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2002-03-18 17:17:05

마태복음 : 14 : 13-21 (2002년 2월 10일)


마 14:13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좇아간지라
마 14: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마 14: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먹게 하소서
마 14:16 예수께서 가라사대 갈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마 14:17 제자들이 가로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니이다
마 14:18 가라사대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마 14: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마 14: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마 14: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러시아의 유명한 기독교 작가 톨스토이의 글 가운데 '세 개의 물음' 이라고 하는 글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의 인생론이요, 행복론을 요약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는 거기에서 아주 중요한 세 가지 질문을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현재입니다. 지나간 과거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도 아닙니다. 언제나 현재가 중요합니다.

또한 가장 필요한 사람은 옛날에 알던 사람도 아니고 앞으로 만날 사람도 아닙니다.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입니다. 매일 같이 내가 만나고 있는 바로 이 사람이 내게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어디서 무슨 귀인이라도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내게 가장 필요한 사람입니다.

셋째로 가장 중요한 일이란 바로 현재에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고, 여기에 행복이 있다고 말을 합니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현재적 상황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현재에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어서도 안되고, 현재를 그저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에 빼앗겨서도 안됩니다. 지금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현재적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언제나 내가 하도록 해야 합니다. 내 형편이 어떠하든지 간에 내게 주어진 일에 대해서 회피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그 일을 해야 합니다. 거기에 기적이 있고, 거기에 참된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종종 잊어버리고 쉬운 것이 바로 지금 나에게 주어진 현재적 상황입니다. 그 현재적 상황을 회피하면서 요행처럼 어떤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임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서, 그리고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의 간증을 통해서 우리가 공통적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절대로 일방적으로 이루어지거나 저절로 이루어지거나, 다른 사람 덕택으로 내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현재적 상황에서 진실하게 헌신한 사람의 그 헌신을 통해서 그 헌신한 사람에게만 기적이 일어나고 축복이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으로 구하고 간구한 사람에게만 응답이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복음을 심는 자에게만 썩어지지 않을 영생을 거둡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에게만 기쁨으로 단을 거둡니다. 영혼을 향하여 사랑을 심고 복음을 심는 자만이 구원의 기쁨을 얻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심는 대로 거두어주십니다. 물론 우리가 심은 것에 비해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양으로 거두어 주십니다.

오늘 본문은 여러분이 너무 잘 아는 오병이어, 보잘 것 없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5천명이상을 먹이신 기적의 말씀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읽을 때마다 이런 기대를 해봅니다. 우리 교회에게도 이런 기적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또 우리가정에서도 이런 기적이 일어났으면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 하나님은 풍성하신 하나님이시기에 그의 백성들에게 풍성한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의 삶에 이런 축복과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상시적으로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한번 생각을 해보십시오. 항상 기적을 베풀어준다면 우리의 신앙적 태도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노력은 하지 않고 요행만 바라는 이기적인 신앙으로 변질 될 것입니다. 심지 않고 거두려고만 하는 한 달란트 받은 자처럼 공짜 신앙으로 변질 될 것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악한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공짜 밝히는 한국인의 심리를 묘사한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에, 여객기로 개조된 B29 전투기가 운항 중에 그만 엔진이 고장나고 말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낙하산으로 비상착륙을 시도하는데, 다들 겁이나 뛰어내릴 생각들을 안 합니다. 비행기는 곧 추락할 것 같은데 다들 주춤거리고 있으니 안 되겠다 싶어 기장이 독일인 승객부터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히틀러의 명령이니 뛰어내리라."고 했더니 "하이 히틀러" 하고 뛰어 내렸습니다. 일본 사람에게는 " 천황 폐하의 명령이니 뛰어내려라"고 했더니 " 소우데스까" 하며 뛰어 내렸습니다. 프랑스 사람에게는 "저 아래 낙하산 펴지는 모습을 보시오. 얼마나 멋집니까? 당장 뛰어내리시오" 라고 했더니 두말 않고 뛰어 내렸습니다. 미국 사람에게는 " 이미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뛰어 내렸으니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얼른 뛰어내리라"고 했더니 역시 군말 없이 뛰어내렸습니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사람은 한국 사람이었습니다. 기장이 그에게 가까이 오더니 귀에 대고 뭐라고 소곤소곤 말을 건넸습니다. 그러자 한국인이 "정말이죠?" 하며 뛰어내렸습니다. 기장이 뭐라고 했길래 당장 뛰어내렸겠습니까? "뛰어 내리는 데 돈 안 받아요, 공짭니다." 그랬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다보니 개인적 헌신을 간과하고,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된 것을 강조하다 보니 하나님의 축복도 은혜로 되어지는 줄을 압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구원은 은혜로 받지만 하나님의 축복과 기적은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헌신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 이루어지기까지 거기에는 분명한 영적인 원리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긍휼 하심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능력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귀신을 내어쫓았습니다. 병든 자를 고쳐주었습니다. 권세 있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그 결과 많은 무리들은 그를 곧 메시야로 인정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분봉 왕이었던 헤롯은 예수님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 자기가 죽인 세례요한이 다시 살아난 사람이라고 보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도 그러하였습니다. 그렇게 놀라운 능력을 행하였음을 보고, 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잘못된 신앙과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멀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를 긍휼히 여기시고 누구를 사랑하십니까? 예수님을 사모하는 사람, 예수님의 긍휼을 기대하는 사람, 예수님을 간절히 찾는 사람을 찾습니다. 그런데 헤롯은 예수님을 오해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를 피하여 한적한 곳 빈들을 찾아가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좇아간지라."

그런데 그 빈들까지도 계속해서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시면 그 숫자가 장정만 5천명입니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이 사람들은 유월절 명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에 상경하기 위한 순례자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행한 이적과 사역들을 보고 '저분이 과연 메시야일까?' '아니 그렇게 이적을 행하고 권세 있게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을 보면 틀림없는 메시야일 거야!' '이적을 행하기는 한다마는 저 행색을 보면 메시야 치고는 너무 초라하지 않나?' 여러 가지 시각과 각도를 가지고, 궁금증을 가지고 그들은 예수님이 계신 빈들까지 찾아왔습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을 보니까 무리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좇아갔다고 하였습니다. 한 고을만을 헤집고 온 것이 아닙니다. 이 고을 저 고을을 통과하면서 지치고 피곤하였을 법도 한데 포기하지 않고 그것도 걸어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을 찾은 저들의 열심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온 힘을 다하여,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찾아온 무리들을 주님은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14절에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하나님의 기적은 하나님으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을 때부터 시작됩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수많은 병자들 가운데 주님은 38년 된 병자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를 일으켜주었습니다. 그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백부장의 하인이 고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백부장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나면서부터 소경이었던 사람들이 고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의 자손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부르짖은 저들의 간구를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축복하십니다. 그들에게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주십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든지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을 만큼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는 사람인가? 오늘 내가 무조건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기 전에, 하나님의 기적을 바라기 전에 먼저 나는 과연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을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으며, 사모하고 있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한국 도자기 회장님이신 김종호 장로님의 간증집 "아 하나님의 은혜로" 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이 분은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둔다"는 고린도후서 9:6절의 말씀을 철학으로 삼고. 27살에 '대동목재'를 시작해서 '삼광사'라는 사기 그릇업체를 거쳐 오늘의 '한국도자기'라는 기업을 일궜습니다. 한국 전쟁의 여파로 경제가 최악의 상태에서 허덕이고 있을 때도, 아이엠에프로 부도사태를 맞이하고 있을 때에도 그 회사는 망하지 않고 건실하게 성장하였고 마침내 한국 도자기는 오늘도 건장하게 서 있게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그의 신앙인으로서 철칙으로 삼은 그의 신앙적 태도가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망하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 철칙이 무엇인고 하니 이분은 공장을 지을 때마다 먼저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반드시 예배당을 먼저 지었습니다. 회사를 새로 설립할 때마다 먼저 예배당을 건축해서 헌당합니다. 그러는 와중에서 많은 비난의 소리를 들었지만 하나님을 사모하고 사랑하는 그의 열심을 누구도 꺾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사람들의 염려와 비난을 뛰어넘어 넘치는 축복을 부어주셔서 지금의 한국 도자기를 일궈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열심히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긍휼히 여김을 받게되었고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는 넘치는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사모하고 사랑하십시오. 그것을 여러분의 삶 속에서 실천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은 바로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기적은 현재 나의 것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빈들까지 찾아온 그 수많은 무리들을 보면서 제자들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여기는 빈들입니다. 그리고 저녁입니다. 저녁을 먹여야 하는데 어디 가서 음식을 사먹을 곳도 없습니다. 걱정이 되어 제자들이 주님에게 처방을 내려 줍니다. "주님 이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로 내려가서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십시오."(15절) 라고 말합니다.

어찌 보면 제자들은 대단히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매우 합리적인 결정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들의 제안을 가만히 보면 전혀 틀리지 않습니다. 지금 있는 그곳은 빈들입니다. 광야입니다. 거기에 무슨 음식점이 있는 곳도 아니고, 무슨 식물이 나는 곳도 아니고, 구멍가게가 있는 곳도 아닙니다. 그 빈들에서는 전혀 그들을 먹일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누군가가 대신 동네에 내려가서 무리들의 양식을 얻어와서 먹인다고 해도 내려가고 오는데 시간이 다 걸리고, 혹 가져온다고 해도 몇 사람 분의 양식을 가져오겠습니까? 장정만 오천 명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동네에 내려가서 각자가 알아서 먹도록 합시다" 였습니다. 이것은 매우 합리적이고 적절한 결정이었습니다.

이렇게 결론을 내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뜻밖에 말씀을 합니다.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여러분! 이 말씀이 도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문제 해결을 하는데 지금 이 현재적 상황에서 네가 해결하라. 그리고 네가 지금 너에게 있는 그것을 가지고 해결하라. 그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의견이 합리적이냐 비합리적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타당성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할 수 있다 없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지금 주님이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믿음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헌신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합리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는 믿음의 태도를 가져야 복을 받습니다. 적어도 헌신하고자하는 마음을 가져야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합리성을 내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겠다는 불신앙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계산을 초월합니다. 우리의 이성과 합리를 초월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는 계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합리적 이해로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제한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문제 해결의 열쇠, 하나님의 기적의 실마리가 지금 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고백하시는 말씀이겠습니다 만은 가끔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목사님 제가 만일 월드컵복권에 당첨되면 수억의 건축헌금을 하겠습니다. 주택복권에 당첨되면 그 중에 5천만 원은 헌금하겠습니다." 그런가하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목사님! 건축하려면 우리 교회에 돈 많은 사람 보내 달라고 기도해서 좀 돈 많은 사람이 헌금을 해야 건축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너희들이 해결하라.' '그리고 지금 가진 것으로 해결하라.' 그 말입니다. 복권 당첨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다른 사람이 도울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지금 네가 가진 그것으로 해결하라. 그 말입니다.

왜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적을 지라도 그것이 주님의 손안에 들어가면 상상 할 수 없는 축복의 씨가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을 때는 가진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의 손안에 들어가면 그것은 기적의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내가 미리 판단해서 포기해 버릴 때가 있습니다. 일이 이루어질 만하면 기도하고 힘쓰지만 처음부터 가능성이 없을 것 같으면 포기하고 아예 기도도 하지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간에 기억해야 합니다. 일이 이루어지고 안 이루어지고는 그것은 하나님이 결정하실 일이고, 우리는 사실 있는 그대로, 내 모습 이 대로를 내놓는 것이 필요합니다. 옳다 그르다 하는 판단이나, 할 수 있다 없다의 결정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대로 내가 가진 것을 주님의 손에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우리가 질적으로 바치면 하나님은 그것을 양적으로 크게 만들고 역사를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건강, 인격, 지식, 지혜 또는 무엇이든지 깨끗한 마음으로 바쳐지기만 하면 주의 손에는 엄청난 기적이 나타난 다는 것입니다.

서울에 목동에 가면 지구촌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는 교회의 건물이 없이 상가를 빌려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교회를 건축할 때가 되어 건축하기에 앞서서 땅을 사야했습니다. 땅을 사기 위해서 서울시와 계약을 맺을 때, 그들이 가진 돈은 70만원이 고작이었습니다. 당시에 교회 재적인원 350명 잔고는 70만원이었는데 그것을 가지고 19억 짜리 땅을 계약을 했습니다. 그리고 땅값을 4년 만에 완전히 갚고서 또 건축을 시작하였는데 지하 4층 지상 10층, 연건평 1900여 평의 건물, 130억 건물을 건축하였는데 시작할 때는 350명이었으나 2년여 동안의 건축 중에 오히려 성도는 450여명으로 불어나고 건축이 완공된 다음에는 650여명으로 거의 두 배로 성장하였습니다. 이런 축복의 비결에 대해서 담임 목사님이신 조봉희 목사님의 고백은 한마디로 "믿음의 건축" 이었다고 하였습니다. 계산하고 따지고 하였다면 건축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것부터 주님의 손에 드렸더니 주님께서 축사하시고 기적을 베풀어주셨다고 하였습니다.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주님의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입니다. 보잘 것이 없는 것입니다. 보리떡은 그 당시에 나귀들에게도 먹이로 준 것이라고 하니까 가난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먹는 별 볼 일 없는 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음식이 주님의 손에 들어가니까 상상할 수 없는 이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내 손에 있을 때는 작은 것이요, 또 내가 생각할 때는 작은 것이지만 하나님의 손에 들려지면 큰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생각할 가치 인식입니다.

여러분! 아프리카의 선교사 리빙스톤을 아실 것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아프리카 선교의 아버지인데 이분이 어린 시절에 어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데 선교에 대한 헌신을 하는 시간에 손을 들고 헌신을 고백하며 헌신하는 표로 헌금을 드리는데 하나님께 드릴 헌금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마음은 헌신되었습니다. 몸도 헌신되었습니다. 그러나 드릴 돈이 없는 것입니다. 헌금 바구니가 어린 이 리빙스톤에게 옵니다. 그 때 리빙스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헌금바구니에 앉아 버렸습니다. 드릴 헌금은 없지만 나의 몸 전체를 다 드렸으니 받아주십시오. 하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런 리빙스톤의 그 중심을 보신 하나님께서 위대한 선교사로 축복해주셨습니다.
이런 좋은 말이 있습니다.
"당신이 첫 단계를 시작하면 하나님이 나머지를 이루어주신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작은 것이지만 헌신함으로 시작하면 하나님은 그것을 인하여 나머지를 이루어주십니다. 오늘 주님이 요구하시는 여러분의 오병이어는 무엇입니까?

세 번째 하나님의 축복과 기적의 원리는 감사의 원리입니다.

주님께서 5천명을 앉혀 놓고 그 앞에서 아주 보잘 것 없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하나님께 축사하셨습니다. 축사라는 말은 헬라어로 '유카리스테사스' 로서 감사라는 뜻입니다. 5천명을 앉혀 놓고 그 앞에서 어떻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놓고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형편없고 적은 것이지만 가진 바대로 주님은 아버지께 얻은 것을 인하여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감사하였을 때 바로 5천명을 먹이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감사기도를 들으시고 그 감사를 통해서 축복을 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축복의 못자리입니다. 아마 예수님은 지금 주어진 보잘 것 없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인하여 감사를 하였으나 그 감사는 미래 적인 감사였을 것입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아니라 그것으로 5천명을 먹일 것을 내다보고 미리 감사하는 믿음의 감사였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목사님이 설교하실 때 기도하는 방법을 설명하시면서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감사 기도를 해야 들으신다고 하셨답니다. 이 설교를 들은 어느 부인은 자기도 '남편 문제로 감사기도를 할 수 있었으면--' 하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남편은 매일 같이 술로써 인사불성이 되어 겨우 집에까지 도착해 문 앞에서 쓰러진 남편을 끌어다가 겨우 눕혔더니 세상 모르게 잠을 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부인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를 하려하니 자기 신세가 처량하고 화도 나서 기구한 팔자 타령을 하며 " 하나님, 나는 왜 이런 남자에게 시집을 와서 고생을 합니까? " 하고 훌쩍 훌쩍 울었습니다. 울면서 절반은 신세타령하고 절반은 기도하는 중에 갑자기 감사기도 하라는 목사님의 설교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한참 동안 감사할 조건을 생각하다가, 감사할 것이 없어서 그저 감사하다고 기도했습니다. 바로 그 때 성령의 감동으로 감사할 일이 생각났습니다. 옆에서 코를 골며 자는 남편을 생각하니 그래도 과부보다는 낫고, 앞으로는 언젠가는 좋은 남편이 될 가능성이 있어서 감사하고, 저토록 취했어도 집을 찾아올 수 있음이 감사하고, 토요일은 더욱 술을 많이 먹어 주일날은 집을 잘 봐주어서 교회 나오는데 불편하지 않아 좋고, 계속해서 감사해야 할 일들이 자꾸 생각나서 정말 감사하며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남편은 갈증이 나서 잠을 깨고 보니 부인이 웃으며 기도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남편이 무엇이 그리 좋아서 웃는냐고 물었더니 당신하고 사는 것이 너무 감사해서 그렇다고 감사를 구체적으로 나열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들은 남편은 "나도 예수 믿어 줄게" 하며 선뜻 교회에 나갈 것을 약속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자기의 잘못을 왜 몰랐겠습니까? 또한 아내의 소원이 무엇인지 왜 몰랐겠습니까? 후에 이 부인이 간증하기를 "10년 동안 그렇게 기도해도 이루어지지 않던 소원이 단 한번의 감사기도로 이루어졌다"고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언제 기적을 베푸시고 언제 기도를 들으시겠습니까? 적은 것이요,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을 주님의 손에 올려드리고, 그것을 인하여 진심으로 감사할 때 하나님은 들으시고 놀라운 이적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볼 때는 보잘것없지만 아닙니다. 주님의 손에 들려지기만 하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이 맺어집니다. 여러분의 오병이어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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