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있는 여호와의 소리를 듣는 사람
2002-09-04 16:21:30


시편29:3-9절
신라 문무왕 때에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는 대나무로 만든 피리가 있었다. 그 피를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병이 나았으며, 가물 때는 비가 내리고 비가 많이 올때 그 피리를 불면 개이고, 바람이 자고 파도가 가라앉았다고 합니다. 이웃 나라 왕이 군사를 일으켜 치려다‘만파식적’이 두려워 중지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삼국유사’에는 이 피리가 낮에는 둘로 갈라졌다가 밤에는 하나로 합치는 한줄기 대나무로 만든 것으로 대나무가 갈리고 합치는 이유를 묻는 신문왕에게 대답한 용(龍)의 말이 있습니다“이는 한 손바닥을 치면 소리가 나지 않지만 두 손바닥을 치면 소리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대나무가 합쳐져야만 소리가 나니 성왕(聖王)께서 소리로 천하를 다스릴 징조입니다. 피리로 만들어 불면 태평할 것입니다”.


동양의 무속신앙에 젖어 있는 사람들은 자연을 신으로 생각하고 숭배합니다. 고목이라든지, 큰 돌, 풍랑이는 바다등 그 속에 혼령이 있다고 믿는 정령사상(精靈思想)을 신앙의 근거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들은 자연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섬김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번개가 친다거나, 풍랑이 인다거나, 천둥 소리가 들리면 자연이 성낸 소리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성도들에게는 자연은 결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일 뿐입니다. 자연은 오히려 인간의 삶의 터전인 동시에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거룩함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자연이 발하는 소리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발견하게 되고 오히려 기쁨으로 찬양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소리는 두려움의 소리가 아니라 위엄있는 소리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농아들도 얼마든지 여행할 수 있고, 일상생활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농아들은 귀로는 비록 듣지 못하더라도. 상대편의 몸짓이나 얼굴표정이나 말하는 입술의 모양을 보면서 눈으로 보고 든는 일까지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사는 수화로, 글로서, 아니면 손짓 발짓으로 자신의 생각을 상대에게 전달하기도 합니다. 짐승들도 자기들끼리의 의사 소통의 방법이 있다고 말하는데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어떤 사람은 소설로, 수필로, 시로서 나타내기도 하고,음악, 미술, 춤, 연극, 드라마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어떤 상징물로 자기의 뜻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케릭터’산업이 곽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자치단체마다 독특한 케릭터를 만듬).
과학의 발달로 인공위성을 통하여 순식간에 세계의 소식들을 소리로 들으며, 화면으로 볼 수 있는 시대입니다.
요즈음 헨드폰의 소리도 16화음에서 40화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헨드폰 하나로 다양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여러 소리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러나라, 조사하라, 녹음이 되어있다 아니다. 서로 물고 뜯는 정치가들의 소리. 얼마있지 않으면 한표 달라는 소리도 들어야 합니다. 자신만이 옳고 남은 다 나쁘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자동차의 소음에다가 . 바가지 끊는 아낙의 소리까지. 가정불화의 소리, 죽은자의 슬픔을 달래는 통곡의 소리와 흐느끼는 소리. 거짓과, 아첨과, 남을 비난하는 소리는 들려도, 옛날의 아름답게 들리던 새의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새 박사 윤무부 교수의 새소리를 녹음한 테잎을 친구로부터 선물로 받았는데 답답할 때 들으면 마음이 가라않기도 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소리, 사람의 소리는 우리의 삶에 참고는 될 수 있어도 우리에게 닥쳐오는 모든 삶의 근본적인 문제는 결코 해결 할 수 없습니다. 음악의 소리가, 악기의 소리가 아무리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용기와 희망을 안겨다 준다고 할지라도 사람의 소리는 세상의 소리로는 인간의 근본문제인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습니다. 죽음의 문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있을 심판의 문제도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사람의 소리로는 그 어느것 하나 해결하지 못합니다.

고통과 시련, 아픔과 환란, 미움과 질투, 거짓과 허세, 온갖 부정과 부패 속에서 허우적 거리는 인생들의 모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위엄있는, 힘있는 소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 소리가 바로“여호와의 소리”입니다.
힘있는 여호와의 소리를 듣는 사람마다 변화됩니다.
어떤 문제라도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참된 평안과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가장 값지고 보람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힘있는 여호와의 소리'를 듣을 수 있는 사람은 복있는 사람입니다. 행복한 사람입니다. 가장 귀한 사람입니다,.

세상의 소리는 들으면 들을 수록 짜증나고, 기분이 나쁘지만, 여호와의 소리는 들으면 들을 수록 힘이 납니다. 우리 몸에 양약이 됩니다. 나의 삶을 아름답게 하고 기름지게 만듭니다. 새롭게 합니다. 희망이 솟아나게 합니다.

다윗은 우리에게“여호와의 소리를 들으라”는 말을 무려 일곱 번이나 거듭하고 있습니다(3-9절). 우리가 기도할 때도 여호와의 소리를 듣기 위하여 귀를 기울이며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도 여호와의 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우려 들어야 은혜가 됩니다. 칭찬의 말 보다 권면의 말은 귀담아 들어야 내가 삽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도 기도를 통하여 여호와의 소리를 듣도록 귀를 기울려야 합니다.

1. 자연을 통한 여호와의 소리가 있습니다.
다윗은 폭풍이 불고 있는 자연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만물을 통치하고 계심을 보게되며 자연이 발하는 소리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발견하여 찬양을 돌리고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폭풍우를 비록한 자연 현상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설명하면서,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위엄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주관하에 움직이는 자연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어떠한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까?

1) 하나님의 모습을 계시하는 소리이다.
자연은 분명히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으므로 땅의 깊은 곳과 산들의 높은 곳, 바다 육지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창조하신 자연을 보면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권능과 선하심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2) 악인을 두렵게 하는 소리이다.
죄를 지으면 벼락을 맞는다는 옛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과학적으로는 증명할 수는 없지만, 심리적인 면에서는 수긍이 갑니다. 보통 벼락이 치고 천둥이 울리면 죄를 지은 사람들은 혹시나 벌을 받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워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처럼 여호와의 소리는 힘있고 위엄이 있기에 우리들 마음에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때로는 자신이 죄인임을 돌아보게도 합니다.

칼빈은 본문을 주석하기를“여호와의 소리가 교만한 마음의 소유자들을 공포로 후려치며 부드러운 책망으로 후려친다”고 해석했습니다. 이처럼 여호와의 소리는 악인을 두렵게 하는 소리입니다.

3)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소리이다.
하나님은 홀로 영광 받으시기에 합당하시 분이십니다. 세상의 모든 소리는 여호와를 위한 찬양의 소리입니다. 자연의 모든 소리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찬미하는 소리와 같이 우리들도 온 몸과 입술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과 인간이 하나되어 한 마음으로 우렁차게 드리는 찬송을 기쁘게 받으실 것이며, 여호와는 위엄있고 힘있는 소리로 우리에게 화답할 것입니다. 오늘도 지친 영혼을 향하여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기도의 응답으로 들려주는 소리가 있다.
기도를 열심히 드리는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가 어느날 새벽기도에 나와서 다른날 보다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 은말한 중에“내 아들아, 네 소원이 무엇이냐? 네 문제가 무엇이냐”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된 그는 깜짝 놀라서 그만 기절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날마다 남보다 더 열심히 기도에 힘쓴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기절해 버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그는 습관적으로 기도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평소에 기도를 드리면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여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기도를 다 들으십니다. 그리고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기도하십시요. 여호와의 소리에 귀를 기울려 보십시요. 그러면 우리를 부르시는 응답의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3. 말씀의 은혜로 들려주는 소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배울때 그리고 설교를 들을 때 성령께서 들려주시는“여호와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인격체요, 하나님 자신입니다(요1:1) 따라서 성도는 그 말씀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에 따라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의 소리는
1) 교만하자를 꺾으십니다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라고 하였습니다. 교만한 자는 어떤 자입니까? 하나님을 향하여 굽힐 줄 모르고 꼿꼿이 서 있는 자 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혼자 서 있을 수 있다는 당당한 자입니다.

교만하자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위하고 사람을 위하나 속으로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이웃을 멸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들을 말씀으로 꺾어버리십니다. 벼락으로 백향목을 꺾어버리듯이 꺾어버립니다.

교만은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죄악입니다.
모든 악은 교만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그냥 버려두지 않습니다. 그들을 꺾으시되 말씀을 통하여 꺾으십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바울입니다.

2) 새 생명을 주십니다.
‘그 나무를 송아지같이 뛰게 하심이요 레바논과 시룐으로 들송아지같이 뛰게 하시도다’ 이는 모든 인생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나무가 송아지같이 뛸수 없고 레바논 산과 헬몬 산이 들송아지같이 뛸 수 없는 것처럼 죄짐에 눌려있는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뛰게 하십니다. 영적 침체에 빠져 헤어날 줄 모르는 자들에게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말씀으로 생명을 불어넣으십니다. 말씀으로 눈먼 자는 보게하시고, 앉은뱅이는 일어서게 하시고, 귀머거리는 듣게 하십니다.

그리고 죽은 자를 살리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바로 이 일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마11:5) 그 분은 이 땅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지금도 말씀을 통하여 새 생명을 불어넣고 계십니다.

3) 말씀의 소리로 회개케 합니다.
‘삼림을 말갛게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자기의 죄와 허물을 가리려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의 본능을 여지없이 깨뜨려버리십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찾아오는 분이십니다.

찾아오셔서 말씀으로 인간의 허물을 덮고 있는 가식의 옷을 벗기시고 새로운 옷을 입혀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있는 그 모습 그대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돌아온 탕자의 아버지처럼 우리에게 새 옷과 새 신을 신기실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말씀의 소리는 교만을 꺾으시고, 새 생명을 주시며, 회개케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 속에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행하면 사는 길이 열립니다.
능력을 받습니다. 말씀의 소리를 귀담아 듣고 행함으로 축복된 생애를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3절에“여호와의 소리가 바다 위에서 들린다 영광의 하나님이 천둥을 치시니 그 음성이 망망한 바다 위에 메아리 치는 구나”(현대인 성경)라고 번역했습니다. 천둥번개와함께 폭풍이 몰아칠 때. 파도가 높아지면서 거대한 힘을 과시하게 되는데 그때에 누가 그 광풍과 성난 물결을 잠재울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마가복음6:45-52절에-예수님께서 생선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5천명의 군중을 먹이셨습니다. 이적의 떡을 얻어 먹은 군중들은 열광적으로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려 하였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고생하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기대했던 메시야로 생각하고 왕으로 세워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하려 하였습니다. 아마 예수님의 제자들도 군중의 요구에 동조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군중들과 제자들을 재촉해서 건너편으로 보내시고 자신은 홀로 산으로 가신 것입니다. 그런데 날이 저물어서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이 탄 배가 갈릴리바다 가운데에 있었고 갑자기 일어난 바람 때문에 배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제자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배는 계속해서 심하게 흔들리고 거센 물결은 뱃전을 강타 하면서 배 안으로 물이 들어왔습니다. 이제는 저들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포기할 수 밖에 없다고 여겼습니다. 아예 체념해 버렸습니다. 이때 풍랑 사이로 저들을 부르시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험난한 인생 길에는 예기치 못했던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종종 환난의 광풍. 시련의 풍랑이 몰아쳐 올 때가 있습니다. 갑자기 하던 일이 꼬이기 시작하더니 위기로 변하고, 불안과 공포로 몰아가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이 우리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듭니다. 불안과 공포로 몰아갑니다. 결국 더큰 문제는 우리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내적인 문제입니다.

오늘도 혹시 가슴을 치며 통곡할 수밖에 없는 고통스러운 일이 있습니까?. 그 일로 혈압이 오르고 분통이 터지는 비통한 일이 있습니까?. 그래서 분한 마음으로 마음이 괴롭습니까? 여호와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 말라”
너의 가정은 잘 지내고 있느냐? 네 자녀들은 잘 지내고 있느냐? 네가 하는 일들이 힘드느냐?. 너의 건강이 나빠졌느냐? 마음에 상처가 있느냐? 고민이 있느냐? 주님은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고생하는 인생의 배에 오르셔서 바람과 성난 물결을 잔잔케 하십니다. 이와같이 그의 위엄과 힘있는 소리 앞에서는 모든 것들이 순종합니다.

이 시간 성경을 통해서 들려주시는 여호와의 소리를 귀담아 듣고, 설교를 통하여 들려주시는 여호와의 위로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온갖 방법으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여호와의 생명력 있는 소리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희망의 소리, 축복의 소리, 은혜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진심으로 마음의 풍랑이 잠잠해지고 참된 평화와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사시기를 원하십니까? 여호와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모세가 떨기나무에 불이 타는데 나무는 타지 아니하는 것을 보고 두려워할 때“나다”하였습니다. “스스로 있는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냈다 하라”분명히 가르쳐 주었고. 하나님의 소리를 들은 후 그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9장에 보면.
사울이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해서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홀연히 하늘에서 강한 빛이 그를 두루 비칠 때 사울은 그 자리에서 거꾸러지면서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 뉘시오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 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다메섹 도상에서 여호와의 소리를 들은 사울은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핍박자 ‘사울’이 변하여 복음 전도자 ‘바울’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모르고 살던 강퍅한 사람들도 여호와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교만한 사람도 여호와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마음이 굳은 사람도. 마음의 문이 닫혀진 사람도, 여호와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여호와의 소리를 들으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나 혼자만 여호와의 소리를 듣지 말고 하나님을 멀리하고 있는 교만한 사람도 여호와의 소리를 듣게 해야 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과시하는 거만한 사람도 여호와의 소리를 듣게 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소리를 듣는 사람마다‘사울’로 살던 삶이 변하여‘바울’의 삶과같이 살게 될 것입니다.

본문6절에는 마음과 생활이 얽매여 있는 사람도 여호와의 소리를 들어야 할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나무를 송아지 같이 뛰게 하심이여 레바논과 시룐으로 들 송아지같이 뛰게 하시도다”

여기서‘그 나무’는 백향목을 말하는데,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는 돌아다닐 수 없습니다. 송아지같이 뛸 수 없습니다. 자유스럽지 못한 모습으로 항상 매여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소리를 들을 때 그 백향목나무가 송아지 같이 뛰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말라기4:2절에“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치료하는 광선은 곧 여호와의 소리,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4:12)라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곧 치료하는 광선입니다.

여호와의 소리는 진리입니다. 치료하는 광선입니다.
우리를 얽매고 있는 모든 죄의 사슬을 끊어버리는 능력이요 권세입니다. 여호와의 소리를 듣는 사람은 가뭄으로 시들었던 초목이 생기가 나듯이 생동감이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이 공허합니까?. 허무합니까? 텅빈 느낌입니까? 허전 합니까? 외롭고 쓸쓸합니까? 여호와의 소리를 들으십시요.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텅빈 가슴을 다 채울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소리만이 심령의 창고를 가득 채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소리를 듣는 사람만이 가슴에 가득 차는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음의 부요함도 얻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소리를 들읍시다.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여호와의 소리를 들읍시다
우리의 마음에 참된 평화와 기쁨을 주는 여호와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여호와의 소리는 우리로 하여금 힘있는 자 되게 하십니다. 능력자로 만듭니다. 사명을 능히 감당하게 합니다.

앞으로 전진하는 자 되게 합니다. 승리자가 되게 합니다.
여호와의 소리를 들으십시요.
시간시간 주 앞에 나와서 기도를 통하여 들으시고, 말씀을 통하여 여호와의 소리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만사를 제쳐놓고 우선적으로 여호와의 소리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의 소리를 듣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한 주간도 여호와의 소리를 들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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