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이 징벌 받은 이유(사29:9-16)
2002-03-11 00:29:08



이사야 29장 1-4절은 심판의 예언이, 5-8까지는 하나님께서 돌아오는 자에게, 구원을 약속하셨다.
그런데 저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종들이 있었지만,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에,
죄악은 점점 깊어가고, 회개하는 것은 뒤로 미루고, 세상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1절의 아리엘( )은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사자(lion of God)'다.
모든 일에 용맹스럽게 싸웠던 유다 족속을 '사자 새끼'(창49:9)로 표현했다.
유다 자손 다윗이 여부스 족속에게서 성을 뺏고, 수도로 삼았던 예루살렘 성을 표현한 말이다.

유대나라의 수도 예루살렘은, 단순한 수도가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은 만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전이 있는 곳, 신앙과 삶의 중심지이다.

그런데 2절에 하나님께서, "내가 필경 너 아리엘(예루살렘)을 괴롭게 하리니,
네가 슬퍼하고 애곡하며, 내게 아리엘과 같이(처럼) 되리라"했다.

후반절의 아리엘은,
하나님의 산( )에 있었던, 번제단( , 겔43:15-16)처럼, '불타게 된다'는 Word Play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산( )에 와서 예배를 드릴 때,
양이나 염소와 같은 제물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의 제단 위에 올려놓고, 불로 태워(번제) 드렸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짐승을 사로잡아 불사르는 번제단( )같이 하시겠다는 뜻이다.

마치 미국 테러 大참사 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하며 시민들이 경악했던 것처럼,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놀라라, 놀라라, (스스로)소리쳐라( ), 소리쳐라"(9) 하셨다.

이렇게 듣기만 해도 무서운 일을, 왜 행하시겠다는 것인가?
그 이유를 본문에서 3가지로 말하고 있기에, 유대인이 징벌 받을 이유라는 제목으로 전하겠다.

1. 영적 무지(9-12) - 하나님의 뜻을 알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주시고, 그들을 독수리 날개로 업어, 시내산까지 인도
하셨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셨다.

(1) 언약을 지키면 구원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주시고, 하나님은 약속을 맺으셨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19:5-6)고 하였다.

① '하나님의 소유'( )가 된다.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며, 사랑과 애정을 쏟아 붇는, 매우 특별한 보물이 되겠다는 말이다.
우리는 시시한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배로 보신다.

② '제사장 나라'( )가 된다.
제사장은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다리를 놓는 자'이다.

백성들에게 고통스런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를 대신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 해결해 주었다.
따라서 '제사장 나라가 되리라'고 약속하신 것은, 다른 나라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만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너희는 왕같은 제사장이다"라고 말씀했다.
신약에서도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하였다.

우리는 이웃의 문제와 아픔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존재다.
우리가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고,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의 아픔은 덜어지고, 문제가 해결되고, 치유되고,
구원받는 역사가 나타난다. 얼마나 놀라운 삶인가? 이것이 바로 제사장의 특권이다.

구원받은 성도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민족을 위해 살지 못했다.
자신들만 하나님께 선택된 백성이라며, 선민의식을 가지고, 특권의식을 가지고 살았다.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기에, 그들은 하나님께 벌을 받게 되었다.
하나님의 백성이 자신만 위해 살아가면, 하나님께서는 그 축복을 걷어 가신다.
어려울수록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이렇게 될 때, 하나님의 축복이 더욱 임하게 된다.

③ 거룩한( ) 백성이 된다.
특별한 목적을 위해 구별되어, 하나님께 쓰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이 쓸모 있는 인생이 되어,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가?
쓸모 없는 자가 되는 것, 세상에 그것처럼 비참하고 안타까운 것이 없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
하나님은 이런 축복된 내용으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계약을 맺기 원하셨다.

(2) 그런데 이 축복의 언약을 맺을 때,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다. 2가지이다.

① 순종
내 말을 잘( , 절대형) 듣고( ), 내 언약을 잘 지키면 - 순서를 잘 기억하자.
잘 들어야 믿음이 생겨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굳건한 믿음을 원하신다면, 말씀을 잘 듣자. 열심을 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긴다.

불신자를 전도하기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가?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면 된다.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듣기만 하면, 믿음은 반듯이 생긴다. 그러므로 불신자에게,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라.

그리고 말씀 듣는 가운데, 성령께서 마음 문을 열어 주시고, 마음을 변화시켜주도록 간구 해야 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것을 마귀가 알까요, 모를까요? 마귀는 우리보다 훨씬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마귀는 될 수 있으면, 성도가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유혹한다.

② 성결(출19:9, 14, 22)
우리가 하나님께 보석과 같은 존재가 되어, 축복을 나누며, 쓰임 받기 위해서는, 성결해야 한다.

우리가 집에 있는 그릇들을 다 쓸 수 있지만, 단 깨끗하게 씻었을 때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곧 너희의 거룩함이라…"(살전4:3)고 하였다.

(3) 왜 영적 소경인가?(9-10).
하나님의 선민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보호받아, 원수들의 침공을 피하며, 평안을 누리면서도,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지 못하니 소경이요, 하나님께 찬양하지 않으니 영적으로 벙어리이다.
자신들의 평안과 축복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다 잊고, 자신들의 수완이 좋아서 그런 줄 알고 교만하여진 것이다. 교만하여 하나님의 진리를 받지 아니하므로, 그들은 영적 소경이 되었다(10).

빛보다는 어둠을 더 사랑하고, 잠을 더 사랑했다.
그들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운 줄을 알지 못하였다.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서 그들을 부르실 때, 그들은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라고 말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깊은 잠에 취하도록 놔두셨고, 그들은 결국 영적 소경이 되고 말았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다니면서도, 믿으려고 하지 않으니 소경이 되었다.
믿으려고 하지 않으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다녀도, 영적 소경이 되어 망한다.

2. 외식과 형식적 신앙(13-14) - 진실한 믿음을 갖자.
13절을 보면,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다"고 했다.

(1) 외식의 죄였다.
겉과 속이 다르면 외식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면서, 열심히 하나님을 믿는 척했다.
하나님 앞에 자신들의 열심히 인정받으려 했다. 하나님은 유대를 용납하시지 않으시고, 책망하셨다.

전도자 무디 이후에 크게 쓰임 받았던 전도자는 '월버 체프먼'이다.
이분이 무디 집회에 참석했다. 무디가 복음을 전하고 난 다음, 이 체프먼이라는 젊은이에게 물었다.
"예수 믿으십니까?" 그러자 이 젊은이는 "믿기는 믿는데, 자신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무디 선생님은,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는 성경 한 구절을 보여주면서 "이 말씀을 믿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믿는다"고 했다.
"그럼 너에게 영생이 있느냐?"고 그랬더니, "글쎄요"라고 말했다.

무디는 화를 버럭 내면서, "도대체 네가 무엇인데 하나님을 무시하느냐? 하나님이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다면 있는 것이지, 웬 말이 많으냐"고 꾸짖자, 월버 체프만은 "잘못했다"면서 무릎 꿇고 주님을 영접했다고 한다.

우리가 구원받았다 안 받았다는 것은, 마음의 자세가 아니다.
'예수 믿으면 영생이 있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있는 것이다. 의심하지 말라.

(2) 형식적 관계
기독교는 나와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다. 흉내만 낸다면, 불꽃같은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없다.
사람의 눈은 피할 수 있어도, 인간의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살피시는, 하나님의 눈은 피할 수 없다.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가 거룩함이 없다면, 주님을 노엽게 할 뿐이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나, 마음으로 하나님과 멀리 떠나는 신앙이 바로 외식이다.

이것은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께 아첨하는 행위다.
시12:3에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을 끊으시겠다"고 하였다.

외식적으로 드리는 예배는 예배가 아니고, 도리어 예배의 방해거리가 된다.
우리는 몸을 하나님께 바치는, 구체적인 예배를 드려야 할 것이다.
삼상15:22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라고 하였다.

요14:21 "주께서 가라사대,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하셨다.

현대인은 예수님은 믿되,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 그런 신앙생활은 외식, 형식적이라 할 수 있다.
은밀한데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죄악은, 하나님의 창조주이심을 무시하는 것으로, 역시 외식의 죄이다.

외식을 벗어나려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13) 했다.
하나님을 가볍게 보기에 외식한다. 그러니 사람의 말로 받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한다.

꿈 이야기에 넘어가지 말고, 약속을 붙들라.
'내가 묵시를 보니까 어떠하더라, 내가 방언을 통역해 보니까 어떻더라…' 속지 말라.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는 해야 정상적이다.

3. 세상을 의지했다(15-16). - 하나님만 의지하자.
유다 백성들은,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애굽과 동맹을 맺고, 원조 받으려는 정책을 세웠다(15). 자신의 머리에서 나온 정책을 의지하여, 하나님께는 어떤 도움의 손길도 구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도모를 여호와께 깊이 숨기기"(15)위해, 깊은 곳을 찾아 자신의 몸을 숨겼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늘 보좌에서 그들의 모든 행위를 감찰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이러한 유다 백성들의 정책은, 어리석은 것이었음이 판명되었다(16).

소련과 동구권의 공산주의가 몰락하면서, 미국은 세계 최강의 나라가 되었다.
이제 미국은 약하고 가난한 나라들에게, 많은 아픔을 안겨다 주는 오만한 나라가 되었다.
최강의 경제력과 최강의 군사력을 가지고, 함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돈과 무기의 힘을 의지하기 시작했다.
시20:7절에 "혹은 말과 병거를 자랑하거니와, 우리는 여호와의 이름을 자랑한다"고 했는데,
축복 받은 미국은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고 의지하기보다는, 말과 병거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 금융의 중심, 아니 세계 경제의 중심인 Twin Tower가 일순간에 무너지고,
미국이 그토록 자랑하는 국방성, 펜타콘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왜 하필이면 무역센터며, 그 철옹성 같은 펜타곤입니까? 그곳은 바로 바벨탑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강한 것(돈, 권력, 지혜)을 붙들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더욱 붙드는 사람이 되자.
인생에 먹구름이 끼었을 때, 은혜의 보좌 앞에 나와, 주님의 은혜를 구하라.

시편기자는 고백한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127:1)

결론입니다. 유대인들이 망한 것을 보고, 타산지석으로 삼자.

(1) 하나님의 뜻을 알자.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보물처럼 여기시는데,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세상과 다리를 놓는 삶을 살며, 하나님께 쓰임 받는 거룩하게 살자.
최선을 다해 고지를 점령하고, 속히 섬기는 자리로 겸손히 내려오자.
평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되자. 성도는 평화의 사도이며, 섬김의 종으로 부름을 받았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신다. 힘 주실 때, 축복주실 때, 겸손하자.

(2) 진실한 믿음을 갖자.
우리는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에서,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영적인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 보이는 예배가 아니라, 듣고 순종하는 예배를 드리자.

달걀이라고 똑같은 달걀이 아니다. 유정란이 있고, 무정란이 있다.
생명이 있고, 생명이 없는 달걀이 있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21일 동안 품어보면 안다.
생명이 없는 무정란은 썩어서 나오지만, 유정란은 병아리가 나온다.

이름뿐인 신앙은 순종과는 상관없는 신앙이다.
말씀을 듣고, 자신을 말씀의 방향대로 움직이는, 진실한 성도가 되자.

(3) 하나님만 의지하자.
우리가 움켜쥐고 있는 것은, 일 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 하나님만이 영원하다.
영원한 것을 붙드는 것이 지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 더욱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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