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8월 19일 예레미야 29:4 - 29:10 "오늘은 내 것 내일은 주님 것"
2001-08-20 01:13:57

이집트의 한 수도원에 어떤 남자가 찾아와서 수도원에 입회하기를 간청했습니다.
그 때 수도원장은 그에게 수도원의 첫 번째 규칙은
"오늘 닥친 일에 최선을 다해서 순종하는 것" 이라고 말하자,
그는 원장님이 어떤 명령을 내려도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하자
수도원장이 마당에 버려진 버드나무 막대기를 땅에 꽂고 지원자에게,
‘이 막대기에서 잎이 날 때까지 물을 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확실히 억지였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매일 2마일이나 떨어진 나일 강까지 걸어가서 어깨에다 물을 지고 와 마른 막대기에 물을 주었습니다.
1년 365일이 지났지만 싻이 날 아무런 징조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쳤지만 그래도 매일같이 성실히 그 일을 계속했습니다.
또 1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는 계속 그 일을 쉬지 않고 해냈습니다.
3년째 접어들었지만 그는 막대기에 물을 주기 위해 여전히 나일 강을 왕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3년이 지난후 갑자가 막대기에 싹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흔히 우리가 하는 말로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나님도 감동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맡은 일에 최선을 다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일하고 있는 일들이 있다면,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얼마나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오늘 내 환경, 내 처지가 얼마나 좋아지기를 바라고 계십니까?
우리는 나름대로 바라는 꿈과 소원이 있으나,
우리가 당한 현실은 항상 부족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바라는 꿈과 처한 현실 사이의 엄청난 괴리 속에서 불평하고 살아가는 것이 삶의 현장입니다.

본문은 예레미야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고난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쓴 편지입니다.
이 편지를 통해서 예레미야는 포로 생활에 잘 적응하고 거짓 예언자들의 예언에 속지 말며, 70년이 끝나면 다시 조국에 귀향하게 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은 고난과 형극의 세월이었습니다.
나라를 빼 았겼고 백성들은 주권을 잃어버리고 가족은 헤어져 찾을 길이 없으며
고향으로 돌아 갈 기약은 없는 가운데 희망 없는 세월을 눈물로 보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벨론의 그발강가에 나아가 버드나무에 걸어 놓았던 수금을 타면서 고국이 그리워 눈물을 흘리며, 한 맺힌 노래를 불렀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때에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로운 약속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만나리라"(렘29:11-13)
이 말씀은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마치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갈급함 같이 헤매 이다 만난 오아시스요,
평생에 내 인생을 축복되게 만들 자우명입니다.

고난과 역경 가운데 지내는 현대인의 삶속에서도 소망의 복음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가를 자세히 알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범죄했습니다.
하나님은 수없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너희가 돌이켜야 한다"고 경고의 말씀했습니다. "만약 너희가 돌이키지 아니하면 내가 바벨론을 막대기로 세워서 너희를 칠 것이다"라고 랬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백성들은 그 말씀도 외면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이 경고하신 말씀하신 바벨론 군대가 쳐들어와서 온 나라를 폐허로 만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로서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비참한 현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벨론 땅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닥친 현실에 불만을 품고 자신의 죄악으로 포로된 주제에 바벨론을 향하여 게릴라를 조직하고 싸우려고 시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낙심해서 `나라를 잃고 포로된 주제에 농사를 지어서 무엇을 할 것이며 결혼을 해서 뭐하냐 차라리 바벨론하고 싸워서 하루빨리 고향으로 돌아가자 며 투쟁을 일삼았습니다. 한 마디로 현실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4절로부터 편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읽음)

너희 포로들아 잘 들어라! 그동안 내가 너희에게 그토록 많은 기회를 주었건만
그 기회를 다 저버리고 결과적으로 너희가 선택한 길이 아니냐
그러므로 이제 포로된 현실을 수용하고 현실 속에서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5절과 6절 말씀입니다. (읽는다)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을 보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오늘 닥친 현실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너희들이 서둔다고 하루아침에 당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니다
다 70년의 기한이 차야 벗어 날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잘못해서 바벨론 포로가 되었나요?
이스라엘 백성 잘못함으로서 포로가 된 것입니다.

말을 바꿔서
오늘 우리 개인에게도 내게 닥친 현실은 모두가 내 삶에 결과인 것입니다.
어느 누구에게 핑계 댈 것이 아니라 모두 내 탓입니다
잘되어도 내 탓이요 잘못되어도 결국은 내 탓입니다

중요한 것은 냐 앞에 닥친 현실에 하나님이 내게 주신 "메세지"가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내 앞에 환경속에 강력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들어있음을 기억하고 그 메시지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메시지를 찾지 못하면 닥친 현실에서 벗어 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실을 인정하고 현실을 정직하게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된 주제에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불복종 불순종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편지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내 앞에 현실을 정직하게 내 잘못으로 인정하고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를 찾아야 합니다.
자기의 형편이 지금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꿈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비록 이미 주어졌던 기회를 놓첫지만 현실을 인정하고 새로운 시작을 하여야 합니다.
어떤 여자분이 결혼하고 나서 남편을 유심히 살펴보니까 처녀 때 남편이 아니더랍니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게으르고 무질서한 사람이었으며
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매사가 우유부단한 사람이었으며
맏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인줄 알았더니 얼렁둥땅 적당히 살아가는 사람이었으며
생활력이 강하고 책임감이 있는 사람인줄 알았더니 전혀 거리가 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결혼을 잘못했나 하고 낙심이 되었는데 하루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안되겠다. 하루 이틀 살 것도 아닌데, 내가 이 남자를 싹 고쳐놔야지!"
그리고는 남편을 고치기위해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고 뜯어고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침에 일찍 남편을 깨우고 일어나기 싫단 남편을 억지로 목욕탕으로 밀어넣고 먹기싫단 밥을 억지로 먹여서 일찍 회사로 보냅니다.
그리고 회사에 있을 때 낮에 전화합니다. "여보, 오늘 요건 요렇게 하시고 저건 저렇게 하세요. 아셨죠? 잘 알고 계시죠? 그리고 끝나면 바로 들어오세요!"
이렇게 하나 하나 컨트롤을 했는데, 이렇게 하기를 2년동안 열심히 앴는데
그런데 남편은 하나도 변하지 않더랍니다.

이 여자는 심경이 예민해지고 좌절과 절망감으로 어쩔줄을 모릅니다.
`내가 이대로는 못살지" 생각하고 많은 사람하고 상담을 하다가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내 남편은 내가 고칠 수 없다. 포기하자!
이제 다만 내가 아내로서 지켜야 할 본분만 분명히 지키고 내가 가정을 바르게 지키는 여자가 되자!"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자신을 먼저 남편과 가정의 형편에 맞추어서 열심히 살아 갑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남편이 먹든 안 먹든 아침 식사를 잘 차려주고 언제나 깨끗하게 옷 입혀 보내고
퇴근해서 남편이 늦게 와도 싫은 내색하지 않고 반갑게 맞아서 정것 차려논 상을 갖다주고 아내로서 충실하고 모범적인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6개월쯤 되니까 이 남편이 여자를 따라오더랍니다.
모건 여사가 쓴 『완전한 여자』(Total Woman)라고 하는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완전한 여자가 누구냐? 남편을 완벽하게 내가 바라는 대로 바꿔놓겠다"는 그런 여자가 여자가 아니고
`내가 주어진 현실에 만족을 하고 자신의 임무에 맟춰 충실히 아내의 길을 가는" 그러한 마음을 가진 아내가 완전한 여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현실을 여러분의 생각대로 바구려고 해서는 많은 저항을 받고 내 생각되로 되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닥친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것은 좋은 생각이지만
주변 환경과 주변 사람들을 내 주장에 내 가치관에 맞추려고 해서는 한번뿐이 우리의 인생이 너무 힘들고 잛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문제가 `나 외의 밖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언제나 문제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시간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주어진 현실 속에서 안달하지 말아라. 그렇다고 바꿔지는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너희들이 스스로 선택해서 걸어온 길이 아니더냐?
그러므로 책임의식을 갖고 현실을 내 책임으로 겸손히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게 닥친 현실에 나를 적응시키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메시지를 찾아서 이제부터는 성실하게 최선을 다 하려고 결심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없는 것을 바라지 말고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며 노력하라"는 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6절 하반절에 말씀합니다. "너희로 거기서 번성하고 쇠잔하지 않게 하라"
내 현실 아페서 반성하되 낙심하지 말고 마음을 굳게 잡고 최선을 다해야만 네가 산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우리의 뜻대로 행복을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죽어서 염라대왕 앞에 갔는데 염라대왕 옆에 있던 두 사람과 새로 온 사람을 보고 염라대왕이 말을 하기를 "너희 세 사람은 아직 여기 올 때가 되지 않았는데, 사람을 잘못보고 데려왔구나! 미안하게 되었는데 어찌하면 좋으냐? 장례를 지내서 돌아갈 몸도 없으니 이제 부득이 다른 사람으로 세상에 보내줘야겠다. 미안하니 내 너희들의 소원을 들어주마 각자 소원을 말해 봐라!" 그랬더랍니다. 그래서
첫 번째 사람은 말하기를 "나는 이 세상에 살 때 돈이 없어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부자로 한 번 태어나게 해 주세요!" 그래서 큰 부자로 태어나게 되었답니다.
두 번째 사람은 "저는 세상에는 권력만 있으면 잘 살아갈 수 있으니 큰 권세를 주십시오!" 그래서 둘째 사람은 권세있는 자로 태어나게 되었답니다.
세 번째 사람은 "나는 돈도 필요 없고 권력에도 흥미가 없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다만 경치 좋은 곳에서, 예쁜 아내를 데리고 토끼같이 귀여운 자식 낳고,
근심 걱정 없이 무병장수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대답을 했더랍니다.
그랬더니 염라대왕이 하는 말이 "예끼, 이놈아! 그런 데가 있으면 내가 가겠다!" 그랬더랍니다.
세상에 근심걱정없이 완벽한 이상향은 없다는 얘기입니다.

1)많은 직장인들의 30%이상이 자기의 직장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거 사표내야 되는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내가 이 돈 받고, 이 대우받고 이 자리에서 일할 사람이야 내가?"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니 능률이 오를 리가 없지요.
2)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형편에 대하여 억울해 하고 재수가 없는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참된 용기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그안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찾아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해결됩니다.

두 번째 말씀이 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7절 읽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을 이놈의 바벨론, 망해버려라!"며 저주하고 반항을 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의 법과 규례를 어기면서 반사회적 행동을 해 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바벨론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속한 바벨론이 평안해야 너희가 평화를 누릴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 자신을 위하여 바벨론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너희가 비록 노예로 잡혀갔다 할지라도 충성된 마음으로 주인을 위하여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착실한 노예가 되라는 것입니다.
지금 너희가 바벨론에 충성하는 것이 바로 자신에게 이익이 되며 하나님에게도 유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주변 환경에 적응할 뿐 아니라
이제는 더 적극적으로 내 주변 환경을 사랑하고 화목과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고 사랑을 베푸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안데르센의 동화 가운데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한 내용이 있어서 소개를 합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한 젊은 어머니는 병든 어린 아들을 간호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어떤 노인이 찾아와 먹을 것을 달라고 구걸합니다.
먹을 것 좀 주십시오. 배가 고파 죽겠습니다.
이 노인을 불쌍히 여겨서 어머니가 부엌에서 노인에게 줄 음식을 가지러 갔습니다..
그런데 나와 보니까 그만 그 노인이 어린 아들을 데리고 사라져버렸습니다.
젊은 어머니는 아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호수에 빠지고 맙니다.
이때 요정이 나타나서 말을 합니다.
네 두 눈을 준다면 호수를 건너게 해주겠다. 네 눈을 줄 수 있느냐?
어머니는 자식을 찾으려는 일념으로 두 눈을 주고 호수를 건너갑니다.
이번에는 가다가 계곡에 추락해서 그만 가시나무 속에 빠지고 맙니다.
가시나무가 제의합니다.
어머니의 가슴은 사랑으로 뜨겁다고 하는데 내 이 얼어붙은 몸을 녹여 준다면 내가 이 가시나무 속에서 내보내 주지
어머니는 연약한 몸으로 가시나무를 얼싸안고 체온으로 가시나무를 녹여줍니다.
어머니의 몸은 가시에 찔리고 추위에 못 견디어 쓰러지고 맙니다.
그 체온으로 추위를 이기고 싹이 돋은 가시나무는 그 어머니를 내 팽개칩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가시나무 속에서 구출됩니다.
아들을 찾아 또 가다가 이번에는 묘지에 들어섭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묘지를 관리하는 요정이 나타나 어머니에게 제의를 합니다.
아들의 행방을 가르쳐 줄테니 어머니의 젊음을 주시오.
젊은 어머니는 아들을 찾으려는 모성애로 늙은 요정의 늙음과 자기의 젊음을 바꿔서 결국 이제는 보기 흉한 노파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결국 아들이 있는 곳까지 가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안데르센은 어머니의 사랑은 희생이요. 헌신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 자식이 잘돼야 부모의 마음이 편합니다
내가 속한 가정이 평안해야 내가 평안합니다.
내 아내 내 남편이 편해야 내가 편하며 내가 속한 내 회사가 평안해야 내가 평안하며
내 남편이 내 아내가 행복해야 내가 행복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 어떤 모양이든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속한공동체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은 IMF와 같은 고난의 위기가 오면 제일 먼저 탈락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내가 속한 공동체가 평안하기를 끊임없이 중보 기도하여야 합니다.
회사원이면 회사와 사장님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가게라면 일터와 주인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일한다는 자세를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가 일하는 것은 마치 주께 하듯 해야 합니다.
독일에서는 직업을 calling 이라고 부르는데 독일 사람들은 어떻한 직업이든 자신의 직업을 하나님이 부르신 calling 천직으로 알고 자기의 직업에 대하여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일을 합니다.
우리는 내가 일하는 곳이 집이든 사무실이든 사업장이든 내가 서 있는 곳이 교회에 단상이라 생각하고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주께 하듯 일함으로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사람이 되어야 할것입니다.
자신이 맡은 일을 존귀하게 생각하고 주께 하듯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맡은일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소홀하게 살아가는 것이며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의 잘못된 행동으로 우리가 복음전도에 방해꾼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루터는 세상이 너희를 속이고 기만하고 핍박할지라도 참고 용서하라고 하였습니다
칼빈은 험한 세상을 살아가지만 결코 패배자가 되지 말고 세상을 정복하라고 하였습니다

정복하라는 것은 세상 권세를 누리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복음화하는 것이 정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을 복음화함으로서 칼빈의 말대로 승리자가 되고 정복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 믿는 한 체육 교사 집사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집사 선생님은 항상 새로운 학년을 맡으면 그 맡은 반 아이들을 처음에는 예수 믿는 아이들이 20% 미만이지만 학년이 끝날 때 학생들 80% 이상을 예수 믿는 아이들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첫째 이분은 수업을 시작하기전에 아이들을 위하여 간절하게 기도를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불교 믿는 학부형들의 항의도 있었지만 그의 기도는 학생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 하였습니다 다치지 않게 해다라고 기도했으며 아픈 아이는 건강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몸이 아프거나 형편이 안좋은 아이들은 따로 불러서 상담하고 간절히 기도를 해주었으며
어려운 아이는 자신의 봉급을 털어서 도와 주었습니다
이 체육 선생님은 학급반에 학부형들의 촌지와 선물을 절대 받지 않았습니다
억지로 맡기고 간 선물은 다음날 돌려 주거나 어려운 아이를 위하여 사용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선생님은 눈물이 많앗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학생들과 함게 눈물로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참된 크리스천 선생님의 진실한 사랑을 맛본 아이들은 학년이 끝날 때쯤 모두 예수믿는 아이들로 변해 버렸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내가 맡은 직업에 대하여 주께하듯이 최선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세계적으로 소위 성공한 사람들의 일생을 분석해 보면 공통적인 요소가 나온다고 합니다.
한결같이 자신에게 주어진 열악한 환경속에서 먼저 승리를 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여 승리자가 되었을 때에
비로써 자신의 맡은 일에 열심히 일하다가
어느 순간에 물론 하나님이 준비된 기간이 지났음으로
그가 처한 환겨으로부터 놀랍게 점프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맨 밑바닥에 환경이었지만 최선을 다 하는 순간
어느 순간 엔가 하나님이 한 단계 점프를 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부터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라고 부르느 것입니다.
8절에 말씀이 주어집니다. (8절 읽음)
당시 바벨론에는 거짓 선지자가 나타나서 `너희들은 금방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있다 내가 그것을 꿈에 보았다" 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현혹시키는 그래서 인기를 얻은 거짓 선지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
세 번째 말씀은 수고의 땀을 흘리지 않고 헉된 꿈을 꾸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꿈이란 내 마음속에 강렬한 욕구가 있으면 그것이 꿈으로 나타납니다.
전문용어로 그것을 `에로스적 환상"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가끔 강력히 소망하는 것이 꿈에 나타나면 좋은 징조로 보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계시로 오해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론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없었음으로 꿈으로도 하나님의 계시가 전달되기도 했지만 신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있음으로 꿈이 필요 없어 진것입니다.
예레미야 23장 32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거짓 몽사를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이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지금 포로로 잡혀간 유다 백성들의 마음은 두고 온 고향, 그리운 예루살렘, 아름다운 성전 얼마나 그립겠스니까?
그런데 이러한 약점을 잡아 일부 거짖된 선지자들이 꿈을 핑계로 그들을 미혹시키고 잇는 것입니다.

사람은 열망하는 것이라면 자연스럽게 꿈을 꾸게되어있는 것입니다.
`내가 어제 밤 잠잘 때에 예루살렘을 보았어! 내 고향 산천을 보았다!" 나도 봤는데…" 그러다 보니 마치 꿈이 하나님의 계시인양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잘못된 선지자들이 그제나 이제나 항상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 헛된 몽사와 거짖된 간증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일부 교회 목회자 중에는 믿을수 없는 천국 간증히고 꿈으로 예언을 하는 사람들을 교회에 단상에 세워서 간증 집회를 통하여 성도들을 현혹시키려고 합니다.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12절과 13절에서 (읽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헛된 꿈이 아니라 현실속에서 성실을 요구하고 계시지
결코 미혹하는 말에 혹하여 속아넘어 가는 것을 경계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현실 속에 불만을 가득 가지고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때
허황된 꿐같은 소리에 우리가 빠지고 우리를 미혹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 생활에 만족할 때는 아무런 유혹의 말에 넘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에 불평불만이 가득차면 그때 미혹의 말이 귀에 달콤하게 들려오는것입니다.
내가 직장생활을 진심으로 기쁘게 할 때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립니다.
그런데 `불평 불만이 가득차면 그럴때 미혹의 말이 귀에 달콤하게 들려오는 것입니다. `

전화에서 부동산 투자하라는 전화가 많이 옵니다
"선생님! 몇천만 원만 투자하면 금방 몇배로 벌수 있는 좋은 길이 있습니다" 라고 합니다. 아니 그렇게 좋은 투자라면 자기가 하지 왜 남에게 주겠습니까?
이러한 미혹되는 말에 넘어가면 안된다고 주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보낸 소식이 아닌 소리! 내가 욕심을 따라서 귀를 기울이고 현실에 불만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항상 미혹된, 헛된 꿈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10절 말씀입니다 (10절 읽음)
`70년이 차면 내가 권고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때가 이를 것이니 그 때가 되면 내가 해결해 준다" 그런 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총은 다 때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때가 되면 우리의 갈 길을 예비하고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때까지 꾹 참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억지로 벗어나려고 초조하게 발버둥 쳐야 안되니 참고 성실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유명한 철학자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했습니다.
논리적으로는 모순입니다 `내일 종말이 온다는데 오늘 사과나무를 심어서 뭘합니까? 사과 심으면 아무리 빨라도 3년은 지나야 열매를 먹을 수 있는데?" 이 속에는 깊은 뜻이 들어 있습니다.

`내일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나에게 주신 날이므로 내일 염려 미리할 것 없이 내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오늘을 내것으로 하나님이 주셨으니 오늘 하루를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어떤 어려운 환경에 있다 할지라도 낙심하거나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고 `내 인생은 내 힘으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위험한 생각입니다.

우리 인생은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어쩔수 없는 많은 사건들이 발생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 인생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일은 주님 것으로 맏기고 단지 우리는 주어진 오늘을 내것으로 알고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현실속에서 하나님의 메시지가 무엇인가 헤아려 알고 이제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다만 우리는 12절과 13절을 항상 마음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꼭꼭 숨어 계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와 숨박꼭질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전심으로!(all my heart) 참 마음으로!(in my heart) 주님을 부르면 만날 수 있는 분이십니다.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나를 찾고 찾으면" "들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만나셔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길 축원합니다.
다같이 12-13절을 함께 읽고 마치겠습니다.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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