이 나올 것이다.
김기석 목사: 이상적 공동체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 몸으로서의 교회가 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는 아픔이 있는 곳, 고통 있는 곳 어디나 찾아갔다. 유난히 우리 마음이 아프게 여겨지는 현장이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곳으로 부른다고 여기고 어떤 형태로든지 연대해 보자. 나는 공동체라는 것이 사건으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공동체의 발생으로서의 사건을 일으킬 수 있도록 자꾸 요구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해 본다. 저절로 가나안 성도들과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의 접점들이 마련될 것이다. 그것이 때때로는 순접으로 때로는 역접으로 이접으로 이렇게 만들어지면서 사건이 발생하면 교회의 실천 형태는 훨씬 더 다양해질 가능성이 있겠다.
정재영 교수: 우리는 섣부른 대안을 찾는 경향이 있다. 실체를 파악하고 나서 대안을 찾아도 늦지 않은데, 현상이 드러나면 이거 문제인데 빨리 해결하는 데 급하다 보니까 핵심을 놓치는 경우도 많이 있다. 한 독자의 말에서 위로를 받았는데 한 세대를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논의가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현상인데 지켜보고 관찰하고 논의하면서 그다음에 대안을 내놔도 늦지 않을 것 같다. 좀 더 폭넓고 다양한 논의들이 펼쳐졌으면 좋겠다 싶다.
====================================
복음을 통해 먼저 인간이 돼라
고린도전서 16장 13-14절)
천정근 yasnayapalanya@gmail.com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1.
하나님의 말씀 곧 자연(自然, 스스로 그렇게 됨의 원리)의 설교(說敎, message)는 인간의 실존(實存)을 향해 있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지성을 통해 자연과 교감합니다. 인간은 자연을 통한 하나님의 지성(知性, 智聲)을 들을 뿐 아니라 생각하고 해석합니다.
그러므로 두 가지. 먼저 설교는 자연이라는 나를 둘러싼 세계의 원리 자체를 일깨워 주는 지식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그 메시지가 나라는 개인의 현재적 상황을 향한 지혜라는 의의를 환기하는 것이어야 합니다(성경은 이를 위한 특별한 도구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건지 알 수가 없게 됐습니다. 그런 설교가 성도들의 실존적 삶에 부합될 리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기독교 메시지)은 전체 세계를 대상으로 하지만 그것을 수용하는 대상은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개인에게 오셔서 개인을 변하게 하여 진리를 증거하십니다. 최종 목적을 위해, 개별 상대를 놓고 서두르시거나 건너뛰는 법이 없으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는 사람은 먼저 차분해져야 합니다.
설교의 대상인 개인의 정신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가 있는 아이처럼 예측할 수 없고, 다양하며, 쉼 없이 변화무쌍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한 번의 구원 경험은 분명 획기적이고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진지해지고 차분해져야 공부를 계속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설교(전도)가 아니라 설교자(전파자)가 문제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이 성경을 그대로 옮기는 것인가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도구(매개)가 없으면 전파가 안 됩니다. 성경도 전도자도 다 매개입니다. 교회도 기독교인들의 삶도 매개입니다. 도구가 적절치 않으면 전파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도구는 어디까지나 도구이지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인가요? 설교자인가요, 설교인가요? 설교란 무엇이고 설교자는 누구일까요?
"예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왜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선하신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시다.'" (막 10:17-18)
아무리 고매한 선생일지라도 온전히 선한 인간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대답한 이유는 예수님 자신이 선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선한 인간이 없다는 점을 상기해 주려는 데 있습니다. 혼자 분리된 우월한 삶이 없는 것처럼 혼자 분리된 우등한 정신도 없습니다.
그런데 강단에만 올라가면 마법의 가운(실제로 각종 가운들을 걸치고 있지요!)과 기적의 혀를 부여받은 듯 행동하는 설교자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출연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어떤 내용인지 이해도 못하지만 멋지게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관객들은 배우와 연기를 혼동합니다. 배우와 그의 연기에 감탄하는 한 영화의 진정한 주제에는 접근할 수 없는 겁니다. 배우도 관객도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설교는 자연이라는 나를 둘러싼 세계의 원리를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그 의미가 나라는 개인의 현재적 상황을 향한 것이라는 사실도 환기해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설교자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과 그런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겠지요? 어떤 설교자든 자신이 도달한 정신 과정의 수준에서 설교도 나오는 겁니다.
"기도 많이 하면 성공한다", "돈 많이 내면 복 받는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이런 설교를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들은 진리의 원리를 일깨워 주지 못할뿐더러 우리의 현 상황을 향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 설교자들은 대개 엉뚱한 행실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지요? 당연한 일입니다. 천국과 주님을 그토록 사랑하는 분들이 금전과 권력과 육신의 쾌락을 사랑하시다니.
우리는 어떤 사람의 말뿐 아니라 행동을 통해서도 그 사람을 믿을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질문들을 해 봐야 할 겁니다. '왜 그 본문을 선택했는가', '그 본문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결론적으로 하려는 말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걸 다시 이렇게 물어야 할 겁니다. '오늘 목사님의 설교는 나를 둘러싼 세계의 원리를 일깨워 주었는가', '그 의미는 나의 현재 상황을 향해 있는가?'
2.
1세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기원후 37년경~100년경)는 본래 반(反)로마 유대 항전의 지휘관이었습니다. 그는 포로가 된 뒤 자신의 변절에 대한 변명으로 <유대전쟁사>를 썼습니다. 전한(前漢) 시대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 기원전 145?~86?)도 패전한 친구를 변호하다 무제(武帝)의 박해를 받았습니다. 궁형(宮刑)이라는 치욕을 당하고, <사기(史記)>를 저술했습니다. 그는 "의분이 붓을 일으킨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변절이나 형벌이 그들의 저술에 영향을 미쳤기에 그것들이 정당하지 않다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변명이든 의분이든 자신의 경험에 정직하기만 하다면 의미는 충분할 겁니다. 제가 말하려는 것은 그들이 개인적 삶의 굴곡을 통해 영향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독자들은 거기에 글쓴이(말하는 자, 설교자)의 경험이 배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설교자의 설교도 곧이곧대로 설교가 아니겠지요? 저는 설교의 가치를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누구보다 그 가치를 아끼는 마음으로 부정직한 설교를 남발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려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 행위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의식적(!) 주제가 있습니다. '깔때기 이론'처럼 그가 무슨 말을 하든지 결국 이 주제로 설교가 완성될 겁니다. 다시 말해 그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설교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것을 그의 특별한 목적이라고 해 둡시다. 이러한 목적은 설교자의 (목회)현실적 삶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 이전에 그의 실존적(영적) 현실에서 출생한 것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런 설교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겠죠? 때문에 그 진정한 출처는 무의식의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어쩌면 그 자신조차 자신이 이런 말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할 뿐,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를 수도 있을 겁니다. 그의 설교에서 이 특별한 의식적 목적을 제거하고 나면 무엇이 나타날까요? 그것은 설교를 준비하기 전 벌써(처음부터) 그에게 있었던 겁니다. 설교보다 더 근원적인 메시지라고 해야 할 겁니다.
심리학은 개인이 인생을 통해 직면한 물리적 상황에 대응하며 축적해 온 정신의 지속적 과정이 있음을 밝혀 주었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통합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자아(自我)를 형성합니다. 사람이 겉으로 무슨 말을 하든지 그 속에는 그것과 상관없는, 혹은 상관이 있든 없든 그것대로 의미를 지니는 자율적인 정신의 구조가 있습니다. 어둠 속의 원시인처럼 자아는 그때그때 자신을 지키기 위한 여러 재료들로 내면의 아성을 구축해 왔습니다.
칼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은 이렇게 형성되는 구조들을 '배열'이라 표현했습니다. 사람이 배열된다는 것은 그만이 가지는 고유한 방식으로 반응하게 되는, 오랫동안 준비해 온 정신의 과정을 의미합니다. 배열은 무의식에서 이루어지는 자발적 과정이기 때문에 마음먹기에 따라 중단될 수 없습니다. 가령 우리가 괴로움에 빠진 동료를 위로하거나 격려할 때 마음을 굳게 먹으라거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한들 단순히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배열된 정신의 구조를 콤플렉스(complex)라 합니다. 즉 각각의 콤플렉스들은 마음속에서 서로 다른 구조를 가진 자율적 힘으로 감춰져 있습니다.
표면적인 말과 행동만으로 그 사람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이 아닙니다. 그러면 누구를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말할 것 없이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그리스도 예수님의 복음을 믿어야겠죠? 당나라의 선승 임제의현(臨濟義玄: ?~867)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라" 가르쳤다고 합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누군가를 본받아 답습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를 능가하려는 열망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즉 하나님과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다는 말은 사람과 사람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합니다.
기독교든 무엇이든 본질에서 벗어나 부패하지 않으려면 어디까지나 이 원리를 고수해야만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복음을 깨달았으므로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은 곧 하나님 말이다"고 절대로 주장할 수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순간 그는 벌써 하나님의 복음에서 떨어져 거기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은 그때부터 자기변명이 되거나 의분이 되거나 야망이 됩니다. 교회와 강단이 존재하는 의의는 항상 이런 부패의 단초를 환기해 주기 위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3.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 17:20-21)
하나님의 왕국은 미래적으로 언젠가 올 것이 아니다. 또 가시적으로 '이것이다, 이쯤이면 된다'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현재적으로 너희 안에 있다. 여기서 '너희 속'이라는 말은 '마음'을 가리키기도 하고 '현실의 상황' 혹은 '진실'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곧 마음과 현실의 진실, 거기에 하나님나라(복음의 진리)가 임하십니다. 우리가 복음의 설교를 듣고 그 원리를 이해할 때, 그것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나를 향한 것이라는 점을 납득할 때,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신께 바치는 제물(도구)로 삼아 그의 나라와 그의 의에 참여하게 됩니다.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 (시편 112:4)
중요한 것은 정직(진실)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교회는 정직에 기초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증거가 이런 것입니다. 가령 어떤 잘 믿는다는 신자들은 모든 사안을 종교적 감탄으로 꾸며 대기에 바쁩니다. 어떤 사람들은 모든 상황을 생각도 해 보기 전에 하나님에 대한 감사로 대신해 버립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모든 고통을 당사자의 죄에 대한 정죄로 환원해 버립니다. 이런 모습들은 믿음이 좋은 것 같지만 내면적으로는 자신이 진실에 전혀 참여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 줄 따름입니다. 숨겨진 어떤 정직에 직면하기를 꺼려하기 때문이겠지요? 대상과 거리를 두기 위한 회피의 수단으로 재빨리 모든 것을 좋다고 하거나, 괜찮다고 하거나, 감사하다고 하거나, 주님의 뜻 혹은 사단의 음모라고 해 버리는 겁니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누구나에게 콤플렉스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칼 융이 말한 것처럼 콤플렉스가 그 사람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릅니다. 말로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온갖 '자기 의'로 행동하는 겁니다. 곧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면 그 죄인이 된 그 상황에서 복음이 나와야 합니다. 개인뿐 아니라 교회, 교회뿐 아니라 사회를 조직해 나가는 원리도 그러한 배려에서 복음적으로 구현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세상 속에서 과연 복음을 구현하며 전파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는 자신의 극히 일부인 의식적 생각을 아무런 성찰 없이 전체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지·정·의를 자기의 전부라고 굳게 믿어버리는 무지한 신념 때문에 무의식적 콤플렉스는 오히려 견고해집니다. 이런 사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선입견 자체가 잘못된 것이기 쉽고, 모처럼 하나님 말씀을 들었더라도 자기 입맛에 맞게 곧바로 변형해 버리게 될 겁니다.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야고보서 1:23-24)
하나님의 말씀일지라도 읽는 사람 자신의 무의식적 의도에 의해 이미 설정된 도구로밖에 기능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섬겨 주는 것으로 여기는 거지요? 딴생각에 사로잡혀 거울을 보고서도 그 모습을 곧바로 잊어버리는 겁니다. 무슨 말을 들어도 접수되지 않는 사람은 들으려고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도 목적은 있습니다. 오직 그 하나의 목적을 위해 모든 것을 동원하고 이용하고 희생시키는 겁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의 내면의 현실과 그것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과 그 사람은 어떤 관계에 있게 되는 것일까요?
4.
우리는 자주 설교자들의 유창하고 빼어난 설교와 그들의 삶이 보여 주는 차이에 놀랍니다. '어떻게 저토록 은혜 있는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이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지', '어떻게 저런 거짓말로 일관하는 비열한 사람이 그토록 호소력 있는 설교를 할 수가 있지' 합니다. 그러나 그럴 수있는 겁니다. 가능한 겁니다. 배우들을 보십시오. 양심에 짓눌려 괴로워할 거라고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주님을 위해 일하다 보니 사단들에게 핍박을 받는다고 엄살을 부릴 겁니다. 항상 그렇게 준비되어 있으니까요. 문제는 여전히 그런 자들을 보통 사람과는 구별된 설교자로, 하나님의 종으로 높여 놓고 특수하게 바라보는 착한 성도들입니다. 언제인들 그런 초점을 벗어난 설교자가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교회에는 그런 부류들을 걸러 낼 분별의 능력이 없어졌습니다.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는 "가장 어리석은 대중을 상대로 하는 저자가 가장 많은 독자를 거느린다"고 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설교자들이 강단을 점령해 버려서 교회와 복음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이 만연하게 됐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교회를 폐쇄하게 하고 교회 밖의 대중들이 복음을 듣고 교회 안에 들어올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특히 탁월한 효과를 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런 메시지를 전하는 설교자들이 지닌 폐쇄성 때문입니다. 폐쇄되어 있는 채로 그것을 고수하게 만드는 고립된 콤플렉스의 역동이 거기에 있습니다. 아마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 폐쇄성 자체를 못 견뎌 하면서 거기서 벗어나려고 노력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공부를 하는 대신 그 자신의 폐쇄성을 무기화했습니다. 남보다 무식한데다가 특별히 용감하기까지 합니다. 흡사 코미디언이나 배우와 같은 그런 용기(?)를 대중들은 카리스마라고 불러 주며 호응했던 겁니다. 왜 그랬을지 이해가 되실 겁니다.
오늘날 특히 대형 교회들은 많은 문제점들을 항상 지적받고 있으면서도 하나도 바꾸려 하지 않는 완고하고 강력한 신념의 성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들의 콤플렉스는 의식의 통제를 거의 받지 않으며, 모든 영역에서 독립된 이물체(異物體)처럼 거대해지고 있습니다. 마치 건강한 몸을 파괴하는 바이러스나 암과도 같이 말입니다.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5:6) 그러나 어떤 의미로 그들은 그것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콤플렉스는 오랫동안 그것을 목적으로 준비되어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말하는 근원적인 성찰과 획기적인 의식의 변혁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자기 부인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서는 십자가도 집단 콤플렉스에 의해 전혀 다른 의미로 변질되기 때문입니다. 회고해 보건대 기독교 역사상 위대한 스승들도 그들의 발호는 막을 수 없었던 겁니다.
이것은 콤플렉스가 강한 의지로 억압할 수는 있지만 제거될 수는 없으며 적절한 기회가 오면 본래 있던 힘을 통해 다시 등장한다는 심리학적 이론과 맞아떨어집니다. 어떤 보고에 의하면 콤플렉스의 활동 곡선은 물결 모양의 특징을 지니고 있고, 한 파장은 몇 시간 며칠 혹은 몇 주에 걸쳐 지속된다고 합니다. 이런 콤플렉스의 역동에 의해 일어나는 정신 현실을 '의식의 해리(解離)'라 부릅니다.
키에르 자네라는 프랑스의 정신병리학자는 한 사람에게서 4중·5중으로 분리된 인격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융 기본 저작집>) 곧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에게 의식적 주인이 없는 겁니다. 그의 내면에는 각각의 고유한 성격과 기억이 있는 인격의 조각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상대적으로 독립해 존재하며 각축을 벌여서 수시로 정권을 교체합니다. 곧 고도의 자율성을 가지고 있어서 의식과 상관없이 저희들끼리 그 사람을 이리저리로 끌고 다니는 겁니다. 이러한 학술적 보고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환기해 주는 걸까요? 그런 건 다 정신없는 장애인들의 이야기라고 치부해 버릴 수 있는 걸까요?
많은 가정이 붕괴되고 인간관계가 파산하고 사람들이 자살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그런데도 국가와 사회는 "아, 몰랑"하면서 자기 욕망을 채우느라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물론 교회도 그중 하나입니다. 방송이나 미디어를 보면 더욱 가관입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정신병리학적 콤플렉스의 역동으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이러한 때 우리는 어떻게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막 9:48)는 '헬조선'이라 불리는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이와 같은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말과 말, 욕망과 욕망, 거짓과 거짓들의 자율적인 역동 가운데서 어떻게 능력 있게 생명 질서를 회복하게 하는 걸까요?
5.
건강한 사회와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근원적 원인은 이러한 개개인들의 콤플렉스들의 역동입니다. 콤플렉스는 '갑'을 잔인하게 만들고 '을'을 비참하게 만들며, '가진 자'를 우쭐대게 만들고 '못 가진 자'를 위축하게 합니다. 불행한 자를 연속적으로 불행에 빠뜨리고 재난당한 자를 계속 재앙에 떨어뜨립니다. 잔혹한 자들을 계속 잔혹하게 만들고 위선자들을 더욱 위선으로 몰아갑니다. 탐하는 자들을 더욱 탐심으로 부추기고, 갈등하는 자들에게 더욱 갈등하라 불 지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가 쌓이듯 파괴는 서서히 이루어지고 파국도 차근차근 준비되고 있습니다. 결정적인 날이 오면 그때는 이미 늦은 겁니다.
삶이 파괴된다는 것은 모든 관계의 단절과 파행과 파국을 말합니다. 단지 개인의 내면이나 인간관계에 그치는 걸까요? 가장 두려운 것은 영혼의 구원, 진리의 문제,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기초가 바닥부터 흔들리는 이 마당에 의인인들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시편 11:3) 콤플렉스란 온전한 전체에서 떨어져 나간 정신의 조각들입니다. 콤플렉스로 사는 사람은 마찬가지로 온전한 완전성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파편입니다. 한 개인, 한 가정, 한 교회, 한 국가가 이런 식으로 구원에서 떨어진 파편 조각으로 파괴되고 있습니다. 누가 일깨울까요? 누가 바로잡을까요? 일이 이 지경인데도 지금 교회와 교회의 지도자들이 관심을 두고 벌이는 딴전들을 보십시오.
성도들은 어떻습니까? 고립된 섬으로 밀려나고 있으면서도 아직은 아무렇지 않은 척, 서로 사랑하는 척,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인격을 가진 척 배우들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배우들에게 열광하고 교훈은 없는 드라마에 열광하듯 복음의 본질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역사는 왜 이렇게 하나님과 복음의 진리에 위배하게 진행되는 것일까요? 맞습니다.
콤플렉스의 원인은 도덕적 갈등 즉 '위배(거리낌)'에 있습니다.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해야만 하는 일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이러한 도덕적 위배와 갈등이 일어난 이유는 우리가 자신의 실존적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불가능한 데 있었습니다. 즉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가짜 자기를 만들어 온 결과입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사도 바울의 이 강력한 권면은 복음을 전제로 했을 때만 가능해지는 태세입니다. 단순히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라는 권면이 아닙니다. <공동번역성서>는 이 문장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늘 깨어 있으십시오.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씩씩하고 용감한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고 모든 일을 사랑으로 처리하십시오." 그러나 뭔가 부족합니다. 원문의 의미를 살려서 다시 풀어본다면 "깨어나십시오. 믿음 안에 굳게 서십시오. 강력함으로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의 모든 것이 사랑 안에 있게 하십시오"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 '남자'란 남성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온전한 인격'으로서의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곧 "먼저 인간이 되어라" 그런 말입니다. 그러나 그러려면 강력함을 갖추어야 한다는 겁니다. 강력함으로 먼저 사람이 돼라. 어떻게요?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사랑(복음의 진리) 안에 있게 할 때 가능해집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한일서 4:18)
하나님의 말씀은 내면의 빛을 비추어 우리의 실존적 고통의 구조(위배의 구조)를 자각하게 합니다. 인식하면 그때부터 정면으로 직면할 수 있는 용기가 생깁니다. 직면이 두려워 핑계 대며 회피해 온 어린아이 상태에 맞서서 책임지는 어른으로 성장합니다. 목사와 교회가 그것을 도와주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이 해야 합니다. 그게 각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신 인생의 사명입니다. 타인을 돕거나 사랑한다는 것은 언제나 그 다음의 일입니다. 여러분에게 거창한 사명은 없을지라도 누구나 자기 일상의 사명은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깨어나야 합니다.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지금 교회와 성도의 최우선의 사명은 복음의 본질을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복음을 살려야 교회도 살고 성도도 삽니다. 여러분의 직관을 믿으십시오. 복음과 교회의 미래를 위해 합당치 못한 역기능 공동체들에서 과감히 떠나야 할 때가 왔습니다.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졌기 때문입니다. 정직히 말씀드립니다. 저는 과거에는 대형 교회가 좋은 신자를 기르는 못자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서 배워서 성숙해져 세상으로 흩어지면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그런 경우를 본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형 교회는 오히려 작은 공동체와 개인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입니다.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 하나 나오지 않는 폐쇄된 콤플렉스입니다. 세습이 됐든 건축이 됐든 욕망한 것은 어떻게든 어떤 방식으로든 밀고 나가려 합니다. 그것이 저처럼 비신자를 향한 복음 전도자에게 얼마나 큰 폭거이고 폭력인 줄 깨닫지 못합니다. 교회성장학은 더 이상 신학이 아니고 대형 교회는 더 이상 복음의 터전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말 그대로 반(反)복음의 온상일 뿐입니다. 결단하십시오. 깨어 복음에 굳게 선 사람으로서 강력하십시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딤후 3:12)
천정근 / 열린 교제와 깊이 있는 말씀의 공동체를 지향하며 그리스도의 복음 운동에 주력하는 자유인교회 목사. 산문집 <연민이 없다는 것>(케포이북스, 2013) 저술. 모스크바국립대학과 동 대학원에서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고.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목회학 석사(M.div.) 과정을 졸업했으며, 한독선연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논문으로 <1880~90년대 똘스또이 중편에 나타난 종교 �
Copyright by 본 설교신문 자료를 다른사이트로 무단복사 절대금합니다(추적장치가동)/설교신문//이새롬/사업자번호220-09-65954/서울시강남구도곡로1길14삼일BD1121호/통판:서울강남01470/문자로 질문바람010-3761-0691/E-mail:v91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