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된 사람의 확신(2)
2002-06-25 15:36:31

롬8:35-39 // 2002년 6월 23일

□ 신앙은 확률이 아니라 확신이다.
신앙은 확률이 아닙니다. 신앙은 확신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확신입니다. 확신이 있어야 기도할 수 있고 확신이 있어야 순종할 수 있습니다. 확신이 있어야 영적인 전쟁도 할 수 있고, 확신이 있어야 자기의 생애를 드려 헌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확신이 없는 신앙생활은 능력이 없습니다. 감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확신입니다. 확신이 있다고 해서 우리가 완전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를 믿음으로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핍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처럼 우리도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기도 합니다. 또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 원하는 바 선은 행치 아니하고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라고 갈등하고 탄식했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 안에 있는 연약함 때문에 갈등하고 때로는 넘어지기도합니다. 하지만 확신은 가져야 합니다. 확신은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확신은 나의 느낌과 감정과는 상관이 없이 객관적 사실인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된 우리가 가져야 할 확신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지난 시간 세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는 확신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편이시고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일하시는데 누가 나를 대적하여 구원의 반열에서 끌어내릴 수가 있단 말입니까?
둘째는, '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시지 않겠느냐'는 확신입니다.
기도응답의 확신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시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기까지 하셨는데 뭐가 아쉬어서 오늘 우리가 구한 것들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생각해보세요. 딸까지 준 장인 장모가 사위가 암탉을 하나 잡아 주었으면 하는 사위의 요구를 거절하겠습니까?
셋째는, '의롭다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라는 확신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하나님은 나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시고 나를 의롭다고 인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그 보혈을 보시고 이제 내가 너의 모든 죄를 사하였노라 너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다고 인쳐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나를 참소할 수 없습니다. 사단의 참소와 정죄가 십자가를 붙들고 있는 한 나에게는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사단의 참소와 정죄 앞에 무릎을 꿇어야 될 이유가 없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계속해서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된 저와 여러분이 가져야 할 확신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이 가져야할 확신은 무엇입니까?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입니다.

□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35절) 그리고 본문의 마지막 구절도 이렇게 끝을 맺고 있습니다. 39절을 하반절을 보겠습니다.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39절)
"우리 주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 생명을 위협하는 고난
결론적으로 어떤 환경도, 그 누구도,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으려고 세상의 모든 것들을 도구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느냐?고 말하면서 세상에서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7가지의 고난을 들고 있습니다. 사단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게 하려고합니다. 그러면 바울이 직접 경험하였던 7가지 고난은 어떤 것입니까?

35절을 다같이 보겠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5절)
① 환난
환난도 우리를 예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환난이란 밖으로부터 오는 각종 고난이나 박해를 말합니다. 시련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한 말씀입니다. 환난이라는 뜻은 "위에서부터 누른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로마시대에는 곡식을 타작할 때 사용하던 트리볼륨이라는 타작기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말로 하면 일종의 도리깨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땅에 곡식을 깔아 놓고 도리깨로 힘껏 내리치면 껍질이 벗겨지면서 곡식의 알들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환난은 마치 신자들을 땅에 눕혀 놓고 도리깨로 내리치듯이 호되게 다루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도 루스드라에서 전도하다가 도리깨로 얻어 맞듯이 얼마나 많이 맞았던지 거의 송장이 되다시피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이 죽은 줄로 알고 그를 성 밖에 내어 버리고 갔을 정도였으니깐요. 이렇게 환난은 밖으로부터 오는 각종 고난이나 박해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어떤 박해나 환나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② 곤고
정신적인 고통을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곤고라는 말은 좁은 장소라는 뜻입니다. 여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려움에 처하고 시련을 당하게 되면 마치 좁은 새 장에 갇혀있는 것과 같고 답답한 공간에 꽉 끼여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답답하고 고독합니다. 밖으로부터 오는 고난과 박해도 무섭지만 정신적인 고통은 더 무서운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때리지는 않지만 만나면 저주를 퍼 붓는다든지 예수를 믿는 너 때문에 하는 일마다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면 정신적으로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합니까?

③ 핍박
환난과 비슷한데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복음의 적대 세력들에게 노골적으로 박해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바울이 복음 때문에 옥에 갇히고 매를 수없이 맞고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5섯번이나 맞았는데 바로 그런 핍박을 말합니다.

④ 기근
양식이 없어 굶주림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것은 바로 양식이 없어 굶주리는 일입니다. 북한의 동포들을 보십시오. 배고픔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웠으면 생명을 걸고 탈출을 시도하겠습니까? 금식을 해 보신 분들은 배고픔의 고통이 무엇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⑤ 적신
옷이 없어 헐벗은 상태를 말합니다.

⑥ 위험
생명의 위험을 말합니다. 성경에 보면 바울을 잡아 죽이지 않고는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겠다고 동맹을 맺은 유대인이 무려 40명이나 있었습니다. 나를 미워하고 저주하는 사람 한 사람만 있어도 견디기 어려운일인데 바울을 잡아 죽이기 위해 금식하며 철야하는 사람이 무려 40여명이나 있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⑦ 칼
처형당하여 순교당함을 말합니다.
바울은 달려갈 길을 마친 다음에 로마에서 처형당하여 순교했습니다.

□ 고난중의 모습
사도 바울은 자신이 친히 경험하였던 7가지 고난을 언급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난 당하는 성도의 모습을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의 모습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36절)
그렇습니다. 성도들이 주님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는데 그 모습이 꼭 성경에 기록된 것과 같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모습과 같습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양은 순한 짐승입니다. 그에게는 힘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도살장으로 끌려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한채 처량하게 끌려갑니다. 그렇습니다. 불쌍해 보입니다. 너무 처량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 넉넉히 이기느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37절)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님 때문에 받는 고난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과 같이 연약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불쌍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처량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을 보십시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것처럼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힘없이 잡히시고 이리저리 개처럼 끌려다니시며 고문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십자가에서 마귀의 일을 멸하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우리의 죄값을 지불하심으로 넉넉히 승리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복음 때문에 여러번 감옥에 갇혔습니다. 매도 수없이 맞았습니다. 태장으로 맞았습니다. 돌에 맞았습니다. 가는 곳마다 동족 유대인들의 핍박도 받았고 이방인들의 핍박도 받았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 때도 있었고 춥고 헐벗을 때도 있었습니다. 세 번에 걸쳐 선교여행을 했는데 강도의 위험도 있었고 강의 위험도 있었고 언제 어디서 칼이 날아와 자기를 죽일지 모르는 위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어떤 환난이과 핍박과 기근과 헐벗음과 굶주림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자신을 끊어 놓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도리어 바울은 고후 5:14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강권한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자기 안에 밀물처럼,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많은 환난과 핍박과 헐벗음과 추위와 굶주림과 생명의 위험이 많았지만 자기 안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넉넉히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간신히 이기는 것이 아니라 넉넉히 이긴다고 말합니다.
37절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여기서 '넉넉히 이긴다'는 말은 어제의 스페인과의 경기처럼 페널티 킥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고도 힘이 남아 돌아갈 정도로 너끈히 이긴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난과 환경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 내가 확신하노니
지금까지 바울은 자신이 직접 경험하였던 생명을 위협하는 7가지 고난을 언급한 또 다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으려고 하는 사단의 도구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38절)

① 사망과 생명
죽음과 삶을 말합니다. 여기서 생명은 삶을 말하며, 죽음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경험하는 내 인생의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를 끊을 수 없으리라 이것이 바울의 확신이었습니다.

② 천사와 권세자들이나 능력
"천사와 권세자"입니다. 천사는 선한 존재입니다. 반대로 권세자는 악한 영, 악한 존재를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존재들, 곧 그것이 선한 존재이든지 악한 존재이든지 간에, 어떠한 존재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는 결코 끊지를 못합니다.

③ 현재의 일과 장래의 일
현재로부터 장래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어떠한 사건과 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④ 능력
이 세상의 그 어떠한 능력도, 그 어떠한 권세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는 끊을 수는 없습니다.

⑤ 높음과 깊음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39절)
높음은 부와 영광과 출세를 말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요해 지고 출세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버리고 살아갑니까? 깊음이란 침체된 환경으로 가난, 멸시, 천대를 받는 낮은 지위를 말합니다. 살아가다 보면 높이 올라갈 수도 있고 낮게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겁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⑥ 다른 아무 피조물
혹시 우리가 모르고 있는 어떤 피조물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가졌던 확신이고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된 사람들이 가져야 할 확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망, 생명, 천사들, 권세자들, 현재 일, 장래 일, 능력, 높음, 깊음 등 아무리 다른 목록들이 수없이 많다 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겁먹을 필요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결코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랑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랑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랑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랑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사랑을 말합니다.
인간도 자기가 낳은 아들을 버리지 아니할진대 어찌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기까지 하시며 구원하신 하나님의 당신의 자녀들을 잊으시겠습니까? 포기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사랑을 아는 자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좌절하지 않습니다. 비겁하게 살지 않습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니 넉넉히 승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동아 일보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린적이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만우절에 가장 듣고 싶은 거짓말이 뭔지 아세요? "너 복권에 당첨됐어" 라는 말이랍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영원히 없어져야 할 거짓말은 "너만을 영원히 사랑한다" 라는 말이랍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가 사랑을 부정하는 세대 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의 사랑도 믿지 못하겠다는 불신이 팽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입니다. 상대적이 아니라 절대적입니다.

사람은 사랑을 느낄때와 두려움을 느낄 때의 능력의 차이는 10배나 된다고 합니다.
뒤에서 나를 밀어주고 나를 사랑하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확신하면 자신감이 생기고 무엇이든 못할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시간의 역사라고 하는 유명한 책을 쓴 영국의 세계적인 물리학자요 천체 과학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를 아시지요.
사실 그는 그리 뛰어난 학생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대학에 다닐 때에는 지독히도 게으르고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한 채 그럭저럭 살아가는 보통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몸속의 운동신경이 차례로 파괴되어 전신이 뒤틀려죽는 루게릭이라는 희귀병에 걸린 것입니다. 거기서 그는 인생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병신처럼 살아서 무엇하랴 그런 그에게 사랑이 찾아왔습니다. 간호사로 있던 헬리어 존스를 만난 것입니다. 거기서 그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몸은 뒤틀려 갔지만 그는 인생의 의미를 찾은 것입니다. 오래 살지 못하는 다는 생각이 그로 하여금 더욱 더 많은 일을 하도록 자극했습니다. 결국 그는 아인슈타인 이후 최고의 과학자라는 찬사를 받는 천체물리학자가 된 것입니다.

미국의 로스엔젤레스에서 올림픽이 열렸던 때의 일입니다. 그때 뉴스를 보니까 중국 선수 하나가 다이빙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한 기자가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서양 선수들과 비교할 때 왜소한 체격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뛰어넘어 그렇게 유연한 몸동작, 침착한 자세, 전혀 두려움이 없이 멋지고 놀라운 모습으로 다이빙에 성공할 수 있었는데 그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이때 이 중국 여자 선수가 아주 흥미 있는 대답을 했습니다.
"어머니 때문입니다.
어머니 때문에..."
기자가 "어머니 때문이라니요?"라고 되묻자 그녀는 자기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나는 100m 경주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경기에 자주 나갔지만 나는 자주 잘 넘어졌고 매번 입상권 안에 들지도 못하고 돌아와야 했지요. 그 때마다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답니다. '사랑하는 딸아, 나에게는 네가 일등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야. 네가 넘어져서 일어날 때에 네 모습이 더 아름다웠단다. 네가 일어나는 모습이 일등보다도 내게는 더 뿌듯했단다'라고 말이죠. 그리고 내가 다이빙을 시작할 때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와서 지켜봤죠. 때로는 실수하기도 하고 때로는 잘못하기도 하고, 그때마다 어머니는 똑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일등은 문제가 아니야. 나는 네가 운동하는 그 모습, 그 자체가 나에게 기쁨이란다. 너를 보는 것이 내게 기쁨이야. 너를 보는 것이 어머니의 행복이야.' 나는 다이빙의 그 스탠드에 설 때마다 어머니를 떠올립니다. 그러면 저절로 웃음이 나오고 긴장이 풀어지기 때문에 침착한 모습으로 언제나 경기에 임할 수 있습니다. 제가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어머니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의 뒤에는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나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나를 바라보시며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는 넉넉히 승승리합니다. 그 누구도 , 아니 어떤 환경도, 아니 어떤 피조물도 아니 내가 경험하는 어떤 고난과 핍박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이 사랑이 우리의 능력입니다.

admin

이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