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된 삶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성도
2002-01-14 13:50:14

마태복음 5장 13-16절


미국에 예수 잘 믿는 아내를 둔 술주정뱅이가 있었는데 어느 날 친구들과 술을 많이 마시고 나서
취중에 하는 말이, "내 아내는 아무리 술 취해서 오밤중에 들어가도 친절하게 맞아주고 술상도
차려달라면 차려주고 발도 씻어 주고 아주 친절하게 서비스를 잘 해준다"고 자랑을 하니까
정말 그렇다면 우리 모두 술 마시고 밤늦게 쳐들어 가보자고 하고는 여러 사람들이 술이 잔뜩 취해서
들어가서 술상을 봐 와라, 음식을 차려라, 별별 요구를 다 해도 웃으면서 친절하게 다 해주더랍니다.
거짓말이 아닌 것을 알고 다음 날 친구 중에 하나가 찾아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 귀찮은 일을 얼굴 한 번
안 찡그리고 친절하게 다 해 줄 수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저와 제 남편이 예수 믿기 전에 결혼했는데
후에 저는 예수 믿고 구원받았는데, 제 남편은 저렇게 예수 안 믿고 방탕한 생활을 합니다. 저대로 살면
내 남편은 영원히 고통을 받는 지옥의 형벌을 받을 터인데 이 세상사는 동안에라도 즐겁게
해 드려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하는 내용으로 설명했더니, 그 친구가 크게 감동을 받고 예수를 믿었고
결국 그 남편도 예수 믿고 술 끊고 좋은 신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성도들의 삶이 변화되면 우리 가정도 변화되고 우리가 사는 세상도 변화시킬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천국 가는 것은 선한 행실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의 공로로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받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착한 행실을 나타낼 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더 많은 불신자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가 있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5장 16절에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금년도 표어를 "변화된 삶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성도"라고 정했습니다.



우리가 변화되지 않고는 남을 변화시킬 수 없고 나아가서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세상이
교회를 파괴하고 우리를 변화시키려고 합니다.



이조 말엽에 조선 땅에 유행병이 많이 돌아 많은 시체가 뒹구는데도 모두들 전염될까 무서워서
시체를 치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때 예수 믿는 사람들이 팔 걷고 나서서 시체를 치우는 것을 보고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교회가 한다고 고종 황제의 마음이 녹아져서 기독교를 받아들이도록 허락했다고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거니와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은총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전 복음서가 말씀하고 있습니다(요한복음 3장 16절, 로마서 3장 22, 23, 24, 25절
갈라디아서 2장 16절). 로마서 3장 23-24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또 25절에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기 때문에"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강도 한 사람은 죽기 전에 회개하고 믿어 구원받았습니다.
저는 목회 하는 동안 교회 안 다니던 사람도 죽기 전에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얼굴빛이 달라지고 천사가 데리러 온다고 하고 천국이 보인다고 하면서 구원받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지만 그 사람들이 죽지 않고 계속 살았다면 행실이 바뀌고 삶이 변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 믿고 거듭난 후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면 구원받았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행위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데 도움을 주어 간접 전도가 되기 때문에 우리의 생활이 더 변화되어야 합니다.






1. 가정에서의 변화된 삶




① 부모에게 효도함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인륜에 관한 계명 중에 첫째 계명이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과는 좀 달리 부모에게 효도해야 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 때문에 모든 것을 참고 희생하면서 부모님께 효도해야 될 것입니다.
전에 누구의 부모인지 모르지만, 부모를 공경하라고 좀 가르쳐 달라고 전화를 받은 일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님을 못 섬기면서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복 받는 길이요
또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길이 됩니다.
어렵지만 용돈도 좀 드리도록 힘써야 될 것입니다.



② 자녀들에 대한 태도도 달라져야 합니다.



내가 낳은 자식이라고 학대하고 욕하고 함부로 구타하면서 주일 날 교회에 가자고 하면
"엄마나 예수 믿고 천당가세요. 난 교회 안 가요"합니다. 어떤 아이들은 "우리 부모는 맨날 교회
다니면서 닦달만 하지 웃는 걸 못 보겠어요"하고 비판을 한답니다. 무조건 용돈을 많이 주라는
것도 아닙니다. 권위 있게 엄한
모습도 보여줘야 합니다. 대학 떨어질 것만 걱정하지 말고 지옥에
떨어질 것을 더 염려하고 신앙으로 바르게 지도해야 합니다.



③ 부부간에도 생활 자세가 달라져야 합니다.



엊그제, 장애인과 애원하여 결혼한 목사님의 끔찍한 사랑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사모님은 누가
가까이만 있으면 어깨도 팔다리도 주물러 달라고 해서 교인들도 목사님도 늘 마사지를 해 주는데,
하루는 어느 여 집사님이 사모님이 주물러달라고 하니까 농담 삼아, "에이 귀찮아! 목사님,
쓰레기통에나 갖다 버리지, 뭘 데리고 사세요"고 할 때, 목사님이 웃으면서 "황금반지가 찌그러졌다고

쓰레기통에 버리나요. 찌그러져도 보물은 보물이지요"했답니다. 그 후부터 사모님은 자기 같은
장애인 못난이를 보배와 같다고 해서 그렇게 행복해 하더랍니다.



어느 부부가 늘 다투다가 마침내 파국에까지 이르렀는데, 대화하는 중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 때문에 이혼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서로가 단점과 약점을 들추어내면서
불평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데, "약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점과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결점과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
참 사랑이라고 봅니다.



어느 변호사의 부인이 예수 믿은 다음에 얼마나 착해지고 달라지는지 그 변호사가 지금은 내가
안 믿지만 내 아내가 변한 모습을 보면서 교회에 대해서 대단한 관심과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2. 이웃에 대하여 변화된 삶





아프리카 케냐에 영국 기독교 귀족이 살고 있는데 케냐의 한 소년이 그 집에 하우스 보이(house boy)로
일을 하다가, 석 달 후에 다른 데로 일자리를 옮긴다고 하더랍니다. 더 있으라고 하면서 봉급을
올려준다고 해도 간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이유를 물었더니 여기서 석 달 있었으니 모슬렘
회회교를 믿는 집에 가서 석 달을 일해 보고 기독교를 믿을지, 회회교를 믿을지 결정하겠다고
하더랍니다. 그제야 영국 귀족이 후회하면서 "그러면 진작 그 얘길 해주지 왜 가만있었느냐"고

하더랍니다. 바울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안 읽어도 우리의 행실은 잘 읽습니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그 나라 국민이, 전 인도와도 바꾸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영웅으로
대접받는 분인데 그 분도 역시 힌두교인 입니다.



그는 영국 옥스퍼드에서 공부를 하고 변호사가 된 분입니다. 그런데 간디가 고학하면서 어느
기독교 가정에서 일을 하다가 그 주인 집 사람한테 실망을 해서 거의 기독교인이 될 뻔했다가
힌두교로 돌아섰다고 합니다. 그가 기독교인이 되었다면 인도의 수 억만 인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뻔했는데, 기독교 한 가정이 빛이 되지 못해서 기독교로 전향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간디는 늘 성경의 산상수훈을 최고의 교훈이라고 하면서 늘 허리춤에 넣고 다니면서 읽었다고 합니다.



저희가 사는 아파트에 경비가 두 사람이 있는데, 어느 날 우리 교인한테 엄지손가락을 위로
쳐들면서 "목사님 가정이 최고"라고 하면서 자기는 힘들고 삭막해서 그만 두려고 했는데,
목사님 집 때문에 계속 있는다 라고 하더랍니다. 제 아내가 항상 먹을 것이 있어도 내려다
주고 가끔 적지만 봉투도 주면서 웃음으로 대해주었더니 그런 말을 듣게 된 것입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젊어서 어느 권사님 댁에 심방을 갔는데 안 계시더랍니다.
그래서 기다리는 동안 그 집에 세 들어 사는 아줌마한테 교회 나오라고 전도를 했더니,
대답하기를 "저도요 예수 믿어볼까 생각도 해보았는데요, 우리 주인 아줌마 보고 실망해서

안 믿기로 했어요. 그런 구두쇠가 없고 그런 깍쟁이가 없어요"하더랍니다.

우리가 변화된 삶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고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 해 전에 중국에 큰 가뭄이 든 때가 있었습니다. 농부들이 서로 물을 끌어가려고 싸움을 하는
때에 한 기독교 농부가 밤을 세워가며 자기 논에 물을 대고 새벽녘에 집에 들어가 잠을 좀 자고
나서 나와보니까 이웃 집 논 임자가 논둑을 터서 물을 다 빼앗아 갔더랍니다. 당장 싸우러 가고
싶었는데 예수 믿는 사람이니까 참자 하고 그날 밤 다시 물을 대어 놓았는데 다음 날 물을 또
훔쳐갔더랍니다. 당장 달려가 쳐죽이고 싶었지만 참고 자기 목사님을 찾아가 통사정을 했더니
목사님이 기왕 두 번이나 도둑맞은 물, 한 번 더 빼앗긴 셈치고 이번에는 그 사람 논에다 물을 먼저
대주고 당신 논에 물을 대십시오"라고 말씀하셔서 꾹 참고 그대로 했더니 그 이튿날 물을 훔쳐간
농부가 찾아와 울면서 잘못했다고 빌면서 예수 믿으면 그렇게 착한 사람이 되느냐, 나도 이제부터
교회에 다니겠다고 하더랍니다. 소금과 빛이 되는 생활로 또 하나의 영혼을 구원하고 변화시켰습니다.



불신자는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교회가 아무리 중요한 일을 한 대도 알지 못합니다.
보이는 것만 가지고 평가합니다. 그러므로 변화된 모습으로 저들을 감동시키고 변화시켜야 할 것입니다.






3. 사회에서의 변화된 삶





지금까지 가정에서의 변화된 삶, 그리고 이웃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변화된 삶을 말씀드렸는데,
주로 사랑의 실천으로 변화된 삶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회생활에서 변화된
삶은 사랑의 실천은 물론이지만, 정직하고 진실하고 공의를 실현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선민 이스라엘이 죄악이 관영하여 하나님의 큰 심판을 받아 크게 슬퍼하고 그 고통이 해산의
소리 같고 초산하는 자의 소리, 헐떡이는 소리가 가득하게 되고 큰 살육을 당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 5장 1절에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지만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이 하나도 없고, 공의를 행하며 의롭게 사는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부정과 부패가
극심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황폐하게 되고 살육을 당하며 고통 당하는 소리가 초산하는 자의
소리 같이 사방에서 들려왔지만 구해줄 자가 없었습니다.



미가서 6장 8절에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선하게 보신다는 것입니다.



샤머니즘이나 잘못된 종교에서는 공의나 진실의 개념은 없이 무조건 복 받고 성공하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기복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기독교는 그게 아닙니다. 성공이나 번영이나 명예나 이익보다
정직과 진실과 합법을 먼저 구해야 합니다. 성공이나 번영이나 명예를 얻지 못해도 정직하고 진실하고
합법적인 것을 먼저 찾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가난하게 살고 못 먹고 못 입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성공하고 잘 살아도 거짓되고 불의하게
성공하고 돈 벌어서 잘 사는 것이 더 부끄러운 것입니다. 한 40년 목회 하면서 보니까 거짓된 방법과
불의한 방법으로 검찰과 공무원에게 뇌물을 써 가며 불의하게 돈을 번 사람은 "주여 주여"도 하고
일시적으로 헌금도 많이 하는 것 같아도 오래 가지도 못하고 교회에서도 결국은 그런 방법을
쓰며
교회를 어지럽게 하다가 망하는 경우를 볼 수가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성공이나 번영이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고 합법적으로 사는 것이고 정직하고 의롭게 사는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하나님 앞에 의롭게 살고 정직하게
살기를 간절히 원하는 자에게 예수님의 구속의 은총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고 진정한 만족과
평안을 얻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구원을 받은 자일수록 의롭게
진실하게 살기를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몇 일 굶은 사람이 밥 먹고 싶듯이, 사막에서 목이 말라
죽게 된 사람이 냉수 한 컵 먹고 싶듯이 그렇게 갈구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피난민 생활을 할 때 해방촌에서 어느 권사님이 새벽 기도 나가다가 연탄불 아궁이를 보니까
연탄불이 죽었더랍니다. 그러니까 옆방에 잘 핀 연탄불과 바꿔치기를 하고 새벽 기도를 갔다 오더랍니다.
그런 불의한 마음으로 새벽 기도를 가면 뭘 하고, 간들 기도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미국에서 목사님이 어느 집사님 가정에 심방을 가서 화장실에 들어갔더니 수건이 산더미처럼
쌓였더랍니다. 자세히 보니까,
여행하다가 호텔에서 숙박하고 나올 때마다 훔쳐 가지고 온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믿음이 참된 믿음일까요? 그런 사람이 누가 안 볼 때 교회 헌금인들 안 훔치겠습니까?

디모데전서 1장 19절에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교통 법규 하나라도 제대로 지켜야 합니다. 예배 시간에 차량 안내하는 분이 수 십
명이나 됩니다. 추우나 더우나 수고하는데 사실 지시하는 대로 교인들이 따르면 차량 안내원이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칭찬은 못 해주나마나 자기 맘대로 못 대게 한다고 언성을 높이고 싸우자고
하는 사람도 있으니 이 사회가 언제 바로 되겠습니까? 기독교인들은 세상 생활에서 의롭고 공평하게
행동하고,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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