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레터 2002-01-29 13:05:05 시 : 119: 97~104 97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98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99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100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 101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102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104 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제가 아는 분 가운데 20년 넘게 편지 배달을 하신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재미있는 얘기를 하나 해 주었어요. 편지를 전해줄 때 받는 사람의 표정만 보아도 편지 보낸 사람과의 관계를 짐작한답니다. 그것이 세금고지서인지, 별 볼일 없는 동창의 편지인지, 가까운 친구의 편지인지를 알아낼 수 있다는 겁니다. 그 중에 전해주면서 특별히 기쁨을 주는 편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러브 레터(love letter)'라고 합니다. 러브 레터를 전해주면 받는 사람의 기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흥분된 눈빛, 상기된 표정,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몸짓, 그런 것을 보면 자기도 덩달아 기뻐진다고 합니다. 저도 역시 러브 레터의 위력을 느껴 보았습니다. 저희 집사람과 만난 것이 궁금하신 분들이 계신데,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서로 첫눈에 반해서 6년이 넘게 연애를 했어요. 그런데 대부분 떨어져서 지냈어요. 저는 대전에서 신학교를 다녔고 집사람은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어요. 졸업 후에는 제가 군대를 갔어요. 그래서 우리는 편지로 많은 내용을 주고 받았어요. 군대에서 집사람으로부터 100여 통에 달하는 수많은 러브 레터를 받았어요. 지금 그 편지를 잘 간수해 두었어요. 회갑이 지나면 읽어보려고요. 그 때도 변함이 없는가 대조해 보려고요. 그 편지를 받았을 때의 기쁨과 흥분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편지 한 장을 받으면 일주일이 기쁜 겁니다. 고달픈 군 생활이 다 잊혀지고, 낙심했던 것이 용기가 솟아났어요. 어떤 편지는 읽고 또 읽어서 내용을 다 외우는 것은 물론이고, 편지가 너덜너덜해진 것도 있어요. 제가 보낸 편지는 오죽했겠습니까? 왜 러브 레터가 우리를 그토록 기쁘게 할까요? 왜 러브 레터에는 그토록 큰 능력이 있을까요? 그 이유는 그 편지를 보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것을 알고, 내가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온 편지가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편 119편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시편 119편이 성경에서 가장 긴 장입니다. 모두 176절이며 22개의 단락으로 각 단락이 8개씩 아름답게 짜여 있습니다. 22개의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대로 기록되어 있는데, 첫 번째 8절은 '가'로 시작됩니다. 가,나,다~ 이런 식으로 쓰여졌어요. 오늘 본문은 히브리어의 '멤'이라는 알파벳인데 영어의 '엠(M)'에 해당됩니다. 그 M으로 8절이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시편기자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 서 있게 됩니다. 먼 길을 여행하는 자가 어느 산 정상에 올라 지금까지 자기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또 남은 길을 바라보며, 먼 길을 걸어온 데 대한 감상에 빠진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는 지금 감격에 젖어 있습니다. 지나온 인생을 생각하니 너무나 감사한 겁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보낸 수많은 러브 레터 속의 내용이 자신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던지, 하나님의 말씀, 편지를 생각하며 지난 날을 추억하고 있는 것, 이것이 오늘 시편의 분위기입니다. 97절을 보세요.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러브 레터였어요. 사랑의 편지였어요. 그것을 얼마나 사랑했던지 종일 묵상했다고 간증합니다. 여기서 시편기자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것은, 이 러브 레터를 사랑해서 읽고 또 읽고 묵상했더니, 자기의 인생에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는 겁니다. 이것은 자기도 몰랐어요. 그저 좋아서 읽고 묵상했는데, 어느 날 어느 시점에서 자기의 인생을 돌아보니 놀라운 변화가 생긴 겁니다. 하나님의 편지가 자신의 생을 바꾸어 놓은 겁니다. 그래서 너무나 감격해서 무엇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바꾸어 놓았는지, 감격한 내용들을 기록해 놓은 것이 이 시편의 내용입니다. 무엇이 바뀌었다고 간증합니까? 두 가지를 얘기하는데, 첫 번째로 지성과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세 가지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데 살펴 보도록 합시다. 98절을 보세요.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더니 자신이 지혜로워졌다는 겁니다. 어느 정도로 지혜로워졌는가? 원수보다 지혜로워졌다는 겁니다. '원수'라는 말을 시편 119편 23절에서는 '방백'이라고 얘기합니다. 방백은 정치가를 말합니다. 정치가는 잔꾀가 필요하고 머리를 굴려야 합니다. 한국사람들은 YS와 DJ와 JP의 장기놀음을 수십 년간 보고 있습니다.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업적이 조그마해도 그것을 100배로 튀길 줄 알아야 하고, 자기의 잘못은 감쪽같이 남에게 미룰 줄 알아야 하고, 얼마나 머리를 돌려야 하는지 모릅니다. 한국의 정치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인해 그 정치하는, 머리 돌리는 사람들에게 전혀 해를 받지 않을 정도로 참 지혜를 가지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 말씀은 나를 공격하려는 모든 사람들, 나를 구렁텅이에 집어 넣으려는 사람들, 잔꾀로 나를 골탕먹이려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지혜가 그들보다 더 뛰어나서 전혀 문제없이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다는 겁니다. 달라스 신학대의 총장이셨던 찰스 스윈돌 목사님이 얼마 전 사표를 내시고 다시 목회를 시작했어요. 65세에 개척을 하셨는데 1년만에 2000명이 모였어요. 달라스의 대 사건입니다. 그 분이 어느 날 이런 설교를 했어요. "우리 그리스도인이 사회법을 지켜야 합니다. 공중도덕을 지켜야 합니다!" 하고 강하게 설교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때로 설교자는 설교를 끝내고 나면 이상한 현상을 느끼게 됩니다. 힘들게 설교 준비를 해서 그 설교를 끝내고 나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멍하다거나 마음이 공허하다거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 날, 신호등에 멈추어 있다가 누군가 출발하는 것 같아 출발을 했는데 빨간 불이었어요. 이미 늦었어요. 수많은 눈길들이 자기를 쳐다보았어요. 만명 이상 되는 교인이 같이 출발을 했는데 얼마나 많은 교인이 보았겠어요. 집에 돌아오니 간이 덜컥 했어요. "우리 교인들이 봤구나! 그 날 설교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틀쯤 후에 전화가 왔어요. "지난주에 목사님이 한 설교를 어겼다고 누가 항의를 하면서 목사님께 따져야겠다고 모임을 갖겠다고 합니다. 누군지 모르지만 조심하세요!" 며칠 후 금요일에 교인 중에 까다로운 사람 하나가 "제가 모임을 좀 가지려고 하는데 목사님 식당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하고 연락이 왔어요. "큰일 났구나!" 날짜가 지나 만날 시간이 다 되었어요. 목사님은 그 식당에 가면서 목에다가 간판을 걸었어요. 거기에 "I'm guilty (나는 죄인이다!)"라고 썼어요. 식당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와!"하고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어요. 험악한 분위기가 다 해결되고 난 후에 찰스 스윈돌 목사님이 뒤로 돌아섰어요. 거기에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라고 써 있었어요. 지혜입니다. 딱딱하게 변명을 했다면 그 상황을 어떻게 넘겼을까요? 평생 성경을 연구한 스윈돌 목사님의 지혜로 인해 그 식당에서 교제가 얼마나 좋았는지, 그들이 목사님을 더욱 지지하는 사람들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그 지혜는 어떻게 생깁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사회적인 모든 곤경에서 빠져 나오는 지혜가 생긴다고 시편기자는 말합니다. 그것이 자신의 삶에 생겼다고 간증합니다. 다니엘을 기억하십니까? 수많은 신하들이 다니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어요. 성경은 얘기합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다니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지만, 다니엘은 그때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그 곤경을 넘겼다고 합니다. 지혜롭기를 원하십니까? 정말 하나님 앞에 지혜를 얻기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이러한 능력이 있습니다. 시편기자는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어느덧 지혜롭게 되었음을 우리에게 간증하며 또 하나의 간증을 합니다. 99절을 보세요.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의 이유는 주의 증거를 묵상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명철함'이라는 단어는 '통찰력'을 뜻합니다. 사물을 깊게 보는 능력이 생겼다고 합니다. 사물뿐만 아니라, 어떤 사건을 볼 때도 깊게 봅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도 그냥 듣지 않고 깊게 듣습니다. 사람을 볼 때도 깊게 그의 동기를 헤아려 줄줄 압니다. 이런 사람은 늘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통찰력이 깊은 사람입니다. 삶에 통찰력이 없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그런 사람은 날마다 시끄럽고 교만하고 찰랑거리고 남에게 상처를 주기 일쑤입니다. 우리에게는 삶에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시편기자는 자신에게 삶의 통찰력이 굉장하게 생겼는데 어느 정도인가 하면, 대학교수보다, 초등학교 교사보다, 이 세상의 그 어떤 학자와 스승보다도 깊다고 얘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인해서입니다. 삶의 통찰력에 관한 좋은 예가 사무엘상 25장에 나와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등장하는데, 남편은 굉장히 통찰력이 없는 사람이었고 아내는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나발과 아비가일입니다. 나발은 히브리어로 '어리석은 자'라는 뜻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서 광야에서 군사들과 같이 지내고 있었어요. 거기서 큰 양떼를 치는 사람들과 만나게 됩니다. 그 당시 부자의 척도는 양떼를 강탈당하느냐 지키느냐에 달려 있었어요. 약탈만 당하지 않으면 부자가 되는 겁니다. 다윗이 선한 사람이기에 군사 수백만을 데리고 그 옆에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얼씬거릴 수 없었어요. 다윗은 간접적으로 그 사람에게 많은 은혜를 입혔어요. 종들이 나발에게 "주인이여, 다윗이라는 사람이 군사 수천을 데리고 우리와 같이 지냈기에 우리가 양을 한 마리도 잃지 않았습니다"라고 보고를 했어요. 다윗이 그것을 알고 나발에게 문안인사를 보냅니다. 목적은 자기가 간접적으로 은혜를 끼쳤으니, 먹을 것을 자기 군사들에게 나누어 줄 것을 기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나발은 안 된다고 돌려 보내면 그만인 것을, "다윗이 누구냐?" 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울 다음으로 왕으로 지목하여 그 소문이 온 이스라엘을 덮고 있는데 "다윗이 누구기에 내가 음식을 주겠느냐?" 하면서 다윗을 모욕하고 문안인사를 온 사람들을 쫓아 버립니다. 다윗이 화가 나서 군사 몇 십 명을 데리고 나발의 집에 쳐들어가면서 맹세합니다. "내가 내일 아침까지 나발의 집에 남자 한 사람이라도 살아있게 하면 내가 하나님 앞에 화를 입을 것이다!" 하면서 화가 나서 달려갑니다. 그 소식을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 듣습니다. 아비가일이 급히 양을 잡고 떡과 포도주를 준비하고 나가서 화가 나서 달려오는 다윗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아비가일이 얼마나 통찰력 있게 얘기를 하는지 다윗의 마음을 다 읽고 있었어요. 그 환히 꿰뚫는 통찰력을 가지고 다윗의 분노를 일순간에 누그러뜨립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 남자들은 죽이지 않고 음식을 받아서 돌아갑니다. 열흘 후에 하나님이 기름 부은 다윗을 욕한 나발을 쳐서 죽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다윗이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그때 화가 나서 달려가 그 남자들을 다 죽였다면, 왕이 되고 난 후에도 그 오명이 따라 다닐 것입니다. "다윗이 떡 몇 덩이 안 준다고 남자들을 다 죽였다! 살인자다!" 큰일 날 뻔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욕한 사람에게 다 갚아주시겠거늘, 내가 그 날 칼을 쓰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고 생각하는데 또 한 사람이 생각났어요. 그때 자신을 말려준 아비가일이 생각났어요. 사람을 보내어 그녀를 자기의 왕비로 맞습니다. 통찰력이 있으면 귀부인이 될 수 있어요. 왕비가 될 수 있어요. 통찰력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시편기자는 간증하기를,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했기 때문에 이런 통찰력이 생겼다고 얘기합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생긴 지성과 마음의 변화를 100절에서 얘기합니다.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 여기서 '명철함'은 '분별력'을 말합니다. 즉, 자세히 관찰하여 서로간의 차이 혹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제가 귀국하기 전, 미국생활 9년을 결산하면서 저희 집사람이 국제 콩쿠르에 나갔어요. 수십 개국에서 100명이 넘는 피아니스트가 참석했는데, 운이 좋아서 마지막 10명에 뽑혔어요. 집사람을 먼저 보내고 나니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뉴올리언스까지 가서 응원을 했어요. 제가 음악을 좋아해서 집사람이 레슨 받을 때 교수 뒤에 앉아서 듣곤 했어요. 그 대회를 내보내면서 교수가 한 곡에서 한 파트를 지정해 주었어요. 집사람이 치는걸 들으면 이상한데 자기도 그 부분의 해석이 좀 이상하다는 겁니다. 굉장히 탁월한 교수인데도 그 부분을 고쳐줄 수가 없다고 했어요. 어느 교수 이름을 말해 주면서 자문을 받고 내려가라고 했어요. 그런데 바빠서 자문을 안 받고 내려갔어요. 대회 때 제가 심사위원석 뒤에 앉았어요. 그런데 그 교수가 지적한 부분에서, 눈을 감고 있던 심사위원들이 갑자기 팬을 들고 뭔가를 기록하는 거예요. 열 명쯤 되는 심사위원이 동시에 약속이라도 한 듯이 말입니다. 깜짝 놀랐어요. 아니나 다를까 결승에서 떨어졌어요. 제가 들을 때는 똑같았는데 그 사람들에게는 동시에 이상한 것이 느껴진 겁니다. 이것이 바로 훈련된 귀와 훈련되지 않은 귀의 차이입니다. 분별력입니다. 오늘 시편기자는 말합니다. 삶을 사는데 무엇이 옳고 무엇이 나쁜지, 어떤 행동을 하는데 그것이 우리 가정에 덕이 되는지 아닌지, 이 말을 하는 것이 교회에서 덕이 될지 안될지, 예민하게 나의 행동 일거수 일투족을 분별하는 능력이 생겼어요. 그것이 모든 노인보다 높다고 합니다. '노인'은 '장로'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 그 당시 이스라엘에 동네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옳고 그름을 판단해 주는 나이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장로들입니다. 그들이 오늘날 재판관 역할을 한 것입니다. 지혜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젊은 시편기자가 말하기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더니 내 동네에 있는 수많은 장로들보다도 나의 분별력이 더 뛰어나게 되었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얼마나 고생을 합니까? 고등학교 3학년들을 보세요. 새벽 1시에 집에 들어와 새벽 6시에 집에서 나갑니다.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대학 4년, 대학원, 부모들의 많은 재산이 자녀들을 위해 지불됩니다. 그런데 과연 대학 졸업한 사람들이 분별력이 있습니까? 서야 할 자리에 서고, 해야 할 말과 안 할 말을 분별합니까? 아니요. 분별력을 얻기 원합니까? 참으로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주의 말씀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유명한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 그는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입니다.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어요. 그러나 그는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뛰어난 지혜와 통찰력과 분별력과 결단력이 있었던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기를 그 이유는, 링컨의 손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떠나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목사처럼 국회에 나와 연설할 때도 성경을 가지고 나왔고, 회의를 할 때도 항상 성경책을 들고 다니며 그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외웠습니다. 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습니까? 정말 여러분 마음에 지성과 변화가 일어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주의 말씀에는 능력과 위력이 있습니다. 지성과 마음을 변화시키는 능력뿐 아니라, 시편기자는 또 하나의 능력을 말해 줍니다. 101절과 102절에 기록된 행동의 변화입니다.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 두 가지를 얘기합니다. 101절-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102절-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01절은 부정적인 면이며, 102절은 긍정적인 면입니다. 우리가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 이 두 가지가 다 필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늘 이 두 가지를 같이 강조합니다. 어떻게 올바른 삶을 사는가? 나쁜 길로 가지 말아야 합니다. 동시에 좋은 길을 걸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성경에서 배우자에게 간음하지 말라고 가르치면서, 동시에 간음하지 않기 위해서는 부부간에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어떻게 성적인 죄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부부간에 좋은 관계를 가지는 것이 지름길입니다. 부부 관계가 나쁘면 시험에 들 수밖에 없습니다. 도둑질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혹시 도둑질하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면 성경은 얘기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라고요. 여러분 가운데 회사 돈을 횡령하고 싶고, 부수입을 갖고 싶고, 뇌물을 받고 싶고, 도둑질을 자꾸 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까? 그렇게 하지 않는 비결은 다른 사람을 돕는 것입니다. 헐벗은 자들을 도와 보시고 구호 헌금을 해 보시고, 멀리 선교지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여러분의 재물을 바쳐 보세요. 도둑질하고 싶은 마음이 다 사라질 겁니다. 원수를 미워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올바른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시편기자는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했더니 내게 삶의 변화가 생겼다고요. 어거스틴을 아시지요? 그의 어머니 모니카가 14년을 성전에 나와 무릎을 꿇고 그의 아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만, 그는 14년 동안 방탕한 생활을 합니다. 술, 색욕, 온갖 세상 생활을 다 합니다. 그 역시 어머니가 기도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기 때문에 똑바로 살아보려고 애를 쓰고 노력해 보았어요. 자기의 습관을 고치려고 노력해 보았어요. 그러나 번번이 실패했어요. 14년이 다 된 그 어느 날, 그는 정원에서 자신은 도저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없는 인간이라고 낙심해 있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어요. "읽어라!" 도대체 뭘 읽으라는 건가 하고 주위를 돌아보니 아무 것도 없어요. 자기도 모르게 일어나서 서재로 향합니다. 서재에 성경책이 펴져 있었는데 두 구절이 어거스틴의 마음의 눈을 찌르기 시작했어요. 로마서 13장 13절, 14절입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말씀이 어거스틴의 가슴에 박힌 그 날 이후, 그는 성 어거스틴이 되었습니다. '성자'라고 불렸어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입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습관, 정욕, 그런 것들로부터 깨끗해지기를 원하십니까? 변화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러브 레터, 사랑의 편지를 읽으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그저 기록된 역사적인 사실과 소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셔서 당신을 위하여 보내신 하나님의 러브 레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정말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러브 레터인 성경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까? 시편기자는 자기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편지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 몇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성경을 암송하고 묵상하라 98절을 보세요.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이것은 암송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몇 구절이나 암송하십니까? 대충 뜻만이라도 암송하는 구절이 몇 구절이나 될까요? 성경을 항상 지니고 다니는 방법은 마음에, 머리에 새기는 겁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묵상하라고 얘기합니다. 97절을 보세요.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암송과 묵상은 늘 같이 가는 겁니다. 저는 특별히 묵상을 권면하고 싶습니다. 저는 한 구절을 가지고 6개월까지 묵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영어로 외워 보고, 한국말로 외워 보고, 헬라어로, 독일어로, 불어로 해석해 보며 한 말씀을 가지고 깊이 묵상해 본 적이 있어요.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요. 우리의 삶을 바꾸기 위해 많은 말씀이 필요 없습니다. 한 말씀이 중요합니다. 어거스틴처럼요. 말에 대해 실수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에 대한 말씀을 깊이 묵상할 때, 내 입술이 정화되고 바뀌게 되는 겁니다. 정욕이 들끓는 사람이 한 말씀을 묵상할 때, 내 마음속에서 정욕이 사라질 수 있다고 성경은 얘기합니다. 지난 주간에 한 성도님을 만났어요. 그 분이 저에게 격려의 말씀을 해 주었어요. "목사님, 요즘 119편 강해가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저는 옛날에 시편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어요." 그 다음 제 귀를 번쩍 뜨이게 하는 말을 했어요. "제가 그 말씀이 너무 좋아서 묵상하다가 저도 모르게 그 구절이 외워졌어요." 하면서 그 외운 말씀을 암송하시는 겁니다. 연세가 50대 후반입니다. 돌아오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요. "이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2. 주의 말씀을 사랑하여 지키라 103절-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요즘은 단 것이 많으니까 별로 와 닿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3000년 전으로 되돌아 가보면, 꿀은 그 당시 가장 단 것이었어요. 시편기자는 말합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할렐루야!!! 이 말씀을 얼마나 사랑했던지요. 왜 우리의 삶에는 말씀이 역사하지 않을까요? 왜 시편기자는 이 말씀을 읽으며 지성과 마음에 변화가 생기고 행동과 삶에 변화가 생겼는데, 왜 내게는 일어나지 않는가? 아마 그것은 이 말씀에 대한 태도 때문일 것입니다. 옛날, 한 부부가 있었어요. 결혼을 하고 신혼 초에 남편 혼자서 유학을 떠났어요. 서로 편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호수에 나갔다가 너무나 아내가 그립고 사랑해서, 여러 가지 얘기를 썼어요. 이 편지는 너무 특별해서 그냥 보낼 수가 없어서 빨간 봉투에 예쁜 단풍잎을 하나 넣어서 보냈어요. 단풍 얘기와 자기의 사랑과 철학을 얘기했어요. 드디어 3년 후에 만났어요. 할 얘기가 많았겠지요? "여보, 내가 작년 가을에 빨간 봉투에 보낸 편지 기억하지?" "빨간 봉투? 으응, 기억나!" "단풍잎 넣어서 보냈잖아? 그 봉투에 쓴 편지 말이야!" "뭐라고 썼는데?" "글쎄? 그런 얘길 썼던가?" 대화가 되겠어요? 상처뿐일 겁니다. 천국에 가서도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대화하십니다. "내가 요한복음 13장에 얘기했던 것 말이야!" "요한복음 13장요?" "예레미야서요?" "하박국서라는 것도 성경에 있었던가요, 예수님?" 성경은 하나님의 러브 레터입니다.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책상 앞에 앉아 어느 날 순식간에 영감 받아 쓴 것이 아니고, 십자가에서 목숨을 내시며 피흘려 가며 쓰신 사랑의 편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정말 주님을 사랑합니까? 그렇다면 그 분이 보낸 편지를 읽으십시오. 가까이 하십시오. 마음에 새기십시오. 그 말씀을 사랑해서 지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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