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일의 신앙을 회복하자 2002-09-04 16:18:16 2002. 3. 24 누가복음13:31-35 조선조 9대 성종은 포악한 왕비 덕택에 얼굴을 할퀴어 상처를 입는등, 도무지 왕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한번은 참다 못해 왕이 왕비를 축출하기 위해 어전 회의를 열었다. 이때 허종이라는 대신도 이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입궐하던 도중 지혜로운 누님을 방문하여 자문을 구했다‘장차 왕비를 내쫓는 일이 사약을 내려 죽이는 일이 될 것이요, 그의 아들 연산군이 즉위하면 왕비를 쫓아낸 대신들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니 입궁하는 중에 다리에서 낙상을 하여 어전 희의에 빠지도록 하게’누님의 말이었다. 과연 그대로 대사화가 일어났으나 허종은 무사하였고 후에 허종이 빠진 다리를 종침교(종교)라 칭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들 가운데 자기의 목표를 위하여 나름대로 길을 가면서 온 심혈을 기울려 노력하는 사람을 우리는 종종 봅니다. 그 노력의 결실을 보면서 뿌듯한 보람을 느끼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세상에 아름다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그처럼 귀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헤롯이 자기를 죽이기 위해 벼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예수님은 결코 피하거나 다른 길을 가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헤롯이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고 또 바리새인들이 협박하더라도 오늘과 내일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고치다가 사흘이 되면 모든 일을 마칠 것이라고 헤롯에게 전하라고 하시면서 선지자는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다고 당당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주는 고난주간입니다. 이번 고난주간에는 과거와 같이 형식적으로 보내지 말고 주님께서 왜 고난의 길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죽음의 길을 선택하셨는지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주님 자신을 위한 고난이 아니고 우리를 위한 고난이었기에 우리 모두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한 주간 새벽예배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우리가 그런 일을 행하지 못한다면 어찌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으며, 주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시는 분이 아니라 중심을 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습을 주님께서 보시고 인정하시고 축복하실 만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라며 성숙한 신앙인 다운 모습으로 주님께 보여지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습은 이미 하늘 나라의 행위록에 기록되어 있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너는 저 세상에 살면서 무엇하다가 왔느냐”라는 물음과 함께, 내가 대답하기 전에 이미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행한대로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살다가 내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일 이라는 시간이 있기에 성도는 항상 내일이라는 시간을 생각하면서 말하고 행동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 갈 길을 가야 하리니”라고 하신 말씀과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하셨는데 제 삼일의 의미를 말씀드리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이 정하신 섭리와 계획 안에서 산다는 말입니 다. 오늘 우리가 숨쉬고 살아가는 모든 일들이 내가 시간을 정하고 내가 계획한 대로 살아가는 것 같아도 사실은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정해 놓으신 일정표대로 살아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갈릴리 베레아 지방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계시던 중이었습니다. 그때 헤롯 왕이 바리새인들과 결탁하여 그 힘으로 그를 공격하면 예수님께서는 무서워 벌벌 떨면서 도망갈 줄 알았습니다. 어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하는 말이헤롯 왕이 당신을 살해하려고 하니 헤롯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피신하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헤롯이 예수를 죽이려고 한 것은 그가 혁명을 일으킬까 두려웠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자기가 죽인 세례 요한이 에수로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이런 사실을 가르쳐 준 것은 아마도 헤롯의 사주를 받았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헤롯은 그의 지역에서 예수를 쫓아내야 마음이 편안할 것 같아서 바리새인들을 시켜서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사실 로마의 앞잡이 노릇하던 헤롯을 미워했던 바리새인들도 예수를 처치해 버리는 일에는 그와 의기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악한 자들은 언제나 자기들의 유익을 위해서는 타협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피할려고 하지 않고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헤롯과 빌라도와 바리새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 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헤롯이 주님을 쫓아낸다고 쫓겨가실 분이십니까? 살기등등하여 헤롯이 죽인다고 죽임을 당할 분이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움직이시는 주님께서 그런 말에 겁을 내실 분도 아니십니다. 사랑하는 옥포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계획과 섭리 안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계획하는 어설픈 길을 가는 자가 아니라, 비록 힘들고 어렵더라도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겟세마네 동산 골고다라도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모름지기 하나님께서 정하신 계획표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세상일에 바빠서 이리저리 뛰어 다느니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귀한 일들을 뒤로 미루거나, 주신 사명을 저버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속에 동참하는 하나님의 사람인 성도가 아닙니다. 때로 우리는 내가 편리한 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은 내 생각, 내 고집대로, 나의 편리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뜻에 따라 주님이 정해 놓으신 계획표에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에게 축복의 길이요 영광의 길이요 사명감당의 길입니다. 주님의 생애는 오늘도 아버지의 뜻이요, 내일도 아버지의 뜻이요, 모레도 아버지의 뜻대로 움직이는 그런 철저한 순종의 삶이었습니다. 사실 그 길은 죽음의 길이요, 고통의 길이요, 수치를 당하는 길어였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은“아멘”하시면서 자원하여 고난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어렵고 힘들지만 아버지의 뜻이라면 무조건“아멘”합시다. 오늘도 내일도 아버지의 뜻이라면“아멘”하며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일에 나를 쓰시려고 옥포교회에 보내셨다고 믿으시면 주님의 뜻에 따라 복종하겠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헤롯의 계회대로 움직이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프로그램과 시간에 따라 행동하셨던 주님의 모습을 본받아 우리 모두 나의 뜻과 생각을 버리고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주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예수님만이 가야할 길이 있음을 말합니다. 32절에“오늘과 내일 내가”라고 했으며, 33절에서는“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만이 가야할 길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걸어가야 할 사명의 길이란 말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가 가야할 사명의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을 갈 때에는 누가 옆에서 도와줄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담대하게 그리고 자신이 먼저 기도의 무릎을 꿇으면서 걸어가야 할 사명의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 속에는 자기 사명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사명에 대한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확신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성도만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는 성도만이 지금의 현실이 고달프고 힘들어도 천국을 사모하면서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천국이 이 세상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아름답고 멋진 곳이라는 확신이 있는 성도만이 인내하며 주님의 재림을 기다립니다. 이 세상에서 누리는 부귀영화는 잠시 뿐이요 순간적이라고 믿는 자의 삶은 천국에서의 삶은 영원하다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물질을 쌓아두지 않고 천국에서 영원토록 부요한 자가 되기 위하여 오늘도 최선을 다하므로 천국 창고에 가득 쌓아둡니다. 자기 사명에 대한 확신이 있는 성도만이 어떤 환난과 핍박이 와도 굴하지 않고 무릎으로 영문밖의 그 길을 힘차게 걸어갑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확신으로 사명자의 삶을 살아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제 삼 일의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한 교리가 그럴 듯하고 매력적인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교리가 참된 것인가 그릇된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한 목적지를 향해 가고자 할 때, 우리는 그 길이 편안하고 안락한 길인가 아닌가에 관심을 기울이지 말고 그 길이 올바른 길인가 아닌가에 더 관심을 기울려야 한다(헤어) 인생의 길에는 갈래 길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넓고 편안하고 행복하게 보이는 유혹의 길이 많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손짓하며 함께 손잡고 세상을 즐기면서 함께 가자고 하는 육신의 길이 우리 앞에 매일 같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가야할 길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며 비웃어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 주신 내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생명의 길이요, 좁은 길이요, 영광의 길이요, 주님가신 십자가의 길입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과 저에게“주저하지 말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누가복음9장23절에서“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자기를 부인하는 고통의 길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날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힘든 길입니다. 그러나 이 길이 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길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정해 놓으신 구원의 길, 축복의 길인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의 길이요 축복의 길인 이 신앙의 길에도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때로는 함정도 있습니다 핍박도 있고, 죽음도 있으며, 고난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앙의 길에도 독선과 위선도 있습니다. 저마다 자기가 진리요, 정통이요, 능력의 종이라 말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어디로 가야 좋을지 몰라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디를 가야 하나님을 더욱 잘 믿을 수 있을지 갈팡질팡하며 방황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자신이 가야할 길을 예측하지 못하여 가슴 아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살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제 삼 일의 신앙은 바로 우리가 가야할 길, 내가 살아야 할 마지막 십자가의 길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오직 나만이 길이요, 오직 나만이 진리요, 오직 나만이 생명이니 예수님 자신에게만 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14:6). 그렇습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실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오직 한 길, 진리와 생명의 길인 십자가의 길을 피하지 말고, 남에게 지우려 하지도 말고, 내 몫에 태인 십자가를 자신이 짊어지고 나의 길을 용기있게 걸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인생길에는 온갖 성공과 실패의 길이 많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성공의 길은 사업의 성공, 학문의 성공, 자녀교육의 성공 등 우리가 말하는 축복의 길이 많습니다. 그런데 세상적인 그런 것 만이 성공의 길이 아닙니다. 지금은 그 길이 성공의 길이요, 모든 사람들이 흠모 하고 부러워하는 성공과 승리의 길이라 하더라도 그 길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잘못하면 그 길은 멸망의 길이요, 패망의 길이요, 사망의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 진정 우리가 가야할 최후의 길은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 길은 지금은 힘들고 어려워도 신앙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요, 축복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길이 제 삼의 길인 신앙의 길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뭐라고 하든지 가야 합니다. 어떤 유혹이 있든지 그 길을 가야 합니다. 방해하는 무리가 있더라도 그 길은 가야 합니다. 지금은 힘들고 어렵고 고난의 길이라 여겨지지만 믿음으로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그 길을 가다 보면 언젠가는 주님의 손에 붙들려서 아름답고 존귀하게 쓰임받는 날이 반드시 있음을 기억하시고 어렵고 힘이 들어도 실망하거나, 낙심치 말고, 두려워 하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게 믿음의 무릎으로 십자가의 길을 가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과 내일과 모레, 제 삼 일에 완전하여지는 나의 그 길은 지금 보기에는 십자가의 길이지만 조금만 지나면 부활신앙의 영광된 길입니다. 그 길이 성공의 길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성공했어도 구원의 길에 동참하지 못했다면 그를 진정한 성공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죄의 결과로 얻어진 사망의 문제를 해결받지 못한 사람은 세상에서 성공했어도 그는 영원한 실패자입니다. 오늘과 내일이라는 시간 속에서 살 동안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고 그리고 제 삼 일에 완전하여지는 부활신앙을 소유했다면 그는 비로서 성공과 승리의 인생의 길을 걷는 축복의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과 내일과 모레, 제 삼 일에는 내가 가야할 길을 걸어갑시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유혹의 손길을 뻗쳐오고 넓은 길로 우리를 잡아 끌려해도 과감하게 뿌리쳐야 합니다. 지금은 그 길이 평탄해 보이고 좋아 보여도 결국에는 아브라함의 조가 롯이 보았던 소알 땅인 멸망하는 소돔과 고모라 땅일 뿐입니다. 지금은 그 길이 편안해 보여도 결국은 고통받은 고통의 길일 뿐입니다. 지금은 그 길이 화려하게 보여도 언젠가는 상처받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계획에 따라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제 삼 일의 길을 걸어 가야 합니다. 때로는 그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을지라도 그 길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구원의 길입니다. 주님과 더불어 가는 좁은 길입니다. 주님과 더불어 고통을 나누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주님을 만나러 가는 영문밖의 순교자의 길입니다. 그럼에도 그 길은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지난 제 삼 일에는 완전하여지는 성공의 길입니다. 영생의 길입니다. 축복의 길입니다. 이것이 2002년 고난주간에 우리 교회에 주시는 주님의 축복의 메시지 입니다. 오늘과 내일, 그리고 모레는 결코 긴 시간이 아니라 짧은 시간입니다. 그 길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골고다 최후의 일정입니다. 그 길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요, 십자가의 길이였습니다. 그 길을 가는 자만이 예루살렘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오늘과 내일과 모레, 그리고 제 삼 일은 주님을 따르는 성도의 길이요, 사명의 길이요, 승리의 길입니다. 그러기에 힘들어도 가야 합니다.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가야 합니다. 오늘 지쳐서 못가면 기도의 무릎을 세워 힘을 얻어 내일은 가야 합니다. 그리고 모레. 제 삼 일에는 하나님 앞에 서서 칭찬듣고 면류관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베드로도 바울도 주님이 가신 제 삼 일의 길. 고난의 길인 십자가의 길을 가시다가 순교했습니다. 베드로는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 죽었고, 바울은 단두대에서 머리가 잘려 죽었습니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베드로의 순교 자리에는 성 베드로 교회가 세워졌고, 바울의 순교의 터에는 성 바울 교회의 십자가가 높이 세워졌습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고생하고 수고하고 핌ㅂ박받고 순교하는 바로 그 자리에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높이 세워 영광을 받으시고 어두운 이 역사를 밝혀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혹은 어떠한 핍박과 고난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교회를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하겠습니다. 이제부터 제 삼 일의 신앙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제 삼 일의 신앙은 바로 십자가의 길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이 구원을 이루었으니 이 고난은 영광의 고난입니다. 십자가가 아니면 하나님과 인간이 만날 수 없고, 십자가의 고난이 아니면 인간이 이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부끄러운 고난을 받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아름다운 고난을받는 사람들은 늘어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제 삼 일의 신앙, 십자가의 신앙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십자가를 따라가는 성도들에게 아름다운 고난이 주어지고 영광의 고난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으로 참고 이기면 고난이 변하여 평안과 희망이 될 줄 믿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이 변하여 영광이 될 줄 믿습니다.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우리 모두 한 주간도 제 삼 일의 신앙을 회복하여 승리의 복된 생애를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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