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
2002-04-15 17:00:45

사도행전 11:19-26 // 2002.04.14

나는 어떤 사람인가?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우리는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물어서는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성령께서 성경에 기록한 말씀에 물어보아야 합니다. 초대 안디옥교회의 성도였던 바나바는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이 바나바란 석자 이름에다 여러분 자신의 이름을 넣어서 불러보세요. 그것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시는 내용입니다. 또한 그 괄호안에 여러분의 형제 자매 이웃의 이름을 넣어 불러보세요. 그것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이웃을 부르시는 음성입니다.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제일 먼저 성도를 착하다고 묘사합니다.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하지만 내가 착하다고 여겨지지 않는데요. 내 이웃이 가끔 착하다고 여기지만 지내보면 착하지 못한 부분이 많은데요. 주는 것이 없이 미운데요" 여러분은 솔직하게 그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이 아닙니다. 우리들 자신의 기호와 판단일 뿐입니다. 우리는 예전에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죄인인 것을 성령으로 깨닫고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 구속의 은혜에 맡겨 버렸습니다. "주 예수여, 당신 밖에는 내 죄의 해결자가 없으십니다. 당신 외에는 구주가 없습니다. 당신만이 영생의 말씀입니다" 그때 우리에게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임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전에 아담에게서 난 우리가 그때 예수에게서 났습니다. 전에 아래서 났지만 그때 위에서 났습니다. 전에 사람에게서 났지만 그때 완전한 하나님이시요 참 사람이신 우리 구주에게서 났습니다. 요한 사도는 이 사실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자들이니라"(요 1:12-13).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 3:5-6).

바울 사도도 말씀합니다. "너희는 하나님께로서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안에서 자랑함과 같으니라"(고전 1:30-31).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엡 4:23).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골 3:10).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우리 생애에 일어난 가장 위대한 사건입니다. 예수를 믿을 때 우리는 참되고 아름다운 존재로 태어납니다. 착하다는 말씀은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 그 씨앗과 가능성, 잠재력 전체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성도의 변화된 본성을 착하다는 말씀으로 묘사합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 안에서 착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은혜를 지나쳐 버리면 평생에 한번도 착해보지 못할 것입니다.

둘째로, 누가는 성도를 성령이 충만하다고 묘사합니다. 정직한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났지만 늘 충만하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역설적이지만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짜 성령 충만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왜요? 성경에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라"(요 1:16)고 했고, "우리가 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고전 12:13)고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세례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우리는 성령의 충만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의 충만한 생명이 아니면 우리는 격코 새로와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감각하던 안하던 우리는 성령에 푹 잠겨서 100% 성령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났습니다. 성령이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가운데서 그 하나님의 영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완전하게 태어났습니다.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출생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에 대해서 뭔가 조금 부족한 것처럼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칠삭동이나 팔삭동이로 태어났다고 주장하면 여러분의 부모를 욕되게 하고 섭섭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다는 말씀은 성령의 세례속에서 안전하게 출생한 생명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근원은 충만하신 성령이십니다. 하나님의 완전하신 역사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누가는 성도를 믿음이 충만하다고 묘사합니다. 믿음으로 이긴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지배하고 있는 상태, 다시 말하면 믿음으로 구원받을 뿐 아니라 인간적인 측면에서 믿음으로 늘 이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혀 믿음의 굴곡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지만 전에도 현재도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자신을 이기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예수믿는 신자입니다. 예수를 믿을 때 여러분은 믿음으로 승리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귀의 공격을 이기고, 정죄의식을 이기고, 죽음을 이기고, 불행한 피해의식을 이기고, 열등감을 깨치고, 하나님과 화평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승리를 체험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충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승리를 누립니다. 온몸으로 순종과 예배와 감사의 찬미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아무리 작아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에 족합니다. 구원을 얻기에 만족합니다. 주님께 나아가기에 충족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믿음은 충만한 믿음이요 만족한 믿음이요 승리하는 믿음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제발 부탁합니다. 여러분은 믿음이 부족한 것처럼, 없는 것처럼, 약한 것 같은 자세를 취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말하고 변명하는 습관을 버리십시오. 예수님이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눅 17:6). 믿음이 충만하다는 말씀은 우리 자신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의 성격을 강조한 것입니다. 우리는 질그릇이지만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이란 보배는 세상을 넉넉히 이기게 만들어 주고 장차 천국에 당당하게 들어가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현재의 만족과 함께 그 이상으로 미래의 기대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착하니 더 착하여라 충만하니 더 충만하여라 믿음이 충만하니 더 충만하여라" 할렐루야!

우리 성도들은 이렇게 안전하게 성령으로 태어났습니다. 변화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그때나 지금이나 믿음의 지배를 받고 성령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확실하게 인정하고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 한번 따라 합시다. "나는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다" 성경에 보세요.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마저 빼앗기리라"(마 25:29)고 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다고 믿는 사람이 더 충만하고 착할 수 있습니다. 착한데서 충만한데서 출발한 사람은 그 기초가 튼튼하고 완전하기 때문에 더 착하고 더 충만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나는 착하지 못하고 완전하게 태어나지도 못했습니다. 지금도 믿음이 없고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이렇게 믿고 있는 사람은 기초가 흔들리고 약하기 때문에 더 충만하기는 커녕 충만할 수도 없습니다. 더 착하기는 커녕 착할 수도 없습니다. 기초공사가 잘못되면 아무래도 좋은 집을 지을 수가 없는 이치와 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착합니다. 성령이 충만합니다. 믿음도 충만합니다. 충만한 성령안에, 성령의 충만하신 역사안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받은 새성품이 지금 자라고 있습니다. 날마다 승리하는 믿음, 기어코 승리하는 믿음을 우리 영혼속에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출발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에서 더 큰 믿음으로, 충만에서 더 큰 충만으로, 평강에서 더 큰 평강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사람을 불러주고 인정해주고 격려해 주는 곳입니다.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그리고 성경이 바나바를 그렇게 불러 주었기 때문에 그는 위대한 선교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나바와 같이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뒤를 따라 대대로 일어났습니다. 사람을 살리고 키우는 첫째 방법은 하나님이 불러주시는 그대로 사람을 불러주는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우리 주 예수 안에서 성령과 믿음이 충만합니다. 그리고 충만한데서 시작했기 때문에 더욱 더 충만해집니다. 더욱 더 착해지고 위대해집니다" 여러분들이 서로를 그렇게 불러주십시오. 그러면 우리 교회는 착하고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으로 가득해질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한번 읽어봅시다. "이에 더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우리가 착하고 믿음이 더 충만해 질수록 복음도 우리를 통하여 더욱 찬란하게 세상에 증거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통하여 주께로 주께로 줄지어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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