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과 성취
2002-01-30 13:37:58

출애굽기 25 : 1-22 ( 2001년 5월 27일 )



출 25: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출 25: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찌니라
출 25:3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출 25:4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 털과
출 25:5 붉은 물 들인 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출 25:6 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과
출 25:7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출 25: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출 25:9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찌니라
출 25:10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짓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출 25:11 너는 정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윗가로 돌아가며 금테를 두르고
출 25:12 금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그 네 발에 달되 이편에 두 고리요 저편에 두 고리며
출 25:13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고 금으로 싸고
출 25:14 그 채를 궤 양편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출 25:15 채를 궤의 고리에 꿴대로 두고 빼어내지 말찌며
출 25:16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찌며
출 25:17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출 25:18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출 25:19 한 그룹은 이 끝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하게 할찌며
출 25:20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출 25:21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출 25: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세계적인 신앙 잡지「Pulpit을 발행한 스피노스 조디아티 목사님은 살아있는 교회와 죽어 가는 교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살아 있는 교회는 교실, 주차장등 공간이 늘 모자라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죽어 가는 교회는 공간을 염려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교회는 항상 변화한다. 그러나 죽어 가는 교회는 늘 똑같다. 살아 있는 교회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의 떠들고 재잘거리는 소리로 늘 시끄럽다. 그러나 죽어 가는 교회는 죽은 듯이 조용하다. 살아 있는 교회는 언제나 일이 많아 일꾼이 부족하다. 그러나 죽어 가는 교회는 일이 없기에 일꾼을 찾을 필요가 없다. 살아 있는 교회는 언제나 예산을 초과해서 쓴다. 그러나 죽어 가는 교회는 은행에 잔고가 많다. 살아 있는 교회는 새 얼굴의 사람이 많아 이름을 알기가 어려워 애먹는다. 그러나 죽어 가는 교회는 해를 거듭해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살아 있는 교회는 선교사업이 활발하다. 그러나 죽어 가는 교회는 교회 안에서만 움직인다. 살아 있는 교회는 드리는 자(giver)로 가득 차 있고, 그러나 죽어 가는 교회는 티내는 자(tipper)로 가득 차 있다. 살아 있는 교회는 믿음으로 운영되지만 죽어 가는 교회는 인간적 판단에 의해 운행된다. 살아 있는 교회는 배우고 봉사하기 위하여 바쁘지만 죽어 가는 교회는 지내기가 편안하다. 살아 있는 교회는 활발하게 전도하는 사도행전 적인 움직임이 있지만 죽어 가는 교회는 점점 굳어져 석화 되어 간다.

어떻습니까? 공감이 되시리라 믿습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 덕일 교회는 은행에 잔고가 있는 것을 제외하면 분명 살아 있는 교회, 비전이 있는 교회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사람을 세우는 공동체에 대한 비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교회로 세워주신 목적은 사람을 얻고 그를 양육해서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으로 세워서 그가 또 다른 사람을 전도하고 양육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 나가지 않으면 교회는 병들고, 힘을 잃고, 생명력을 상실하고 죽어버립니다. 그러나 교회가 세상을 복음으로 섬길 때 교회는 희망이 있고 안식이 있고, 사람들이 찾고 싶어하는 교회가 됩니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예루살렘 교회는 처음에는 좋았습니다. 하루라도 보지 못하면 견딜 수 없을 만큼 그 교회는 친밀감이 깊어졌고 서로를 책임지고 돌보려는 마음이 강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그 교회는 배타적인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매우 이기적인 교회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교회 밖으로 눈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처음부터 선교하는 교회였습니다. 처음부터 교회 밖의 영혼들에 대한 거룩한 부담을 갖고 성령의 명령에 민감하게 순종하는 교회였습니다. 그 교회를 통해서 소아시아와 유럽이 복음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사랑하는 덕일의 가족 여러분!
우리 교회가 세상을 복음으로 섬기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영적인 영향력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세상은 저절로 변화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급속도로 악화되고, 세속화되고, 물질화되고, 개인화되고, 비인간화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오히려 세상을 변화시켜야 되는 교회들이 점점 그 세상에 포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힘을 잃고, 생명력을 잃고, 비전과 영적인 능력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고, 겉모습은 교회이나 내용을 보면 전혀 교회가 아닌 무슨 사교클럽이나 동아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모습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포로가 되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몇 가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신령한 예배를 통해서 초월적이고 우주적인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사단의 뛰어난 전술 중에 하나는 성도로 하여금 계속해서 예배 없는 사역을 하게 하고, 예배 없이 성경공부만 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 없이 중요한 일만 하다보면 은혜가 다 떨어져 버립니다. 사랑과 덕이 다 떨어져 나갑니다. 믿음도 다 떨어져 버립니다. 그러면 인간적인 생각만 남습니다. 불평하게 되고 계산하게 되고 따지게 됩니다. 그러면 교회는 이미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사람은 예배를 통해서 광대하신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 예배 가운데 임재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는 악한 영들을 결박해주십니다. 그래서 예배는 모든 질고와 가난과 어둠의 영으로부터 해방을 받는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이 축복된 신령한 예배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 밖의 영혼들에 대해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를 하는 성도들을 보십시오. 신앙의 불필요한 악세사리들이 다 떨어집니다.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사치스러움이 없습니다. 내가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가? 내가 가진 돈과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가 분명합니다. 그분들은 고민할 사치스런 시간이 없습니다. 영혼을 구원할 분명한 삶의 명제 때문에 단순하면서 가치 있는 삶을 삽니다. 그래서 교회가 전도로 들끓는 교회는 분쟁이 없습니다.
셋째는 풍성한 양육과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구원은 단번에 받습니다. 순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받은 이후에 계속해서 성장하고, 성숙하기 위해서는 양육과 훈련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올림픽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사람들을 보면 우연히 금메달을 얻은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훈련에 훈련을 반복한 결과로 얻어졌다는 것입니다. 네비게이토를 창시한 도슨 도로트슨이라는 분은 이런 유명한 말을 하였습니다. " 제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으로 되는 것이다. " 그렇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를 양육하는데 3년이 걸렸고, 바울은 디모데와 디도같은 제자를 양육하여 그를 목사로 세우는데 어쩌면 평생이 걸렸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덕일의 가족들이 믿음과 인격이 자라기 위해서 권면을 드린다면 양육을 받는 사람이 되든지, 양육을 하는 사람이 되든지 둘 중의 하나에 속해야 합니다. 그러면 덕일 교회는 어떤 양육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 교회의 양육의 시스템은 아주 단순합니다. 그것은 순이라는 작은 공동체와 교회 학교 안에 작은 순을 통해서 관계중심으로 양육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말씀을 배웁니다. 거기에서 말씀을 적용합니다. 거기에서 적용한 말씀을 나눕니다. 상호 돌보고 기도합니다. 서로를 세워주고 담당해줍니다. 거기에서 전도도 하고 선교도 하고. 연약한 사람들을 돕고자하는 긍휼의 사역도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성령께서 그 공동체에게 동일하게 주신 비전을 위하여 함께 수고하고 함께 대가를 지불합니다. 내가 경험한 예수 그리스도를 나눔을 통해서 다른 지체들에게도 전달이 됨으로 모든 순원들이 함께 예수님을 경험하게 됨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되어 함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교회 안에는 성경학교도 있고, 여전도회도 있습니다. 제직회 산하 여러 부서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조직과 부서들은 교회의 핵심이고 본질인 순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순으로 하여금 더 풍성한 나눔과 사역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순을 통한 사도행전적 번식과 역사가 일어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들입니다. 순이 건강하고 부흥하고 번식하면 순이 또 다른 순을 낳습니다. 순이 자꾸 순을 낳으면 교회는 저절로 부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순을 통한 부흥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피터 와그너라는 유명한 교회성장학자는 " 목표가 없으면 회개도 없다 " 고 하였습니다. 목표 없이 성공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교회의 목표와 비전이 없이 교회가 성장하고 부흥한 교회는 한 교회도 없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새들백 교회의 릭 워렌 목사님은 ' 목적이 이끌어가는 교회 ' 라는 목회철학을 가지고 교회를 개척해서 목회해서 세계적인 교회로 성장시켰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교회가 주님 오실 때까지 지향해야 할 목표는 사람을 세우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그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올해 안에 이루어야 할 가시적인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목표가 있어야 하고, 순 공동체별로도 부흥에 대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목표를 가진 것과 가지지 않은 것에는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의 디트로이트에 있는 헨리 포드의 기념관에는 이런 명문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 헨리 포드는 꿈을 꾸는 사람이었고, 그의 아내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 만일 헨리가 말이 끌지 않아도 갈 수 있는 사륜차를 만들겠다는 목표가 없었다면 자동차는 훨씬 늦게 발명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한 분이 일년에 정말 한 가정을 온전히 전도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보십시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사랑의 대가를 지불해보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그 목표는 달성됩니다. 여러분의 순이 일년에 한 순을 분순 할 목표를 정하고 전략을 세우고, 모일 때마다 기도하고, 전략을 실천하고 점검해보십시오. 반드시 분 순의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교회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성령께서 저에게 주신 올해 교회의 목표가 있습니다.
첫째는 올해 안에 20개의 순이 30개의 순으로 번식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300명 출석교회에서 400명 출석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10개 이상의 기능 순들이 삶의 현장 속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직장 속에서, 지역 속에서, 학교 안에서 중고등학생들과 청년들, 어른들이 내가 처한 그 현장에서 말씀을 나누고 그 지역과 직장과 학교 그리고 가정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영적 영향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30명의 평신도 지도자를 세우고, 3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고 꿈이고 확신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여러분의 절대적인 협력과 기도와 동역이 있다면 저는 이 비전들이 충분히 성취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한가지 우리 교회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차 공간이 있는 땅과 교육하고 양육하고 예배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새로운 성전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한 참 부흥하는 남가주 사랑의 교회의 오정현 목사님이 쓴 " 열정의 비전 메이커 " 라는 책 속에 그분이 체험한 교회부흥의 원리를 기록해 놓았습니다. 교회가 부흥하는 교회는 크게 세 가지 특징이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그 교회가 얼마나 사랑의 공동체 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서로 섬기고 축복하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어 갖고 함께 책임지려고 하는 마음이 있으면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성도님이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 병실에는 꽃다발이 즐비하다면 그 교회는 공동체성이 있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 교회가 얼마나 철저하게 양육되어가고 있느냐에 따라서 성장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판가름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공동체성을 지향하고, 열심히 말씀을 가르치고 훈련을 해도 세 번째로 교회의 재생산성이 없으면 교회는 그 선에서 정지되고, 정체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3년 전에 그 책을 읽고 너무 그 말씀에 공감을 했습니다. ' 아 그렇구나. 그렇지 어쩌면 이 말씀은 우리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지 몰라. ' 그 때부터 제가 기도하여 온 것은 교회의 장막터와 공간이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바로 재생산성의 확보였습니다.
아무리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고, 순 예배를 위해서 공을 들여도 교회의 재생산성이 있어야 우리의 공동체성은 더욱더 깊어지고, 성도들은 안심하고 양육과 훈련을 받고, 더 나아가 교회가 이 지역을 섬기고, 지 전주지역의 영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필요는 여러분 모두가 공감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4년 전에 주신 성전의 비전을 놓고 기도해 왔고, 준비해 왔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셔서 땅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여기 저기에서 우리 교회보고 땅을 사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땅이 우리의 것이 되고 그 위에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서는 그 땅을 믿음으로 차지하는 거룩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꿈을 주십니다. 비전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 비전의 성취는 우리의 믿음과 순종과 거룩한 대가를 지불함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성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킨 후에 그들과 언약을 약속했습니다. 너희가 나를 섬기면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고 나는 너희의 여호와 하나님이 되리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친히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고 그들을 만나고 교제하고자하는 그 언약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성막을 짓도록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 그들 중에 거할 성소라고 하였습니다. 또 22절에 보시면
"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
성소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친히 그의 백성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왜 시험이 들고, 건강을 잃고, 재산을 잃고, 신용을 잃고, 존귀함과 거룩함을 잃습니까? 해답은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면 하나님의 의로운 오른 손이 여러분을 붙들어주십니다. 지켜주십니다. 악이 성치 못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편에서 우리의 그늘이 되셔서 낮의 해를 막아주시고, 밤의 달이 상치 못하게 하십니다. 원수 앞에서도 상을 받게 하시고, 죄악도 이기게 하시고, 악한 영도 이기게 하시고, 절망도 이기게 하시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받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하나님 없는 성공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아니 그것을 재앙으로 여기십시오. 언제 추락할지 모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보증해 주지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고 하나님이 보증하는 것만이 진정한 축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진정한 축복의 의미를 알았기에 광야 생활이 어려운데도 성막을 건립하는데 신나는 마음으로 총력을 기울여서 자원하는 헌신을 하면서 성막을 지었습니다.

성전의 비전을 주신 하나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도 여전히 광야길입니다. 힘들고 어렵습니다. 지치고 피곤합니다. 어느 하루 사건이 없는 날이 없습니다. 이것이 인생의 현장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 광야 한 복판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성전을 지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거하시려고, 우리를 만나주시려고, 또 우리에게 하늘 문을 활짝 열어 모든 필요한 은혜를 주시고, 하늘의 신령한 복을 주시고, 신령한 능력을 주시려고,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확장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성막을 짓도록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어디에서 은혜를 받고, 어디에서 하늘의 복을 받고, 어디에서 쉼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계신 이 곳입니다.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령한 예배를 통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며, 하늘의 복을 받아 누리게 하시기 위해서 성전을 짓도록 비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사랑하고 양육하여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하여 주님이 기뻐하는 교회 되게 하시려고 성전에 대한 비전을 주셨으며, 세상을 섬기고, 열방과 족속을 구원하는 교회 되게 하시려고 성전에 대한 비전을 주셨습니다.

비전은 하나님이 주셨지만 성취는 우리의 몫입니다.
그러나 그 비전을 성취하는 것은 누구의 몫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꿈을 주십니다. 비전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 비전을 성취해야 하는 것은 그의 백성들의 순종과 사랑과 땀과 눈물의 고귀한 대가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성막의 비전을 주셨습니다. 성막을 만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통해서 그 성막을 만들라고 하였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즐겨내는 예물을 가지고 만들라고 하였습니다.
2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 오라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 찌니라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만나는 그들의 노력 없이 하나님이 그냥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인 성소를 만들 때는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재료를 준비함에 있어서 첫째는 하나님이 정한 예물을 드려야 했고, 드리되 즐거운 마음으로 자원하여 드리기를 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한 예물을 가지고 나오되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도록 했습니다.

한 번들어 보십시오.
"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과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

이렇게 하나님께서 세밀하게 하나님께 드릴 재료를 계시하고 있습니다. 성막의 재료뿐만 아니라 크기와 위치와 역할까지도 하나님은 하나에서 끝까지 계시하여 주었습니다. 9절 말씀을 보십시오. "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찌니라 "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의 장소인 성막을 짓는 중요한 원칙이 있음을 봅니다.
첫째는 우리자신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재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막을 짓는데 거기에 사람의 욕심이나 자기 중심적인 의견이나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에서 끝까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설계도에 의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재료들로만 짓도록 하였습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전을 지어 정말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비전과 갈망을 순종하는 재물이 되어야 합니다.
땅을 사고, 건축을 할 때 그 때 성령이 가장 크게 역사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교회는 땅을 사고 건축을 할 때 교회가 두 배로 부흥한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땅을 사고 건축을 할 때 성령이 역사 하는 만큼 사단이 가장 역사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전건축은 교회의 부흥과 축복을 가져올 수 도 있고 교회의 분열을 가져올 수 있는 커다란 모험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전의 건축을 통해서 우리 교회가 축복이 되고, 부흥이 되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것입니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인간적인 생각이나 계산을 접고 오직 주님의 재물이 되어 드려지는 것입니다. 뭐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고, 하나님의 생각이 아니라 내 생각이라면 무조건 접어두십시오. 그것이 믿음의 고백이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이고, 자아중심의 생각이라면 접어두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성막을 짓도록 명한 때는 그들이 호외 호식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여유 있는 삶을 살 때가 아니었습니다. 거친 광야에서 고독하고, 목마르고, 힘들어 할 때였습니다. 왜 성전이 필요할까요?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고, 축복을 누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인 절대적인 선교명령을 감당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나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현실에 포로가 되지 말고 믿음의 눈을 떠야 합니다. 돈을 생각하고 계산하면 절대로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돈이 문제가 절대 아닙니다. 마음이요, 믿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지면 그 다음에 몸을 드릴 수 있습니다. 몸을 드려서 못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리빙스턴이 어렸을 때 주일 학교에서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서 선교에 대한 도전을 받았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에 헌금시간이 돌아왔는데 그는 드릴 헌금이 없습니다. 그래서 헌금쟁반이 자기에게 돌아올 때 리빙스턴은 그 헌금 쟁반 위에 앉아 버렸습니다. '나는 지금 드릴 돈은 없지만 내 몸을 다 재물로 드리겠다' 는 헌신의 표시였습니다.
그랬던 그가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었습니까? 아프리카에서 일생을 바쳐서 선교했던 위대한 선교사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현실을 보면서, 돈을 보면서 자꾸 계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전 건축에 대한 거룩한 부담과 비전을 주셨으면 그것을 능히 감당하게 하시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지금 하나님의 재물이 되어있는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몸으로 헌신하는 것을 너무나 기뻐하십니다.
백화점 계의 거성 J . C. Penny라는 사람은 이런 유명한 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우리의 소유물을 소유하기를 원치 아니하시고, 나를 소유하기를 원하신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말씀하십니다.
"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라. "
우리 모두가 주님 앞에 드려지는 재물이 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 속에 성전은 건축되어질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자원하는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물을 드리되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면 그것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억지로 드리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것 안 냈다가는 큰일나지? 또는 체면으로 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출35 : 5절을 보시면 " 너희의 소유 중에서 너희는 여호와께 드릴 것을 취하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 지니 곧 금과 은과 놋과 "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없는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너희 소유 중에서 너희는 여호와께 드릴 것을 드리라 ' 고 하였습니다. 또한 '마음에 원하는' 이란 표현 속에서 하나님은 자원함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계시한 이 축복의 성전을 지을 때 실재로 그들은 광야가운데서도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렸고, 분에 넘치게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 출36 : 5-7절을 보시면 " 모세에게 고하여 가로되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오므로 여호와의 명하신 일에 쓰기에 남음이 있나이다. 모세가 명을 내리매 그들이 진중에 공포하여 가로되 모론 남녀하고 성소에 드릴 예물을 만들지 말라 하매 백성이 가져오기를 정지하니 있는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더라. "

무슨 말입니까? 건축헌금을 했는데 성도들이 너무 많이 해 가지고 " 여러분 제발 그만하세요. 이제 되었어요 " 하고 말리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이런 일이 있을까요? 자원해서 기쁜 마음으로 드릴 때 이런 일들이 벌어집니다. 이제 되었습니다. 제발 그만 하세요. 라고 말 할 수 있는 수준 그것이 자원하는 마음의 역사입니다.

천안의 호도과자 할머니 심복순 권사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얼마 전에 텔레비전에도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만은 이 분은 65년 전에 호도과자를 개발하여 85세가 되는 지금까지도 이 빵을 구워 팔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쓰신 책 하나가 참 많은 감동을 줍니다. 그 제목이 『나는 다윗 왕보다 행복합니다』라는 책입니다. 내용의 핵심은, 다윗은 위대한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전건축의 소원을 이루지 못했는데, 자기는 이런 조그만 풀 빵 장사를 하면서도 주님의 성전을 일곱 개나 지었기 때문이라는 멋진 간증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성전을 건축할 때는 언제나 충만한 감동과 흥분된 마음으로 신나게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우리보고 만들라니 얼마나 가슴 설레이는 일이며, 영광스런 축복인가! 하면서 그들은 흥분과 감격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성전을 지었습니다. 성전을 건축하여 주님에게 드림은 우리 인생에게 주어지는 최상의 특혜요, 최고로 값진 일입니다. 다윗 왕은 역대상 22장과 29장을 보시면 자기 생전에 성전 건축을 완공하지 못하는 줄 알면서도, 자재를 준비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좋아서 기쁘고 즐겁게 일하는 모습을 역역히 보여줍니다

성전 건축의 비전을 함께 이루어갑시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마치 광야 길처럼 힘들고 어려 워도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며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어나가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성전 건축의 비전을 기쁘게 이루어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차장이 있는 교회, 대문이 있는 교회, 교육관과 식당이 있어서 지역사회의 주부들과 노인들을 섬기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교회, 수많은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주일 내내 교회 안에서 영적인 훈련을 하고 배울 수 있는 교회, 아름다운 공간 속에서 성경학교마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말씀을 배우고 기도하고 믿음 안에서 서로를 섬기고 축복함으로 장성한 분량으로 성숙하는 교회, 청춘 남녀들이 결혼시즌이 되면 앞다투어 덕일 교회에서 결혼식을 하기를 소원하는 교회, 우리의 삶의 현장을 구체적으로 변화 시켜나가는 사도 행전적 교회,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안식을 줄 수 있는 교회, 전주시내에 800개의 교회중의 하나가 아니라 정말 사도행전의 교회, 안디옥 교회와 같은 모델이 되는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예수가 소문난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작지만 주님이 기뻐하고 인정하는 교회, 수많은 사역자들을 기르고, 선교사를 파송하고 선교하는 교회, 이 교회를 통해서 지역이 복을 받고 각 성도의 가정과 직장과 사업이 복을 받고 자자손손 믿음을 계승 할 수 있는 교회에 대한 꿈을 그리며 믿음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부족하지만 주님의 재물이 되어서 비전을 이루고 약속한 축복들을 경험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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