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제자훈련의 이론 2002-03-09 11:47:06 교회 중고등부에서는 매 년 수많은 졸업생들을 배출해낸다. 그러나 그 중 상당수가 중고등부를 끝으로 신앙생활을 마감하고 있다. 그 이유를 분석해 보면 중고등부 시절에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지 못한 채 6년을 보낸다는 사실에 있다. 그래서 대학부나 청년부에 가서 구원의 확신에 관한 문제를 다시 시작한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중고등부의 교회교육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고등부 시절이 그렇게 무의미하고 쓸모 없는 시기가 아니다. 많은 경우가 중고등부 시절에 자신의 인생을 결정한다. '무엇이 될 것인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들을 놓고 고민하는 시기이다. 그러므로 그 시기에 그들에게 바른 인생관과 가치관, 그리고 세계관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들로 하여금 올바른 생활을 해 나가고, 변함없이 주님께 헌신된 모습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래서 그 터전 위에 삶을 설계하고 장래를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한두 번의 설교나 주입식 공과로는 부족하다. 규칙적이고 끊임없는 삶의 훈련이 있어야만 한다. 제자훈련이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영적 성숙에 이르고 그가 영적인 재생산을 할 수 있도록 성장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1. 제자훈련의 성경적 근거 (1)제자의 개념 제자라는 말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여러 측면에서 정의될 수 있다. 사전적인 개념은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배우며 순종하고 그가 하는 일을 조력하는 자'이다. 제자(mathetes)라는 명칭은 신약 가운데 오직 4복음서와 사도행전에만 나타난다.'제자가 되다'(manthano)의 원뜻은 '배우다'는 것으로 신약성경에 25회밖에는 나오지 않지만, '제자'(mathetes)라는 명사는 264회 이상이나 나온다. 성경 이외의 일반적 헬라어에서 이 단어는 일정 직업의 도제, 일정 업종에 대한 학생, 또는 일정 교사에 대한 생도를 의미했다. 신약성경 시대에는 '모세의 제자'라는 용어에서처럼, 이 단어의 일차적 의미는 세속적 의미와 동일했다. 신약에서의 그 대상은 세례요한의 제자들(요1:35,3:25)과 바울의 제자(행9:25), 바리새인의 제자(마2:18,22:16), 모세의 제자(요9:28)가 되지만 나머지는 예수님의 제자를 가리킨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를 가리키는 경우에도 그 대상은 다양했다. 먼저 마태복음에는 27:57과 28:19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12제자들에게 이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마가는 예외 없이 협의적인 의미로 사용해서 12제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 명칭으로 불리우지 않는다. 누가는 12제자들과 나머지 제자들(눅6:13, 행6:2), 즉 수가 너무 많은 무리(눅19:37)를 명백히 구별하고 있으며, 사도행전에서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에게 이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요한도 협의적 의미와 광의적 의미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그는 12제자가 아닌 상당수의 사람들을 제자라고 부른다(요6:66). 결국 복음서 기자들은 마가를 제외하면 모두가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교회의 품으로 들어오는 모든 신자들을 가리키는 호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구약에서는 '마세테스'와 동의어로 다루어지는 '탈미드'가 유일하게 역대상 25:8에서 나타나는데, 그것을 번역하면 '마세테스'라기보다는 '만사노테스'(학습자들)이란 분사가 더 적당하다. (2)예수 그리스도의 제자훈련 예수와 그의 사도들은 성숙을 향한 미래의 성장과 전도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기본적인 기술을 위한 기초를 마련하는데 삼 년 반 가량의 계획을 가졌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는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을 함께 있게 하고,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고 있다. 신약성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역과 제자들의 사역과 복음의 전달된 모든 과정을 제자훈련의 계속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지상생애에서 일차적인 제자훈련을 하셨다고 보며, 부활 후에서 승천까지는 이차적인 제자훈련을 하셨고 오순절 이후에는 성령을 통하여 삼차적인 제자훈련을 지금도 계속하고 계신다고 볼 수 있다. A.B.Bruce는 예수님의 제자훈련을 세 단계로 설명하였는데, 첫번째 단계는 그들이 단순하게 그리스도로 믿고 사정이 허락할 때, 특히 절기 때 간헐적으로 그분과 동료로 동행하던 단계이고, 두번째 단계는 그들과 그리스도와의 교제가 세속 직업에 대한 전적인 포기 혹은 계속되는 포기를 포함하는,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전적인 추종형태로 발전하며, 세번째 단계는 열두 제자가 수많은 주님의 추종자들 가운데 선택되었을 때 들어서게 된 가장 고차적이고 최종적인 훈련단계로 그들은 하나의 선택된 그룹을 형성하여 사도적인 위대한 사업을 위하여 훈련받게 되는 단계로 보았다. 그러므로 신약성서에 나타난 제자의 개념은 때가 차서 계시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곧 하나님이 대속자로 보내주신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은혜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게 하시려고 택하신 하나님의 종이다. 제자들은 하나님께 쓰여지기 위하여 말씀으로 양육 받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하나님에 의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믿고 고백하고 복종하는 모든 사람들이다. 2. 교육의 관점에서의 청소년 제자훈련 마 28:19-20은 제자훈련의 사명을 가르쳐 주는 구절이다. 한편 이 구절은 기독교 교육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말씀이다. 그들은 이 말씀에 있는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을 곧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교육적 사명"으로 받아들인다. 결국 주님이 명령하신 것은 제자로 삼아 가르치라는 것인데 이 말은 제자훈련과 교회교육을 동시에 명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제자훈련은 교회교육의 한 중요한 부분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교육철학의 차이인데 전통적인 교회교육은 다분히 고전적인 교육철학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에 교회교육은 성경 내용이나 바른 교리 체계를 주입시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제자훈련은 실존주의, 진보주의, 행동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그 결과 제자훈련 가운데 사람들이 가장 깊게 영향을 받는 것은 개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지식을 전달하지만 그것과 함께 훈련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중요시한다. 또한 주제에 대해서 질문하고 대답하면서 신앙을 이끌어 간다. 제자훈련은 일반 교회교육과 달리 그 목적이 아주 구체적이다. 제자훈련이 교회교육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교회교육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으로써의 가치는 충분하다. 특히 교육의 핵심 주체인 청소년들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제자훈련은 성인에게나 가능한 것이요 청소년에게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견해가 있는 것이 사실이나 오히려 청소년들에게 가장 적합한 것이 제자훈련임을 부인할 수 없다. (1)제자훈련의 목적 제자훈련이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영적인 성숙에 이르고 그가 영적인 재생산을 할 수 있도록 성장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제자훈련의 목적은 인격적인 목적과 사역적인 목적으로 구분하여 진술할 수 있다. 먼저 제자훈련은 피훈련자로 하여금 예수님을 닮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인격성장에는 인간의 지적 부요에 대한 관심, 감정배양에 대한 관심, 올바른 행위의 강조가 포함된다. 예수님은 개인적인 깊은 교제를 통해 생활 속에서 자신의 인격을 가르치셨다. 또한 사역적인 목적이 있는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이 일을 위해 그는 진리의 증거자, 사랑의 종으로 헌신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를 닮는 제자훈련은 예수님의 증인을 만들어 세상에 보내는 것이다. (2)제자훈련의 핵심 제자훈련의 목적을 살펴보면 자립신앙 형성에 있다. 제자훈련을 통하여 스스로 생각하는 훈련, 스스로 행동하는 훈련, 독립적으로 재생산하는 훈련을 목적으로 한다. 이상에 의하면 제자훈련은 교회교육과 잘 일치하는 오히려 교회교육에 가장 적합한 한 방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것은 청소년 시기에 가장 적절한 것이다. 왜냐하면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는 청소년기의 학생들에게 인생을 결정하는 열쇠(가치관, 세계관, 인생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즉, 제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목표로 받들며, 그를 왕으로 주인으로 모시고 그의 가르침을 배우고 순종함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는 자이다. 그는 예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힘입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고 제자를 양성하는 사역에 자신을 드리는 자이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인격적인 것이었다. 그의 제자들은 그를 따라야 했고, 그와 함께 있어야 했으며, 전심으로 그에게 헌신해야 했던 것이다. 그들은 그에 대한 신앙을 가져야 했으며,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고 그를 믿음으로만 제자들이 될 수 있었다. 3. 청소년 제자훈련의 필요성 청소년 목회에 있어서 예수의 가르침을 성취할 수 있기 위해서는 교회 안에서 전인을 위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대로의 인간의 본 바탕, 혹은 인간의 특성, 즉 인간의 지적 특성, 정의적 특성, 신체적 특성, 여기에 영적 특성을 추가해서, 이러한 특성을 존중하고 보전하도록 하며, 그것들 가운데의 어느 한두 가지만이 상대적으로 강조되거나 경시되지 않고 이들 모두를 고루 다 갖춘, 말하자면 편향이 아니라 조화로운 인간을 위한 통전적(統全的) 교육이 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교회교육에 있어서 청소년을 제자로 삼는 훈련과정은 매우 중요하며 필수불가결한 요소라 할 수 있다. (1)교회교육의 비효율성 이제 연구 범위를 교회교육 안으로 좁혀 보고자 한다. 현재 중고등부의 교육적 요소들이 갖고 있는 문제를 점검해 보면 교육방법과 내용 및 전달에 있어서 다음의 분야들이 나름대로의 한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1)예배 1절의 설문조사 결과에서 밝혔듯이 일반적으로 중고등부의 예배 형태는 장년 예배의 복사 내지는 약간 축소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으며 청소년의 특성을 담으려는 노력이 거의 없다. 보다 창의적이고 활동적인 프로그램, 즉 일방적인 예배가 아닌 스스로 참여함으로 응답하는 예배의 모습이 아쉽다. 더 나아가 예배의 행위가 진정으로 구원의 감격과 능력을 체험하는 자리가 되지 못하고 있다. 2)설교 설교의 대가인 로이드 죤즈(D.M.Lloyd Jones)는 설교의 우위성에 대해 말하면서 오늘날 기독교회의 가장 절실한 요구는 진정한 설교이며, 그것은 역시 명백하게도 세상이 가장 크게 필요로 하는 것이라 했다. 그만큼 설교는 우리가 드리는 예배뿐만 아니라 삶 전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설교를 교육적인 측면에서 살펴볼 때 약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진우 목사의 설문결과에 따르면 설교의 길이가 어느 정도면 좋으냐는 질문에 15분(40.3%), 10분 전후(32%), 20분 정도(17%), 30분 정도(5.5%), 기타(5.2%)로 응답이 나왔다. 긴 설교가 항상 유익한 것은 아니더라도 학생들의 3/4이 15분 이내의 설교를 원한다는 것은 설교를 별로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반증이며, 그만큼 감동이 없다는 말일 것이다. 특히 설교를 듣고는 다음 날이 되면 거의 대부분이 설교의 내용을 잊어버린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 말은 설교가 학생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씀을 적용하게 하고 실천하게 하는 부분이 안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중고등부에서 행해지고 있는 설교의 약점이다. 3)공과공부 공과공부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신앙의 구체적인 적용의 터전이 되어야 하는데 여러 가지 면에서 그렇지를 못하다. 시간적으로도 30분을 넘지 못하고 장소적으로도 효과적 모임을 할 수 없게끔 되어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공과의 내용과 교사들의 교수 태도이다. 자신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적용해 보지 않은 내용을 일방적으로, 주입식으로 쏟아 놓는다. 학생들은 또 한번의 지루한 설교를 듣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치밀한 예시와 토론, 탐구활동의 학습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공과공부를 통해 학생들의 삶의 변화와 인격의 성숙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4)심방과 상담 중고등부 학생들을 심방한다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학생들이 자신의 가정과 사생활의 노출을 극도로 회피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따라서 부모와 함께 학생들의 성장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질 뿐 아니라 부모의 협조를 얻어서 교회교육의 기회를 확대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그들은 혼돈과 성장의 시기이므로 개인적인 돌봄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상담이 요청된다. 그러나 실제 교육현장에서 상담에 대한 인식이 저조하여 실제로 문제해결을 위한 상담이 실시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교회학교 내에 전문 상담가가 상주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교사들은 상담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음으로 학생들의 개인적인 상담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교회교육의 위기와 대안 한국교회의 교육체계는 목회(성인 중심의 예배와 돌봄의 기능)와 교육(어린이와 청소년 중심의 주일학교 교육)의 극심한 이원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교육목회'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신앙교육, 성경교육의 문제성을 교과과정에서 찾을 수도 있다. 즉 한국교회가 좀더 기초를 놓고 그 기초를 다지는 교육이 있어야 했는데, 기초교육에 힘쓰기보다는 쉽게 목표에 도달하고 교육의 신속한 결실을 기대했던 성급한 선교전략, 목회전략, 교육전략의 문제성, 또는 교육부재에 있었다. 도시화와 입시경쟁에서 교회교육의 위기를 진단할 수 있다. 도시화로 인한 청소년들의 획일화와 서열화, 그리고 비인간화가 문제이며, 그 대안으로는 교회학교가 청소년들의 인간성 회복과 인간해방의 자리가 되어야 하며, 공동체의 터를 창출하여 도시화에 의한 여러 부정적인 측면, 곧 개인주의, 가정 붕괴, 가정의 고립화, 공동체 상실 등을 보완 수정할 수 있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교육철학의 문제이다. 가장 근저에 자리잡아야 하는 교육철학의 부재가 교회교육의 혼란을 가져오게 하는 핵심이라 볼 수 있다. 교육철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교회교육은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에 기초하여 크리스찬들(성장세대)에게 신앙관을 확립하도록 하는데 그 목표를 두어야 한다. 신앙관 확립이란, 기독교 신앙에 대한 신앙체계 확립을 뜻하며, 이 체계 확립을 통하여 세상에서 인간 삶을 하나님 말씀의 빛 속에서 파악하고 하나님과 세상을 함께 올바로 이해하며, 수용하며, 선악을 분별하며, 그의 뜻을 분별할 줄 아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을 뜻한다. (3)청소년의 필요에 대한 대안 청소년은 공부 이외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갖는 시기이다. 이것이 청소년 문화의 한 가지 특성인데 이러한 문화적인 특성은 발달 과정상의 필요들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을 스스로가 추구하지 못하게 한다. 청소년에게 필요한 요소들은 다음의 6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애정의 필요 청소년들은 도시화된 가정에서 '심리적인 고아'로 살아간다. 따라서 친구를 사귀고 그들에게 동화되는 일에 탐익하거나 이성교제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기대를 갖는다. 이러한 청소년들에게 제자훈련은 영적인 부모의 역할과 애정의 공급을 가능하게 한다. 2)자신 수용의 필요 청소년들은 자신의 용모나 신체조건에 대해서 불만을 쉽게 갖는다. 뿐만 아니라 자기정체감을 형성해야할 시기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시각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이며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확인해야 한다. 나아가 새로운 경험을 통해 성취감을 항상 경험하여 자기 존중감을 갖게 하고 옆에서 위로와 격려를 해주는 일이 필요하다. 제자훈련은 영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교과과정과 점검을 통한 양육과정에서 이러한 필요를 채우게 된다. 3)자기통제의 필요 청소년의 정서는 매우 불안하다. 그래서 스탠리 홀은 이 시기를 '노도광풍의 시기'라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불안정한 정서에 지배되어 자기를 통제하는 능력이 약하며 나아가 대중매체의 영향으로 즉흥적이며 감각적인 생활습성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그런데 제자훈련은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의 강조를 통해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청소년으로 변화시킨다. 4)자기 책임의 필요 청소년은 '주변인'으로 더 이상 아이는 아니지만 역시 성인도 아니다. 따라서 '심리적 이유기(離乳期)'에 속하면서 독립성을 확보해야 하는 시기이다. 그러나 학교생활은 이러한 능력의 배양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과정보다 결과만을 중시하는 세태를 낳고 있다. 따라서 청소년들은 자기의 책임에 대해서 무관심하다. 그런데 제자훈련은 성경의 명령을 실제생활에서 수행해 나갈 것을 강조하므로 하나님 앞에서 책임 있는 인격체로 성장하도록 돕는다. 5)가치관의 필요 교회 청소년에 대해서 현장 사역자들은 공통적으로 실망감을 갖는다. 학교나 교회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모습은 비기독학생과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기 때문이다. 음주와 흡연 문제에서도 교회청소년들이 심각한 수치를 나타내고(57.3% 대 47.9%, 58.7% 대 27.3%) 귀가시간 어기기나 패싸움, 컨닝에서는 비기독학생과 비교해서 대등한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74.9% 대 71.1%, 19.9% 대 18.4%, 75.6% 대 76.3%). 따라서 교회에서의 윤리교육 나아가 전체적인 가치관의 체계를 교육할 필요가 클 뿐만 아니라 지식적인 가치관을 실제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도덕감과 의지력을 배양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제자훈련은 청지기로서의 삶을 강조하며 시간과 물질, 건강관리 뿐만 아니라 대인관계, 인격계발을 통해 이러한 필요를 채울 수 있다. 6)교제의 필요 청소년에게 있어서 사회성발달은 중요한 과제가 된다. 자기를 이해하고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지만 일반사회생활은 오히려 이기적인 양상을 강화시킬 뿐이다. 따라서 집단 속에서 자신을 상실하기가 쉽고 타인과의 교제가 늘 닫혀있기가 쉽다. 그런데 제자훈련은 점검을 통해서 서로의 삶을 개방하고 간섭하도록 함으로써 사랑 받고 사랑하는 일을 가능케 한다. (4)사람을 세우는 일의 중요성 사도 바울은 딤후 2:1,2에서 '충성된 사람'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삶을 세워주도록 권면하고 있다. 에릭슨의 자아정체감 발달과정을 보면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기의 과업은 '생산성'으로 무엇인가 남을 위해 선을 행하고 무엇인가를 남기는 일이다. 주님의 지상명령(至上命令)은 사람을 세우는 일을 요구하며 이를 통해 주님의 사역이 완성된다. 더구나 다른 사람의 삶을 세워주는 것은 생명의 확산이므로 대단한 기쁨이 된다. 바울은 제자들을 향해 그들이 "주님 앞에서의 기쁨, 자랑, 면류관"(살전 2:19,20)이라고 고백하였다. 제자훈련은 궁극적으로는 개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자신의 진로와 활동을 생각하고 실천하며 혼자의 힘으로 다른 사람을 양육하도록 훈련한다. 청소년에게 제자훈련을 시킨다는 것은 21세기에 아주 중요한 교육방법 중의 하나일 뿐 아니라 교육활동의 중심이어야 한다. 이러한 훈련에 필요한 이론과 함께 실제적인 사역원리와 기술이 필요하므로 다음에는 청소년 제자훈련의 실제를 다루도록 하겠다(혹시 개인적으로 이러한 필요를 절감하시는 분은 선교회의 제자훈련 일년프로그램에 참여하시거나 인터넷 다음(daum) 카페에 있는 우리 선교회에 들르셔서 필요한 자료를 활용하시기를 부탁드린다). (월간 <교회와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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